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갑(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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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기업인이자 전 관료.
현재 한국전력공사 사장으로 있으며, 임기 기간은 2018년 4월 13일부터 2021년 4월 12일까지 예정되어 있다.
2. 생애
1951년 8월 10일, 경상북도 안동군 임동면에서 태어났다.
1966년 안동중학교, 1969년 대구상업고등학교, 1974년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 학사, 1983년 뉴욕 대학교 경영학 석사, 1992년 인디애나 대학교 경제학 석사, 1993년 인디애나 대학교 경제학 박사, 2006년 성균관대학교 행정학 박사과정을 졸업하였다.
2.1. 공직 생활
1975년 안동에서 보충역으로 근무하던 당시 행정고시 17회 합격으로 공직에 입문하여, 1978년 상공부에서 대미 통상업무를 맡으며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당시는 한국의 칼라TV 수출과 관련해 미국의 통상압박이 심하던 때다.
대미 통상업무는 업무강도가 높고 고참이 많은 탓에 승진에서 불이익을 겪어 ‘사무관의 무덤’이라고 불렸는데 김종갑은 공직생활 초반 사무관 3년 8개월, 과장 2년 6개월 등 미국 통상관련 부서에서 내리 6년을 일했다. 결국 행정고시 동기 가운데 과장 승진이 가장 늦었으나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상공부 내에서 대미 통상업무 전문가로 자리잡았다.
1980년대 후반 상공부 통상협력담당관으로 일하며 미국과 벌였던 슈퍼 301조 관련 협상에서 한국의 입장을 끝까지 관철해 미국 통상전문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 뒤 통상산업부 통상협력국장, 산업자원부 국제산업협력국장 등 미국 통상 관련 업무를 4차례나 다시 맡는 등 15년 동안 미국 통상업무를 담당하며 ‘미국 통상분야 해결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행정고시 동기 가운데 과장 승진이 가장 늦었으나 국장 승진은 가장 빨랐다.
김종갑이 미국 통상업무에서 두각을 나타낸 데에는 그의 영어실력도 한몫했다. 김종갑은 외국인들로부터도 품위있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고급 영어’를 구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998년 독일에서 열린 국제행사를 영어로 진행하는 김종갑의 모습을 본 이기주 당시 독일대사가 “대한민국 공무원 중 저렇게 고급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극찬한 일화도 전해진다.
2003년 노무현 정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전문위원으로 파견됐을 당시 산업자원부의 ‘간판급 국장’으로 ‘에이스’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 뒤 노무현 정부에서 산업자원부 차관보, 특허청장, 산업자원부 제1차관 등을 지냈다. 특허청장 시절 대한민국 특허청에 중앙부처 처음으로 ‘직무성과 계약제도’ ‘재택근무제도’ 등을 도입하는 등 개혁을 추진했고 직원들과 혁신 등을 주제로 격의 없는 토론을 진행해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5년 동안 국회에 계류돼 있던 직무발명과 관련한 보상기준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특허청장을 지내며 부처별 성과평가에서 최고 점수를 받고 개인별 업무평가 점수도 높아 2006년 산업자원부 제1차관으로 승진했다. 기사 노무현 정부에서 미국의 하이닉스반도체 상계관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고 국가 균형발전정책과 차세대 성장동력 육성정책, 산업집적화(클러스터) 개념도입 등 굵직한 산업정책을 수립하는 데 기여했다.
2007년 2월 7일, 산업자원부 제1차관에서 퇴임했다. 기사
2.2. 하이닉스반도체 대표이사
2007년 3월 29일, 하이닉스반도체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기사 하이닉스반도체 사장에 오른 뒤 처음 6개월 동안 70건의 인사 청탁을 받았지만 원칙에 입각해 한 건도 아래로 내려보내지 않았다.
