C. 20x 시리즈

 



1. 개요
2. 마키 C. 200 사에타
2.1. 산적한 문제점들
2.2. 전장에서의 활약
3. 마키 C. 202 폴고레
3.2. 그렇다고 문제점이 없을 리가 있나
3.3. 후일담
4. 마키 C. 205 벨트로
5. 마키 C. 206 / C. 207
6. 기타


1. 개요


이탈리아 굴지의 항공기 제작사였던 마키(Macchi)[1]사에서 개발한 전투기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 왕립 공군 의 주력전투기로 선정됐던 기종들인데, 실상을 따지고 보면 꽤나 안습한 기종. 구체적인 이유는 후술한다.
영국슈퍼마린 스핏파이어처럼 슈나이더 수상기 대회에 참여했던 항공기를 바탕으로 개발이 되었으며, 바탕이 되는 항공기는 1934년 대회에서 최고속도 신기록을 세운 기체였다. 게다가 이 기록이 '''무려 50년간''' 안 깨졌다. 그런 점을 볼 때 항공기 설계 자체는 영국이나 독일에 비해서 뒤쳐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문제가 있었다면 조국인 이탈리아가 이걸 대량양산할 공업력이 안된다는 것. 그리고 북아프리카에서 사망한 이탈로 발보의 공백이 강력한 이유로 볼수있는데, 이탈리아군 항공기에 대한 독일군의 평가만 봐도 알수있다. 즉 무솔리니와 그래도 말이 통하던 사람이 죽어버린 이후에 만들어진 항공기들이 그래도 쓸만했지만 강력하게 밀어보려던 인물이 없었다는 의미(...)
C. 200, C. 202, C. 205 순으로 개발되었다. 보통 다른 기체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실제 전투기 개발 과정에서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C. 200의 설계를 약간 고쳐서 C. 202가 개발되었고, C. 202의 설계를 약간 고쳐서 C. 205를 개발하는 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따라서 나무위키에서는 하나의 항목으로 합쳐서 서술한다. 참고로 MC. 20x는 마키(Macchi)사의 이니셜을 딴 것이고, C. 20x는 설계자는 마리오 카스톨디(Mario Castoldi)의 이름을 딴 것이다.
참고로 C. 20x 시리즈는 주익이 좌우 대칭이 아니다. 왼쪽 날개가 오른쪽보다 21cm 더 길기 때문. 이런 설계를 하게 된 이유는 토크를 해소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물론 양쪽 날개의 형태는 다르기 때문에(긴쪽이 더 가늘다.) 좌우 주익의 길이차이로 오는 성능 차이는 미미했다.

2. 마키 C. 200 사에타


[image]
사에타(Saetta)는 '천둥' 이라는 뜻이다.
'''Macchi C. 200 사에타'''
전장
8.25m
전폭
10.58m
전고
3.05m
익면적
16.82㎡
엔진
피아트 A.74 RC38 복열 14기통 공랭식 성형엔진, 이륙시 870마력
자체중량
1,964kg (전비중량 2,200kg)
최대속도
504km/h (고도 4,500m)
상승력
15.3 m/s
상승한도
8,900 m
항속거리
570km
무장
기수 상면에 브레다-SAFAT 12.7mm 기관총 2정, 정당 370발
이탈리아 공군에서 차기 전투기 사업을 추진할 때 Macchi 사에서 처음으로 제시한 개발버전이다. 1937년에 개발되었으며 슈나이더 대회 우승팀에서 나온 기체답게 경쟁기체 따위 바르는 성능을 보여주며 1938년 이탈리아의 주력전투기로 채택됐다. 하지만 설계가 좋아도 그 제반사정이 영 아니올시다였기에 실상은 그야말론 안습. 하나씩 까발려보자면…….

