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촌역
1. 개요
경전선의 철도역. 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 문산로 666 (갈곡리)에 위치해 있다.
2. 역사
1925년 6월 15일 경남선 군북역 - 진주역 구간 개통 당시에 같이 영업을 시작한 유서 깊은 역이었다. 폐역 직전에는 1면 3선의 분기역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최초 개통 당시에는 무배치간이역으로 영업을 시작하여 단순히 승강장에 열차를 세우고 사람만 타고 내리는 역으로 시작했다. 즉, 분기기와 대피선이 없었고 1면 1선의 단선 승강장으로 영업한 임시역이었다는 이야기이다.
역 주변에 아무런 주요 시설이 없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음에도 전 역인 진성역과 불과 3km 거리에 있었던 것을 볼 때, 마을 주민들의 강력한 요구로 인해 임시로 설치된 역이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 당시 일제 강점기는 한반도 곳곳의 물자를 수탈하기 위해 엄청난 속도로 전국에 철도를 놓았기 때문에, 비용을 아끼기 위하여 형편없는 선형에 약 10km에 달하는 기나긴 역간 거리로 노선을 뚫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고작 3km 거리에 무배치간이역을 두 개나 설치했다는 것은 최초 노선 계획 당시에는 계획에 없었던 역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아무쪼록 이렇게 별 볼일 없이 영업을 시작했지만 꾸준히 단골 수요가 나왔던 덕분인지, 1944년의 대거 폐선 + 폐역 정책 당시에 살아남아 해방 이후에도 문제 없이 역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기능했다. 해방 이후 외국에 나가 있던 조선인들이 대거 귀국하고, 6.25 전쟁을 거치면서 베이비붐 세대가 탄생한 1950~1960년대에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경전남부선의 이용객 역시 덩달아 증가했다.
거기에 일제 패망으로 잠시 계획이 중단된 순천 - 진주 구간 연결 공사가 시작되자 이 노선은 단순한 로컬선에서 어엿한 간선으로 도약할 준비를 하게 되었다. 또한 늘어난 승객 및 노선의 역햘 변경으로 인하여 반성역 - 남문산역 사이의 15km 달하는 기나긴 구간에 대피선이 필요하였다. 이에 따라 열차 교행 목적 및 승객의 원활한 탑승을 위하여 1967년 을종대매소로 지정되고, 3년 뒤인 1970년 2월 20일에는 보통역으로 승격되어 현재의 역사가 지어지고 대피선이 마련되어 본격적인 '''역'''으로서의 기능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경제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경부선과 경부고속도로가 지나는 지역들은 각종 경제 개발의 혜택을 주고 발달했지만, 경남 서부는 이 두 개가 지나가지 않았기에, 인구 유출이 일어 났으며, 갈촌역은 이에 영향을 받으면서, 승객의 이탈이 시작되었다. 1980년대의 급격한 자가용 보급과 도로망 확충으로 인해 경전선과 비슷하게 지나는 남해고속도로가 발달하면서, 여전히 단선과 여객열차의 긴 배차간격을 유지하는 경전선과 포함된 갈촌역은 빠르게 쇠퇴하였다. 면 소재지처럼 역세권이 형성되었다면 모를까, 갈촌역은 주변에 군데군데 촌락이 있을 뿐 역세권이 딱히 형성된 곳이 아니었기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맞았고, 결국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하나 둘씩 제 기능을 잃기 시작했다.
1990년 1월 1일을 기해 소화물취급을 중지하면서 택배/우편 기능을 우체국 등에게 넘겨준 것을 계기로, 1993년 4월 15일에는 매표업무가 중단되고 1995년 12월 1일에는 배치간이역으로 격하되었다. 2003년에는 역사를 개보수하는 등 역을 단장하려 노력하는 시도가 있었지만, 2005년 9월 30일에는 화물취급이 중지되어 이곳의 역무원들은 교행업무 외에는 제 역할을 잃어버렸고, 결국 2008년 9월 22일에는 역무원이 철수하고 무인역으로 격하되었다.
이후 명예역장 제도가 시행되었을 때 이 역에도 명예역장이 임명되어 철도 동호인 및 일부 관광객에게 인지도를 높였지만, 오래 가지 못하고 2012년 10월 23일 진주역 - 마산역 복선 전철화에 따라 선로가 이설되면서 자동으로 폐역 절차를 밟게 되었으며, 갈촌역이 폐지 직전에는 하루에 10회의 무궁화호가 정차했지만, 역세권이 미약해서 이용객은 극히 적었다. 이 동네의 버스교통이 불편하기 때문에 무궁화호를 정차시킨다고 알려져 있다.
2021년 2월 현재도 과거 70년대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