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 무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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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angYong MUSSO'''[1][2]
'''Mercedes-Benz MUSSO BOXER'''[3][4]
'''Tagaz road partner'''[5]
스페인어로 Musso는 '여성의 음부(부쏘)'라는 뜻이었기 때문에 스페인어권 국가에서는 '코란도 훼미리'라는 이름으로 수출되었다.
차명이 유럽(영국)에서는 굉장한 인지도와 명성을 가지고 있어 코란도 스포츠와 렉스턴 스포츠의 판매량을 올리기 위해 '무쏘'라는 이름으로 시판되고 있다.
1993년~1994년 쌍용 무쏘 광고 모음. 첫 번째 광고 마지막에 무쏘를 느린 악센트로 발음하는 부분이 압권이다. 덧붙여 첫 번째 광고에서 들리는 엔진음은 실제 벤츠의 엔진음이다.
1996년 당시 무쏘 홍보 영상.
1997년 후반 제작 광고. [9]
1992년은 쌍용자동차에게 암울했던 해였다. 이전 해인 1991년 9월에 현대정공이 갤로퍼를 출시하면서 순식간에 SUV 시장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갤로퍼는 미쓰비시 자동차의 파제로를 기반으로 했던 만큼 신뢰도가 높았던데다가 디자인이나 내장재도 당시 쌍용자동의 주력차종이였던 코란도 훼미리에 비해 훨씬 고급이었고, 그 당시에는 구형 코란도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특히 코란도의 엔진에 참 문제가 많았는데, 쌍용자동차도 당시에는 참 암울했던 것이 처음에는 엘프 엔진이라고 불리는 일본 이스즈자동차의 4BA1 2.8리터 디젤 엔진을 사용했지만 용도에 비해 성능이 너무 과분하여 다운그레이드 하면서 이스즈의 C223 엔진과 변속기를 사용했다. 그러다가 파워트레인 국산화를 위해 대우중공업에서 만든 DC23 바네트 엔진(C223을 라이센스 생산한 엔진)[10][11] 에 국산 통일중공업(현 S&T중공업)의 변속기를 사용했지만, 이번에는 대우중공업 노사 분규 문제 때문에 한동안 엔진을 공급받지 못해서 코란도의 생산이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중간에 잠깐 푸조의 엔진을 공급받아 쓰기도 했다. 핵심은 당시의 코란도는 잔고장 투성이었던 데다가 고치기는 정말 거지같았다.
사실 갤로퍼의 4기통 2.5리터 디젤 엔진도 그다지 좋은 엔진이 아니긴 했지만 당시의 갤로퍼는 출시 초기라 아직 퍼질 때는 아니었고 설령 고장이 나도 갤로퍼는 '''부품 가격이 코란도에 비해 꽤 저렴했다.'''
게다가 현대자동차의 광고 물량공세도 어마어마했다. 결국 성능, 서비스망, 정비성, 부품가격, 디자인.. 뭐 하나 갤로퍼랑 상대가 되는 게 없었으니 코란도 시리즈 하나에 목 매달고 있는 쌍용자동차가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결국 쌍용자동차는 주저앉고 자동차 업계가 정리되나 싶었다. 그러나 얼마 후 일본의 AWD 승용차 전문 메이커인 후지중공업과[12] 트럭, SUV 전문 메이커인 이스즈도 받아내지 못한 기술 제휴를 자동차 본좌의 나라 독일로부터, 그것도 그 유명한 벤츠로부터 받아오는 데 성공한다. 그러고 보니 체어맨 역시 벤츠의 엔진인데, 이 이야기는 체어맨 관련 책에 참고한다. 당시 무쏘에 쓰였던 OM602N/A 엔진은 W124 E250D 에 들어가던 것을 기초로 스프린터 등의 상용형에 들어가던 2.9리터 사양을 채용했다. 원래는 쌍용이 최고급 SUV를 만들어 보겠다고 벤츠에게 OM603 직렬 6기통 디젤엔진 장착을 요청하지만 거부당한다.[13][14]
무쏘가 출시되기 전 쌍용자동차는 슬슬 떡밥을 던지더니 1993년 8월 대놓고 메르세데스-벤츠 엔진이라고 광고하면서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는데, 이는 쌍용자동차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다. 다만, 당시 현대자동차는 미쓰비시(상용차는 후소), 기아자동차는 마쓰다(상용차는 히노), 대우자동차는 GM 계열(상용차는 MAN/이스즈)에서 기술을 도입해 쓰고 있었고, 웬만한 사람은 그런 사실을 다 알던 시절이라 당시 기준으로는 딱히 책잡힐 일은 아니다. 하지만 무쏘 초기에 직수입 엔진을 달고 나온 생산분(1994년 초반까지)은 엔진 헤드에 아예 벤츠의 로고였던 삼각별이 박혀있고, 엔진 룸 여기저기에 Mercedes-Benz라는 각인이 산재해 있다. 엔진 조립 생산을 시작한 후에는 헤드의 각인이 Ssangyong으로 바뀌었다.
국산 4WD 차량 중 처음으로 ABS를 장착했으며, 국내 최초로 전자식 4WD 전환 스위치를 채용했다. 경쟁차종인 갤로퍼는 오리지널 미쓰비시 트랜스퍼 케이스를 장착하여 2H, 4H, 4L 전환을 위해서는 주행 중인 차량을 멈춰야 했으며, 다시 2륜구동으로 변환하기 위해서는 후진을 해야 했지만, 보그워너의 트랜스퍼 케이스를 장착한 무쏘의 경우는 시프트 온 플라이 시스템을 채용하여[15] 2H에서 4H로 전환할 경우 시속 60~70km 속도에서는 주행 중에도 전환할 수 있었다. 물론 시프트 온 플라이가 장착되었다고 해서 로우레인지까지 사용할수는 없었고, 무쏘 역시도 로우기어로 전환할 때 차량 정지 상태에서 해야하는 점은 같다.
등화관제등이 달린 차량 중 하나이다.
무쏘의 엔진은 당시에는 생소했던 벤츠의 직렬 5기통 디젤 엔진이었고 트랜스 미션은 체코제였다. 이는 유럽에서는 디젤 모델에 한해 흔한 구조로 고속주행 시에도 소음이나 진동에 유리했다. 따라서 갤로퍼에 비해 장시간 고속주행에도 소음면에서는 안정적이었다. 물론 그 때 당시의 이야기이다.
본좌의 나라에서 온 엔진답게 내구성은 가히 최강이라 할 수 있는데 한국도로공사에서는 무쏘를 가지고 무려 누적 88만km를 무보링으로 주행했다. 그것도 무보링으로 80만을 넘은 도로공사 차량이 한두대가 아니라 10대가 넘는다.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가 대략 38만km쯤 되니 '''지구에서 달까지 왕복한 거리보다 더 긴 거리'''를 달린 것이다.
OM602 엔진은 본디 승용형 디젤 엔진이라 다른 상용 디젤보다도 최대 토크 회전수 시점이 높았다. 2.9리터 버전의 경우 상용형으로 개선했음에도 '''2500 rpm''' 부근에서 최대토크가 나왔다. 여기다 DMF(듀얼 메스 플라이 휠)를 기반으로 개발된 엔진이나 쌍용의 경우 원가절감의 필요로 인해 국내용의 경우 SMF(싱글 메스 플라이 휠)을 적용한 탓에 수동변속기 모델은 최악의 말타기 현상을 보였다.
자동변속기는 토크 컨버터가 엔진 충격을 완화해 주는 역할도 하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었다.
무쏘는 엔진 내구성이 뛰어났는데, 당시 OM602 엔진을 생산하던 시절의 벤츠는 '오버 엔지니어링' 혹은 '과잉품질' 이라는 이명을 얻을 정도로 원가가 다소 올라가더라도 품질과 신뢰성을 극도로 추구하던 시기였다. 실제로도 골수 벤츠 매니아들도 이시기의 벤츠가 엔진과 변속기의 내구성이 가장 뛰어났었던 시기라고 증언할 정도다.
품질 면에도 상당히 신경을 썼으며,[16] 개발 당시에 미케니컬 프로토 타입 10대, 프로토 카 46대, 파일럿 카 90대 등의 146대의 테스트 카가 제작되었다.
이 외에도 그간 일본제 엔진에 기반을 둔 국산 디젤 엔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점이 많았는데, 효율성이 높으면서도 구조가 간단한 직타식 밸브 리프트 시스템을 사용했고 유압으로 밸브와 태핏의 간격을 자동으로 조절하는 HLA를 적용했으며, 국내에서 주로 쓰이던 분배식이 아닌 독립식 플런저등 많은 요인이 있어서 내구성이 뛰어난 편이었다. 벤츠가 자랑하는 실린더의 크로스해치 마무리 가공역시 들어가 있었다. 간혹 오일이 많이 들어가서 그렇다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기본적으로 직렬 5기통이기도 하고 가장 큰 이유는 엔진 주변장치를 전부 내장해 버려서 그런 것이다. 현대와 기아의 경우 진공펌프를 발전기 뒤에 장착하지만 OM602, OM601엔진의 경우 엔진에 내장해서 타이밍 체인으로 직접 구동시킨다. 플런저의 경우도 VE타입의 경우 경유로 윤활하지만 무쏘의 PES타입 플런저는 작동부는 모두 엔진오일로 윤활하고(거버너 타이밍 디바이스까지) 플런저 내부 피스톤만 경유로 윤활한다. 여기에 타이밍 벨트가 아닌 타이밍 체인도 듀얼링크로 오일이 많이 묻어나니 오일 주입량이 많은 것이다.
무쏘가 출시된 지 20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는 그저 좋았던 자동차로만 인식되어 있지만 사실 어두운 면도 있다. 그것은 바로 절망적인 수준에 가까웠던 초기 품질이다.
1990년대 당시 쌍용자동차의 품질은 타 메이커에 비해 상당히 떨어졌던 것이 사실이다. 더 볼 것도 없이 쌍용이 무쏘 이전에 생산했던 구형 코란도 시리즈(지프, 훼미리)는 갓 공장에서 출고된 물건을 살펴보면 철판이 매끄럽지 못하고 곳곳이 울퉁불퉁할 정도로(...) 열악한 마감을 자랑했다.
이랬던 메이커에서 하루 아침에 부유층들의 니즈를 만족하는 고급 SUV를 뽑아내려니 온갖 시행착오가 나타났다. 분명 공장에서 생산함에도 불구하고 수공업품마냥 품질이 들쑥날쑥(...) 일단 초기 모델의 경우 에어크리너 설계결함으로 뜬금없이 시동이 꺼지며 그대로 퍼져버리는 사례도 나타났고, 소음을 줄이고자 도입했던 케이블 방식 수동변속기 역시 더러운(...) 변속감과 케이블이 절단되어 기어 변속이 완전히 불가능해지는 문제도 있었다[17] 플라스틱 위주의 내장재는 조립 불량으로 인한 단차는 애교수준이다. 4륜구동 관련 문제도 종종 나타났는데, 보그워너의 트랜스퍼 케이스는 일단 전자식으로 작동했지만 보그워너가 프리휠 허브까지 공급해주는 업체는 아니었기 때문에 프리휠 허브가 작동되는 방식까지도 전자식이 아니었다. 당시 차량의 각종 부위들을 전자제어하기 이전의 벤츠는 진공제어방식을 즐겨 사용했는데[18] , 쌍용에서는 이 부분을 응용하여 프리휠 허브의 작동을 진공으로 제어하는 방법을 적용해 보았으나, 고무호스를 연결하는 닛플이 갈라져서 진공이 샌다거나, 호스가 지나가는곳의 차체철판이 날카로워 호스가 찢어지는(...)등의 각종 이유로, 4륜 전환이 안되거나 2륜으로 전환 시 후진을 해야만 허브가 이탈되는 등 초기 품질 면에서는 아쉬운 부분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는 생산이 안정기에 접어드는(95년 이후) 때부터는 사그라들었다.
우선 무쏘는 단일 모델로 판매되기는 했으나 크게 구형과 신형, 더 세분화하면 구형, 중기형, '''대우 무쏘''', 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초기형은 대략 1993년부터 1995년까지 생산된 모델이고 중기형은 1996년부터 1998년까지 생산된 모델로 601, 602EL, TDI 등의 모델이 있었다. 초기형과 중신형은 외관/내장이 모두 유사하나 테일램프, 전면 범퍼가드와 내장 일부가 구형과 다르다. 대우 시절의 경우 중기형과 내장은 유사하지만[19] 보닛의 디자인이 유선형으로 바뀌고 테일램프가 변경되었다. 신형의 경우는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생산된 모델로 종전 논터보를 삭제하고 터보 차저를 채택한 230, 290 모델이 등장했다. 290은 602TDI 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1993년부터 1995년까지 판매된 전기형은 바디 하단 가니쉬 및 범퍼가 차체 색상과 관계 없이 무광 은색 컬러였고 차체 측면을 가로지르는 물결 무늬 스티커가 부착되어 있었다. 국내 사양에서는 2001년식 이전까지 팬더에 방향지시등이 적용되지 않았지만 수출 모델에는 구형부터 적용되었다. 또한, 앞 범퍼 양쪽에 장착된 방향지시등 또한 내수용은 그 자리에 등화관제등이 달렸다. 수출 모델은 구형부터 팬더 및 범퍼의 방향지시등이 적용되었는데 내수형의 경우 1996년부터 1998년까지 판매된 중기형부터 적용되었으며, 투톤 컬러가 삭제되고 테일램프 방향지시등 커버가 노란색으로 변경되었다. 앞 범퍼의 등화관제등은 중기형 이후에 삭제되었지만 트렁크 도어 하단 양쪽에 구형부터 적용되었던 등화관제등은 98년식 모델까지 그대로 유지되었으며, 등화관제등이 달려있었던 마지막 모델이다.
