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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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인, 내란사범.
2. 생애
1926년 11월 6일 경상북도 영주군 안정면 묵리 노루모기마을#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 마을 서당에서 공부했고 안정공립심상소학교(현 안정초등학교)를 졸업했다. 1945년 광복 후 안정국민학교 용산분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1950년 육군사관학교 10기로 입학했고[1] 1951년 임관해 수도경비사령부 참모장, 주월한국군사령부 참모장, 육군3사관학교장을 거쳤다.
1979년 1군단장 재임 중 12.12 군사반란에 주도적으로 참여했으며 당시 쿠데타 가담자 중에 전두환보다 선배 장성은 황영시와 함께 군수차관보 유학성 중장, 수도군단장 차규헌 중장이 있었는데 이 중 반란 작전을 사전에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은 황영시 혼자였다고 한다. 반란 직후 논공행상에서 신군부 세력에 의해 육군참모총장으로 추천되었지만 최규하 대통령이 반대했고 이희성 중앙정보부장 서리가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되었다. 대신 육군참모차장으로 영전해 이희성을 견제했고 대장으로 진급하여 요직인 제3야전군사령관을 거쳐 1981년 육군참모총장에 올랐다.
본격적으로 전두환이 제5공화국을 세우던 육군참모차장 시절 군 내 강경 분위기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에도 무력 진압을 지시했으며 육군기갑학교장[2] 이구호 준장에게 "전차에 철조망을 달고 돌격하라"는 지시를 내렸는데 "철조망을 달고 가면 궤도에 꼬이는 건 물론이요, 전차가 나타나면 시민들이 드러눕는다"라고 하자 "전차포를 쏘고 밀고가면 되는 것 아니냐"라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JTBC의 보도에 따르면 당시 전투교육사령부 부사령관 김기석에게 전차와 무장 헬기를 이용해 신속히 진압 작전을 시행하라고 지시했음을 1996년 검찰의 5.18 민주화운동 진상 규명 수사 때 인정했다고 한다. 김기석은 해당 지시가 전차의 발포와 무장 헬기에 의한 기총소사를 포함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쿠데타의 주역이자 제5공화국 핵심이지만 개성이 강하고 권위 의식이 강한 편이라 육군참모총장 재임 시절 전두환이 속으로 탐탁치 않아했다고 한다. 그런 탓인지 1983년 임기를 2년 채운 후 1년 더 유임할 줄 확신했으나 물러나게 되었으며 전두환의 동기 정호용이 육군참모총장이 되어 육사 11기 육군참모총장이 탄생하게 된다. 이후 자기 편 사람을 철저히 챙기는 전두환에 의해 감사원장을 지냈다가 문민정부 당시 12.12 군사반란으로 재판을 받게 되고 1997년 징역 8년을 선고받았으나 12월에 사면되었다.
3. 기타
- 부인 최옥영(1931년생)과의 사이에 2남 2녀가 있으며 장남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였고 황영시가 육군참모총장 취임 당시 대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