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가디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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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휴양지.[1][2]
소말리아가 안전하게 보여서 속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이것은 2015년도에 촬영된 모가디슈 영상인데 부촌인 듯하다.
2018년도 모가디슈 영상. 아무래도 이것도 부촌의 모습인 듯 하다. 물론 개발살난 1990년대와 2000년대의 예전 소말리아가 가진 전쟁터라는 이미지를 생각하면 엄청난 발전이다. 그 때는 거짓말 안 보태고 모가디슈에 멀쩡한 건물이 남아나질 않았다. 물론 저렇게 부촌만 보고 나름 괜찮은 국가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부촌의 안전은 어디까지 그들이 고용한 사설 경비원들과 이들을 지켜주는 유엔평화유지군 덕분이지 절대 나라가 멀쩡하게 돌아가는 건 아니다.
모가디슈라는 이름은 원래 아랍어 이름으로 아랍식으로는 무까디슈라고 발음하며 이 발음을 이탈리아인들이 모가디시오(Mogadissio)로 알아들었고 그게 다시 이 지역을 2차대전 이후 점령한 영국인들이 모가디슈(Mogadishu)라고 한 것에서 유래한다. 동북아프리카 대부분 국가가 다 그렇듯 이 나라도 아라비아 반도와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통해 마주보는지라 일찍이 아랍화/이슬람화되어 아랍권의 일부로 지내왔다. 덕분에 오래된 모스크나 아라비아 양식의 건물들이 흔하다. 전쟁통에 다 박살나긴 했지만 잔존한 것들도 있다. 대항해시대 시리즈를 한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주요한 거점 항구로 항상 등장할 정도니 해상 교통로의 요지였음은 분명하다.
위도상으로는 말레이시아 조호르 주 및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과 같이 적도 바로 근처에 있다. 싱가포르와는 거의 위도가 비슷하다. 같은 위도의 두 도시 중 하나는 지리상 이점을 살려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거듭난 깔끔하고 잘 사는 도시고 다른 하나는 똑같은 지리적 이점에도[4] 이런저런 악재로 뭔가 잘못되어 전쟁터에 세계 최빈국의 수도로 주저앉아버려 운명이 엇갈렸다.
주민 대부분은 함계의 소말리인이며 이들은 모국어인 소말리어만 사용하지 않고 아랍어도 사용한다. 아랍어의 경우 대개 아랍어 방언쪽이 널리 쓰이고 있다. 서쪽의 같은 함계 혈통의 베르베르인들이 아랍어와 베르베르어를 같이 쓰는 것과 같이 아랍화되었다. 그리고 아랍화된 소말리인 말고도 진짜 아랍인과 영국 신탁통치 시절 인도에서 건너온 인도인, 그리고 구 식민지배자 이탈리아인도 극소수 있었다. 이러한 외국인들은 당연히 1992년 소말리아 내전 발발 후 다들 돈까지 싹 들고 도망쳐 나가버렸다.[5]
고대 인도와 로마 사이의 해상 무역에서 예멘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면서 소말리아 일대도 부를 향유했다. 고대 예멘의 힘야르 왕국 주민들이 모가디슈의 토대를 닦은 것으로 추정된다. 아라비아 반도가 가까워 8세기부터 아랍인들과 함께 이슬람교가 유입, 급속도로 이 나라는 아랍화/이슬람화되어 아랍권 도시로 순식간에 변모하였다. 9세기부터 13세기에는 모가디슈를 중심으로 한 모가디슈 술탄국이 있었다. 당시 모가디슈는 동아프리카 스와힐리 해안과 페르시아를 연결하는 주요 도시이자, 동아프리카 황금 및 상아 무역의 중심지로서 번성하였다.