수출명: Mercedes-benz BOXER SD300[23]
ABS ACS가 기본 장착이었다. 엔진은 벤츠 E200 M111엔진을 그대로 장착했고, 엔진밸브는 DOHC 16V였다.
실제 연비는 시내 6~8 km/L, 고속도로는 10~12 km/L의 연비로 소문보다는 나쁘지 않았고, 무거운 차체로 출발은 느렸만 가속이 되면 주행감이 좋아졌다. 추월 가속력은 배기량이 낮아 답답했지만 최고속도는 185 km/h였다.
외부의 디자인은 무쏘 TDI와 동일했고, 휠은 15인치, 타이어는 255-70-R15의 한국타이어 제품이 장착되었다. 1997년 모델부터는 16인치 휠에 235-65-R16타이어로 변경되었다.
내부는 가죽시트에 뒷좌석은 6:4분할로 완전히 접혀서 트렁크 적재공간를 용달차 수준으로 늘리는 마법을 보인다.
가솔린 모델임에도 불구하고 수동변속기 모델이 있었다.
뉴 무쏘로 페이스리프트된 이후에는 2001년까지 230SR이라는 트림명으로 판매되다가 단종되었다.
파트 타임 식이 아닌 풀타임 4륜 구동으로 나왔으나, 오늘날의 AWD(All Wheel Drive)와는 다른 것이다. 요즘의 AWD는 기본적으로 전륜(베라크루즈, 싼타페, 윈스톰)이나 후륜(모하비, 쏘렌토 1세대 등) 십중팔구의 토크를 한쪽으로만 구동하되, 차량 주행에 슬립 발생 시 평소에 토크가 많이 들어가지 않는 바퀴에도 동력을 추가 배분하는 데 반해 이쪽은 기본적으로 전후 구동 배분을 50:50으로 가져가되, 노면이나 회전 특성에 따라 최대 전후 구동배분을 35:65로 가져가는 구조였다. 아우디 콰트로의 기계식 사륜구동과 비슷한 개념이다.
쉽게 말해서 요즘의 AWD가 평소엔 2바퀴만 굴리고 필요할 때에만 4바퀴 구동을 하는 반면, 이쪽은 줄창 4바퀴를 굴리는 구조이다. 그래서 연비가 정말 거지같았다(공인연비가 6.8km/L). 전자는 연비와 타협한 구조이고 후자는 기능만 추구한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최고시속은 193km/h[[24] .
기능만 놓고 따지면 무쏘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까지 아시아 랠리에 참가하고 국내 각종 SUV 레이싱을 석권하는 모델이 바로 무쏘 3200이다. 모하비가 나오기 전까지는 국내에서 프레임 바디를 채택한 SUV 차량 중 가장 빠른 차였다.
참고로 당시의 경쟁 모델인 갤로퍼 가솔린 V6 2,972cc SOHC 모델이 최대토크 26.0kg.m(4,000rpm)에 최대출력 182마력이었고, 한참 후에 생산된 테라칸 VX350(3,497cc)조차도 최대토크 32.0kg.m(3,500rpm)에 최대 출력이 207마력 최고속도 178km/h 이었으니, 당시로서는 비교 가능한 차량이 없었다.
하지만 극악의 연비와 높은 세금에다가 자동차 가격이 어마어마하게 비쌌기 때문에[25] 한국에서는 거의 판매되지 않고 대부분 수출되었다.
수출명: Mercedes-Benz BOXER SG320[26]
뉴 무쏘로 페이스리프트된 이후에는 2001년까지 320LX라는 트림명으로 판매되다가 단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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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2월에 3.2리터 가솔린 모델(IL6 3200)을 기반으로 출력을 약간 올리고 AV 시스템 및 고급 내장재를 비롯한 고급 옵션으로 도배한 500대 한정판 모델이었다. 가격은 '''4,950만 원'''이었다. 당시에는 가장 비싼 국산차였으며, 에쿠스의 전임자인 다이너스티 롱 휠베이스 리무진 모델보다도 훨씬 비쌌다. 한국은행경제통계시스템에서 96년도의 4950만원을 2019년도의 화폐가치로 환산시 '''9천만원'''에 가까운 금액이었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말이 좋아 9천만원이지, 당시의 경제 수준을 생각하면 체감 가격은 지금의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포르쉐 카이엔, BMW X5, 아우디 Q7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의 대형 SUV와 맞먹는 레벨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28]
2019년 현재 국산 SUV 중 최고가인 모하비도 옵션을 죄다 때려박아야 5천만원을 겨우 넘는 것을 감안하면 어마무시한 가격임이 분명하다.
외장 컬러는 브라운 하나였는데, 이는 각도에 따라 검은색과 갈색이 조금씩 다르게 보이는 듀폰제의 엄청나게 비싼 페인트였다.
이렇게 비싼 차인 만큼 쌍용자동차 지점장이 직접 차를 배송하는 등 프리미엄 마케팅을 선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SUV에 가솔린 엔진을 선호하지 않는 한국 분위기[29] +고급 세단보다도 더 비싼 가격에 SUV를 살 사람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아예 대한민국에는 '''100대'''만 팔기로 정해 놓았으며, 광고에도 그렇게 명기했다. 한정 생산된 500대 중 400대는 수출되었으며, 태국 240대, 독일 70대, 시리아 13대, 이탈리아 10대가 출시 전에 이미 예약 및 배정이 되었다.[30][31] 최고 시속은 일반 3.2리터 모델보다 조금 더 빠른 196km/h를 기록했다. 들리는 말로는 대한민국 판매분의 1/2 정도를 주한 미군 관계자들이 사 갔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100대도 다 팔지 못하고 남은 물량도 수출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고로 희귀 차종 확정이다.'''
쌍용 뉴 무쏘 2004~2005년식 모델(왼쪽)과 2001~2003년식 모델(오른쪽)
외관상 두 모델의 차이는 사이드 리피터의 색상과 라디오 안테나 형상이다.
1998년 7월에는 연간 세금이 화물차 세금인 28,500원밖에 안나오는 2인승 밴 모델이 추가, 1999년 5월에는 당시 연간 세금이 65,000원인 승합차 세금으로 책정되었던 7인승 모델이 추가되면서 선택의 폭을 넓혔다. 7인승 모델을 한정으로 스페어 타이어가 트렁크 안에 배치되었다.
2000년 6월에는 판매량이 적은 5인승 모델이 단종되고, 외관의 경우 신형 범퍼가드와 안개등, 사이드스텝으로 변경되고, 기존의 원톤 컬러에서 투톤 컬러로 변경 됨과 동시에 사이드 가니쉬가 추가되고, 실내 내장재와 스위치 디자인이 완전히 변경되고, 230SL과 290SL을 한정으로 15인치 휠의 디자인이 변경되고, 290SR 트림을 한정으로 기존의 15인치 휠에서 16인치 휠로 변경되고, 4기통 터보 2.3 디젤 승용 모델을 한정하여 4WD 사양이 삭제된 2WD 사양인 CT 모델을 추가한 2000년형 뉴 무쏘를 출시하였다. 이때부터는 5인승 모델이 삭제되어 7인승 모델만 나오기 시작했다.
2001년 2월에는 판매량이 적은 가솔린 모델인 가솔린 4기통 2.3 모델과 가솔린 6기통 3.2 모델이 단종되고, 측면 옐로우 사이드 리피터가 추가되고, 자동변속기의 기어노브가 기존의 가죽 기어노브에서 우드그레인 기어노브로 변경된 2001년형 뉴 무쏘를 출시하였다.
2002년 1월에는 5기통 터보 2.9 디젤 모델의 경우 290SL 트림을 삭제하고 모든 트림을 290SR 트림으로 통일하고 핸즈프리 등의 편의사양이 추가된 2002년형 뉴 무쏘를 출시하였다. 이때부터는 4기통 터보 2.3 디젤 모델의 경우 230S 트림은 4WD 사양이 삭제되고 2WD 사양인 CT 모델만 나오기 시작했다.
2003년 3월에는 사이드 리피터 컬러와 우드그레인 컬러, 라디에이터 그릴 디자인 등이 변경되고 스페어 타이어의 위치가 트렁크 안에서 하부로 변경된 2003년형 뉴 무쏘를 출시하였다.
2004년 1월에는 강화된 배기가스 규제로 인해 4기통 터보 2.3 디젤 모델이 단종되고, 5기통 터보 2.9 디젤 모델만 남아서 엔진 EGR 시스템을 진공식에서 전자식으로 변경하였고, 기존의 통일중공업(현:S&T 중공업)제 5단 수동변속기에서 현대 트랜시스제 5단 수동변속기로 변경하고, 290SR 트림의 등급이 각각 FX5, FX7 트림으로 교체된 2004년형 뉴 무쏘를 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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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 뉴 무쏘 2000~2001년식 모델
사실은 뱃지만 바꾼 230도 많다.
공식적으로는 2001년까지 생산되었지만 2004년경 '3200'이라는 레터링을 달고 주한미군 납품용으로 약 50대정도가 추가 생산되었다. 2013년경부터 불하 차량들이 나오고 있다.
구형과는 다르게 가변적으로 네 바퀴에 구동력을 자동으로 분배하는 Torque On Demand(TOD) 트랜스퍼 케이스가 장착되어서 연비가 아주 조금은 나아졌다. [33]
제원은 290 시리즈 참조.
렉스턴이 출시된 이후 단종되리라 예상했던 뉴 무쏘가 단종되지 못하고 나온 모델이다. 강화된 배기가스 규제로 파워트레인을 기존의 기계식 플런저 방식에 전자식 EGR을 장착한 OM662 엔진으로 교체되었으며, 기존의 통일중공업(현:S&T 중공업)제 5단 수동변속기에서 현대 트랜시스제 5단 수동변속기로 변경하여 2004년~2005년에 생산되었다. 290SL=FX5, 290SR=FX7 이라고 봐도 무방하지만 290 시리즈보다 옵션이 빈약하다. 그리고 이 시기부터는 스페어 타이어도 풀 사이즈가 아닌 미니 사이즈다.
당시 쌍용자동차는 렉스턴을 출시하면서 뉴 무쏘를 단종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나, 단종을 앞두고 있던 뉴 무쏘가 막판에 뒷심을 발휘하면서 2년 연속 SUV 판매 1위, 3년 연속 4륜 구동 브랜드 파워 1위를 달성하는것도 모자라 렉스턴이 출시되기 몇 일 전인 2001년 8월 27일에 한국도로공사 소속 무쏘가 88만 7천 km를 엔진의 보링 없이 주행한 사실이 보도되어 무쏘의 인기가 꺼지지 않자 뉴 무쏘 후속으로 내려던 렉스턴을 무쏘 윗급으로 내면서 무쏘를 병행판매 하게 되었고, 렉스턴의 초고급화 마케팅 전략도 잘 먹혀들어가 무쏘를 단종하기 애매해졌다. 결국 뉴 무쏘를 수년간 더 유지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그래서 잠시 생산했다.[34] 이미 이 시기에는 무쏘가 '늙은' 이미지가 되었고 무쏘 스포츠에게도 팀킬당했기 때문에 판매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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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말 쌍용자동차가 대우그룹에 인수되고 1999년 대우그룹의 공중 분해로 다시 쌍용자동차가 되면서 1999년~2000년 생산된 무쏘는 대우자동차의 엠블렘을 달고 생산되었다. 당시 쌍용자동차는 무쏘와 체어맨을 주력 생산했던 반면, 대우자동차는 이렇다할 고급 차량이 없었던 만큼 두 자동차 회사의 이미지 차이에다가 하필이면 이 시기에 무쏘의 많은 부품이 국산화 되었던 만큼 대우 무쏘는 뭔가 나쁘다는 인상이 있었다. 게다가 품질 문제도 품질 문제지만 그릴 때문에 스타일도 어울리지 않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오죽하면 바퀴 큰 누비라 같다고 등한시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38][39]
대표적인 문제가 플런저 문제다. 기존 쌍용에서 쓰던 메르세데스-벤츠 플런저를 쓰던 것을 대우 체제로 들어오면서 플런저 가격을 1/3로 낮춘 국산 플런저를 사용한 적이 있었다. 국산 플런저를 쓰면서 가격은 1/3이 됐지만, 내구성이 1/3 밑으로 떨어지게 되면서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이 증상의 명칭은 빅셰이크. 플런저 수명이 다 할 즈음에 기어 레인지를 D 로 둔 상태에서 브레이크를 밟으면 말에 탄 것과 같이 미친듯한 진동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쌍용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의 운전 습관이 정차 시 기어 중립이다.
