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슬란 학교 인질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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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별 명칭'''
'''러시아어'''
Террористический акт в Беслане
'''오세트어'''
Беслæны теракт
'''영어'''
Beslan school siege
1. 개요
2. 배경
3. 전개
3.1. 사건 발생
3.2. 진압 작전
4. 사망자
4.1. 민간인
4.2. 러시아군
5. 영향
6. 등장 매체
7. 기타
8. 관련 문서


1. 개요


2004년 9월 1일부터 9월 3일까지, 샤밀 바사예프가 지휘하던 이츠케리아 체첸의 독립운동가 내 과격파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러시아 북오세티아 자치공화국의 베슬란 1번 공립학교에서 발생한 일련의 대참사.
인질의 규모나 사태 결과에서 '''역사상 최악의 인질극'''으로 꼽히는 사건이다. 다른 테러 사건에서는 어린이들은 풀어주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는데,[1] 이 사건은 테러리스트들이 처음부터 학교를 무력 점거해서 어린이들을 인질로 잡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이 사건의 테러리스트들은 체첸의 독립을 핑계로 어린이들을 죽이고 러시아에 화풀이하여 자기들 대리만족이나 이루고자 한 '''진짜 미치광이 악질 테러리스트'''들이었다. 애초에 죄 없는 어린이들을 죽인다고 체첸이 독립한다는 건 절대 불가능하다.
이 사건으로 인해 체첸의 독립 시도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았던 서방도 등을 돌렸다. 이 상황에서 아무리 러시아가 싫어도 어린이 살해범들을 편드는건 어떤 이유로도 절대로 말이 되지 않기때문이다.

2. 배경


인질극은 체첸 내 주요 간부였던 샤밀 바사예프의 단독 범행일 뿐, 당시 체첸 독립군 수장이었던 아슬란 마스하도프와는 관계가 없었다. 샤밀 바사예프와는 반대로 마스하도프는 악질적인 테러, 인질극 형식으로 독립을 쟁취하기보다는 전투나 협상으로 독립을 쟁취하려고 애쓴 온건파였다. 또 체첸 고유의 수피즘 계열 세력[2]이던 마스하도프와는 달리 샤밀 바사예프는 '''그 이슬람 학파 중에서도 (이슬람 극단주의의 토대가 된) 극단적인 미치광이로 악명 높은 와하브파에 물든 파벌'''이었다.[3]이 작자가 저지른 또 하나의 병크는, '''와하비즘에 정신 팔려 애먼 옆동네 다게스탄 공화국을 건드려서 2차 체첸 사태를 유발했다는 것.''' 이미 1차 체첸 사태에서 얻을 건 웬만해서 다 챙겼음에도 정말로 쓸데없는 저 짓거리 한방에 체첸을 거의 말아먹었다. 당연히 2차 체첸 사태 당시 바샤예프에 대한 체첸인들의 반응은 최악이었으며 바샤에프의 부하들도 시민들에게 엄청난 폭력과 악행을 수시로 저질러서 체첸인들도 엄청나게 분노했다.
문제는 체첸 반군의 수장이긴 해도 마스하도프의 힘은 매우 약했다는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베슬란 인질극 소식을 접하자 러시아와 협상해서 신변의 안전을 보장받고 직접 테러리스트들을 설득하려고 했으나, 학교 건물이 폭파되는 바람에 설득이 무위로 돌아갔다고 한다. 아슬란 마스하도프는 2005년에 사살되었고, 샤밀 바사예프는 2006년 러시아의 공작으로 운송 중이던 폭발물이 터져 폭사했다.

3. 전개



3.1. 사건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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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에 가담한 테러리스트들.

