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트인

 



1. 개요
2. 설명
3. 역사
3.1. 중세~근대
3.2. 현대
4. 종교
6. 인물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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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rgavs에 위치한 오세트인들의 유적지. 일종의 공동묘지로 가장 오래된 것은 12세기에 만들어 진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집처럼 생긴 무덤양식들이 즐비하여 이 곳에 붙은 별명이 '죽음의 도시'이다
영어: Ossetians, Ossetes
러시아어: Осетины
오세트어: Ирон адӕм, Ирӕттӕ, Дигорӕнттӕ
오세트인은 러시아, 조지아, 터키소수민족이다. 이란어군 계통의 오세트어를 사용하는 이란계 민족이지만 이들이 사용하는 오세트어는 페르시아어와는 의사소통이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페르시아인들과 달리 종교적으로도 대다수가 정교회 신도이다.

2. 설명


오세트인은 9세기경 북캅카스 지역에 알라니아 왕국을 세운 알란인의 후예이다. 중세에는 러시아인들에 의해 아스인(асы) 혹은 야스인(ясы)으로 불리다가 조지아어 '오세티(ოსეთი)'를 차용하면서 생긴 명칭이다. 오세트인 스스로는 이르(Ир)나 이론(Ирон)이라고 하는데 이 때문에 오세트어로는 오세티야를 이러스톤(Ирыстон)이라 한다.
오세트인의 주된 거주지는 캅카스 산맥의 북오세티야남오세티야인데, 북오세티야는 러시아 연방에 속하고, 남오세티야는 명목상 조지아 소속이나 사실상 미승인국으로 되어 있다. 총인구 75만 명 중 러시아에 56만 명이 거주하며[1] 본거지인 북오세티야 공화국에 48만 명이 산다. 남오세티야에 5만, 터키에 5만, 그 외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에도 분포한다.
오세트인은 보통 예술과 스포츠에 뛰어나지만, 상업에는 약하다는 스테레오타입이 있다. 오세트인, 유목민과 군인에서 화가 및 조각가로 거듭나다

3. 역사



3.1. 중세~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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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11세기 전성기의 알라니아 영토
카스피해와 흑해 사이에서 기원한 알란인 대다수는 고트족들을 따라 로마 제국 영토로 이동하여 오늘날의 스페인과 북아프리카에 정착했고, 이들은 현지인 및 같이 들어온 고트족과 동화되어 소멸한다. 로마 제국 영내로 이동하지 않고 남은 알란인들은 서기 9세기 하자르 칸국으로부터 독립해 알라니아(러시아어: Алания, 오세트어: Алани) 왕국을 세웠다.[2] 10세기 초반에 조지아인들의 영향으로 정교회로 개종한 뒤 캅카스에서 체첸·인구시인의 선조인 노흐치인들을 다스리며 나름 지역 강국으로 위세를 떨쳤다. 그러나 13세기 몽골 제국의 침략으로 주민이 1만 2천명 정도만 살아남고 거의 전멸했었다. 13세기 중반에는 헝가리 왕국에 쿤인(Kunok)으로 알려진 쿠만인들과 함께 일부 알란인들이 야스인(Jászok)이라는 이름으로 정착하기도 하였다. 오늘날에 이들은 헝가리인에 동화되었지만 이들의 민족명은 야스샤그(Jászság), 야스너지쿤솔노크주(Jász-Nagykun-Szolnok megye), 야스바샤르(Jászvásár, 현 루마니아 이아시·Iași)와 같은 식으로 수많은 지명에 여전히 남아있다.
한편 극소수만이 살아남게 된 알란인의 후손들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킵차크 칸국의 침략을 피해 조지아 북부의 깊은 협곡에 숨어살게 되었다. 고립된 알란인들의 후손 이른바 오세트인들은 외부와는 고립된 채 산지에 숨어살았기 때문에 오랜 기간동안 고대 알란인들의 문화와 언어, 전통, 종교를 오늘날에도 원형에 가깝게 보존할 수 있었다.
이러한 산악 민족 알란인의 후손인 오세트인은 크게 정교도인 이론인(Иронцы, Ирӕттӕ), 무슬림인 디고르인(Дигорцы, Дыгурӕттӕ)으로 나뉜다. 이론인과 디고르인은 북오세티야의 주요 민족이다. 오세트인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이론인은 13세기 조지아인의 선교로 정교회를 믿지만, 소수민족인 디고르인은 16–17세기 카바르다인의 선교로 수니파 이슬람을 믿는다. 이론인의 하위 부류에는 쿠다르인(Кударцы, Къуыдайрӕгтӕ), 드발인(Двалы, Туаллӕгтӕ), 치산인(Чсанцы, Чысайнӕгтӕ)이 존재한다.
쿠다르인, 드발인, 치산인은 남오세티야의 민족이다. 쿠다르인은 남오세티야 서부의 쿠다르 협곡에 거주하던 오세트인이다. 드발인은 중세 조지아의 중북부 지역인 드발레티(დვალეთი)에 거주하던 캅카스계 민족으로 본래 캅카스계 민족이지만 오세트인에 동화되었다. 치산인은 이러한 드발인의 하위 부류이며 남오세티야 동남부에 거주하는 부류이다. 쿠다르인, 드발인, 치산인의 후손은 오늘날 조지아와 분쟁중이기도 하다.
중동의 양대 열강인 오스만 제국페르시아의 각축장인 캅카스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주변의 다른 민족들은 전부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등 고립무원의 상황에 놓였던 오세트인들은 18세기 말 북쪽에서 러시아 제국이 남하해오자 러시아와 동맹을 맺고 러시아의 캅카스 정복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그 덕분에 오세트인들은 캅카스 전쟁 당시 완강한 저항으로 러시아 당국에게 찍힌 주변의 다른 민족들에 비하면 훨씬 후한 대우를 받았다.

