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노 요헤이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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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중의원 의장'''
'''제70대'''
와타누키 다미스케

'''제71-72대
고노 요헤이'''

'''제73대'''
요코미치 다카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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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외무대신'''
'''제122대'''
고무라 마사히코

'''제123~125대
고노 요헤이'''

'''제126대'''
다나카 마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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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중의원 (가나가와 17구)'''
''선거제도 개편''

'''제41~44대
고노 요헤이'''

'''제45대'''
가미야마 요스케

'''일본 제71~72대 중의원 의장
(こう((よう(へい

고노 요헤이'''
<colbgcolor=#112fa7> '''출생'''
1937년 1월 15일 (87세)
가나가와현 히라츠카시
'''학력'''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부 경제학과 졸업
'''직업'''
정치인
'''가족'''
아버지 고노 이치로[1], 아들 고노 다로[2]
'''정당'''

'''약력'''
니치료우 대표이사 사장
부총리 겸 외무대신
내각관방장관
자유민주당 총재
중의원 의장
구 가나가와 제3구, 제5구 중의원
가나가와현 제17구 중의원
1. 개요
2. 상세
3. 가족
4. 소속 정당
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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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전직 정치인. 일본메이지 유신이 시행된 이후 가장 오랫동안 중의원의장(국회의장)을 지낸 사람이다. 중의원 의장 재임기간은 2003년 11월 19일부터 2009년 7월 21일까지 5년 8개월.

2. 상세


1937년 1월 15일 가나가와 현 히라츠카 시에서 태어났다. 와세다대학을 졸업하고 자유민주당에 입당, 정치생활을 시작한다. 고노 요헤이는 보수우익 정당 자민당 소속이긴 하지만 상당히 중도주의 성향이 강하고 계파색이 옅은 인물이었기 때문에, 여러 내각에서 두루 중용되었다. 그러면서도 비주류로서 자민당의 고질적인 부정부패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웠고, 개혁적인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상당히 좋았다. 이때문에 자민당이 수십년만에 야당으로 전락하자, 여러 파벌들의 합의하에 총재로 옹립되기도 했지만 다시 집권여당으로 복귀한 후에도 결국 실권을 가진 총리가 되지는 못했다. 어찌보면 비주류의 숙명이기도 하다.
1976년부터 1986년까지 록히드 사건을 계기로 10년동안 자민당을 탈당해 신자유클럽이라는 정당을 창당하여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1986년 치러진 중의원-일본 참의원 동시선거[3]에서 참패하고 자민당에 복귀하였다. 이후 부총리, 내각관방장관, 자민당 총재[4] 등을 지내고 2003년부터 2009년까지 중의원 의장을 지내는데, 이는 일본 헌정사상 최장기간 중의원 의장 재임이다. 또한 중의원 해산 선언을 두 번 한 몇 안 되는 의장으로, 2005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 시절 우정해산2009년 아소 다로 내각 시절 정권교체 해산이 있다.
2009년 중의원을 해산한 이후 중의원 의원 총선거 불출마를 선언하고 정계에서 은퇴했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자민당 총재를 지낸 다니가키 사다카즈와 함께 유이하게 일본에서 자민당 총재 직을 수행하였음에도 총리직에 올라보지 못한 정치인이 되었다.
특이점으로 미야자와 기이치 내각의 관방장관을 지내던 시절인 1993년 8월 4일,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하여 강압적 모집과 당시 일본 정부의 개입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발표한 적이 있다. 이 담화가 이후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 되어 2021년 현재까지 28년간 유지되고 있다. 2014년, 아베 내각 각료인 사쿠라다 요시타카가 고노 담화에 대한 재검증을 요구하자, 아예 사쿠라다를 가리켜 정치인으로서 실격이라고 강력하게 발언한 바 있고,# 그 후 2019년, 관동대학살에 대한 추모 메시지를 보냈다.# 자신이 속했던 자민당이 아베 신조 2차 내각 출범 이후 전반적으로 심하게 우경화되었음에도 고노 요헤이 본인은 아직 일본이 저지른 전쟁 범죄에 대해 반성하는 관점은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3. 가족


그의 아버지고노 이치로이고, 아들고노 다로이다. 3대가 중의원을 지내고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전부 지역구가 다르다는 것. 고노 요헤이와 고노 다로는 1996년부터 2009년까지 같이 중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고노 요헤이는 가나가와현 제17구, 고노 다로[5]가나가와현 제15구, 고노 이치로는 소선거구제 시절에 중의원을 한 게 아니므로 생략.

4.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1967 - 1976
정계 입문

1976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

1976 - 1986
창당

1986
정당 해산

1986 -
복당

5. 관련 문서


[1] 전 중의원 의원.[2] 전 일본국 방위대신, 현 일본국 국무대신[3] 제3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제14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4] 별 실권을 휘두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야당으로 밀려나자 주요 파벌들이 연합해서 이미지가 좋은 고노를 당 총재에 앉히고 실권은 계파가 나눠먹기... 이후에 사회당-자민당-신당 사키가케 연립 정권이 출범할 때도 사회당 당수인 무라야마 도미이치가 총리가 되고, 고노 타로는 부총리 직에 그쳤다. 무라야마 내각 총사퇴후 치러진 총선에서 다시 자민당 단독 과반이 되자, 하시모토 류타로가 경선 끝에 당 총재와 총리직에 오른다.[5] 아베 내각의 외무대신(외교부 장관)과 방위대신(국방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스가 내각의 국무대신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