근세 이후에는 오만과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이탈리아인들이 1905년 장악하여 이탈리아의 식민지가 되었다. 당시 이탈리아인들은 에티오피아를 침공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결국 대신에 소말리 지역의 남단부를 점령했으며 대신 모가디슈에 투자했다. 그 때 현재 소말릴랜드인 북부 지방은 영국, 지부티가 된 동해안 연안은 프랑스가 각각 식민지화했다. 이탈리아 식민 시절 모가디슈 시민 중 2만 2천여 명 약 44%가 이탈리아인었다고 한다. 이탈리아인 정착자들의 이민으로 이탈리아 건축 양식 등이 이식되었다. 그리고 이탈리아인들이 휴양지로 개발하면서 이런저런 인프라도 생겼다. 모가디슈라는 도시 이름도 아랍어 무까디슈를 이탈리아어로 모가디시오(Mogadissio)라고 부르던 것이 영어식으로 굳어진 것이었다. 그러다가 2차대전 와중인 1941년 이탈리아가 추축국인지라 영국군이 이 도시를 점령했고 이후 영국, 프랑스의 신탁통치를 받다 북부의 영국령 소말릴랜드와 합체하여 소말리아라는 국가로 독립했고 프랑스령 소말리아인 지부티는 여기 합류하지 않았다.[6]
독립 후에도 한동안은 잘 나갔다. 1950년대 및 1960년대에는 나라로 중계무역과 휴양하러 오는 유럽인들을 상대로 한 관광업이 꽤 성업을 이루었다. 이러한 잘 나가는 기조는 시아드 바레 장군의 집권 초기까지도 이어졌다. 그러나 그가 1970년대 무리하게 오가덴 전쟁을 일으켰다 패배하고 여기에 가뭄까지 겹치면서 나라가 피폐해져서 우리가 알듯 세계 최빈국으로 주저앉았다. 그리고 1991년 바레의 독재 정권이 무너지자마자 1년도 안되 1992년에 발발해 현재진행형인 소말리아 내전 때문에 모가디슈도 혼란상에 휩싸였다. 내전이 시작된 1992년 이후 20년이나 넘게 도시가 내전의 현장이 되어 과도정부와 이슬람 무장단체인 알샤바브가 싸우고 있었다. 과도정부는 형식상으로는 국제적 승인을 받는 정부지만 실질적으로는 수도인 모가디슈조차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2011년 8월, 모가디슈의 대부분 지역에서 알샤바브 반군이 축출되었다. 반군은 여전히 자폭테러와 지뢰 설치 등의 게릴라 전술을 펴고는 있지만 땅은 잃었으며 모가디슈는 과거에 비해서는 소말리아 지역중 그나마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고 있는 듯 하다만 내전은 현재도 계속 진행중이고 테러 공격은 오히려 더 심해졌다. 전쟁을 딛고 새롭게 태어나는 모가디슈
2012년 3월 6일에 터키항공이 외국 항공사로는 20년 만에 모가디슈에 취항했다.
