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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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 도호쿠(동북부) 태평양 연안에서 2011년 3월 11일에 발생한 초대형 지진이다. M9.1이라는 일본 국내 지진 관측 사상 최고 규모를 기록했으며[22] 이후에도 약 한 달간의 대규모 여진, 연 단위의 소규모 여진을 부른 대지진이다. 이 지진은 또한 초대형 쓰나미를 불러와 도호쿠 연안 지역에서의 추가적인 대규모 인적, 물적 피해를 야기하였으며, 또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불러왔다.
이 대지진의 여파로 일본 사회는 21세기를 넘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1945년 이후 가장 큰 사회적 충격을 받았고 13년이 지난 현재도 그 수습이 이어지고 있다.
이 지진은 오키나와현과 미야자키현을 제외한 일본 전국에서 진도 1 이상으로 관측되었다.
2. 명칭
- 일본 내각 공식 지정 명칭 - 平成23(2011)年東北地方太平洋沖地震(헤이세이23(2011)년 도호쿠 태평양연안 지진)
- 일본 기상청에 의한 상기 명칭의 영어표기 - The Tohoku Earthquake off the Pacific Coast (Heisei Year 23; 2011)
- 일본 정부, 총리관저에 의한 영어 명칭 - Tohoku Region Pacific Coast Earthquake
- 방위성, 외무성, 국토교통성에 의한 영어 명칭 - Tohoku - Pacific Ocean Earthquake
- 미국지질조사국(USGS)에 의한 영어 명칭 - The Tohoku earthquake
- 산케이 신문, 아사히 신문, 마이니치 신문, 지지통신, 교도통신, 후지TV, TOKYO FM에서의 표기 - 東日本大震災(동일본대진재)
- NHK, 교도통신에서의 호칭 - 東北・関東大地震(도호쿠-간토 대지진)[23]
- 요미우리신문, 니혼게이자이신문에서의 표기 - 東日本巨大地震(동일본거대지진)
- 니혼 TV에서의 표기 - 東日本大地震(동일본대지진)
- 현재는 지진 자체만을 지칭하는 용어는 平成23年東北地方太平洋沖地震, 지진 및 그로 인한 쓰나미 및 여진 등으로 인한 총체적인 재해는 東日本大震災으로 통일되었다. 단,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24]
- 한국어: 동일본 대지진, 3.11 대지진[25] , 도호쿠 대지진
- 영어: 2011 Sendai earthquake and tsunami
- 독일어: Sendai-Erdbeben von 2011,
- 네덜란드어: Zeebeving Sendai 2011
- 프랑스어 Séisme de 2011 de la côte Pacifique du Tōhoku
- 스페인어 Terremoto de la costa del Pacífico en la región de Tōhoku de 2011, Gran terremoto de Japón oriental, terremoto y tsunami de Japón de 2011
3. 지진 및 쓰나미 원인
일본 과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일본 국토 북동부가 있는 북아메리카 판[26] 과 그 아래 맞닿아 있는 태평양 판의 경우, 다른 곳에 비해 지구 조판 경계에 울퉁불퉁한 표면이 많다고 한다. 이런 울퉁불퉁한 돌출부 중에서 산리쿠 연안 지하 20km 부근의 높이 2km 정도의 돌출부에 '''600년 이상 축적된 응력'''이 한 번에 해소되면서 발생한 것이라고 한다.[27] 매끈한 물체끼리 맞닿은 것보다 울퉁불퉁한 물체끼리 맞닿았을 때 비비기 힘든데 바로 그 원리인 것.
또한 이 지진의 쓰나미는 거대한 것을 제외하고도 다른 쓰나미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 그 이유는 판의 경계에 추가적으로 쌓인 수 km의 단단한 지층으로 인한 것이라고 한다. 이 지층은 최근에 발견된 지층이며, 때문에 지진해일 시뮬레이션이 반영되지 못하였다. 지진이 발생하자 지각 판의 급격한 변화 이외에도 이 지층이 단층을 내면서 더욱 큰 폭으로 같이 움직였던 것으로 보이며, 그로인해 진앙 근처에서 측정된 파도가 7m 가 나왔는데, 이는 시스템이 2m 로 예측한 수준을 크게 웃도는 것이었다.
