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란 고원

 


Golan Hei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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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실효지배 지역과 시리아 실효지배 지역 사이에 회색으로 표시된 지역은 UN 교전중지감시부대(Disengagement Observation Force) 주둔하는 비무장지대(넓이 1,800 ㎢)로서 아사드가(家)의 시리아가 다스리는 지역인데, 실제로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사는 동네가 아니다. 제4차 중동전쟁 직후에 파괴되어 폐허로 변한 쿠네이트라[1] 시(市)가 여기에 있는데, 쿠네이트라는 원래 시리아의 도시였다. 위의 지도에서 점선으로 표시한 쿠네이트라 시가지의 서쪽은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무력 충돌을 예방하기 위해서 유엔 평화유지군의 영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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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3. 현재
4. 중요성
5. 여담


1. 개요


중동에 위치한 고원, 국제법상 이스라엘시리아의 영유권이 모두 인정되지 않는 영토 분쟁 지역이다. 지금은 이스라엘이 다스리는 고원(이스라엘의 점령지)이지만, 예전에는 시리아가 다스리는 고원(시리아의 점령지)이었다. 오늘날에는 이스라엘의 북부 구의 라맛하골란 군에 속하고, 옛날에는 시리아의 쿠네이트라 주의 쿠네이트라 지구와 피크 지구에 속했다. 시리아는 이스라엘과 화평조약을 맺기 위해서는 골란 고원의 반환이 필수라고 주장하지만, 자국의 안전보장을 요구하는 이스라엘은 이를 거부하고 있어 양측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그래서 유엔에서는 거의 다수 국가들이 이스라엘의 점령과 지배되는 현실을 인정하나 불법 점령으로 보다보니 공식적으로 시리아의 영역으로 보고 있다. 다만 무작정 시리아의 영역으로만 볼 수도 없다고 여기기에[2] 국경•영토 분쟁지대로 보고 있다. 아마도 가까운 미래에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양국간 협상에서 영유권의 귀속 또는 영토의 분할이 결정될 듯하다.
최근에 한국은 아사드 독재 가문의 시리아와 수교할 가능성을 고려해 '''형식적으로''' 여행금지구역에 넣었지만, 실제로는 이스라엘 본토를 통해서 골란 고원을 자유롭게 방문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이곳은 반이스라엘 적대국들에 매우 가까운 최전선이라 여전히 분쟁지대이다. 특히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국경을 대체한 비무장지대가 매우 위험한데, 시리아보다 훨씬 더 안전한 이스라엘 치하의 골란 고원에서도 반이스라엘 세력들(시리아군헤즈볼라)이 가끔 폭격하고 있다.

2. 역사


로마 제국 시절에는 마사다와 함께 '''유대인 독립운동의 거점으로서 유명한''' 감라가 골란 고원의 치소(治所)였으며, 예루살렘 왕국 시절부터 골란 고원은 이슬람 연합군의 침공을 방어하는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다. 오스만 제국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전하고 1922년 해체되면서, 국제 연맹은 오스만 제국이 다스리던 가나안의 통치권을 영국에 위임했다. 당시의 골란 고원도 영국령 팔레스타인의 일부로 취급되었지만, 이듬해 영국이 골란 고원을 프랑스에 넘겨주면서 골란 고원은 프랑스령 시리아의 일부가 된다.
1946년에 분리독립한 시리아는 폴레-뉴컴 협정에 바탕한 영국령 팔레스타인프랑스령 시리아의 국경을 변경해 갈릴리 호수를 절반씩 갈라먹자고 제의했지만, 영국 정부는 즉각 거부했다. 제1차 중동전쟁을 맞이하면서 시리아가 갈릴리 호수의 동쪽 지역을 빼앗은 덕택에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사이에서 갈릴리 호수와 골란 고원에 대하여 영토 분쟁이 일어났으며, 시리아가 다스리는 골란 고원은 군정(軍政) 지역으로 전환했다.
1967년의 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 방위군시리아군을 격파하고 갈릴리 호수와 골란 고원을 장악했는데, 이스라엘 간첩으로서 신분을 속이고 시리아 국방차관까지 오른 엘리 코헨이 이곳 점령에 큰 기여를 했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당시 시리아군이 이곳을 탈환하기 위해 공격을 가하여 헤르몬 산을 점령했으나 전황이 역전되어 다마스쿠스 근처까지 밀려났다. 1981년에 이스라엘 국회가 골란 고원을 합병하는 특별법을 입법하자, 이스라엘이 다스리는 골란 고원은 민정(民政) 지역으로 전환했다.

