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오세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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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오세티야는 조지아 영내의 미승인국이다. 수도는 츠힌발리(ცხინვალი) / 츠힌발(Цхинвал)이다.[4] 2008년 남오세티야 전쟁 이후 사실상 독립하였지만 극소수 국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국가들과 수교하지 못했고 정식 국가로 인정받지도 못한 미승인국이다. 남오세티야를 공식 인정해 주는 곳은 UN 비회원 미승인국 서사하라, 압하지야, 트란스니스트리아, 아르차흐 공화국, 도네츠크 인민 공화국, UN 회원국 중에서는 러시아, 니카라과, 베네수엘라, 나우루, 시리아[5] 뿐이다.[6][7] 한편, 투발루도 압하스와 남오세티야를 승인했으나 나중에 둘 다 승인을 취소하였다.
대내외적인 공식명칭은 독립 당시 '남오세티야 공화국(Republic of South Ossetia)'이었고, 2015년경부터 대통령의 주도로 국명 개정 담론이 형성되었다. 이후 2017년 4월 6일 국민투표를 통해 정식 명칭을 '남오세티야 공화국-알라니야국(Republic of South Ossetia-State of Alania)'으로 개정하였다. 남오세티야 헌법. 이는 같은 오세트인들이 사는 러시아령 북오세티야 공화국의 정식 명칭과 오세트인의 역사 속에 존재했던 국가인 알라니야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북오세티야의 정식 명칭은 '북오세티야-알라니야 공화국(Republic of North Ossetia-Alania)'이다.
국토 면적은 충청북도의 절반 정도인 3,900 km²이고 2015년 기준으로 인구는 약 5만 명 정도로 인구 70만 명의 북오세티야의 14분의 1 수준에 불과하고 460만 명 정도의 인구를 가진 소국 조지아에 비해 봐도 그야말로 약소국이라고 할 수 있지만, 압하스와 함께 러시아군이 주둔하고 있기 때문에 조지아 중앙정부가 함부로 할 수 없어 어느 정도의 안전보장은 이뤄지고 있다.
국명이 굳이 남(南)오세티야인 이유는 러시아 연방령 북오세티야가 있기 때문이다. 오세트어로 남오세티야는 '후샤르 이러슈톤(Хуссар Ирыстон)', 북오세티야는 '사가트 이러슈톤(Цӕгат Ирыстон)'이라 한다. 스탈린 정권기에 남북오세티야는 같은 민족 거주지임에도 문자가 달랐다. 북쪽은 키릴, 남쪽은 조지아 문자를 사용했지만 1954년에 키릴 문자로 통일되었다.
북오세티야도 그리 안정적인 편은 아니다. 구소련 시절, 스탈린이 반러 성향이 짙은 체첸·인구시인을 중앙아시아로 몰아내버리고 인구시인의 터전이었던 프리고로드니 지역을 러시아에 충성하던[8] 오세트인들에게 멋대로 넘긴 것이다. 흐루쇼프 시대에 인구시인이 귀환하여 이 지역의 반환을 요구하였지만 오세트인들은 이들의 요구를 묵살하였다. 그 결과가 1992년 발생한 인구시인-오세트인 분쟁이다. 러시아는 당연히 오세트인을 지원해 주었고 애꿎은 이 지역 인구시 민간인들만 피해를 봤다. 이후에도 이슬람 극단주의 계열 체첸인 반군에 의해 2004년에 베슬란 학교 인질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오세티야 분열의 원인제공을 한 것은 소련이다. 소련이 건국되면서 북오세티야는 1921년에 성립된 산악 소비에트 사회주의 자치공화국을 거쳐 1924년에 러시아 쪽에 자치주로(1936년에 자치공화국으로 승격됨.), 남오세티야는 조지아 쪽에 자치주로 합병되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소련 붕괴 직후 발생한 1차 남오세티야 전쟁[9] . 애초에 거대한 캅카스 산맥을 경계로 한 지역에 살았기 때문에 둘로 나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남오세티야인들도 러시아 제국과 볼셰비키가 캅카스 일대를 점령해 나갈 때 '향도' 노릇한, 캅카스 민족들에게는 러시아 제국과 공산당의 앞잡이로 비추어졌을 것이다.[10] 이 공으로 블라디미르 레닌이 오세트인들을 위한 북오세티야 자치주를 세워줬고,[11] 조지아인 입장에서는 민족 구분선을 러시아 연방령인 북오세티야에만 그으면 되는데, 그루지야 SSR의 영토에 남오세트인 자치주까지 설치한 게 갈등의 발단이 된 것이다.
