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근호

 

'''전라북도 군산시장'''
'''민선1-2기'''

'''민선2-3기'''

'''민선4-6기'''
36-37대
김길준[1]

'''38-39대
강근호'''[2]

40-42대
문동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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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1월 25일 ~ 2008년 1월 30일
姜根鎬
대한민국정치인이다. 본관진주(晋州) 은열공파, 호는 금석(錦石)이다. 종교가톨릭으로 세례명은 바오로이다.
가족관계로는 부인 김옥분 여사와의 사이에 아들 강만우, 강만응, 강만훈, 딸 강현주, 강인숙 등 총 3남 2녀를 두었다.
1934년 전라북도 옥구군(현 군산시) 성산면 고봉리[3] 에서 성산면장 강필문(姜弼文)[4]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군산고등학교, 중앙대학교 법학과, 동 대학교 대학원 공법학 석사, 동 대학원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전라북도 옥구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양일동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전라북도 군산시-옥구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 해 실미도 사건이 일어나자 정기국회에서 해당 사건을 추궁하였다. 이 여파로 인하여, 1972년 10월 유신 선포 이후 김녹영, 김한수, 김상현, 나석호, 김경인, 조윤형, 조연하, 이종남, 이세규, 박종률, 류갑종 등과 육군보안사령부, 6관구 헌병중대, 5관구 헌병대 등에 끌려가서 모진 고문을 당하였다.
1973년 초 신민당을 탈당하여 민주통일당에 입당하였다. 그 해 치러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용산구-마포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민당의 복수 공천을 받은 김원만, 노승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7년 정일형 대한민국 국회의원의 의원직 상실(3.1 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기소)과 장기영 국회의원의 별세로 인하여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서울특별시 종로구-중구 선거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친여 무소속 오제도 후보, 친야 무소속 정대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일당 후보로 전라북도 이리시-익산군-군산시-옥구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민당 김현기, 민주공화당 채영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무소속으로 전라북도 군산시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중도 사퇴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공천을 받지 못하자 무소속으로 전라북도 군산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정치국민회의 채영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군산시장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김길준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1년 김길준 군산시장이 공직선거법을 위반하여 대법원으로부터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고 시장직을 상실하였다. 이에 재보궐선거가 치러지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무소속으로 군산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자신이 공직선거법을 위반하였고 결국 2004년 대법원으로부터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고 시장직을 상실하였다.

[1] 2001년 3월 13일 선거법 위반으로 시장직 상실[2] 2005년 4월 8일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어 시장직 사퇴[3] 8대조까지는 지금의 군산시 회현면 학당리에 세거하였으나 사화에 연루되어 부산광역시 인근으로 유배를 갔다. 그후 강근호의 부친 강필문 대까지 그곳에서 세거하게 되었다고 한다.[4] 1892~1960. 부산광역시 출신. 일본 오사카 칸사이대학 상과를 졸업하고 어업계와 광업계 등 업계에서 30여년간 종사하였으며 해방 후 성산면장에 취임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