3. 현재


그리고 2018년에 51년만에 지방선거를 치르게 된다. # 2019년 3월 25일, 미국 연방정부는 골란 고원이 이스라엘 국가의 영토라는 현실을 인정했다. #. 미국의 결단에 대하여 무력으로 차지한 영토를 자국으로 병합시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최근의 국제법을 내세운 비판과 함께 러시아 연방의 크림 반도 합병을 정당화시킬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는데, 1923년판 로잔 조약을 바탕으로 터키 공화국이 시리아의 하타이를 빼앗아 합병한 선례와 함께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들이 독일의 국경을 새로 획정한 것과 비교하여 이것은 합법이라는 반론이 있다. 하지만 이건 지나치게 이성적인 관점에서 본 것이고, 아무리 친(親)이스라엘을 표방하는 미국 정계에서도 골란고원 합병 인정에 외교적으로 절대적으로 손해보는 카드라는 시선이 많다. 시리아를 굳이 자극해서 얻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것은 정치적인 이유를 찾아야될텐데, 트럼프 입장에서 골란 고원을 이스라엘 땅으로 인정해서 유대인 표심을 어느정도 확보할수있다는 계산이 깔려있고, 네타냐후도 부패 혐의로 궁지에 몰려있는데다가 총선까치 치러지기 때문에 정권을 상실할 위험이 큰데, 이를 반전시킬 카드가 절실했다. 즉, 서로 윈윈하는 방안이라는 것이다. 즉, 국내 정치를 위해서 국제적으로 욕먹는 것을 감수하는 것. 그리고 트럼프의 선거운동 도와주기로 네타냐후는 보수층 결집으로 5선에 성공했다.사실상 네탸냐후를 위한 트럼프의 선물인 셈이다.
6월에 새로운 유대인 정착촌의 이름을 ‘트럼프 고원(Trump Heights)’이라고 붙이는 식으로 지역개발사업에 착수했다.

4.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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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9년 아이유브 왕조가 6차 십자군에 맞서기 위해 축성한 수베이아 성.[3]
골란 고원은 갈릴리 호 북쪽에서 가파른 경사를 이루며 올라가 주변 지역을 대부분 감제할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로 이곳을 점령하는 쪽이 군사적으로 갈릴리 지역의 통제권을 확보할 수 있다. 좀 더 북쪽에 위치한 헤르몬 산도 중요하다. 특히 이 점은 이스라엘 측에게 더 강력하게 작용하는데 제3차 중동전쟁 이전까지는 골란 고원 서부의 깎아지른 절벽에 구축된 시리아군의 영구진지에 손도 못 대고 피해만 신나게 입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골란 고원이 돌파되면 그 후에는 그냥 이스라엘의 심장부가 회쳐지는 순서만 남게 된다.
반면 골란 고원을 이스라엘이 잡고 있을 경우엔 역으로 시리아의 요충지를 단박에 접수할 수 있다. 실제로 제4차 중동전쟁 당시 시리아군의 공격을 막아내고 공세로 전환하면서 다마스쿠스로 가는 진격로를 확보하고 다마스쿠스에 장거리 포격까지 가했지만 진격 개시 전에 협상을 통해 종전되기도 했다.
그리고 군사적인 문제 외에 황무지나 다름없는 유대 지역에 비해서 비옥하고 녹음이 있는 갈릴리 지역 중에서도 특히 풍광이 수려하고 인간의 생활에 유리한 지형이 자리잡았다는 이점도 있다. 중동 지역치고는 수자원이 풍부해서 폭포가 있는 등 지뢰와 군사적 충돌지대라는 위험성만 제외하면 관광지가 될 만한 곳이 많다. 그래서 이스라엘인 10만 정도와 시리아인 2만(마지달 샴스 지역)이 같이 살고 있다. 이스라엘의 척박한 토지 상황보다 훨씬 비옥해서 10만이나 몰려든 것이라고. 물론 3차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기존 거주민들을 강제로 내쫓은 탓도 크다. 하지만 막상 시리아에게 반환할 생각을 가지더라도 10만이나 되는 현지 거주민 문제가 골칫덩어리. 여기 거주 시리아인은 시리아 국적이 인정되어 국경선에서 이스라엘군이 보는 조건으로 친척끼리 만나는 자리(상봉)를 가지기도 한다.
시나이 반도의 경우 골란 고원에 비하면 단순한 완충지이고 이집트와의 관계 문제도 고려해 이집트에게 반환하였다. 소규모지만 석유가 산출되고 전략적으로 역시 만만치 않게 중요한 수에즈 운하로 통하는 접근로라는 의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의 이유들과 영토 관리 문제 등이 겹쳐 이집트에게 냉큼 돌려준 것이었다. 하지만 골란 고원은 아직도 이스라엘이 단단히 거머쥐고 있다. 무엇보다 갈릴리 호수 바로 인접지역이라 이스라엘 수자원의 상당 부분을 직접 통제할 수도 있다. 이스라엘의 수자원은 갈릴리 호수와 요르단 강에 의존하는 바가 크기 때문에 국제 하천인 요르단강에 을 건설하는 문제만으로도 요르단이 반발하면서 하마터면 전쟁이 일어날 뻔한 적이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시나이 반도와 남레바논 지역처럼 돌려줘야 되는 지역이지만, 결론적으로 골란 고원을 다스리는 나라가 인접한 다른 나라에 비해 압도적으로 유리해지는지라 지금까지 평화적인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이스라엘로서는 돌려주기에 너무나 아까운 지역이니 그냥 눌러앉은 것이다.
헌데 2010년대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의 난립과 시리아 내전 여파로 시리아 난민이 우르르 몰려들어 시리아인들 거주자가 15만을 훌쩍 넘겨버렸다. 이스라엘로서는 골치아프지만 막을 수도 없는 노릇. 하레디들은 막아야 한다고 징징거리지만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다. 행여나 막다간 이스라엘도 더 욕먹을 게 뻔한데다 안 그래도 악만 남은 시리아 난민들이 순순히 당할리도 없고 죽어라 덤벼들게 뻔하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골란고원이 이스라엘 땅인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렇게 되어 무력충돌이 벌어지면 팔랑헤 학살(바시르와 왈츠를에서 나온 실제 학살사건) 저리 가라할 수준의 대형 참극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이스라엘 측에선 골란 고원에 한해서 일단 놔두고 있다. 그러다보니 지금도 골란 고원에 무더기로 난민들이 온다. 철조망도 난민들이 죄다 부숴버렸을 정도이다. 이 당시 몇만이 넘는 시리아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철조망을 부수고 진입했기에 이스라엘군도 당황하며 물러났다.
일부에서는 현재 이스라엘이 점거하고 있는 골란 고원의 영토들 중 동쪽 지역 반은 시리아에게 반환시키고, 갈릴리 호수와 인접한 나머지 서부 지역 땅들은 이스라엘이 갖는 식으로 이스라엘령과 시리아령으로 분할하여 양국이 영유권을 갖는 식의 해결 방안들이 거론되고 있지만 분쟁의 당사국인 이스라엘시리아가 이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골란 고원의 북쪽에 있는 셰바 농장은 레바논 국경에 인접한 땅이다. 시리아와 이스라엘이 강탈했다고 주장하면서 영유권을 외치는 레바논 정치인들의 주장에 대하여 이스라엘은 물론이고 시리아조차 무시하고 있으며, 근처에서 농사짓는 마을 사람들은 레바논과 시리아를 모두 버리고 이스라엘 국민이 되는 쪽으로 하루아침에 변심했다.