4. 지진 경과
2011년 3월 9일 오전 11시 45분, 산리쿠 해역에서 '''규모 7.3(발생 당시 7.2), 최대진도 5약의 강진'''이 발생했다. 다행히 내륙이 아닌 바다에서 일어났고 쓰나미 주의보로 끝나, 일본 기상청과 사람들은 "강력한 지진이 왔지만 다행히 피해가 없었다", "이제 여진 몇 번 더 오고 그치겠지"라고 생각하고 말았다.(2011년 3월 9일 산리쿠 해역 지진) '''그러나 이 지진은 곧 있을 대지진의 전진#s-2에 불과했다.'''[28]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최초 지진 속보가 떴을 때만 해도 국회는 평화로운 모습이었으나, 1분 20초부터 국회에 설치된 카메라가 흔들리면서(지진파가 도쿄에 도달하면서) 의원들이 당황하는 모습이 보이고, 도쿄 스튜디오로 카메라가 넘어간 이후부터는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아나운서와 방송 스태프들도 적잖이 당황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담겼다.[29] 이후 지진 정보를 영어, 한국어[30] , 포르투갈어[31] , 중국어 등으로도 방송했다. 이후 해일경보 발령 직후에는 지진 및 지진해일 상황에 대비하여 침착을 유지할 수 있도록 훈련된 아나운서조차 목소리에서 떨림, 울먹임이 드러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글 자막
지진 발생 당시 solive24. 지진파가 방송국에 도착하여 혼란스러워하는 방송국 내 상황이 적나라하게 다 들리고, 지진 정보를 알려주던 아나운서는 울먹이면서 정보를 발표하였다.
지진이 일어날 당시의 NHK, 니혼 TV, TV 아사히, TBS 테레비, 후지 테레비, TV 도쿄의 실시간 방송 상황. 후반부로 갈수록 오디오와 화면 상황이 급박해지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후지 테레비에서는 아직 아나운서가 착석도 못 한 텅 빈 스튜디오를 그대로 방영해주고, 니혼TV에서는 흔들리는 스튜디오 조명과 우왕좌왕하는 직원들을 배경으로 아나운서가 급히 원고를 받아들고 있다.[32] 니코동에 올라온 동영상도 있다.
도호쿠 대지진 발생에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발생까지 잘 종합해서 올린 비디오다. 영상에 사용된 음악은 BBC의 유명한 카운트다운이다.
2011년 1월 1일~2012년 1월 1일 당시 일본과 그 주변에서 발생한 지진을 보여주는 동영상. 시기가 시기인 만큼 당연히 도호쿠 대지진도 포함되어 있으며, 1분 49초에 산리쿠 해역 강진이 크게 터진 뒤 1분 51초에 본격적으로 엄청난 숫자와 규모의 지진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수많은 지진이 중첩되어 순간적으로 소리가 매우 커지므로 놀라지 않도록 시청 시 주의.
당시 상황을 모아놓은 유튜브 채널 당시 센다이공항 상황
도호쿠 대지진 당시 지역별 흔들림을 촬영한 영상과 지진계의 관측정보, NHK 방송 및 지진파 진행 정도를 실시간으로 맞춰 둔 영상.
위 영상에 대한 정보를 표로 정리하였다.(현재 동영상 내용과 표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문제가 발견되어 지속적으로 수정 중.) (00:00~04:43 미야기 테레비[33] 제작 특집 / 04:43~08:43 TBC 도호쿠 테레비[34] 제작특집)
요코하마는 도쿄 아래에 있는 도시로, 진앙지에서 상당히 거리가 있는 편이다. 그런데도 야구장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강력한 진동이 발생했는데 여기서 이 지진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느낄 수 있다. 여기가 이 정도였는데 진앙지 근처는...
날짜별로 일어난 재해(지진, 여진 및 쓰나미)는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경과 참고.
5. 피해
5.1.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6. 반응 및 여파
7. 루머
현지 상황이 워낙 혼란스러운 만큼 다양한 종류의 루머들이 퍼져 혼란을 일으켰다. 개중에는 심지어 한국 언론까지 타는 루머도 있는데, 이런 루머는 알아서 걸러내 들어야 한다. 가장 간단한 해법은 '''"믿을 만한 매체의 정보를 기본으로 다양한 매체의 정보를 참고"'''하는 것.
아래는 대표적인 루머들
- 만화가 오다 에이치로가 죽었다, 또는 15억 엔을 기부했다.
- 전자는 거짓이고 후자는 출처가 없다.
- 거부한 적 없다고 한다. 항간에 돌아다니는 말에 의하면 대만 구조대가 이틀 정도 공항에 체류되어 있다가 나온 걸 가지고 소문이 확대되면서 퍼진 말이라고도 한다.