2.1. 산적한 문제점들


당시 전투기 개발의 트렌드는 폐쇄식 조종석이었던 데 비해 C. 200은 위가 뻥 뚫린 개방식 조종석을 채택하고 있었다. 원래 최초 설계안에서는 폐쇄식 조종석을 상정하고 있었지만 결국 기술적 문제가 터져 온전히 설치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고, 게다가 당시 이탈리아 공군 조종사들의 폐쇄식 조종석에 대한 반발이 심했던 까닭에 폐쇄식 조종석의 도입을 아예 포기해버렸다. 그 결과 공군 조종사들의 불만은 잠재울 수 있었지만 고공에서는 산소부족과 추위에 시달렸고 조종석 보호를 위해 천으로 덮어둬야 되는 등 여러 불편한 사항에 직면했다. 일설에는 이 조종사들의 불만이 '바람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어처구니 없는 이유라는 소문도 있지만, 정확히는 폐쇄식 조종석의 캐노피가 상당히 뻑뻑하게 설계되어 비상탈출시에 지장이 있다는 점, 그리고 조종석을 덮는 곡면 유리기술이 부족한 탓에 외부전경이 굴절되거나 아예 안보이는 문제 때문이라고 한다.
게다가 항공기 설계에 비해 ''' 장착된 엔진이 심하게 후달렸다.''' 당초 설계는 1,000마력급 액랭식 엔진을 장착할 예정이었으나 1932년 항공성의 결정으로 '''공랭식 엔진만'''을 사용하게 강제되어버렸다.[2]이 당시 이탈리아는 액랭식 엔진 위주의 기술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들을 사용할 수 없게 되면서 고작 840마력의 공랭식 엔진으로 개겨야 되는 상황이 터졌던 것.[3] 이로 인해 엔진출력이 후달리는 상황으로 이어졌고 이는 Breda-SAFAT 12.7mm 기관총을 2정밖에 설치할 수 없어 심각한 화력부족 상황을 야기하고 말았다. 그나마 일본의 Ki-43 하야부사 초기형처럼 7.7mm 2정으로 개기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 할 수 있으나 12.7x99를 사용하는 미군의 M2계열 기관총과 달리 Breda-SAFAT는 12.7x81 SR탄환을 사용하며, 위력을 늘리고자 그 구경에 '''작열탄까지 도입했음에도''' 그리 신통한 무기가 되지는 못했다. 결국 이 화력부족으로 인해 '''호커 허리케인보다 더 허접한 기체'''란 평을 듣게 만들었다.
여기에 이탈리아 공군의 높으신 분들삽질까지 겹쳐져 C. 200을 두 번 죽이는 사태가 벌어졌다. 일반적으로 차기 전투기 경쟁이 있으면 탈락한 기종들은 묻어버리고 채택된 기종에 올인했던 타국과는 달리 탈락한 기종인 G.50 프레치아를 보조전투기란 이름 하에 일정량 양산허가를 해줬고, 피아트사의 로비에 넘어가 CR. 42 복엽기마저 과도기적 전투기란 이름으로 채택하는 사고를 일으키면서 C. 200을 두 번 죽이는 것도 모자라 부관참시해버렸다. 결국 개전을 앞둔 시기 이탈리아 공군의 숫적 주력은 CR. 42였고 경쟁에서 승리한 전투기가 다른 탈락한 전투기와 비슷한 생산량을 기록하는 기현상을 빚고 말았다.
그 외에도 무전기가 개판이어서 수신호로 편대전술을 펼쳤다거나 하는 안습한 기록들이 남아있다. 다만 무전기는 다른 나라에서도 트러블을 경험했던 문제였기에 큰 단점이라 보기는 어려울 듯.

2.2. 전장에서의 활약


그나마 몰타항공전에서 좀 활약했지만 이런 악조건이 겹쳐져 C. 200은 연합군 전투기들에게 이리저리 치이다가 생산량 대부분이 손실되었다. 그리고 살아남은 기체는 연합군에 노획되어서 대부분 박물관으로 직행했다. 전투기 자체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기 보다는 신도 부처도 없는 이탈리아의 현지 상황으로 인해 가장 피 본 전투기이다.

