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성

 



역임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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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대 국가안전기획부장
유학성
兪學聖 | Yoo Hak-sung

<colbgcolor=#02868B><colcolor=#ffd200> 출생
1927년 2월 28일
경상북도 예천군 지보면 어신리#
사망
1997년 4월 3일 (향년 70세)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동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장군1묘역-2
본관
기계 유씨
재임기간
제11대 중앙정보부장
1980년 7월 18일 ~ 1981년 4월 7일
제11대 국가안전기획부장
1981년 4월 8일 ~ 1982년 6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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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2868B><colcolor=#ffd200> 배우자
안부성
자녀
슬하 3남 3녀
학력
단국대학교 (정치학 / 학사)
종교
가톨릭 (세례명: 요셉)
의원 선수
3
의원 대수
12, 13, 14
경력
제11대 중앙정보부장
제11대 국가안전기획부장
제12대 국회의원 (전국구/민주정의당)
제13~14대 국회의원 (경북 예천군)
군사 경력
임관
육군사관학교 (정훈 1기)
복무
대한민국 육군
1949년 ~ 1980년
최종 계급
대장 (대한민국 육군)
최종 보직
제3야전군사령관
참전
6.25 전쟁
베트남 전쟁

1. 개요
2. 일생
3. 미디어에서
4. 기타
5. 선거 이력
6. 수훈 경력
7. 둘러보기

왼쪽부터 유학성, 노태우, 전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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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군인, 정치인, 내란사범.

2. 일생


1927년 2월 28일 경상북도 예천군 지보면 어신리에서 태어났다. 1949년 5월 정훈 제1기로 임관하여 제8사단에서 군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단국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1979년 국방부 군수차관보(중장) 신분으로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하였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에는 제3야전군사령부 사령관으로 있었으며 그 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임명직 위원 10인 중 1인이 되었고 국가보위입법회의 의원을 지냈다. 제11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전두환의 뒤를 이어 중앙정보부장에 임명되면서 예편했는데 중앙정보부가 국가안전기획부로 개편된 후에도 계속 국가안전기획부장으로 일하며 1981년 1988 서울 올림픽 유치 작전을 음지에서 주도하였다. 1982년 5월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이 터지면서 경질되었고 후임 국가안전기획부장에는 노신영 외무부 장관이 임명되었다. 이후 반공연맹(현 한국자유총연맹) 이사장 및 총력안보중앙협의회 의장을 역임하였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후 회기 동안 서울올림픽 지원위원장과 민주정의당 국책평가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예천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해당 지역구의 현역 의원이었던 통일민주당 반형식 후보를 꺾고 당선되어 회기 동안 국방분과위원장도 역임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정의당의 후신인 민주자유당 후보로 예천군 선거구에서 당선되어 국방상임위원장을 지냈으나 1993년 김영삼이 대통령에 취임한 후 공직자 재산 공개 제도가 시행되면서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였다. 1996년 12.12 군사반란 및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기소되어 제1심과 제2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아 석방되었고 대법원 상고심 재판 중인 1997년 사망함으로써 공소 기각 판결을 받았다.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는데 이는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다.[1]

3. 미디어에서


  • 2005년작 MBC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 배우 박영지 씨가 연기하였다. 흔히 같은 장면에서 장태완 수경사령관의 포스가 너무 강력해서 부각이 안 되기는 하는데 "야이 반란군 노무 시키야! 니들 거기 꼼짝말고 있어! 내가 지금 전차를 몰고가서 니놈들의 머리통을 다 날려버리겠어!"라는 말을 작중에서 직접 들은 사람이다. 그 후 ''장태완이가 전차로 우리를 날려 버리겠다는데 어쩌지?"라고 데꿀멍했다.
[image]
위의 유명한 장면에서는 체면을 구기지만 장영자 사건을 다룬 제29화에서는 국가안전기획부장 직을 걸고 전두환의 친인척들이 대표로 앉은 이순자의 새세대육영회, 이규동[2]의 대한노인회, 전경환[3]새마을운동중앙본부[4]에서 이들이 물러나야 한다고 직언한다. 그를 국가안전기획부장에 앉힐 때는 선배 대접을 하던 전두환의 반응은 "당신 미쳤어?" 하지만 유학성은 굽히지 않고 "지금은 원인 분석이 아니라 사태 수습이 필요한 시기입니다."라면서 사직서를 꺼내든다. 그제야 "이봐요, 유 선배"라고 말하는 전두환에게 "때로는 극약이 명약"이라며 내내 평안하시라는 말으로 잠정 하차. 전두환은 마지막에 유리 화병을 발로 차 깨부수며 격분한다.# 주목받지 않은 장면이지만 상당히 미화된 것이다.[5]

4. 기타


  • 당시 뉴스 영상을 틀면 유학성의 실제 육성을 들을 수 있는데 제5공화국에서 유학성으로 분했던 박영지의 목소리와 매우 흡사하다.(KBS, MBC)

5. 선거 이력


연도
선거종류
소속정당
득표수(득표율)
당선여부
비고
1985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전국구 5번)

-
당선

1988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예천)
31,196 (63.1%)
당선 (1위)

1992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예천)

24,361 (60.7%)
당선 (1위)
1993. 3. 26 의원직 사퇴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파동)

6. 수훈 경력


  • 화랑무공훈장 (1950, 52.10, 52.11)
  • 충무무공훈장 (1954, 68)
  • 보국훈장 광복장 (1962)
  • 무공포장 (1965)
  • 보국훈장 천수장 (1966, 68)
  • 을지무공훈장 (1968)
  • 대통령 표창 (1969)
  • 국민훈장 무궁화장 (1988)

7. 둘러보기




[1] 이후 이 논란은 역시 반란에 가담한 안현태청와대경호실장이 사망한 후에도 다시 이어진다.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쿠데타로 쫓겨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의 묘소가 있다.[2] 이순자의 부친이자 전두환의 장인. 육군본부 경리감을 역임했으며 준장으로 예편하였다.[3] 전두환의 동생으로 11살 연하다. 1979년 당시 청와대 경호실 경호5계장이었다.[4] 현 새마을운동중앙회.[5] 실제 유학성은 '영부인도 자중해야 한다' 정도로 진언하고 그 진언 때문에 물러나게 된 정도. 극화된 것이 드라마의 장면인데 드라마에서 그리는 전두환을 '카리스마 있는 인물'로 잘못 이해하는 시청자들이 많다.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측근의 충언도 듣지 않고 성질만 부리는 전두환'을 부각하기 위해 집어넣었다는 주장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