- 이 역시 출처가 없다.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에 나오는 대통령 연설의 패러디로 추정.
- 미국의 구조용 항공모함
- 많은 사람들이 USS 조지 워싱턴과 USS 로널드 레이건을 헷갈리는데 USS 조지 워싱턴은 한국에 파견되었으나 현재 일본의 요코스카시에 정박만 한 거고 일본에 지진 후 정식으로 파견된 항모는 USS 로널드 레이건이다. 로널드 레이건이 안 왔다는 것은 루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방사능에 노출된 것도 둘 다이긴 하지만.[45] 월스트리트 저널이 인증했고 미 해군에서도 공식적으로 발표한 사실. 관련기사 / 일본에서 구조활동중인 USS 로널드 레이건 / USS 조지 워싱턴의 소식
- 해외기부금 순위에서 의도적으로 대한민국을 누락해 뒷통수를 쳤다.
- 아사히 신문의 의연금 순위표를 근거로 나돌아다니는 루머이다. 대한민국의 성금은 대부분 적십자를 통한 기금으로 전해졌기 때문에 성격이 다른 의연금 순위에 없는 것이다. 적십자 순위에서는 5위로 나와있다.
8. 기타
- 이 지진으로 일본 본토가 2.6m 동쪽으로 이동하고 자전축이 16.5cm 이동하여 지구의 자전주기가 1.8마이크로초(100만 분의 1.8초) 빨라졌다. #
- 해당 재해의 복구와 부흥을 위해 花は咲く라는 곡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당시 국가에서 장려하던 곡이기도 했으며 지금까지도 상당한 양의 바리에이션이 나올 정도로 인기가 많다.
- 대지진의 여파로 인해 지진을 소재로 다룬 게임 시리즈인 아이렘의 절체절명도시의 신작이 아예 발매 취소가 되어버리고, 전작인 1~3편 또한 생산 종료 및 전량 리콜 크리를 맞아버렸다.[46]
- 마찬가지로 세가를 대표하는 게임 시리즈인 용과 같이의 스핀오프작 용과 같이 OF THE END 또한 발매 연기가 되었다. 지진을 소재로 다룬 게임은 아니지만 폐허가 된 도시를 묘사한다는 점이 민감한 소재라고 판단된 듯. 예정보다 석달 뒤인 2011년 6월 9일 발매되었으며 지진 피해 극복을 염원하는 '힘내라 일본' 패키지를 함께 발매했다.
- 댄스 댄스 레볼루션의 수록곡인 Tohoku EVOLVED는 대지진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악곡이다. Pray For All.
- 태고의 달인 시리즈도 대지진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서 악곡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Red Rose Evangel이다.
- 아틀라스의 페르소나 5가 이 지진으로 스토리 등의 게임 요소가 완전히 갈아 엎어졌다.
- 위와 비슷한 사례로 토리야마 아키라는 드래곤볼 Z: 신들의 전쟁 제작진에게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비참한 이야기보다는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대규모 파괴씬이나 군중의 혼란 장면을 자제해달고 부탁했다. 그래서 실제로 이 작품에선 별다른 파괴적인 연출이 없다.
- 요코하마 베이스타즈는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와 프로야구 시합을 하다가 이 지진으로 인해 7회 초에 콜드 게임 선언으로 패했다.
- 아시아리그 아이스하키에 소속된 도호쿠 프리 블레이즈는 안양 한라와의 결승전을 준비 중이었다. 그러나 이 지진으로 경기장이 손상되고 물까지 차서 안양 한라 선수단의 여권이 유실되는 사고가 벌어져 안양 한라 선수단은 고립되기까지 했다. 결국 결승전 취소와 11-12시즌 공동 우승으로 되었고, 어찌어찌해서 안양 선수들은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갔다.
- 2016년 도호쿠 지진이 2016년 11월 22일 새벽 5시 59분 59초에 일어났다.
- ONE OK ROCK의 정규앨범 人生×僕=의 수록곡 Be the light는 이 지진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위한 추모곡이다.
