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이 도쿠가와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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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00년 방영된 NHK 대하드라마로서 39번째 작품,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이시다 미츠나리 등 히데요시 가신들과의 갈등을 시작으로 세키가하라 전투, 오사카 전투등을 다루었으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막부성립과 도쿠가와 히데타다, 도쿠가와 이에미츠까지 에도 막부 쇼군 삼대의 일대기를 다루었다.
자막 제작자가 쓴 용의 눈물과의 비교글 정권 초창기 3대사와 그를 둘러싼 각종 악업과 동시대의 사건을 다루는 구성과 과정이 용의 눈물과 비슷하다는 평이 있으며 실제로 여러 유사점이 있다.
1회에서는 세키가하라 전투 400주년을 맞아 많은 예산과 물량을 투입하여 전투를 재현하였다. 이 전투씬은 이후의 세키가하라 전투를 다루는 드라마에서 여러번 쓰이기도 했다.
葵 아오이는 '해바라기 규'인데 일본어로 도쿠가와 가문의 문장인 접시꽃을 뜻하는 낱말이다.
2. 등장인물
드라마 시작 전에 출연하는 해설자 역, <대일본사>를 편찬한 미토 고몬(나카무라 바이자쿠). 이 드라마의 또다른 주인공으로 제4의 벽을 오가면서 신명나게 해설한다.
과거로 보면 갓난아기인 아버지를 안고 감사하고 젊을 적 철없는 아버지의 행각을 보며 아버지의 미래를 걱정하고 미래(현대)에서 교토 궁가의 스캔들을 취재하러 온 기자들을 보고 놀란다든가, 이에야스가 지병으로 드러누울때 기생충 이야기를 하며 흑역사인 미카타가하라 전투 때 변을 지린 사건 등도 이야기하는데, 병중에 드러누웠던 이에야스가 깨어나면서 '누가 내가 살쪘다느니, 변을 지렸다느니 하는 뒷담화를 했냐?'라거나, 이에야스가 자식들 중 천황과 결혼하려는 이야기에서 정치적인 목적으로 서술하자 갑자기 창문을 버럭 열며 "이상한 소리 마라!"라며 미토 고몬 때는 정작 시대상 사망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나타나거나 세키가하라 전투 전에 이시다 미츠나리가 "왜 다른 애들은 공(公)이라고 하면서 나는 안 붙이냐?"라고 화내는 것에 후대 인물인 세 명이 어리둥절해 하는가 하면 한밤중에 왠 꼬맹이 둘이서 술을 내놓으라고 하자 때려눕혔는데 그 중 한 명이 자기 아버지 요리후사(...)였다는 등등 시작부터 개그 장면이 많다.
거기다 미토 고몬 따라 나오는 남장한 배우가 연기하는 부하 둘과 만담을 보는 재미가 있다. 마지막에는 다른 방송사의 미토 고몬 복장을 하고 여행을 떠나려 한다. (...) 역사는 제대로 쓰여져야 한다면서 도쿠가와의 치부도 남김없이 밝히고 부하들은 큰일 난다면서 말리는 게 클리셰인데, 정작 미토 미츠쿠니가 암행어사같은 짓을 한 게 없다고 부하들이 말하니까 그게 뭔 상관이냐고 나오다가, 꿈 속에서 할아버지를 만나서 혼났다면서 그 간 쓴 역사서를 처분해버리겠다며 종이를 휙휙 던지자. 두 부하가 종이를 줍는 광경이 나온다.
