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부티
1. 개요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 예멘, 소말리아 등 사이에 있는, 홍해에 인접한 아프리카의 조그만 나라. 평면상의 지형은 쿠웨이트와 비슷하다. 수도는 국명과 같은 지부티로 이곳에 인구의 60% 가량이 거주한다. 국토면적은 약 23,000㎢, 인구는 2017년 인구조사 기준 약 91만명으로 경기도 성남시보다 약간 적다.
구글 지도엔 이상하게 '''주부티'''라고 나왔으나 수정되었는데, 수도는 여전히 주부티라고 표시되어 있다.
2. 자연
홍해의 출입구인 좁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예멘과 마주보고 있다. 수도 지부티의 경우 겨울 평균기온 26℃, 여름 평균기온 36℃로 매우 높은 기온에 건조한 기후를 가지고 있으나 일부 산지대는 선선한 지역도 있다. 이런 높은 기온 때문에 홍해의 표면 수온도 30℃에 달한다. 비공식 기록이긴 하지만 최고기온이 71.5도까지 올라간 적이 있다.
국토의 대부분이 동아프리카 지구대에 포함되어 있으며, 이 때문에 영토 중 일부는 해발고도가 해수면보다 낮은 상태다.[9] 이 때문에 지질학적으로 몇만 년이 지나면 흑해처럼 바닷물이 들어와 내륙 깊숙한 만을 형성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지부티에 위치한 지상 열곡대가 1988년 NHK-디스커버리 합작 다큐멘터리인 '지구대기행'에 등장한 적이 있고 많은 지질학자들이 자주 오는 곳 중 하나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KBS를 통해 1989년 방영되었다.
3. 상징
3.1. 국가
지부티의 국가는 소말리어로 "Jabuuti(자부티)"라고 하며, 아덴 에미가 작사하고 압디 로벨이 작곡하였다.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해인 1977년에 국가로 채택되어 지금까지 불리우고 있다.
여담으로 유튜브 등지에 돌아다니는 버전은 99% 음질 상태가 심히 불량하다. 약박에다 대고 녹음한 것이 아니냐는 농담도 있을 정도. 게다가 위의 영상은 어떠한 음질 조작도 가하지 않은 순수한 원본이다. 들어보면 굉장히 시끄럽고 귀가 멍멍하다. 그래도 멜로디 자체는 괜찮다는 평도 있다. 저 버전은 지부티 축제때 녹음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캐나다 지부티인 축제때 버전도 있지만 둘이 비슷하다.
4. 역사
원래 옛부터 아파르족과 소말리인이 살았으며 아라비아의 영향도 컸다. 일찍이 이슬람 문화의 영향을 받았으며 15세기에는 소말리아 서북부를 중심으로 한 아달 술탄국의 일부가 되었고 16세기 후반부터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주라(타고리)와 오보크의 술탄도 있었다.
놀랍게도 지부티의 사갈로(Sagallo)라는 항구도시가 1889년 1월부터 2월까지 1개월동안 러시아 제국의 '신 모스크바(Новая Москва)'라는 이름의 식민지로 개척됐다. 이후 19세기 후반에는 프랑스가 이 지역을 차지해 프랑스 소말리 해안령(Côte française des Somalis)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식민지로 삼았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나치 독일의 괴뢰 정부인 비시 프랑스 치하에 들어갔다. 비시 프랑스 치하의 지부티는 이탈리아군과 함께 동아프리카 전역에서 영국에 대항하여 전투를 벌이지만 이탈리아는 1941년 모든 동아프리카 식민지를 영국군에 점령당하고 철수하였으며, 1942년 비시 프랑스령 소말릴란드는 영국에 점령당한다. 1944년에는 영국이 지부티를 자유 프랑스에 반환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알제리 전쟁, 인도차이나 전쟁 등으로 홍역을 치르고도 프랑스가 독립시키지 않으려고 애를 썼던 지역으로, 결국 1977년 독립하게 되었지만 프랑스는 이 지역에 계속 군대를 주둔시키며 홍해를 출입하는 국제 해운에 대해 통제력을 지속적으로 발휘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런 탓에 이 나라의 정치, 군부의 권력층들은 프랑스와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10]
지부티와 에리트레아와는 영토 분쟁 중이다. 위키피디아 2008년 4월에 에리트레아가 침입했고 2008년 6월에 총격전이 일어나 서로 몇십 명이 숨지거나 다쳤다.[11] 그 뒤 다행히 국제사회의 중재로 2010년 6월에 에리트레아가 점령지에서 물러났다.