산업자원부 출신의 고위공직자가 퇴임 직후 민간기업 CEO로 간 최초의 사례로, 당시 주요 공기업의 사장 자리를 제안 받았으나 새로운 도전을 위해 하이닉스반도체 사장에 지원했다.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을 비롯해 내부 유력인사들이 사장 후보로 거명됐으나 결국 김종갑이 사장에 선임됐다. 당시 경쟁률은 13대 1에 이르렀다.
하이닉스반도체 사장에 선임될 당시 반도체시장의 글로벌 경쟁심화로 수익성이 크게 악화할 때다. 하이닉스반도체는 2006년 2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냈으나 2007년 5000억원대로 줄어들었고 2008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겹쳐 영업손실 1조 9000억원, 순손실 4조 7000억원을 냈다.
2008년 말 임원을 30% 줄이고 희망퇴직과 무급휴가 등을 뼈대로 하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그 스스로 임금을 35% 깎고 그밖의 임원들도 10~20%가량 임금을 줄였다. 휴일 근무수당과 시간외 근무수당을 없애고 명절 선물 등을 없애는 자구노력도 진행했다. 이와 함께 2009년 신입사원 채용 대신 연구개발(R&D) 인력만 100여 명을 채용하는 등 기술 개발에 집중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하이닉스반도체는 2009년 3분기에 8분기 만에 영업이익을 내며 적자를 탈출했다. 이후 2009년 영업이익 1900억원, 2010년 영업이익 3조원을 올리는 등 건실한 회사로 변신했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직원들의 신뢰가 있었다고. 2007년 임기 초반 ‘대사면 프로젝트’를 통해 업무과실 등으로 징계를 받은 임직원 100여명과 납품 비리 등으로 거래관계가 끊긴 협력사들을 대상으로 대사면을 진행해 직원들의 신뢰를 얻었다. 신입사원에게 책을, 신입사원 부모에게 감사편지와 와인을 선물하는 등 이색적 스킨십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고 자사주 매입을 통해 경영 정상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기사
2.3. 한국지멘스 대표이사
2011년 6월 1일, 한국인 최초로 한국지멘스 회장에 선임됐다. 기사 취임과 동시에 직원들에게 회사배지를 착용하게 하고 당시 서울 역삼동 본사 건물 외벽에 간판을 달게 하는 등 지멘스를 알리는 데도 힘썼다.
김종갑이 한국지멘스 회장 공모에 지원한 데는 한국지멘스가 2011년 60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인 CEO를 뽑는다고 한 것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지멘스는 김종갑 전까지는 독일 본사가 임명한 외국인 CEO가 이끌었다.
김종갑은 2016년 안동MBC와 인터뷰에서 “하이닉스반도체 경영을 정상화하고 내부적으로 SK그룹에 매각하기로 결정된 만큼 내 역할을 다했다고 보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한국지멘스 회장에 도전했다”고 말했다. 또 “다국적 다문화 환경에서 기업경영을 하는 것은 한국에서 한국사람끼리 기업을 하는 것과 또 다르다”며 “재미도 있고 어려움도 있고, 배우는 것이 많다”고 말했다.
한국지멘스는 김종갑이 이끌며 위상이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멘스그룹 직원은 2011년 40만명에서 2016년 35만명으로 줄었지만 한국지멘스 직원 수는 같은 기간 1,700명에서 2,200명으로 오히려 늘었다.
2013년, 지멘스 에너지솔루션사업의 아시아본부를 한국에 유치하기도 했다. 에너지솔루션사업의 아시아 지역본부는 가스발전, 복합화력발전, 석탄화력발전 공급을 위한 다양한 솔루션을 제공하며 아시아태평양, 중동 지역을 총괄한다. 2014년 기업의 윤리적 경영을 확산하기 위해 출범한 윤경SM포럼 공동대표를 맡는 등 한국지멘스의 윤리경영을 강화하는 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한국지멘스를 이끌던 2016년 5월부터 2018년 4월까지 한독상공회의소 회장도 맡았다.
