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초강대국

 


1. 개요
2. 실현
3. 현실


1. 개요


Hyperpower. 소련붕괴한 '''1990년대 초반부터 리먼 사태가 터진 2007년 이전'''까지 조지 H. W. 부시 ~ 빌 클린턴 ~ 조지 W. 부시 대통령 집권기 사이의 미국이 잠깐 확립한 국가 개념으로 현재까지 등장한 적이 단 한번 뿐인 강대국 중의 강대국을 초강대국으로 칭하는데 그 초강대국을 넘은 단계의 인류 전체를 영향력에 넣을 수 있는 힘을 가진 국가를 칭하는 용어이다. 이 경지에까지 이른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의 정부는 사실상 세계정부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의견도 있다. 또한 이 정도 경지에 이른 국가는 이미 우주를 개척하거나 행성 식민지를 만들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과 기술력, 인력이 있는 국가로 보기도 한다.
다만 극초강대국이라는 표현보단 이들은 주로 그 시대 최강국이자 패권국인 경우가 많아 패권국가라고 불리는 경우가 더 많다.

2. 실현


이 용어 자체도 냉전 종식 직후인 1992년부터 2006년까지, '''미국이 마침내 도달한 지위'''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 50여 년간 대립하던 초강대국 소련이 무너지면서 미국은 전세계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남았으며 소련 해체 직후의 러시아가 경제난으로 허덕일 때 미국걸프 전쟁유고슬라비아 내전에서 맹활약을 하면서 자신들의 국력을 전 세계적으로 과시했다.[1] 이 당시 미국 대통령의 실질적 권위는 사실 상, '''세계 대통령'''이나 마찬가지였다.
현재 미국의 유력한 라이벌인 러시아중국미국의 눈치를 안 볼 수 없었던 시절이었으니 그 당시에는 미국이 국제 사회를 자신들의 독무대로 삼고 활약을 했었다. 예쯔청의 중국의 세계전략에서는 전 지구적 초강대국(Global Superpower / Hyperpower)으로 소련이 해체된 후의 미국이, 반짝 '''전 지구적 초강대국'''이라고 설명하였다. 심지어 UN을 국가로 인정한다고 해도 극초강대국은 될 수 없다.[2]
미국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대침체미국의 국력을 계속 소모하기 전까지, 10년동안 그야말로 압도적인 국력을 자랑했다. 당시 중국은 아직 지역 강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고, 러시아소련 붕괴와 공산권의 몰락으로 인한 체제 전환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반면 미국소련의 몰락으로 쓸데없이 국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어진 데다가 유럽에는 NATO, 동아시아에는 대한민국일본, 중동에는 사우디아라비아라는 동맹국이 있어 그야말로 전 세계가 다 미국의 편을 들어주고, 미국 중심으로 돌아가는 상황이었다. 당시 미국은 그야말로 따라잡는다는 생각조차 할 수가 없는 극초강대국에 근접한 국력을 자랑했다. 심지어 영공을 즉시 개방하거나, 그렇게 하지 않겠다면 나라를 개박살 내겠다는 그야말로 외교 질서 따위는 개나 준 협박행위를 하고도 '''그 어떤 국가도 이에 대해 규탄하지 못했다.'''[3]
다만, 극초강대국이라는 용어가 90년대 이후에 등장하기는 했으되, 통계적인면에서는 '''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의 10여년간의 미국'''도 그에 못지 않은 극초강대국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미국은 '한 국가가 전세계 GDP의 50%(!)'라는 말도 안되는 수치를 자랑했으며, 미국을 제외한 다른 주요 국가들이 모두 전후 재건에 허덕이던 시절에 홀로, 압도적인 경제력, 군사력, 문화적 영향력을 과시했다. 이는 1990년대의 미국조차 달성하지 못한 비중이기도 하다. 물론 당시에도 '소련'이 있기는 했지만, 명목상의 정치적 대립관계일 뿐 실제로 조목조목 따져볼 때는 군사력에서 조차 미국과는 비교할 수 없는 현격한 열위 상태에 있었다.[4]
대중 매체에서도 극초강대국은 잘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이 극초강대국의 일원이면 너무 강력하여 이야기 진행이 안 되고, 주인공이 극초강대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면 싸움이 성립이 안 되어 이야기 진행이 안 된다[5]. 극초강대국의 기준은 대적할 자가 없는 압도적인 범국가적 힘을 가진 나라이기 때문이다.

