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문산역

 


'''남문산역'''
'''(폐역)'''

'''다국어 표기'''
영어
Nammunsan
한자
南文山
중국어
일본어
南文山(ナンムンサン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 동부로 556-5 (삼곡리)
'''개업일·폐역일'''
경남선
1925년 6월 15일
~ 1931년 3월 31일[1]
경전남부선
1931년 4월 1일
~ 1968년 2월 6일[2]
경전선
1968년 2월 7일
~ 2012년 10월 23일[3]
'''열차거리표'''
삼랑진 방면
← 6.1 ㎞
'''구 경전선'''

'''(폐역)'''
송정리 방면
5.2 ㎞ →
南文山驛 / Nammunsan Station
[image]
구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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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1. 개요


경전선철도역 중 하나로 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 동부로 556-5 (삼곡리)에 위치했다.
문산읍에 있는데도 '''남'''문산역이 된 이유는 경의선문산역이 먼저 개업했기 때문이었다. 경의선은 경부선과 더불어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양대 간선이었기 때문에 경의선 최초 개업 때부터 영업을 했던 문산역에 우선권을 내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문산역의 개업 시기는 1905년으로 구한말 대한제국 시절이었고 남문산역의 개업 시기는 1925년으로 경의선 문산역보다 20년이 더 늦은 일제 강점기 시기이다.
게다가 문산역은 당시 쪽에 있는 문산역이라는 뜻이다.[4] 2014년 6월 20일에 파주시가 문산읍의 한자 표기를 바꾸면서 진주시 문산읍과 파주시 문산읍 모두 文山이라고 쓰게 되었다.[5]

2. 역사


1925년 6월 15일에 경남선 군북역 - 진주역 개통과 함께 영업을 시작했다. 상술했다시피 이미 경기도 파주군문산역이 존재하고 있었으므로 역명 중복을 피하기 위해서 남문산역으로 이름이 정해졌다. 이곳은 시작부터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했는데, 전 역인 반성역과 무려 15km나 되는 긴 역간 거리를 가지고 있었으므로[6], 이 역에서 교행이 빈번하게 이루어졌다. 그래서 일제 강점기부터 이 노선의 주요 역으로 기능했다.
철도가 놓인 덕분에 남문산역이 놓인 문산 지역으로 주변의 물자가 모여들었고 자연스레 면의 규모가 커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해방 이후에는 진양군의 다른 면들보다 큰 규모의 마을로 성장하게 되었다. 물론 경남 서부의 중심지였던 진주시가 바로 옆에 있던 탓에 일정 규모 이상으로 성장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진양군 안에서는 인구가 가장 많은 면이었기에 1995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에 읍으로 승격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다.
남문산역 역시도 마산-진주 구간 안에서는 중리역, 함안역, 군북역, 반성역과 함께 가장 승객이 많고 입지가 탄탄한 역으로 번성하였지만, 1960년대에 이루어진 경제개발로 인해, 경남 서부가 경제 개발의 혜택과 이득을 받지 못하고 인구가 심각하게 유출되면서, 남문산역도 역시 영향을 받으며, 이용객들이 급속도로 감소되었고, 이들 중 유일하게 복선전철화 공사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버려진 역이 되었다. 그 이유에는 새로 놓인 철길이 문산읍을 크게 벗어났기 때문인데, 진주스포츠파크 및 농공단지 밑으로 노선이 선정되면서 문산읍내와 약 2km 떨어진 곳으로 철길이 놓이게 되었고, 결국 남문산역은 이 구간의 주요 역들 중 유일하게 폐역 수순을 밟게 되었다.
이 역이 폐쇄되자 지역 사회에서는 아쉬워하는 여론이 일부 있었다. 왜냐하면 마을의 규모가 커서 이전부터 고정 수요가 꾸준히 나왔던 곳이었고[7], 무엇보다 경남진주혁신도시공군교육사령부와 가장 가까운 역이어서 성장 잠재력이 뛰어난 입지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노선을 조금만 읍내와 가깝게 틀었어도 이 역 근처로 충분히 선로를 놓을 수 있었기에, 지나치게 직선화에 집중한 나머지 중간 수요를 까먹은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일부 받았다. 다만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신 진주역이 들어서고, 역 위치로 훨씬 큰 논란을 불어일으킨 함안역의 존재 때문에 이설 당시에만 이러한 의견이 잠깐 나왔을 뿐, 폐역하고는 빠르게 잊혀진 역이 되어버렸다.
폐지 직전에는 하루에 10회의 무궁화호가 정차했다. 이 역이 있는 문산읍은 진주시에서 유일하게 읍으로 승격된 곳일 정도로[8] 역세권이 발달해서 무궁화호가 모두 정차를 했었다[9]. 하지만 이곳 문산읍으로는 남해고속도로 문산IC를 비롯하여 2번 국도가 지나가는 등 도로교통이 워낙 발달한데다, 경전선이 단선 상태로 인해 경전선을 지나가는 여객열차의 배차간격이 매우 길어서, 정작 여객수요는 많지 않았다. 실제로 역의 입지가 높았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간선으로의 역할을 전혀 하지 못했던 경전선 안에서나 그랬을 뿐이며, 하루 이용객은 100여 명 남짓에 불과했다. 그래서 2002년 7월 25일에 역사를 신축해놓고도 2006년 11월 15일에는 화물 취급 중지, 2010년 12월 6일에는 무배치간이역으로 격하되는 등 이전부터 꾸준히 역의 입지가 축소되는 과정에 있었다.
특이사항으로는 무려 2003년 12월 30일까지 통표를 운영하였다는 점이다. 이미 1990년대에 대부분이 사라진 통표가 이곳에는 KTX 개통 직전까지 직접 사용되었으나 워낙 역과 노선의 인지도가 낮았기 때문에 이러한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1] 구마산역 ~ 진주역 구간 운영[2] 삼랑진역 ~ 진주역 구간 운영[3] 마산역 ~ 진주역 복선전철화 이설에 따른 공식 폐역처리[4] 물론 이 역과 문산역의 문산에 대한 한자는 달랐다. 이 역의 문산은 文山, 문산역의 문산은 汶山.[5] 이렇게 된 것은 하필 파주의 문산읍이 상습 침수 지역이라는 오명으로 인해 주민들의 요구로 물을 뜻하는 水의 변형인 '氵'를 뺐기 때문이다.[6] 중간에 진성역, 갈촌역이 있었지만 이들은 단선 승강장을 가진 무배치간이역이었다.[7] 마을 규모만 보면 반성역, 군북역, 횡천역 등을 아득히 뛰어넘는다.[8] 다만 인구 자체는 공군사령부가 있는 금산면이 가장 많으며, 금산면이 인구가 많은 이유는 '공군교육사령부와 군인 인구에 따른 특수효과'이며, 90년대 후반부터 입주인구 3만 5천여명에 이르는 대규모 주거지구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IMF 구제금융 시기를 거치며 대경건설 등이 해당 택지지구의 아파트 사업을 포기하며 현재와 같은 2만명 초반대의 인구가 사는 마을이 되었다. 금산면지 및 90년대 후반의 신문자료를 참고했을 때 '일반적인 도시 발전 과정을 거친 곳이 아니다.'라는 것은 다소 틀린 감이 없잖아 있다.[9] 그러나 이는 경전선 무궁화호가 사실상 각역정차 통일호의 성격을 계승한 열차만 남았기 때문에 그랬던 것으로 과거 무궁화호 통일호가 공존하던 시절 이곳은 통일호만 정차하던 곳이었다. 실제로도 서울~진주(순천)무궁화호는 통과하기도 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