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오비 미켈
1. 소개
나이지리아의 수비형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답게 태클 능력과 일대일 마크 능력이 좋고 체격이 뛰어나지만 제공권은 그리 뛰어나지 않다. 뛰어난 피지컬을 활용하여 상대 선수를 등지고 공을 지키는 키핑에 능하며 탈압박 능력 또한 상당히 준수하다.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는 공격형 미드필더로도 종종 기용된다.
10년간 첼시 FC에 몸담았던 첼시 FC의 레전드로 클로드 마켈렐레의 후계자로 예상됐으나 기대만큼의 성장을 하지는 못한 선수.[2]
2. 우승
- 첼시 FC (2006 ~ 2016)
- 프리미어리그 : 2009-10 , 2014-15
- FA컵 : 2006-07 , 2008-09 , 2009-10 , 2011-12
- 리그컵 : 2006-07 , 2014-15
- 커뮤니티 실드 : 2009
-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 2007-08
- UEFA 챔피언스리그 : 2011-12
- UEFA 유로파리그 : 2012-13
- 나이지리아 국가대표
- FIFA U-20 월드컵 준우승 : 2005
-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 2013
- 2016 리우 올림픽 동메달
3. 클럽 경력
3.1. 첼시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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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상당한 재능을 갖춘 선수라서 수많은 빅클럽들이 매의 눈으로 노리고 있었으며, 특히 맨유와 첼시 FC가 노리고 있었다. 결국 2006년 이 선수의 이적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가 결국 첼시 FC로 옮기게 되었다.[3]
이 사건에 대해서 양쪽이 하는 말이 매우 다르다. 일단 스포츠 중재재판소에서 맨유의 손을 들어주어 첼시는 거액의 위약금을 맨유에 지불하고 미켈을 데려와야 했다.
첼시 팬들은 첼시가 미켈이 어렸을 때부터 첼시 쪽에서 투자를 적극적으로 해서 첼시로의 이적을 기정사실화 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맨유의 경우 할 말이 조금 더 많은데, 미켈은 맨유와 일단 실제 이적 계약서에 서명했다. 요약하자면..
'''1. 미켈은 전 소속팀(린 오슬로) 감독(모건 안데르센)과 함께 맨유로의 이적 계약 문서에 사인했다. 2. 그 직후 사인한 문서와 맨유 유니폼을 입은 미켈 사진이 언론에 공개되었다.'''
첼시 FC와의 협상이 정식 계약으로 진행되기 전에 맨유와 먼저 사인한 것은 분명하다. 이후 첼시와 미켈의 대응만 봐도 그런데, 첼시와 미켈은 나중에 이 사태에 대해 맨유와 소송을 진행한 것이 아니라, '전 소속팀'인 린 오슬로와의 계약이 무효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미켈이 맨유와 사인한 사실 자체는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맨유가 아닌 첼시 FC의 선수로 인정받기 위해선, '''이전 소속팀인 린 오슬로와의 계약 무효 → 그러니 린 오슬로와 맨유가 한 계약도 무효!''' 테크를 탈 수밖에 없던 것이다. 사실 앞서 언급한 린 오슬로의 전 감독 모건 안데르손이 공문서 위조로 오슬로 법원에서 1년간의 징역형을 판결받은 터라 첼시의 주장이 아주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 문제는 나중에 '법정 밖'에서 해결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진실은 묻힌 것으로 보인다. 맨유 구단이 아닌 팬들의 입장을 서술하자면, 강제 계약이었든 뭐든 "유니폼 들고 웃으면서 사진 잘만 찍어 놓고는 갑자기 첼시 가겠다고 땡깡부린 놈" 정도로 본다(...). 린과의 계약이 합법적이든 아니든 맨유와는 상관이 없으며 무엇보다 '''계약 이전이나 그 당시에는 그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다가 계약이 다 끝난 후''' 이적하는 과정에서 돌연히 잠적해 첼시로 합류하겠다 하는 등 충공깽에 가까운 대처를 하여 황당함을 줬기 때문이다. 첼시-맨유 혹은 첼시-맨유-린 사이의 자세한 해결방안이 보도되지 않는 이상 이 이미지는 그대로 갈 거다.
결론적으로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가장 복잡한 이적이라고 평가받기도 하는 만큼, 안 좋은 선례를 남겼다. 혹시 이 사건의 뒷내용이 궁금한 이는 나중에 미켈이 자서전이라도 내길 기원해보자. [4]
그러나 처음에는 거친 태클로 퇴장을 당하기가 일쑤라 클로드 마켈렐레에게 주전 자리를 밀려 두 시즌 동안 그다지 많이 출장하지 못했다. 특히 06/07 칼링컵 아스날과의 결승전에서는 문제의 중심 중 하나가 되었다. 상대 선수와 과격하게 충돌하여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나게 한 것. 결과는 미켈과 상대 선수의 퇴장, 그리고 졸렬한 짓을 한 아데바요르의 퇴장이었지만.
