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가수)

 


<colbgcolor=#0074FF><colcolor=#FFFFFF> '''신지
SHINJI'''
'''본명'''
이지선 (李智善, Lee Ji-sun)
'''출생'''
1981년 11월 18일 (42세)
인천직할시 북구 청천동
(現 인천광역시 부평구 청천동)
'''거주지'''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국적'''

'''본관'''
전주 이씨 덕성군파 24세손
'''신체'''
164.6cm[A], 57.9kg[A], AB형
'''직업'''
가수, 방송인
'''가족'''
아버지, 어머니 조경엽[1]
언니 이지원[2], 남동생 이형기[3]
'''학력'''
인천청천초등학교 (졸업)
북인천여자중학교 (졸업)
부개여자고등학교 (졸업)
동덕여자대학교 (실용음악학 / 학사)
경기대학교 (전자디지털음악학 / 학사)
'''종교'''
무종교[4]
'''소속사'''
KYT엔터테인먼트[5] (대표)
'''소속 그룹'''
코요태
'''포지션'''
'''메인보컬'''
'''데뷔'''
1998년 코요태 정규 1집 고요태(高耀太)
데뷔일로부터 '''9259일'''째
'''별명'''
메보[6], 이지댕[7], 귀신지[8], 예쁘신지, 신국장[9]
'''MBTI'''
ISFJ 출처
'''취미'''
인스타그램, 글쓰기[10], 배송 추적하기[11]
'''특기'''
집에서 멍때리기
'''링크'''

1. 개요
2. 데뷔 전
3. 데뷔 후 코요태 활동
3.1. 창법
5. 개인 활동
6. 수상 경력
6.1. 시상식
7. 여담
7.1. 성격
7.2. 외모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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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가수방송인. 3인조 혼성그룹 코요태의 멤버이며, '''메인보컬'''을 맡고 있다.
대표적인 한국의 혼성그룹으로 손꼽히는 코요태의 메인보컬로 1998년 12월 9일 18세에 데뷔하였다. 2018년에는 '''데뷔 20주년'''을 맞이하였다.[12] 코요태의 결성 때부터 20년이 지난 현재까지 남자 멤버들의 숱한 교체가 있었음에도 계속 활동을 한 '''코요태의 산 증인'''이다.

2. 데뷔 전


초등학교 때 글짓기를 잘해서 상을 많이 탔다. 노래 부르는 것도 좋아해서 노래하면 사람들이 잘 한다고 칭찬을 해줘서 그때부터 가수가 되기로 다짐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합창단 활동을 하였고, 1996년 중학교 3학년 때 인천 청소년 가요제에서 박미경의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은상을 수상하였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합창단 음악 동아리가 없어서[13] 직접 밴드를 결성하여 활동을 하였다.[14] 활동을 하던 중 1998년 고등학교 2학년 때 인천 청소년 가요제에서 소찬휘의 '보낼 수밖에 없는 난'으로 금상을 수상하였다. 그 후에 여러 회사에 오디션을 봤었고, 파파야 출신 조혜경과 듀엣으로 데뷔를 준비하려고 했었지만 무산되었다. 그러나 코요태의 멤버로 발탁되어서 하루 만에 정규 1집 앨범 녹음 작업을 끝내며 그룹이 결성되었다
김원준의 팬클럽 회장이었다. 데뷔 전에도 친분이 있었지만, 데뷔 후에도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3. 데뷔 후 코요태 활동


