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하지야

 


압하지야 공화국
Аԥсны Аҳәынҭқарра[1] | Республика Абхазия[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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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국장
면적
8,660km²
인구
243,564명(2016)
수도
수후미(러시아어: Сухум(и), 압하스어: Аҟәа)
정치형태
이원집정부제
대통령
아슬란 갸르기이파 브자니아
(Аслан Гьаргь-иԥа Бжьаниа)[3]
총리
알레크산드르 졸로틴스카이파 안크와브
(Алеқсандр Золотинска-иԥа Анқәаб)[4][5]
민족구성
압하스인 50.7%, 조지아인 19.2%, 아르메니아인 17.4% (2011)
공용어
압하스어, 러시아어
종교
정교회 62%, 이슬람 26%, 토착신앙 7% (2003)
통화
압하지야 아프사르(Аԥсар),[6] 러시아 루블
1. 개요
2. 역사
3. 정치
4. 외교
4.1. 터키와의 관계
4.2. 러시아와의 관계
5. 인구
6. 민족
7. 언어
8. 종교
9. 국가
10. 관광
11. 스포츠
11.1. 축구
11.1.1. 국가대표
12.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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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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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하지야어
Аԥсны (아프스니, [apʰsˈnɨ])
오세트어
Абхаз (아브하즈)
러시아어
Абха́зия (압하지야, [ɐpˈxazʲɪjə])
영어
Abkhazia ([æbˈkɑːziə] 혹은 [æbˈkeɪziə])
조지아어
აფხაზეთი (아프하제티, [apʰxazɛtʰi])
압하지야는 서아시아[7] 흑해 연안, 러시아조지아 사이에 끼어있는 지역으로, 세계 대부분 국가의 정부와 UN에서는 조지아의 영토 일부로 간주하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정부가 따로 차려져 통치 중인 미승인국이며 조지아 정부는 이 지역에 대해 통치권을 전혀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수도는 수후미(Сухуми, Sukhumi)이다.