인질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폭약을 설치하는 테러리스트.
사건 발생일인 9월 1일은 개학일로, 수많은 학생들과 학부모들, 교사들이 학교에 모여 있었다.[4] 당일 오전 9시 15분 무렵에 32여 명의 테러리스트들이 갑자기 난입하여 학교를 점거하자 1천여 명이란 엄청난 규모의 민간인이 인질로 잡히게 된다.
이들 테러리스트들은 사전에 학교 치안을 담당하던 경찰관들을 3일 전에 살해하는 것을 시작으로 대항할 가능성이 있는 성인 남성들을 따로 분류해서 감시하였고, 이때 아동 인질에 대해 반대를 주장하며 애들만은 모두 풀어주고 어른들만 인질로 잡자고 하던 일부 양심있는 여성 테러리스트들이 동료들과 격하게 다투다가 그들 중 1명이 가지고 있던 폭약을 다른 미치광이 동료들이 기폭시키자 그 폭발로 해당 여성 테러리스트들 대부분이 사망하거나 부상당했고, 그나마 중상을 입은 몇 명의 생존자들도 배신죄라며 살해당했다. '''한 마디로 어린이들도 부족해서 어린이 인질을 반대하는 동료들까지 막 죽이려는 악질적인 미치광이들이었다.''' 화풀이로 성인 인질 몇을 데려다가 폭탄으로 폭사시킨 미친놈들이었다. 인질들을 모아둔 체육관에는 대량의 폭약을 설치하였다. 기폭 장치는 범인들 중 한 명이 그 위에 서있다가 모종의 이유로 내려서게 되면 폭발하는 장치였다. 사실상 죽음을 각오한 데드맨 스위치인데, 이 범인들의 상당수가 체첸 사태 와중에 남편을 잃은 과부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 테러리스트의 비율이 높은 것도 특징이었다.
테러리스트들은 AK소총 이외에도 PKM 기관총과 유탄발사기, RPG-7 같은 대전차 무기까지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러시아군 저격수의 조준사격을 막으려고 인질과 아주 가까이 붙어있었다. 또한 이전에 모스크바 인질극에서 사용된 수면가스를 염두하여 건물 내의 창문을 가능한 한 전부 깨부수고, 위치 추적도 못하게 인질들의 휴대폰을 전부 빼앗아 파기해 치밀하게 사전 계획을 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처음에 테러범들을 제압하려고 몰려온 지역 경찰들은 오히려 총격전에서 압도당해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이들은 인질들을 최대한 보호하려 했던 모스크바 극장 인질극 사건과 달리 이번 테러범들이 초반부터 '''최악의 미친놈들이라''' 극도의 잔인성을 보여 남성 인질을 몇 명 골라내어 본보기를 보여주겠다는 이유만으로 죽여 창문 밖에 집어던지는가 하면, 인질들에게 오세트어를 쓰면 죽이겠다고 위협하며 러시아어만을 쓰게 했다. 그리고 이를 오세트어로 통역해준 사람을 오세트어를 썼다고 그 자리에서 총살하는 행각을 저질렀다. 아예 통역도 하지 말라고 억지를 부린거다. 거기다 통역을 안하면 반항했다고 사살하고도 남았을게 분명하다. 악질적인 정신병자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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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발생한 북오세티야 공화국은 총기 소지가 자유롭다. 때문에 1천 명이 넘는 인질들의 가족, 친척들이 민병대 출신이나 현역 민병대라서 직접 총칼을 들고 학교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여기에 소식을 듣고 분노하여 달려온 무장한 시민들도 참여하여 규모가 대략 5,000여 명 정도였다고 한다. 흥분한 가족들이 당장 어린이들을 석방하라고 큰소리로 욕하면서 사유 총기로 공격을 시작하자 미치광이 테러리스트들은 더 이상 사격하겠다면 어린이 인질들을 죽이겠다고 적반하장식으로 위협하였고, 이에 주민들은 일단 물러나서 학교를 포위했다.
학교 내부는 좁은 공간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어 그 체온 등으로 창문을 모두 깼음에도 상당히 더웠다. 테러리스트들은 외부에 수시로 물 등을 요구했으나 인질들에겐 거의 주지 않았다. 때문에 더위를 참지 못한 상당수의 인질들이 남녀 가리지 않고 옷을 벗어 버려, 기록 사진 등에 속옷만 입고 있는 인질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했다.