- 독일의 프로 축구 리그인 분데스리가 소속팀 샬케 04의 서포터들이 후원을 해주었다. 당시 해당 팀에서 뛰고있던 일본 선수인 우치다 아쓰토가 지진으로 고통 받은 자국인들을 격려하는 말을 독일어로 적은 티셔츠를 경기 전에 준비하였다. 그 당시 같은 팀 소속이었던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가[47] 그 티셔츠를 입을 것인지 묻자, 우치다는 "승리할 시 입고, 패배할 시 입지 않겠다"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노이어는 "꼭 이기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경기인 프랑크푸르트전에서 샬케는 승리를 거두었지만, 자국민이 걱정되어 함께 기뻐하지 못했던 우치다를 발견한 노이어가 유니폼 안쪽에 그 티셔츠를 받쳐 입고 있던 우치다를 샬케의 서포터즈 앞으로 데려갔고, 티셔츠를 본 서포터들에게서 후원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고 한다.
-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의 스토리 라인이 이 도호쿠 대지진의 은유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작가의 인터뷰 내용으로 사실임이 확인되었다.
- 일본의 여성 아이돌 그룹 AKB48과 소속사인 AKS에서는 참사직후인 2011년 5월부터 정기적으로 자선 콘서트인 누군가를 위하여 라는 명칭의 프로젝트를 매번 개최하고 있다. 멤버들이 반반씩 나뉘어서 대지진으로 인해서 피해가 제일 많았던 지역인 이와테, 미야기, 후쿠시마의 3현의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며 희생자들을 위한 묵념 및 추모 행사, 위문 공연과 같은 자선 콘서트, 재해 복구 지원 등과 같은 봉사활동을 매년 실시하고 있으며 재해지의 부흥을 위한 응원송인 손바닥이 말하는 것을 발표하였다. 또한 이에 앞서서 2011년 4월 1일에는 디지털 싱글인 誰かのために ~What can I do for someone을 발매하여 수익금 전액을 기부하기도 하였다.
- 이 지진을 계기로 키즈나(絆)란 단어가 널리 유행하기 시작했다.
- 한 일본인이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는 도중인데도 콜 오브 듀티를 하고 있는 동영상이 유튜브에 업로드되어 있다.# 이사람이 게임을 하는 동안 수십 수백의 사람이 죽어나갔다는 것을 생각하면..
- 이 지진 이후 몇 년 동안 대한민국, 특히 영남지방과 그 인근 지역에서 유리창이 흔들릴 정도의 지진이 상당히 빗발쳤다. 3월 28일에는 경상북도 포항시에서 M3.2의 지진이 났고, 4월 3일에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에서 M2.7이, 5월 29일에는 경상북도 청도군 지역에서 M3.2의 지진이 발생했다. 2012년 5월 11일에는 전라북도 무주군에서 M3.9의 지진이 발생했고, 2013년 2월 5일에는 경상남도 거창군에서 M3.5의 지진이 발생했는데, 이 지진은 특이하게도 여진을 동반하기도 했다.
- 15.5m의 수문이 지어져서 사실상 피해를 거의 입지 않은 마을이 있다. 당시 마을 사람들은 너무 높다고 반대했으나 마을의 촌장이었던 와무라 코토쿠 씨는 "쓰나미에 두 번은 당했지만 세 번 당할 수는 없다"[49] 며 수문 건설을 강행하였다. 자세한 것은 후다이의 기적 참고.
- 어두운 면으로 이재민 수용소에서 성폭행이 일어났다는 것이 9년만에 밝혀졌다.#
- 기업들은 부흥 자금을 받았는데, 이걸 받아다 비자금 조성을 하였다.#
9. 음모론?
어째서인지 이 지진에 대해 '''해양 지각을 뚫어서 설치한 거대한 폭발물을 터트려 인공적으로 만든 지진'''일 것이라는 음모론이 돌고 있는데 이 음모론의 배후에 대해 크게 일본배후설, 북한배후설, 미국배후설 이렇게 3가지로 나뉘었다.