2. 역사


고대에는 콜키스 왕국에 속했고, 이후 동로마 제국에 의해 임명된 아르콘이 다스리는 '아바스기아(Abasgia)'가 세워졌다. 8세기에는 압하지야 왕국이 세워졌다가 11세기에 압하지야의 왕인 바그라트 3세가 다비트 3세 쿠로팔라티의 뒤를 이어 조지아의 왕위를 계승해 조지아와 하나의 왕국이 되었다. 이후 오스만 제국이 조지아를 차지하면서 오스만 제국에 충성한 샤르바시제(შარვაშიძე 혹은 셰르바시제·შერვაშიძე)가가 압하지야 공국을 다스렸다. 19세기에 압하지야 공이였던 미헤일 샤르바시제(მიხეილ შარვაშიძე)가 추방당하면서 러시아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1917년러시아 혁명 이후 그루지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압하지야 지역에 자치권이 부여된다.
소련이 들어선 이후 압하스인인 네스토르 아폴론이파 라코바(Нестор Аполлон-иԥа Лакоба)[8]의 주도로 압하지야 SSR가 수립됐으나, 1931년에 그루지야 SSR의 자치공화국으로 격하되었다. 당시 그루지야(조지아) 출신이었던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라브렌티 베리야압하스어 문자를 조지아어 문자로 바꾸는 등 압하지야 문화에 대한 탄압을 가했으며, 1926년 압하지야에서 조지아인과 압하스인의 비율은 각각 33%, 27%로 비슷한 수준이었는데, 1959년에는 조지아인(39%)이 압하스인(15%)보다 압도적으로 많아지게 되었다. 50년대 이후 소련 정부는 압하스인에 대해 유화 정책을 폈으나, 이번에는 인구 중 다수를 차지하는 조지아인이 이에 대해 차별받는다는 불만이 생겼다.
소련 붕괴 이후 압하스인들은 조지아에서의 분리 독립을 요구하고, 조지아인들은 이에 반대하면서 충돌이 커졌다. 1991년 조지아가 독립을 선언한 이후 1992년 7월 23일 압하지야 최고회의의 결정에 따라 압하지야는 조지아로부터 독립하겠다고 나섰다. 결국 압하지야-조지아간 전쟁이 발발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수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특히 89년 당시 압하지야 인구의 45%까지 늘어났던 조지아인의 경우 3만여 명이 학살당하고 20만여 명이 쫓겨난 것으로 추산된다. 1994년 5월 14일에 러시아의 중재로 모스크바에서 준군사조직 므헤드리오니(მხედრიონი)의 지도자인 자바 이오셀리아니(ჯაბა იოსელიანი)와 압하지야의 총리인 소크라트 진졸리아(Сократ Џьинџьолиа)가 만나 휴전협정을 성사시키면서 내전은 일단락되었고 압하지야는 사실상 독립 상태가 되었다. 이후에도 압하지야와 조지아의 충돌은 몇 번 계속되었으며, 조지아에서 친서방 성향의 미헤일 사카슈빌리 정권이 집권한 이후 남오세티야 전쟁이 발발하자 조지아로부터 완전히 독립을 선언하였다. 러시아2008년 8월 26일에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를 독립국으로 공식 승인했다.
2011년 당시 대통령이던 세르게이 바가프시(Сергеи Багаԥшь)가 공무 중 사망하면서, 갑작스럽게 대통령 선거가 진행됐고 알레크산드르 안크와브가 당선되었다. 2014년 봄, 라울 하짐바(Рауль Ҳаџьымба)가 이끄는 시위대가 안크와브에 정부를 해고하고 급진적인 개혁을 하라는 내용의 최후통첩을 안크와브에게 보냈고, 그는 쿠데타 시도라고 판단해 6월 1일, 국가의 안정성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사임하였다. 시위대는 저항의 이유가 지속적인 경제침체로 인한 가난이라고 밝혔으나, 당시 안크와브가 조지아와의 접경지대였던 압하지야의 갈리 지역에 사는 민족적 조지아인들에게 유화 정책을 베풀었기 때문에, 압하지야의 민족 정체성에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 주요 이유인 것으로 보인다. 안크와브가 사임 하루 전인 5월 31일에 수도인 이후 수후미에서 도망쳤다. 이후 압하지야 의회는 발레리 브간바(Валери Бганба)를 임시 대통령으로 임명하였다. 6월 2일, 그는 당시 총리였던[9]의 사표를 수리하였다. 이후 블라디미르 델바(Владимир Делба)를 임시 총리로 임명하였다. 의회는 2014년 8월 24일을 대통령 선거일로 정하였고, 당시 시위대의 리더였던 라울 하짐바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참고로 이 때 안크와브도 참여하겠다고 하였으나, 실제로 후보로 등록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하짐바는 이후 11월, 블라디미르 푸틴과 만나 압하지야의 군대를 러시아 군대 산하로 편입시킨다는 내용의 조약에 합의하였다. 조지아는 이를 합병을 위한 절차라며 맹렬히 비난했다.
2020년 1월 10일에 압하지야에서 현대통령인 라울 하짐바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발생되었다. 관련 기사. 압하지야 법원은 2019년 대통령 선거의 결과를 무효화하였고, 라울 하짐바는 대통령의 지위를 상실하게 된다. 2020년에 3월 20일, 대통령선거가 다시 치러졌고 야당 후보였던 아슬란 브자니아가 결선투표 없이 당선되었다. 당선 후, 3대 대통령이었던 안크와브를 총리로 지명했다.

3. 정치


대통령 선거는 결선투표제를 치르며, 총선은 35석이며, 소선거구제로 5년 임기를 지낸다.