3.2. 진압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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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에서 아이를 넘겨받는 콧수염 기른 남자는 前 인구셰티야 공화국의 대통령인 루슬란 아우셰프(Ruslan Aushev)이다. 그는 1차 체첸 사태 당시 인구셰티야 공화국 대통령으로서 조국의 어려운 경제적 상황과 이웃한 체첸에서의 전쟁에도 불구하고 공화국을 안정화시키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이 인질극에서는 26명의 인질을 석방시키는 데에 기여했다. 러시아 중앙정부와는 상당히 불편한 관계였다고.
지역 경찰의 진압이 실패하여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된 러시아 정부는 군대와 경찰, 특수부대를 동원해서 테러범들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학교를 포위했다. 그 다음엔 협상팀을 보내 아이들을 풀어주는 대신 인근에서 자원한 성인 남성들로 인질을 교환하는 척하며 속여서 진압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9월 3일 러시아 비상대책부소속 의료팀 4명이 두 대의 구급차를 이용해 학교 건물 바깥의 시신 20구를 인계하고 사망한 테러범의 시신을 학교 안으로 전달하는 내용이 합의되었고 구급차가 도착했다. 테러범들도 여성과 어린이 31명을 우선적으로 풀어줬다.
그러나 당일 오후에 갑작스럽게 학교 건물에서 알 수 없는 폭발이 발생하였으며, 이에 놀란 테러리스트들은 건물 밖으로 무차별적 총격을 가했으며, 구급차에 타고 있던 구조대원 2명이 차량을 관통한 총탄에 맞아 사망했다. 13시 5분엔 두번째 폭발음과 함께 지붕에서 불길이 치솟고 불타는 건물 잔해가 체육관에 모여 있던 인질들의 머리 위로 쏟아졌는데, 잔해로 인한 사망자는 없었지만 지붕 전체가 붕괴되면서 체육관은 불지옥으로 변했다. 이 불길은 16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가 총 사망자 가운데 절반 가까이의 인명이 사망했다. 러시아군러시아 경찰, 내무군은 폭발과 의료인과 인질을 포함한 162명의 사망으로 협상이 실패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즉각 전투에 들어가게 된다. 이 전투에 인질들의 가족이었던 민병대들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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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이 일어난 이유에 관해서는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는데, 러시아 정부는 테러리스트들이 폭탄을 잘못 다뤄 폭발이 일어났고, 당시 해당 지역의 민간인들이 총기 사격을 시작하여 우발적으로 사태가 확산되었다고 말했다. 옆에 있는 나라 때문에 거주민들 중 일부가 민병대라서 총기를 보유했다. 일부 다른 주장에서는 러시아군이 먼저 RPG 로켓을 발사하였단 주장도 존재한다.[5] 그러나 갑작스런 폭발로 인해 러시아군과 경찰이 크게 당황하면서 로켓을 발사하였다는 반론도 있다.
폭발 이후 일부 인질들이 그 틈을 타 탈출하기 시작하였고, 미치광이 체첸 테러리스트들은 죄없는 이들 인질들에게 마구잡이로 악의적인 총격과 수류탄 투척을 가했다. 러시아군과 경찰, 내무군은 인질들을 보호하려고 즉각 대응 사격을 시작하였다. 결국 테러리스트들과 러시아군, 경찰, 내무군의 교전이 시작되었고, 대기하던 BTR 장갑차가 14.5mm 기관총을 갈겨대며, 심지어 T-72 전차도 6발 정도의 고폭탄 사격을 가했다. 이 125밀리 활강포의 고폭탄 사격에 맞은 테러리스트는 말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서 죽었다.
최소 한 대의 Mi-24 공격 헬리콥터를 포함한 무장 헬리콥터들도 가담하여 사격을 했다. 그 다음 러시아군 특수부대[6]가 건물 내로 진입하여 40분 동안 처절한 총격전을 벌이며 테러리스트들을 제압해갔고, 테러리스트들도 이에 맞서면서 참혹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때 화염으로 인한 연기와 콘크리트 분진 등으로 인해 시야가 극도로 제한적이었으며 테러리스트들도 러시아군과 비슷한 군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러시아군들은 오인사격을 방지하기 위해 오른팔에 피아식별용으로 흰색 천을 묶었다.[7] 혼란스러운 상황 때문에 수많은 인질이 희생되었다. 특히 테러범들은 비겁하게 인질을 방패로 사용하면서 저항하였는데, 이는 인질들이 많이 사망한 원인이 되었다. 건물 안팎으로 사격이 끊이지 않으면서 인질들을 억류해 놓았던 체육관 지붕 시설에 화재가 발생하였는데, 격심한 총격전과 화력 투사로 소방차가 건물로 접근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다 결국 지붕이 화재로 무너지며 총 사망자의 절반 수준인 170명의 인질이 불타는 건물 내부에서 그대로 압사당하거나 질식으로 숨졌다. 인질극이 시작된 지 52시간만이었다.