08/09 시즌부터 서서히 주전 출장을 하기 시작하며 팀의 중요한 선수로써 자리잡았으나, 발이 느리다는 치명적인 단점과 은근히 자주 보이는 기복있는 플레이로 불안하다는 평이 상당했다. 사실 이 때 주전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도 다름이 아니라 주전 미드필더인 마이클 에시엔이 장기 부상으로 빠져 있다 보니 그가 그 자리를 메꾸었던 것. 에시엔이 복귀한 중후반기에는 결국 램파드 - 발락 - 에시엔 조합에 밀려 로테이션 멤버로 다시 내려갔다. 그래도 스콜라리 경질 이후 히딩크-안첼로티로 이어지는 체제에서는 그나마 안정적인 수비력을 보이며 09/10 리그 우승, 08/09, 09/10 FA컵 연속 우승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
10/11시즌에는 발락이 첼시를 떠나게 되고 그 대체자로 온 하미레스가 딱히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 하자 미켈에게도 꽤 기회가 오게 된다. 초반에는 정교한 패싱 능력과 가끔 가다 찔러주는 환상적인 킬패스를 통해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어 첼시 팬들에게 좋은 평을 들었으나...시즌 중반 이후 폼이 급격하게 떨어지며 심각하게 부진했다.
11/12시즌에는 시즌이 시작하기도 전에 가족에게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는데, 아버지가 현금을 노리는 집단에게 납치를 당한 것이다. 덕분에 본인의 멘탈이 흔들려 경기력이 더더욱 처참해질 것이라 예상했으나 예상 외로 준수한 경기력을 보여주며 프로 정신을 보여줘 팬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마음을 추스리라고 휴식을 주려던 보아스 감독에게 스스로 출전을 자처했다고 한다. 오오 멘탈갑 오오.
결과적으로 아버지도 무사히 구출되었고 본인의 경기력도 괜찮아졌으므로 좋은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11/12시즌 안드레 빌라스보아스 감독 부임 후에는 첼시 수비의 구멍으로 지적되어 바르셀로나 유스 출신의 오리올 로메우에게 선발자리를 뺏기게 되었다. 하지만 후반기 들어서 로베르토 디 마테오 감독이 부임한 이후에는 계속 중용되면서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 나은 플레이를 보여주게 된다. 바이에른 뮌헨과의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인생 경기를 펼쳤다.
12/13시즌에는 주로 로테이션용으로 기용되었다. 디디에 드로그바와 함께 FIFA 올해의 아프리카 선수상 후보 10인에 선정 되었으나 수상하지는 못 했다. 전반기에는 그나마 하미레스와 함께 주전 미드필더로 뛰었으나 베니테스 대행 체제에서는 다비드 루이스를 미드필더로 올리면서 하미레스 - 루이스 조합이 많이 나와 로테이션 멤버로 내려갔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리그 9라운드 경기에서 주심 마크 클라텐버그에게 위협을 가한 사건에 대한 징계로 세 경기 출장 정지와 벌금 6만 파운드를 부과 받았다.
2012년 12월 새로운 5년 재계약을 체결하였다. 12/13 시즌 종료 후에는 갈라타사라이 SK로의 이적설이 있었으나 성사 되지는 않았다.
13/14시즌 풀럼과의 리그 5라운드 경기에서 첼시 입단 7년만이자 리그 185경기만에 '''프리미어 리그 데뷔골'''을 넣으면서 팀의 승리에 기여했다. 더비 카운티와의 FA컵 2라운드 경기에서 후반 21분 윌리안의 프리킥을 헤딩 득점으로 연결하면서 팀의 2-0 승리를 이끌었다.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과의 이적설이 났으나 에이전트가 부정하였다.