4. 외교


압하지야를 조지아와 별개의 독립 국가로 인정한 곳은 러시아, 니카라과, 베네수엘라, 나우루, 시리아 5개국이다. 관련 기사. 같은 미승인국 중에서는 남오세티야, 아르차흐 공화국, 트란스니스트리아가 인정했다.[10]
미승인국인데다 유엔 회원국이 아니라는 점을 이용해서 북한 노동자 체류를 허용하고 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1139818.
당연히 현재 수교를 하고 있는 5개국들과의 외교가 주를 이루고 있고, 정상들이 서로 많이 회담을 하기도 한다.

4.1. 터키와의 관계


터키는 압하지야를 공식적으로 국가로 승인한 적은 없으나, 터키에 압하스인들이 많이 살고 있기 때문에 비공식적으로 경제적인 교류가 잦다. 비공식적으로 경제협약도 맺었고, 터키 내 압하지야 관련 축제도 있다. 실제로 이 문제를 조지아 정부에서도 골치 아프게 생각하고 있다.

4.2. 러시아와의 관계


러시아와의 유착이 깊을 수 밖에 없으며, 사실상 의존할 수 있는 유일한 활로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러시아군도 주둔중이다.
2020년부터 코로나19가 전세계로 퍼지면서 압하지야도 영향을 받았다. 2020년 10월 17일에 러시아측은 압하지야를 돕는다고 밝혔다. 관련 기사(러시아어).

5. 인구


2011년 인구 조사에서는 압하스의 인구가 240,705 명으로 추산했다.# 조사 시기 및 조사 주체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18만 명에서 22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6. 민족


이 지역에는 조지아인, 압하스인, 러시아인, 아르메니아인 등이 정주하고 있다. 1992년 압하지야 전쟁 이전까지는 조지아인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으나 전쟁 이후 조지아인 20만여 명이 압하지야에서 쫓겨났고, 압하스인이 다수가 되었다.
1989년 당시 압하지야의 인구는 52만 명이었으며, 조지아인(45.7%)이 가장 많았고, 압하스인(17.8%)과 러시아인(14.3%)이 뒤를 이었다. 2011년 통계에서 압하지야의 인구는 52만 명에서 24만 명으로 줄어들었고, 압하스인(50.7%), 조지아인(19.2%), 아르메니아인(17.4%), 러시아인(9.1%), 흑해 그리스인(0.6%) 등이 거주하고 있었다.

7. 언어


공용어는 압하스어러시아어이며, 그 외에 조지아어, 아르메니아어, 그리고 조지아어의 동부방언인 메그렐어 등이 사용된다.

8. 종교


2003년 조사에 따르면 기독교(주로 정교회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신자가 60%, 수니파 무슬림이 16%, 압하스 전통 종교[11]가 8%, 무종교/무신론자 8% 등으로 나타났다.

9. 국가



기악판

보컬판

보컬판 짧은 버전
압하지야의 국가는 Аиааира(아이아아이라, 승리)이다. 겐나디 알라미아(Геннади Аламиа)가 작사했고 발레리 치카두아(Валери Ҷҟадуа)가 작곡했다. 2007년 10월 24일 압하지야의 국가로 공식 채택되었다.
1992년 압하지야의 조지아로부터의 독립 선언 이후부터 가사 만들기 작업에 들어갔으며, 조지아 민주 공화국 시절에 쓰였던 압하지야인 혁명 노래 '키아라즈'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1994년 조지아와의 독립 전쟁 이후 작곡가인 발레리 치카두아가 압하지야 초대 대통령인 블라디슬라브 아르진바(Владислав Арӡынба)의 개인적인 부탁으로 작곡을 하였다. 쇼스타코비치 하에서 공부를 하였던 치카두아는 압하지야의 전통 음악을 국가에 담아내려고 노력하였다. 치카두아는 작곡으로 인한 저작권료를 받기를 거부한 채, 난방이 되지 않는 추운 집에서 겨울 내내 작곡에 매진하였다. 이후 대통령으로부터 감사의 표시로 집을 하사받았다. 여담으로 치카두아는 2018년, 소아성애자라는 죄목으로 징역 20년형을 선고받았다.