결국 334여 명의 인질이 사망하였는데, 그 중 180여 명은 어린아이였다. 게다가 부상자도 783여 명으로, 사실상 모든 인질이 죽거나 다쳤으며 부상자 상당수가 팔이나 다리를 잃는 등 중상자들이었다. 특히 부상당한 인질들이 입원한 베슬란 병원과 블라디카프카즈 병원의 침대 및 의약품, 의료 기기가 부족하니 그곳에서도 많은 수가 사망하는 참극까지 벌어져 사망자 수를 더 늘렸다. 진압 도중에 민병대와 경찰, 군인, 의료인을 포함한 10명과 특수부대원 10명도 사망했다. 작전 지역 주변 통제가 제대로 안 되었던 데다가 제대로 훈련 안된 정규군, 무장 경찰, 민병대들이 대거 투입되어 혼선이 발생했다. 게다가 인질 구조 훈련을 받은 특수부대인 스페츠나츠도 아직 작전 계획도 제대로 못 세워놓은 상태로 투입된 상황이었다.
테러리스트들은 생포된 1명의 테러리스트를 제외하곤 모두 사살되었다. 이 과정에서 테러범들과의 교전이 어찌나 치열했던지 테러범들의 시신이 온전하게 남은 게 없었다. 그래서 죽은 테러리스트의 시체를 테러리스트들의 잔인한 악행에 분노한 특수부대원들이 훼손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들리는 미확인 소식으로는 살해된 어린이들의 가족인 민병대들도 화풀이로 분노하여 테러리스트들의 시체를 훼손했다고 한다. 진압 직후에는 3명의 테러리스트가 생포되었다는 뉴스가 나왔으나, 진압 1년 후에는 누르파시 쿨라예프라는 테러리스트만이 생포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는 뉴스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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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서 농구 골대에 달려있던 대형 폭탄은 다행히 터지지 않았는데, 포로로 잡혀 있던 군인 출신 학부모 한 명이 자신의 뒤로 지나가는 선이 기폭선을 알아채고 3일에 걸쳐 서서히 끊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게 터졌으면 인질들은 탈출할 기회조차 잡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사진에서 보듯 테러범들이 워낙 정교하게 폭탄과 함정을 설치해놓은 터라 도저히 정상적인 진압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일단 분노한 무장한 베슬란 시민과 지역 민병대 5000여 명이 테러범들을 죽이겠다며 손에 총과 칼, 공구들을 들고 몰려와 흥분한 채로 포위하고 있었기에 이를 저지한다고 현장이 혼란스러운 상황이었고, 정부군 측이 탱크와 장갑차량을 동원한 것도 무차별 사살이 아니라 벽을 뚫고 진입로를 확보하여 안전하게 인질을 호송하기 위해서였지만, 그 용도로 제대로 쓰이지 못했다. 러시아 내무군들이 Mi-24BTR 시리즈를 사용하는 걸 보고 범인과 인질을 모조리 갈아버리는 나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은데, 총기 소유가 자유로운 나라들에서 경찰들이 이런 중장비를 운용하는 건 흔한 일이다. 애초에 저런 악질 테러범들이 날뛰는데서는 저정도 군사장비는 반드시 필요하다. 실제로 미국 경찰 역시 장갑차를 사용하는데, 물론 기관총 등 살상 장비들은 제거된 상태로 운용된다. 일명 ERV로 불린다.
또한 러시아군 역시 인질들이 총에 맞지 않도록 '''맨몸으로 화망에 뛰어들어''' 표적이 되는 등 눈물 겨운 희생을 한 것이 알려지면서 대의명분이 완전히 러시아 쪽으로 돌아서 버렸다. 이들은 인질들에게 날아오는 총알들을 몸으로 막거나 어린이 를 포함한 인질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수류탄을 덮어 희생하고, 인질을 감싸고 엎드려서 인간방패 역할을 하는 등 살신성인의 정신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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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주변에 모여든 베슬란 시민들과 민병대 역시 사태가 너무 악화되고 곳곳에서 사망자와 부상자가 나오자, 위험을 감수하면서 들것을 들고 다니며 군인과 경찰을 도와 인질들이나 부상자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는 등의 훌륭한 시민의식을 보여주었다. 또한 목숨을 걸고 테러리스트와 총격전에도 참여했고 나름대로 도망치는 인질들을 엄호했다.