조지아인과 오세트인은 오랜 기간의 통혼으로 상당히 동화되었으나, 소련이 붕괴된 후 조지아인과 오세트인 양측에서 민족주의가 고조되면서 분쟁이 시작되었다. 조지아의 초대 대통령인 즈비아드 감사후르디아는 남오세티야의 자치권을 폐지하면서 "그들은 여기서 나라(남오세티야)를 세울 권리가 없다. 그들의 고향은 북오세티야일 뿐, 여기서는 뜨내기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짓을 하는 바람에 남오세티야를 분노하게 만들어 반란이 일어나고 만다.
1990년대 초반 소련 해체이후 발생한 조지아인-오세트인 분쟁으로, 조지아 본토 영내의 오세트인 10만명이 도피하였고, 2만 3천명의 조지아인이 남오세티야에서 도피하였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지금 조지아와 불구대천의 원수가 된 것이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캅카스 내에서 거의 드물게 정교회를 믿으면서 친러파 민족이라 아예 러시아 시민권을 주고 옹호하는 것.
남오세티야 전쟁의 발단은 조지아가 이 곳에 군사행동을 개시함으로써 일어났다. 이후에 조지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상태라지만 조지아는 당연히 인정하고 있지 않다. 압하지야와 아자리야는 조지아 중앙정부에 의해 자치공화국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남오세티야는 그렇지도 못한 상태이다. 조지아의 행정구역상에서 남오세티야의 영역은 라차레치후미 크베모 스바네티주, 이메레티주, 시다 카르틀리주, 므츠헤타므티아네티주에 걸쳐있다.
2015년부터 러시아와 통합할 예정을 보이고 있다. 관련 기사. 거기에다 나우루측은 남오세티야와 무비자협정을 체결했다. 관련 기사. 2017년 4월 9일에 국민투표를 거쳐 공식명칭을 '남오세티야 공화국-알라니야국'으로 변경하였다. 이는 북오세티야와 국명을 일치시키려는 의도이다. 츠힌발리에선 블라디미르 푸틴의 이름을 딴 거리가 생겨났다. 관련 기사(러시아어).
대통령제 공화국으로 임기는 5년(재선가능)이다. 총리가 있으며, 국회는 34석으로 지역구&비례대표 각 17석씩. 2019년 6월 총선거로 현 여당인 통합 오세티아당은 14석을 가지고 있다.
소련 붕괴 직후 민족분규로 인구가 줄었다. 2015년 통계에 의하면 남오세티아의 인구는 53,532명으로 소련 붕괴 당시(1989년 98,527명)의 절반 정도로 줄어들었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미승인 수도인 츠힌발리에 거주한다. 민족별로는 오세트인이 89.9%, 조지아인이 7.4%, 러시아인이 1.1%를 차지했는데, 1989년 인구의 29%에 달하던 조지아인들이 2008년의 전쟁으로 대부분 도피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몇 번의 분쟁도 있었지만 특히 2008년 8월에 일어난 짧지만 대규모의 분쟁으로 인해 절대 좋게 여기지 않으며, 당연히 나라로 인정해주지도 않는다.
러시아는 반대로 이곳에 친러도 많고, 지리적 요충지로서의 중요성도 있다고 여겨 독립국가로 승인했다.