코요태에 들어왔을 당시에는 원래 같이 연습을 했었던 여자 멤버가 1명이 더 있었고, 회사에서는 그 여자 멤버를 더 메인으로 밀어줬었지만, 데뷔 전에 탈퇴를 하게 되어서 신지는 코요태의 홍일점으로 데뷔를 하였다. 그것도 연습생 생활 없이 바로 정규 1집 앨범 녹음에 들어갔다고 한다.
데뷔 초에는 원래 목소리는 애교가 있는 낭랑한 목소리였으나, 성대결절 이후에 걸걸한 목소리로 바뀌게 되었다. 정규 1집 앨범과 정규 2집 앨범에서는 '''고음역대를 가성과 진성을 억지로 쥐어짜는 방식'''[15][16]으로 보컬을 소화하다보니 목이 자주 쉬어서 남성 보컬인 차승민이 도와줘야 하는 경우가 생길 정도였다.
차승민이 빠지면서 신지는 정규 3집 앨범부터 본격적으로 코요태의 메인보컬로 활약을 하게 된다. 정규 1집 앨범과 정규 2집 앨범 때는 과도한 목 사용과 지나친 스케줄로 인해서 누적된 피로와 스트레스 때문에[17] 정규 3집 앨범 활동을 하던 2001년 21세에 성대결절이 오게 되었고[18][19], 이에 무리한 결과 2003년에 성대결절이 또 오게 되었다. 이로 인해서 예전의 목소리를 대부분 잃고 걸걸한 목소리로 변하였고, 예전처럼 시원한 스타일로 고음을 소화하지 못하고, 음역대도 줄어들어 허스키하게 가성을 쓰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2002년 정규 4집 앨범 때 신장염과 급성 신우신염 등으로 고생하며, 얼굴이 많이 붓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네티즌을 중심으로 한 안티가 급속도로 양산되어 몇 년간 지속되는 바람에 마음 고생도 심했다. 당시 신지는 예능에서 주로 센캐 기믹으로 밀고 나갔는데, 지나치게 독설을 한다는 선입견과 더불어 '내가 가요계의 군기반장이다' 는 식의 발언 등으로 좋은 이미지는 아니었다. 게다가 거침없이 하이킥 당시 맡은 극중 캐릭터도 좀 비호감이었던지라 덩달아 까인 탓도 있다.
남자 멤버들의 군 대체복무뇌종양 투병 등으로 그룹 활동이 불가능했던 시기에는 솔로 활동을 하였다. 솔로 활동 당시에 무대 공포증과 대인기피증이 생겨서 3년동안 나가서 활동도 안하고, 집에서만 생활을 하였다.[20] 힘들어할 때 김종민 덕분에 극복하고, 다시 활동을 할 수 있었다[21]. 영상
코요태가 아니었으면 연예계에서 홀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며 코요태에 대한 애착이 정말 상당한 듯하다. 코요태는 데뷔 때부터 현재까지 홍일점 신지를 중심으로 남성 멤버들이 서포트를 해주는 구도였기 때문에 신지 입장에선 그 효과로 덕을 본 것도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방송에서 "남자멤버들이 옆에 있어서 내가 돋보였던 것이다. 솔로나 걸그룹으로 나왔다면 내가 지금까지 이 자리에 없었을 것" 라고 말한다. 영상[22]
1년 내내 행사를 뛰고 음반 활동을 안 할 때는 예능까지 섭렵하였다. 그리고 이경규에게 잘 보였는지, 보조 MC로 자주 불려다녔다.

3.1. 창법



신지의 레전드 라이브 영상이다. 코요태 정규 2집 앨범 활동 당시에 차태현의 FM 인기가요에 출연해 실연, 순정, Party Party를 불렀다. 심지어 Party Party에서는 랩을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코요태의 정규 1집 앨범부터 정규 3집 앨범 노래까지는 웬만한 가수들도 소화하기 힘든 고음역대의 노래들이 대부분이었다. 정규 1집 앨범 타이틀곡 순정은 최고음이 '''3옥타브 파♯(F♯5)'''[23], 정규 2집 앨범 타이틀곡 실연은 '''3옥타브 솔(G5)'''[24], 정규 2집 앨범 수록곡 Touch Me는 진성으로 '''3옥타브 라(A5)''', 가(假)는 가성으로 '''4옥타브 레(D6)''', 정규 3집 앨범 타이틀곡 Passion과 파란 등 '''3옥타브 파(F5) ~ 파♯(F♯5)'''까지 올라가는 고음을 내야 했었다. 그런데다가 작곡가들은 곡을 더 높게 써주기도 하였다.[25][26][27]
이로 인해 성대결절이 걸리면서 예전처럼 시원한 스타일로 고음을 소화하지 못하고, 음역대도 줄어들어서 허스키하게 가성을 쓰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신지는 클래식으로 말하면 초창기에는 소프라노의 음역대에서, 성대결절 이후에 메조 소프라노(3집과 4집)와 알토(5집이후)의 음역대로 내려간 것이다.
그래서 정규 4집 앨범부터는 음역대를 낯춰서 불러야 했고, 정규 5집 앨범에서는 성대 문제로 녹음에도 큰 차질을 빚었다. 그 이후에 음이 자주 플랫되는 문제도 나타나서 2008년에 노래방에서 김경호의 금지된 사랑 한 소절을 G키로 불렀는데 플랫이 심했다고 한다. 2009년에는 도전 1000곡에서 곡 소화하기 힘들다고 하였고, 2011년에는 코요태 새 앨범이 나왔을 때도 인터뷰에서 "거의 한 키 가까이 음역이 내려앉았다"고 하기도 하였다.
그 뒤로 다시 보컬 트레이닝을 받아서[28] 2011년 이후로 창법이 많이 바뀌었고, 히든 싱어에서 어느 정도 회복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정규 1집 앨범의 타이틀곡 순정과 정규 3집 앨범의 타이틀곡 Passion을 잘 소화해냈지만 파란은 버거웠는지 쿨하게 인정하고 두 키를 낮춰 불렀고(E♭m → C♯m), 고음 부분은 신지와 모창 능력자들이 상당수 소화하였다.
2016년 2월 20일 쿨요태 콘서트를 기점으로 히든 싱어 이후보다 목상태가 회복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쿨요태 콘서트에서는 파란 하이라이트 부분을 원키로, 순정은 1키 내려서 불렀다.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목상태가 많이 돌아왔다.
2019년 코요태의 단독 콘서트에서는 순정, Passion 뿐만 아니라, 전성기 시절에도 버거워했던 파란 뒷부분의 전조부분, 실연에 이어 악마의 음역대를 자랑하는 미련까지 원키 라이브로 소화해 냈다.
이렇듯 가수로서 기본적인 발성 자체가 제대로 잡혀있지는 않았지만 데뷔 당시부터 음악에 대한 타고난 감각도 가지고 있었던데다가 프로 경험도 길어지면서 노래 자체를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목소리가 이상하게 갈라지면서도 노래가 들을 만한 게 바로 그 때문이다. 포텐이 굉장했는데 데뷔 초부터 그걸 잘 기르지 못해 아쉬운 편이라는 의견이 있다.

