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코보 텐카이

 


南光坊天海
일본 전국시대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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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
1536년? ~ 1643년 11월 13일
1. 설명
2. 아케치 미츠히데 동일인물 설
3. 대중문화 속의 텐카이


1. 설명


일반적으로 텐카이, '자혜선사'라 불리며, 별명은 '흑의의 재상(黑衣の宰相)'.[1]
도에이산 카이산 지겐다이시의 유래라는 사료에 따르면 아시나 가문의 일족으로 있는 미우라 가문 출신으로 무츠 국 아이다군 타카다 출생이라고 하지만 제자들에게는 자신의 출신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으며, 아시나 슈리다이부인 타이라노 모리타카의 일족이라거나 아시카가 쇼군의 서자설이 있지만 명확하지 않아 전반적인 생애는 알려지지 않았다.
오즈키 코스케의 일기인 코스케스쿠네일차기에 나온 기록에 따라 닛코 토쇼궁의 약사당에서 법화경을 바치는 의식을 올렸을 때 97세였다고 나오지만 그 밖에 생년이 1510년, 1530년, 1542년, 1554년이라는 설이 있지만 정확한 생년은 알 수 없다.
즈이호우(随風)라고 칭하여 출가하면서 14세 때 시모츠케 국 우츠노미야에 있던 절인 코카와데라에서 코슌에게 천태종을 배웠으며, 이후 오우미 국 히에이 산의 엔랴쿠지, 미이데라, 야마토 국의 코후쿠지 등에서 더욱 배웠다. 1571년에는 오다 노부나가가 히에이 산을 불태우자 타케다 신겐의 초빙으로 카이 국으로 이주하였다가 코우즈케 국에 있는 절인 쵸라쿠지로 옮겼으며, 1588년에는 무사시 국의 무료쥬지 키타노인(키타인)으로 옮기면서 텐카이라 칭했다고 한다.
무료쥬지 키타노인으로 오자 에도사키 후도우인의 주지를 겸임하였는데, 센소지의 사료에 따르면 후호죠 가문 공격 때 센소지의 주지인 타다히데와 함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진에 있었다고 하며, 1599년에는 코카이의 뒤를 이어 키타인의 주지가 되었다. 1607년에 탄다이에 임명되어 난코보에 거주하면서 엔랴쿠지를 재흥하였다고 하는데, 1609년에는 조정으로부터 권승정에 임명되었다.
1612년에는 무료쥬지 키타노인의 재건을 하면서 키타인으로 고쳤으며, 1613년에는 이에야스의 명으로 닛코 산의 주지가 되어 혼보, 코묘인 등을 재흥하였다. 오사카의 전투에도 관여했다고 한다. 1616년에는 이에야스가 신호(신의 칭호)와 장례 의식에 대한 유언을 맡기자 이에야스 사후에 이신 스우덴, 혼다 마사즈미 등과 신호를 지어주는 것을 두고 다투었다가 텐카이가 지은 곤겐(権現)으로 결정되어 이에야스의 신호를 토쇼다이곤겐(東照大権現)이 되었다.
1624년에는 시노부가오카에서 칸에이지를 창건하면서 에도의 도시 계획에 관여하면서 음양도와 풍수에 근거한 에도의 난리를 지키게 하는 것을 구성하였으며, 1627년에 일어났던 시에 사건에 죄를 입은 사람에 대한 특사를 요청하여 오쿠보 타다치카, 후쿠시마 마사노리, 도쿠가와 타다나가, 타쿠앙 소호 등의 사면을 요청하였다. 그가 사망한지 5년 후에는 지겐다이시(慈眼大師)라는 호가 추증되었다.
주로 바깥의 일은 혼다 야하치로 마사노부에게 묻고, 안의 일은 난코보 텐카이에게 물었던 모양.