4. 사망자



4.1. 민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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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진 12살 아들을 내려다보는 어머니가 오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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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자를 위로하는 푸틴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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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들의 사진.
1,200명의 인질 가운데 334명이 사망했고 그 중 156명이 어린이였다. 당시 학생이지만 이미 2차 성징이 일어난 여학생들의 나체와 널브러진 시체를 여과 없이 그대로 방송한 대한민국 방송가에 대한 비판이 많기도 했다. 당시 방송가는 의외로 폭력성이나 선정성 등에 이상한 방향으로 무감한 면이 없지 않았고, 지금 같았으면 모자이크를 넘어 검열될 영상들을 9시 그대로 내보내기도 했는데, 이후 지속된 비판과 이런 쪽으로 민감해진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사라지게 된다.

4.2. 러시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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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 빔펠, 우리 아이들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베슬란 학교에 사건 당시 순직한 특수부대원들을 추모하기 위해 그려져 있는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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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에선 모두가 (무사히) 돌아오길 바랐지만..."
순직한 스페츠나츠 대원들
사진 윗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안드레이 벨코, 올레크 일린, 로만 카타소노프, 뱌체슬라프 말리로프, 드미트리 라즈몹스키, 올레크 로스코프, 알렉산드르 페로프, 미하일 쿠즈네초프, 데니스 푸돕킨, 안드레이 투르킨
투입된 특수부대원들은 인질을 최대한 많이 구출하려고 애썼고, 총기를 난사하는 테러범의 공격으로부터 아이들을 몸으로 감싸다가 부상 또는 순직했다. 전사자의 수는 공식에서도 왔다갔다 하지만, 10여명에서 최대 20명 가량까지 나오기도 한다. 심지어 정예 특수부대인 알파와 빔펠의 지휘관 3명이 죄다 작전 중에 인질을 구하려다 순직했다. 베슬란 특수부대 위령비에 10명의 전사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들은 '''수류탄을 몸으로 덮거나 인질에게 날아오는 총알을 몸으로 막는 등 살신성인 정신을 보여준 군인이자 영웅'''이다. 그리고 위령비에 올라온 전사자의 계급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말단도 아니고 준위, 영관급의 고위 간부들이 죽어나갔으며 이들 중에는 부대 최고 지휘관도 있다. 특수부대 특성상 평균 계급이 높다곤 해도 지휘관급 전사자도 많기 때문에 위아래 할것 없던 것이다.
  • 안드레이 벨코 소령 Андрей Велько (빔펠) – 중무장한 테러범을 발견하고 교전 후 사살함. 치명상을 입었지만 인질들을 엄호하다 결국 사망.
  • 올레크 일린 대령 Олег Ильин (빔펠) - 총지휘관. 테러범을 교전으로 따돌리면서 탈출하는 아이들과 응급구조원을 엄호. 한쪽 눈과 귀를 잃은 치명상을 입었지만 아이들을 끝까지 엄호하다 과다출혈로 사망.
  • 로만 카타소노프 소령 Роман Катасанов (빔펠) - 휴가를 받았음에도 자진하여 베슬란으로 투입되었다. 방에 갇혀있는 아이 두 명을 구출함. 그들이 안전하게 탈출할 수 있게 중기관총으로 무장한 테러범에게 돌격하다 사망.
  • 뱌체슬라프 말리로프 소령 Вячеслав Малиров (알파) – 모스크바 극장 인질극에 투입된 적 있으며, 사건 당시 방탄장구도 갖추지 않고 빌딩으로 진입하였다. 진입하자 인질들을 겨냥하고 있는 테러범들을 발견하는 그 즉시 몸으로 인질들을 가리며 교전함. 치명상을 입고 끝까지 임무를 수행하다 사망.
  • 드미트리 라즈몹스키 중령 Дмитрий Разумовский (빔펠) – 지휘관. 중기관총으로 무장한 테러범들을 목격하고 인질들이 무사히 탈출할 수 있게 엄폐물 밖으로 나와 교전하면서 테러범들을 따돌리고 인질들을 탈출시킴. 이 과정에서 치명상을 입고 사망함.
  • 올레크 로스코프 준위 Олег Роськов (알파) – 아이들을 인간방패로 삼고 도주하려는 테러범 4명을 상대로 교전. 근접전에서 4명을 모두 사살했으나 아이들을 지키다 치명상을 입음. 아이들을 대피시키고 끝까지 임무를 수행하다가 결국 사망. 참고로 이때 그의 나이가 23세였고, 베슬란 학교 인질 사건은 그의 첫 실전이었다.
  • 알렉산드르 페로프 소령 Александр Перов (알파) – 알파 그룹 팀 지휘관. 근처에 테러범이 던진 수류탄을 발견하고는 곁에 있던 3명의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몸으로 감싸며 수류탄 파편을 막고 순직.
  • 미하일 쿠즈네초프 소령 Михаил Кузнецов (빔펠) - 20명 이상의 인질들을 구출. 인질들과 자기 팀을 엄호하다가 중무장한 테러범들과 교전. 사살했지만 치명상을 입고 사망함.
  • 데니스 푸돕킨 준위 Денис Пудовкин (빔펠) – 다친 인질에게 응급 치료를 해주다 갑자기 나타난 테러범이 총탄을 난사하자 인질을 감싸며 몸으로 총탄을 막음. 치명상을 입었지만 테러범을 사살하고 결국 사망.
  • 안드레이 투르킨 중위 Андрей Туркин (빔펠) – 테러범 기관총 사수를 사살하고 약 250명의 인질들이 있는 건물을 진입함. 인질들 가운데 수류탄이 떨어지자 수류탄을 몸으로 덮어 인질들을 살리고 사망. 소위였으나 사후 추서되었다.

