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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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현대자동차그룹 계열 철강 제조업체로, 본사는 서울특별시 서초구 헌릉로 12 (양재동)에 위치해 있으며, 법인 소재지는 인천광역시 동구 송현동의 인천공장이다. 이외에도 당진시(구 한보철강)와 포항시(구 강원산업), 그리고 2015년 현대하이스코와 완전합병하면서 울산과 순천, 예산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주요 사업은 제철·제강·압연 및 철강재 판매. 현대차그룹 중에서는 현대차증권, (구)현대하이스코, 현대카드와 더불어 특이하게도(?) 정통 현대그룹의 삼각마크나 현대자동차의 공식 글꼴을 쓰지 않고 있었으나, 최근 변경된 로고에서 글꼴을 쓰기 시작하였다.[1]
2. 역사
2.1. 20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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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의 뿌리는 두 가지로 갈리는데, 전자는 일제강점기 때인 1938년에 이연콘체른이 세운 조선이연금속 인천공장이 모태이며, 1942년 일본 가네보재벌 계열사 종연실업이 인수했다가 1945년 8.15 광복 이후 귀속재산으로 분류됐고, 1948년 대한중공업공사로 바꾸고 상공부가 관리했다가 1953년 국영기업으로 정식 설립했다. 1956년에는 국내 최초 제강공장인 평로공장을 세웠고, 1960년 4월 1일에는 박판압연공장을 세워 우리 힘으로 철판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1962년에 인천중공업(주)으로 상호를 변경한 뒤 1966년에 정부지분 중 52.5%가 민간에 팔려 민영화되었다.
후자는 1964년에 이동준이 서독 차관을 들여 세운 인천제철(주)인데, 기술 문제로 인해 경영난이 생겨 산업은행이 관리하는 안습한 처지가 되었고, 결국 1970년에 우량기업인 인천중공업(주)에 합병되어 통합 사명을 '인천제철'로 했다. 1975년에 인천합금철(주)을 방계회사로 설립하였다.
합병 뒤에도 경영난이 개선되지 않자 1978년에 현대그룹에 인수되었고,[2] 1985년 인천합금철을 합병하고 1987년 기업공개를 통해 한국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했다. 1988년에 스테인레스공장을 세우고 1992년 국제철강협회에 정회원으로 가입하였으며, 서울지점도 개설했다. 1994년 5월 ISO(국제표준화기구) 9002 인증을 획득하였다.
2.2. 21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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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이후부터 부실화되거나 일시적인 경영난을 겪은 중소철강사들을 공격적으로 합병하기 시작하였다. 2000년 3월에는 국내 주요 압연형강 생산업체인 강원산업을 합병하여 형강업계의 독보적인 1인자로 군림하였다. 동년 9월 현대그룹에서 계열분리돼 현대기아자동차그룹으로 편입됐고, 2001년 7월부터 'INI스틸'로 사명을 바꾸고 12월에는 삼미특수강(주)을 인수하였다. 2004년에는 한보철강공업 당진제철소를 현대하이스코와 공동으로 인수하여 당진에서 미니밀에 의한 열연 코일 생산을 시작하였다.[3]
이 합병으로 인해 INI스틸은 3~4위와의 격차를 훌쩍 벌린 명실공히 2위 철강기업의 규모를 갖추었으며, 당시 조강생산능력은 약 1000만톤에 달했다. 이는 전기로/미니밀 only 철강업체 가운데서는 미국 Nucor의 뒤를 이어 세계 2위였다. 2006년에 현 사명으로 개칭 후 2013년 현대하이스코로부터 냉연제품 제조/판매사업부문을 넘겨받았으며, 2015년에는 현대하이스코를 완전흡수합병함에 따라 시총 20조원의 거대 철강회사로 재탄생되었다. 연이어 그룹 차원의 위기를 겪고 있는 동부그룹과 SPP그룹에서 동부특수강 인수를 마무리하여 현대종합특수강으로 사명을 변경하였고, SPP율촌에너지 단조부문을 인수하였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본가인 현대그룹에 있었을 시절부터 건설ㆍ자동차ㆍ조선 등 계열사에서 소비되는 막대한 양의 철강재를 자체생산하기위해 제철소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당시 국내에서 가장 많은 철을 소비한 기업이 현대였고 그 철의 공급선은 대부분 포항제철이었다. 거의 포항제철이 목줄을 쥐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현대가 100만 톤이 필요하다고 해도 포철이 90만 톤 밖에 공급할 수 없다고 버티면 울며 겨자먹기로 다른 공급선을 알아볼 수 밖에 없었다. 그로인한 손실과 포스코에게 갑질을 당하는 상황을 타개할 필요가 있었다.