2.1. 도쿠가와 가문
히데요시 사후 히데요리를 부탁받은 오대로의 필두이자 간토 256만석의 대 다이묘. 겉으로는 히데요리와 요도기미에 신종하나 다른 유력 다이묘와의 정략 혼인등 은연중 야심을 드러내며 이시다 미츠나리와 요도기미, 오봉행등의 견제를 받는다. 칠본창의 위협으로부터 이시다 미츠나리를 보호해 주기도 하지만 이것도 그의 모략중 일부분일 뿐이며, 히데요시의 가신이자 정권을 위임받은 자신의 암살을 획책 하려 했다는 이유로 오봉행과 이시다 미츠나리를 실각시킨다. 이후 우에스기 카게카츠가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자 아이즈 정벌을 구실로 군사를 일으켜 동쪽으로 원정하고 이 틈을 타 이시다 미츠나리는 모리 테루모토, 우키다 히데이에, 오타니 요시츠구 등을 규합하여 군사를 일으켜 이에야스의 후시미성 등을 함락 시킨다. 하지만 이는 이니 이에야스의 계산대로 움직이는 것에 불과했다. 이에야스는 구로다 나가마사와 도도 다카도라를 통해 칠본창 등 미츠나리 반대파 다이묘들을 포섭하여 오사카를 목표로 진군하였다. 이후 미츠나리를 낚아 세키가하라에서 회전을 하게 만들고 온갖 모략을 통하여 지형상, 병력의 수 등의 불리함을 극복하고 불과 6시간만에 대승리를 거두었다.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에는 그 전에 겉으로나마 신종하던 히데요리를 노골적으로 압박하고 정이대장군에 취임하여 에도에 막부를 열었다. 막부를 반석위에 올려 놓기 위해온갖 노력을 다하고 결국 도요토미에 대한 트집을 잡아 다이묘들을 규합하여 오사카 전투에서 도요토미 세력을 무력화 시키고 적대 세력을 일소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슨푸성에서 임종하였다.
작중 히데타다와 함께 개그 캐릭터로서 자식 욕심이 많아[3] 히데타다, 히데야스 등과 자식 많이 낳기 배틀을 벌이기도 하며 70이 다 된 나이에 자식을 보기도 한다. 이에야스 역을 맡은 원로배우 츠가와 마사히코의 절륜한 연기력으로 때로는 능구렁이 같이 속을 알 수 없고 때로는 과단성 있고 진중한 면을 보이기도 하는 등 이에야스의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잘 묘사하였다.
이에야스의 3남이자 제2대 쇼군, 첫 등장부터 이에야스의 후계자로서 세키가하라 전투 당시에는 사나다 마사유키의 우에다성을 공략하다 마사유키의 책략에 말려들어 결국 사나다 공략에도 실패하고 세키가하라 전투에도 참전치 못하여 이에야스의 분노를 샀다. 후계자에서 멀어지는듯 했지만 여러 가신들과 세키가하라에서 큰 공을 세운 동복 동생 마츠다이라 타다요시의 변호에 힘입어 아버지 이에야스에게 용서 받고 제2대 쇼군 지위도 무난히 승계 받을 수 있었다.
오사카 전투에서는 세키가하라의 실책을 만회하고자 속전속결로 강경하게 공략할 것을 주장하고 선봉에 설 듯 하였으나 결국 최전선에서 싸운 사람은 아버지 이에야스 였다.[5]
쇼군에 즉위한 뒤 한 동안은 아버지의 꼭두각시와 다름 없었으나 오사카 전투 이후 부터는 본인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이야야스의 사망 이후에는 명실 상부한 일인자가 되었다.
아버지에 비해 군략은 다소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지만 정치적으로는 노련한 모습을 많이 보여 각 다이묘들을 통제하거나 천황가나 공경들과의 줄다리기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모습을 보여 주었고 아내 오고우의 차남 타다나가에 대한 편애에도 불구하고 끝내 장남 이에미츠에게 3대 쇼군 지위를 물려주고 은거하였다.
애처가이자 공처가이기도 하다. 6살 연상의 아내인 오고우와 2남 5녀를 두었으며 아내를 사랑하는것과 동시에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아들을 낳으라는 아버지의 독촉에도 불구하고 측실을 들이지 않았으며 끝내 정실인 아내와의 사이에 이에미츠, 타다나가를 얻었다. 다만 가신들이나 유모가 들여보내는 여자들은 마다하지 않는 것으로 나와 시녀와의 사이에 3남 코우마츠(호시나 마사유키)를 두었으나 아내가 두려워 비구니 거처에 피신을 보냈다가 시나노 호시나 가문에 양자로 보냈다. 이에미츠 취임 후 이에미츠의 배려로 눈물의 부자상봉을 하였다.
아내뿐만 아니라 자식들에 대한 애정도 각별하여 둘째 오타마를 카가로 정략결혼으로 보낼 때나[6] 오사카 공격 당시 강경 입장을 보이고 겉으로는 히데요리에게 시집간 장녀 센히메도 연을 끊을 듯 말하지만 속으로는 딸 걱정에 안절부절하는 모습을 보였다.[7] 정이 많고 평범한 능력의 인물이지만 공사의 구분은 철저하고 능력 있는 가신을 알아 볼 수있는 안목이 있어 이에야스가 후계자로 삼을 만한 인물이긴 하다. 마치 옆집 아저씨같은 푸근한 인상에 몸개그도 자주 하는지라 작중 개그 담당이면서도 인간미 담당.