2.4. 한국전력공사 사장
2018년 4월 13일부로 제20대 한국전력공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기사 송인회 전 한국전력기술 사장, 오영식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하마평에 올랐으나 김종갑이 사장으로 낙점됐다. 한국전력공사의 변화를 이끄는 동시에 수익성을 회복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가까운 지인들이 저에게 묻습니다. “한전 사장후보 물망에 오른다는데 그 나이에 새로운 시작, 설마 낭설이겠지?” “백두산 둘레길, 백두대간 종주, 돌레미테와 히말라야 트레킹 계획은 어떻게 하고, 한 달 반이나 쓰던 휴가가 포기가 되나?”
또 다른 한 편에서는 말합니다. “공기업의 맏형인 한전 경영 기회가 아무한테나 주어지는 게 아니다. 트레킹 갈 힘 남았으면 한전에 다 쏟아 부어야지.” “에너지 전환, 디지털 변환, 글로벌 경영, 한전의 명예와 존립이 걸린 이 시대의 엄중한 소명임을 알라.”
많은 경륜 있는 후보가 있었지만 과분한 평가를 받아 제가 이 자리에 오게 됐습니다.
2018년 4월 13일,
한국전력공사 사장 취임사 中
취임사에서 한국전력공사의 제일 과제로 수익성을 강조했다. 그는 “현재 한국전력의 재무상태가 좋지 않은 만큼 무엇보다 수익성 개선에 힘쓰겠다”며 “수익성이 구조적으로 개선되는 시점까지 비상경영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또한 한국전력의 영업실적은 연결 재무제표로 평가받는다며 “한국전력과 발전자회사, 그룹사들 사이에 불필요한 경쟁을 줄이고 협력을 강화해 한국전력그룹 전체의 경영개선을 이끌겠다”고 덧붙였다.
2018년 5월 11일, 서울 송파구 전기회관에서 열린 대한전기협회 정기총회에서 제29대 대한전기협회 회장에 추대됐다. 기사
2020년 4월 3일, 학교법인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의 초대 이사장으로 선임됐다.
3. 상훈
- 1984년 상공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 1985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 2006년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 2009년 세계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가 주는 아키라 이노우에상을 받았다.
- 2018년 성균관대총동창회로부터 2018 자랑스런 성균인상을 받았다.
4. 여담
- 강직한 성격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으며,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구파로 알려져 있다.
- 독서광으로 미국 출장을 갈 때면 출장길에서만 책 2권을 읽었다고 한다.
- 중학교까지 안동에서 나왔고 취업이 좋은 길이라고 생각해 대구상업고등학교로 진학했다. 하지만 공부에 뜻을 두고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에 입학했다. 중학교 시절 전교 상위권을 유지했지만 서울대학교에 진학하지 못해 이를 만회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행정고시를 준비했다. 6개월 만에 1차에 붙고 이듬해 방위병으로 위병 생활을 하면서 공부해 그해 최종 합격했다.
-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해 대학 시절 사진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사진 콘테스트에서 2차례 상을 받았다. 영화 별들의 고향의 주연 여배우 안인숙을 인물모델로 내세워 사진대회에서 동상을 받기도 했다. 배병우 작가의 소나무 사진을 좋아한다고 한다.
- 2014년 4월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피해 가족을 위해 써달라며 대한적십자사에 1억원을 기부했다.
- 특허청장 시절 매일경제 기자의 돌발질문에 아래와 같이 답했다.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신 ‘김종갑’이라는 이름이 촌스럽긴 하지만 한 번도 고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또 이가 굉장히 고르지 못하고 들쭉날쭉한 편인데 주변에서 고르게 고쳐 보라고 얘기하지만 큰 불편이 없기 때문에 그럴 생각이 별로 없다. ‘신체발부 수지부모’인데 이름도 그렇고, 몸도 그렇고 함부로 바꾸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
>2005년 5월 20일,
>특허청장 시절 매일경제의 ‘돌발질문, 자신의 외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에 대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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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20일,
>특허청장 시절 매일경제의 ‘돌발질문, 자신의 외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에 대한 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