14/15시즌 마티치의 백업으로 뛰고 있는데 평가가 매우 안습하다.[5] 물론 특별히 결정적인 실수를 한것도 아니고 백업 선수가 주전 선수보다 잘 할 수 없는 것이지만(만약에 그랬다면 백업일 리가 없으니까), 마티치 대신 나왔을때, 그의 공백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기동력과 공격전개 능력에서 둘의 차이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데, 마티치는 상대방의 공격을 빠른 발과 정확한 태클로 잘 끊어주고 그것을 빠르게 재역습으로 가져가는데 반해, 미켈은 상대방의 역습을 잘 끊어주지도 못하고 설령 끊었다 하더라도 공격전개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것을 빨리 재역습으로 가져가지 못한다. 이러한 둘의 차이때문에 마티치는 혹사를 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6]
팬들은 제대로 된 마티치 백업자원 영입을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7][9]
3.1.1. 첼시 FC/2015-16 시즌
15/16시즌 처분이 확실시 되었으나 첼시 보드진의 3선 영입의사가 안보여 잔류 할듯하다. 존 테리 이바노비치 다음으로 고참인데다가 전에 한 계약으로 2억이 넘는 주급을 타고 있다. 근데 현실은 로프터스 치크와 하미레스한테도 밀린 상황이다. 첼시 팬들한테는 애물단지나 다름없다. 이적시장 막판 포그바가 첼시 이적설이 뜨면서 미켈의 터키 이적이 확실시 됐지만 포그바가 안오면서 불발.
결국 우려는 현실이 되어 5라운드 에버턴전 올시즌 첫 선발 출장, 첼시 팬들은 다비드 루이스와 마티치같은 조합을 기대했으나 결과는 망했어요. 안그래도 느린 스피드 는 더 느려졌고 암 걸리는 전방 볼배급은 여전했다.
챔스 2차전 포르투전에서 선빌출격 상대의 임불라 다닐루 조합에 몸싸움, 스피드, 볼배급, 볼 소유 등 다 털리며 이제는 챔스권의 팀의 선수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 이다.지난 시즌의 혹사로 마티치의 폼도 예전갖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로프터스 치크를 믿고 맡겨볼 만도 한데 쓸놈쓸 정신에 입각한 무리뉴는 여적지 오매불망 미켈과 마티치만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무리뉴 경질 이후 18라운드 왓포드전, 19라운드 맨유전에서 교체출전해 뛰어난 활약(!)을 보여줬다.
20라운드 크리스탈 팰리스전에서 1년에 1번 나온다는 클로드 마켈렐레의 재림 수준의 극강의 활약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것은 1달 반짝이었던 걸로..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파리 생제르맹 원정 경기에서 반칙으로 프리킥을 내주고 뒤이어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프리킥이 미켈의 몸에 맞고 굴절되어 선제골이 되며 첼시 팬들의 욕을 왕창 먹었다. 그런데 전반 종료 직전 코너킥에서 뜬금없이 동점골을 넣어서 경기를 지배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팬들을 벙찌게 만들었다. 팀은 2-1로 패배했으나 그나마 홈에서 열리는 2차전에서의 반격의 여지를 남기는 원정골을 넣긴 했다.
올 시즌을 끝으로 떠날 수도 있다라는 인터뷰가 기사화됐는데, 댓글 반응은 잔치 분위기다.
15/16 시즌 후반기에 접어들수록 정말 최악의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다. 안드레아 피를로를 뛰어넘는 병장축구와 수비형 미드필더라는 자신의 임무를 망각하고 저주받은 패스능력을 2선까지 올라와서 보여주는 중. 거기에 전임감독 무리뉴를 잘근잘근 씹는 인터뷰들[10] 로 첼시 팬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그리고 그 경기력은 34라운드 맨시티전에서 정점을 찍었고, 워스트 선수가 되었다. 히딩크 감독에 대해, 왜 미켈을 출전시켰는지, 그리고 전반전 내내 약점을 드러내며 수비 불안을 가속시켰는데도 교체하지 않았는 지에 대해 비판이 있지만 맨시티 전에서 보여준 미켈의 모습은 히딩크 마저 불쌍하게 만들 정도로 끔찍함 그 자체였다. 많이 뛰지도 않고, 태클이나 가로채기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수비 가담은 죽도록 안하는데 공격 기여도는 0에 수렴했다. 같은 미드필더인 로프터스-치크도 활동량이 적은 것을 생각하면 기동성 좋은 맨시티의 중원에 털리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 날 경기에서 맨시티의 수비형 미드필더인 페르난지뉴는 거의 모든 공격을 차단할 뿐만 아니라 공격 기여도 또한 어마어마 했다는 점을 비교해본다면 아쉬울 따름이다.[11] 날이 갈수록 정말 미치도록 안뛰는 모습.
36라운드 선더랜드와의 경기에서도 자기 혼자 걸어다녔다. 주장 존 테리는 퇴장까지 먹으면서 걸레 수비라도 펼치려 했으나, 이 인간은 진짜 안뛴다. 런던 길거리 유기견 90분동안 풀어놔도 이 인간보단 더 활동량 넘칠듯.
이번에는 인테르가 사겠다고 연락했다. 인테르가 야야 투레 영입에 사실상 실패하자 아무 선수나 마구 찌르는데, 은골로 캉테가 오면 떠나는 것은 확실해 보였었다.