게다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2.3리터 모델이 대우자동차의 인수 후 부활했기 때문에 무쏘의 이미지 악화는 필연적이었다. 대우자동차로서는 당시 터보 인터쿨러가 등장한데다가 비싼 무쏘를 어떻게든 더 보급해 보고자 하는 의도로 한 것이었겠지만 이는 이미지만 나빠지는 짓이었다. 게다가 2.3 인터쿨러는 문제도 많았다. 앞에 나온 빅셰이킹 문제도 2.9 인터쿨러는 꽤 덜한 편이다. 2.3은 본넷이 흔들리는 수준으로 심하다. 하여간 현재 대우자동차 시절의 무쏘는 보기도 힘들고, 왠지 모르게 중고차 시장에서 대우 엠블럼이 달린 무쏘[40] 는 상대적으로 인기가 낮다. 대우 그릴에서 쌍용 그릴로 뚝딱 교환한 사람들도 많다. 실제로 중고로도 기피하는 차량이다.
다만, 차량은 대우 마크를 붙이고 팔기는 했지만 실제로 만든 건 쌍용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사실은 원가절감이나 대우 로고만 빼면 2001년부터 나온 쌍용 무쏘와 차이는 없다.[41]
이것도 대우 무쏘 시절에 시작되었다. 무쏘에 장착된 자동변속기는 1994년 8월부터 메르세데스-벤츠에서 생산한 일명 'MB 미션'을 수입한 것이었는데, 대우자동차로 넘어가면서 원가도 절감하고 기계식이 아닌 전자제어 방식에 락업클러치를 탑재해 동력성능과 연비를 향상시킬 목적으로 자동변속기로 바꿀 겸 변속기를 BTRA에서 제조한 자동변속기로 바꾸었다. 가끔 초기에 생산된 뉴 무쏘 중에는 메르세데스-벤츠 기계식 4단 자동변속기를 그대로 사용한 차량도 일부 존재하는데, 무쏘 동호회에서 탐내는 얼마 없는 레어 차종이다.
그런데 이 BTRA제 변속기는 본래 '''V8 3,200cc 트윈터보'''의 고성능 엔진에 들어가는 마세라티의 3200GT, 콰트로포르테 4세대 모델처럼 끽해야 25.5kg.m에 불과한 무쏘의 최대토크에 2배에 해당하는 무려 '''50kg.m'''의 토크를 내뿜는 엔진과 짝지어져도 내구성에 별 문제가 없이 잘만 사용되던 M72기종을 약간 개선한 M74 제품[42] 이었지만 마세라티와 다르게 쌍용자동차에서는 오일 무교환 변속기라며 오일 배출구와 게이지를 없앤데다가 마세라티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허접한 구성의 오일쿨러를 장착했다. 문제는 BTRA 변속기도 40,000~50,000km마다 변속기 오일을 갈아줘야 한다는 것이며, 원래 열이 많이나는 변속기인지라 기본 냉각구성이 메이커가 요구한 만큼 구성하지 못하면 변속기의 오일 상태는 BTRA가 제시한 스펙보다도 더더욱 빨리 악화된다.
품질면에서 항상 지적받는 마세라티에서 조차도 문제가 없었던 물건이 대우/쌍용자동차로 오면서 문제가 되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대우/쌍용의 잘못이지 변속기의 품질탓으로 보기에는 매우 어렵다. 즉, 당시 존폐의 기로에 섰던 회사였던 만큼 원가절감은 당연히 불가피한 사항이었겠지만 대우자동차와 쌍용자동차는 원 제조사가 요구명시한 이 최소한의 기본조차도 전혀 지키지 않고 눈가리고 아웅식의 어거지로 자사 제품군에 맞물려ㅈ놓아 그저 차가 대충은 굴러만 가게끔 한 수준으로만 개발한 셈이다. 덕분에 BTRA제 변속기가 장착된 차량의 오너는 오일을 교환할 때마다 변속기 커버를 통째로 뜯어내야 하는 불편한 과정을 겪어야만 했고, 데이터가 쌓이기 전까지는 원인모를 고장증상에 시달려야만 했다. 덕분에 BTRA제 변속기는 고장도 많고 내구성도 약해서 자동차 정비업계의 대표적인 효자 상품이라고 통하게 되었다.
게다가 기계식 엔진에 전자식 변속기를 장착했으므로 TCU가 인식 할수 있는 별도의 가속페달 위치센서를 장착했어야 했는데, 가속페달 링키지까지 싸구려로 제작한데다[43] 쓰로틀 포지션 센서를 딱 고장난만한 위치에 장착해 놓아서 쓰로틀포지션 리셋을 약 1년마다 주기적으로 하지 않게 되면 센서 인식 데이터에서 차이가 나게 되며 시간이 지날수록 크고 아름다운 변속 충격은 보너스로 늘어나게 된다. 때문에 '''비틀어 미션'''이라는 오명까지 얻었다.
이후 이 BTRA제 변속기는 그대로 신형 2.0 커먼레일 엔진과 짝지어져 액티언과 액티언 스포츠에 사용되는데, 오일쿨러만 보강해 주면 상당한 수준의 튜닝도 무리없이 받아주기로 유명하다. 유로4 사양부터 장착된 BTRA제 신형 6단과 비교하면 신형은 가벼운 맵핑만으로도 뻗어버리는데다 각종 내구성 문제까지 보고되는 것에 반해 4단은 오히려 더 튼튼하면 튼튼했지 하드한 맵핑은 물론이고 왠만한 터빈업에도 대응이 가능하다는 평이 다수일 정도로 기본품질이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그렇게나 허접한 물건이 절대 아니다.
MB 변속기와 BTRA제 변속기를 구분하는 법은 다음과 같다.
자동변속기 레버 구조가 P-R-N-D-3-2-B이고 2와 B가 서로 수평하면 MB 변속기, 레버 구조가 P-R-N-D-3-2-1로 되어 있고(B가 아니라 1이다.) 2와 1이 서로 수평하지 않고 직각 방향으로 한 단계 내려야 하는 구조, 거기다가 W(Winter), P(Power) 버튼이 왼쪽에 있으면 BTRA제 변속기이다.
또한, BTRA제 변속기가 장착된 차량에서 TCU 고장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기어가 빠지거나 기어가 제대로 동작하지 않을 때 고장 원인으로 TCU를 꼽기도 한다. 상당히 재미있는 것이 TCU에 리비전이 #1, #2...#5, #6 까지 찾아볼 수 있는데, 리비전마다 특색이 다르다. 예를 들어 #6의 경우 다른 리비전보다 연비가 좋다고 한다. 여튼 무쏘 TCU #6버전은 폐차장에서의 핫 아이템이라고도 볼 수 있다. 또한, 미션이 망가지면 렉스턴 BTRA제 미션으로 교체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1998년 3월에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면서 기존 보그워너 사의 수동변속기도 통일중공업(현 S&T 중공업)제 국산품으로 대체하게 되는데, 이것도 BTRA제 변속기가 낫다는 말이 나올 지경으로 잘 깨져나갔다. 2004년 1월에 2004년형을 출시하면서 현대트랜시스제 수동변속기로 다시 한번 더 대체하여 변속기 문제를 해결했다.
그리고 여기서 시작된 대우자동차의 QT 변속기 전설은 크루즈와 알페온이 쭉 이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쌍용자동차 역시 자동변속기를 BTRA제를 계속 쓰다가 BTRA의 회사 사정이 어려워진 후 현재는 점차 아이신의 유닛으로 바꿔나가고 있다. 수동변속기는 차종에 관계없이 현대트랜시스의 유닛을 이용한다.
쌍용자동차에서 공식적으로 밝힌 무쏘의 후속 모델은 렉스턴이 아닌 카이런이다.[44][45]
쌍용자동차에서 같은 시기에 내놓았던 SUV(무쏘 스포츠 포함)만 4종류[46] 였던 탓에 포지셔닝이 어정쩡했던 문제가 있는데, 가격대와 차량 크기 순으로 비교할 경우 뉴 코란도의 후속은 액티언, 무쏘의 후속은 카이런, 렉스턴의 후속은 G4렉스턴 이 맞는데, 쌍용자동차의 경우 SUV 라인업의 전 모델에서 '''동일한 2리터짜리 디젤 엔진을 얹고 있는 것이 포지셔닝 혼란의 주요 원인'''이다.
같은 급의 하위-상위 모델에 얹는 것은 스포티지-쏘렌토와 투싼-싼타페에서도 하는 것이지만 쌍용자동차는 이것을 자사의 SUV 전 라인업에 박아넣은데다 후속 모델들의 특징이 애매한 이유도 있어 이게 무슨 모델의 후속인지 헷갈리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당장 SUT 모델이 있다고 액티언을 무쏘의 실질적 후속 모델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후속이 아니라 픽업 라인업을 한 단계 아래 차종으로 끌어내린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47]
게다가 가장 기본적으로 판단할만한 근거는 디자인으로, 카이런의 디자인은 디자인 초기단계부터 무쏘의 디자인에서 많은 부분을 이어받아 나온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액티언을 단종시키고 등장한 후속모델은 이전 모델의 이름을 물려받은 코란도C로, 소형 SUV의 포지션을 그대로 이어받는다.[48]
그런데 2016년에 '''코란도 스포츠의 영국 판매 사양에 무쏘의 이름을 붙이기로 결정했다. 2018년 봄에 유럽시장에 런칭하는 렉스턴 스포츠의 유럽 국가 수출명도 무쏘로 결정되면서 차급이 격상되었다.''' 2018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런칭할 예정인걸로 봐서 영국 뿐만 아니라 유럽의 다른 여러 국가에서도 무쏘 브랜드가 부활하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의 다른 여러 국가에서도 무쏘 브랜드가 부활하는 것을 시작으로 내수시장인 대한민국에서도 무쏘 브랜드가 부활할 가능성이 생겼으며 또한 2019년 초에 2013년에 개발이 취소된 중형급(D세그먼트) SUV인 D200을 대신하여 D300을 준비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고, 2019년 하반기에 수익 악화로 무기한 연기되었지만, 2020년 4월에 중형급(D세그먼트) SUV의 프로젝트명이 J100으로 변경되어 신차 개발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정일권 쌍용자동차 노조위원장과 동아일보의 인터뷰에 따르면, J100 프로젝트는 과거 쌍용차의 핵심 DNA였던 정통 오프로드형, 쌍용의 지프 스타일이라고 밝혔던만큼, 이번엔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만약 진짜로 출시가 된다면 차명은 코란도에 펫네임을 붙이거나 무쏘의 이름을 붙일 가능성이 높다.
무쏘는 국산차 중 드물게[49] 파리-다카르 랠리를 완주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1995년부터 참가해 1996년 김한봉 선수가 완주하면서 한국인 최초 완주의 기록까지 가지게 되었다. 특히 김한봉 선수가 완주한 1996년에는 무려 6대의 무쏘가 투입되어 3대가 완주하기도 했다. 여기에 1994년 이집트를 무대로 한 파라오 랠리에 202호와 205호가 참가, 202호가 클래스 챔피언에 올랐다.[50]
무쏘는 내구력이 극강이어서 전쟁 발발 시 군에서 사람들이 타던 무쏘를 군용으로 가져간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1997년~1998년 초까지 모든 4륜 구동 차량은 유사시 징발을 위해 기본적으로 등화관제등을 달고 나왔으며, 현재는 일부 차량에 한해 징발하도록 바뀌었다. 무쏘는 연식이 오래되어서 징발 명부[51] 자체에 오를 수가 없다. 즉, 무쏘가 딱히 튼튼해서 군용차로 징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 4륜 구동차들은 그냥 얄짤없이 전부 끌려가는 것이다.[52]
[image]
러시아 타가즈사에서 뉴 무쏘와 무쏘 스포츠가 Road Partner라는 이름으로 라이센스 생산되고 있었다. 무쏘 스포츠는 2도어도 있다는 듯하다.
이 차를 기반으로 한 무쏘 SUT라는 모델도 계획되다가 취소 되긴 했지만, 다행히도 무쏘 스포츠로 실현이 되긴 했다.
한편, 노무현 전 대통령이 무쏘를 이용한 적이 있으며, 세종특별자치시에 위치한 지방자치회관에 이를 전시할 예정이라고 한다.[53] 참고로 노 전 대통령의 변호사~초선 시절에는 콩코드를 탔다.
사형 선고를 받고 현재 수감 중인 연쇄살인범 강호순이 무쏘를 탔었다. #
일본에도 수출되었다. 초기에는 쌍용자동차의 일본지부가 판매를 담당했으나, 쌍용자동차가 대우자동차에 인수된 이후에는 후쿠오카현에 위치한 오토렉스에서 수입과 판매를 담당하였다.