4. 음반 목록





5. 개인 활동


신지의 개인 활동만 기록합니다. '''코요태''' 멤버로서 활동한 부분은 '''코요태/활동''' 문서에 기록합니다.

5.1. 방송



1년 내내 행사를 뛰고 음반 활동을 안 할 때는 예능까지 섭렵했다. 많은 예능 프로그램에 게스트, 패널로 출연했으며 특히 이경규에게 잘 보였는지 보조 MC로 자주 불려다녔다.
김종민과의 인연 때문에 1박 2일에 게스트로 자주 출연하고 있다. 시즌1부터 시즌3까지 모두 출연한 최초의 게스트로 이제는 하다못해 1박 2일 멤버들조차도 반쯤 1박 2일 멤버로 생각할 정도이다. 2015년 6월 14일에 방영한 여자사람친구 특집에 직접 김종민의 여자사람친구로 출연했다. 김종민은 여기서 신지를 우표에 비유했다. 오래 두면 둘수록 가치가 올라가고, 옆에 없어도 다른 데 가서 붙어 있는다고 한다.[29] 오랫동안 코요태로 함께 활동한 인연 때문인지 따위는 없는 진정한 여자사람친구의 모습을 보여줬다는 평이다. 1박2일 시즌4 에서는 인천 토박이로 김종민이 추천하여 전화를 받은 바 있다. 이때 스타트업을 본다고 밝히며 김선호와 통화할때의 반응이 재밌고 귀여워 한차례 화제가 된 바 있다.
2005년 3월 5일부터 7월 30일까지 MC몽과 함께 생방송 음악캠프 MC를 맡았다. 그러나 방송사고가 일어나는 바람에 5개월 만에 종영되었다.
2008년 11월 23일부터 2011년 5월 1일까지 신동엽, 김생민, 이윤아와 함께 TV 동물농장 MC를 맡았다.
2015년 12월 5일 히든 싱어 시즌4 10회에 원조 가수로 출연했다. 출연 계기는 패널로 꽤 오래 출연했는데 그러다보니 그런 동료 가수들이 부러워서였다고 한다. 다만 신지의 목 상태가 성대결절로 인해 예전 전성기보다 현저히 악화되었고 창법도 상당히 바뀌었기 때문에 우려가 있었으나, 모창 능력자들[30]과 차별되는 특유의 목소리와 허스키한 음색과 가창력을 선보이며 무난하게 우승을 차지했다. 시청률도 시즌 4에서 임재범 편 다음으로 잘 나왔다. 유튜브 코요태레비전 2차 라이브에서도 이 방송으로 인해 팬이 되었다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밝혀졌다.
2016년 3월 21일부터 6월 13일까지 김기리와 함께 팔도견문록 시즌3 MC를 맡았다. 촬영 도중에 사고가 한차례 나서 큰 부상을 입었지만 끝까지 촬영을 이어가는 프로의 모습을 보였다.
2016년 10월 6일 해피투게더 시즌3 468회에 출연했다. 김종민에게 정조 임금과 닮았다고 디스당했고, 술 좋아하고 욕 잘하고 골초라는 점에서 이 말을 들은 신지는 말 그대로 머리를 부여잡아야 했다. 다만 김종민이 정조의 골초 면모를 설명할 때 뒤에 '신지와 좀 다른데'라는 말을 덧붙인 것으로 보아서 애연가는 아닌 비흡연자인 모양이다.
2017년 7월 12일부터 7월 26일까지 김종민과 함께 남사친 여사친에 커플로 출연했다.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인 여러 커플의 이야기.
2018년 9월 21일부터 11월 2일까지 진짜 사나이 300에 출연했다. 안 하던 운동도 다시 시작할 정도였다. 만약 일밤 2부로 본 프로그램이 편성되면 졸지에 같은 코요태 멤버인 김종민과 함께 동시간 예능 대결이 성사될 수도 있었자만[31] 금요일로 조정이 됨으로써 동시간 예능 대결은 면하게 되었다. 육군3사관학교 편에 출연하였는데 부상으로 인해 교육훈련 미이수가 50% 이상이어서 교육운영위원회가 개최되었는데 운영위원들의 투표결과 임관이 불허되고 교육수료로 결정되었다.
2020년 1월 2일부터 내일은 미스터트롯에 심사위원으로 출연했다. 미스터트롯은 마지막 생방송에서 35%의 시청률을 찍을 만큼 대단한 인기 방송이었다. 그러나 출연자 중 하나인 천명훈에게 '오빠가 제일 멋있다' 라고 하거나 눈물을 흘리는 등 특정 참가자를 편애한다는 약간의 논란이 있었다. '오빠가 제일 멋있다'라는 말을 한 것이 아니고, 개인적인 의견이라 말하며 '오빠 오늘 그 어떤 무대보다 제일 멋있었습니다' 라고 했다. 단순히 위의 멘트만 했다면 논란이 생길 여지는 있지만, 과거 동시대를 활동했기도 했고 천명훈뿐만 아니라 신지에게도 의미가 남다른 무대였기에 했던 말인듯하다. 그리고 특정 참가자 편애 논란은 심사원단의 대장격인 장윤정도 있었다.