국경없는의사회 소속으로 여기서 자원봉사한 한국 사람이 쓴 책에 의하면 모뎀 수준이라도 인터넷망이 있다고 한다. 다만 부르는 게 값이다. 속도도 느린 게 비싸긴 비싸서 설치담당과 많이 말다툼을 벌였는데 그 담당에게 "당신네 사장은 대체 어디서 뭐하쇼?"라고 비꼬자 " '''그런 부자가 미쳤다고 여기 남았겠소? 해외에 이민가서 당신같은 이들이 주는 돈을 가득 챙기지.''' "라는 답변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진짜로 다른 아프리카 나라, 특히 타 동북아프리카에 비해 소말리아가 인터넷이 싸다. 진짜다. 그 전쟁통에도 통신사들은 어떻게 살아 남은지라 자국 도메인과 약 천개 정도의 할당 아이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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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서비스 센터가 있다.트위터
불행히도 2010년대에 들어서 안정된다는 일각의 희망을 비웃기라도 한 듯 계속해서 테러가 발생하며 '''소말리아 내전은 현재진행형'''임을 일깨워 줄 뿐이다. 당장 2017.10.15 모가디슈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했다. . 그리고 1년도 안 되어 2018년 2월 23일에 모가디슈에서 폭탄테러가 발생되어서 38명이 사망했다. 또한 2018년 9월 2일에 모가디슈에서 자살폭탄테러가 일어나서 최소 6명이 사망하고 14명이 부당당했다. 그리고 9월 10일에 폭탄 테러가 다시 발생되면서 최소 6명이 사망했다. 12월 22일에는 대통령궁 인근에서 폭탄테러가 발생되면서 최소 6명이 사망하고 여러명이 부상당했다.#
그래도 앙숙 에티오피아와는 관계개선을 하여 41년만에 에티오피아-소말리아 모가디슈를 잇는 노선(!)이 생겨났다.#
그리고 2019년에도 테러는 지속되며 30년 가까이 끄는 이놈의 내전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출구도 안 보임을 일깨워주는 중이다. 2019년 2월 28일에 알샤바브가 모가디슈 중심에서 자살폭탄테러를 일으켰고 3월 1일 오전까지 소말리아군과 격렬하게 격전을 벌였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 2019년 3월 23일에 모가디슈의 정부청사에서 차량 자살폭탄테러가 발생해 5명이 숨졌다.# 이후 두 달만인 2019년 5월 22일에 대통령궁 인근에서 차량폭탄테러가 일어나 9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7월 8일에 검문소에서 일어난 총격테러로 5명이 사망했다.# 9월 2일에는 차량폭탄테러로 인해 최소 8명이 숨지고 15명이 부상당했다.# 연말에도 테러는 계속되어서12월 28일에 모가디슈에서 차량을 이용한 자살 폭탄 테러로 100명에 육박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2020년대로 넘어가면서 2020년 1월 8일에 폭탄테러가 일어나 4명이 사망하고 10여명이 부상당했다.# 그리고 코로나19 판데믹 와중에도 내전은 그칠 줄 모르고 더 심해져서 2020년 8월 8일에 모가디슈의 군 검문소에서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해 최소 8명이 사망하고 14명이 부상당했다.#
모가디슈 시가지 서쪽에 영국 보호령 시기 설립된 소말리아국립대학이 있다. 시설 규모는 아프리카 대륙에 소재한 대학 치곤 상당히 큰 편이며, 학부 규모도 큰 대학이었다. 하지만 1990년 경제 위기로 인해 대학 운영에 필요한 자금 지원이 끊기고 결국 대학은 폐쇄되었다. 내전 시기에 대학 경내는 폐허로 변했으며, 교사는 피난민들의 거처로 쓰였다. 1997년에는 이 대학의 전직 교수, 박사 과정생등이 모여 비영리 사립 대학인 모가디슈 대학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2차 소말리아 내전이 종식 단계에 들어가 소말리아 정부가 안정되자, 정부는 소말리아국립대학의 재개교를 준비했다. UN 경제사회이사회로부터 5백만 달러를 지원받아 대학 시설물을 정비하고, 인적 구성원을 갖춰 2014년 8월 재개교하였다.
아름다운 휴양지.[1][2]
소말리아가 안전하게 보여서 속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이것은 2015년도에 촬영된 모가디슈 영상인데 부촌인 듯하다.
2018년도 모가디슈 영상. 아무래도 이것도 부촌의 모습인 듯 하다. 물론 개발살난 1990년대와 2000년대의 예전 소말리아가 가진 전쟁터라는 이미지를 생각하면 엄청난 발전이다. 그 때는 거짓말 안 보태고 모가디슈에 멀쩡한 건물이 남아나질 않았다. 물론 저렇게 부촌만 보고 나름 괜찮은 국가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부촌의 안전은 어디까지 그들이 고용한 사설 경비원들과 이들을 지켜주는 유엔평화유지군 덕분이지 절대 나라가 멀쩡하게 돌아가는 건 아니다.