3.2. 현대


2차대전 당시 독일 국방군이 캅카스 지역에 쳐들어오자 다른 캅카스 민족들은 독일군을 해방군으로서 환영하였지만, 오세트인들은 처음부터 독일군과 결사항전을 벌였다. 실제로 독일군과 루마니아군이 오세트인의 수도 블라디캅카스를 포위했으나 결국 철수했을 정도. 오세트인들의 결사항전을 높이 평가한 소련 당국에서는 독일군의 간첩이라는 혐의로 체첸·인구시인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키고 체첸인구시 ASSR의 영토를 떼어서 북오세티야 ASSR에 편입시켰다. 인구시인들은 이를 억울해하며 소련 해체 이후에는 오세트인들에게 소련이 떼어준 영토를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그 결과 1992–1994년까지 오세트계 북오세티야와 인구시계 인구셰티야 사이에 무력 사태까지 발생해 수백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인구시인들의 근연민족인 체첸인 가운데 반러 극단주의자들은 영토를 잃어버린 동족의 복수를 하겠다며, 북오세티야에서 베슬란 학교 인질사건을 벌여 어린 학생들을 상대로 테러와 인질극을 벌였다. 그 결과 무려 341명이 사망하고 700여명이 부상당하는 초유의 대사건이 터지기도 했다. 이 사건 이후 체첸인들에 대한 인식은 자유의 투사에서 테러집단으로 악화되었다.
남오세티야와 조지아 중앙정부 사이의 분쟁은 남오세티야 전쟁이 대표적이다,

4. 종교


원래는 자연 속에 존재하는 여러 신들과 정령들을 숭배하는 오세트 신화를 지녔으며 이는 전통적인 민간 신앙의 형태로 오세트인의 문화에 남아있다. 오늘날의 오세트인이 주로 믿는 종교는 정교회이며, 아스주의(Ассианство, Уацдин)라 불리는 신이교 운동도 존재한다. 북오세티야의 오세트인은 이슬람을 믿기도 하지만 오세트인 가운데 무슬림은 정교도나 신이교도보다도 소수이다.

5. 사르마트 아마존의 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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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트인은 여자를 존중한다. 오세트인의 예법에 따르면 말을 타고 가다가 여성을 만나면 말에서 내려 여성이 지나간 다음에야 말에 올라탈 수 있다. 만약 남자들이 앉아있는 곳에 여성이 지나간다면 남자들은 무조건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아무리 나이가 많은 노인이라도 예외일 수 없다. ... 보통 북동 캅카스 지역의 민족들은 여성을 열등하게 여겼다. 이 지역 여성들은 가정에서도, 지역사회에서도 발언권이 없었다. 캅카스 지역의 다른 민족들의 풍습과 비교해보면 오세트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얼마나 높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오세트 사회가 보여주는 여성 존중은 알란족, 그 이전에는 사르마트족의 풍습에서 유래했다.''' 사르마트 여성들은 남성들과 동등한 권리를 가졌으며, '''처녀들은 남자들과 함께 전투에 참여했다.'''[3]

'''바로 여기서 북캅카스 지역에 산다는 아마존 여전사들에 대한 그리스 신화가 유래했다.''' 오세트 여성은 남자와 자유롭게 사귀었다. 물론 처녀성은 매우 엄격하게 지켰다. 또 오세트 여자들은 캅카스의 다른 민족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는데, 아름다우면서도 부지런하고 정절을 지키기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민족의 모자이크 러시아. 253~254p 한국외대 러시아 연구소

오세트인의 전통 의상은 사르마트인이나 알란인과 마찬가지로 여성 의상과 남성 의상이 거의 차이가 없었다고 한다.

6. 인물


  • 스타니슬라프 체르체소프
  • 알란 자고예프
  • 이사 플리예프[4]
  • 알렉산드르 자소호프[5]
  • 가지무라드 가샬로프 (레슬링 선수)
[1] 러시아 인구의 0.38% 비중이며, 열다섯 번째로 많은 민족이다.[2] 북오세티야남오세티야는 알라니아 왕국을 계승한다는 명목에서 공식명칭에 각각 '알라니야(Алания, Алани)'와 '알라니야국(Государство Алания, Паддзахад Аллонстон)'을 추가하였다.[3] 최소한 적을 한 명 이상 죽이기 전까지는 결혼이 허락되지 않았다고 한다.[4] Issa Pliyev. 2차대전 당시 활약한 소련군 장군으로 독소전쟁에서 기병-기계화 집단을 이끌어 큰 활약을 했다. 이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쿠바 주둔 소련군 사령관으로 역사에 다시 등장한다. 오세트어 이름은 플리티 알릭산드리 피르트 이써(Плиты Алыксандры фырт Иссӕ).[5] 1934-. 정치인으로 주 시리아 대사(1986-1988), 1990년 소련 공산당 정치국원, 소련 붕괴 이후 2대 북오세티야-알라니야 공화국 대통령(1998-2005), 연방평의회(러시아 상원) 의원(2005-2010)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