2004년에 주한미군의 업무용 차량으로 공급된 적도 있다. #
7인승 모델은 3열 좌석이 '''뒷차와 마주보는 방향으로''' 되어있어 거기에 타다가 뒷차 운전자와 눈이 마주쳤을 때 뒷차 운전자가 아동 학대나 납치로 오인할 수 있으니 3열은 아예 탑승하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 3열의 창렬
무쏘 스포츠는 쌍용의 역대 픽업트럭 중 유일하게 견인차 개조 사례가 존재하지 않는데, 일반 SUV를 후륜오버행만 늘려 만든 것이어서 견인장비 적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기술적으로 보자면 갤로퍼 보다 분명히 우수한 차이며[54] 오너들도 대부분 이 점을 높이 평가하지만, 정작 리스토어 시장에서는 대접이 그다지 좋지 않다. 무쏘가 리스토어 열풍에 동참하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구형 쌍용 차량의 부품수급은 매우 나쁘기 때문이다.''' 그래도 벤츠 엔진의 내구성이 어디 가는 건 아닌지 아직도 적지 않은 개체들이 지금도 출, 퇴근용이나 가족용 차량, 자영업자들의 업무용 차량 같은 일상 생활용 차량으로 도로를 활보하고 있기는 하지만, 1993년에 출고된 초기 모델이 1인 신조 차량으로 오너가 애지중지하게 잘 관리해서 25년이 지나도 리스토어 하지 않고도 상태가 신차 수준으로 유지된 개체가 있는가 하면, 2000년대 이후의 후기형이 공사장에서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면서 여기저기 찌그러지고 엉망이 된 것도 있는 등 각각의 상태는 정말로 천차만별이다.
갤로퍼는 1997년도 이후의 갤로퍼2는 물론이고, 1994년식 이전의 초기형 부품도 신품 주문이 가능한 것이 있을 정도이며, 하다못해 신품 생산을 중단한 부품들도 모비스 홈페이지에서 대리점 보유 재고를 찾아보면 수십 개 씩 뜨는 경우가 많다. 현대자동차가 대기업이라는 부분도 있고, 갤로퍼의 원조가 미쓰비시 파제로이다보니 정 안되면 해외에서라도 수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55] . 반면 무쏘는 1998년 페이스리프트 모델 외장 부품 조차도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인데다 그 이전 모델(1993년식 ~ 1997년식) 부품(주로 외장 부품이나 내장재 등)은 아예 생산조차 하지 않아서 폐차장을 돌아다녀야 한다(...). 심지어는 eBay를 통하여 동남아 등지에서 부품을 수급하는 오너들도 있다.
그래도 1990년대 SUV 치고는 비교적 많이 돌아다니고, 엔진 스왑도 활발한 편이다. 카이런이나 뉴 렉스턴 엔진은 기본이고 모하비 파워트레인, 심지어 RB25 엔진[56] 을 이식한 무쏘도 있을 지경이다. # 애초에 무쏘의 차체는 6기통 까지는 대응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고, 갤로퍼나 레토나 그리고 코란도에 비해서 여러모로 온-로드에 적합하기에 이러한 튜닝을 많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무쏘 역시 2020년대 기준 강화된 환경 규제와 더욱 엄격해진 노후 경유차 규제 조치로 인해 점점 더 보기 힘들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 대다수의 지자체는 현재로서 저감장치 장착불가 차량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지 않지만, 이것도 유예기간이 2020년~2021년이 끝이다. 하다못해 갤로퍼의 경우는 시중에 4D56계열 엔진용 장치가 있어서(주로 포터2 TCi 모델, 테라칸250, 스타렉스에 장착) 장착이 가능하게될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있지만[57] , 구형 쌍용차들의 경우는 602 혹은 601계열 엔진용 장치가 전무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영원히 개발이 안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녹색교통지역[58] 을 제외한 나머지의 규제(수도권 계절관리제, 비상저감조치)는 평일 06~21시에만 단속이 진행되기 때문에[59] 휴일에 세컨카로 탈 목적이라면 크게 상관이 없을 수는 있으나, 일상용으로 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창명, 크로바, 킹스타에서 무쏘 다이캐스트(미니카)를 판매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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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제원
3. 개발 배경
4. 주요 특징
5. 품질
6. 세대 구분
6.1. 1세대(FJ, Y100/Y150, P100, 1993년 8월~2006년 1월)
7. 논란
8. 부활 가능성
9. 기타
10. 리스토어 및 커스텀
11. 다이캐스트
12. 둘러보기
'''SsangYong MUSSO'''[1][2]
'''Mercedes-Benz MUSSO BOXER'''[3][4]
'''Tagaz road partner'''[5]
1. 개요
쌍용자동차에서 1993년 8월에 출시하여 2006년 1월 까지 생산했던 4WD SUV & 픽업트럭. 대한민국에서는 13년간 약 25만 대가 판매되었다. 대우 맵시나, 대우 누비라, 삼성 야무진, 대창 다니고와 함께 몇 안 되는 순우리말 이름의 자동차이기도 하다.'''귀하의 명예가 달라집니다'''
'''무쏘가 옵니다!'''[6]
'''꿈의 4륜 구동차'''
'''한국의 자부심'''
스페인어로 Musso는 '여성의 음부(부쏘)'라는 뜻이었기 때문에 스페인어권 국가에서는 '코란도 훼미리'라는 이름으로 수출되었다.
차명이 유럽(영국)에서는 굉장한 인지도와 명성을 가지고 있어 코란도 스포츠와 렉스턴 스포츠의 판매량을 올리기 위해 '무쏘'라는 이름으로 시판되고 있다.
2. 제원
3. 개발 배경
1993년~1994년 쌍용 무쏘 광고 모음. 첫 번째 광고 마지막에 무쏘를 느린 악센트로 발음하는 부분이 압권이다. 덧붙여 첫 번째 광고에서 들리는 엔진음은 실제 벤츠의 엔진음이다.
1996년 당시 무쏘 홍보 영상.
1997년 후반 제작 광고. [9]
1992년은 쌍용자동차에게 암울했던 해였다. 이전 해인 1991년 9월에 현대정공이 갤로퍼를 출시하면서 순식간에 SUV 시장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갤로퍼는 미쓰비시 자동차의 파제로를 기반으로 했던 만큼 신뢰도가 높았던데다가 디자인이나 내장재도 당시 쌍용자동의 주력차종이였던 코란도 훼미리에 비해 훨씬 고급이었고, 그 당시에는 구형 코란도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특히 코란도의 엔진에 참 문제가 많았는데, 쌍용자동차도 당시에는 참 암울했던 것이 처음에는 엘프 엔진이라고 불리는 일본 이스즈자동차의 4BA1 2.8리터 디젤 엔진을 사용했지만 용도에 비해 성능이 너무 과분하여 다운그레이드 하면서 이스즈의 C223 엔진과 변속기를 사용했다. 그러다가 파워트레인 국산화를 위해 대우중공업에서 만든 DC23 바네트 엔진(C223을 라이센스 생산한 엔진)[10][11] 에 국산 통일중공업(현 S&T중공업)의 변속기를 사용했지만, 이번에는 대우중공업 노사 분규 문제 때문에 한동안 엔진을 공급받지 못해서 코란도의 생산이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중간에 잠깐 푸조의 엔진을 공급받아 쓰기도 했다. 핵심은 당시의 코란도는 잔고장 투성이었던 데다가 고치기는 정말 거지같았다.
사실 갤로퍼의 4기통 2.5리터 디젤 엔진도 그다지 좋은 엔진이 아니긴 했지만 당시의 갤로퍼는 출시 초기라 아직 퍼질 때는 아니었고 설령 고장이 나도 갤로퍼는 '''부품 가격이 코란도에 비해 꽤 저렴했다.'''
게다가 현대자동차의 광고 물량공세도 어마어마했다. 결국 성능, 서비스망, 정비성, 부품가격, 디자인.. 뭐 하나 갤로퍼랑 상대가 되는 게 없었으니 코란도 시리즈 하나에 목 매달고 있는 쌍용자동차가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결국 쌍용자동차는 주저앉고 자동차 업계가 정리되나 싶었다. 그러나 얼마 후 일본의 AWD 승용차 전문 메이커인 후지중공업과[12] 트럭, SUV 전문 메이커인 이스즈도 받아내지 못한 기술 제휴를 자동차 본좌의 나라 독일로부터, 그것도 그 유명한 벤츠로부터 받아오는 데 성공한다. 그러고 보니 체어맨 역시 벤츠의 엔진인데, 이 이야기는 체어맨 관련 책에 참고한다. 당시 무쏘에 쓰였던 OM602N/A 엔진은 W124 E250D 에 들어가던 것을 기초로 스프린터 등의 상용형에 들어가던 2.9리터 사양을 채용했다. 원래는 쌍용이 최고급 SUV를 만들어 보겠다고 벤츠에게 OM603 직렬 6기통 디젤엔진 장착을 요청하지만 거부당한다.[13][14]
무쏘가 출시되기 전 쌍용자동차는 슬슬 떡밥을 던지더니 1993년 8월 대놓고 메르세데스-벤츠 엔진이라고 광고하면서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는데, 이는 쌍용자동차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다. 다만, 당시 현대자동차는 미쓰비시(상용차는 후소), 기아자동차는 마쓰다(상용차는 히노), 대우자동차는 GM 계열(상용차는 MAN/이스즈)에서 기술을 도입해 쓰고 있었고, 웬만한 사람은 그런 사실을 다 알던 시절이라 당시 기준으로는 딱히 책잡힐 일은 아니다. 하지만 무쏘 초기에 직수입 엔진을 달고 나온 생산분(1994년 초반까지)은 엔진 헤드에 아예 벤츠의 로고였던 삼각별이 박혀있고, 엔진 룸 여기저기에 Mercedes-Benz라는 각인이 산재해 있다. 엔진 조립 생산을 시작한 후에는 헤드의 각인이 Ssangyong으로 바뀌었다.
4. 주요 특징
국산 4WD 차량 중 처음으로 ABS를 장착했으며, 국내 최초로 전자식 4WD 전환 스위치를 채용했다. 경쟁차종인 갤로퍼는 오리지널 미쓰비시 트랜스퍼 케이스를 장착하여 2H, 4H, 4L 전환을 위해서는 주행 중인 차량을 멈춰야 했으며, 다시 2륜구동으로 변환하기 위해서는 후진을 해야 했지만, 보그워너의 트랜스퍼 케이스를 장착한 무쏘의 경우는 시프트 온 플라이 시스템을 채용하여[15] 2H에서 4H로 전환할 경우 시속 60~70km 속도에서는 주행 중에도 전환할 수 있었다. 물론 시프트 온 플라이가 장착되었다고 해서 로우레인지까지 사용할수는 없었고, 무쏘 역시도 로우기어로 전환할 때 차량 정지 상태에서 해야하는 점은 같다.
등화관제등이 달린 차량 중 하나이다.
무쏘의 엔진은 당시에는 생소했던 벤츠의 직렬 5기통 디젤 엔진이었고 트랜스 미션은 체코제였다. 이는 유럽에서는 디젤 모델에 한해 흔한 구조로 고속주행 시에도 소음이나 진동에 유리했다. 따라서 갤로퍼에 비해 장시간 고속주행에도 소음면에서는 안정적이었다. 물론 그 때 당시의 이야기이다.
본좌의 나라에서 온 엔진답게 내구성은 가히 최강이라 할 수 있는데 한국도로공사에서는 무쏘를 가지고 무려 누적 88만km를 무보링으로 주행했다. 그것도 무보링으로 80만을 넘은 도로공사 차량이 한두대가 아니라 10대가 넘는다.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가 대략 38만km쯤 되니 '''지구에서 달까지 왕복한 거리보다 더 긴 거리'''를 달린 것이다.
OM602 엔진은 본디 승용형 디젤 엔진이라 다른 상용 디젤보다도 최대 토크 회전수 시점이 높았다. 2.9리터 버전의 경우 상용형으로 개선했음에도 '''2500 rpm''' 부근에서 최대토크가 나왔다. 여기다 DMF(듀얼 메스 플라이 휠)를 기반으로 개발된 엔진이나 쌍용의 경우 원가절감의 필요로 인해 국내용의 경우 SMF(싱글 메스 플라이 휠)을 적용한 탓에 수동변속기 모델은 최악의 말타기 현상을 보였다.
자동변속기는 토크 컨버터가 엔진 충격을 완화해 주는 역할도 하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었다.
무쏘는 엔진 내구성이 뛰어났는데, 당시 OM602 엔진을 생산하던 시절의 벤츠는 '오버 엔지니어링' 혹은 '과잉품질' 이라는 이명을 얻을 정도로 원가가 다소 올라가더라도 품질과 신뢰성을 극도로 추구하던 시기였다. 실제로도 골수 벤츠 매니아들도 이시기의 벤츠가 엔진과 변속기의 내구성이 가장 뛰어났었던 시기라고 증언할 정도다.
품질 면에도 상당히 신경을 썼으며,[16] 개발 당시에 미케니컬 프로토 타입 10대, 프로토 카 46대, 파일럿 카 90대 등의 146대의 테스트 카가 제작되었다.
