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EFA 챔피언스 리그/2011-12 시즌/결승전
1. 개요
2012년 5월 19일 뮌헨의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열린 UEFA 챔피언스 리그 2011/12시즌의 결승전. 첼시가 1:1(PK 4:3)으로 승리하였으며, UEFA 선정 MOM을 디디에 드록바가, 팬 선정 MOM을 페트르 체흐가 수상하였다.
국내 중계는 MBC SPORTS+가 맡았다.
중계진 명단
2. 경기 전
첼시는 전임 감독의 막장행각으로 리그에서 죽을 쑤었음에도 불구하고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드라마틱한 행보 [1] 를 보여주면서 결승에 올라왔다. 하지만 이바노비치와 존 테리, 하미레스, 메이렐레스 등 주전들이 경고누적으로 출장 정지를 당한 것은 상당히 불리하게 작용되었다. 그나마 첼시는 FA컵 우승이라도 했지 바이에른 뮌헨은 리그 준우승, 포칼 컵 준우승인 상태여서, 홈에서 열리는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을 이겨야 겨우 굴욕을 면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2] 홀거 바트슈투버와 신성 다비드 알라바, 그리고 루이즈 구스타보등이 경고누적으로 결장해 티모슈크, 콘텐토 등으로 빈자리를 메워야했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올라온 두 팀 중 한 팀의 홈 경기장에서 결승전이 열리는 것은 1984년 이후 28년 만의 일이다. 뮌헨의 선수진에 공백이 몇명 있긴 했어도 그건 첼시 역시 마찬가지였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비롯한 독일의 저명인사들이 자리지켜보는 가운데 데이비드 가렛의 바이올린 연주와 함께 독일이 자랑하는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이 Ligue Des Champions를 부르기 시작했다.[3] 분위기도 완벽했고, 그 밖에 모든 지표 역시 뮌헨에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이런 상황에서 뮌헨의 홈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결승전이 시작되었다.[4]
3. 경기
3.1. 경기 진행
경기 시작 휘슬이 울리고 뮌헨이 첼시를 상대로 거의 반코트 경기를 가져갔다. 징계로 빠진 선수들을 보면 첼시는 수비와 미드진에서 공백이 많았기 때문에 뮌헨에게 점유율 6:4, 슈팅횟수 13:2로 열세에 처했으나 수비진과 페트르 체흐의 선방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경기 내내 첼시가 뮌헨을 온더볼 상황에서 위협한 것은 살로몬 칼루의 돌파에 의한 딱 한 번이 전부였다.
후반전까지 팽팽하게 버티다가 83분경 토마스 뮐러가 토니 크로스의 크로스를 받아 헤더를 집어넣으며 선제골을 터뜨렸다. 뮌헨 팬들은 우승을 자축하는 분위기가 돌았다. 뮌헨은 선제골을 넣자마자 뮐러를 빼고 반 부이텐을 투입해 완전히 수비를 걸어잠그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첼시엔 드느님께서 계셨다. 88분 경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비웃듯 코너킥 상황에서 앞으로 쇄도하며 90도 가까이 공의 방향을 꺾어 구석으로 빨려들어가는 환상적인 헤더를 집어넣으며 다시 경기를 원점으로 되돌려 놓으시었다. 참고로 이 코너킥이 이날 첼시가 얻은 '''유일한''' 코너킥이었다. 그리고 1:1 상황에서 더 이상 골이 터지지 않으며 게임은 연장전으로 들어갔다.
연장전이 시작되고, 93분 경 동점골의 영웅 드록바가 리베리를 막으려다가 그만 PK를 주고 만다. 바르샤와의 4강 2차전에서 메시가 골대를 맞추며 PK를 실축해 결승에 올라왔던 첼시는 다시 한번 체흐가 로벤의 패널티 킥을 선방해내고, 98분 경에 리베리가 교체되고 만다.[5] 연장전에서도 뮌헨은 공격에 올인했으나 골이 터지지 않으면서 승부는 운명의 승부차기로 결정되게 된다.
3.2. 승부차기
뮌헨은 첫 번째 키커 필립 람이 안정적으로 골을 넣었지만, 첼시는 시작부터 첫 번째 키커인 후안 마타가 실축하고 만다.
하지만 이후 첼시는 다비드 루이스, 프랭크 램파드, 애쉴리 콜이 차례로 승부차기를 성공시켰고 뮌헨은 마리오 고메즈, 마누엘 노이어[6] 까지 승부차기를 성공시켰지만 이비차 올리치가 페트르 체흐에게 막혔다. 승부는 3:3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고 마지막 뮌헨의 키커인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의 슈팅이 체흐의 손끝에 살짝 닿으면서 골포스트에 튕겨져 맞고 나온다. [7] 첼시의 마지막 키커인 디디에 드록바가 깔끔한 마무리로 첼시에게 빅이어를 남겨준다.