- 도쿠가와 이에미츠 (오노에 쇼로쿠) : 가부키 배우
막내 삼촌인 미토번주 도쿠가와 요리후사(미토 고몬의 아버지)와 몰래 밤거리를 배회하거나 시녀들의 처소인 오오쿠를 몰래 훔쳐보거나 하는 비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사춘기 소년 시절에는 오오쿠의 시녀를 요바이하여 임신 시켰다가 후계자에서 폐적될 위기에 처하자 충성스런 가신의 희생으로 폐적의 위기는 넘겼으나 가신은 책형에 쳐해지고 시녀는 참수되었다. 이후 여인을 멀리하기 시작해 공경의 딸인 다카쓰카사 다카코를 정실로 맞아들인 이후에도 한번도 정실의 침소를 찾지 않았다. 다만 백모인 죠코인이 오후쿠를 통해 미리 준비한 남장여자 시녀에 대해서는 마음을 열어 목욕등의 수발을 들게한다.
어머니의 사랑을 동생 타다나가에게 빼았겼다 여겨서인지 타다나가를 미워하는 듯하며 오히려 이복동생인 호시나 마사유키는 총애하고 중용하였다.
쇼군으로서는 아버지 히데타다와 다르게 아버지인 오고쇼에게도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는 편이며 막부의 위상을 세우는 정책을 많이 시행하였다.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정실, 요도기미의 막내 동생이자 이에미츠의 어머니, 히데타다는 그녀의 세번째 남편이다. 두번째 남편인 토요토미 히데카츠 사이에 장녀 사다코를 낳았다. 히데타다와는 2남 5녀를 두었다. 남편의 입장과 달리 토요토미가와의 전쟁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어릴 때 두번이나 전투에서 지는 바람에 부모를 잃은 트라우마가 상당하다. 남편인 히데타다를 확실히 휘어잡고 있으며 시아버지 이에야스에게도 당당하다.
장남 이에미츠를 낳기 전에 딸만 줄줄이 넷을 낳았던 탓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시아버지인 이에야스가 아들을 낳지 못한다며 남편 히데타다에게 측실을 두라고 지속적으로 권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장남과 차남을 연이어 출산하면서 사라지게 된다.
장남 이에미츠 보다는 차남 타다나가를 편애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 정도가 심해 자기가 낳은 아들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 작중에서도 "네가 낳은 아들인데 왜 못잡아먹어 안달이냐"라는 식의 언급이 꽤 많이 나온다. 장남은 거의 태어나자마자 유모의 품에 내주어야 했기 때문에 자신이 기른 차남에게 더 애착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9]
시아버지 이에야스의 정략혼 동맹으로 딸들을 어린 나이에 멀리 시집 보내야 했는데, 곁으로는 내색을 안해도 장녀 오센의 불행한 결혼생활[10] 과 마에다 가에 시집 보낸 차녀 타마와 와 4녀 하츠의사망소식 [11] 에 오센의 세번째 남편 장례식에서 오센 남편의 단을 보며 이에야스를 원망하며 이건 너무 하다고 통곡한다.
- 유키 히데야스 (오카모토 후지타)
- 마츠다이라 타다요시 (테라이즈미 켄)[12]
- 마츠다이라 타다테루 (사카모토 히로유키)[13]
- 이로하히메 (가토 리에)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딸로, 도요토미 히데요리의 부인이었지만 오사카 성 낙성 이후 본가로 돌아온다.
도쿠가와 이에미츠의 이복동생.
도쿠가와 이에미츠의 측실로, 4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츠나를 낳게 된다.
2.2. 도쿠가와 가신
도쿠가와 사천왕 중 1인으로 제일의 용장,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는 시마즈군을 추격하여 시마즈 토요히사를 창으로 쓰러트렸다.
도쿠가와 가문의 수석 가로, 오오쿠보 타다치카 등과 반목하였다. 대부분의 전략과 방침이 이 사람의 머리에서 나오며 아들인 마사즈미와는 달리 2대 쇼군 히데타다를 보좌하며 신뢰를 받았다. 오고쇼로 물러앉은 이에야스가 너무 나서면 쇼군인 히데타다의 기량의 의심받을 수 있다는 직언을 올린 것도 이 사람.
