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광배
1. 소개
대한민국의 前 썰매 선수이다. 현재 한국체육대학교의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체육대학교 썰매 팀 감독도 맡고 있다. 대한민국 동계 썰매 종목(루지, 봅슬레이, 스켈레톤)의 개척자로, '''세계 최초로 동계 올림픽 썰매 3종목에 모두 출전한 기록을 갖고 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썰매 종목이 급부상하여 스켈레톤에서 금메달, 봅슬레이 4인승에서 은메달을 따 낸 것도 강광배가 꾸준히 신인 선수들을 발굴하고 후배들을 양성한 공이 크다.
2. 선수 경력
2.1. 루지
전주대학교 체육과 92학번으로, 원래는 스키 선수였다가 부상으로 인해 1995년부터 썰매로 전향했다. 본래는 알파인 스키 선수로 활동했고[1] 지도자 자격도 취득했으나, 전주대학교 3학년 때 무릎 십자인대 파열과 연골 손상을 입게 된다.[2] 이 큰 부상으로 장애 5급 판정을 받으면서, 일반인처럼 즐기는 수준에서는 문제없지만 전문적인 스키 선수로는 사실상 활동하기가 불가능해졌다.
무릎 치료를 받던 중 1995년에 루지 강습회가 열리자, 루지 종목이 무릎을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강습회에 참가했다. 이후 국가대표 선발전에도 나가서 2위를 기록했다.[3] 당시 무주리조트에서 취직 제의가 들어왔는데, 올림픽 국가대표로 출전하고 싶어서 본인이 거절했다고 한다.
이렇게 선발된 이기로[4] , 이용[5] 과 함께 선발된 루지 국가대표팀은 그야말로 공포의 외인구단 수준이었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연습 여건은 당연히 열악했고, 무주리조트 스키점프대 옆에 있는 산중턱에서 훈련한 후 출전했다. 그야말로 쿨 러닝이 따로 없었다.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에 출전해 강광배는 31위를 기록했다.[6]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출전을 계기로 루지에 대해 자세히 배우기 위해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떠났다.[7]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대학에서 스포츠마케팅 박사과정을 수료하며 루지에 대해서 배웠는데, 여기서 악재가 겹치니 유학 간 지 1달 만에 또 무릎 부상을 당한 데다가[8] 세대교체를 명목으로 이기로, 이용과 함께 국가대표에서 반 강제로 탈락했다.[9]
그 내막에는 '국내에서 적당히 운동하지, 뭐 하러 요란스럽게 해외 유학을 가느냐'며 고깝게 보는 윗사람들의 꼰대적 마인드에,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당시 연맹에서 파견한 지도자의 쌍팔년도식 훈련 방식에 반발했다는 이유로 괘씸죄가 적용되었던 것이라고 강광배 본인은 회상했다.
강광배를 비롯한 국가대표 선수들은 이미 국제루지연맹의 지원으로 해외 지도자와 함께 전지훈련을 하며 선진적인 방식의 훈련법을 따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대한루지연맹에서 숟가락을 얹고 한다는 짓은 얼차려나 시키고 있으니 당연히 마찰을 빚은 것이다. 강광배를 지도했던 오스트리아인 코치 군터 렘머러가 국제루지연맹에 오스트리아 유학 장학금 추천서를 써 주었는데, 강광배의 처지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이 지도자의 행패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했다고 한다. 강광배가 대한루지연맹의 내부 고발자 비슷한 입장이 된 것이다.
2.2. 스켈레톤
루지 국가대표팀에서 제명되면서 망연자실해 있다가, 당시 지도교수의 소개로 만난 스켈레톤 선수 마리오 구겐베르거(Mario Guggenberger)[10] 의 권유로 스켈레톤으로 전향했다.[11] 이미 루지를 통해 썰매 종목을 접한 경험 때문인지, 1999년 오스트리아 대학선수권 대회에서 다른 오스트리아 선수들을 제치고 1등을 했다. 국제클럽대회에도 출전했으나 당시 대한민국에는 스켈레톤 연맹이 없어서 오스트리아 대표로 출전해야만 했다. 2년 간 오스트리아 선수로 출전한 강광배는 국제스켈레톤연맹 심판위원장을 직접 찾아가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출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고, 이후 강광배가 자비를 들여 국제스켈레톤연맹에 가입 신청서를 제출해 대한민국은 연맹에 가입하게 됐다.