남오세티야군은 총 병력 2500명으로 예비군까지 포함해도 병력 1만 6천명의 작은 군대이다. 사실 나라의 규모를 생각해보면 예비군 1만 6000명도 부담스러워 보이기는 한다. 인구가 7만명인데 예비군이 1만 6천명 수준이면 거의 북한급의 나라이다.
2015년 들어 러시아와의 동맹통합조약이 검토되고 있다. 2월 10일 이전에 체결될 예정이며, 조약에는 통합군부대를 창설하며, 남오세티야군의 현대화, 남오세티야군 작전지휘권의 독립성 유지 등을 명시하고 있다. 효력은 향후 25년간으로 10년마다 연장된다. 관련 글.
2017년에 러시아에서 남오세티야군을 자국의 군대로 편입하는 방안을 추진하였다. 관련 기사. 이후 2018년에 남오세티야와 연합군을 결성하기로 결정했다. 관련 기사.
경제적으로는 좋지 못하다. 2002년 1인당 GDP는 250$.[12] 2017년 1인당 GDP 추정치는 2000$
자체 발전소가 없어 전기는 러시아에서 끌어다 쓴다. 유전이 있지만 개발은 지지부진한 상태.
캅카스 산맥 지대에 자리잡아 천혜의 관광자원을 가지고 있다. 무비자 입국이 가능하다고 하나 러시아 국적 외의 입국 희망자는 최소 근무일 기준 3일전 "입국 허가"를 위한 커버레터를 보내 허가를 받아야 한다. 대중교통으로는 러시아 연방 북오세티야 공화국 블라디캅카스 - 남오세티야 츠힌발리 노선의 버스가 있다.
숙박시설은 츠힌발 버스 터미널 바로 앞의 호텔 Alan이 있으며 전화예약(러시아어, 오세트어)만으로 예약할수 있다.
출입국 지점은 총 4곳이 있는데 조지아와의 경계에 있는 '모사브루니(მოსაბრუნი) / 라즈다한(Раздӕхӕн)', '페레비(პერევი) / 페레우(Пъереу)', '카르즈마니(ქარზმანი) / 카르즈만(Карзман)', '시나구리(სინაგური) / 시나구르(Синагур)'는 허가증이 있는 조지아인, 남오세트인만이 왕래할수 있다. 이외의 경우 러시아 연방과 남오세티아를 잇는 로키 터널(Рокский туннель, Roki Tunnel)을 통해 입국이 가능하다.
굳이 입국하지 않더라도 조지아의 접경지역인 에르그네티(ერგნეთი, Ergneti)에서 남오세티야의 수도 츠힌발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실제로 외국인들도 남오세티야를 보려고 방문한다고 한다.
남오세티야의 국가인 Уарзон Ирыстон!(사랑하는 오세티야!)는 1955년에 코카이터 토트라즈(Кокайты Тотрадз)가 작사, 알보르터 펠릭스(Алборты Феликс)가 작곡하였다.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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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남오세티야는 조지아 영내의 미승인국이다. 수도는 츠힌발리(ცხინვალი) / 츠힌발(Цхинвал)이다.[4] 2008년 남오세티야 전쟁 이후 사실상 독립하였지만 극소수 국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국가들과 수교하지 못했고 정식 국가로 인정받지도 못한 미승인국이다. 남오세티야를 공식 인정해 주는 곳은 UN 비회원 미승인국 서사하라, 압하지야, 트란스니스트리아, 아르차흐 공화국, 도네츠크 인민 공화국, UN 회원국 중에서는 러시아, 니카라과, 베네수엘라, 나우루, 시리아[5] 뿐이다.[6][7] 한편, 투발루도 압하스와 남오세티야를 승인했으나 나중에 둘 다 승인을 취소하였다.
