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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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육군 前 군인. 최종계급은 중장이며, 육군교육사령관을 역임했다.
2. 생애
1956년 9월 10일[1] 전라남도 무안군 일로읍 복용5리 출신으로 일로동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목포로 유학하여 문태중학교, 문태고등학교(25회)를 졸업한 뒤 육군3사관학교(16기)에 입교하여 1979년 졸업과 함께 기갑 소위로 임관했다.[2]
준장시절 육군 제5기갑여단장을 역임했고, 소장으로 진급한 후 제20기계화보병사단장, 육군기계화학교장 등을 역임한 바 있다. 2013년 11월, 3사 16기로는 유일하게 중장으로 진급하여 육군 제3군단장으로 취임했다. 한국군 내에서는 박찬주 대장과 함께 기갑전에 가장 능한 장군으로 알려져있었다.
2015년 10월, 같은 기갑병과 출신인 박찬주 대장(육사 37기)에 밀려 진급이 좌절되었다.[3][4] 단, 임관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사관학교 입교를 기준으로 한다면 3사 16기는 육사 37와 동기가 되기 때문에,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육사 38기나 39기가 대장으로 진급할 무렵에 같이 진급할 가능성은 있었다. 하지만 결국, 진급에 실패하고 전역하였다.
2016년 10월 26일 제3야전군사령부 부사령관이었던 장재환(육사 39기) 중장이 육군교육사령관으로 부임함에 따라 나상웅 장군은 육군본부 정책연구관으로 발령되었으며, 2017년 1월 11일 전역했다.
예편 후 한국방위산업진흥회 상근부회장직을 맡고 있다.
3. 병영 문화 개선
제20기계화보병사단 사단장으로 지휘관 재임 중이던 2011년 6월, OBC교육을 마치고 자대로 온 초임장교 6명을 이등병으로 변장시켜 사단 내부의 부대로 전입시켰다. 기사
그 결과 사단 관계자는 “이번 실태 조사 결과, 생각지도 못한 병영 문화들이 아직 상당히 남아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부대원들과 공감대를 형성한 다음, 병영 문화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일반적인 군필자라면 '설마 사단장 포함하여 간부들이 부조리가 있는 줄 정말 몰랐을까, 적당히 쇼 하는거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갖는 것이 당연한데, 간부들이 병사 때의 경험이나 지레짐작으로 알고 적당히 자제시키는 것과 사단장이 직접 나서서 하나하나 정확히 파악하여 업무화 하는 것은 그 무게가 크게 다르다. 물론 워낙 똥별들과 똥간부에 대한 사례가 많아 개선 효과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수 있으나 개선은 사병이 느끼기에 확연할 정도로 훌륭했다.
자세히 서술하자면 소위들에게 장교 보급품 대신 활동복과 이등병 계급장이 달린 전투복 등 보급품 일체를 주어 각 대대로 보냈고, 이에 자극받은 여단장 몇몇도 같은 시기 추가로 더 모집하여 실제로 대대에 투입된 초임장교의 수는 20여명을 헤아렸다.
다만, 보급품을 갖춰 대대로 보낸 건 좋았으나 없던 육군 병인사기록까지 사단에서 만들어낼 수는 없기 때문에[5] 대개 인사과 및 중대 행보관들 선에서 발각, 대대장과 인사담당자들은 이 내용을 알 수밖에 없었으며, 뜻 있는 대대장은 이를 자신만 알고 함구하기도 했으나 또 일부는 중대장에게까지 정체를 알려주기도 했고 신교대에서 온 병사라기엔 수양록에 아무것도 쓰인 게 없는 등 여러 디테일이 많이 부족해서 같이 생활한 병사들을 완벽하게 속이지 못했으며 3박 4일 정도로 짧았던 암행 기간 등 일부 한계도 있었다.
지휘관들은 자신들이 모르는 부조리나 불합리한 점, 불편한 점들을 초임장교들이 발견해 주길 원했고, 참여한 대부분의 소위들이 각자 나름대로 임무를 수행하여 지휘관들의 부대운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일차적으로는 부대가 발칵 뒤집히는 게 당연하기 때문에 혼란으로 인하여 사병들과 간부들에게서 불만이 있었으나 시간이 지나고 정리가 된 후 당연히 병영문화는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6]
사단장의 지시로 인한 초급간부의 이등병체험을 계기로 시작하여, 몇 주 뒤 있었던 3군의 병영생활 혁신 토론회에서도 20사단의 지휘관들은 두각을 보였으며, 병영생활 개선에 사단 전체가 관심을 기울이게 되면서 이후 눈에 띄게 개선되어 갔다. 11년 말부터 순차적으로 계급별 생활관을 도입하면서, 소대별 생활관을 쓰던 마지막 세대인 11년 군번과 계급별 생활관 쓰기 시작한 세대인 12년 이후 군번을 비교했을때 경험한 부조리의 갯수와 강도가 어마어마하게 차이 날 정도로 줄어드는 명백한 성과를 이루었다. 물론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으나 이는 방책의 효과가 부족했다기 보다 현 한국 군대의 한계점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4. 훈련
병영문화 개선도 했지만 훈련도 못지 않게 신경을 썼다. 대표적으로 행군인데, 일화로 20사단장 부임하면서 그 전 사단장 재임중에는 뜸했던 행군이 한달에 한 번 이상으로 늘었다. 쉽게 말해 다른 훈련이 많거나 너무 추운 달은 행군을 못하므로 행군이 가능한 달에 몰아서 하는 것. 따라서 2주 간격으로 행군을 한 적도 있다.