1. 개요
동아프리카의 국가 소말리아의 가장 큰 도시이자 수도로 인도양 연안에 있다.Mogadishu is a bustling city with lots to offer visitors.
모가디슈는 방문객들을 위한 수많은 시설들로 북적이고 있는 도시입니다.
주바항공은 무려 이 소말리아의 '''플래그 캐리어'''이다. 그럼에도 아주 형편없다. 여기서 항공사 이름이 상황이 비슷한 옆동네의 수도인 주바와 비슷하게 들리는데 철자가 다르다.남수단 수도는 Juba이고 주바항공은 Jubba이다.
모가디슈라는 이름은 원래 아랍어 이름으로 아랍식으로는 무까디슈라고 발음하며 이 발음을 이탈리아인들이 모가디시오(Mogadissio)로 알아들었고 그게 다시 이 지역을 2차대전 이후 점령한 영국인들이 모가디슈(Mogadishu)라고 한 것에서 유래한다. 동북아프리카 대부분 국가가 다 그렇듯 이 나라도 아라비아 반도와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통해 마주보는지라 일찍이 아랍화/이슬람화되어 아랍권의 일부로 지내왔다. 덕분에 오래된 모스크나 아라비아 양식의 건물들이 흔하다. 전쟁통에 다 박살나긴 했지만 잔존한 것들도 있다. 대항해시대 시리즈를 한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주요한 거점 항구로 항상 등장할 정도니 해상 교통로의 요지였음은 분명하다.
위도상으로는 말레이시아 조호르 주 및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과 같이 적도 바로 근처에 있다. 싱가포르와는 거의 위도가 비슷하다. 같은 위도의 두 도시 중 하나는 지리상 이점을 살려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거듭난 깔끔하고 잘 사는 도시고 다른 하나는 똑같은 지리적 이점에도[4] 이런저런 악재로 뭔가 잘못되어 전쟁터에 세계 최빈국의 수도로 주저앉아버려 운명이 엇갈렸다.
주민 대부분은 함계의 소말리인이며 이들은 모국어인 소말리어만 사용하지 않고 아랍어도 사용한다. 아랍어의 경우 대개 아랍어 방언쪽이 널리 쓰이고 있다. 서쪽의 같은 함계 혈통의 베르베르인들이 아랍어와 베르베르어를 같이 쓰는 것과 같이 아랍화되었다. 그리고 아랍화된 소말리인 말고도 진짜 아랍인과 영국 신탁통치 시절 인도에서 건너온 인도인, 그리고 구 식민지배자 이탈리아인도 극소수 있었다. 이러한 외국인들은 당연히 1992년 소말리아 내전 발발 후 다들 돈까지 싹 들고 도망쳐 나가버렸다.[5]
2. 역사와 현황
고대 인도와 로마 사이의 해상 무역에서 예멘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면서 소말리아 일대도 부를 향유했다. 고대 예멘의 힘야르 왕국 주민들이 모가디슈의 토대를 닦은 것으로 추정된다. 아라비아 반도가 가까워 8세기부터 아랍인들과 함께 이슬람교가 유입, 급속도로 이 나라는 아랍화/이슬람화되어 아랍권 도시로 순식간에 변모하였다. 9세기부터 13세기에는 모가디슈를 중심으로 한 모가디슈 술탄국이 있었다. 당시 모가디슈는 동아프리카 스와힐리 해안과 페르시아를 연결하는 주요 도시이자, 동아프리카 황금 및 상아 무역의 중심지로서 번성하였다.