5. 영향


이 사건으로 러시아 전체가 충격을 받았고, 테러범들의 동족인 체첸인들조차 경악하고 진심으로 분노했다. 그리고 체첸 독립군에게 엄청난 악영향만 미쳤고 체첸 독립군들 다수도 저놈들은 인간도 아니라고 엄청나게 비판했다. 이전에도 체첸은 인질극을 몇 번 벌였지만,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여성어린이들은 무조건 전원 석방했고, 테러 역시 가급적 러시아군이나 친러시아 체첸 인사들 상대로만 저질렀다. 하지만 이 사건은 그 전까지 무조건 석방시키던 부녀자와 아이들을 인질로 붙잡았다는 점에서 이미지가 일단 깎이고 들어갔다. 더군다나 이전의 인질극에서 체첸인들은 되도록이면 인질을 죽게 하지 않으려고 애썼으나[9] 이번에는 자기들 마음에 안들면 인질을 마구 쏴죽이거나 폭사시켜 사실상 학살에 가까웠다. '''심지어 어린이들을 인질로 삼는 걸 강력히 반대한 자기편 동료들까지 반항했다고 폭탄으로 죽여버린, 테러리스트임을 감안하더라도 완전히 미친 재활용 불가능 인간쓰레기들이다'''.
하지만 이렇게 인질 구조가 어려운 상황에서라면 협상을 잘 하든가, 작전 수립하기까지 최대한 시간이라도 끌어야 했는데, 정작 러시아 정부측에서 협상에 시큰둥했다는 게 밝혀졌다. 러시아 정부가 일부러 인질들을 죽이려고 했다는 음모론이 힘을 얻었던 것도 이 때문. 하지만 당시 인질극에 대한 대처 매뉴얼이 제대로 없어서 우왕좌왕했다. 그리고 모스크바 사태 때와는 다르게 체첸 반군은 애들까지 인질로 잡는게 너무하다고 주장한 동료를 몰살시키는 등 이미 자제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폭주하는 상황이었다. 즉, 이미 협상이라는 것 자체가 통하지 않을 확률이 높은 상황이었던 것. 게다가 당시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의 방침이 《테러와는 협상 없다》였음을 고려하면 협상에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게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숱한 테러에도 불구하고 서구에서 소수 민족의 독립 운동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했고, 이슬람권에서도 나름대로 적극적인 지원이 이뤄졌던 체첸 분쟁은, 이 사건으로 차츰 러시아 vs 테러리스트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해졌다. 그래도 이미지 관리 차원인지 샤밀 바사예프는 2005년의 인터뷰에서 베슬란의 비극에 책임감을 느낀다고 밝히기는 했다지만, 본인이 죄 없는 어린이들을 죽여버리라고 지시하고 그걸 반대하는 자기 편 동료들까지 폭탄으로 죽여버린 상황인데 이런 변명 따위가 통할 리 없다. 1992년 나고르노 카라바흐 전쟁 때 무자헤딘으로써 휘하 체첸인 부대를 이끌고 참전했을 때도, "그의 부대가 수백 명의 민간인을 학살하고, 강간하는 것은 물론, 그걸 녹화하는 걸 즐겼다"는 증언이 나오기도 하는 등 이 인간 말종은 베슬란 이전에도 싹수가 노랬다.