5. 여담


제4차 중동전쟁 당시 골란 고원 방어전 및 반격전에 투입된 이스라엘 육군 제7기갑여단 소속 77 전차대대의 전투기록이 '골란 고원의 영웅들'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돼 있다. 번역도 괜찮아 한 번쯤 읽어볼 만하다. 제대로 기습당하고 제공권도 확보 못했던[4] 초기 전투상황을 보면 정말 처절하다.
독일 4호 전차의 마지막 전장이기도 하다.
과거 우간다의 악명높은 독재자였던 이디 아민의 관저 뒤에 있는 언덕을 골란 고원으로 칭하기도 했다. 사실 이디 아민이 이스라엘이 빼앗은 땅을 되돌려야 한다고 하고 단교한 뒤 이디 아민의 명으로 만든 언덕. 그리고 여길 병사들을 시켜 점령했다고 한다(...).
[1] 반(反)이스라엘 적대국들의 시청각 자료에서는 Quneitra로 표시하는 경우가 많고, 친(親)이스라엘 우방국들의 시청각 자료에서는 Kuneitra로 표시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아랍어를 공용어로 쓰는 나라들에서는 k, q의 발음이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q로 표기되는 곳이 많고, 반대로 북아메리카와 서유럽에서는 k로도 표기하기도 한다. 실제로 이스라엘 본토에서 키르얏 쉬모나(이스라엘 도시)를 표시하는 이정표들은 《Kiryat Shmona》로 표시하기도 하고, 《Qiryat Shemona》로 표시하기도 한다.[2] 1967년 3차 중동전쟁 이전에도 이스라엘-시리아 국경에서 극히 일부, 소수 정도나마 골란 고원 기슭에 걸치긴 했었다.[3] 이스라엘 본토에서는 님로드(Nimrod) 성이라고 부르며, 이스라엘 국가의 국립공원이 되었지만, 몇몇 나라들은 폴란드 공화국비아워비에자 국립공원을 폐지한 소비에트 연방일본 제국타로코 국립공원을 폐지한 중화민국의 선례를 고려하여 시리아의 성/요새 유적지로 분류하고 있다.[4] 이스라엘의 경우 거의 대부분의 지역의 제공권을 확보했기에 "예루살렘 처럼 성지도 아닌데 왜 공습을 못 했냐?"고 생각 할수 있지만 워낙 방어를 철저히 했기에 별 효과가 없는데 UN 때문에 포위 해서 굶어 죽이는 것 같은 장기전은 못 하고, 어쩔수 없이 그냥 밀고 갔으며 이 때문에 기갑부대(이마저도 거의 대부분 격파되었다.)와 알보병들이 피를 토해가며 기적적으로 점령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