대내외적인 공식명칭은 독립 당시 '남오세티야 공화국(Republic of South Ossetia)'이었고, 2015년경부터 대통령의 주도로 국명 개정 담론이 형성되었다. 이후 2017년 4월 6일 국민투표를 통해 정식 명칭을 '남오세티야 공화국-알라니야국(Republic of South Ossetia-State of Alania)'으로 개정하였다. 남오세티야 헌법. 이는 같은 오세트인들이 사는 러시아령 북오세티야 공화국의 정식 명칭과 오세트인의 역사 속에 존재했던 국가인 알라니야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북오세티야의 정식 명칭은 '북오세티야-알라니야 공화국(Republic of North Ossetia-Alania)'이다.
국토 면적은 충청북도의 절반 정도인 3,900 km²이고 2015년 기준으로 인구는 약 5만 명 정도로 인구 70만 명의 북오세티야의 14분의 1 수준에 불과하고 460만 명 정도의 인구를 가진 소국 조지아에 비해 봐도 그야말로 약소국이라고 할 수 있지만, 압하스와 함께 러시아군이 주둔하고 있기 때문에 조지아 중앙정부가 함부로 할 수 없어 어느 정도의 안전보장은 이뤄지고 있다.
2. 남북오세티야
국명이 굳이 남(南)오세티야인 이유는 러시아 연방령 북오세티야가 있기 때문이다. 오세트어로 남오세티야는 '후샤르 이러슈톤(Хуссар Ирыстон)', 북오세티야는 '사가트 이러슈톤(Цӕгат Ирыстон)'이라 한다. 스탈린 정권기에 남북오세티야는 같은 민족 거주지임에도 문자가 달랐다. 북쪽은 키릴, 남쪽은 조지아 문자를 사용했지만 1954년에 키릴 문자로 통일되었다.
북오세티야도 그리 안정적인 편은 아니다. 구소련 시절, 스탈린이 반러 성향이 짙은 체첸·인구시인을 중앙아시아로 몰아내버리고 인구시인의 터전이었던 프리고로드니 지역을 러시아에 충성하던[8] 오세트인들에게 멋대로 넘긴 것이다. 흐루쇼프 시대에 인구시인이 귀환하여 이 지역의 반환을 요구하였지만 오세트인들은 이들의 요구를 묵살하였다. 그 결과가 1992년 발생한 인구시인-오세트인 분쟁이다. 러시아는 당연히 오세트인을 지원해 주었고 애꿎은 이 지역 인구시 민간인들만 피해를 봤다. 이후에도 이슬람 극단주의 계열 체첸인 반군에 의해 2004년에 베슬란 학교 인질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3. 역사
오세티야 분열의 원인제공을 한 것은 소련이다. 소련이 건국되면서 북오세티야는 1921년에 성립된 산악 소비에트 사회주의 자치공화국을 거쳐 1924년에 러시아 쪽에 자치주로(1936년에 자치공화국으로 승격됨.), 남오세티야는 조지아 쪽에 자치주로 합병되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소련 붕괴 직후 발생한 1차 남오세티야 전쟁[9] . 애초에 거대한 캅카스 산맥을 경계로 한 지역에 살았기 때문에 둘로 나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남오세티야인들도 러시아 제국과 볼셰비키가 캅카스 일대를 점령해 나갈 때 '향도' 노릇한, 캅카스 민족들에게는 러시아 제국과 공산당의 앞잡이로 비추어졌을 것이다.[10] 이 공으로 블라디미르 레닌이 오세트인들을 위한 북오세티야 자치주를 세워줬고,[11] 조지아인 입장에서는 민족 구분선을 러시아 연방령인 북오세티야에만 그으면 되는데, 그루지야 SSR의 영토에 남오세트인 자치주까지 설치한 게 갈등의 발단이 된 것이다.