그러니까 동계 올림픽 유일의 썰매 3종목 출전이라는 업적은 역설적으로 그가 루지에서 제명당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루지, 스켈레톤, 봅슬레이는 같은 썰매 종목이지만 협회조직은 대한루지연맹이 독자적으로 운영되고, 스켈레톤과 봅슬레이가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으로 한 조직을 구성한다.[12] 대한민국만 그런 게 아니라 국제루지연맹(FIL),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IBSF)부터가 그렇다. 만약 국제빙상경기연맹(ISU)처럼 썰매 3종목이 모두 통합된 조직에서 운영되었고 대한민국도 그러했다면, 강광배는 루지연맹에 의해 제명되는 순간 스켈레톤 및 봅슬레이 출전도 막혀 버렸을 것이다.
스켈레톤 국가대표로는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과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 출전해 각각 39위와 20위를 기록했다.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이후 봅슬레이에 전념하기로 하면서 스켈레톤을 내려놓았다.
2.3. 봅슬레이
오스트리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그는 스켈레톤과 봅슬레이를 병행했다. 2003년 강원도청 봅슬레이-스켈레톤 팀이 창단되면서 과거 루지 국가대표팀에서 함께한 이기로와 함께 봅슬레이 2인승 종목에 도전했다. 이 때 이기로는 수영 강사로 일하고 있었는데 강광배의 설득에 함께했다. 초기에는 이기로와 강광배가 각각 스켈레톤과 루지를 맡기로 했는데, 강원도청 측에서 썰매 팀도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 유학 중 봅슬레이를 타 봤던 강광배가 앞장서서 이기로와 함께 2인승까지 시작한 것. 썰매가 없어서[13] 다른 나라 선수들이 쓰던 중고 썰매를 빌려서 쓴다든지, 제대로 된 코치도 없어서 국제연맹 관계자나 다른 나라 코치들을 찾아 직접 자문을 구하며 훈련하던 실정이라 국제대회에서는 매번 물만 먹었다. 강광배의 회고로는 유럽에서 썰매를 빌리는 데 일주일에 1,000유로를 줬는데, 주행 기술이 없어서 반납할 때 수리비만 3,000유로를 내야 했다고 한다. 대한민국 돈으로 몇백만원씩 기본으로 날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2007-08 시즌 아메리카컵 2차 대회 봅슬레이 2인승에서 8위를 기록하며 국제 대회에서 처음으로 10위권에 들었고[14] , 같은 대회 봅슬레이 4인승 종목에서는 3위를 차지해 처음으로 국제대회 동메달을 수상했다.
이를 발판으로 2009-10 시즌 아메리카컵 대회 중 봅슬레이 4인승 종목에서 6번 연속 10위 안에 들어 국가 랭킹 15위로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했다. 2인승 종목에서는 랭킹 19위로 규정상 탈락이었다가 운 좋게 출전권을 획득했는데, 석연치 않은 과정으로 출전이 무산됐다. 원래 국가 랭킹 17위 안에 들어야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는데, 당시 상위권이던 영국, 오스트리아, 이탈리아는 2팀을 출전시킬 수 있었지만 세 나라 모두 1팀씩만 출전시키기로 했다. 그래서 랭킹 18위였던 일본과 19위 대한민국도 2인승 종목 출전권을 얻었는데,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가 다시 2팀을 출전시키기로 하면서 출전권을 상실했다.[15] 국제봅슬레이연맹 사무총장이 대한민국도 출전권을 얻었다고 직접 통보했다가 돌연 철회한 거라서 논란이 될 법했지만, 당시 대한민국에서는 봅슬레이가 존재감도 거의 없었던 비인기 종목이다 보니[16] 그대로 묻혔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봅슬레이 4인승 종목에서 결선에 진출해 19위를 기록했다. 비록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적은 없지만,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세계 최초로 동계 올림픽 썰매 3종목에 모두 출전한 선수로 기록됐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마치고 봅슬레이 선수에서 은퇴하며 현역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이 끝나고 그가 은퇴한 후 동년 8월에 평창 스타트 연습장에서 봅슬레이 국가대표 선발전이 열렸는데, 우연히 선발전에 지원했다가 합격하여 새롭게 봅슬레이 국가대표팀의 파일럿을 맡게 된 사람이 바로 원윤종이다.