5.2. 라디오




5.3. 드라마


<rowcolor=#FFFFFF> '''방송사'''
'''방송명'''
'''배역'''
'''비고'''
'''2002년'''

레츠고
신지
34회
특별 출연
'''2006년'''

'''거침없이 하이킥'''
'''신지'''
'''주연'''
'''2009년'''

지붕뚫고 하이킥
신지
81회
특별 출연
'''2018년'''

날아라 메뚜기
신지
3회
특별 출연

5.4. 광고 및 홍보대사




6. 수상 경력


신지의 개인 수상만 기록합니다. '''코요태''' 멤버로서 수상한 부분은 '''코요태''' 문서에 기록합니다.

6.1. 시상식


<rowcolor=#FFFFFF> '''날짜'''
'''시상식명'''
'''수상 부문'''
'''작품'''
'''1996년'''

인천 청소년 가요제
은상
이유같지 않은 이유
'''1998년'''

인천 청소년 가요제
금상
보낼 수밖에 없는 난
'''2007년'''
12월 29일
MBC 방송연예대상
특별상
거침없이 하이킥

7. 여담


  • 본래 예명을 지을 당시 본명을 미국식으로 살짝 비틀어 '이지'로 하려 했는데, 먼저 데뷔한 베이비복스김이지가 있기도 하고[32] 'easy'에서 헤픈 여자라는 어감이 느껴져 본인이 마음에 들어한 신씨 성을 갖다붙여 '신지'로 정했다고 한다.
  • 김종민과는 거의 20년 넘게 같이 활동한 만큼 친한걸 넘어선 친동생 친오빠 같은 우정을 가지고 있다. 언급되었듯이 1박 2일 시즌1부터 시즌3까지 김종민에 의해 불려가면서 1박 2일 게스트 중 유일하게 모든 시즌에 개근했으며, 멤버들도 그런 김종민이 얼마나 지긋지긋했는지 김주혁은 아예 "또 신지 데리고 왔냐"며 김종민의 멱살을 잡기도 했다.
  • 행사에서 신지가 3옥 솔을 쌩으로 지른다. 본 영상은 23분 38초부터. 영상
  • 네이버 영화 코너의 프로필에 한때 성별이 '남자'로 잘못 올라간 적이 있었으며 이후 수정되었다.
  • 이전부터 주당의 면모를 여러 차례 방송에서 언급하여 신지하면 술이 떠오르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로 술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유명한데[33] , 신장염에 신우신염으로 고생한 경험이 있는데다 성대결절 등 여러 차례 아픔을 겪으면서 팬들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걱정이 많다고 한다. 신지 자신도 너무 술에 의존하는 것 때문에 일상 생활에 지장을 받는다고 여겨 2013년경부터 꽤 오랜 기간동안 술을 끊었다고 밝혔다.(출처 : 기사1, 기사2) 꽤 오랫동안 금주를 하면서 살도 빠지고 마음의 여유를 찾는 등 긍정적인 모습을 되찾았다고 밝혔지만, 2015년~2016년 사이 어느 시점부터는 다시 술을 즐기고 있는 것으로 보였으나 2018년 5월 이후 다시 끊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 코요태 단독 콘서트를 마치고 회사 식구들과 회식 자리에서 술을 안 마시고 사이다를 마셨다. 링크[34]
  • 2011년 9월 전주 KCC 이지스 소속 농구선수 유병재와 열애설이 났고, 봄부터 교제를 시작했다고 공식적으로 인정을 하였다. 2012년 말에 헤어졌다가 2013년 초 재결합한다. 이후 2015년 3월 이미 6개월전 결별했다고 보도되어 양측 모두 사실로 인정 하였다. 기사 현재 자신의 소속사 이사로 있는 걸 보면 결별 이후에도 소속사 식구로 잘 지내는 듯하다.
  • 한때 우울증과 무대 울렁증 등으로 고생하던 때 홍진영의 도움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현 소속사 이사인 유병재와의 열애도 홍진영의 소개로 시작했다고 한다.
  • 2012년 1월 2일에 컴백했다. 아이돌 스타들이 대세인 가요계의 풍토에서도 2006년 이후로 6년만에 1위 후보를 기록하였고, 신지는 너무 기뻐서 울었다고 한다. 예상보다 좋은 반응이 있었지만,1위에는 아쉽게도 실패했다.