자체적인 제철소 건립은 경쟁사 포스코와 박태준 회장의 견제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현대그룹은 1977년 제2종합제철소 설립계획을 정부에 제출했으나 탈락하였고, 그 사업권은 포스코에 넘어가 광양제철소가 지어졌다. 1994년 제3종합제철소 설립노력 역시 철강의 과잉공급을 이유로[4] 좌절되었다. 그리고 새로 현대그룹 회장에 오른 정몽구 또한 경상남도 하동군에 제철소 건립 추진에 들어갔으나 곧바로 IMF 사태가 터지면서 결국 무산되었다.
국내시장에서 선박용후판ㆍ자동차용강판 등 고로에서 제작되는 철강재는 포항제철이 독점공급하기 때문에 현대그룹 뿐만이 아니라 다른 철강소모업체들은 포항제철에서 물량을 배정받기위해 사정할수밖에 없었다. 이런상황에서 포항제철의 물량배정은 철강소비업체들의 통제수단이 되었다. 물론 포항제철의 공급량이 이를 모두 충족시킬수 없기에 모자라는 부분은 소비업체들이 전세계를 뒤져 구해와야했다. 현대그룹역시 일본등 해외에서 철강을 들여오고, 이와중에 포항제철과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123456
현대자동차그룹 출범 후 포스코 및 수입에만 일방적으로 의존하던 차량용 열연코일의 원활한 수급을 위해 2006년 10월 당진 일관제철소 건설을 시작했고, 2010년 1월 5일 고로(용광로) 화입식을 갖고 가동을 개시했다. 이로써 현대제철은 대한민국에서는 드물게 일관제철소를 보유한 열연판재 생산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당진제철소의 경우 분진을 막기 위해 돔형 구조물에 철강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를 보관할 수 있도록 한 점 등 기존의 제철소에 비해 친환경적인 구조를 하고 있다는 듯. [5] 2013년 9월 13일 제3고로 화입식을 기점으로 고로 3기 가동체제가 되었으며 이로 인해 고로 생산능력이 연산 1,200만톤이 되었다.
철강업계 '10일 조업중지'에 "사실상 운영중단 처분" 초비상(종합2보)
철강업계, '10일 조업중지'에 강력 반발
철강업계, 지자체 조업정지 10일 처분에 "문 닫으라는 얘기냐"
'10일 조업정지' 선고한 지자체…논란 확산
2019년, 충청남도, 전라남도, 경상북도 등 여러 지자체에서 현대제철과 경쟁사인 포스코의 제철소 핵심 설비인 고로(용광로)에 대해 10일 조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이에 업계는 철강산업 전반적으로 천문학적인 손실이 날 위기에 처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현대제철은 이번 조치로 보수 비용을 제외하고도 8000억원의 손실을 예상했다. 환경단체들은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제철과정에서 생긴 오염물질을 저감시설 없이 블리더[6] 를 통해 공기 중에 배출해왔다"며 민원을 제기했고, 지자체는 대기환경보전법을 적용해 행정처분을 결정했다.
하지만, 블리더 말고는 대체제가 없기 때문에 산업 특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한국철강협회는 "고로 안전밸브 개방은 전 세계 제철소가 지난 100년 이상 적용해온 안전 프로세스"라며 "조업정지 이후 고로를 재가동한다 해도 현재로선 기술적 대안이 없다"고 했다. 협회는 세계철강협회(WSA)에 문의한 결과, "안전밸브를 열어 배출되는 소량의 잔여가스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해결 방안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전했다.