조지아인과 오세트인은 오랜 기간의 통혼으로 상당히 동화되었으나, 소련이 붕괴된 후 조지아인과 오세트인 양측에서 민족주의가 고조되면서 분쟁이 시작되었다. 조지아의 초대 대통령인 즈비아드 감사후르디아는 남오세티야의 자치권을 폐지하면서 "그들은 여기서 나라(남오세티야)를 세울 권리가 없다. 그들의 고향은 북오세티야일 뿐, 여기서는 뜨내기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짓을 하는 바람에 남오세티야를 분노하게 만들어 반란이 일어나고 만다.
1990년대 초반 소련 해체이후 발생한 조지아인-오세트인 분쟁으로, 조지아 본토 영내의 오세트인 10만명이 도피하였고, 2만 3천명의 조지아인이 남오세티야에서 도피하였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지금 조지아와 불구대천의 원수가 된 것이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캅카스 내에서 거의 드물게 정교회를 믿으면서 친러파 민족이라 아예 러시아 시민권을 주고 옹호하는 것.
남오세티야 전쟁의 발단은 조지아가 이 곳에 군사행동을 개시함으로써 일어났다. 이후에 조지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상태라지만 조지아는 당연히 인정하고 있지 않다. 압하지야와 아자리야는 조지아 중앙정부에 의해 자치공화국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남오세티야는 그렇지도 못한 상태이다. 조지아의 행정구역상에서 남오세티야의 영역은 라차레치후미 크베모 스바네티주, 이메레티주, 시다 카르틀리주, 므츠헤타므티아네티주에 걸쳐있다.
2015년부터 러시아와 통합할 예정을 보이고 있다. 관련 기사. 거기에다 나우루측은 남오세티야와 무비자협정을 체결했다. 관련 기사. 2017년 4월 9일에 국민투표를 거쳐 공식명칭을 '남오세티야 공화국-알라니야국'으로 변경하였다. 이는 북오세티야와 국명을 일치시키려는 의도이다. 츠힌발리에선 블라디미르 푸틴의 이름을 딴 거리가 생겨났다. 관련 기사(러시아어).
4. 정치
대통령제 공화국으로 임기는 5년(재선가능)이다. 총리가 있으며, 국회는 34석으로 지역구&비례대표 각 17석씩. 2019년 6월 총선거로 현 여당인 통합 오세티아당은 14석을 가지고 있다.
5. 인구
소련 붕괴 직후 민족분규로 인구가 줄었다. 2015년 통계에 의하면 남오세티아의 인구는 53,532명으로 소련 붕괴 당시(1989년 98,527명)의 절반 정도로 줄어들었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미승인 수도인 츠힌발리에 거주한다. 민족별로는 오세트인이 89.9%, 조지아인이 7.4%, 러시아인이 1.1%를 차지했는데, 1989년 인구의 29%에 달하던 조지아인들이 2008년의 전쟁으로 대부분 도피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6. 외교
6.1. 조지아와의 관계
몇 번의 분쟁도 있었지만 특히 2008년 8월에 일어난 짧지만 대규모의 분쟁으로 인해 절대 좋게 여기지 않으며, 당연히 나라로 인정해주지도 않는다.
6.2. 러시아와의 관계
러시아는 반대로 이곳에 친러도 많고, 지리적 요충지로서의 중요성도 있다고 여겨 독립국가로 승인했다.
7. 군사
남오세티야군은 총 병력 2500명으로 예비군까지 포함해도 병력 1만 6천명의 작은 군대이다. 사실 나라의 규모를 생각해보면 예비군 1만 6000명도 부담스러워 보이기는 한다. 인구가 7만명인데 예비군이 1만 6천명 수준이면 거의 북한급의 나라이다.
2015년 들어 러시아와의 동맹통합조약이 검토되고 있다. 2월 10일 이전에 체결될 예정이며, 조약에는 통합군부대를 창설하며, 남오세티야군의 현대화, 남오세티야군 작전지휘권의 독립성 유지 등을 명시하고 있다. 효력은 향후 25년간으로 10년마다 연장된다. 관련 글.
