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호(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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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潤鎬'''
1. 개요
2. 생애
3. 여담


1. 개요


1930년 8월 10일 ~ 2013년 1월 12일
대한민국의 전 군인. 5공화국 신군부의 일원이었으며, 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을 역임한 바 있다. 종교불교다.

2. 생애


1930년, 경성부(現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서울경신고등학교 졸업 후 1950년 육군사관학교 10기생으로 임관했다. 이 때 육사 생도들은 6.25 전쟁 발발로 인해 몇 개월 정도의 단기 교육을 받고 바로 임관하여 전쟁에 투입되었으며[1] 김윤호도 생도대대 소총병으로 활약했다. 인민군과의 근접전에서 오른쪽 허벅지에 기관총 관통상을 입기도 했다.
이후 베트남 전쟁에도 주월 9사단 부사단장으로 참전했고 사단장, 교육사령부 부사령관을 거쳐 육군보병학교장(당시 계급은 소장)을 맡게 된다. 그러던 중 1979년, 12.12 군사반란이 일어나게 되는데, 당초 김윤호는 반란군 멤버는 아니였지만 반란군 수뇌부였던 황영시 중장의 뒷수습을 위한 도움 요청을 받아 다음날 새벽 5시에 서울로 상경하여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 세력에 합류하게 된다.
그 후 반란군 수뇌부였던 전두환, 노태우, 유학성, 차규헌, 황영시와 더불어 6인 위원회의 일원으로서 군부 개편 작업을 진행했다. 6인 위원회는 숙군을 명분으로 하여 쿠데타 저항자 및 반대 세력의 장성들, 정승화 계열 등 잠재적 위험 장성들, 8~10기의 장성들[2] 등 대략 40명을 예편시켰다. 김윤호가 불려온 또 한가지 이유는 대미접촉을 위해서 였는데[3], 주미 대사관에서 무관으로 근무했던지라 영어에 능하고 미군 고위층과 친분이 두터웠기 때문이다. 김윤호는 주한 미국 대사관으로 가서 글라이스틴 대사에게 12.12 군사반란을 변호하고 신군부의 정치 개입은 없을거라고 ~약속했다.
이러한 공로로 김윤호는 중장으로 진급하여 황영시의 뒤를 이어 1군단장을 맡게 되며 신군부가 장악한 5공화국 정권에서 출세 코스를 달린다. 반란의 핵심 멤버는 아니였기 때문에 핵심 요직들을 맡지는 못했지만 대장 진급 후 제1야전군사령관을 거쳐 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까지 역임했다.[4] 합동참모의장으로 있던 1983년 5월 5일 중공 여객기 불시착 사건이 일어났는데,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전두환 대통령의 지시로 노신영 국가안전기획부장이 군을 지휘하게 하자 이에 반발하였다.
이 사건의 여파인지 합동참모본부 청사에 전기 누출로 화재가 나자 예편했다. 예편 후에는 대한석탄공사와 한국가스공사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2013년 1월 12일에 향년 82세로 사망했고, 대전광역시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사실 김윤호 대장이 하나회나 신군부 세력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영달을 누리기는 했지만 12.12 군사반란이나 5.18 민주화운동 당시 진압군이 아니었기 때문에, 신군부와 한통속이었음에도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것이다.

3. 여담


제4공화국에서는 높으신 분 전문 배우인 신귀식, 제5공화국에서는 성우 김명수, 코리아게이트에서는 배우 손현주가 각각 김윤호를 연기했다. 다만 코리아게이트의 방영 시기가 1995년인 점과 실제 인물 김윤호가 전두환, 노태우의 육사 선배인 점을 고려하면 30대 초반인 손현주에게 김윤호 배역을 맡긴 것은 매우 어색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5]


[1] 11기부터가 4년제 정규 과정을 거친 육사 세대인데, 이들은 스스로를 '정규 육사 1기'로 부를 정도로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 자부심은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 등 육사 11기 경상도 출신 멤버들이 세운 하나회로 이어진다. 아이러니한건 자부심을 가지는 이들은 정작 6.25 전쟁 때 참전하지 않고 후방에서 교육을 받은 수혜를 누린 세대라는 것. 이들이 무시하는 단기 육사 선배들은 11기가 후방에서 안전하게 교육받을 때 전쟁통에서 목숨걸고 뛰어다녔었다.[2] 하나회가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킨 원인 중 하나는 심각한 인사 적체에도 있었다. 1~10기가 1년도 안되는 단기 교육으로 배출된 후 6.25 전쟁을 거쳐 확장된 군의 자리들을 채우면서 초고속으로 진급하는데 비해, 11기 이하 정규 육사 세대들은 본인들의 자부심에도 불구하고 윗선배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는지라 진급이 적체되어 불만이 극심했다.[3] 위컴 주한미군 사령관이 자신의 통제를 무시하고 최전방 병력을 빼돌려 쿠데타에 가담시킨 것에 매우 격노하여 쿠데타 진압을 주장한 것에서 보이듯 신군부는 미국의 노여움을 두려워할 수 밖에 없었다.[4] 당시 합참의장은 지휘권 없이 대통령/국방장관에 대한 자문 역할을 수행하는 명예직에 가까워서 핵심 요직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후 1990년 국군조직법 개정을 통해 합참의장은 지금과 같은 3군 통합 지휘권을 행사하게 되었다.[5] 참고로 작중에서 김윤호의 후배 노태우로 나온 김성원은 '''1936년 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