3. 은퇴 이후
은퇴 후 2010년 8월에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스포츠 디렉터[17] 로 위촉됐다. 같은 해 9월에는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이자 역대 최연소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Bobsleigh et de Tobogganing(프랑스어), FIBT) 부회장이 됐다. 사실상 혼자서 한국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의 창설을 주도했던 데다가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정기 총회에 매년 참석하는 등의 행동으로, 타국 관계자들은 강광배가 대한민국 연맹 회장인 줄 착각했다고 한다. 이렇게 뛰어다니며 타국 관계자와 쌓은 인맥 덕택에, 별다른 선거 활동 없이 최다 득표로 당선됐다. 그렇게 행정가 커리어를 시작한 그는 봅슬레이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이용에게 넘겼다.[18]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가 확정된 후 2012년 3월 한국체육대학교의 초빙 교수로 있다가 5월에 한국체육대학교 썰매 팀이 창단되며 감독을 맡았고, 동년 9월에 정식 교수로 임용됐다.
2015년 8월에는 국가대표팀을 이끌었던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 동안 각종 부정을 저지른 혐의로 조사를 받았으나, 2016년 1월에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본인의 금융계좌에 국가대표팀의 운영비를 받아서 쓴 게 문제였는데, 이후 밝혀진 바로는 재정 지원이 부족했던 탓에 자신의 사비까지 털어 쓴다고 편의상 그렇게 한 것이었다. 당시 강광배의 신용카드 지출 내역 대다수도 '''국가대표팀 운영과 관련된 것'''이었다고 한다. 어차피 본인의 돈이든 지원금이든 대부분 국가대표팀 운영 경비로 나갈 것이기에 개인 계좌에 몰아서 자금을 관리한 것이다. 물론 이런 방식의 회계 관리는 절차상으로만 보면 잘못된 일이지만, 검찰은 자신의 사비까지 털어서 비인기 종목의 육성을 위해 지출했기에 죄가 크지 않다고 판단하여 기소유예 처분을 했다.
돌이켜보니 이 조사는 최순실의 하수인이었던 문화체육관광부의 김종 제 2차관이 진두지휘한 스포츠 4대악 합동조사단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명목은 체육계 부정입학 및 비리 근절이었으나, 승마협회 장악을 필두로 하여 체육계에서 자신들과 맞지 않는 라인[19] 을 표적 수사를 통해 쳐내려는 수법으로 봐도 될 듯하다. 앞서 이야기한 대한민국 썰매 스포츠 개척자로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2018 평창 동계올림픽/개회식에서 태극기를 운반하는 기수로 선정됐다.
그리고 예전에 무한도전 봅슬레이 특집으로 인연이 있었던 MBC의 썰매 종목 해설가로 마이크를 잡았다. 썰매 종목에 대한 애정과 더불어, 타국 선수에 대해서도 격려를 아끼지 않는 해설로 높은 인기를 얻었다. 특히 국내 선수들의 스타트 때마다 보여 주는 '''"가가가가가가각가가각"''' 엄청난 샤우팅이 포인트다. 이 샤우팅에 다른 해설위원들은 강광배 해설위원이 제일 흥분한다고 놀렸다고.[20] 봅슬레이에서도 '''가가가가가가각가가각'''은 이어졌다.
샤우팅과 더불어 스켈레톤, 봅슬레이의 영업도 분주히 진행했다. 발이 빠른 사람, 허벅지가 굵은 사람, 트럭운전사[21] 까지 모두를 아우르는 영업 능력을 보여 줬다.
해설가 데뷔전이자 홈에서 열린 동계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썰매 종목이 금메달 1개와 은메달 1개를 획득하여, 본인 입장에서는 기쁘면서 감동적인 대회가 됐다. 본인이 상비군을 시작으로 발굴한 윤성빈의 스켈레톤 금메달 때는 흐뭇한 모습으로 지켜봤는데, 본인이 마지막으로 활동했던 썰매 종목이자 함께 동고동락했던 봅슬레이 4인승 선수들이 은메달을 땄을 때는 울컥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리고 '''"썰매에서 강광배의 시대는 끝났다. 우리 썰매 제자들의 시대는 이제부터다. 앞으로 멀리서 우리 지도자와 선수들을 지켜보겠다"'''는 감동적인 멘트를 했다.