3.1.2. 첼시 FC/2016-17 시즌
16/17시즌도 잔류를 확정지었다. 안토니오 콘테 감독이 그에게서 무얼 본건지 미켈을 잔류시키겠다고 했다. 이번 시즌에 계약이 만료되기 때문에 이적료를 받기 위해 처분하는 것이 더 좋아보였지만[12] 미드필더 영입이 힘든 가운데 잔류시킨 것으로 보인다. 과연 재계약 버프를 받고 청소년 시절로 각성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게다가 이런 인터뷰도 했다.기사 다만 인터뷰와 상관없이 첼시 팬들은 피거솟.
결국 첼시 팬들이 우려했던 대로 경기에 출전하지도 못하면서 주급만 축내고 있다. 리그 7라운드까지 선발은 커녕 벤치 멤버에도 한번도 포함되지 못했다. 오히려 유망주 나다니엘 찰로바가 로테이션 자원으로 중용받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사람들이 못한다, 못한다 하지만 첼시 입장에서는 터무니없는 인플레이션이 일어난 요즘 이적시장에서 당장 노릴 수 있는 수비형 미드필더도 별로 없을 뿐더러 당장 주전이 아니라 캉테, 마티치 둘 중 누가 부상당하거나 체력이 떨어지거나 했을 때 제한적으로 출전 기회가 부여되는 백업 역할을 받아들일 선수는 더더욱 드물다. 유스에서 커올라온 유망주들이 있지만 냉정하게 생각해서 성적으로 말해야 하는 감독 입장에서는 꺼내들기 주저되는 카드이다. 일정 수준의 기량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무 불만도 없이 백업 역할에 만족하면서 뛸 선수가 미켈말고는 없다. 요약하자면 부상으로 나가리 된 선수가 많을때 적당히 비기기 작전으로 쓸만하고 만년 서브여도 불만없이 뛰어주고 일단 승리는 몰라도 무승부는 보장해주는 보험같은 선수.
첼시는 재계약 불가를 통보했고, 이로서 미켈과 첼시와의 인연은 끝나게 되었다. 미켈은 트위터에 첼시팬들에게 장문의 작별인사를 올리기도 했다.
3.2. 톈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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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아쉬웠던 톈진 시절
2017년 1월, 중국의 톈진 터다로 이적했다. 2017년 시즌은 전반기에는 부상으로 거의 출전하지 못했고, 그때문인지는 몰라도 감독 세명이 잘리고 (그중에는 이임생도 있다), 톈진은 강등권에서 허덕이게 되었다.
하지만, 8월 중순부터 몸상태가 회복되었는지, 미드필더로 전경기 풀타임 활약을 하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미켈이 정상가동된 한달 후부터 한국에서 잘린 슈틸리케가 톈진 터다를 지휘하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톈진의 수비가 살아나면서 24-30라운드에서 7전 5승 2패로 리그잔류에 성공하였다.
2018년에는 상반기에는 그런대로 활약했으나 정작 팀이 강등권까지 치달은 후반기에는 잘 나오지 않았다. 대신 조나탄이 활약을 했다. 이런 정황때문에 미켈과 슈틸리케와의 불화설이 있긴 하다.
슈틸리케가 하반기에 위기에 빠졌는데도, 미켈을 거의 넣지 않은 것을 보면 슈틸리케의 눈 밖에 있는 것은 분명한 듯. 그리하여 톈진은 2년 계약이 끝나는 미켈과 계약을 연장하지 않아서, 팀을 떠나게 되었다.
3.3. 미들즈브러 FC
미들즈브러 FC와의 계약이 유력하다. 입단하면 2년만에 영국으로 복귀하는셈. # 2019년 1월 24일 미들스브러 이적이 확정되었다.
영국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리그를 혹평했다. 중국리그의 여러 미비한 점을 지적하며 "30살 이전에는 가지 말라"고 했다. # 중국에서 여러가지로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던 듯 하며, "중국리그가 의외로 수준이 높다"고 평한 나이지리아 국대 동료인 오디온 이갈로와는 정반대인 견해를 보여주었다.
3.4. 트라브존스포르
자유계약으로 1년 옵션을 포함해 2+1년 계약을 맺었다.
COVID-19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강타한 와중에 터키 리그는 그대로 진행되자, 이에 미켈은 분노하며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축구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축구를 하고 싶지 않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는 모두들 집에서 가족과 함께 해야 한다. 시즌은 취소되어야 할 것이다." 라고 게시글을 올리며 리그를 비판했고, 구단측은 상호 합의하에 2020년 3월 19일 계약을 해지했다. 이후 행보는 알 수 없으나 첼시로 돌아간다는 이야기가 있다. #
3.5. 스토크 시티 FC
8월 15일 자유계약으로 1년이라는 오피셜이 떴다.