10. 관광


분리독립에 따른 분쟁지역이기 때문에 조지아-압하지야-조지아, 또는 러시아-압하지야-러시아의 경우로만 여행이 가능하다. 전자의 경우 조금 더 복잡하나 좀 더 국제적으로 합법적이라 인정받는 방법으로 방문이 가능하다. 조지아 외교부는 한국인과 같은 제3국인이 압하지야 및 남오세티야를 방문하려 할 경우 자국의 허가를 받아야 두 지역 방문이 가능하다고 통보한 적이 있다. 조지아에서 압하지야를 거쳐 러시아로 넘어가는 방법이 존재하긴 하나, 이 경우 조지아에서 위험인물로 지정되어 조지아 재입국이 불허된다. 또한 러시아에서 이 지역을 거쳐 러시아로 다시 나오지 않고 조지아로 입국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절차가 약간 까다롭긴 하나 조지아-압하지야-러시아 경로가 아닌 다른 두 경로의 경우 지극히 합법적인 방법이다. 압하지야 및 남오세티야 여행을 법적으로 금지하는 여러 선진국들과는 달리 한국 외교부에서는 안전단계 3단계(철수권고)[12]이 지역 여행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입국 시 비자가 필요하며, 입국 전 사전에 여행 허가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또한 입국 후 3일 내 수후미에서 이 허가를 정식 비자로 바꿔야 한다.
유튜브에 영어로 Abkhazia라고 검색하면 다큐멘터리 영상 이외에 제일 많이 나오는 영상이 압하지야 홍보 영상이다. 그만큼 관광업이 주를 이루고 있고, 내전으로 인해 복구된 자연경관과 흑해의 자갈 해변 홍보 등이 주를 이룬다. 세계에서 가장 깊은 수직동굴도 압하지야에 위치하고 있다. 소련 치하에 간부들의 별장이 압하지야에 많이 있었다고 한다. 매년 백만명이 넘는 러시아인들과 카자흐스탄인들이 압하지야를 관광 목적으로 방문해 휴가를 즐긴다고 한다. 물가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싼 편이기 때문에, 터키, 이집트, 그리스 등지로 휴가를 갈 돈이 없는 사람들이 압하지야로 많이 관광을 간다고.
수후미 바부샤라라는 이름의 1960년대 소련 정부에 의해 지어진 공항이 있긴 하다. 국내선만 취항을 하였으며, 압하지야의 해변때문에 오는 관광수요를 부담하기 위해 지어졌다. 현재 내전으로 인해 공항부근에 매설된 지뢰는 전부 제거하는 데 성공하였다고 한다. 2006년 압하지야 정부에서 이 공항을 국제공항으로 개항하려는 욕망을 드러내긴 하였으나, ICAO에서 시설을 승인받지 못하였고, 현재 여기에 비행기가 취항하려면 조지아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현재는 인구 200명 남짓의 산촌 프스후에 위치한 군사 공항으로의 이동과 러시아 공군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아직까지도 압하지야 정부는 이 공항을 국제공항으로 개항하려는 욕망을 접지 못하였다. 구다우타 시 변방에도 공군부대를 위한 군사공항이 하나 위치하고 있다.

11. 스포츠


축구가 제일 인기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것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미승인국이기 때문에, IOC나 FIFA같은 국제기구에 가입하지 못하고 있다.