4. 기타
- 현역 시절 별명은 외로운 늑대라고 한다. 국가대표팀 감독 겸 선수를 맡아 지원이 부족한 가운데, 선수도 없어서 여러 학교를 다니며 봅슬레이 강의를 하던 중 눈여겨본 타 종목 선수들을 꼬시거나 지인들을 통해 알게 된 선수를 모아 국가대표팀을 꾸렸다. 감독 겸 선수로 활동하던 시절만 하더라도 파일럿[22] 이 없어서 강광배 혼자 도맡아야 했다.[23] 그뿐만 아니라 선수 생활을 했을 때도 유치위에서 기술위원을 맡는 등 종횡무진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와 함께 2010년대 들어서 썰매 종목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면서 썰매 종목 선수들의 랭킹도 급성장했다. 스켈레톤 세계랭킹 1위로 급부상한 윤성빈도 2012년에 강광배가 상비군을 시작으로 발탁한 선수 중 한 명으로, 그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윤성빈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스켈레톤 금메달을 차지하며 대한민국 및 아시아 선수 최초의 올림픽 썰매 종목 금메달이라는 대 기록을 남겼다. 그가 선수 시절에 마지막으로 활동한 썰매 종목인 봅슬레이 역시 4인승에서 첫 올림픽 메달을 획득하며 대한민국 동계 스포츠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 봅슬레이 감독을 했을 때 국가대표팀 운영을 위해 본인의 돈을 털어 썼는데, 실제 본인 가정 형편도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고 한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란 데다가,[24] 오스트리아 유학 시절에는 스키강사 알바를 하면서 학비를 모았다고 하며,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스켈레톤 역시 본인이 아르바이트한 돈을 모아서 자비로 출전했다고 한다.
-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대표팀 남자 주장과 함께 국가대표팀 기수를 맡았다. 썰매 종목의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의 썰매 종목 전파에 노력한 점을 인정받아,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이후 IOC의 요청으로 강광배의 스켈레톤 장비가 IOC 올림픽 박물관에 기증됐다.
- 2006년 8월에 연합뉴스 기자인 2세 아래의 현윤경 씨와 결혼했다.[25] 2005 인스브루크 동계 유니버시아드가 열린 인스브루크에서 취재진에게 현지 경기장을 소개하러 나온 강광배가 관광용 봅슬레이를 타 보게 해 준것이 인연이 되어 결혼하였다.
- 2009년 무한도전 봅슬레이 특집에 나왔다. 당시 봅슬레이, 스켈레톤 총감독이자 봅슬레이 국가대표팀 파일럿으로 무한도전 멤버들을 직접 가르치고 봅슬레이에 태웠다. 당시 특집에는 현재 스켈레톤 국가대표팀 감독인 조인호 당시 코치와 당시 막내였던 봅슬레이 4인승 브레이크맨 김동현 선수가 얼굴을 비추기도 했다. 무한도전 봅슬레이 특집을 보고 봅슬레이를 타기 시작한 선수들이 몇 명 생겼는데, 그 중 1명이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봅슬레이 4인승에 출전하여 은메달을 획득한 전정린이다.