4. 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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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은 2005년, 나이지리아 U-20 국가대표에 선발되어 해당 대회에서 팀을 준우승으로 이끌었으며, 실버 볼을 수상했다.[13] 2005년 8월 17일, 리비아와의 친선경기에서 성인 국가대표에 데뷔하였다.'''전화를 받고 혼란스러웠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지만 1억 8천만 명의 나이지리아 국민을 실망하게 할 수 없었다'''
—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조국의 16강 진출•탈락 여부가 걸린 조별리그 3차전 아르헨티나전을 4시간 앞둔 시점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납치한 납치범'''으로부터 금품 요구 전화를 받은 후 그의 마음가짐#(다행이 미켈의 아버지는 구조되었다고 한다. 다만 납치범으로부터 구타를 당한 탓에 봉합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2006, 2008, 2010 네이션스컵에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출전하면서 팀의 중심으로 자리잡아갔으나 안타깝게도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무릎 부상으로 인해 출전이 좌절되었다. 월드컵 출전을 위해 수술 후 대표팀으로 합류했지만,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결국 탈락하게 된 것이다.
2013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는 조별리그 1경기, 결승전에서 MOM에 선정되는 등 뛰어난 활약으로 조국을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대회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 같은 해 컨페더레이션스컵에도 출전하였는데, 스페인 중원을 씹어먹는 극강의 활약을 펼쳤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도 출전하여 이란전 MOM에 선정되는 등 우수한 활약을 보여주며1998년 이후 16년 만에 나이지리아를 16강으로 진출하는데 기여했지만, 프랑스에 패해 탈락하였다.
2016년 3월 24일, 미켈은 아메드 무사의 뒤를 이어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축구(남자)에서는 와일드카드로 선발되어 나이지리아 축구 올림픽대표팀의 주장도 맡게 됐다.
애틀랜타에서 전지훈련을 하다가 브라질에 제때 도착하지 못해 몰수패 일보 직전까지 가는 열악한 여건[14][15] 속에서도 8강에 진출했고, 8강전인 덴마크와의 경기에서 1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나이지리아의 2:0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다만, 독일에 패해 금메달 도전은 실패했고, 대신 3, 4위전 상대였던 온두라스를 꺾으며 나이지리아는 축구 동메달을 차지했다. 그 뒤에는 당연히 미켈의 공로가 있었는데, 주장으로써의 리더쉽과 공격형 미드필더를 맡은 에이스 역할, 전술 지시, 식사, 교통수단등 자금 확보, 감독 선수 선수단장 역할을 다 한 미켈의 공이 컸다.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에도 출전하였다. 러시아월드컵 아르헨티나전을 네 시간 앞두고 아버지의 납치 소식을 들었지만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이 경기에서 풀타임 활약하기도 했다. 해당 기사
2019년 7월 18일, 자신의 공식 SNS를 통해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기대치에 비해 아쉬웠던 클럽 활약하고는 달리 국대에서는 월드컵,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올림픽, 컨페더레이션스컵 등 모든 대회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 애국자형 선수이다.
5. 플레이 스타일
'''등지고 딱딱''' 이 한 마디로 모든 설명이 끝난다.
실제 유스시절이나 린 오슬로에서 잠깐 뛸때만 하더라도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출처 실제 물리학자같이 축구를 한다고 주목을 받는 이유도 특유의 키핑능력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인데 실제 경기를 보다보면 볼을 자기진영에서 어지간해서는 잘 안뺏긴다. 만약 미켈이 첼시가 아닌 맨유로 갔다면 장기적으로 폴 스콜스를 대체할 중앙이나 공격형 미드필더로 성장했을 가능성이 높으나 인생은 역시 알 수 없는 것이고 엄청난 진통 끝에 이적한 첼시에서 그에게 주어진 역할은 수비형 미드필더 였다.[16]
본래 이전에 마켈렐레의 장기적 대체자로 데려왔던 선수는 마이클 에시엔이었다. 1년전 데려온 티아구 멘데스가 나쁘지 않은 활약을 했음에도 비슷한 포지션을 맡고 있던 에시엔을 데려온 이유도 이 때문이었으나 문제는 에시엔이 마켈렐레롤만 맡기에는 생각보다 다방면에 능했다는데 있다. 에시엔이 마켈렐레를 대체하기에는 그가 가진 다른 재능이 아까웠는지 아니면 미켈이 공을 간수하고 패스하는 능력이 그가 직접 공격에 가담하며 플레이하는 것 보다는 좋은지에 대한 판단이 섰던 것인지 무리뉴는 뜬끔없이 미켈을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 놓고 플레이를 시켰다. 여전히 볼을 간수하는 실력은 좋았으나 문제는 수비였다. 수비 위치를 잡는 능력이나 미리 대응하여 상대방의 역습을 차단하는 스피드나 활동량은 미켈에게 기대하기 어려웠지만 공격의 시발점으로 기술과 피지컬이 모두 뛰어난 선수를 쓰는 것이 아주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던 탓인지 그 자리에 미켈을 꾸준히 세웠고 현재로서는 수비형 미드필더가 아닌 미켈은 생각하기 어렵다.
