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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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순(姜浩順)
'''출생'''
1969년 10월 10일 (55세)
충청남도 서천군 시초면 후암리
'''본관'''
진주 강씨
'''신체'''
172 cm / 70 kg
'''범죄유형'''
연쇄살인
'''직업'''
무직[1]
'''가족'''
5남매 중 둘째
1. 소개
2. 성장 과정
3. 범행
4. 그 후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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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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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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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거 당시
대한민국강간범이자 연쇄살인범. 1969년 10월 10일 충청남도 서천군 출신[2]이다. 경기 서남부 지역, 강원도 정선군, 경기도 안산시에서 일어난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그가 죽인 여성 중 확인된 피해자 수는 10명.[3] 그리고 한때 화성 연쇄살인 사건, 화성 여대생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의심받았었던 적도 있다. 전자는 진범 이춘재를 뒤늦게 찾아내 강호순의 범행이 아니란 것이 밝혀졌지만 후자는 물증이 없어 가설에 그치고 있다.[4]
그것이 알고싶다 705회 (2009.2.21. 방송)에서 강호순을 상세히 다뤘다.


2부

2. 성장 과정


1969년 충청남도 서천군 농촌에서 오남매 중 셋째로 태어나 고향 인근에서 초•중•고교를 졸업했다. 정남규유영철, 김해선, 온보현 같은 연쇄살인범들과 달리 강호순은 성장 과정에 ‘불우한 가정환경이나 폭력성 학대 흔적’이 없다. 아버지는 엄격했지만, 이유 없이 체벌한 적이 없으며, 가정형편도 부농은 아니었지만 시골에서는 먹고 살 만큼의 전답을 부치고 살았고, 가족 간의 갈등도 없었다고 한다. 강호순의 행적 어디에서도 살인마가 될 특이사항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다만 판결문에선 아버지가 아내에게 가정폭력을 행한 사실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인터뷰한 그의 고향 마을 주민 역시 그의 아버지가 '평소에는 조용했으나 술을 먹으면 성질이 불같았다'라고 이야기했다.