근세 이후에는 오만과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이탈리아인들이 1905년 장악하여 이탈리아의 식민지가 되었다. 당시 이탈리아인들은 에티오피아를 침공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결국 대신에 소말리 지역의 남단부를 점령했으며 대신 모가디슈에 투자했다. 그 때 현재 소말릴랜드인 북부 지방은 영국, 지부티가 된 동해안 연안은 프랑스가 각각 식민지화했다. 이탈리아 식민 시절 모가디슈 시민 중 2만 2천여 명 약 44%가 이탈리아인었다고 한다. 이탈리아인 정착자들의 이민으로 이탈리아 건축 양식 등이 이식되었다. 그리고 이탈리아인들이 휴양지로 개발하면서 이런저런 인프라도 생겼다. 모가디슈라는 도시 이름도 아랍어 무까디슈를 이탈리아어로 모가디시오(Mogadissio)라고 부르던 것이 영어식으로 굳어진 것이었다. 그러다가 2차대전 와중인 1941년 이탈리아가 추축국인지라 영국군이 이 도시를 점령했고 이후 영국, 프랑스의 신탁통치를 받다 북부의 영국령 소말릴랜드와 합체하여 소말리아라는 국가로 독립했고 프랑스령 소말리아인 지부티는 여기 합류하지 않았다.[6]
독립 후에도 한동안은 잘 나갔다. 1950년대 및 1960년대에는 나라로 중계무역과 휴양하러 오는 유럽인들을 상대로 한 관광업이 꽤 성업을 이루었다. 이러한 잘 나가는 기조는 시아드 바레 장군의 집권 초기까지도 이어졌다. 그러나 그가 1970년대 무리하게 오가덴 전쟁을 일으켰다 패배하고 여기에 가뭄까지 겹치면서 나라가 피폐해져서 우리가 알듯 세계 최빈국으로 주저앉았다. 그리고 1991년 바레의 독재 정권이 무너지자마자 1년도 안되 1992년에 발발해 현재진행형인 소말리아 내전 때문에 모가디슈도 혼란상에 휩싸였다. 내전이 시작된 1992년 이후 20년이나 넘게 도시가 내전의 현장이 되어 과도정부와 이슬람 무장단체인 알샤바브가 싸우고 있었다. 과도정부는 형식상으로는 국제적 승인을 받는 정부지만 실질적으로는 수도인 모가디슈조차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2011년 8월, 모가디슈의 대부분 지역에서 알샤바브 반군이 축출되었다. 반군은 여전히 자폭테러와 지뢰 설치 등의 게릴라 전술을 펴고는 있지만 땅은 잃었으며 모가디슈는 과거에 비해서는 소말리아 지역중 그나마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고 있는 듯 하다만 내전은 현재도 계속 진행중이고 테러 공격은 오히려 더 심해졌다. 전쟁을 딛고 새롭게 태어나는 모가디슈
2012년 3월 6일에 터키항공이 외국 항공사로는 20년 만에 모가디슈에 취항했다.
국경없는의사회 소속으로 여기서 자원봉사한 한국 사람이 쓴 책에 의하면 모뎀 수준이라도 인터넷망이 있다고 한다. 다만 부르는 게 값이다. 속도도 느린 게 비싸긴 비싸서 설치담당과 많이 말다툼을 벌였는데 그 담당에게 "당신네 사장은 대체 어디서 뭐하쇼?"라고 비꼬자 " '''그런 부자가 미쳤다고 여기 남았겠소? 해외에 이민가서 당신같은 이들이 주는 돈을 가득 챙기지.''' "라는 답변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진짜로 다른 아프리카 나라, 특히 타 동북아프리카에 비해 소말리아가 인터넷이 싸다. 진짜다. 그 전쟁통에도 통신사들은 어떻게 살아 남은지라 자국 도메인과 약 천개 정도의 할당 아이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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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서비스 센터가 있다.트위터
불행히도 2010년대에 들어서 안정된다는 일각의 희망을 비웃기라도 한 듯 계속해서 테러가 발생하며 '''소말리아 내전은 현재진행형'''임을 일깨워 줄 뿐이다. 당장 2017.10.15 모가디슈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했다. . 그리고 1년도 안 되어 2018년 2월 23일에 모가디슈에서 폭탄테러가 발생되어서 38명이 사망했다. 또한 2018년 9월 2일에 모가디슈에서 자살폭탄테러가 일어나서 최소 6명이 사망하고 14명이 부당당했다. 그리고 9월 10일에 폭탄 테러가 다시 발생되면서 최소 6명이 사망했다. 12월 22일에는 대통령궁 인근에서 폭탄테러가 발생되면서 최소 6명이 사망하고 여러명이 부상당했다.#