하지만 위에 서술한 바와 같이 기동성이나 활동량이 뛰어난 편이 아니라서 최근 각광받는 포메이션인 4-2-3-1의 투볼란치 역할로는 제 능력을 100% 보여주지는 못 한다. 대신 4-3-3의 원볼란치로 에서 포백 앞에 서있으면서 홀딩 미드필더 가깝께 뛰면 더 좋은 활약을 보여준다.
아무래도 미켈의 가장 큰 단점이 바로 기동성과 활동량인데, 부족한 기동성과 활동량을 보완해줄 수 있는 하미레스와 같이 많이 뛰어주는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와 활약할때 가장 좋은 능력을 보여준다.
꾸준히 서다보니 포백라인 앞에서 포백을 보호하는 능력도 어느정도 발달되고 수비적으로 풀어나가면서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하는데는 굉장히 능하기에 11/12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같이 수비 위주의 경기를 운영할 때 능력이 극대화 된다.
데뷔 초기에는 투박한 플레이와 거친 태클을 많이 시도하여서 경고도 많이 받았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거친 플레이는 자제하는 편인듯.
자타공인 첼시빠 장지현위원은 청소년 때나 지금이나 플레이 스타일이 바뀌지 않았다고... 더 잘할 수 있는 선수인것 같은데 아쉽다고 평했다. 그래도 기본기 만큼은 확실한 선수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위에 서술한 바와 같이 볼키핑이 굉장히 좋은편이다. 차비 에르난데스나 이니에스타 같이 기술적이고 정교한 볼키핑도 잘하지만 뛰어난 피지컬도 뛰어나서 볼을 등지고 버티는 볼키핑을 많이 한다. 사실 탈압박을 잘하는 수비형 미드필더가 흔하지 않기 때문에 정말 유용한 자원임은 분명하다. 전방부터 강한 압박을 해오는 현대축구에서 수비진영부터 압박을 풀어나오면 공격작업이 훨씬 수월해지기 때문.
다만 볼키핑과는 다르게 킥력은 매우 좋지 않다. 초반에는 난데없는 슛으로 찬스를 날려먹는 짓을 많이해 욕 좀 먹었으나, 이젠 본인도 이를 잘 알고 있는지 공격시에 문전으로 침투도 잘 하지 않고 슈팅 시도 자체를 잘 하지 않는편인데, 그나마 가끔씩 중거리슛 찬스가 와도 유효슈팅으로 잘 연결 되지 않는다. 이러한 단점은 득점 기록에도 잘 나타난다.
6. 미켈은 과연 첼시의 레전드일까?
미켈은 첼시에서 10년이란 세월을 함께하면서 많은 우승컵을 들어올리는데 기여하고 2000년대 이후부터 시작된 첼시의 전성기를 함께한 선수이다.그저 벤치에만 앉아 있으면서 우승한게 아니라 꾸준히 로테이션 이상의 입지로 출전했고, 2012년 첼시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대활약하며 '''첼시의 역사상 첫번째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사람들이 미켈은 그저 오랫동안 뛴 선수이지 실력이 부족하므로 미켈은 첼시의 레전드가 아니라는 주장을 한다.영국 현지에서 한 설문조사에서도 미켈은 첼시의 최고의 레전드가 아니라는 의견이 61%나 나왔다.[17]
그러나 사실 미켈은 첼시의 레전드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선수이다.