3. 범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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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부터 경기도 남부 일대에서 여성들이 실종되는 사건들이 계속되었다. 실종될 때마다 확실한 증거는 없는데 거의 비슷한 지역에서 실종 사건이 일어나서 '연쇄실종'이라면서 보도가 되기도 했다. 그 중 일곱 번째로 군포에서 여대생이 실종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실종된 여대생을 살인하고 피해자 카드로 돈을 인출하려다 덜미가 잡히자 자신의 승용차와 모친의 차량도 불태워[5] 되레 의심을 키웠고, 결국 경찰에 붙잡히고 말았다.
붙잡힐 때만 해도 얼굴을 가리는 등 신원공개를 하지 않았으나, 여론이 이에 반하는 분위기로 흐르자 얼마 후 공개했다. 강력범죄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법률이 마련되는 계기가 된 범죄자이다.
경찰에 붙잡히고도 "증거 가져와라."라며 결사적으로 항변했지만, CCTV에 비친 얼굴과 희생자에게서 나온 DNA 검식 결과[6] 범인으로 확정, 그간의 악행이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평상시에는 멀쩡하게 생긴 얼굴이라 결혼도 여러번 했다. 범행 대상 중 여섯 시간 동안 차에 감금되었다 살아난 40대 여성 피해자의 증언에 따르면 첫인상은 상당히 순진하고 순박한 축산업자의 느낌이 강해 속아넘어가기 쉬웠다고 한다. 같이 일하던 동료에게 '난 멀쩡하게 일하면서 살긴 힘들고 여자 등치는 게 제일 쉽다'라는 말을 했다는 얘기가 있다. 동네 친구의 증언에 따르면 심각한 여성 편력으로 결혼한 상태에서 주위에 소개팅을 주선해달라고 조르며 실제로 많은 여자를 만나고 다녔다고 한다. 또한 차를 몰고 길거리에서 헌팅에 가까운 형태로 모르는 여성들을 자주 유혹도 했다고 하며[7], 외모가 정상적이라 그런지 성공한 적도 꽤 있어서 친한 사람들에게는 자랑스럽게 떠들고 다녔다고 한다.[8] 참고로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의 특성 중 하나가 문란하고 복잡한 이성관계인데 중혼경력이 있는 사람들도 많다.[9] 참고로 네번째 아내와 동거 하면서도 다른 내연녀를 만들었으며, 범행 당시에도 여자친구가 있었다. 사람을 잘 꼬드기며 인간을 소유와 지배•통제 대상으로 보는 사이코패스의 특성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네 번째 아내와 장모 앞으로 거액의 생명보험을 든 지 얼마 안 돼 그들을 방화로 살해[10], 보험금 4억에 달하는 재산을 가지게 되었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의 말에 따르면 강호순의 본질은 숙련된 보험사기범이다.
2006년 9월 강원도에서 실종된 정선군청 여직원 윤모(당시 스물세살)씨 실종사건도 강호순의 행적을 따라가는 도중 드러난 추가 범행이다. 공식적으로 첫번째 희생자라 하겠다. # 윤 모 씨의 오빠는 경찰이 되었다고 한다. 인터뷰 내용 중 "강호순을 만나게 된다면 딱 이 한 마디를 전하고 싶어요. 너는 아무 죄 없고 알지도 못하는 내 동생을 죽였지만 나는 경찰이 되어서 네 가족을 지키고 있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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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유명한 강호순 사진.'''[11]
개 농장을 했는데 이 사진은 자신의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찍었을 뿐이고 실제로는 이 사진을 찍고 나서 '''잡아먹었다고 한다.''' 거기다 농장에서 키우던 수십 마리의 시베리안 허스키를 추운 겨울에 먹이도 주지 않고 동사시킨 것도 알려졌다. 그래도 마을 사람들에게는 좋은 사람으로 생각되도록 철저하게 위장하며 살아온 듯하다. 엄인숙과 마찬가지로 주위에는 매우 좋은 인상을 주었다. 그냥 좋은 사람 정도가 아니라 철저히 신뢰를 쌓았다. 동네 주민들 중에는 강호순이 '사위나 동생 삼고 싶을 정도로 싹싹한 성품에 괜찮은 사람이었다' 증언하는 일이 많았다.[12]
하지만 밤이면 강호순은 1세대 구형 에쿠스무쏘를 타고 희생양을 찾아 나섰다. 강호순이 교활했던 점은 희생자들의 눈에 잘 띄는 차량 앞좌석 쪽에 '개와 찍은 사진' 등을 놓아 그들을 안심시켰다는 것이다. 미국의 연쇄살인범 게리 리지웨이가 쓴 수법을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주로 추운 겨울 버스가 잘 오지 않는 정류장에 홀로 있는 여성에게 다가가 차를 태워준다고 하고[13], 여성들을 데려가 강간 후 목을 졸라 살해하고 암매장해왔다. 이때 희생자의 손톱을 가위로 잘라 자신의 혈흔을 남기지 않고 범행에 사용된 1세대 구형 에쿠스와 무쏘를 소각하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내 얼굴 공개되면 자식들은 어쩌라고?"''' 식 항의를 했다고 한다. '''"내 범죄를 책으로 써서 자식들에게 인세를 주겠다."'''는 말도 했다. 하지만 체포 이전 가족들 생활을 보면, 자식 교육에는 별 관심이 없이 적당히 용돈 주고 '너희들이 알아서 사 먹어라' 하는 식으로 신경 끄는 타입이었다. 실상 가족들에게도 별 관심 없었다고 보는 편이 맞을 듯. 이를 입증하는 사실이 강호순의 아들이 2007년 가출 후 절도 행각을 벌였다는 기사가 나왔는데 강호순이 제대로 된 아버지라면 자식이 가출까지 했을까 곱씹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 형제나 자식들도 아버지(강호순)가 엄청나게 못된, 용서받지 못 할 잘못을 했다고 생각한다며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러한 강호순의 모습은 그야말로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의 모습으로, 유영철보다도 훨씬 과거 사이코패스들 구속 후 보인 행동 양태와 닮아있다. 그런데 전문가 중에는 소시오패스라고 보는 사람도 있는 듯하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위에서 언급한 항의와 달리 실제로는 가족을 걱정하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4. 그 후