[1] 전주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무주리조트가 생기자 무주리조트에서 알바를 했는데, 중학교 동창이 스키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자극을 받아 스키를 배웠다고 한다.[2] 이때 같이 연습했던 사람들 중 2명이 스키점프 선수 출신인 김현기와 최흥철이다.[3] 그러나 그 때 1위와 3위를 기록한 사람들은 루지가 비전이 없다고 생각해 그만두었다고 한다. 오랜 후의 이야기지만 서영우도 봅슬레이가 비전이 없다고 생각해 봅슬레이를 그만두고 군 입대를 생각했었으나 본인이 지원을 생각한 코이카의 대체복무제가 폐지되어 계획이 무산됐고, 때마침 대학 선배인 파일럿 원윤종과 호흡을 맞춘 아메리카컵에서 봅슬레이 2인승 우승을 차지하며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4] 전주대학교 3년 후배로, 강광배의 권유로 썰매에 나섰다. 이후 2003년 강원도청에 봅슬레이-스켈레톤 팀이 창단되자 강광배와 함께 창단 멤버가 되어 봅슬레이를 함께 탔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썰매 종목의 아이스메이커 팀장을 맡았다.[5] 당시 완산고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본래는 레슬링 선수였다가 부상으로 전향했다.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을 마치고 특전부사관으로 복무하여 7년 간의 공백이 있었으며, 제대 후 코치 겸 선수로 복귀했다. 2010년 루지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고, 이후 강광배의 후임으로 봅슬레이-스켈레톤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의원에 당선되었다.[6] 같이 출전한 이기로는 29위, 이용은 32위를 기록했다.[7] 여러 모로 오스트리아는 그에게 제 2의 고향이나 다름없다. 오스트리아인 썰매코치를 통해 유학할 수 있었고, 유학하면서 스켈레톤을 처음 접했다. 현재의 배우자를 잇게 해 준 곳도 오스트리아다.[8] 다행히 당시 오스트리아의 의료 기술이 더 나았던지라, 1달 만에 치료가 끝났다고 한다.[9] 앞서 각주에서도 언급됐지만 이용은 이 사건 후 입대하여 부사관으로 7년 간 복무를 마치고 제대, 인스브루크 동계 유니버시아드를 통해 루지 국가대표로 복귀했다.[10] 마리오의 아들인 마티아스 구겐베르거도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오스트리아 스켈레톤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4차 시기(파이널)까지 갔다.[11] 이 때의 인연으로 구겐베르거는 2005년 인스브루크 동계 유니버시아드를 앞두고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기도 했으며,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의 창설에 있어서 영향을 끼쳤다. 이래저래 대한민국 썰매계에 많은 도움을 준 사람이 마리오 구겐베르거다.[12] 잠시 '루지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으로 통합되어 운영된 적이 있지만 금방 다시 분리됐다.[13] 강원도청 팀 창단 때 2인승 봅슬레이를 구입했으나, 구입한 지 5년도 안 되어 파손됐다.[14] 참고로 이 때는 해당 경기장에서 예비용으로 보관하던 봅슬레이를 빌렸는데, 말이 예비용이지 만들어진 지 10년이 넘어서 낡았다.[15]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추가로 참가하게 된 오스트리아 팀에 당시 오스트리아 봅슬레이 연맹 회장의 아들이 있었다고 한다.[16]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윤성빈 경기를 해설하면서 썰매 트랙 관중석에 태극기가 많은 모습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할 정도였다.[17] 앞서 2002년에 발족된 2010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에서도 기술위원 및 전문위원을 맡았다.[18] 이후 이용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스켈레톤 - 봅슬레이 국가대표팀의 총감독을 맡았다. 스켈레톤 담당 감독은 조인호가 맡았다.[19] 참고로 강광배는 문재인을 지지한 바 있다.[20] 후술할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워크샵 당시 가장 중요한 것은 흥분하지 말고 편하게 보는 것이라고 했지만, 현실은 제자가 뛰니 샤우팅 대 폭발이었다고 한다. 현실은 이상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mp4 2분이 지난 이후 강광배 해설위원의 말과 현실이 다른 것이 뭔지 볼 수 있다.[21] 봅슬레이 4인승에 참가한 스위스의 파일럿이 트럭 운전사 출신이라서 언급했다. 참고로 스켈레톤에 출전한 뉴질랜드 선수인 리스 톤버리는 영국 왕실의 무기관리를 담당했다고 한다.[22] 앞쪽에서 봅슬레이를 운전하는 역할[23] 2009년 초 방영된 무한도전 봅슬레이 특집에서도 이러한 강광배의 고충이 나왔다. 실제로 특집을 보면 파일럿이었기 때문에 한국팀의 모든 경기를 다 뛰었다. 그리고 자막에 의하면, 다른 선수들 훈련 때문에 하루에 10번 이상 탔다고 한다.[24] 이것이 윤성빈을 스켈레톤 선수로 발탁하게 된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25] 현재는 연합뉴스의 로마 특파원으로 있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