우선 첼시라는 팀이 예전부터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는 클럽이 아니라 2000년대부터 뜬 신흥강호라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미켈은 첼시의 창단 이후로 얻은 트로피의 적지 않은 수를 본인의 커리어로 가지고 있다. 첼시의 레전드 기준은 레바뮌급 클럽이랑 같은 잣대를 들이대면 안 된다. 만약 첼시가 레바뮌 급 클럽만큼 레전드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며 월클의 퍼포먼스를 요구한다면, 레바뮌보다 역사적으로 월드클래스 선수가 적은 첼시는 존 테리, 램파드, 드록바, 체흐, 애쉴리 콜 외에는 레전드라고 할만한 선수가 조금밖에 없을 것이다. 비슷한 예로 맨체스터 시티가 중하위권을 전전하던 2000년대 초부터 6년간 주전으로 뛰며 팀의 EPL 잔류에 힘을 보탠 중국의 쑨지하이가 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야 최초의 중국인 프리미어 리거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겠지만 맨시티에선 앰버서더까지 임명되며 팀의 레전드 중 한명으로 취급받는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미켈을 실력으로 문제삼는데, 경기에 나오지도 못하는 알바로 아르벨로아나 파울로 페레이라 등이 레전드로 대우받는점도 생각해봐야한다. 레알 마드리드가 원탑 명문클럽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아르벨로아가 과연 레전드의 기준 중 '퍼포먼스' 에서 미켈보다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지도 생각해야한다. 상대적으로 역사가 별로인 팀에선 50의 퍼포먼스로 레전드로 대우받는다면, 명문팀이자 강팀에서는 100, 200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어야 한다. 아르벨로아가 전성기때는 잘했다곤 하지만 당시에도 레알 마드리드 주전 선수중에 구멍 논란에 끊임없이 시달렸던 선수이며, 아르벨로아가 주전에서 밀리고 레알은 귀신같이 4시즌 동안 3번의 챔스우승을 했다.
또한 파울로 페레이라는 2시즌 정도는 좋은 활약을 해주고 그 뒤로는 잦은 부상으로 기량이 떨어지면서 많은 경기에 나오지 못한 선수이다. 기량 저하 이후 출전 자체를 거의 하지 않으니 첼시팬들이 답답할 일이 적었다는 점과, 로만 구단주와 팬들이 그렇게나 바래왔던 첼시의 리그 우승을 이적한 첫해부터 2년 연속으로 도왔으며 (04-05 / 05-06) 팀에 대한 애정으로 이미지가 실질적인 공헌도에 비해 좋은 선수이다. 미켈은 2012년에 주전으로 뛰면서 첼시의 첫번째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기여한 선수이고 2012년 외에도 단기적으로 주전으로 뛰기도 하고 대부분의 시즌에서 로테이션으로 팀에 공헌한 선수이다. 첼시에서 보낸 10시즌동안 미켈의 실질적인 공헌도가 페레이라와 비교해서 떨어진다고 볼 수 없다.
사실 미켈이 많은 사람에게 까이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어느 정도의 기량을 가져 첼시에서 로테이션급의 입지로 출장했기 때문이다. 15-16전반기 마드리드 더비에서 보여준 아르벨로아의 끔찍한 폼을 생각했을때 과연 카르바할, 다닐루 등의 선수가 줄부상당했을때 아르벨로아가 주전으로 뛴다면 과연 레알팬들이 끔직한 퍼포먼스에도 레전드로 대우해줄까? 실제 아르벨로아는 본인 고별전에서조차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줬지만 그가 레알을 떠난 후에도 레전드 대우를 받는 것은 실력 외적인 이유[18] 가 크다.
결론적으로, 미켈은 첼시의 구단 창단 이후 최고의 전성기에 오랫동안 많은 경기에 출장하여 기여했으며 적어도 구단 차원에서는 확실한 레전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미켈이 중국으로 이적했을때 첼시 그 자체인 존 테리가 '''LEGEND'''라는 표현으로 SNS에 작별인사를 올린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7. 여담
본명은 존 마이클 은체쿠베 오빈나(John Michael Nchekwube Obinna)이지만 2003년 FIFA 17세 이하 세계청소년 선수권대회 당시 나이지리아 축구협회가 '마이클(Michael)'을 미켈(Mikel)'로 잘못 제출하는 바람에 미켈(Mikel)로 유니폼이 잘못 프린트 되었다. 사실 스펠링을 이렇게 크게 틀리기 굉장히 힘드나 아마도 나이지리아 축구협회의 전적인 잘못보다는 2003 u-17 대회가 열린 곳이 핀란드 였는데 이곳에서는 영어식 이름인 michael을 핀란드에서 mikael로 쓰는 경우가 많고 이런 식의 번역이 전달되다 보면서 미켈의 이름이 John Michael Obi에서 아예 John Obi Mikel로 바뀌게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미켈(Mikel)을 본 순간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본인도 미켈로 불리기를 원하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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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성으로 오해받는 경우가 많은 짤인데 실제로 한국에서 한국 기자가 진행한 인터뷰다! 한국에서 존 미켈을 만나다 (한국 팬들에게 보내는 영상 메시지, 미켈이 부르는 강남스타일 포함)
대한민국 내에선 해외축구 갤러리의 한 첼시팬의 명문으로 인해 물리학자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텐진 테다로 이적한 이후 한국에서 성사된 인터뷰에서는 이 별명에 대해 '전혀 몰랐었고 고국 나이지리아는 물론이고 잉글랜드에서도 특별한 별명이 없었는데 한국 팬들이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니 정말 놀랍다.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한 강남스타일을 실제로 부르고 핸드폰도 한국 것[19] 을 좋아하고 한국 음식 중에서 아프리카 음식과 맛이 비슷한 김치를 좋아한다고 이야기했는데, 이게 가식적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진심이 드러나서 이 인터뷰 이후로 한국 내 미켈의 팬이 상당히 늘어났다.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에이스인 것도 재평가받고 저런 멘탈이라 첼시에서 오래 있을 수 있었구나 이야기가 나올 정도.