또 환경단체와 지자체는 법령 위반의 근거로 대기환경보전법 제31조 2항을 들었는데, 여기서는 방지 시설을 거치지 않고 오염물질을 배출할 수 있는 공기조절 장치를 설치하는 행위를 금하고 있다. 다만 ‘화재나 폭발 등의 사고를 예방할 필요가 있어 시·도지사가 인정하는 경우’라는 예외조항이 있는데 블리더는 화재나 폭발 등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설로, 정확히 이 예외조항에 해당한다.
그리고 10일 조업정지 처분이 실질적으로는 10일 동안 공장을 멈추는 정도가 아니라, 연간 400만 톤의 쇳물을 생산하는 고로가 멈추면 쇳물이 굳어져 복구 작업에만 3개월 이상이 걸린다.
비슷한 시기에, 중국의 스테인리스강 제조업체 칭산(靑山)철강이 한국에 대규모 냉연공장 건설을 추진하면서 # 이번 조치가 궁극적으로 중국에 국내 철강 시장을 내어 주는 상황을 초래한다는 우려도 제기되었다.
한대정 민주노총 포스코 지회장도 해당 조치에 대해 "블리더는 노내 압력을 정상상태인 2.3~2.7 Bar(기압 단위)로 조절하는 안전밸브로, 노내 압력이 급격히 올라갈 경우,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자동 또는 주기적으로 열어 철광석과 코크스를 녹일 때 사용하는 석탄에서 나오는 일부 일산화탄소와 압력을 맞추기 위해 주입하는 수증기를 배출한다. 고로에서 배출되는 이들 물질은 평소에는 회수해 발전소의 전력 생산 자원으로 보내지고 있어 고의로 오염물질을 대기에 내보낼 이유가 전혀 없다. 다만 밸브가 자동으로 열리면 의도하지 않는 상태에서 오염물질이 대기로 배출되는 문제는 있지만, 주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고 밝히고 이 문제를 정치 쟁점화하지 말고 노사정 대화를 통해 해결할 것을 촉구했다.
조업정지 처분에 대해 현대제철은 2019년 6월 7일 국민권익위원회 산하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집행정지와 행정심판을 청구하였으며, 이후 조업정지 처분에 이르게 된 데 대해 ''지자체 및 지역 환경 단체들과 소통이 부족했다"고 사과하면서도 "철강 산업은 국가 기간산업이며 자동차, 조선, 건설 등 경제 중심 산업들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만큼 제철소가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가운데 우리가 미흡한 점을 보완해 나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 결과 6월 10일,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현대제철의 집행정지 신청에 대해 인용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7월 15일부터 10일간 내려질 예정이었던 고로 조업정지 행정처분은 보류됐다. 또한 향후 3~5개월 뒤에 열릴 행정심판도 현대제철의 손을 들어준다면, 조업정지 10일 행정처분은 없던 일이 된다.
2020년 3월에는 금속 주조 및 자유단조 사업부문을 빼내 '현대IFC'로 출범시켰다.