5. 정세
프랑스군이 주둔하는 효과 탓인지 주변 국가들인 예멘,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에리트레아에 비하면 그나마 안정된 편이다.[12] 더불어 21세기 들어선 미군도 아덴 만 소말리아 해적 문제로 일부 주둔하고 있으며, 그 외 유럽국가들과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군대도 이 곳에 주둔하고 있다.
현직 대통령 이스마일 오마르 겔레는 자신의 삼촌이자 초대 대통령인 하산 굴레드 압티돈(1916~2006)에게서 1999년 대통령직을 이어받았다. 이후 2005년 선거에선 공정한 선거가 아니라는 이유로 다른 후보들이 출마를 거부해 '''100%'''의 지지율로 당선되었고, 기존에 2선까지만 허용하던 헌법을 개정해 2011년 선거에도 출마, 비슷한 이유로 81%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그는 반정부적 성향을 지닌 인물을 임의로 수감하는가 하면, 다수의 언론사를 임의로 폐쇄하거나 책임자를 처벌하는 등 적당한 수준(?)의 언론 탄압을 시행해 비판받기도 했다.
2011년 대통령 선거를 수 개월 앞두고 2010-2011 아랍권 민주화 운동 여파가 여기에도 불어닥쳤다. 프랑스와 미국은 소말리아 및 지중해 주둔지로 잘 써먹던 지부티의 분위기를 우려했다. 한 달여 동안 계속되던 시위가 끝나고 정부 측이 최루탄까지 써가면서 강력히 진압한 탓에 그나마 안정(?)을 되찾았지만, 향후에도 정부에 대한 불신 여론은 언제든 나타날 여지가 있어보인다.
6. 경제
국가 수입의 다수는 프랑스 주둔군과 관련된 파생 산업에서 나오며, 프랑스 정부가 지불하는 주둔비용도 국가 재정에서 상당한 몫을 차지한다고 한다. 지부티의 수도인 지부티 시는 과거 평범한 어촌 마을이였지만, 오늘날엔 어엿한 항구 도시로 성장하고 있는데, 이는 바로 이웃나라인 에티오피아 덕이 크다. 1993년 에리트레아의 독립으로 내륙국이 되어버린 에티오피아가 외부에서 물자를 공급받을 통로는 사실상 에리트레아와 지부티 밖에 없는데, 에리트레아는 전쟁까지 할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아[13] 사실상 지부티 항구를 주로 이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여세를 몰아서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등 다른 아랍 국가로의 수출 및 수입도 확대하고 있어 전망이 좋은 편이다.
사실 에티오피아로 통하는 해안선을 맞댄 아프리카 국가들은 에리트레아와 지부티 말고도 소말리아를 비롯하여 주변국 케냐, 탄자니아, 수단 공화국으로 더 있기는 하지만, 전자는 워낙 내전 지옥에 해적 천국인지라 항구로 이용하고 싶어도 도저히 쓸 수가 없으며,[14] 케냐와 수단 공화국은 국경을 맞댄 이웃나라이긴 해도 항구 근처까지 가는 길이 너무 멀고 탄자니아는 아예 이웃 국가도 아니라서[15] 에티오피아로서는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먹기로 지부티 항구를 써야 하는 실정이다.
다만 2018년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가 갈등을 종식하고 국교를 정상화하는 등 관계개선을 하면서 에티오피아가 지부티 항에 대한 사용을 포기하고 아사브나 마사와 등 에리트레아의 항구 도시들을 사용하게 될 가능성 역시 높아지고 있다.
7. 문화
이웃나라 소말리아가 워낙 막장인 나라라서 소말리아가 각종 스포츠 국제대회에 출전하게 되면 소말리아에게 홈 구장을 빌려준다. 즉, 소말리아의 홈 경기는 지부티에서 한다는 얘기.
축구가 인기가 있지만, 2014년 1월 기준 피파랭킹은 204위로써 아프리카, 나아가 세계구급 꼴등일 정도로 동네북이다.(...) 지부티 축구 국가대표팀 문서 참고.
1988 서울 올림픽 남자 마라톤에서 후세인 아메드 살레가 동메달을 따기도 했다.
7.1. 언어
공용어는 아랍어와 프랑스어이다. 프랑스어는 프랑스의 지배와 영향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러다보니 프랑코포니 회원국에 속해 있다. 또한, 소말리어, 아파르어도 쓰이고 있다. 지부티도 아랍어가 쓰이는데 대개 표준 아랍어가 쓰이지만, 지부티내에도 아랍어 방언이 쓰이고 있다.