이 외에도 그간 일본제 엔진에 기반을 둔 국산 디젤 엔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점이 많았는데, 효율성이 높으면서도 구조가 간단한 직타식 밸브 리프트 시스템을 사용했고 유압으로 밸브와 태핏의 간격을 자동으로 조절하는 HLA를 적용했으며, 국내에서 주로 쓰이던 분배식이 아닌 독립식 플런저등 많은 요인이 있어서 내구성이 뛰어난 편이었다. 벤츠가 자랑하는 실린더의 크로스해치 마무리 가공역시 들어가 있었다. 간혹 오일이 많이 들어가서 그렇다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기본적으로 직렬 5기통이기도 하고 가장 큰 이유는 엔진 주변장치를 전부 내장해 버려서 그런 것이다. 현대와 기아의 경우 진공펌프를 발전기 뒤에 장착하지만 OM602, OM601엔진의 경우 엔진에 내장해서 타이밍 체인으로 직접 구동시킨다. 플런저의 경우도 VE타입의 경우 경유로 윤활하지만 무쏘의 PES타입 플런저는 작동부는 모두 엔진오일로 윤활하고(거버너 타이밍 디바이스까지) 플런저 내부 피스톤만 경유로 윤활한다. 여기에 타이밍 벨트가 아닌 타이밍 체인도 듀얼링크로 오일이 많이 묻어나니 오일 주입량이 많은 것이다.
5. 품질
무쏘가 출시된 지 20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는 그저 좋았던 자동차로만 인식되어 있지만 사실 어두운 면도 있다. 그것은 바로 절망적인 수준에 가까웠던 초기 품질이다.
1990년대 당시 쌍용자동차의 품질은 타 메이커에 비해 상당히 떨어졌던 것이 사실이다. 더 볼 것도 없이 쌍용이 무쏘 이전에 생산했던 구형 코란도 시리즈(지프, 훼미리)는 갓 공장에서 출고된 물건을 살펴보면 철판이 매끄럽지 못하고 곳곳이 울퉁불퉁할 정도로(...) 열악한 마감을 자랑했다.
이랬던 메이커에서 하루 아침에 부유층들의 니즈를 만족하는 고급 SUV를 뽑아내려니 온갖 시행착오가 나타났다. 분명 공장에서 생산함에도 불구하고 수공업품마냥 품질이 들쑥날쑥(...) 일단 초기 모델의 경우 에어크리너 설계결함으로 뜬금없이 시동이 꺼지며 그대로 퍼져버리는 사례도 나타났고, 소음을 줄이고자 도입했던 케이블 방식 수동변속기 역시 더러운(...) 변속감과 케이블이 절단되어 기어 변속이 완전히 불가능해지는 문제도 있었다[17] 플라스틱 위주의 내장재는 조립 불량으로 인한 단차는 애교수준이다. 4륜구동 관련 문제도 종종 나타났는데, 보그워너의 트랜스퍼 케이스는 일단 전자식으로 작동했지만 보그워너가 프리휠 허브까지 공급해주는 업체는 아니었기 때문에 프리휠 허브가 작동되는 방식까지도 전자식이 아니었다. 당시 차량의 각종 부위들을 전자제어하기 이전의 벤츠는 진공제어방식을 즐겨 사용했는데[18] , 쌍용에서는 이 부분을 응용하여 프리휠 허브의 작동을 진공으로 제어하는 방법을 적용해 보았으나, 고무호스를 연결하는 닛플이 갈라져서 진공이 샌다거나, 호스가 지나가는곳의 차체철판이 날카로워 호스가 찢어지는(...)등의 각종 이유로, 4륜 전환이 안되거나 2륜으로 전환 시 후진을 해야만 허브가 이탈되는 등 초기 품질 면에서는 아쉬운 부분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는 생산이 안정기에 접어드는(95년 이후) 때부터는 사그라들었다.
6. 세대 구분
우선 무쏘는 단일 모델로 판매되기는 했으나 크게 구형과 신형, 더 세분화하면 구형, 중기형, '''대우 무쏘''', 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초기형은 대략 1993년부터 1995년까지 생산된 모델이고 중기형은 1996년부터 1998년까지 생산된 모델로 601, 602EL, TDI 등의 모델이 있었다. 초기형과 중신형은 외관/내장이 모두 유사하나 테일램프, 전면 범퍼가드와 내장 일부가 구형과 다르다. 대우 시절의 경우 중기형과 내장은 유사하지만[19] 보닛의 디자인이 유선형으로 바뀌고 테일램프가 변경되었다. 신형의 경우는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생산된 모델로 종전 논터보를 삭제하고 터보 차저를 채택한 230, 290 모델이 등장했다. 290은 602TDI 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6.1. 1세대(FJ, Y100/Y150, P100, 1993년 8월~2006년 1월)
6.1.1. 무쏘(FJ, 1993년 8월~1998년 6월)
1993년부터 1995년까지 판매된 전기형은 바디 하단 가니쉬 및 범퍼가 차체 색상과 관계 없이 무광 은색 컬러였고 차체 측면을 가로지르는 물결 무늬 스티커가 부착되어 있었다. 국내 사양에서는 2001년식 이전까지 팬더에 방향지시등이 적용되지 않았지만 수출 모델에는 구형부터 적용되었다. 또한, 앞 범퍼 양쪽에 장착된 방향지시등 또한 내수용은 그 자리에 등화관제등이 달렸다. 수출 모델은 구형부터 팬더 및 범퍼의 방향지시등이 적용되었는데 내수형의 경우 1996년부터 1998년까지 판매된 중기형부터 적용되었으며, 투톤 컬러가 삭제되고 테일램프 방향지시등 커버가 노란색으로 변경되었다. 앞 범퍼의 등화관제등은 중기형 이후에 삭제되었지만 트렁크 도어 하단 양쪽에 구형부터 적용되었던 등화관제등은 98년식 모델까지 그대로 유지되었으며, 등화관제등이 달려있었던 마지막 모델이다.
6.1.1.1. 601
- 배기량: 2,299cc
- 최대출력: 79ps/4,000rpm
- 최대토크: 16.0kg.m/2,400~2,800rpm
6.1.1.2. 602EL
- 배기량: 2,874cc
- 최대출력: 95ps/4,000rpm
- 최대토크: 19.6kg.m/2,400~2,800rpm
수출명: Mercedes-benz BOXER SD300[23]
6.1.1.3. TDI
- 배기량: 2,874cc
- 최대출력: 120ps/4,000rpm
- 최대토크: 25.5kg.m/2,400rpm
6.1.1.4. DOHC 2000
- 배기량: 1,998cc
- 최대출력: 136ps/5,500rpm
- 최대토크: 18.4kg.m/4,200rpm
ABS ACS가 기본 장착이었다. 엔진은 벤츠 E200 M111엔진을 그대로 장착했고, 엔진밸브는 DOHC 16V였다.
실제 연비는 시내 6~8 km/L, 고속도로는 10~12 km/L의 연비로 소문보다는 나쁘지 않았고, 무거운 차체로 출발은 느렸만 가속이 되면 주행감이 좋아졌다. 추월 가속력은 배기량이 낮아 답답했지만 최고속도는 185 km/h였다.
외부의 디자인은 무쏘 TDI와 동일했고, 휠은 15인치, 타이어는 255-70-R15의 한국타이어 제품이 장착되었다. 1997년 모델부터는 16인치 휠에 235-65-R16타이어로 변경되었다.
내부는 가죽시트에 뒷좌석은 6:4분할로 완전히 접혀서 트렁크 적재공간를 용달차 수준으로 늘리는 마법을 보인다.
가솔린 모델임에도 불구하고 수동변속기 모델이 있었다.
6.1.1.5. DOHC 2300
- 배기량: 2,295cc
- 최대출력: 149ps/6,000rpm
- 최대토크: 21.6kg.m/4,000rpm
뉴 무쏘로 페이스리프트된 이후에는 2001년까지 230SR이라는 트림명으로 판매되다가 단종되었다.
6.1.1.6. IL6 3200
- 배기량: 3,199cc
- 최대출력: 218ps/5,750rpm
- 최대토크: 31.6kg.m/3,750rpm
파트 타임 식이 아닌 풀타임 4륜 구동으로 나왔으나, 오늘날의 AWD(All Wheel Drive)와는 다른 것이다. 요즘의 AWD는 기본적으로 전륜(베라크루즈, 싼타페, 윈스톰)이나 후륜(모하비, 쏘렌토 1세대 등) 십중팔구의 토크를 한쪽으로만 구동하되, 차량 주행에 슬립 발생 시 평소에 토크가 많이 들어가지 않는 바퀴에도 동력을 추가 배분하는 데 반해 이쪽은 기본적으로 전후 구동 배분을 50:50으로 가져가되, 노면이나 회전 특성에 따라 최대 전후 구동배분을 35:65로 가져가는 구조였다. 아우디 콰트로의 기계식 사륜구동과 비슷한 개념이다.
쉽게 말해서 요즘의 AWD가 평소엔 2바퀴만 굴리고 필요할 때에만 4바퀴 구동을 하는 반면, 이쪽은 줄창 4바퀴를 굴리는 구조이다. 그래서 연비가 정말 거지같았다(공인연비가 6.8km/L). 전자는 연비와 타협한 구조이고 후자는 기능만 추구한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최고시속은 193km/h[[24] .
기능만 놓고 따지면 무쏘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까지 아시아 랠리에 참가하고 국내 각종 SUV 레이싱을 석권하는 모델이 바로 무쏘 3200이다. 모하비가 나오기 전까지는 국내에서 프레임 바디를 채택한 SUV 차량 중 가장 빠른 차였다.
참고로 당시의 경쟁 모델인 갤로퍼 가솔린 V6 2,972cc SOHC 모델이 최대토크 26.0kg.m(4,000rpm)에 최대출력 182마력이었고, 한참 후에 생산된 테라칸 VX350(3,497cc)조차도 최대토크 32.0kg.m(3,500rpm)에 최대 출력이 207마력 최고속도 178km/h 이었으니, 당시로서는 비교 가능한 차량이 없었다.
하지만 극악의 연비와 높은 세금에다가 자동차 가격이 어마어마하게 비쌌기 때문에[25] 한국에서는 거의 판매되지 않고 대부분 수출되었다.
수출명: Mercedes-Benz BOXER SG320[26]
뉴 무쏘로 페이스리프트된 이후에는 2001년까지 320LX라는 트림명으로 판매되다가 단종되었다.
6.1.1.7. 500 Limited
[image]
[27]
[image]
- 배기량: 3,199cc
- 최대출력: 220ps/5,750rpm
- 최대토크: 32.0kg.m/3,400rpm
1996년 12월에 3.2리터 가솔린 모델(IL6 3200)을 기반으로 출력을 약간 올리고 AV 시스템 및 고급 내장재를 비롯한 고급 옵션으로 도배한 500대 한정판 모델이었다. 가격은 '''4,950만 원'''이었다. 당시에는 가장 비싼 국산차였으며, 에쿠스의 전임자인 다이너스티 롱 휠베이스 리무진 모델보다도 훨씬 비쌌다. 한국은행경제통계시스템에서 96년도의 4950만원을 2019년도의 화폐가치로 환산시 '''9천만원'''에 가까운 금액이었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말이 좋아 9천만원이지, 당시의 경제 수준을 생각하면 체감 가격은 지금의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포르쉐 카이엔, BMW X5, 아우디 Q7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의 대형 SUV와 맞먹는 레벨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28]
2019년 현재 국산 SUV 중 최고가인 모하비도 옵션을 죄다 때려박아야 5천만원을 겨우 넘는 것을 감안하면 어마무시한 가격임이 분명하다.
외장 컬러는 브라운 하나였는데, 이는 각도에 따라 검은색과 갈색이 조금씩 다르게 보이는 듀폰제의 엄청나게 비싼 페인트였다.
이렇게 비싼 차인 만큼 쌍용자동차 지점장이 직접 차를 배송하는 등 프리미엄 마케팅을 선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SUV에 가솔린 엔진을 선호하지 않는 한국 분위기[29] +고급 세단보다도 더 비싼 가격에 SUV를 살 사람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아예 대한민국에는 '''100대'''만 팔기로 정해 놓았으며, 광고에도 그렇게 명기했다. 한정 생산된 500대 중 400대는 수출되었으며, 태국 240대, 독일 70대, 시리아 13대, 이탈리아 10대가 출시 전에 이미 예약 및 배정이 되었다.[30][31] 최고 시속은 일반 3.2리터 모델보다 조금 더 빠른 196km/h를 기록했다. 들리는 말로는 대한민국 판매분의 1/2 정도를 주한 미군 관계자들이 사 갔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100대도 다 팔지 못하고 남은 물량도 수출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고로 희귀 차종 확정이다.'''
6.1.2. 뉴 무쏘(Y100/Y150, 1998년 3월~2005년 6월)
쌍용 뉴 무쏘 2004~2005년식 모델(왼쪽)과 2001~2003년식 모델(오른쪽)
외관상 두 모델의 차이는 사이드 리피터의 색상과 라디오 안테나 형상이다.