이 승부차기에서 페트르 체흐는 5번의 슈팅 모두 방향을 읽어 그 쪽으로 몸을 던지는 미친 능력을 보여주었다.'''He's done it! The greatest night in the history of Chelsea Football Club! European Champions! They've beaten Bayern in their own backyard! They've found the holy grail!'''
'''드록바가 해냅니다! 첼시 FC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입니다! 유럽의 챔피언! 그들이 바이에른을 그들의 홈에서 무너트립니다! 그들이 성배를 손에 넣습니다!'''
'''마틴 타일러[8]
SKY 스포츠 캐스터'''
4. 여담
- 이 경기에서 깜짝 선발 출전한 라이언 버트란드는 이 경기가 챔스 데뷔전이었다. 챔스 데뷔를 챔스 결승에서 그것도 제 포지션이 아닌 윙어로 뛰었던 것. 버트란드의 주 포지션은 레프트백이다.
- 첼시는 이 PK승으로 리그 6위를 차지했음에도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토트넘의 챔스진출권을 탈환했다. 챔스에 올인했던 디마테오의 선택이 적중했다고 할 수 있겠다. 게다가 이후 에덴 아자르 영입에도 성공했으니 아주 성공적인 선택이 되었다.[9]
- 하지만 이 기적을 장식하는 사진의 중앙에는, 유스부터 뛰어오면서 첼시의 주장으로 헌신해온 존 테리도, 수년간 엄청난 골폭풍을 몰아치면서 첼시에게 득점을 선물해준 프랭크 램파드도 아닌 보싱와가 중앙에 빅이어를 드는 사진이 되어버린다.[10][11] 저 사진으로 인하여 만약 이루어졌다면 첼시 팬들에게는 영원의 전설로 남았을법한, 프랭크 램파드와 존 테리가 세레모니에서 동시에 컵을 드는 역대급 장면을 망쳐버렸다.
- 경기 이후 체흐는 로벤의 PK에 대한 인터뷰를 했는데 "솔직히 로벤이 어디로 찰 지 몰랐다. 로벤은 반반의 확률로 왼쪽 코너와 오른쪽 코너로 페널티 킥을 처리한다. 페턴도 없었다. 다만 로벤이 연장까지 뛰느라 지쳐있을 시간대였고, 이로 인해 정확하게 차는 것보단 강하게 차는 걸 선호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내가 왼발잡이였다면 강하게 차기 위해선 오른쪽 코너를 선택했을 것이다. 그래서 난 오른쪽으로 몸을 날렸다" 라고 답했다.
- 또한 뮌헨의 골대 쪽으로 승부차기 방향이 정해져 걱정되지 않았나 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체흐는 "전혀 걱정되지 않았다. 뮌헨의 서포터들이 내 등 뒤로 욕을 퍼붓고 우리의 패배를 노래하고 있었지만 내 눈과 심장은 팬들과 동료들의 믿음만이 보일 뿐이였다" 라고 답했다.
- 바이에른 뮌헨 팬들에게는 99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선제골까지 넣고 경기 내내 우세한 운영을 하다가도 추가시간 코너킥에서 연속해서 두 골을 먹으며 믿을 수 없는 역전패를 당한 "캄프 누의 비극"보다 더한 충격이었다. 그야말로 비극 중의 비극이었다. 오죽하면 제 4의 뮌헨 참사라고들 칭했을까.(해당 항목 참조) 더구나 이 결승전은 본인들의 홈 구장,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펼쳐진 경기였다!!! 프란츠 베켄바워 명예회장도 이 PK패가 누캄프에서의 패배보다 더 쓰라린 상처였다고 회고했다. 심지어 이 시즌 바이에른은 이미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게 밀려 분데스리가, DFB-포칼을 준우승하고 챔스마저 준우승해버렸던 것이다. 유럽축구 역사상 유이한[12] 준우승 트레블의 비극을 겪은 것. 훗날 울리 회네스 바이에른 뮌헨 회장의 회고에 따르면 이날의 패배 이후 모든 선수단이 정신적 충격으로 정신과 전문의와 상담을 받아야만 헀다고 밝혔다.