8. 군사
9. 외교
10. 창작물에서
- 온라인 FPS 아바의 스콜피온 맵의 배경이다.
- 스웨덴의 작가 요나스 요나손의 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에서 알란 칼손 패거리의 첫번째 희생자 볼트가 살해되어 아디스아바바로 수출되다가 바다에 버려졌고, 그의 여권과 지갑을 가지고 있던 이집트인 선원이 자살폭탄 테러로 분쇄된 곳으로 나온다. 그러므로 볼트가 사망한 곳은 공식적으로는 지부티다.
- 재독 작가 이미륵의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1946)에서, 주인공 미륵이 독일로 망명하기 위해 탄 기선이 두 번째로 정박한 곳이 지부티다. 서술자는 작품 속에서 '이 항구는 비참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16] 라고 황폐한 모습의 지부티 항을 언급. 두 페이지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언급이지만, 시내에 있는 인도인 학교부터 사막 가운데 있는 원주민 마을까지 비교적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1] 'dj'는 외래어의 d͡ʒ 발음(영어의 j 발음)을 표기하는 이중 자음이다.[2] 경기도의 2배를 넘는다.[3] 소말리어, 아파르어 [권위주의] 2.71점[4] 이슬람이 국교이지만 무슬림에 대한 개종&전도 시도를 제외한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으며, 2013년 기준으로 이슬람 94%, 기독교 6%이다.[5] 기독교도는 대부분 에티오피아계와 (프랑스 등) 유럽계이며(이사족, 아파르족 출신 기독교도는 이들 민족 인구의 2%정도), 덕분에 종파도 에티오피아 정교와 가톨릭이 절대다수를 차지한다.[6] 이런 특성 때문인지 예멘 등에서 넘어온 이슬람권 난민들도 많은 편이다. 또 지부티의 난민 캠프 이전에 지부티 사람들이 반대하기도 하는 등 어떤 점에선 선진국보다 더 난민을 살갑게 대하는 분위기도 있다고 한다.[7] 철수권고 지역 제외 모든 지역.[8]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국경.[9] 쉽게 이야기를 하자면 마리아나 해구가 해저에서 깊은 곳이라면 지부티의 해발고도가 낮은 곳은 육상에서 아주 깊은 곳으로 보면된다.[10] 사실 이는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세네갈, 니제르, 가봉, 튀니지, 모로코, 말리, 베넹 같은 다른 아프리카의 나라들도 마찬가지다.[11] 프랑스가 물자 및 의료지원을 해 줬지만 직접 개입은 하지 않았다.[12] 에티오피아의 경우 2018년 취임한 아비 아흐메드 총리가 민주화 개혁 정책을 추진하면서 소말리아, 예멘, 에리트레아보다는 정치가 개선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13] 그나마 2018년 이후 관계 정상화 중에 있다.[14] 2006년도에 에티오피아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 동아프리카내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들도 억제할 생각으로 소말리아에 군대를 파견한 바 있었다. 그리고 에티오피아는 2004년 유엔과 국제사회의 중재로 출범한 (아직 모가디슈 제외 소말리아을 장악하지 못한) 소말리아 과도정부에게 힘을 실어, 소말리아의 이슬람주의 반군 집단인 이슬람 법정연대와 과도 정부에게 저항하던 소말리아내 군벌 세력들을 공격한 적이 있었는데, 전투 결과 오히려 안정은 커녕 아프가니스탄 전쟁, 스리랑카 내전, 베트남 전쟁 아프리카 복사판 버젼만 신나게 경험하고 결국 2009년 철수하게 된다.(...) 이후에는 소말리아 정부에게 소규모 지원이나 외교적 지지만 할 뿐 직접적인 개입은 하지 않았으나, 2011년 케냐군과 소말리아 정부군이 연합한 린다 니치 작전 개시 이후 다시 병력을 파병했으며, 2014년에는 AMISOM 일원으로도 참여했다.[15] 탄자니아의 다르에스살람이나 잔지바르 같은 항구도시들을 에티오피아가 사용하려면 항구 사용은 둘째치고 국경이 없기 때문에 항공기를 통해서 탄자니아까지 갔다가 탄자니아의 항구도시에서 물류를 받고 다시 비행기에 실어 하늘을 거쳐 에티오피아까지 여러번 왔다갔다 하며 수송해야 하는데다 아니면 국경을 맞대고 있는 옆나라인 케냐 국경을 넘고 케냐를 거쳐 탄자니아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에티오피아가 탄자니아의 항구들을 사용하는 것은 굉장히 번거롭다.[16] 정규화 역, 서울:범우사, 1991, p.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