혼다 마사노부의 아들이자 이에야스가 총애하는 가신, 이에야스 임종시 이에야스의 첩을 상속 받을 정도 였는데 오오쿠보 부자와의 반목, 2대 쇼군 히데타다에게의 처신문제로 개역 당하였다. 이렇게 된 원인으로는 이에야스가 죽기 직전까지 이에야스 옆에 있었지 히데타다 옆에 있지는 않았던데다 히데타다가 평소 의지하던 오오쿠보 타다치카를 쳐낸 것이 컸다. 그 때부터 이미 히데타다에게 밉보이기 시작하는 듯한 묘사가 있어 히데타다가 본격적으로 집권한 뒤에는 무겁게 쓰이지 못했다. 능력적으로도 도이 토시카츠를 넘어서지 못했다.
도쿠가와 사천왕이며 도쿠가와의 특공대인 이이적비대를 이끄는 용장이자 이에야스의 4남 타다요시의 장인, 세키가하라에서는 사위 타다요시와 함께 후쿠시마 마사노리를 속이고 우키다군에 첫 공격을 감행하여 공을 세웠다. 전투 후반부 시마즈군을 추격하다가 저격당해 중상을 입었다. 부상의 후유증으로 2년후에 병사하는데 개인적인 원한을 잊고 시마즈 가문과 화친할 것을 진언하였다.
도쿠가와 사천왕 중 1인, 히데타다를 보좌하여 우에다성을 공략하는 바람에 세키가하라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우에다성에서 패배하고 세키가하라에 합류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행군을 강행하였지만 역시 전투 후 5일이 지난 후에 합류하게 되었고 히데타다를 대신해 전투 지참에 따른 사죄를 하는 안습한 모습을 보인다.
도쿠가와 가문의 오랜 가신, 이시다 미츠니리와 우키다 히데이에가 서군을 조직하여 도쿠가와를 압박하자 뻔히 죽을걸 알면서도 후시미성 수비를 자청하였다. 이에야스는 모토타다 등 오랜 가신들과 이별주를 마시며 눈물을 흘린다. 이에야스의 첩과 자식들을 대피 시키고 마지막까지 후시미성을 사수하는데 동군에 가세하여 후시미성을 수비하기를 원하는 시마즈 요시히로의 제안을 물리쳐 요시히로의 원망을 사게되고 시마즈군이 서군에 가담하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한다.
필사적인 농성에도 불구하고 천수각을 점령당해 결국 서군에 속한 용병집단인 사이카슈에의해 전사하게 된다.
히데타다를 따라 우에다성을 공략하였으나 패배하고 이에 따른 처벌과정에서 혼다 마사노부와 대립하였다. 결국은 혼다 마사노부, 마사즈미 부자에 의해 실각하여 개역 당한다. 히데타다의 최측근으로서 특히 의지하는 인물[21] 이었기 때문에 이 일로 마사즈미는 히데타다 집권 후 실각하게 된다.
아케치 미츠히데의 가신 사이토 도시미츠의 딸로, 본명은 사이토 후쿠. 도쿠가와 이에미츠의 유모이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야규 무네노리, 마츠다이라 노부쓰나와 함께 이에미츠를 떠받치는 세 기둥이라 불렸다.
교토소사대의 수장으로서 도쿠가와가의 교토 주재 대변인 겸 참모. 공경들과 후궁들의 추문을 조사하여 일망타진하는 등 가끔씩 등장하여 묵직한 행적을 남긴다.
히데타다의 최측근 가로로 등장하였고, 정치력, 모략에 있어 혼다 마사노부를 능가하며 행정적으로도 탁월한 업적을 쌓아 막부를 반석위에 올려 놓았다. 후에 도쿠가와 막부 최초의 로중(최고위 신하)이 되었다.
2.3. 도요토미 가문
- 요도도노 (오가와 마유미)
2.4. 도요토미 가신(오사카성)
2.5. 동군 다이묘
- 다테 마사무네 (스마 케이)
- 도도 다카토라 (타무라 료)
- 야마우치 카즈토요 (사이토 사토루)
2.6. 서군 다이묘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더불어 드라마 초반부의 주인공.