3. 지배구조
2021년 1월 기준
4. 역대 임원
4.1. 대한중공업공사 관리인
- 이강우 (1948~1953)
4.2. 현대제철
- 회장
- 이동준 (1967~1970)
- 대표이사 회장
- 정몽구 (1987~1991)
- 박세용 (2000~2001)
- 유인균 (2002~2004)
- 대표이사 부회장
- 김무일 (2004~2005)
- 이용도 (2005~2007)
- 박승하 (2007~2014)
- 우유철 (2014~2019)
- 부회장
- 박정인 (2007~2008)
- 김용환 (2019~ )
- 대표이사 사장(구 이사장)
- 최창순 (1953~1954)
- 유재성 (1954~1956)
- 임일식 (1956~1961)
- 서선하 (1961)
- 장기춘 (1961~1962)
- 안춘생 (1962(대행)/1963~1968)
- 김성은 (1962~1963)
- 원형묵 (1968~1970)
- 송요찬 (1970~1976)
- 이용 (1976~1978)
- 이명박 (1978~1981)
- 정몽필 (1981~1982)
- 정몽구 (1986~1987)
- 최수일 (1987~1991)
- 박재면 (1991~1993)
- 백창기 (1993~1996)
- 노관호 (1996~1999)
- 유인균 (1999~2000)
- 오병문 (2000)
- 윤주익 (2000~2001)
- 이용도 (2003~2005)
- 정석수 (2004)
- 양승석 (2005~2006)
- 박승하 (2006~2007)
- 김태영 (2007~2010)
- 우유철 (2010~2014)
- 강학서 (2014~2019)
- 안동일 (2019~ )[7]
- 대표이사 부사장
- 박경진 (1980~1984)
- 심현영 (1984~1986)
- 최수일 (1986~1987)
- 정석수 (2002~2003)
5. 특징
같은 계열사/브랜드인 현대자동차와 기아(기업), 제네시스는 일관제철소 완공으로 좀 더 원활한 철강재 수급이 가능[9] 해졌고, 포스코의 국내수요 독점에 대한 일정수준의 패리티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주요 사업분야는 기존 전기로 부문의 경우 일반철도 레일 및 고속철도 레일(국내 독점 공급자), 철근·H형강·앵글 등의 건축/구조/선박용 압연강재(국내 1위), 미니밀 열연코일과 열연플레이트(일반용도), 스핀들·압연용 롤·기타 주단강재 등이 있다. 고로(용광로) 부문의 경우 자동차용 열연코일 및 선박/구조용 중후판(국내 2위[10] ) 등이 있다.
국내 경쟁사로는 포스코가 있다. 두 회사는 2010년 당진 고로 가동 전까지는 철강재 시장의 서로 다른 분야를 점유한 실질적인 비경쟁관계였으나[11] , 현대제철의 당진 고로 가동 및 판재 시장 본격 진출로 인해 포스코 역시 형강사업에 진출[12] 하기로 결정되면서 주요 사업부문에 걸쳐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13] 되었다. 2015년 포스코가 포스트 박태준 이후 간간이 누적된 경영 실책들이 세계 철강시황 악화와 맞물려 창사 이래 최초로 적자 기록을 하는 사태가 벌어졌으나 현대제철은 공격적인 사세확장과 세계 철강시황 악화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견실한 실적을 보여줘 업계의 찬사와 포스코의 우려를 사고 있다.
제철사하면 딱 떠오르는 것이 포스코이고 현대제철의 인지도는 훨씬 낮으며 '무슨 경쟁사냐 그냥 후발주자지' 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크지만, 포스코그룹이 아닌 포스코 단일사의 매출은 연 30조 수준으로 20조 수준인 현대제철에 비해 생각만큼 차이가 크지 않다. 업계 3위 동국제강의 연매출은 5조 수준이다.