2017년에 러시아에서 남오세티야군을 자국의 군대로 편입하는 방안을 추진하였다. 관련 기사. 이후 2018년에 남오세티야와 연합군을 결성하기로 결정했다. 관련 기사.
8. 경제
경제적으로는 좋지 못하다. 2002년 1인당 GDP는 250$.[12] 2017년 1인당 GDP 추정치는 2000$
자체 발전소가 없어 전기는 러시아에서 끌어다 쓴다. 유전이 있지만 개발은 지지부진한 상태.
9. 관광
캅카스 산맥 지대에 자리잡아 천혜의 관광자원을 가지고 있다. 무비자 입국이 가능하다고 하나 러시아 국적 외의 입국 희망자는 최소 근무일 기준 3일전 "입국 허가"를 위한 커버레터를 보내 허가를 받아야 한다. 대중교통으로는 러시아 연방 북오세티야 공화국 블라디캅카스 - 남오세티야 츠힌발리 노선의 버스가 있다.
숙박시설은 츠힌발 버스 터미널 바로 앞의 호텔 Alan이 있으며 전화예약(러시아어, 오세트어)만으로 예약할수 있다.
출입국 지점은 총 4곳이 있는데 조지아와의 경계에 있는 '모사브루니(მოსაბრუნი) / 라즈다한(Раздӕхӕн)', '페레비(პერევი) / 페레우(Пъереу)', '카르즈마니(ქარზმანი) / 카르즈만(Карзман)', '시나구리(სინაგური) / 시나구르(Синагур)'는 허가증이 있는 조지아인, 남오세트인만이 왕래할수 있다. 이외의 경우 러시아 연방과 남오세티아를 잇는 로키 터널(Рокский туннель, Roki Tunnel)을 통해 입국이 가능하다.
굳이 입국하지 않더라도 조지아의 접경지역인 에르그네티(ერგნეთი, Ergneti)에서 남오세티야의 수도 츠힌발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실제로 외국인들도 남오세티야를 보려고 방문한다고 한다.
10. 국가
남오세티야의 국가인 Уарзон Ирыстон!(사랑하는 오세티야!)는 1955년에 코카이터 토트라즈(Кокайты Тотрадз)가 작사, 알보르터 펠릭스(Алборты Феликс)가 작곡하였다.
가사
11. 언어별 명칭
12. 둘러보기
[1] 러시아어 표기는 아나톨리 일리치 비빌로프(Анатолий Ильич Бибилов). 국립국어원에서는 '비빌티, 일랴이 피르트 아나톨리'로 오세트어 표기를 제시했지만 오세트어에서 ы는 /ə/이나 /ɘ/ 발음이다.[2] 러시아어 표기는 예리크 게오르기예비치 푸하예프(Эрик Георгиевич Пухаев).[3] #(조지아 정보, 이유는 미승인국 문서 참고)[4] 후자는 러시아어·오세트어 표현이며 오세트어로는 '치레바(Чъреба)'라고도 한다.[5] 최근(2018년)에 시리아는 압하스와 남오세티야를 인정했다. 관련 기사.[6] 영어판 위키백과의 관련 문서.[7] 나우루 말고는 코소보를 승인하지 않은 곳들이다. 나우루는 코소보, 압하지야, 남오세티야를 다 승인했다.[8] 오세트인은 러시아인들과 똑같은 정교회 신자이며 러시아의 캅카스 정복 당시 러시아를 적극적으로 도왔다.[9] 2008년 발생한 남오세티야 전쟁은 2차 남오세티야 전쟁이다.[10] 러시아 제국과는 정교회로, 볼셰비키와는 독립을 선포한 조지아 민주공화국의 민족주의 제압에 대해 일치했기 때문이다.[11] 이것은 비단 오세트인뿐 아니라 러시아 영내의 다른 소수민족에게도 마찬가지였다.[12] 당시 조지아는 777$, 러시아는 2,377$였고 구소련 국가들 중 가장 소득이 낮은 타지키스탄은 186$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