3. 마키 C. 202 폴고레


[image]
폴고레(Folgore)도 역시 '번개' 라는 뜻이다.
'''Macchi C. 202 폴고레'''
전장
8.85m
전폭
10.58m
전고
3.49m
익면적
16.82㎡
엔진
알파 로메오 R.A.1000 R.C.41I/44I 역V자형 12기통 수냉식 엔진,[4] 1,175마력
자체중량
2,491kg (전비중량 2,930kg)
최대속도
600km/h (고도 5,600m)
상승력
18.1 m/s
상승한도
11,500 m
항속거리
765km
무장
기수 상면에 브레다-SAFAT 12.7mm 기관총 2정, 정당 360/400발
주익에 브레다-SAFAT 7.7mm 기관총 2정 장착가능, 정당 500발
50,100,160kg 폭탄 2발 장착 가능, 100L 드롭탱크 2기 장착가능
북아프리카 전역이 시작되고 영국의 왕립공군(RAF)와 맞붙어본 이탈리아 공군은 고성능 전투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고 있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이탈리아 내부적으로 해결되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 때까지도 계속 삽질만 반복하면서 베이퍼웨어가 되어버린 1000마력급 신형엔진 개발이었다.
결국 1940년 1월 이탈리아 공군 사령관이 베니토 무솔리니와 면담하는 자리에서 신형엔진 개발을 포기하고 독일제 엔진 도입을 추진하자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물론 당시 자만심 쩔었던 무솔리니의 답변은 '''"닥쳐"'''(…). 하지만 독일 공군은 승승장구하는데 반해 자신의 이탈리아 공군은 계속 죽을 쑤자[5] 마음이 급해진 무솔리니가 자존심을 접고 친히 아돌프 히틀러에게 직접 전화로 간곡히 요청하면서 Bf109E에 탑재되던 DB601 엔진을 도입하게 되었다. 물론 이 다임러-벤츠의 독일제 엔진은 '''수랭식'''이었다(...)
이에 따라 Macchi사도 이 신형 엔진을 장착하기 위해 새로운 기체 개발에 착수한다. 하지만 당시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시점에서 느긋하게 처음부터 다시 설계하고 개발할 시간이 없었다. 이에 따라 이미 검증된 C. 200의 기본설계를 바탕으로 DB엔진을 장착할 수 있게 변형하는 방식으로 1940년 8월에 신형기가 개발되었다.

3.1. 오오 C. 202 오오!


단지 엔진만 바꾸고, 그에 따른 미세한 수정만 했을 뿐인데 C. 200에 비해 최고속도 시속 100km 향상, 최대고도 2,600m 향상이라는 엄청난 스펙 향상을 보여주었다. 당연히 이탈리아 공군은 "엔진을 바꿨더니 엄청난 고성능 비행기가 나왔네! 야 신난다~"를 외쳤고, C. 202는 그 즉시 주력전투기로 채택되었다.
당시 북아프리카 전선의 영국군허리케인P-40 워호크를 주력 전투기로 운용하고 있었는데, 기존 전투기로는 아무래도 전선 유지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Macchi C. 202는 이 전투기들 따위 쌈싸먹을 수 있는 스펙을 선보였으며, 많은 허리케인과 P-40 워호크를 격추하였다. [6]. C. 202의 비행성능은 슈퍼마린 스핏파이어Bf109 F형과 동급일 정도로 우수했다.