당진 현대제철 C지구의 경우 중국산 설비가 상당수 쓰여 부정적인 의견도 있으며 이로 인한 설비 고장이나 이상 발생한 다는 주장이 있으나 사실과 다르다. 국내 일관제철소 설비 대부분은 국내기술력만으로 자체 설계가 불가능하며, 포스코의 제철소 설비 역시 포스코엔지니어링[14] /포스코케미칼이 일부 설비만을 자체기술력으로 설계할 뿐 대부분의 설비는 지멘스-VAI나 PAUL WURTH 같은 유럽 업체에서 설계도를 사서 들여온다. 현대제철 역시 주요 시설의 경우 티센크루프 산하의 Uhde와 같은 유럽 기업들의 설비가 대부분. 제철소 설비는 국내 유수의 중공업 기업들이 맡는 경우도 있지만[15] 설계도만 제대로 되어 있다면 중국산 설비도 문제될 것은 없는 것이 사실이다. 1, 2기 일관제철소 설비의 잦은 고장이나 이상은 운영과정에서의 오류로 인한 경우도 상당히 많으며, 3기 일관제철소가 건설되는 동안에는 대부분 쌓인 노하우로 해결했다고 한다. 고로 3기체제는 고로사업에서 필요한 인프라 규모에 대한 손익분기점이라고 하며, 추가적으로 고로를 확보하게 되는 경우 기존 인프라의 수혜를 받아 투자비 절감이 가능하다고 하기 때문에 4고로, 5고로 투자 썰은 지속적으로 등장하여 그때마다 업계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현재 현대제철의 설비투자 대부분은 당진제철소에 집중되고 있으며, 3고로 완공과 현대하이스코 완전흡수합병 이후에도 철분말공장, 수소공장, 특수강공장 등을 짓는 등 현대차 그룹의 미래성장동력에 관련된 소재 생산을 지속 추진 중이다. 또한 당진제철소 옆에 위치한 동부제철의 인수설과 관련하여 여전히 루머가 지속되고 있으며, 당진제철소 주변 확보부지가 많아 투자가 지속될 전망이다. 다만 본래 공장이 있던 인천, 포항에서는 투자에 인색하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상황.
국내에 얼마없는 사철 3대 회사중 하나.
6. 사건사고
2005년 3월 22일 밤 10시 30분경, 본사 포항공장에서 압연탱크가 폭발, 파편 쇳조각이 공장지붕을 뚫고 200미터 정도 떨어진 공장 앞 도로로 날아가 인근 도로를 주행 중이던 갤로퍼 승용차를 덮쳤다. 이에 조수석에 탄 대학생 K모(21세)씨가 사망하고 운전자는 코뼈가 부러지는 등 부상을 당했다. (관련 뉴스)
2013년 5월 10일 오전 1시 40분, 현대제철 협력업체 한국내화의 직원 5명이 전로 내에서 전로 내부 내화벽돌 교체작업을 끝낸 뒤 작업에 사용했던 유압 작업대를 철거하기 위해 전로로 내려가다 전로 내부에 차 있던 아르곤 가스에 질식하여 사망했다. (관련 뉴스)
2016년 11월 28일 본사 당진공장에서 컨베이어벨트 점검 중이던 노동자가 기계에 끼여 숨졌고, 2019년 2월 20일 오후 5시 30분경, 같은 공장에서 근무하던 용역업체 노동자가 컨베이어벨트 교체 도중 기계에 말려들어가 사망했다. 특히 2019년 사건은 문재인 대통령이 '위험의 외주화' 근절 의지를 밝힌 지 이틀 만에 터진 터라 주목을 받았다. (관련 사설(국민일보))
2019년 3월 15일 당진공장에 토네이도처럼 생긴 강풍이 불어 제품 출하장 슬레이트 지붕이 산산히 뜯겨나갔으나,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2020년 2월 경 포항공장에 작업장 내 노후화가 된 시설을 교체해달라는 노조의 요구를 사측이 무시하다 결국 1500도 가량이나 되는 쇳물에 사람이 추락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뉴스
7. 스포츠
인천 현대제철 레드엔젤스와 현대제철 남자양궁단의 모기업이다.