2009년 4월 9일 검찰에 의해 사형 구형이 나왔다. 그리고 결국 4월 22일 수원지방법원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되었다.
이에 강호순은 사형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그것도 변호인과 상의없이 자기가 직접 항소장을 작성해서 항소했다. 단, 구속피고인이 변호인과 상의없이 직접 항소장을 작성해서 제출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므로 그렇게까지 특기할 만한 사항은 아니다. 그러나 2009년 7월 23일 서울고등법원 항소심에서도 사형이 선고되었고[14] 이후 상고를 포기. 사형이 확정되어 현재는 사형수로 생활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막상 강호순을 구치소에 수감시켜 놓았더니 뻔뻔하게 마치 자신이 왕이 된 것처럼 행동했다는 것이다. 담당 형사 한춘식 경위가 강호순이 어떻게 살고 있나 궁금해서 면회를 가봤더니 완전히 가관이었다. 키가 190cm가 넘는 교도관에게 끌려오는 데도 피식피식 웃으며 오고 담당 형사의 질문에 매우 성의 없게 대답하는가 하면 뉘우치기는커녕 자신의 행동들이 잘했다는 식으로 일관했다.
김복준 형사에 의하면 화성 여대생 살인 사건 등 강호순의 짓으로 추정되는 사건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심증은 있으나 물증은 없고, 강호순은 매우 느글느글한 인물로 명확한 증거를 들이대기 전에는 절대로 추가 범행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밝히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강호순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고 그중 여성이 많았기 때문에, 불쾌감을 느낀 나머지 많은 사람들이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 사회적으로 안 좋은 인물과 동명이인인 사람들이 개명 신청을 하면 허가율이 꽤 높으며, 그런 사유로 허가를 받아낸 사례가 이따금 있었다. 기사
2014년 4월 근황이 공개되었다. 유영철과는 다르게 구치소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하며 조각에 상당한 소질이 있다고 한다. 취미로 하기에는 아까울 정도 실력이어서 서울구치소 교도관들도 놀랐다고 한다. # 변희재의 구속 초기 변희재가 수용된 바로 옆방에 강호순이 있었는데 교도관이 직접 그에게 변희재의 적응을 도와주라는 부탁을 했다는 일화가 있는 것으로 보아 구치소에서 '모범수'로 대우받고 있다고 추정해볼 수 있다. 대한민국은 1997년 12월 30일 이후 사형이 실제로 집행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실질적인 사형 폐지국가다. 하지만 모범수 등으로 출소가 가능한 무기징역과는 다르게 사형은 죽을 때까지 나올 수 없기 때문에 강호순은 남은 일생을 감옥에서 보낼 것이다.
김윤희 프로파일러에 따르면 여성 수사관들에게 특히 매우 능글맞은 태도를 견지했다고 한다. 여성 경찰들과 눈을 맞춰가며 능글능글 말을 이어나갔고, 남성 경찰들에게는 남자로서 자신의 매력을 과시하며 자랑했다. 즉, 강호순은 끝까지 참회하지 않은 사이코패스였다.
강호순은 상당한 달변가이자 기만적인 사이코패스로 권일용 프로파일러 교수가 라디오 스타에 출연해 언급하길 처음 교도소에서 그와 대면했을 당시 '''"나하고 얘기하려면 물을 먼저 떠 오라."'''고 했다는데 사이코패스의 다른 사람을 통제하고 싶어 하는 심리라고 설명하며 이에 넘어가지 않고 강호순에게 "난 당신 물 떠다 주는 사람 아니다. 내가 필요하면 그때 가져다준다."라고 맞받아치며 면담을 했다고 한다. 1분 30초부터
성격, 범행 수법 탓에 에드 켐퍼와도 비교된다. 실제로 에드 켐퍼는 교도소에서 공예를 했었으며, 프로파일러들과 경찰들에게 자신감을 보이며 깔보는 듯한 언행을 하기도 했다.
2019년 10월 27일, 그것이 알고싶다 1188회에서 최근 강호순의 얼굴이 공개되었다.

5. 둘러보기




[1] 직업을 여러 번 바꾸었고 검거 당시엔 스포츠 마사지사로 일하고 있었다.[2] 여담으로 검거 후 서천 카센터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수사를 받기도 했었다. 사건 당시 서천의 해당 카센터 인근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현재 유력 용의자가 따로 있으며 강호순과 관련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3] 여담으로 이 사건은 2007년에 특명 공개수배의 첫방송 때 다뤄졌다.[4] 화성 연쇄살인 사건, 강호순 사건 등을 수사했던 하승균 전 형사는 강호순을 이 사건의 범인이라 직접적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 [5] 이때 불끈 소방관 중에 강호순의 친구가 있었는데 강호순이 불 꺼줘서 고맙다면서 족발을 사줬다.[6] 강호순의 옷에 묻어 있던, 약 10억 분의 1로 희석된 피해자의 혈액이 발견되어 증거가 되었다! 이는 이형호 유괴 사건,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 등 여러 미제로 남은 사건에 의해 대한민국 과학수사의 수준이 한층 높아졌음을 알려 준다.[7] 심지어 차 옆좌석에 그 친구 본인을 태운 채로 한 적도 있어서 직접 본 적도 있다고 한다.[8] 그래서 그와 특별히 친했던 동네지인들이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한 인터뷰에서는 강호순이 잡히고 나서 돌이켜보니, 그가 헌팅을 성공하는 날에는 그 여성과 성관계를 하고 범죄를 안 저지르고, 실패할 거 같으면 목적지까지 태워만 주겠다고 하고 범죄를 저지르는 식의 패턴이었을 것이라 확신에 가까운 태도로 추측하기도 했다.[9] 당연히 이성관계가 문란하거나 중혼경력이 있다고 해서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라는 뜻은 아니다. 게다가 엄밀히 따지면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라는 것은 실제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얼굴이 잘생겨서 여자가 따르거나 호색한이라거나 하는 개념과는 거리가 있다는 얘기. 이런 부류 사람들에게 여자나 가족, 자식이라는 것은 자신의 소유물 개념으로 일반인이 누구를 감정적으로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과 개념 자체가 다르다.[10] 강호순은 해당 혐의에 대해서 완강히 부인했지만 검찰은 강호순이 방화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냈다. 보험사기는 그렇다 치고 네 번째 부인을 죽일 목적으로 방화를 저지른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11] 1998년에 찍은 사진이다.[12] 이는 정말 그런 사람도 많지만 강호순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가 이미지 메이킹의 형태로 이러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게 특징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13] 여성들이 순순히 차를 탄 것에 대해 피해자의 유족들이 의심하는 점도 있었다. 강호순의 단독 주장이기도 하니 주의가 필요하다. 희생자들이 전원 아담한 체격이었기 때문에 용이한 제압과 납치가 쉬웠을 수 있다. [14] 2019년 3월부터 경기남부 일원은 수원고등법원이 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