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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車圭憲
1929년 2월 1일 - 2011년 5월 10일 (향년 82세)
1. 개요
2. 생애


1. 개요


대한민국의 전직 군인이자 공무원이었으며 5.16 군사정변의 참여자이자 12.12 군사반란 수뇌부의 일원이다. 호는 승담(昇潭), 본관연안(延安).

2. 생애


1929년 2월 1일 경기도 진위군 송탄면 장안동(현 경기도 평택시 장안동)#에서 태어나 육군사관학교 8기생으로 입교하였다가 졸업 후 1949년 육군 소위임관하였다. 박정희사단장 시절 참모였고 그 인연으로 5.16 군사정변에도 참여하였으며 베트남 전쟁 때 비둘기 부대장을 지냈다가 1975년 동기 진종채의 뒤를 이어 수도경비사령관을 지냈다.
수도군단장(중장) 재임 중이던 1979년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하였는데 당시 반란에 참여한 전두환보다 선배인 장성 3명(1군단장 황영시, 군수차관보 유학성, 수도군단장 차규헌) 중 1명이었다. 중장들 중 유일하게 5.16 군사정변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보니 전두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1] 반란이 성공한 후 6인 위원회(전두환, 황영시, 유학성, 차규헌, 김윤호, 노태우)의 일원으로서 군부 개편 및 논공행상 작업에 참여했다.
반란 직후 논공행상에서 육군사관학교장이 되었는데 핵심 요직들을 꿰찬 다른 반란군 동지들에 비해[2] 한직인 육군사관학교장으로 가게 된 것은 중앙정보부장으로 추천되었으나 무산되었는데[3] 다른 보직들이 차버려서 일단 육군사관학교장으로 가게 된 것이다. 육군사관학교장 재임 시절에는 자기가 모시던 주군의 외아들 박지만을 보살펴주기도 했다고 한다.
이후 얼마 안 있어 육군참모차장을 거쳐 대장으로 진급하여 2군사령관을 영전한 후 예편하였다. 예편 후 비상기획위원회 위원장, 교통부(현 국토교통부) 장관을 지냈다. 그러나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고 제5공화국 비리 청산 과정에서 교통부 장관 때의 일로 구속되었으며 김영삼 대통령 때도 12.12 군사반란 등의 단죄에 의해 구속되었다. 이후 2011년 5월 10일 폐렴으로 향년 82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1] 위에서 나온 것처럼 5.16 군사정변의 주축인 육군사관학교 8기생이다. 김종필, 김형욱과 동기.[2] 다른 3인방 중 황영시는 당시만 해도 차기 대장 진급 1순위인 육군참모차장이 되었고 유학성은 대장 진급과 더불어 야전군 사령관 중 최고 실세제3야전군사령관을 차지했다.[3] 본인이 고사했다는 설(실제로 육군사관학교 8기생 동기인 김종필과 김형욱이 중앙정보부장 하는 것을 보고 치를 떨었다고 한다.)과 최규하 대통령의 반대가 있었다는 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