  • 2012년 4월 22일 빽가와 함께 탑기어 코리아 시즌 2 3회에 출연했다. 지금까지의 자가용 변천사를 밝혔는데, 처음 면허를 따고 현대 EF 쏘나타 월드컵 스페셜 에디션 2002년식 을 구입했었으며 이후 전 전 소속사와 전 소속사에서 계약금 대신 BMW 3시리즈벤츠 SL 500을 선물로 받았다고 한다. 벤츠 SL 500은 팔기 하루전날 5분정도만 열어봤는데 이유는 시선이 부끄러워서 뚜껑을 못열겠다고 한다. 2012년 4월 기준으로 포르쉐 카이엔을 타는데, 본인 생일에 자신에게 주는 선물로 구입했다고 한다. 기사
  • NRG이성진과 신성식당 고기집을 운영했으며, 두 사람 간의 스캔들이 난 적도 있었다. 양쪽 모두 다 단호하게 루머라고 일축했지만 가십거리가 필요했던 찌라시와 몰지각한 사람들이 루머를 기정사실화해서 시선이 매우 안 좋았다. 심지어 합성 사진이 나돌았을 정도이다. 이후로 양쪽 다 흑역사로 생각하는 듯하다.
  • 무대 울렁증이 있다고 고백했다. 히든 싱어에서도 보였던 증상이었지만 2016년 10월 초 판타스틱 듀오 출연 기준으로는 많이 사라진 편. 최근에는 단독으로 행사를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좋아졌다. 초기 솔로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을 때는 무대울렁증과 관련된 증상을 보이지 않았었는데, 무대울렁증이 심했던 때는 김종민의 공백으로 인해 매우 방황한데다 댄스곡이 아닌 "발라드" 무대에 서보는것이 처음이라 그랬던것이다.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발라드 무대는 떨리고 긴장된다고 한다.
  • 유리몸 기질이 있다. 과거에 신우신염으로 고생을 많이 했었고, 2015년, 2016년에는 몸살로 인해 응급실 신세를 졌다. 2017년에도 7월에 몸살로 인해 또다시 응급실 신세를 졌으며 2018년 5월에는 급성 인후염으로 인해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 미키마우스를 상당히 좋아한다. 자신의 집에 관련 물건들이 많고, 인스타그램 사진에는 미키 옷을 입거나 미키마우스 네일아트를 한 모습이 많이 있다. 또한 자신의 인스타그램에서 미키로 도배된 집에 살고 싶다고까지 했을 정도로 미키마우스 덕후의 모습을 보인다.
  • 성공한 김원준의 팬이다. 고등학교 시절에 김원준 인천지부 팬클럽 회장까지 했으며, 지금도 김원준의 얼굴을 보면 가슴이 설렐 정도로 떨린다고 밝힌 적이 있다. 김원준과는 가수 데뷔 전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신지를 본명 지선이로 부를 정도로 상당한 친분을 자랑한다.
  • 잘 드러나는 사실은 아니지만 비몽 앨범 자켓 사진에서 보다시피 글래머이다.
  • 김구라가 인터넷 방송에서 활동할 당시 신지를 포함해 이효리, 하리수, 서지영 등 여성 연예인들을 맹비난해 물의를 빚었는데 결국 화해하였다. 김구라가 진행하던 김구라의 가요광장 출연을 수 차례 고사했으나 어렵게 성사된 만남에서는 화끈하게 화해하는 모습을 보였고, 신지의 신보가 발매됐을 땐 자청해서 깜짝 출연을 감행하기도 했다.
  •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사진이나 일상생활에서는 안경을 착용하는 모습이 종종 보였던 걸 봐서는 시력이 좋지 않았던 걸로 보였으나 2018년 말 라식수술을 받았다.
  • 2019년 11월 20일 기준으로 시카고 여행을 다녀왔다. 인스타그램
  • 친언니 슬하에 3명의 아들(1호, 2호, 3호)이 있는데 조카에 대한 사랑이 대단해 스케줄이 없을 때마다 자주 조카들을 보러 간다.
  • 한때 폰케이스가 거의 매일 바뀌었는데 인스타그램 댓글에서 말하길 이 폰케이스 구매가 자신의 인생의 낙이라고.. 택배를 시켜 배송추척 하는 취미도 생겼다고 한다.