11.1. 축구


UEFA와 FIFA 미회원국으로 ConIFA에 가입하였다. 압하지야 프리미어 리그라는 자체적인 아마추어리그도 가지고 있다. 잘하는 선수들은 러시아 하부리그에서 뛰는 듯하다. 미승인국이라는 특성상 정보가 매우 부족한데, 사이트에 따라서는 2부리그까지 있다는 곳도 있고, 10팀짜리 1부리그가 있다는 곳도 있으나, FC 나르트 수훔 웹사이트에 따르면 7팀이 서로 두번씩 맞붙는 12경기짜리 짧은 리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리그는 춘추제로 운영된다. 팀 목록은 다음과 같다. 컵대회도 있다고 하나, 전해지는 것이 없다. 순서는 2020시즌 순위.
  • FC 나르트 수훔 - 11회 우승으로 최다 우승팀, 2020시즌 우승팀. 컵 8강 탈락 이후, 새 감독을 선임하였다.
  • FC 리차 구다우타
  • FC 디나모 수훔 - 압하지야를 연고로 하는 구단 중에서는 최고의 명문팀이다. 소련 2부리그까지 진출한 적이 있다. 한 때, 러시아 3부리그에 편입하려는 논의도 진행되었다. 러시아어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외국인 선수도 보유하고 있다!
  • FC 가그라 - 2020 압하지야 컵 우승팀. 리차 구다우타를 상대로 2대1 승리를 거두었다.
  • FC 아폰 노비 아폰
  • FC 예르차후 오치라
  • FC 사무르칸 갈
2020시즌 리그 득점왕은 11골의 알란 크비치니야와 테무르 아그르바. 둘 다 나르트 수훔 소속이다.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FC 크라스노다르에서 뛰는 레온 사부아가 압하지야의 가그라 출신이다. 조지아 여권과 러시아 여권도 소유하고 있다. 가그라는 압하지야의 다른 지방에 비해 조지아인의 비율이 높으며, 상대적으로 친조지아 지역이라고 분류할 수 있다.

11.1.1. 국가대표


2016년 자국에서 열린 ConIFA 월드 풋볼컵에서 극적인 우승을 하는 등, 피파 비회원국 중에서는 나름대로 강호로 평가받았으나, 2018년 런던 대회에서는 조별리그 탈락, 2020년에는 아예 예선단계에서 떨어지는 등 점점 실력이 하락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ConIFA 유로 대회에서는 2017년 대회에서 4위, 2019년 대회에서는 3위를 기록하였다. 2016년 월드풋볼컵 유치를 위해 수도인 수후미에 인조잔디로 된 새로운 축구 경기장을 하나 만들었다.
2020년 2월 말 현재 ConIFA 랭킹에서 8위를 차지하고 있다.

12. 둘러보기





[1] Apsny Ahwyntkarra[2] Respublika Abhaziya[3] 러시아어 표기는 아슬란 게오르기예비치 브자니야(Асла́н Гео́ргиевич Бжа́ния)[4] 러시아어 표기는 알렉산드르 졸로틴스코비치 안크바프(Алекса́ндр Золоти́нскович Анква́б).[5] 러시아어 위키백과에도 인물들 문서마다 총리와 대통령의 이름이 다르다.[6] 1아프사르 당 10루블의 고정환율제를 시행중이나, 사실상 화폐수집가들을 위해 소량으로만 찍어내고 있고, 실제로는 러시아 루블이 쓰인다. 1,10,25,50,100 아프사르는 동전, 500 아프사르는 지폐로 발행한다.[7] 지리적 경계가 모호한 관계로 동유럽으로 분류되기도 한다.[8] 본명은 치나구 치추이파 라코바(Ҷнагә Ҷыҷу-иԥа Лакоба).[9] 압하지야는 이원집정부제를 운영하고 있다.[10] 러시아어 위키피디아에는 도네츠크 인민 공화국도 승인을 했다고 나와있다.[11] 토착 신앙을 바탕으로 현대에 종교의 형태로 부흥시킨 것이다.[12] 조지아 정부에서 자국의 허가 없는 외국인 방문에 대해 벌금 부과, 체포․구금 등 입장으로 설정하고 있어 2019년 상반기 등급 상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