- 가장 크게 퍼진 음모론(대한민국에서만 크게 퍼진 음모론)은 자민당이나 아베 신조 측에서 우경화와 정권 장악을 위해 해상자위대를 동원해서 지진을 터트리고 방사능 재앙까지 일으킨 뒤에 이를 빌미삼아 새로운 영토를 차지하기 위한 명분으로 헌법개정을 통해 보통국가화 및 한국을 비롯한 타국 침공까지 노린다는 내용이다. 당시 자민당의 총재는 온건보수 성향의 다니가키 사다카즈였고, 아베는 강경보수로써 당내 비주류였다. 사실 이미 인공지진까지 아니더라도 자민당에서 간 나오토가 집권하는 민주당을 몰락시키고 자기들이 집권하기 위해 빠르게 진압할 수도 있던 후쿠시마 원전 사고도 고의로 방치했다는 끔찍한 음모론까지 나왔다. ##[50]
- 반면 국내의 음모론자이자 유사과학 신봉 단체인 남침땅굴을 찾는 사람들은 북한이 동해와 일본의 아래로 땅굴을 파고 들어가 핵을 터트려서 일으킨 지진이라는 주장을 했다. #
- 이외에도 민주당 소속 의원인 카지카와 유키코와 국민신당 소속 의원인 하마다 가즈유키도 "이 지진은 자연계에서 존재할 수 없는 인공 지진이나 인공 쓰나미"라고 주장했다. ###[51]
10. 둘러보기
11. 관련 문서
[1] 일본 기상청 진도 계급 최고 등급[2] 수정 메르칼리 진도 계급으로, 한국도 2001년부터 이 진도를 사용한다.[3] 로마 숫자로 9[4] 그러나 실제로는 이보다 넓은 지역에 강한 진동이 관측되었다. 당시 관측된 진도 4 이상의 지역. [image][5] 처음엔 이와테현, 미야기현, 후쿠시마현 이 3곳에만 발령되었으나, 시간이 지나 넓은 지역으로 확대되었다.[6] 치바현의 동부 태평양 연안 지역.[7] 시모키타 반도 일대.[8] 도쿄 만 연안지역.[9] 대략 아파트 3층 높이다. 미야기현에서는 최대 높이가 43m라고도 한다. 실제로도 이와테현, 미야기현 등에서 건물 4~5층까지 침수되었다고 하는데 이렇게 높이 차가 심하게 나는 이유는 해안/해저지형에 따라 크게 달라져서다.[10] 2021년 기준으로 현재까지도 여진이 발생하고 있다.[11] 전진과 본진, 여진이 내보낸 에너지를 전부 합치면 '''규모 10.0'''에 가까울 정도이다.[12] '''여진 중에는 규모 7.0이 넘는 지진도 있었는데 바로 2016년 후쿠시마 지진과 2021년 후쿠시마 해역 지진이다.'''[13] 2020년 9월 10일 기준 일본 경찰청 자료[14] 일본 국외 사망자 2명 포함.[15] 사망자의 90% 이상이 익사로, 직접적인 지진보다는 쓰나미로 인해 대부분 사망하였다.[16] 일본 국외 실종자 5명 포함.[17] 지진이 발생한 지 13년이 지난 지금도 실종자 수색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18] '''근대 이후 역사상 가장 많은 재산 피해가 발생한 자연재해이다.''' #[19] 발생 직후[20] 2020년 9월 기준. 대부분이 후쿠시마현민으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인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21] 사진은 아사히 신문의 츠네나리 토시유키라는 사진 기자가 찍은 사진으로, 이 사진으로 월드프레스의 2012년 제네럴 뉴스부문 3등상을 수상했다. 사진 속 여성의 이름은 '이토 아카네'(당시 28세)이며, 미야기현 나토리시에서 건설현장인부인 남자친구 및 그의 어머니와 동거하던 여성이다. 이 여성은 집에서 남자친구 및 그 어머니와 함께 10마리의 애완견들을 키우고 있었는데, 지진 당시 급히 물품을 확보하려고 애완견들을 집에 두고 남자친구의 어머니와 마트에 다녀온 사이 쓰나미로 집이 무너져서 대부분의 애완견을 잃었다고 한다. 이 사진은 애완견들을 찾다가 지쳐 무너진 집 앞에서 찍힌 사진인 것. 남자친구 사이에서 아이가 없었다보니 당시 애완견들을 자식들처럼 여기고 있었고, 이들을 잃었을 때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다행히 수소문 끝에 이때 잃어버린 애완견들 중 2마리의 애완견과는 재회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아카네 씨는 애견미용사가 되기 위해 전문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고.[22] 1923년 관동 대지진의 M7.9를 상회하며 1960년 칠레 대지진, 1964년 알래스카 지진, 2004년 남아시아 대지진 다음으로 세계 지진관측사 4위에 드는 세기의 규모다.[23] NHK는 중간의 구분점 없이 붙여 표기중.[24] 이 지진 발생일의 다음 날인 12일에 발생하였다.[25] 공식적인 명칭은 아니지만 3.1 운동, 4.19 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 수많은 예처럼 날짜 자체가 사건을 표현하는 단어. 