2. 아케치 미츠히데 동일인물 설


아케치 미츠히데와 동일인물이라는 설도 있다.
근거로는
  1. 아케치 미츠히데의 제대로 된 수급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
  2. 아무리 패잔병 신세라지만 농민들이 미츠히데 곁까지 접근할 때까지 호위무사들이 내버려두었을까 하는 점.
  3. 승려이면서 철포의 소양이 뛰어났다는 점[2]과 그가 입었던 갑옷이 남아 있는 점.
  4. 이에야스를 모시는 신사인 도쇼구에 있는 조각상에 미츠히데의 문장이 새겨져 있는 점.
  5. 니코에 텐카이가 직접 이름 붙인 '明智平'라는 지명이 있다.
  6.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히데(秀), 도쿠가와 이에미츠의 미츠(光)를 미츠히데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설.
  7. 미츠히데가 죽은 1582년 이후에, 히에이 산에 미츠히데 명의로 비석이 세워졌다는 점.
  8. 미츠히데의 가로인 사이토 토시미츠의 딸 카스가노 츠보네가 도쿠가와 이에미츠의 유모가 된 점.
  9. 미츠히데의 손자인 오다 마사즈미가 오사카 싸움에서 토요토미 측에서 싸웠음에도 불구 체포된 후에 목숨을 건진 점.
그러나 이 일설에 대해서는 반론도 있다.
  1. 전장의 혼란상황에서 제대로된 수급을 찾지 못하는 일은 그리 드물은 일이 아니었다. 대표적인 예로 미츠히데가 배신하여 죽게 만든 오다 노부나가의 수급도 결국에는 찾지 못했다.[3] 그 밖에도 오오타니 요시츠구의 예처럼 마음 먹고 숨기면 수급을 찾을 길이 없기 때문에 문제될 것은 없다.
  2. 아무리 무사 계급이라도 몰락한 주군에 끝까지 따르는 경우가 흔했던 것도 아니다. 또한 전장의 혼란통에서 헤어졌을 수도 있으며 농민이라고 해도 전국시대의 주력인 아시가루는 모두 평시에는 농민을 하다가 소집령이 떨어지면 병사로서 전장에 참가했기 때문에 우습게 볼 수는 없다.
  3. 당시에 승려가 전장에 서는 것은 별로 드문 것도 아니었다. 네고로사를 중심으로 활약한 무장 승려 단체인 네고로슈(根来衆)는 철포를 집단운용했으며 돈을 받고 전장에 나서는 용병 단체이기도 했다. 그 밖에도 승려와 무장을 겸하는 인물은 드물지 않으며 텐카이는 승병 신분으로 전장에 선 적도 있기 때문에 이상하게 생각할 문제도 아니다.
  4. 도쇼구에는 그 밖에도 많은 가문이 있을 뿐더러 미츠히데의 문장인 키쿄(도라지)는 다른 여러 무장의 가문에도 쓰였다. 대표적인 예가 가토 기요마사.
  5. 해당 이야기는 전승으로 전해질 뿐이며 사료에 의하여 명확하게 입증된 것이 아니다.
  6. 히데와 미츠 글자는 당시에는 이름으로 쓰이는 글자 중에서도 가장 흔한 축에 속했다. 특히 히데타다의 '히데'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서 따온 것이다. 오히려 흑조 이론적인 발상이라고 보아야될 것이다.
  7. 후세에 날조된 설이라는 주장도 있으며 가짜 무덤은 드물은 것도 아니다. 전사설이 학계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시마 키요오키도 교토의 류혼지에 무덤이 있어서 실제로는 전장에서 죽지 않고 교토에서 죽었다는 설이 있을 정도.
  8. , 9. 패장이나 항장은 죽이지 않고 회유를 하는 것은 당시에는 몹시 흔한 일이었다. 마츠나가 히사히데는 항장 출신임에도 오다 노부나가에게 중용되었으며 후에 두 번을 배신했고 오다 노부나가는 그 때마다 투항을 권고했다. 또한 도쿠가와 측은 혼노우지의 변에서 직접적인 피해를 보지 않았다. 오히려 표면상의 동맹 관계임에도 사실상의 주군처럼 굴었던 오다가가 공중분해되어 도쿠가와가 일본을 통일할 계기를 만들었다고 볼 수도 있으며 이에 따라서 굳이 아케치 가의 핏줄을 끊으려 들 이유가 없다. 또한 도쿠가와 가는 일본을 통일한 다음에도 도요토미 측에서 싸운 모든 다이묘나 무장에게 극형이나 중형을 내리지는 않았고 온건하게 넘어간 경우도 많다.
정리하자면, 나이대가 미츠히데와 비슷한데다 교양수준도 비슷하고, 결정적으로 미츠히데가 야마자키 전투에 패배한 후 도망간 것까진 확실한데 죽었는지 아닌지에 대한 사실 여부가 확실치 않다는 점이다.
이러한 부분으로 인해, 미츠히데 혹은 미츠히데와 가까운 인물(아케치 히데미츠)와 동일인물, 또는 미츠히데와 히데미츠, 2대가 연기하였다는 설이 존재한다.