1998년 3월에 페이스리프트되어 출시된 뉴 무쏘. 직선 위주의 디자인에 곡선 요소를 많이 첨가하여 다소 여성스러워졌다. 등화관제등이 삭제되었으며, 엔진의 경우 4기통 논터보 2.3 디젤 모델을 대체할 4기통 터보 2.3 디젤 모델이 추가되었고, 이때부터는 5기통 논터보 2.9 디젤 모델이 삭제되었다. 수동변속기의 경우 기존의 보그워너제 5단 수동변속기에서 통일중공업(현:S&T 중공업)제 5단 수동변속기로 변경, 디젤 모델을 한정으로 자동변속기의 경우 기존의 메르세데스-벤츠제 기계식 4단 자동변속기에서 BTRA(현 DSI)제 전자식 4단 자동변속기로 변경되었다. 또한 벤츠의 것과 비슷한 형태의 그릴로 바뀌었고, 기존의 쌍용 로고가 있는 그릴도 2002년식까지 제공했다. 이때부터 뒷심을 발휘해서 판매량에서 갤로퍼를 다시 뛰어넘었는데, 1999년, 2000년 2년 연속 국내 SUV 판매량 1위를 달성했으며 2000년, 2001년, 2002년 3년 연속 국내 4륜 구동차 브랜드파워 1위를 달성하였다. 무쏘가 처음 나온지 6~7년이 경과한 시점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당시로써는 대단하다는 평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삶이 여유로운 차.'''
1998년 7월에는 연간 세금이 화물차 세금인 28,500원밖에 안나오는 2인승 밴 모델이 추가, 1999년 5월에는 당시 연간 세금이 65,000원인 승합차 세금으로 책정되었던 7인승 모델이 추가되면서 선택의 폭을 넓혔다. 7인승 모델을 한정으로 스페어 타이어가 트렁크 안에 배치되었다.
2000년 6월에는 판매량이 적은 5인승 모델이 단종되고, 외관의 경우 신형 범퍼가드와 안개등, 사이드스텝으로 변경되고, 기존의 원톤 컬러에서 투톤 컬러로 변경 됨과 동시에 사이드 가니쉬가 추가되고, 실내 내장재와 스위치 디자인이 완전히 변경되고, 230SL과 290SL을 한정으로 15인치 휠의 디자인이 변경되고, 290SR 트림을 한정으로 기존의 15인치 휠에서 16인치 휠로 변경되고, 4기통 터보 2.3 디젤 승용 모델을 한정하여 4WD 사양이 삭제된 2WD 사양인 CT 모델을 추가한 2000년형 뉴 무쏘를 출시하였다. 이때부터는 5인승 모델이 삭제되어 7인승 모델만 나오기 시작했다.
2001년 2월에는 판매량이 적은 가솔린 모델인 가솔린 4기통 2.3 모델과 가솔린 6기통 3.2 모델이 단종되고, 측면 옐로우 사이드 리피터가 추가되고, 자동변속기의 기어노브가 기존의 가죽 기어노브에서 우드그레인 기어노브로 변경된 2001년형 뉴 무쏘를 출시하였다.
2002년 1월에는 5기통 터보 2.9 디젤 모델의 경우 290SL 트림을 삭제하고 모든 트림을 290SR 트림으로 통일하고 핸즈프리 등의 편의사양이 추가된 2002년형 뉴 무쏘를 출시하였다. 이때부터는 4기통 터보 2.3 디젤 모델의 경우 230S 트림은 4WD 사양이 삭제되고 2WD 사양인 CT 모델만 나오기 시작했다.
2003년 3월에는 사이드 리피터 컬러와 우드그레인 컬러, 라디에이터 그릴 디자인 등이 변경되고 스페어 타이어의 위치가 트렁크 안에서 하부로 변경된 2003년형 뉴 무쏘를 출시하였다.
2004년 1월에는 강화된 배기가스 규제로 인해 4기통 터보 2.3 디젤 모델이 단종되고, 5기통 터보 2.9 디젤 모델만 남아서 엔진 EGR 시스템을 진공식에서 전자식으로 변경하였고, 기존의 통일중공업(현:S&T 중공업)제 5단 수동변속기에서 현대 트랜시스제 5단 수동변속기로 변경하고, 290SR 트림의 등급이 각각 FX5, FX7 트림으로 교체된 2004년형 뉴 무쏘를 출시했다.
[image]
쌍용 뉴 무쏘 2000~2001년식 모델
6.1.2.1. 230 시리즈
- 배기량: 2,299cc
- 최대출력: 101ps/4,000rpm
- 최대토크: 21.5kg.m/2,400rpm
6.1.2.2. 290시리즈
- 배기량: 2,874cc
- 최대출력: 120ps/4,000rpm
- 최대토크: 25.5kg.m/2,400rpm
사실은 뱃지만 바꾼 230도 많다.
6.1.2.3. 230SR
- 배기량: 2,295cc
- 최대출력: 149ps/6,000rpm
- 최대토크: 21.6kg.m/4,000rpm
6.1.2.4. 320LX
- 배기량: 3,199cc
- 최대출력: 218ps/5,750rpm
- 최대토크: 31.6kg.m/3,750rpm
공식적으로는 2001년까지 생산되었지만 2004년경 '3200'이라는 레터링을 달고 주한미군 납품용으로 약 50대정도가 추가 생산되었다. 2013년경부터 불하 차량들이 나오고 있다.
구형과는 다르게 가변적으로 네 바퀴에 구동력을 자동으로 분배하는 Torque On Demand(TOD) 트랜스퍼 케이스가 장착되어서 연비가 아주 조금은 나아졌다. [33]
6.1.2.5. FX5, FX7
제원은 290 시리즈 참조.
렉스턴이 출시된 이후 단종되리라 예상했던 뉴 무쏘가 단종되지 못하고 나온 모델이다. 강화된 배기가스 규제로 파워트레인을 기존의 기계식 플런저 방식에 전자식 EGR을 장착한 OM662 엔진으로 교체되었으며, 기존의 통일중공업(현:S&T 중공업)제 5단 수동변속기에서 현대 트랜시스제 5단 수동변속기로 변경하여 2004년~2005년에 생산되었다. 290SL=FX5, 290SR=FX7 이라고 봐도 무방하지만 290 시리즈보다 옵션이 빈약하다. 그리고 이 시기부터는 스페어 타이어도 풀 사이즈가 아닌 미니 사이즈다.
당시 쌍용자동차는 렉스턴을 출시하면서 뉴 무쏘를 단종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나, 단종을 앞두고 있던 뉴 무쏘가 막판에 뒷심을 발휘하면서 2년 연속 SUV 판매 1위, 3년 연속 4륜 구동 브랜드 파워 1위를 달성하는것도 모자라 렉스턴이 출시되기 몇 일 전인 2001년 8월 27일에 한국도로공사 소속 무쏘가 88만 7천 km를 엔진의 보링 없이 주행한 사실이 보도되어 무쏘의 인기가 꺼지지 않자 뉴 무쏘 후속으로 내려던 렉스턴을 무쏘 윗급으로 내면서 무쏘를 병행판매 하게 되었고, 렉스턴의 초고급화 마케팅 전략도 잘 먹혀들어가 무쏘를 단종하기 애매해졌다. 결국 뉴 무쏘를 수년간 더 유지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그래서 잠시 생산했다.[34] 이미 이 시기에는 무쏘가 '늙은' 이미지가 되었고 무쏘 스포츠에게도 팀킬당했기 때문에 판매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6.1.3. 무쏘 스포츠(P100, 2002년 9월 ~ 2006년 1월)
[image]
[image]
'''차세대 레저 스포츠카'''[35]
'''자유로운 꿈의 스포츠 픽업'''[36]
- 배기량: 2,874cc
- 최대출력: 120ps/4,000rpm
- 최대토크: 25.5kg.m/2,400rpm
7. 논란
7.1. 대우 무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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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말 쌍용자동차가 대우그룹에 인수되고 1999년 대우그룹의 공중 분해로 다시 쌍용자동차가 되면서 1999년~2000년 생산된 무쏘는 대우자동차의 엠블렘을 달고 생산되었다. 당시 쌍용자동차는 무쏘와 체어맨을 주력 생산했던 반면, 대우자동차는 이렇다할 고급 차량이 없었던 만큼 두 자동차 회사의 이미지 차이에다가 하필이면 이 시기에 무쏘의 많은 부품이 국산화 되었던 만큼 대우 무쏘는 뭔가 나쁘다는 인상이 있었다. 게다가 품질 문제도 품질 문제지만 그릴 때문에 스타일도 어울리지 않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오죽하면 바퀴 큰 누비라 같다고 등한시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38][39]
대표적인 문제가 플런저 문제다. 기존 쌍용에서 쓰던 메르세데스-벤츠 플런저를 쓰던 것을 대우 체제로 들어오면서 플런저 가격을 1/3로 낮춘 국산 플런저를 사용한 적이 있었다. 국산 플런저를 쓰면서 가격은 1/3이 됐지만, 내구성이 1/3 밑으로 떨어지게 되면서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이 증상의 명칭은 빅셰이크. 플런저 수명이 다 할 즈음에 기어 레인지를 D 로 둔 상태에서 브레이크를 밟으면 말에 탄 것과 같이 미친듯한 진동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쌍용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의 운전 습관이 정차 시 기어 중립이다.
게다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2.3리터 모델이 대우자동차의 인수 후 부활했기 때문에 무쏘의 이미지 악화는 필연적이었다. 대우자동차로서는 당시 터보 인터쿨러가 등장한데다가 비싼 무쏘를 어떻게든 더 보급해 보고자 하는 의도로 한 것이었겠지만 이는 이미지만 나빠지는 짓이었다. 게다가 2.3 인터쿨러는 문제도 많았다. 앞에 나온 빅셰이킹 문제도 2.9 인터쿨러는 꽤 덜한 편이다. 2.3은 본넷이 흔들리는 수준으로 심하다. 하여간 현재 대우자동차 시절의 무쏘는 보기도 힘들고, 왠지 모르게 중고차 시장에서 대우 엠블럼이 달린 무쏘[40] 는 상대적으로 인기가 낮다. 대우 그릴에서 쌍용 그릴로 뚝딱 교환한 사람들도 많다. 실제로 중고로도 기피하는 차량이다.
다만, 차량은 대우 마크를 붙이고 팔기는 했지만 실제로 만든 건 쌍용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사실은 원가절감이나 대우 로고만 빼면 2001년부터 나온 쌍용 무쏘와 차이는 없다.[41]
7.2. 변속기 문제
이것도 대우 무쏘 시절에 시작되었다. 무쏘에 장착된 자동변속기는 1994년 8월부터 메르세데스-벤츠에서 생산한 일명 'MB 미션'을 수입한 것이었는데, 대우자동차로 넘어가면서 원가도 절감하고 기계식이 아닌 전자제어 방식에 락업클러치를 탑재해 동력성능과 연비를 향상시킬 목적으로 자동변속기로 바꿀 겸 변속기를 BTRA에서 제조한 자동변속기로 바꾸었다. 가끔 초기에 생산된 뉴 무쏘 중에는 메르세데스-벤츠 기계식 4단 자동변속기를 그대로 사용한 차량도 일부 존재하는데, 무쏘 동호회에서 탐내는 얼마 없는 레어 차종이다.
그런데 이 BTRA제 변속기는 본래 '''V8 3,200cc 트윈터보'''의 고성능 엔진에 들어가는 마세라티의 3200GT, 콰트로포르테 4세대 모델처럼 끽해야 25.5kg.m에 불과한 무쏘의 최대토크에 2배에 해당하는 무려 '''50kg.m'''의 토크를 내뿜는 엔진과 짝지어져도 내구성에 별 문제가 없이 잘만 사용되던 M72기종을 약간 개선한 M74 제품[42] 이었지만 마세라티와 다르게 쌍용자동차에서는 오일 무교환 변속기라며 오일 배출구와 게이지를 없앤데다가 마세라티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허접한 구성의 오일쿨러를 장착했다. 문제는 BTRA 변속기도 40,000~50,000km마다 변속기 오일을 갈아줘야 한다는 것이며, 원래 열이 많이나는 변속기인지라 기본 냉각구성이 메이커가 요구한 만큼 구성하지 못하면 변속기의 오일 상태는 BTRA가 제시한 스펙보다도 더더욱 빨리 악화된다.
품질면에서 항상 지적받는 마세라티에서 조차도 문제가 없었던 물건이 대우/쌍용자동차로 오면서 문제가 되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대우/쌍용의 잘못이지 변속기의 품질탓으로 보기에는 매우 어렵다. 즉, 당시 존폐의 기로에 섰던 회사였던 만큼 원가절감은 당연히 불가피한 사항이었겠지만 대우자동차와 쌍용자동차는 원 제조사가 요구명시한 이 최소한의 기본조차도 전혀 지키지 않고 눈가리고 아웅식의 어거지로 자사 제품군에 맞물려ㅈ놓아 그저 차가 대충은 굴러만 가게끔 한 수준으로만 개발한 셈이다. 덕분에 BTRA제 변속기가 장착된 차량의 오너는 오일을 교환할 때마다 변속기 커버를 통째로 뜯어내야 하는 불편한 과정을 겪어야만 했고, 데이터가 쌓이기 전까지는 원인모를 고장증상에 시달려야만 했다. 덕분에 BTRA제 변속기는 고장도 많고 내구성도 약해서 자동차 정비업계의 대표적인 효자 상품이라고 통하게 되었다.