구글 검색에서도 3.11 earthquake로 검색해도 90만 개가 넘는 문서가 검색될 정도로 저명성이 있는 단어다.[26] 일본 국토 서남부는 유라시아 판에 있다. 일본 국토 중앙쯤을 세로로 지나는 판의 경계는 선이 아니라 영역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바로 Fossa Magna. 영역의 좌측 경계는 이토이가와-시즈오카 구조선이고 우측 경계는 가시와자키-지바 구조선이라고 한다.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포사_마그나. 참고로 링크 들어가보면 알겠지만 도쿄도 이 영역에 포함된다.)[27] 갑자기 해소된 이유로 뽑자면 해저에 있던 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물이 스며들면서 갑자기 벌어지게 되었고 대륙판의 원래 운동방향으로 쌓여있던 에너지만큼 움직이면서 지진이 난 것이다.[28] 도호쿠 대지진의 위력이 예측을 가볍게 압도하였고, 전진 위력 또한 차원을 달리했기에 '''규모 7 내외의 여진'''이 몇 번 발생했다.[29] 한국에선 일본인들이 지진에 제법 익숙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도쿄는 지진 발생 빈도가 많다고 해도 상대적으로 강도가 낮았기 때문에, 국회가 위치해있는 도쿄 치요다구에서 진도 5강을 기록하고 지속시간도 2~3분 이어지니 당연히 당황할 법도 하다. 아니, 애초에 지진이란 익숙해질래야 익숙해질 수가 없는거다.[30] 재일 조선인들을 의식해서 중립적인 표현으로 '한국-조선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31] 일본에 역이민 온 브라질인[32] 일본방송협회가 제일 먼저 속보가 떴고(0분 12초), 뒤이어 니혼 TV와 TBS 테레비가 거의 동시에 속보가 떴으며(1분 49초), 이후 TV 아사히(2분 19초), TV 도쿄(2분 37초), 후지 테레비('''4분 17초''') 순으로 속보가 뜬다. 다만 특보체제 전환은 니혼 TV와 TBS 테레비가 거의 동시에 시작했으며(4분 6초 경), 후지 테레비가 10여초 후인 '''4분 19초 경'''에 시작, TV 아사히는 4분 49초 정도 지나 시작한 반면 TV 도쿄가 '''7분 23초'''나 지나서야 시작했다(...).[33] 미야기현의 닛테레 계열 방송사다.[34] 미야기현의 TBS 테레비 계열 방송사다.[35] 한국의 경기도, 충청도처럼 '도(道)'의 개념이다.[36] 간단하게, 한국과 마찬가지로 성남시, 춘천시와 같은 '시(市)'의 개념이다. 자세한 설명은 시(市)를 참고.[37] 진한 글씨는 현청 소재지이다.[38] 규모로 따지자면 한국의 '읍(邑)'과 유사하나, '시(市)'와 마찬가지로 지방자치단체다. 자세한 설명은 정(町)을 참고.[39] 규모상으로 우리나라의 '면'과 비슷하나, '정(町)'과 마찬가지로 지방자치단체다. 자세한 설명은 촌(村)참고.[40] 이와테현의 닛테레 계열 방송사다.[41] 후쿠시마현의 닛테레 계열 방송사다.[42] 이날 오후 1시부터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와 시합을 하고 있었다. 요코하마 베이스타즈는 이날 1-3으로 지진 콜드패.[43] 미야기현의 TV 아사히 계열 방송사다.[44] 격한 흔들림과 정전으로 보아 진앙지에서 가장 가까웠던 미야기 현일 가능성이 높다.[45] USS 조지 워싱턴은 방사능이 검출된 후로는 대원들의 외출을 자제시켰다.[46] 이중 2009년에 발매된 3편의 배경은 2011년 3월로, 이 지진을 정확히 예언함으로써 주목을 받게 되었다.[47]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하여 주장으로 활약 중.[48] 당장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참사인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때 특집 뉴스를 사고가 발생한 4월 16일부터 27일까지 12일 연속으로 특집 뉴스로 진행한 것을 비교해보면 얼마나 심각했는지 알 수 있다.[49] 마을은 1896년, 1933년 두 번의 쓰나미를 겪으며 참극을 경험했다.[50] 실제로 일본의 우경화나 혐한 성향도, 이 지진과 원전 사고를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다시 부각되었다.[51] 다만 하마다 가즈유키는 이 과정에서 "간 나오토의 친중성향을 보복하기 위한 미국의 공작"이라고 주장한데다, 당시 기준으로도 신빙성이 낮은 HAARP(지진 무기)를 운운했다가 물의를 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