3. 대중문화 속의 텐카이


왠지 음침한 너구리 같은 이에야스의 이미지 탓인지, 여타 매체에 나오면 덩달아 기괴한 모습으로 나오곤 한다.[4] 아케치 미츠히데와 동일인물이라는 설이 흥미를 자극하기 때문인지 창작물에서는 종종 차용되기도 하는 설이다.
매체에서의 일반적 모습에 어느정도 예외적이라면 오그레 이토천상천하가 있을텐데, 가끔가다 나오는 기괴한 모습 외엔 전체적으론 나름 준수한 외모. 하지만 여자들을 BDSM이나 다를게 없이 감금한 방을 보면, 기괴하다는 인상은 그대로 남겨둔 듯.
아오이 도쿠가와 삼대에서도 등장. 아케치 미츠히데와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핵심 참모로서 등장한다. 주로 과거 법률에 대한 자문이나[5] 종교정책에 대한 자문을 맡으며 콘치인 스덴과 자주 의견상 대립을 보이는데 이에야스는 주로 텐카이의 손을 들어준다.
진 여신전생 4에서는 영걸 종족의 악마로 등장한다. 본작에서 유일하게 마그네타이트를 언급하는 인물.
용과 같이 켄잔!에서는 최종장의 흑막으로 등장한다. 처음 등장할 때 미야모토 무사시가 영입된 부대의 지휘관 격 인물로 등장한다. 이후 한동안 등장이 없다가 최종장에서 갑툭튀하는데, 이유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손녀 하루카를 납치하여 이를 구실로 자신만의 천하를 만드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사키 코지로를 시켜 미야모토 무사시를 항상 방해하게 했고, 그를 자신의 본거지인 간류지마에 끌어오기도 했다. 미야모토 무사시는 사사키 코지로를 보란 듯이 이기고, 이에 텐카이는 쓸모가 없어진 코지로를 병사를 시켜 총으로 쏴서 상처를 입히는가 하면 무사시를 도발한다. 이에 무사시는 텐카이의 군대를 모조리 쓸어버리고 그의 성까지 진입, 그의 호위 닌자부대 오귀중까지 박살내며 끝까지 쫓아가서 권총 한 자루로 맞서는 그와 싸워 절벽에서 떨궈버린다. 이후 2대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가 와서 배신한 텐카이를 죽이려 하나 무사시가 말렸고, 이에 정신을 아직도 못 차린 텐카이는 자신의 군대를 더 불러온다. 그야말로 비뚤어진 야망과 욕심에 젖은 인물로 끝까지 자신만만해했지만 다시 일어선 코지로에 의해 죽임을 당하여 생을 마감한다.
바질리스크 코우가인법첩Y十M 야규인법첩에 나오는 기괴한 외모의 음침한 노승으로 등장한다.

3.1. 슈팅 게임 바사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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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류보(靑瀧坊)라는 이름으로 등장. 기체명은 자안(慈眼)이다.
나가시마 공격 때 살육당한 사람들의 공양과 노부나가가 천하를 움켜쥐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파계승의 길을 택하고 노부나가를 타도하기 위해 출발한다.
모아베기는 찌르기, 서브샷은 법력주(유도탄)이다. 이동 속도는 다소 빠른 편. 모아베기의 파워는 약하지만 모든 캐릭터중 가장 긴 리치 하나로 먹고사는 캐릭터. 그런데 지속시간이 길어서 같은 형식의 캐릭터인 다케다 노부카츠보다도 훨씬 좋은 성능을 보인다.
2주차 엔딩에서 그가 난코보 텐카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정확히는 엔딩 이후 텐카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
전작 바사라에서는 진 최종보스인 도쿠가와 이에야스 기체의 파츠 중 하나로 등장했다.