게다가 기계식 엔진에 전자식 변속기를 장착했으므로 TCU가 인식 할수 있는 별도의 가속페달 위치센서를 장착했어야 했는데, 가속페달 링키지까지 싸구려로 제작한데다[43] 쓰로틀 포지션 센서를 딱 고장난만한 위치에 장착해 놓아서 쓰로틀포지션 리셋을 약 1년마다 주기적으로 하지 않게 되면 센서 인식 데이터에서 차이가 나게 되며 시간이 지날수록 크고 아름다운 변속 충격은 보너스로 늘어나게 된다. 때문에 '''비틀어 미션'''이라는 오명까지 얻었다.
이후 이 BTRA제 변속기는 그대로 신형 2.0 커먼레일 엔진과 짝지어져 액티언과 액티언 스포츠에 사용되는데, 오일쿨러만 보강해 주면 상당한 수준의 튜닝도 무리없이 받아주기로 유명하다. 유로4 사양부터 장착된 BTRA제 신형 6단과 비교하면 신형은 가벼운 맵핑만으로도 뻗어버리는데다 각종 내구성 문제까지 보고되는 것에 반해 4단은 오히려 더 튼튼하면 튼튼했지 하드한 맵핑은 물론이고 왠만한 터빈업에도 대응이 가능하다는 평이 다수일 정도로 기본품질이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그렇게나 허접한 물건이 절대 아니다.
MB 변속기와 BTRA제 변속기를 구분하는 법은 다음과 같다.
자동변속기 레버 구조가 P-R-N-D-3-2-B이고 2와 B가 서로 수평하면 MB 변속기, 레버 구조가 P-R-N-D-3-2-1로 되어 있고(B가 아니라 1이다.) 2와 1이 서로 수평하지 않고 직각 방향으로 한 단계 내려야 하는 구조, 거기다가 W(Winter), P(Power) 버튼이 왼쪽에 있으면 BTRA제 변속기이다.
또한, BTRA제 변속기가 장착된 차량에서 TCU 고장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기어가 빠지거나 기어가 제대로 동작하지 않을 때 고장 원인으로 TCU를 꼽기도 한다. 상당히 재미있는 것이 TCU에 리비전이 #1, #2...#5, #6 까지 찾아볼 수 있는데, 리비전마다 특색이 다르다. 예를 들어 #6의 경우 다른 리비전보다 연비가 좋다고 한다. 여튼 무쏘 TCU #6버전은 폐차장에서의 핫 아이템이라고도 볼 수 있다. 또한, 미션이 망가지면 렉스턴 BTRA제 미션으로 교체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1998년 3월에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면서 기존 보그워너 사의 수동변속기도 통일중공업(현 S&T 중공업)제 국산품으로 대체하게 되는데, 이것도 BTRA제 변속기가 낫다는 말이 나올 지경으로 잘 깨져나갔다. 2004년 1월에 2004년형을 출시하면서 현대트랜시스제 수동변속기로 다시 한번 더 대체하여 변속기 문제를 해결했다.
그리고 여기서 시작된 대우자동차의 QT 변속기 전설은 크루즈와 알페온이 쭉 이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쌍용자동차 역시 자동변속기를 BTRA제를 계속 쓰다가 BTRA의 회사 사정이 어려워진 후 현재는 점차 아이신의 유닛으로 바꿔나가고 있다. 수동변속기는 차종에 관계없이 현대트랜시스의 유닛을 이용한다.
7.3. 무쏘의 후속차종에 대한 논란
쌍용자동차에서 공식적으로 밝힌 무쏘의 후속 모델은 렉스턴이 아닌 카이런이다.[44][45]
쌍용자동차에서 같은 시기에 내놓았던 SUV(무쏘 스포츠 포함)만 4종류[46] 였던 탓에 포지셔닝이 어정쩡했던 문제가 있는데, 가격대와 차량 크기 순으로 비교할 경우 뉴 코란도의 후속은 액티언, 무쏘의 후속은 카이런, 렉스턴의 후속은 G4렉스턴 이 맞는데, 쌍용자동차의 경우 SUV 라인업의 전 모델에서 '''동일한 2리터짜리 디젤 엔진을 얹고 있는 것이 포지셔닝 혼란의 주요 원인'''이다.
같은 급의 하위-상위 모델에 얹는 것은 스포티지-쏘렌토와 투싼-싼타페에서도 하는 것이지만 쌍용자동차는 이것을 자사의 SUV 전 라인업에 박아넣은데다 후속 모델들의 특징이 애매한 이유도 있어 이게 무슨 모델의 후속인지 헷갈리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당장 SUT 모델이 있다고 액티언을 무쏘의 실질적 후속 모델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후속이 아니라 픽업 라인업을 한 단계 아래 차종으로 끌어내린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47]
게다가 가장 기본적으로 판단할만한 근거는 디자인으로, 카이런의 디자인은 디자인 초기단계부터 무쏘의 디자인에서 많은 부분을 이어받아 나온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액티언을 단종시키고 등장한 후속모델은 이전 모델의 이름을 물려받은 코란도C로, 소형 SUV의 포지션을 그대로 이어받는다.[48]
그런데 2016년에 '''코란도 스포츠의 영국 판매 사양에 무쏘의 이름을 붙이기로 결정했다. 2018년 봄에 유럽시장에 런칭하는 렉스턴 스포츠의 유럽 국가 수출명도 무쏘로 결정되면서 차급이 격상되었다.''' 2018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런칭할 예정인걸로 봐서 영국 뿐만 아니라 유럽의 다른 여러 국가에서도 무쏘 브랜드가 부활하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8. 부활 가능성
위에서 언급했듯이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의 다른 여러 국가에서도 무쏘 브랜드가 부활하는 것을 시작으로 내수시장인 대한민국에서도 무쏘 브랜드가 부활할 가능성이 생겼으며 또한 2019년 초에 2013년에 개발이 취소된 중형급(D세그먼트) SUV인 D200을 대신하여 D300을 준비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고, 2019년 하반기에 수익 악화로 무기한 연기되었지만, 2020년 4월에 중형급(D세그먼트) SUV의 프로젝트명이 J100으로 변경되어 신차 개발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정일권 쌍용자동차 노조위원장과 동아일보의 인터뷰에 따르면, J100 프로젝트는 과거 쌍용차의 핵심 DNA였던 정통 오프로드형, 쌍용의 지프 스타일이라고 밝혔던만큼, 이번엔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만약 진짜로 출시가 된다면 차명은 코란도에 펫네임을 붙이거나 무쏘의 이름을 붙일 가능성이 높다.
9. 기타
무쏘는 국산차 중 드물게[49] 파리-다카르 랠리를 완주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1995년부터 참가해 1996년 김한봉 선수가 완주하면서 한국인 최초 완주의 기록까지 가지게 되었다. 특히 김한봉 선수가 완주한 1996년에는 무려 6대의 무쏘가 투입되어 3대가 완주하기도 했다. 여기에 1994년 이집트를 무대로 한 파라오 랠리에 202호와 205호가 참가, 202호가 클래스 챔피언에 올랐다.[50]
무쏘는 내구력이 극강이어서 전쟁 발발 시 군에서 사람들이 타던 무쏘를 군용으로 가져간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1997년~1998년 초까지 모든 4륜 구동 차량은 유사시 징발을 위해 기본적으로 등화관제등을 달고 나왔으며, 현재는 일부 차량에 한해 징발하도록 바뀌었다. 무쏘는 연식이 오래되어서 징발 명부[51] 자체에 오를 수가 없다. 즉, 무쏘가 딱히 튼튼해서 군용차로 징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 4륜 구동차들은 그냥 얄짤없이 전부 끌려가는 것이다.[52]
[image]
러시아 타가즈사에서 뉴 무쏘와 무쏘 스포츠가 Road Partner라는 이름으로 라이센스 생산되고 있었다. 무쏘 스포츠는 2도어도 있다는 듯하다.
이 차를 기반으로 한 무쏘 SUT라는 모델도 계획되다가 취소 되긴 했지만, 다행히도 무쏘 스포츠로 실현이 되긴 했다.
한편, 노무현 전 대통령이 무쏘를 이용한 적이 있으며, 세종특별자치시에 위치한 지방자치회관에 이를 전시할 예정이라고 한다.[53] 참고로 노 전 대통령의 변호사~초선 시절에는 콩코드를 탔다.
사형 선고를 받고 현재 수감 중인 연쇄살인범 강호순이 무쏘를 탔었다. #
일본에도 수출되었다. 초기에는 쌍용자동차의 일본지부가 판매를 담당했으나, 쌍용자동차가 대우자동차에 인수된 이후에는 후쿠오카현에 위치한 오토렉스에서 수입과 판매를 담당하였다.
2004년에 주한미군의 업무용 차량으로 공급된 적도 있다. #
7인승 모델은 3열 좌석이 '''뒷차와 마주보는 방향으로''' 되어있어 거기에 타다가 뒷차 운전자와 눈이 마주쳤을 때 뒷차 운전자가 아동 학대나 납치로 오인할 수 있으니 3열은 아예 탑승하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 3열의 창렬
무쏘 스포츠는 쌍용의 역대 픽업트럭 중 유일하게 견인차 개조 사례가 존재하지 않는데, 일반 SUV를 후륜오버행만 늘려 만든 것이어서 견인장비 적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10. 리스토어 및 커스텀
기술적으로 보자면 갤로퍼 보다 분명히 우수한 차이며[54] 오너들도 대부분 이 점을 높이 평가하지만, 정작 리스토어 시장에서는 대접이 그다지 좋지 않다. 무쏘가 리스토어 열풍에 동참하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구형 쌍용 차량의 부품수급은 매우 나쁘기 때문이다.''' 그래도 벤츠 엔진의 내구성이 어디 가는 건 아닌지 아직도 적지 않은 개체들이 지금도 출, 퇴근용이나 가족용 차량, 자영업자들의 업무용 차량 같은 일상 생활용 차량으로 도로를 활보하고 있기는 하지만, 1993년에 출고된 초기 모델이 1인 신조 차량으로 오너가 애지중지하게 잘 관리해서 25년이 지나도 리스토어 하지 않고도 상태가 신차 수준으로 유지된 개체가 있는가 하면, 2000년대 이후의 후기형이 공사장에서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면서 여기저기 찌그러지고 엉망이 된 것도 있는 등 각각의 상태는 정말로 천차만별이다.
갤로퍼는 1997년도 이후의 갤로퍼2는 물론이고, 1994년식 이전의 초기형 부품도 신품 주문이 가능한 것이 있을 정도이며, 하다못해 신품 생산을 중단한 부품들도 모비스 홈페이지에서 대리점 보유 재고를 찾아보면 수십 개 씩 뜨는 경우가 많다. 현대자동차가 대기업이라는 부분도 있고, 갤로퍼의 원조가 미쓰비시 파제로이다보니 정 안되면 해외에서라도 수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55] . 반면 무쏘는 1998년 페이스리프트 모델 외장 부품 조차도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인데다 그 이전 모델(1993년식 ~ 1997년식) 부품(주로 외장 부품이나 내장재 등)은 아예 생산조차 하지 않아서 폐차장을 돌아다녀야 한다(...). 심지어는 eBay를 통하여 동남아 등지에서 부품을 수급하는 오너들도 있다.