3.2. 그렇다고 문제점이 없을 리가 있나


성능 자체는 많이 향상됐지만 C. 200의 프레임에 DB 엔진을 장착하는 것에 주력하다보니 화력부족 문제가 해결 안됐다. 그 때문에 C. 202도 브레다-SAFAT 12.7mm 기관총 2정 달고 개겼다. 나중에 화력 강화랍시고 주익에 7.7mm 기관총 2정을 달아 줬지만, 이미 적기들은 7.7mm 따위가 먹힐 만큼 허약하지 않았다.
게다가 성능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이탈리아의 안습한 공업생산력이 태클을 걸고 있었다. 당시 독일의 DB엔진은 알파-로메오사에서 라이센스 생산을 하고 있었는데, 생산량이 '''한 달에 50개 남짓'''일 정도였다. 그러니깐 비행기 많이 찍어봤자 엔진 때문에 한 달에 50개 출고하면 용하다는 소리이다. 여기에 높으신 분들은 여전히 삽질크리. 피아트사와 레지아네사의 전투기도 양산량을 할당하는 만행을 또 저지르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50개 밖에 안되는 엔진을 서로 나눠써야 되므로 1/n을 했을 경우 한 달에 20대도 출고 못하는 상황이 빚어졌다. 그 결과 마키사에는 엔진이 없어서 출고되지 못한 전투기가 쌓여 있는 지경이었다.
사실 여기엔 비약이 좀 있다. 이 당시 피아트 쪽은 기존의 870마력 공랭식 엔진을 쓰는 G.50 프레치아를 계속 생산하고 있었고[7], 레지아네 쪽은 DB601을 쓰는 Re. 2001 파르코 2를 일부 생산하기도 했지만 폴고레와는 달리 성능에 별 진전이 없어서 1175마력 급 공랭식 엔진을 사용하는 Re.2002 아리에테로 생산라인을 선회했다. 결과적으로 폴고레는 사에타와 맞먹는 1100대 정도가 무사히 생산되었고, 이탈리아 공군의 주력을 유지하는데 별 문제가 없었다. 물론 연합군은 차치하더라도 같은 추축군의 독일의 Bf 109의 3만대나 일본의 제로기의 1만대에 비교하면 매우 비참해진다. 오히려 진짜 사건은 DB605를 도입할 시기에 터졌다. 마키 사의 C.205 벨트로와 피아트 사의 G.55 첸타우로, 레지아네 사의 Re. 2005 사지타리오 셋 다 같은 DB605엔진을 쓰고 있었고, 이탈리아 공군은 무슨 생각인지 이 셋을 모두 채용하는 패기를 부렸다. 여기서 굳이 이탈리아의 편을 들어주자면, 이 무렵쯤 되면 아프리카가 털리고 거의 항복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고성능 전투기가 조금이라도 더 필요했기 때문에 셋 다 채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세 기체의 생산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탈리아가 항복하면서 앞의 사건보단 좀 덜 주목받긴 한다.
그런데 이게 웃기는 문제인 것이 마키사는 이미 1931년에 수상기 주제에 세계 최고속이던 시속 709km를 찍은 M.C.72를 만든 경력이 있다는 점이다. (이 무렵 세계 최고속은 Hughes H-1 Racer 였으며 불과 566km였다. 당연히 수상기도 아니었다.[8])
[image]
이는 2차대전 말기 극한으로 발전한 시기에나 가능했던 속도를 거대한 항력을 발생시키는 플로터를 달고 낸 속도인데 (물론 기록 자체는 1939년 독일의 하인켈사와 메사슈미츠사의 마개조 기체들에 의해 깨지긴 했지만, 수상기로서의 최고속도 기록은 여전하다.) 이런 기체를 만들 수 있었던 마키가 엔진을 구하지 못해서 괴작들을 뽑아냈으니 당시의 엔지니어들은 정말 원통했을 것이다.[9]

3.3. 후일담


몰타나 북아프리카전선 등지에 파견되어 활약은 했으나 C. 200처럼 연합군에게 이리저리 치이다가 대부분 손실되었다. 전후에 몇 기가 남았는지 통계도 안 남아있다고 한다.
한편 태평양 전선에도 C. 202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이는 일본 육군항공대의 Ki-61 히엔이었다. 같은 엔진을 쓰며, 서로 상당히 비슷한 외형을 가진 탓인지 Ki-61의 연합군 코드명은 'Tony'가 되었다. 다만 그렇다고 히엔이 폴고레를 베껴서 만들었다고 보기는 어려운데 폴고레의 도입이 1941년 7월이고 히엔의 첫 비행일은 1941년 12월이다. 게다가 히엔은 Ki-60의 영향을 받은 물건인데 Ki-60의 첫 비행이 1941년 3월로 폴고레가 도입되기 이전에 개발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다. 이는 같은 종류의 엔진을 사용하다보니 유사하게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10] 다만 가와사키사가 해외 기술자들과의 교류가 잦았으므로 히엔의 개발에 독일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이탈리아 패망이후 유고슬라비아에 남아있던 기체들은 크로아티아 독립국의 소유로 넘어갔다.