그나마 대 러시아 저항의 상징이라는 명분이라도 있었던 이츠케리아 체첸이 저런 만행을 저지른 것에 경악한 체첸 사람들 역시 이츠케리아 체첸에 대한 대한 기대를 접고 친러파인 카디로프 일가 체제에 적극 순응한다. 2005년엔 그나마 남아 있던 온건파인 아슬란 마스하도프가 러시아군 손에 전사해서 더 이상 붙어있을 독립 파벌도 안 남았고. 물론 개별적인 테러나 저항은 여전하지만, 이전처럼 적극적인 협력은 더 이상 받지 못한다. 체첸 수피즘 계열 반군 출신 체첸 대통령이던 아흐마트 카디로프(1951~2004)는 노골적인 친러 정책을 취하다가 폭탄 테러로 암살당했다. 현재 체첸 대통령인 람잔 카디로프(1976~ )는 그의 아들이다. 그가 다른 체첸인 지도자들과 달리 독재자이긴 해도 나름 성과가 있었던 것도 크긴 하다. 그는 체첸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가문 간의 다툼을 종식시켰고, 납치 결혼과 같은 악습도 금지했다. 사실 카디로프 이전의 체첸은 전근대적 씨족 사회+이슬람 원리주의가 자리잡고 있던 땅이었다. 그러나 노골적인 천러 정책으로 체첸 민족주의를 억압하고 러시아어를 강요하면서, 독립 지지까진 아니라도 체첸 민족주의자들 반발을 극렬하게 받아, 되려 '''푸틴'''에게 "너 너무 행동이 지나치다. 정말로 죽고 싶지 않으면 체첸인들에게 어느 정도 양보하라"는 충고를 듣고 체첸어 중시 및 민족주의를 다독이는 민심 작전을 펼치고 있다. 러시아 프리미어리그 팀인 FC 테레크 체첸스카야 레스퓨블리카(데렉 그로즈니로도 알려진)의 구단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첸 분쟁을 소수 민족의 독립운동으로 보는 시각이 아주 사그라든 건 아니고. 그래서인지 몰라도 인질극 발생 1년 후 폴란드에서 이츠케리아 체첸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조하르 두다예프의 이름을 딴 광장을 만들려고 하기도 했다. 폴란드가 러시아와 사이가 안 좋다는 점을 고려해야겠지만. 그리고 무엇보다도 두다예프는 저 미치광이 테러리스트들보다는 훨씬 개념인이다.
러시아 정부도 안 그래도 체첸에 대한 강경한 방침을 선회하기는 커녕 더 악랄하고 더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단적인 예로, 협상 같은걸 생각하지 않냐는 말을 들은 푸틴 대통령이 "'''어린애들을 죽이는 미친자들과는 절대 대화하지 않는다.'''"라고 언론에 대놓고 말하기도 했다. 러시아가 실질적 독재 정권이고 인권 무시 논란이 많긴 하지만, 이 사건으로 체첸 반군이 애들을 악랄하게 죽이려 드는 미친놈들이라는 인식이 틀어박힌데다 완전히 인과응보에 자업자득인 만큼 저런 말을 당당하게 말해도 뭐라 할수도 없다.[10]
또한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사건 이후 경악한 러시아는 말 그대로 체첸을 상대로 군대를 동원해 대대적인 보복전을 실행했는데, 이 과정에서 분노한 러시아 군에게 수많은 체첸인들이 또다시 떼죽음을 당했고, 그들 중 상당수는 무고한 민간인들이었다. 보복성 전쟁범죄도 많아서 나중에는 러시아군에서 체첸 민간인을 상대로 한 보복성 전쟁범죄를 단속해야 할 정도로 심각했다고 한다.
한편 유일한 생존자인 누르파시 쿨라예프는 북오세티야 법정에 넘겨져 법정 최고형인 무기징역이 확정되었고, 시베리아에 있는 중경비 시설인 흰올빼미 교도소에서 알렉산더 피추시킨 등 다수의 흉악범들과 함께 수감 생활을 하는 중이다.