3. 현실


극초강대국으로 인정받기 위한 첫 번째 요소는 군사적 패권이다. 즉, 극초강대국은 전 세계의 어떠한 지역에서든 군사행동을 통해 자국의 이익을 달성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군사력은 일국을 완전히 점령하는 것이 가능한 수준이다.[6] 즉, 동맹이나 우방국의 행위가 자국의 이익에 맞지 않으면 가차없이 정권을 교체할 수 있을 정도의 국력이다.
이는 1990년대까진 옳은 말이었을지도 모르나, 조지 W. 부시 대통령 이하 딕 체니를 위시한 네오콘들이 9.11 테러에 복수한답시고 벌린 거한 삽질은 뚜렷한 성과도 거두지 못한 채 되려 국방력 약화를 불러왔다. 전쟁으로 국방비 지출이 가속화되면서 미국 경제는 심각한 재정 적자로 빚더미 위에 앉았고, 신무기 프로젝트들은 줄줄이 취소되었으며, 점령지에서의 산발적 테러로 인한 지속적인 인명 손실은 미군의 심각한 질적 저하를 초래했다. 미군이 2000년대에 보여준 삽질들이 역설적으로 이제 미국이 극초강대국으로 분류되기에는 부족함을 증명한 셈이다. 더욱이 이라크 전쟁은 명분도 없이 무작정 일으키고 본 전쟁이었고 아프간 전쟁의 목적이었던 빈라덴의 사살은 CIA가 다 잡아놓은 빈라덴을 럼즈펠드가 뻘짓해서 놓치는 일이 몇번이고 반복되면서 장기화된 전쟁이었다. 즉, 미국의 국방력 약화를 초래한 두 전쟁이 모두 일으킬 필요도 없었거나 몇 년은 빨리 끝낼 수 있던 전쟁을 뻘짓으로 질질 끈 전쟁이다.
비대칭 전력, 핵무기의 존재 역시 극초강대국으로서 미국의 독보적인 지위를 의심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러시아는 상호확증파괴가 가능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양쪽 간 핵전쟁이 발발하면 미국도 멸망 또는 그에 준하는 피해를 피할 수 없기 때문에 군사력으로 압도한다고 말할 수 없다. 러시아는 소련 붕괴 이후 경제난으로 신음하던 1990년대에도 최신형 ICBM을 개발하였다. 이후 2000년대 부시가 MD를 추진하자 핵전력의 무력화를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러시아는 핵무기 감축 협상을 거부하고 MD를 뚫는 최신형 ICBM을 배치하여 상호확증파괴가 가능한 핵전력은 필사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러시아의 핵전력 강화는 소련 시절에 비해 국가적 역량과 외교적 영향력이 크게 줄어들었고 미국에 대응하는 정치·외교적 레버리지의 상당부분을 소련에게 물려받은 핵전력에 의존하고 있어 내린 선택이다. 사실 소련 때도 미국과 국방예산 경쟁을 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핵무기에 올인한 것도 있다. 2000년 이후, 국제관계 흐름의 변화도 결코 미국에게 유리하지만은 않다. 무엇보다 소련과 공산주의의 거대한 안보 위협이 사라지면서 냉전기 자본주의 진영에 속했던 국가들조차도 미국의 일방적인 행보에 조금씩 엇박자를 내고 있다.
현 시점에서 미국의 혈맹은 영국호주, 캐나다, 뉴질랜드인 영미권 국가들[7] 정도에 불과하며, 견실한 군사력을 보유한 터키 등의 국가나 북유럽 국가들은 물론 프랑스와 독일조차도 전략적 동맹관계를 유지할 뿐 자국의 입장과 대치될 경우 주저없이 반기를 드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경제 동맹체로서의 유럽연합은 점점 미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자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유럽연합의 미래에 대해 의혹을 가진 시각도 적지 않아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나아가 2000년대 이후로 미국의 여러 삽질로 인해 반미국가의 쌍두마차인 중국러시아가 힘을 키우며 많은 수의 중남미, 중동아시아, 아프리카, 동유럽 국가들이 친러, 친중, 반미 진영에 합류하거나 미국과 중-러 사이 공간에서 적당히 운신의 폭을 넓히고 있다. 러시아중국을 중심으로 뭉친 반미 진영은 여전히 세계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한편 미국 경제가 연이은 전쟁의 여파로 허덕이는 사이, 러시아는 세계적인 고유가 기조에 편승하여 풍부한 천연자원을 그대로 현금으로 전환함으로써 경제규모에서 단숨에 8위(구매력평가 기준은 6위)까지 치고 올라와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것처럼 보였다.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에서 계속 출혈만 내자 다소 잠잠했던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을 대하는 자국의 태도를 바꾸어 국제정세를 흔들었다. 하지만 그 뒤 미국에서 개발하기 시작한 셰일 가스를 비롯한 '''저유가''' 현상과 유로마이단 사태로 인한 서방의 경제 제재로 (특히 미국의 경제제재이다.) 인해 러시아는 경제 사정이 급격히 나빠졌다. 러시아 외에도 중동 국가들과 베네수엘라 등 석유에 의존하던 국가들의 경제가 흔들려 반사적으로 미국이 이익을 보았다.


[1] 심지어 아랍 지역인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지역조차 걸프 전쟁에서 미국의 편을 들어 전쟁지원금을 냈다. 물론 이는 후세인이 같은 아랍 국가인 쿠웨이트를 별다른 명분도 없이 공격했다는 점이 작용하긴 했다.[2] 만약 UN이 약소국인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을 보고 어느 도시 시장을 갈아치우라고 명령한다면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은 '''조까'''로 일축할 것이다.[3] 지금의 중동과 달리 이 당시 중동이스라엘의 후견인이라는 이유로 미국을 싫어하기는 했지만 대놓고 반미를 주장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사우디아라비아처럼 미국과 동맹을 맺는 국가들이 있었을 정도였다. 중동지역이 대놓고 반미를 주장하며 혼란해지기 시작한 것은 이스라엘의 깽판짓이 점점 드러나면서 국제 여론이 이스라엘과 후견국인 미국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조지고 부시는 대통령명분 없이 이라크를 공격해놓고 뒷수습을 개판으로 한 시점부터이다.[4] 1950년대 초반기준으로라면 핵전쟁을 벌여도 미국이 일방적으로 소련을 멸망시키고, 자국(본토)의 피해는 그다지 입지 않을 시절이다. 즉 상호확증파괴를 통해 실질적으로 소련이 미국과 맞먹을 수 있게 된 것은 50년대 후반 이후.[5] 만약 싸움이 성립된다면 이미 그 시점부터는 극초강대국이 아니다.[6] 언제든지 원하는 때에 군사력을 투입하여 일국을 점령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약소국이든 강대국이든 말이다.[7] 미국과 이들 4개국 정보기관들의 모임이 5개의 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