7.1. 성격


대외적으로 비춰지는 성격은 데뷔 초반기부터 보여준 털털하고 솔직한 성격이며 어느 부분은 그런면도 있다. 정규 2집 앨범 전후로는 여자 연예인중 거의 처음으로 쌍꺼풀 수술 고백을 쿨하게 함으로 그 솔직함에 인기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 감수성이 풍부해서 눈물이 많고 털털한 것과는 달리 상처도 잘 받는다고 하는 걸 보면 외강내유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35]
코요태 내부에서는 엄마이자[36]상당한 의리파. 김종민의 객원 보컬 시절에, 신지를 짝사랑하던 정규 3집 앨범 당시 사장이 김종민을 괴롭힐 때도 의리로 뭉쳐서 같이 맞서 싸우기(?)도 했고, 김종민이 정규 3집 앨범 이후 빠진다고 했을 때도 "김종민 자르면 나도 안한다"를 외쳤으며, 김종민이 정규 3집 앨범 때 힘들게 녹음했는데 노래 실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노래에 작곡가의 목소리를 덧씌우자 작곡가에게 항의하는 등 김종민을 많이 챙기면서 지금의 코요태의 토대를 놓았다. 원년 멤버라는 점과 높은 인지도가 맞물려 모든 것을 신지가 주도할 만도 하지만 실은 코요태에서 신지 못지 않게 김종민의 발언권과 주관도 크다고 한다. 실제로도 김종민을 리더 님으로 치켜세우며[37], 자기보다 위인 김종민에게 많은 것을 양보한다고 하니 동생으로써도 꽤 순종적인(?) 동생. 이렇게 된 이유가, 대외적 이미지와는 달리 김종민이 꼼꼼한 구석이 있는 반면 신지는 경제개념이 부족하고 약간 허당끼가 있다고 한다. 신지가 김종민을 보살펴줄 것 같은 느낌이지만, 실제로는 김종민이 신지를 살뜰히 챙긴다고. [38]
또한 정규 6집 앨범부터 영입된 빽가의 영입 역시 신지의 공이 제일 컸다. 데뷔 전 다른 소속사에서 가수 데뷔를 준비하다가 사장에게 사기를 당한 이후 붕 떴던 빽가에게 데뷔 전 부터 알고 지내던 동갑내기 친구 신지가 멤버로 오라며 적극적으로 나선 덕분에 코요태에 영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코요태는 디스코왕으로 최전성기를 맞이하여 가요대상 후보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또한 오늘날까지 멤버 구성의 변화가 없이 김종민, 신지, 빽가 조합의 코요태가 유지되고 있다.
드센 이미지이긴 하지만 연예계에서 예의 바르기로 소문날 정도로 어른들이나 선배들에겐 상당히 깍듯한 편이다. 2008년 7월 30일 라디오스타에 출연 당시에도 신지의 이런 부분에 대해 비중있게 다루기도 했는데, 이에 대해 신지 본인은 자신보다 연장자인 어른들에게 당연히 해야 할 도리라는 식으로 쿨하게 넘기기도 했다. 당시 전투력 최고이던 MC들도 이 부분 만큼은 이견 없이 모두다 인정할 정도로 넘어 간 것[39]을 보면 연예계에서는 웬만한 사람은 다 인정하는 부분인듯. 실제로 송대관, 태진아 등의 가요계 대선배들이 아끼는 대표적인 후배 가수로 신지가 수없이 거론될 정도며 함께 노래를 부르는 경우도 꽤 많다.[40]
2015년 12월 5일에 히든 싱어 신지 편에서도 신지의 다른 면모가 드러났는데, 한참 일거리가 없었던 솔비를 찾아가서 별거 아니라고 하면서 용돈도 찔러줬다고 한다. 방송에서 보이는 터프하고 드센 면과는 다르게 선후배 모두 잘 챙기고 생각도 깊은 편이고, 비록 터프하다 드세다 등의 말이 있긴 하지만 데뷔 19년간 성격이나 인성에 대한 논란은 없다. 여담으로 주영훈이 가장 작업하기 편한 사람을 신지로 뽑기도 했다.
가끔 후배 여자 가수들 사이에서 신지가 무서운 선배로 통한다거나 후배들을 혼냈다는 이야기가 방송에 나올 때가 있다. 정작 이 이미지를 만든데 한몫을 한게 김종민이었는데 후배들한테 신지한테 이른다고 말하고 다니다보니 신지는 자기도 모르게 무서운 선배가 되어버린 것. 농담삼아 하는 말인지 진짜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김종민이 방송에서 자기가 이렇게 말하고 다녔다고 몇 번 이야기한 적이 있다. 김종민이 인생술집에 출연했을 때 유라도 그 소문을 듣고 무서워서 인사를 열심히 했다는데 인사를 밝게 잘 받아줬다고 한다.