그래도 앙숙 에티오피아와는 관계개선을 하여 41년만에 에티오피아-소말리아 모가디슈를 잇는 노선(!)이 생겨났다.#
그리고 2019년에도 테러는 지속되며 30년 가까이 끄는 이놈의 내전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출구도 안 보임을 일깨워주는 중이다. 2019년 2월 28일에 알샤바브가 모가디슈 중심에서 자살폭탄테러를 일으켰고 3월 1일 오전까지 소말리아군과 격렬하게 격전을 벌였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 2019년 3월 23일에 모가디슈의 정부청사에서 차량 자살폭탄테러가 발생해 5명이 숨졌다.# 이후 두 달만인 2019년 5월 22일에 대통령궁 인근에서 차량폭탄테러가 일어나 9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7월 8일에 검문소에서 일어난 총격테러로 5명이 사망했다.# 9월 2일에는 차량폭탄테러로 인해 최소 8명이 숨지고 15명이 부상당했다.# 연말에도 테러는 계속되어서12월 28일에 모가디슈에서 차량을 이용한 자살 폭탄 테러로 100명에 육박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2020년대로 넘어가면서 2020년 1월 8일에 폭탄테러가 일어나 4명이 사망하고 10여명이 부상당했다.# 그리고 코로나19 판데믹 와중에도 내전은 그칠 줄 모르고 더 심해져서 2020년 8월 8일에 모가디슈의 군 검문소에서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해 최소 8명이 사망하고 14명이 부상당했다.#
모가디슈 시가지 서쪽에 영국 보호령 시기 설립된 소말리아국립대학이 있다. 시설 규모는 아프리카 대륙에 소재한 대학 치곤 상당히 큰 편이며, 학부 규모도 큰 대학이었다. 하지만 1990년 경제 위기로 인해 대학 운영에 필요한 자금 지원이 끊기고 결국 대학은 폐쇄되었다. 내전 시기에 대학 경내는 폐허로 변했으며, 교사는 피난민들의 거처로 쓰였다. 1997년에는 이 대학의 전직 교수, 박사 과정생등이 모여 비영리 사립 대학인 모가디슈 대학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2차 소말리아 내전이 종식 단계에 들어가 소말리아 정부가 안정되자, 정부는 소말리아국립대학의 재개교를 준비했다. UN 경제사회이사회로부터 5백만 달러를 지원받아 대학 시설물을 정비하고, 인적 구성원을 갖춰 2014년 8월 재개교하였다.
3. 관련 문서
[1] 물론 내전으로 상당수 파괴되었기는 했지만 이탈리아 식민지 때 남긴 라틴 양식의 유럽풍 건물들과 소말리아가 한창 무역으로 명성을 떨쳤을 때로 잘 살던 시절인 1950년대와 1960년대에 멋들어지게 지어진 현대식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고 수온이 따뜻한 인도양을 낀 해변가와도 맞닿아 있기 때문에 나라가 안정화되기만 한다면 나름대로 칸쿤이나 하이난 섬, 푸켓 같은 관광지로 이름을 떨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 있는 건 사실이다.[2] 여담이지만 한 때 미국인들이 가기 힘든 장소 중 하나로 지정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3] 물론, 소말리아는 '''전세계의 모든 국가들이 여행금지로 지정한 국가이다.'''(...)[4] 아시아-유럽, 아시아-아프리카를 잇는 항로 상에 있다.[5] 주로 원래 살던 본국으로 탈출했다.[6] 지부티는 옆나라 소말리아가 독립국가로 독립한지 약 17년뒤인 1977년에 프랑스로부터 독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