4. 마키 C. 205 벨트로


[image]
벨트로(Veltro)는 '사냥개' 정도의 뜻이다. 위의 사진은 C.205V로 12.7mm 기총 2정과 7.7mm 기총 2정으로 무장한 기체이다.
'''Macchi C. 205 벨트로 V형 / N형'''
전장
8.85m / 9.55m
전폭
10.58m / 11.25m
전고
3.05m
익면적
16.80㎡ / 19.00㎡
엔진
피아트 RA.1050 R.C.58 '티폰' 역V자형 12기통 수냉식 엔진, 1,475마력
자체중량
2,581kg (전비중량 3,408kg)
최대속도
640km/h (고도 7,500m)
상승력
19.0 m/s
상승한도
11,500 m
항속거리
950km
무장
주익에 MG 151 20mm 기관포 1정씩, 정당 250발
기수 상면에 브레다-SAFAT 12.7mm 기관총 2정, 정당 400발
부무장
160kg 폭탄 2발
마키사는 이탈리아 공군의 요청을 받아들여 연합군의 중장갑 전투기와 폭격기를 상대하기 위하여 C. 202의 주익에 기관총이나 기관포를 설치하는 시도했지만 그 때마다 성능 저하를 보이면서 번번히 실패를 하고 있었다. 이에 대한 원인을 분석한 결과 면허생산중인 엔진이 너무 구식이라는 점이 지적됐다. 결국 독일에 다시 한 번 간청하여 Bf-109G에 탑재되던 1475마력짜리 DB605를 도입하기에 이른다. 특히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면허생산된 엔진이 나오려면 시간이 걸리므로 아예 완성된 엔진도 떼어 왔다. 슬슬 연합군 중폭격기의 폭격을 맞던 독일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완벽한 민폐다!
마키 사는 새로 도입된 엔진을 바탕으로 1942년 4월에 일단 급한대로 엔진이 장착되지 않은 C. 202에 장착하여 날려보냈으며, 동시에 새로운 엔진에 맞게 전투기를 재설계했다. 물론 시간을 아끼기 위해 C. 202의 기본설계를 바탕으로 변경하는 형태로 진행됐고 몇 차례 시험비행을 반복한 끝에 비로소 C. 205가 이탈리아 공군의 주력전투기로 선정되었다.
극초기형에는 C. 202 후기형처럼 주익에 기관총 2정이 달려 있었지만[11], 이후 독일에서 가져온 MG 151/20 20mm 기관포 2문을 장착하게 되자 화력이 급상승하여 연합군 폭격기에게도 충분히 이빨을 들이밀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최고속도도 시속 650km 정도로 올라가 실제 P-47 썬더볼트와도 대등한 전투가 가능했으며 P-51 머스탱이나 후기형 스핏파이어와도 그럭저럭 싸울 수 있는 수준이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적절한 성능에 고무받은 루프트바페도 여러 대의 C. 205를 운용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MC. 200의 기체 구조를 거의 그대로 이어받았기에 고공에서 활동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면이 많았다. 또한 당시 이탈리아의 상황에서는 양산이 가장 용이한 기체였지만, 그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문제는 그 놈의 고질적인 생산량 부족'''이었다. 게다가 이탈리아 공군은 여전히 피아트사와 레지아네사의 전투기도 일정량 양산을 하도록 하고 있었다. 사실 고고도 비행성능을 놓고보면 기체를 일신한 피아트 G.55 첸타우로가 더 우수했다. 그 때문에 이탈리아 공군에서도 C. 205와 G.55 투톱 체계를 고려했던 정황이 있는데 그러기엔 양쪽 다 생산력이 안습. 특히 연합군 폭격기도 연일 폭격을 가하고 있었으며, 연합군 지상부대가 진군을 해오면서 공장이 파괴되는 일도 빈번하여 각종 애로사항을 꽃피웠다.
결국 생산량 부족으로 큰 활약을 못하다가 이탈리아가 항복하면서 연합군으로 넘어간 전투기와 추축군으로 넘어간 전투기가 서로 교전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래도 성능만큼은 인정받아 전후에도 한동안 생산되어 이집트 같은 국가에 수출까지 한 전력이 있다.
그외 C. 205N 오리오네(Orione)라는 파생형도 있는데, 기축 20mm 기관포를 추가한 버전이다. 거의 땜빵에 가까운 개량이었으며, 기체성능에 악영향을 주자 시제기 2대만 만들고 기축 기관포안은 C. 206에서 해결보기로 했다.[12] 오리오네는 로마 방공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5. 마키 C. 206 / C. 207