7.2. 외모 변천사


사실 정규 1집 앨범 때는 그리 눈에 띄는 외모는 아니었으나 정규 2집 앨범 때 쌍꺼풀 수술을 하였다. 다만 이때 얼굴의 붓기가 있어서 의혹을 받았고 그걸 쿨하게 인정했다. 그러다 보니 정규 1집 앨범과 정규 2집 앨범 때는 풋풋하고 귀엽다는 이야기는 있었지만, 외모적으로 예쁘다는 소리는 많이 듣지 못했다. 그렇지만 만남 무대를 보면 알 수 있다. SBS인기가요 만남
그러나 살을 빼고 금발로 염색했을 때 신지는 첫 번째 외모 리즈 시절을 찍었다. 쌍꺼풀 수술도 자리를 잡고 붓기가 빠졌을 때 정규 3집 앨범으로 컴백 하였는데 그야말로 외모가 물 올랐다. Passion 뮤비 캡쳐 캡쳐 2
다만 잦은 음주 습관과 스트레스로 인하여 점점 살이 쪄가고 활동 후반부에는 살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그래도 외모는 여전히 귀여웠기 때문에 팬들도 정말 좋아했다.
정규 4집 앨범 때는 신장염과 급성 신우신염 등으로 고생하며 얼굴이 많이 붓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네티즌을 중심으로 한 안티가 급속도로 양산되어 몇 년간 지속되는 바람에 마음고생도 엄청났다.[41] 당시 찍은 사진들을 보면 알겠지만 신장이상으로 인하여 몸이 엄청부었던 것이지만 엄청나게 살찐 것처럼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원인이 과음과 스트레스지만, 이때 콩팥이 망가진 바람에 관리를 하지 않으면 다시 살이 쪄버린다. 신지가 요요가 자주 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이후 치료를 위해 정규 5집 앨범 발매 전에 폭풍 다이어트에 돌입하였고, 이때 외모 포텐이 터져 정규 5집 앨범 활동 당시에 신지를 이상형으로 뽑는 연예인도 상당히 많았다. 이때도 정규 3집 앨범 때처럼 금발로 염색했는데 역시 정말 어울려서 신지의 외모에 쐐기를 박았다. 다만 활동 중간중간에 살이 다시 올랐지만 정규 6집 앨범 준비 기간에 다시 뺀 것으로 보인다. 시간이 지나 2017년에 외모에서 리즈를 다시 한 번 갱신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2014년 1월 8일에 방영한 비타민에서는 김종민이 꽃노인 판정에 이어 황금대칭으로 판정받았다. 영상 의사는 신지를 보고 '''금상첨화'''라고 말했을 정도. 17년 만에 비주얼 그룹 드립이 나왔다. 신지 특유의 높은 코의 이유가 의사들도 성형수술 때문이라는 의심을 했을 정도였지만 CT 검사 결과 자연산 코로 밝혀졌다.
키에 비해 다리가 긴 편이고 얼굴이 작아서 신체 비율이 좋고 다리 각선미가 이쁘다는 이야기는 데뷔 이후 항상 들어왔다.
실물이 상당히 예쁘다. 코요태 공연이 있는 날 인스타그램에서 신지의 이름을 태그해보면 실물 예쁘단 얘기의 후기가 자주 올라오며 음악 방송 촬영 때도 함께 무대를 본 다른 가수 팬들이 실물이 상당히 예쁘다는 얘기의 후기를 자주 올린다.