- 경기 내내 과한 욕심을 부리면서 흐름을 끊어먹고 PK까지 날린 로벤은 한동안 바이에른 팬들의 원성을 한몸에 받았다.[13] 결승전 직후 유로 2012 대비 겸 친선 목적으로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과 바이에른의 경기가 열렸는데 뿔난 뮌헨 팬들이 시종일관 로벤에게 야유를 퍼부어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판 봄멜은 "로벤이 있어서 결승까지 갔던건데 바이에른 팬들은 배은망덕하다."라는 비판을 날리기도 했다.
- 피파 게임에서 앨런 스미스(해설)가 이 경기 얘기를 아주 많이 한다...
- 첼시 FC는 이 우승으로 인해 런던 연고의 클럽 중 최초로 빅 이어를 들어올린 클럽이 되었다. 또한 현재까지 유일하게 빅 이어를 들어올린 런던 연고의 클럽이기도 하다.
- 2021년 1월에 후일담으로 당시 스티브 홀랜드 첼시 FC 수석코치가 칼럼을 기고했는데, 그 칼럼에서 이 날 사용한 전술은 2011-12 시즌 DFB-포칼 결승전 당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사용한 전술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라고 밝혔다. 결승전 준비를 위해 이 경기를 통해 전력분석을 하던 중에 이 전술이 FC 바이에른 뮌헨을 상당히 효율적으로 잘 막을 수 있겠다는 판단으로 이 전술을 사용했고, 훈련 과정에서 라이언 버틀란드가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여서 윙어로 쓰기로 결정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1] 조별리그에서는 레버쿠젠을 승점 1점차로 따돌리고, 16강에서 나폴리에게 1:3으로 패했지만, 홈에서 4:1로 기적적으로 역전한다. 8강에서 벤피카를 여유있게 3:1로 이기고 나서, 바르셀로나를 홈에서 1:0, 원정에서 숫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2:2라는 스코어를 만들어 3:2로 결승전에 올라왔다.[2]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1주일전에 베를린에서 열렸던 포칼 결승에서 도르트문트에게 5-2로 대패하면서 제대로 망신을 당한 상황이었다.[3] 컨디션 때문에 라이브가 아니라 립싱크를 했다.[4] UCL 결승에서는 경기장 명에 특정 기업 스폰서 이름을 넣어 부르지 못하게 되어 있어서 알리안츠 아레나가 아니라 푸스발 아레나 뮌헨이라는 중립적 명칭으로 칭해졌다.[5] 그러나 결론적으로는 PK는 막혔고, 리베리에게 계속 위협받던 보싱와의 우측면은 올리치가 대신 들어옴으로 인해 안정되었으므로 오히려 첼시에게 전화위복이 된다.[6] 뮌헨 선수들 가운데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선수가 적어 노이어가 나서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뮌헨에서 승부차기 키커로 나설만한 선수 중 뮐러와 리베리는 교체로 아웃된 상황이었고 알라바는 경고 누적으로 출장 자체가 불가능. 로벤은 경기 중에 실축을 했고 토니 크로스는 레알 마드리드와의 4강전 승부차기에서 실축했던 탓에 본인이 고사했다고 한다.[7] 슈바인슈타이거는 4강전 레알마드리드와의 승부차기에서 5번째 키커로 나서서 성공시켰지만 결승전에서는 유독 새가슴 같은 모습을 보였다. 연장전 로벤이 pk키커로 나섰을 때, 차마 킥하는 모습을 다 보지 못하고 뒤돌아 서있었다... 이런 모습이 승부차기에까지 악영향을 미친 듯 하다.[8] FIFA 시리즈의 캐스터이기도 하다[9] 그리고 아자르는 드록바가 그랬던 것처럼 첼시에서의 마지막 경기인 유로파 리그 결승전에서 골을 넣고 맹활약하며 팀의 우승을 이끌고 팀을 떠났다.[10] 당시 해축갤에서는 30년 후 어린 해축팬들에게 보싱와가 첼시의 레전드로 기억될 것이다라는 자조섞인 농담까지 나왔다.[11] 실제로 2019년 현재 어린 축구팬들 중에서 사진 속의 보싱와를 드록바와 착각하는 경우도 종종 보인다. [12] 다른 한번은 2001-2002 시즌의 바이어 04 레버쿠젠. 여담으로 이때 레버쿠젠의 주전 미하엘 발락 과 베른트 슈나이더 등은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도 준우승하며 전무후무한 준우승 쿼드러플까지 달성해버렸다. 안습..[13] 다만 단순히 이 경기 하나 말아먹은 것으로 욕을 먹진 않았다. 4월에는 분데스리가 1위 자리를 놓고 벌인 도르트문트와의 숙명의 일전에서도 PK를 실축했고, 레알 마드리드와의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에서는 리베리와 주먹다짐을 하는 등 시즌 내내 로벤을 둘러싼 온갖 사건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