[image]
C.206
[image]
C.207
'''Macchi C. 206 / C. 207'''
전장
9.34m / 9.74m
전폭
12.14m
전고
3.66m / 3.64m
익면적
21.00㎡
엔진
다임러-벤츠 DB 605 V형 12기통 수냉식 성형엔진, 1,455마력
다임러-벤츠 DB 603A V형 12기통 공랭식 성형엔진, 1,726마력
자체중량
2,578kg (전비중량 3,650kg) / 3,292kg (전비중량 4,340kg)
최대속도
700km/h 대 (고도 7,500m(?))
상승력
20.0 m/s 대
상승한도
12,000 m 대
항속거리
1,000km 대
무장(C. 206)
MG 151 20mm 기관포 3문[13][14], 정당 250발
기수 상면에 브레다-SAFAT 12.7mm 기관총 2정, 정당 400발
무장(C. 207)
MG 151 20mm 기관포 5문[15][16], 정당 250발
부무장
160kg 폭탄 2발
다임러-벤츠 DB 605 V형 12기통 수냉식 성형엔진을 장착하여(C.207은 DB 603을 달려고 했다.) 최고 속도가 700km/h 대 까지 늘어날 예정이었다. 연합군의 폭격으로 Bf 109 K형처럼 1943년, 시제 단계에서 타격을 입었다. C.206은 C.205를 좀더 대형화 해서[17] 더 강한 엔진과 무장을 달 수 있게 했으며 피아트 G.55 첸타우로처럼 프로팰러 축에도 기관포를 장착가능하게 할 계획이었다.
C.207은 C.206을 좀더 현대적으로 설계해 고고도, 고속에 알맞게 만들면서 무장을 주익에 기관포 2개씩 달려고 했다. 시제기를 만들어본 C.206과 다르게 C.207은 시제기도 완성해보지 못했다. 새롭게 동체를 설계해서 그런지 C.20x 시리즈의 특징인 짝날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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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격맞은 C.206 공장
어쨋든 일단 만들고 보면 꽤나 그럴싸한 물건을 만드는 이탈리아답게(생산성은 별개로) 생산되었으면 상당한 성능을 보였을 것이다. 이래보여도 MG 151 기관포를 라이센스 생산 가능한 나라니 일본처럼 '기관포가 부족해 못 만들었습니다.' 같은 안습한 상황은 일단 없을테지만 그놈의 엔진을 빨리 못만드는게 고질적인 병이다 보니 다른 기체처럼 소수 생산되면서 소모되는 일은 피하기 어려울 것 이다.

6.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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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200 사에타 세리에 3'''
'''✙C.200 사에타 세리에 3'''
'''C.200 사에타 세리에 7'''
'''✙C.200 사에타 세리에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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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202 폴고레'''
'''C.205 세리에 3'''
'''C.202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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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205 세리에 1'''
'''C.205 세리에 3'''
'''C.205N2'''
항공 시뮬레이션 게임 워 썬더에서 이탈리아트리에서 C.200, C.202, C.205가 나온다.


[1] 현재 알레니아 아에르마키사. [2] 이에 당시 피아트 사가 독점을 위해(공랭식 엔진을 만드는 회사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높으신 분들에게 뇌물을 왕창 뿌렸다는 의혹이 존재한다.[3] 척보면 알겠지만 유선형의 기체에 비해 엔진만 다른걸 떼어온 모양으로 따로 노는 디자인이고 실제로도 그랬다. 이는 폴고레 등장 이전 이탈리아 기체들의 공통사항이었다. 결국 아무리 설계를 잘해도 결과물이 병맛이 되버리는 슬픈 이야기.[4] 다임러-벤쯔 DB 601의 라이센스 버전.[5] 그것도 그럴 게 CR. 42를 영국 항공전에 들이밀었다...[6] 하지만 영국공군으로부터 제공권을 빼앗아 오지는 못했는데, 영국군도 사막용으로 개조한 스핏파이어를 배치하기 시작한데다가, MC202가 배치되고 있었어도 여전히 배치된 수는 MC200, G50, CR42등이 더 많았으니...[7] CR. 42의 생산도 지속되고 있었다.[8] 참고로 H-1은 괴짜로 유명한 하워드 휴즈의 비행기였다.[9] 다만 이 기체 자체도 항력을 줄이는 설계가 적용되었는데, 돌출된 라디에이터로 인한 항력을 없에기 위해서 유선형의 플로터 표면을 덮듯이 라디에이터를 배치한 것이다. 이는 훗날 최고속도 기록을 깨는 He 100의 냉각방식과 비슷하다. [10] 전부 DB601을 라이센스 생산한 엔진을 장착하고 있다.[11] 7.7mm 브레다-사파트이다. 당연히 이따위 무장으로 후기 연합군 기체를 상대로 유효한 타격을 줄 수는 없었다.[12] 1대만 생산되어 한대를 개량했다는 설도 있다. 왜냐하면 분명 1대는 존재하는데, 다른 한대는 소리소문없이 사라졌기 때문.[13] 기수 1정, 주익 2정[14] [image][15] 기수 1정, 주익 4정[16] [image][17] 날개 폭이 10.85에서 12.14로 늘리고 동체또한 길게 만들 계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