공교롭게도 첼시시절 미드필더로서 짝을 이뤄 플레이하던 오스카르도 중국 상하이 상강에서 뛰고 있다. 미켈은 중국으로 이적하면서 트위터에 "친구 오스카르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기대된다"고 썼다.
7.1. 같이 보기
[1] 나이지리아 축구협회의 실수로 얻은 이름을 공식적인 이름으로 개명했다.[2] 뤼트 휠릿 시절부터 첼시의 팬으로서 첼시 경기들을 쭉 지켜봐왔던 장지현 해설위원은 오히려 10대 당시보다 단점이 더 늘고 장점은 퇴색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3] 첼시에서 맨유에게 위약금으로 1700만 유로나 지급했다.[4] 후에 미켈이 인터뷰에서 밝히길 맨유와 첼시간의 경쟁당시 첩보전을 방불케했다고 한다. 차량6대로 번갈아가며 눈속임 작전을 하기도 했다고.[5] 한준희 장지현의 원투펀치에서 첼지현이 미켈의 부족한 활약에 대해 많은 아쉬움을 표현했다.[6] 마티치가 처음으로 결장한 경기인 15라운드 뉴캐슬 원정에서 바로 시즌 첫 패.[7] 첼지현이 여름 이적시장에서 티아구 멘데스를 무조건 영입했어야 한다고 할 정도...[8] 마티치가 공수 양면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활동 반경을 넓게 가져가는 반면에 미켈은 클로드 마케렐레 유형의 선수로 뒤에서 묵묵히 수비만 해주는 선수다. [9] 다만 미켈 입장에서는 이러한 평가가 억울할 수도 있다. 애초에 미켈은 마티치와 다른 유형의 선수인데[8] 기존의 포맷에 그대로 들어가서 리그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만큼 활약해야하기 때문. 게다가 자신의 미드필더 파트너도 공격지향적인 파브레가스이니...(미켈은 하미레스처럼 자신의 떨어지는 기동력을 수비적으로 보완해 줄 수 있는 선수가 파트너로 있을때 안정적인 경기력을 보여준다.)[10] 자기한테 너무 많은걸 요구했다, 자신을 믿어주는 감독이 있으니 기쁘다 등등[11] 사실 토레스는 첼시에서 못하기는 했지만 부진을 탈출하기 위해서 훈련도 추가로 더 열심히 하였고 출전한 경기에서 굉장히 열심히 뛰었다. 반면 미켈은 맨시티전에서 산책을 나온듯한 모습으로 경기를 치렀다.[12] 게다가 그가 받고 있는 주급을 생각하면...[13] 참고로 해당 대회 우승은 아르헨티나이며, 동갑인 리오넬 메시가 골든볼을 수상했다.[14] 다행히 애틀랜타에 본사가 있는 델타 항공의 지원으로 마나우스에 경기 6시간 전에 도착했다. 나이지리아가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축구 우승국인지라, 이래저래 애틀랜타는 나이지리아에게 좋은 기억이 있는 동네다. [15] 미켈은 일본과의 경기시작 불과 6시간 전에 도착했을 당시 “멋진 비행이었다”라는 명인터뷰를 남기며 선수들 사기를 북돋았다.해당 기사[16] 사실 미켈이 이적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미켈은 프랭크 람파드의 장기적 대체자였으나 문제는 프랭크 람파드는 폼은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는데 마켈렐레는 떠날 때가 되었다는 점이었다.[17] 사실 현지인들은 질문 자체가 이상하다고 했다. 존 테리가 있는데 존 테리 이외의 인물에게 '최고'의 레전드냐는 질문은 이상하고 이 점을 감안하면 39%라는 수치도 놀라운 것이다. 하다못해 같은 미드필더 자리만 해도 프랭크 램파드가 넘사벽이라....[18] 유스 주장 출신, 후배 푸쉬, 라커룸 주장, 분위기 메이커, 레알 야당 대표라는 다크나이트 이미지 등과 레알 대표로 광고, 방송 출연이 잦았던 점도 한 몫했다.[19] 첼시에 있을 때 써보고 핸드폰은 한국 것이 좋다는 인식이 생겼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