[1] 현대그룹 편입 후 현대자동차그룹 편입 전까지는 현대의 로고와 글꼴을 사용하였다. 이 서술은 INI스틸로 사명을 변경한 이후의 이야기인데, INI스틸 시절은 기아자동차의 로고 및 글꼴과 유사성이 있다.[2] 문제는 저 당시에 인천제철이 적자덩어리인지라 현대그룹에서는 회장 정주영의 장남인 정몽필에게 이 회사의 적자 누적을 막게 하는데 이러한 상황 속에서 1982년 정몽필이 자신의 차인 그라나다를 타고 울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던 중 사고로 숨졌다. 여담으로, 정몽필의 전임이 바로 이명박이었다.[3] 단, 한보철강의 코렉스 제철설비는 가동하지 않고 해외매각하였으므로 당시로서는 아직 일관제철업체가 아니었다.[4] 제14대 대통령 선거 에 정주영 회장이 출마하여 보수표를 잠식한데 따른 김영삼정부의 현대그룹 탄압이라는 설이 있다.[5] 설계 및 시공은 전부 현대자동차그룹의 건설부문 계열사(라고쓰고 정의선의 증여세확보수단 이라고 읽는) 엠코에서 맡았다.[6] 고로/용광로 최상부에 설치하는 안전 밸브로, 압력이 비정상적으로 올라갈 때 가스를 배출해 설비 가동을 안정시키고 작업자의 안전을 보호한다. 제철, 제강 산업에서는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 설비로 분류된다.[7] 포스코 부사장을 역임하고 현대제철 사장이 된 흔치않은 케이스다. 정의선 회장의 스카우트로 왔으며 포스코 직원들의 반발이 있었으나 포스코에서도 대승적으로 현대제철 이직을 승낙했다고 전해진다.[8] '''라고 쓰고 그냥 스티커붙이고 납품가 뻥튀기라고 읽는다.'''라는 말이 적힌 건 '''현대 산업공학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무지한 소리'''다. 전 세계의 선진적인 자동차공장들은 시대에 뒤쳐진 컨베이어 방식에서 소비자들의 개별 니즈와 생산품질 관리에 용이한 셀 방식으로 전환되고 있는데, 현대차그룹은 완성차 부문 노동자들이 '''"노조의 단결력이 와해된다!"'''라는 대단한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현대차그룹 경영진으로서는 셀 방식으로 전환하지 못함으로서 뒤처지게 될 생산속도 등을 만회하려고 모듈화 계열사와 완성차 계열사의 전산망을 연동시켜서 주문이 들어오는 대로 각 묘듈을 조립해 적합한 타이밍에 완성차 계열사로 공급하는 JIS(Just In Sequence) 방식을 구축한 것이다.[9] 조금 더 파고들자면 한보철강 당진공장을 현대제철과 현대하이스코가 공동으로 인수하여, 현대글로비스에서 운송해온 철광석ㆍ코크스ㆍ석회석을 고로에서 녹여서 핫코일을 뽑아내는 열연공장은 현대제철에서 맡았고, 여기서 핫코일을 받아와 밀어서 냉연제품으로 가공하는 공장은 현대하이스코가 맡았으나, 냉연 2공장을 완공하자마자 현대제철에 합병되어버렸다(...). 이 철강재를 다시 현대글로비스의 운송차량이 현대계열 부품사에 납품하고, 제작된 부품은 다시 현대글로비스 운송차량을 통해 현대모비스ㆍ현대위아에 납품되어 모듈화[8] 되고, 다시 현대글로비스 운송차량을 통해 현대ㆍ기아에 납품되어 차량을 완성하고, 고객이 현대카드ㆍ캐피탈을 통해 구입한 차량이 다시 현대글로비스 운송차량을 통해 소비자에게 전달된다.[10] 기존 중후판업계 2위는 동국제강이었으나 슬라브 단압밀이었고 2015년에 이르러 조선업황악화와 함께 후판생산능력을 상당부분 감축했다.[11] 포스코는 판재 및 선재를 주로 생산했으며, 현대제철은 철근 및 형강 위주.[12] 조선업 경기침체로 인해 선박용 후판 재고가 급증하였다. 이를 소모하기 위해 후판을 잘라 용접하여 H빔을 제작하는 Built-up H빔시장에 진출하였는데, 규격화 되어있는 Roll-H빔에 대응하는 Pos-H라는 규격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대구신세계 신축공사 시 사용된 자재다.[13] 현재 포스코 및 포스코그룹 계열사에서는 현대제철 철강을 사용하는 현대ㆍ기아의 차량을 임원 관용차 구입대상에서 제외시켰다. 대신 자사 철강을 사용하는 다른 국산차 메이커의 차량만 구입한다. 대표적으로 임팔라.[14] 현재 포스코건설에 합병[15] 현대제철 역시 설비 일부는 현대중공업에서 제작 및 시공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