3.2. 전국 바사라 시리즈


텐카이(전국 바사라) 문서 참조.

3.3. 귀무자 시리즈 중 신 귀무자의 등장인물


귀무자 시리즈의 영원한 주인공 아케치 사마노스케 히데미츠의 정체. 왜인지 덩치가 커진 아코와 함께 전국을 순회하며 환마들의 음모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6]
하지만 귀무자로서의 전투 능력은 나이가 들어서 약해진 것인지 칼을 안 들고 승장을 들어서 약한 것인지(……) 이래저래 채이고 까이는 불쌍한 역할.
일단 사마노스케의 가명을 1로 정한 것은 위의 미츠히데 가설에 영향을 받은 것인 듯 하다. 참고로 아케치 미츠히데는 사마노스케의 삼촌이다.
금성무가 성우를 맡았던 귀무자 1, 3와 달리 본편에서의 성우는 이시카와 히데오가 맡았다.

3.4. 누라리횬의 손자


고카도인 텐카이 항목으로.

3.5.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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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인의 신장의 야망
이 시리즈에도 종종 등장했는데, 항상 승려의 모습에 지모와 정치력이 매우 높고 수명도 길다. 다만 전투치는 전 무장 중 최하급인데 재미있게도 철포적성은 왠만한 무장들 급으로 높게 측정된다는 특징이 있다. 위의 미츠히데 동일인물 설을 은연 중에 의식했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천상기는 예외로 모든 병과적성이 최하급.
노부나가의 야망 장성록에서는 대놓고 텐카이=미츠히데 설을 반영한 이벤트가 나온다. 혼노지의 변 이벤트가 두 가지가 준비되어 있는데, 하나는 역사대로 미츠히데가 죽는 이벤트고 또 하나는 미츠히데가 패주 후 죽지 않고 은거하는 이벤트가 나온다. 미츠히데가 생존하는 조건은 다케다 가문이 멸망한 후 혼노지의 변이 일어나는 것. 그리고 몇 년이 지나면 텐카이로 모습이 바뀌어 도쿠가와에 임관하는 이벤트가 나온다.
노부나가의 야망 혁신이나 노부나가의 야망 천도에서는 초기부터 재야 무장으로 등장해서 긴키 지역에서 등용하기 쉬운 편이다. 주로 쓰쓰이나 아시카가 막부에 가 있는 경우가 많으며 가끔 롯가쿠나 혼간지에 가 있는 경우도 있다. 후반기 시나리오에는 역사대로 도쿠가와에 소속되어 있다.

3.6. 인왕


여기서도 아케치 미츠히데 동일인물 설을 채택하고 있으며, 여기서는 본편의 켈리나 존 디와 마찬가지로 암리타의 힘을 이용해 세계를 정복하려 했던 노부나가를 막고 세상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배신자의 오명을 감수한 선역으로 등장한다. 제자로 후쿠라는 여음양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3.7. Fate 시리즈


아케치 미츠히데(Fate 시리즈) 참조.
[1] 사실 흑의재상이라는 표현은 중국한국에서도 쓰인 한자어다.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승려를 일컫는 일종의 관용구다. 예를 들면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스승 역할을 한 타이겐 셋사이가 이렇게 불렸으며, 텐카이와 동 시대에 이에야스 밑에서 일했던 또다른 승려 이신 스덴도 흑의의 재상이라 불렸다. 중국 남북조시대 유송의 승려인 '혜림화상'이라는 사람이 흑의재상의 원조이며 명나라영락제의 참모로 활약한 요광효라는 승려도 흑의재상이라는 별명이 있었다.[2] 아케치 미츠히데가 철포술에 일가견이 있었다.[3] 그리고 물론 노부나가도 생존설이 있다.[4] 다른 참모인 혼다 마사노부도 그다지 잘생긴 인상으로 묘사되는 일은 없다.[5] 이미 반쯤 잊혀졌던 쇼군 직위를 발굴해낸다든지.[6] 귀무자 3에서 특정조건을 만족시키면 나오는 진 엔딩 이후를 기준으로 한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