6. 등장 매체


Steven Cravis라는 작곡가는 이 사건에 휘말린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곡인 'Children of Beslan'이라는 곡을 지었는데, 이는 Orisinal의 게임 'High Delivery(천국으로 보내는 선물)'의 배경음으로도 쓴다. 실제로도 게임 분위기와 잘 맞물린다.
레인보우 식스 시즈에서는 스페츠나츠들 중에서 이 사건과 관련된 오퍼레이터들이 있다. 글라즈의 경우는 미술학도였지만 베슬란 학교 인질 사건을 계기로 사관생도가 된 케이스고, 캅칸은 해당 사건에 돌입해서 무사히 생존한 몇 안 되는 장교 중 한 명이다. 캅칸이 1979년 출생인데 이러면 이 사건 때 나이가 '''24살'''이다! 물론 장교 중에서는 저 나이보다 더 어린 나이에 붙은 장교도 있긴 하다. 러시아가 아니라는 게 함정.
이 사건에서 인질범들이 사용한 기계식 데드맨 스위치는 이후 여러 영화나 드라마에서 인질극을 연출할 때 인용되었다. 물론 이전에도 이런 유사한 장치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워낙 파급이 컸던 사건이었고, 이후 사건에 대한 분석도 상당히 많이 이루어졌다 보니 많은 각본가들이 이를 참조하였다.
소녀전선안젤리아는 이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온 사건[11]으로 인해 소중한 사람들[12]을 대거 잃고, 이전부터 면식이 있던 내무부 장관의 도움으로 FSB 요원이 되었다. 여기서는 '''초등학생'''이던 안젤리아가 몰래 데드맨 스위치를 해제해 인질들이 완전히 몰살당하지는 않았지만....

7. 기타


사건 당시 한 군인이 가장 어렸던 생후 6개월의 여아를 구출했는데, 2014년 구출한 군인과 아이가 다시 만난 사진이 공개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8. 관련 문서



[1] 다에시는 제외로 친다.[2] 이쪽 계열 반군 지도자 출신자들은 결국 와하브파 계열에 실망해서 아예 러시아에 붙는 사람도 생긴다. 아래 각주에 설명할 아흐마트 카디로프도 그 중 한 명.[3] 이 와하브파 계열 체첸 반군들은 '''체첸 민족보다도 그놈의 지하드를 더 중시하는 작자들'''인데,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쓸데없이 가서 꼽사리를 낀 체첸 무자헤딘들이나,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소속 체첸인들 역시 이쪽 계열이다.[4] 베슬란 학교는 초, 중, 고 통합 학교다.[5] 실제로 사태 진압 후 학교 건물을 바로 내려다볼 수 있는 인근 건물 옥상에서 빈 발사기 3~4정이 발견되었다.[6] FSB 소속 알파 그룹과 빔펠 그룹이 주력이었다.[7] 문서 상단의 사진을 보면 왼쪽 두번째 군인의 오른팔 팔꿈치에 천이 묶여 있는 것을 볼수 있다.[8] 파란색이 인질, 빨간색은 테러리스트, 진한 빨간색은 폭탄과 폭탄이 이어진 연결선이다.[9] 모스크바 인질극 당시 생존자 중 한 명은 인터뷰에서 진압 작전 당시 구출하러 온 러시아 특수부대보다 체첸 인질범들이 인질의 목숨을 지키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사실 러시아군도 이전까지 이런 대규모 인질 구출 작전을 수행해본 적이 없을 뿐더러, 대규모 사상자가 난 이유도 수면가스 특유의 유독성에 대한 무지와 밀폐된 환경에서 살포하여 질식사한 관객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이후 스페츠나츠와 같은 체계적인 인질 구출, 대테러 부대가 생기면서 이야기가 달라지긴 하지만.[10] 다만 서술했듯이 이 사건은 체첸인들도 분노했다.[11] 전개는 동일하지만 연도가 다르다[12] 3차 세계대전으로 고아가 된 그녀를 거두어준 양어머니, 의붓오빠와 동생은 인질로 잡혔다가 테러리스트들에게 살해당했고 새 가족에게 거두어지기 전에 핵폭발에 휘말려 부모를 잃고 울고 있던 그녀를 보호해준 러시아군 지휘관과 한동안 군부대 내에서 지냈던 그녀를 학교까지 태워다주고는 했던 장갑차 조종수는 진압 작전 중 테러리스트들의 발악으로 인해 전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