[A] A B 진짜 사나이 300 측정. 하지만 2021년 2월 9일 코요태레비전에서 현재는 50kg 되지 않는다고 했다.[1] 2011년 어머니와 함께 세바퀴에 출연해 밝힌 내용이다.[2] 1살 터울 결혼해서 아들만 셋이다. 그래서인지 신지의 인스타그램에 "조카들 붕어빵 배달ㅇ로 나온 적이 있다.[3] 14살 터울이다. 코요태 정규 5집 앨범 후속곡 체념 활동 때 남동생이 리틀 코요태로 활동했었다.[4] 단, CCM을 부른 적이 있다. 영상[5] 2012년에 코요태 멤버들이 자립한 뒤 만든 회사이다. 이전에 코요태는 트라이펙타 엔터테인먼트와 PK미디어에 소속되어 있었다.[6] 코요태 메인보컬 줄임말이며, 팬들이 부르는 별명이다.[7] 본명 이지선에 얼굴이 오뎅처럼 퉁퉁 불게 생겼다고 김종민이 지은 별명이다. 영상 덕분에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아이디에도 'jidaeng'이 들어간다.[8] 촉이 워낙 좋고 귀신같이 척 알아내서 팬들이 지은 별명이다.[9] 퀴즈와 음악사이에서 국장급 정보력을 가졌다고 지어진 별명이다.[10]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하고 소질도 있었으며 지금도 자주 일기를 쓴다고 한다.[11] 2분 32초[12] 코요태는 나름대로 '''1세대 원로 아이돌 같은 혼성그룹'''이다. 1998년 12월 9일 데뷔 당시에는 신지의 나이가 '''18세, 고2'''였다. 이 당시에는 아이돌 느낌이 강했던 것은 사실이다. 다만, 요새는 아이돌의 개념이 넓어진 댄스그룹 = 아이돌로 퉁치는 경향이 많은데, 코요태는 아이돌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13] 부개여고는 특정 동아리 과학부, 도서부, 선도부, 방송부 등을 제외하고 거의 학교 측에서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학생들끼리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을 하고 있다.[14] 결성한 밴드 이름은 '비지스'이다.[15] 생목에 힘 줘서 불렀다는 소리다.[16] 벨팅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벨팅은 진성의 음역대를 목에 힘을 주어 확장시키는 방식이지만, 신지 같은 경우는 진성과 가성을 억지로 쥐어짜는 방식이었다.[17] 그룹 해체 위기와 빈번한 멤버 교체가 있었고, 김구의 마약 사건에 같은 멤버라는 이유로 김종민과 신지는 마약 의심까지 받았었다.[18] 히든 싱어 시즌4 10회, 신지 편에서 정규 3집 앨범 타이틀곡 Passion때 이미 성대결절이 시작되었고, 후속곡 파란 때는 이미 진행 중이었다고 밝혔다.[19] 2001년 3월 13일에 방영한 MBC 신동진의 미니콘서트 방영분 중 정규 3집 앨범 후속곡인 '파란'을 부르는 영상을 보면 초반부는 김종민이 도와주고 일부분은 가성을 쓰고 고음부분에서 상당히 힘들어하고 약간 갈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20] 데뷔 후 처음으로 멤버들 없이 솔로로 활동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무대 공포증이 생겼고, 그것 때문에 가수로서의 자신감을 잃고 은퇴까지 생각한 적이 있을 정도라고 하였다.[21] 그래서 지금도 신지는 김종민에 대한 신뢰가 두텁다. 김종민 없이는 활동하지 않겠다고 할 정도이다.[22] 김종민1박 2일에서 "자기 음악은 신지다, 신지가 다 하니까!" 라는 멘트를 날리기도 했다. 2013년 8월 30일에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도 김종민은 나와서 여태껏 코요태가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신지다! 이유는 "얘가 노래 다 하니까"라고 말을 한 적이 있다.[23] 코요태 정규 1집 앨범 순정을 MR로 못 부른다고 하였다. 그래도 행사 때는 AR로 어떻게 부르기는 한다며, 1-2키 내리면 풀 라이브를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 정도 부른다.[24] 무려 소찬휘 Tears의 최고음과 같은 음이다.[25] 히든 싱어 시즌4 10회, 신지 편에서 패널로 나온 주영훈은 90년대에는 무조건 고음이 높이 올라가야 노래 잘한다고 평가하는 시절이였다고 증언하였다.[26] 또한 판타스틱 듀오 시즌2 6회, 윤상이 밝힌 내용에 의하면 신지에게 곡을 줄 때는 일부러 한 키 더 높여서 곡을 만들어줬던 시절이었다고 밝혔다.[27] 김종민이 코요태에 영입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신지의 음역대에 맞춰진 노래를 남자 멤버인 김종민이 소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28] 아직도 고음이 잘 올라가지 않는다며 보컬 트레이닝 무용론(?)을 말하는 일부 사람들도 있으나 보컬 트레이닝은 목을 망가뜨리면서 무리하게 고음을 내는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서 훈련을 하는 것이다. 똑같이 목소리가 허스키한 효린과 신지의 보컬 스타일을 비교하면 쉽게 알 수 있듯이 보컬 트레이닝의 중요성을 보여준다.[29] 신지가 요즘 유리의 대타로 에 붙어서 쿨 꺼 하러 다닌다는 김종민의 폭로가 있었다.[30] 가수 솔비NC.A가 모창 능력자로 출연했다.[31] 일밤 2부 시간대가 딱 김종민이 터줏대감으로 출연하고 있는 1박 2일과 겹친다.[32] 물론 이쪽도 예명이다.[33] 주량이 소주 7병이었다고 그때 알코올 중독을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34] 코요태 현 소속사 이사 유병재의 인스타그램[35] 힘들었던 솔로 활동 시절 이야기를 하면 특히 더 그런 편이다.[36] 코요태가 성공하기까지 신지의 헌신을 빼놓고는 얘기를 할 수 없다. 아무래도 남성 2인조 사이에서 유일한 홍일점으로 상당한 관심을 받고있었고 신지 역시 가수뿐 아니라 예능프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그룹의 인지도를 올려놓은 것을 생각해 본다면 정말 엄마와도 같은 역할을 한 셈이다.[37] 신지의 인스타에 김종민과 찍은 사진을 올릴때는 종민 "오빠" 라는 표현보다 "리더님" 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볼 수 있다.[38] 또한 코요태의 경우 공연이나 음악 작업에서 신지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지만, 행사 페이는 둘이 가면 반반 셋이 가면 4:3:3 원칙을 철저히 지킨다고 한다.[39] 보통 트집잡고 물어뜯기 마련인데 신지와 전투력이 가장 팽팽했던 신정환 마저 남자친구를 배려하는 모습까지 먼저 꺼내며 두둔할 정도였다.[40] 2008년 신지가 솔로 싱글 활동한 '해뜰날' 도 송대관이 부른 원곡을 리메이크한 곡이며 실제 송대관이 앨범 작업 때 많이 도와줬다고 한다. 송대관과 듀엣곡으로 분위기 좋고, 사랑해서 미안해를 발매해 인기를 끌었고, 가요무대에서도 송대관과 종종 무대를 선 적이 있다.[41] 00년대는 연예인들에게 잔혹한 시대였다. 가학성과 자극성이 극에 달한 예능 프로그램들과 완전한 무법지대였던 인터넷의 보급으로 온갖 루머와 찌라시, 허무맹랑한 안티들로 곤혹을 치뤄야만 했기 때문이다. 현재도 '안 예뻐서', '맘에 안 들어서' '질투나서' 같은 이유로 안티질을 하지만 적어도 그걸 표면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드러낸다고 해도 비난을 받는다. 하지만, 당시에는 오히려 문희준타블로의 사례처럼 전혀 제동이 이뤄지지 않고 무뇌충 시리즈, 타진요와 같은 문화적 현상으로 확산되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