여기서 무서운 것은, '''본인이 직접 행군에 참가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 링크 이 영상 댓글을 포함하여 직접 행군 뛴 것을 게시한 여러 글엔 그 동안 간부같지 않은 간부들, 똥별들을 경험한 바가 있으니 왜 사병 괴롭히냐, 군장은 비어있겠지, 조금 걷다가 레토나 타겠지, 방송용이겠지 등등의 부정적 댓글이 대세인데, 그 말마따나 대대장이라도 조금 걷다가 바로 레토나 타는 판국에 현역 내내 중장 달고 군단장이 되어서도 행군 시작부터 끝까지 병사들 격려하면서 직접 행군했다. 안 하던 짓을 어쩌다 한번 하는 것도 아니고 비교적 자주 한다. 솔선수범이니 좋은 모습이긴 한데 사병이건 간부건 약간의 가라는 커녕 FM의 끝장을 보게 된다. 평소 보여주기식으로 조금 걷다가 레토나 타던 대대장도 중간에 함부로 레토나를 타지 못 했다.
20사단장으로 재임 당시 이전 사단장에 비해 훈련량이 엄청나게 늘었다. 기계화 사단 특성 자체가 원래부터 훈련량이 많은데 거기서 훨씬 더 늘렸다. 더군다나 FM을 중시하는 바람에 훈련의 예행 연습도 엄청 늘렸다. 훈련을 잘 하기 위한 훈련인 셈. 훈련량이 어느 정도냐면 사단 내 수색대 같은 특수부대도 아닌 일반 대대에 신교대에서 갓 전입 온 이등병이 한 달 동안 부대 안에 있던 날보다 바깥에서 훈련한 날이 더 많았고 소대에 떨어진 포상휴가증 중 하나를 왕고가 신병 수고했다며 양보했을 정도. 또한 혹한기 시즌에 혹한기 훈련이 아닌 다른 3박4일, 4박 5일 야외훈련들이 워낙 많아서 정작 혹한기 훈련은 밀리고 밀리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때 쯤 2박 3일로 줄여서 부대에서 걸어서 15분 쯤 거리되는 바로 옆 훈련장에서 실시했다. 덧붙여 그 혹한기 훈련은 겨울시즌에 한 훈련 중 가장 따뜻했다.
사병 복지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었고 FM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이라면 적당한 융통성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예를 들어 20사단장 재임 당시에는 위장크림 대신 안면마스크 착용도 허용했다.[7] 이게 얼마나 관대한 처사였는지를 다음 사단장[8] 이 안면마스크를 금지하고 한달 내내 전투준비태세와 국지도발을 때려버리면서 깨닫게 된 사람들이 많다.
5. 여담
- 키는 크지 않은 편이나 얼굴의 선이 굵어 딱 봐도 나 장군이오 하게 생겼고 마르지 않고 몸집이 있고 근육 관리가 잘 된 편이라 풍채가 좋으며 목소리가 굉장히 중후하다.
- 육군3사관학교 동기로는 국방부 조사본부장과 육군 수사단장을 역임한 백낙종 소장과 제7보병사단장 및 3사관학교장을 역임한 원홍규 소장이 있다.
캡틴 김상호가 평소에 존경해온 군, 사관학교 선배라 직접 나상웅 장군의 행적을 요약한 영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본인이 직접 대댓글을 남겼다!
[1] 그러면 56년생이다. 만 23세 임관이기 때문. 12월 31일생일지 누가 아는가.[2] 임관 연도로만 따지면 육사 35기와 동기가 된다.[3] 이전 서술에는 2차 보직을 거치지 않아 대장 진급 대상이 아니라고 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비육사 출신의 경우 중장급 이상으로의 진급 자체가 힘들기 때문에 비육사 출신 중장 자체가 드물다. 그렇기 때문에 1차 보직 중이냐 2차 보직 중이냐에 따라 진급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비육사 출신 중장의 유무와 그 수에 따라 결정된다. 비육사 출신 중장을 대장으로 올릴 차례가 되었는데, 2차 보직중인 비육사 출신 중장이 없으면 그냥 군단장 임기중인 중장을 진급시켜서 보직시키는 경우가 많다. 사건과 사고의 여파로 인해 원래 진급예정이던 비육사 출신 중장이 진급을 할 수 없게 되면, 그 밑 기수의 비육사 출신 중장이 중장으로 진급한지 채 2년이 안 된 경우에도 대장으로 진급하는 경우가 있다. 이철휘 장군(군단장 임기중 대장진급), 이순진 장군(중장진급 1년 9월만에 대장진급)이 그 사례.[4]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비육사 중장 및 대장이 증가하였다. 남영신 대장, 박상근 중장, 박양동 중장(학군사관), 황인권 대장, 허강수 중장(3사), 최진규 중장(학사장교) 등.[5] 만약 그렇게 했다간 기록 위조로 헌병대 크리...[6] 소대생활관을 쓰던 2011년까지만 해도 주말마다 생활관 배게피 세탁, 그리스 잔뜩먹은 장갑차 걸레 세탁등의 작업이 있었고 이를 당연시 여겼다.[7] 육사45기 출신인 강건작은 대놓고 야간에 안면마스크 착용을 지시했다. 야간작전때 열탐지를 막는데 매우 유용하기 때문이다.[8] 육사40기 포병출신 김상철 소장, 독사파 일원임에도 중장 진급에 실패한 것도 모자라서 같은 포병출신 동기인 김병주(나상웅 3군단장 후임)가 대장 진급하는걸 지켜보는 굴욕을 겪고 몇 달 뒤 전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