그래도 1990년대 SUV 치고는 비교적 많이 돌아다니고, 엔진 스왑도 활발한 편이다. 카이런이나 뉴 렉스턴 엔진은 기본이고 모하비 파워트레인, 심지어 RB25 엔진[56] 을 이식한 무쏘도 있을 지경이다. # 애초에 무쏘의 차체는 6기통 까지는 대응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고, 갤로퍼나 레토나 그리고 코란도에 비해서 여러모로 온-로드에 적합하기에 이러한 튜닝을 많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무쏘 역시 2020년대 기준 강화된 환경 규제와 더욱 엄격해진 노후 경유차 규제 조치로 인해 점점 더 보기 힘들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 대다수의 지자체는 현재로서 저감장치 장착불가 차량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지 않지만, 이것도 유예기간이 2020년~2021년이 끝이다. 하다못해 갤로퍼의 경우는 시중에 4D56계열 엔진용 장치가 있어서(주로 포터2 TCi 모델, 테라칸250, 스타렉스에 장착) 장착이 가능하게될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있지만[57] , 구형 쌍용차들의 경우는 602 혹은 601계열 엔진용 장치가 전무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영원히 개발이 안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녹색교통지역[58] 을 제외한 나머지의 규제(수도권 계절관리제, 비상저감조치)는 평일 06~21시에만 단속이 진행되기 때문에[59] 휴일에 세컨카로 탈 목적이라면 크게 상관이 없을 수는 있으나, 일상용으로 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11. 다이캐스트
창명, 크로바, 킹스타에서 무쏘 다이캐스트(미니카)를 판매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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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둘러보기
[1] 코뿔소의 또 다른 이름인 '무소'를 변형한 것이다. 그래서 영문 로고의 M자에도 코뿔소의 얼굴 옆모습이 들어가 있다. 더불어 뒷문의 예비 타이어를 덮는 캡에도 들어갔고, 일부 차량은 보닛에 코뿔소 조각도 붙었는데, 그것도 코뿔소 중에서 덩치가 가장 큰 흰코뿔소를 대표로 활용했다. 정작 디자인은 코뿔소가 아닌 돌고래에서 따왔다는 반전이 있지만.[2] 개발 당시에 쌍용자동차 관계자가 코뿔소 등의 관련 단어를 찾다가 국어사전에서 발견하여 지었다고 한다.[3] 메르세데스 벤츠 네트워크로 판매된 경우 벤츠 마크가 붙었다. (동남아 일부 국가)[4] 극소수 물량은 벤츠 마크 상태로 내수용으로 풀린 바가 있다. 엠블럼 튜닝이 아니다! 렉스턴 등의 일부 차종도 벤츠 마크를 달고 일본 등에 수출되었다.[5] 러시아 자동차 회사 라이센스 생산.[6] 1993년 무쏘 출시 전 신문광고에 티저광고로 냈을 때 나왔던 슬로건이다.[7] 뉴 무쏘 CT & 무쏘 스포츠 CT 한정.[8] 602 AT는 1,750mm[9] 이 광고에서 뜬금없이 가곡으로 유명한 현제명의 '''희망의 나라로'''를 BGM으로 사용하기도 했는데, 그 컨셉이나 분위기가 지난 CF들과 완전 상반될 정도로 '''뭔가 오글거림이 느껴진다.''' 특히 광고가 제작된 시기는 하필이면 1997년 외환 위기로 기업들이 줄도산하던 시기인데다가 모 기업인 쌍용자동차가 외환 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대우자동차에 인수되는 흑역사를 맞았기에 어찌 보면 쓰러지기 일보 직전 자위적인 의도로 만든 광고라는 느낌이 강하다.[10] 대우자동차의 1톤 소형 트럭인 바네트도 동일 엔진을 쓰기에 이런 별명이 붙었다. 그래서인지 코란도와 마찬가지로 승차감과 내구도가 떨어졌고, 이는 포터와 봉고에 참패하고 단종되는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11] 사실 이 엔진은 당시 기준으로 매우 오래된 엔진인데, 1960년대에 개발된 1세대 이스즈 엘프에 들어가던 디젤 엔진에서 배기량을 늘려 개량한 사골 엔진이었다.[12] 다만, 이쪽은 김석원 회장이 거부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원래 동아자동차의 하동환 회장은 스바루로부터 설비를 들여올 예정이었으나 회사가 쌍용에 인수된 후 김석원이 이를 거부했다고 한다. 출처는 월간조선 1994년 1월호.[13] 그 당시 벤츠 디젤의 간판스타가 OM603이었는데, 간판스타라서 주기 싫은 것인지 만약 6기통이 나왔다면 쌍용자동차가 지금쯤 변해있을 수도 있다(...).[14] 그때 쌍용자동차가 벤츠와 기술 제휴를 하니 벤츠의 입김이 세졌다. 이때부터 벤츠의 갑질이 조금씩 시작된다. 갑질 중 또 하나는 쌍용 XDi 엔진 제작 전 벤츠에서 만든 270 CDI를 요청하지만 거부당한다.[15] 이 달리면서 구동변환이 가능한 시프트 온 플라이는 스포티지에서 처음으로 선보였다. 스포티지 역시 무쏘와 같은 보그워너의 트랜스퍼 케이스였지만 전자식 스위치를 장착하지는 않고 종래의 부변속 레버를 통한 전환을 했다.[16] 후술하겠지만 초기에는 썩 좋진 않았다.[17] 뉴 무쏘부터는 일반 링크식 수동변속기로 바뀐다.[18] 중앙집중식 도어잠금장치, 공조기 제어패널, 심지어 변속기까지[19] 일루미네이션 노브 삭제, 핸들 및 멀티펑션 스위치 변경 등.[20] 뉴 훼미리에 올라갔던 엔진이다.[21] 이 모델은 운전석 에어백이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다.[22] 당시 경쟁차량인 갤로퍼가 2.5 논터보가 73마력, 터보가 81마력이었다. 한급 아래인 록스타, 구형 코란도 등은 70마력대다. 다만 타 차량들에 비해 좋은 내구성으로 현재도 많은 차량이 살아있다 보니 이런 소리를 듣는 것이다.[23] 수출형 무쏘 디젤 2,874cc은 전부 SD300코드명을 사용하였다.[24] 라고는 하나, 실제로는 180km/h에서 얄짤없이 리밋이 걸린다. 후에 같은 엔진을 사용한 체어맨 600s 역시도 제원상 최고속도는 230km/h로 표기해놓고 있으나, 215km/h에서 바로 속도제한 장치가 작동한다.[25] 1996년 출시 당시 판매가격이 3,300만 원 정도였다. 그 당시 뉴 그랜저 3.5L의 가격우 3,500만 원 수준이었다. [26] 수출형 무쏘 가솔린 3199cc은 전부 SG320코드명을 사용하였다.[27] 금성 GPI-1200 모델 이라고 한다. 가끔 중고로 나올때도 있긴 하다. 하지만 레어템이기 때문에 가격이 꽤 비싸다.[28] 그 때 당시 준중형인 엘란트라나 아반떼 최상급 모델이 900만원에 미치지 못하는데, 그 5배이면 500리미티드의 체감 가격은 진짜로 그 정도가 된다. [29] 한국 시장에서 SUV는 원래부터 가솔린 엔진 탑재 차량들의 지분이 전통적으로 매우 낮았다.[30] 참고로 태국의 자동차 시장은 일본 브랜드의 입김이 강하다(현지 공장도 있다.). 그런데 태국에서 많이 사 갔다는 말은...[31] 놀랍게도 세계 각국의 황실/대통령 의전용 차량으로 판매되었다.[32] 무쏘 230 외에도 무쏘밴, 2WD 무쏘 등등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를 타고 저렴한 가격에 무쏘의 판매를 유지시키기 위한 보급형 모델들이 계속 나왔다. 그 덕에 판매량에서 잠시 갤로퍼를 앞지르고 2년 연속 SUV 판매량 1위를 달성했으나, 초기형 무쏘 시절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희석시켰다는 지적도 있었다.[33] 사실 어쩔 수 없는 게 쌍용이 받은 벤츠 엔진들은 '''내구성에만 더럽게 특화된 엔진'''이라, 전자장비 따위는 거의 없던 엔진이긴 했다. 그 덕에 남은 개체들이 많아진 것이다.[34] 그런데 뉴 무쏘 생산팀이 대부분 렉스턴 생산팀으로 건너가고 이스타나 생산팀이 무쏘 생산을 맡게되는데, 이때부터 품질이 점점 떨어졌다는 의견도 있다.[35] 2002년판 무쏘 스포츠 카탈로그에 나온 캐치프레이즈. #[36] 2003년판 무쏘 스포츠 카탈로그에 나온 캐치프레이즈. #[37] 이는 렉스턴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사실 커버가 없으면 쓰레기장이 된다. 바람 소리나 눈, 비를 막기 위한 이유도 있고(일반 트럭으로 치면 방수포를 고정적으로 덮었다 보면 된다.), 문제는 커버를 씌우면 그냥 SUV로 보이니 운전자들이 고속도로 1차로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무쏘 밴 모델 역시 고속도로 1차로에 들어갈 수 없다. 하지만 당시에는 지정차로제가 개정되기 이전이라 1.5톤 이하 화물차도 1차선에 들어갈 수 있었다.[38] 한편, 대우 그릴을 적용한 체어맨은 살찐 레간자라는 영 좋지 않은 별명을 얻었다.[39] 심지어 해외광고에서는 마티즈에 공기를 주입했더니 무쏘가 되는 진기한 광고도 존재했다.[40] 본네트에 붙이는 대우 뱃지도 원래의 대우차 것과는 조금 다른 듯한, 거의 사각형에 가까운 모양이라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았다.(...)[41] 다만, 내장 인테리어에는 일부 차이가 난다. 2001년 이후 모델은 세련되게 변경되었지만 이 시절 무쏘는 뉴 무쏘 이전 세대와 비슷하다.[42] 내부 구성은 거의 동일하며, 4륜구동 트랜스퍼 케이스 연결을 조금 더 용이하게 하기 위한 개량 정도만 가해졌다.[43] 인젝션 펌프에 연결되는 케이블 끝부분즘에 스프링과 플라스틱 스토퍼가 존재하는데, 이게 불과 5년만 지나도 다 삭아서 없어진다. 때문에 다 삭아 없어지면 스프링에 유격이 생기게 되면서 가속페달을 좀더 깊게 밟아야지만 삭아없어지기 전과 동일한 연료량을 분사할수 있는데, 문제는 이러는 사이에 케이블의 정지위치가 처음과는 달라져 버려 포지션 센서의 오차가 발생하게 되는것이다.[44] 본래는 렉스턴을 무쏘의 후속 모델로 출시할 예정이었으나 무쏘의 꾸준한 인기에 힘입어 렉스턴이 별도의 모델로 출시되면서 무쏘는 하위 그레이드로 다운되었고, 이에 따라 무쏘를 대신할 새로운 후속 모델로 단기간에 개발되어 출시된 차종이 카이런이다. 페이스리프트 정도 할 비용으로 만든 신차이다 보니 카이런이 완성도 면에서 떨어진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45] 무쏘 스포츠의 후속 모델은 액티언 스포츠다. 카이런은 픽업트럭 모델이 없지만 액티언과 카이런은 같은 차량이다. 같은 차를 세그먼트에 따라 조정해서 나온 것이다. 인테리어도 같다. 즉, 카이런을 액티언 롱바디로 보거나 액티언을 카이런 숏바디로 봐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후속이 카이런이라는 것에는 문제가 없어보인다.[46] 액티언-카이런-무쏘 스포츠(이후 액티언 스포츠로 대체)-렉스턴[47] 이렇게 한 이유는 무쏘 스포츠가 발매 초기에 화물차냐 승용차냐를 두고 정부와 업계 사이에 큰 논란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법개정으로 화물차는 화물공간이 승용공간과 면적이 같거나 더 커야 한다는 규정이 신설되면서 기존의 무쏘나 카이런으로는 해당 규정을 맞출 수 없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액티언을 기반으로 하여 픽업 트럭을 만듦으로써 이 규정을 충족할 수 있었다. 타사 차종만 보아도 무쏘 스포츠 발매 직후인 2003년부터 스타렉스나 프레지오의 6인승 밴의 격벽이 앞으로 밀려나며 뒷좌석 공간이 좁아진 이유도 이 법규정 때문이다. 이스타나의 경우는 원래 5밴모델도 화물공간이 더 넓었기 때문에 별도의 조정이 없었다.[48] 코란도 스포츠의 경우에는 액티언 스포츠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에 가까워 해외에서는 섀시가 공유되는 액티언에 코란도 스포츠의 전면부로 바꿔서 수출하는 지역도 있다.[49] 국산차 최초의 다카르 랠리 완주 기록은 무쏘의 이전 세대 모델인 코란도 훼밀리가 가지고 있다.[50] 그래서 당시에는 쌍용자동차 전시장에 가면 무쏘 랠리카 다이캐스트 모형을 줬다. [51] 각 부대에서 징발차량 명부를 가지고 있다.[52] 디젤 차량과 화물차에 있다가 지금은 없어진 몇 가지 규격과 세금 감면이 그런 목적으로 있었던 것이다.[53] #[54] 그도 그럴것이 무쏘는 그나마 79년도 벤츠 엔진이긴 해도 나머지 부분을 90년대 국내 사정에 맞게 현지화 시킨 반면, 갤로퍼는 82년도 파제로를 그대로 찍어낸 모델이기에 격차가 생길 수 밖에 없다[55] 단, 갤로퍼도 예외는 있긴 하다. 대표적으로 듀얼 에어컨 관련 부품이나 초기형 모델의 펜더 플레어(V6 가솔린, 인터쿨러 슈퍼 엑시드 트림만 해당한다.)가 있다. 원판인 파제로에서도 1세대는 듀얼 에어컨이나 와이드 플레어가 적용된 모델은 전체 생산량 중 소수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국내는 커녕 해외에서도 구하기 쉽지 않다.[56] 닛산 스카이라인 R3X계의 세단과 쿠페7에 들어가던 엔진이다.[57] 물론 갤로퍼도 저감장치 개발에 어려움이 있을 수는 있다. 저감장치를 장착하려면 '엔진의 형식+차체 형상+배기 계통의 구조' 이 3박자가 맞아야 하는데, 실제로 저감장치가 개발이 된 차종들도 막상 연식이나 사양에 따라 장착이 불가능하다고 호소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어지간한 차종들은 사양이 한 두가지 정도로 통일이 되어있으나, 갤로퍼는 엔진 형식(자연흡기, 터보, 인터쿨러터보)과 차체 형식(롱바디, 숏바디), EGR 유무, 플런저의 방식(기계식, 전자식)에 따라 조합이 상당히 많다.[58] 현재 한양도성 내부에서 시행중이며, 2021년에는 여의도와 강남 지역으로 확대 시행하는 것이 확정되었다.[59] 실제로 토/일/공 단속 미시행이라고 못을 박아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