토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요도도노가 가장 의지하고 믿는 인물, 히데요시 히데요리 부자에 대한 충성심은 누구에게도 의심 받지 않지만 각 다이묘들에게는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인물이다. 후쿠시마, 가토 등의 무단파 다이묘에게 죽을 뻔한 위기에서 호랑이굴과 같은 도쿠가와 저택으로 구명을 요청하여 목숨을 구했을 정도로 기지가 있다. 다만 직후 봉행직에서 실각...한편으로는 원래 도쿠가와군의 아이즈 원정을 지원하기 위해 출정하려던 오오타니 요시츠구도 3일동안 끈질긴 설득으로 서군에 참여하게 만들었고 모리일가 우에스기를 움직여 본격적으로 도쿠가와 토벌하기 위해 후시미성을 공격해 전쟁을 일으켰다. 다만 본인의 인망이 부족하여 모리 테루모토를 명목상 총대장으로 세우고 본인이 세부적인 지휘를 하나 시마즈 요시히로 등과 반목하고 서군 다이묘들도 완벽히 장악하지 못했 고바야카와 히데아키가 배반하고 킷카와 히로에가 모리군의 발을 묶어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결정적인 패배 원인이 되었다.
패배 후 사와야마성의 낙성을 두눈으로 확인하고 인연이 있었던 절과 백성의 도움으로 숨어 지내다 친구였던 다나카 요시마사에게 체포 당한다. 체포 후 후쿠시마 등 동군 다이묘들의 비웃음에도 의연히 대처하였고 패배의 원인을 제공한 고바야카와 히데아키에게 호통을 치기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는 토요토미 히데요리를 잘 보필해 줄것을 요구한 뒤 처형당한다. 처형 전의 순간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의연함을 보여주었다.
- 안코쿠지 에케이 (자이츠 이치로)
- 우에스기 카게카츠 (카미죠 츠네히코)
- 고바야카와 히데아키 (스즈키 카즈마)[39]
- 킷카와 히로이에 (나베 오사미)
- 와키자카 야스하루 (사카구치 신야)
3. 작중의 조선
작중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끝난지 얼마 안된 시대라 조선에 대해선 종종 언급이 되며 고증도 나쁘지 않다. 가장 처음에 히데요시가 사망하고, 미츠나리와 요도도노의 대화에서 '조선을 속여야 한다'라고 언급된다. 그 시기에는 조선에선 아직 전투가 한창이었기 때문에 사기를 저하시키는걸 막기 위한 이유였다. 이후 요도도노와 오다 우라쿠사이의 대화에선 이에야스가 조선의 사신을 조정이 아닌 자신의 거점으로 빼돌렸다며 오만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직접적으로 조선 사람이 등장하는건 두번에 걸치는데, 한번은 이에야스 사후 쇼군으로서 히데타다가 통신사를 맞이하고[41] , 이후 3대 쇼군이 된 이에미츠도 축하사절로 온 통신사를 맞이한다. 이때 통신사 배우는 재일교포인지, 첫번째 등장한 통신사보단 한국어가 약간은 어색한 면이 있다.
이 첫 번째 등장한 통신사의 국서에선 조선국왕의 이름으로 혼(琿)이 보인다. 또한 히데타다 시기에 온 광해군 시기의 통신사 단령의 흉배와, 이에미츠 시기에 온 인조 시기의 통신사 단령의 흉배도 묘하게 차이가 난다. 여담으로 이 통신사가 가져온 국서로 한바탕 난리가 나는데, 국서에선 쇼군을 '일본 국왕'이라고 지칭한다. 히데타다 시기에도 히데타다를 일본 국왕이라고 지칭하였고, 막부에서도 답서를 보내면서 그를 '일본 국왕'이라고 지칭하자 했으나, 천황이 엄연히 있는데 자신을 국왕으로 칭하는건 말이 안된다고 하고 쇼군으로 적으라고 한다.[42] 이걸 두고 결국 소 요시나리가 답서를 위조, 일본 국왕으로 히데타다를 적어 넣는다. 이후 이에미츠 시기에 온 통신사의 국서에서도 '일본 국왕'으로 이에미츠를 지칭하자 이걸 두고 조정과 기싸움을 펼치던 이에미츠가 '이웃나라도 나를 국왕으로 인정하는데 그럼 천황도 에도로 와야겠네?'라는 생각에 사고를 치고 만다. 주변 가신들은 '쇼군'이 다른 나라에서는 의미가 다르다며 당연히 뜯어 말리지만 이미 이에미츠는 눈이 뒤집힌 상태. 참고로 이 사고의 결과는 양 측이 합의를 봐서 에도까지는 안 오고 교토의 니조 성에서 같이 만나서 연회를 즐기는 것으로 끝났다....
4. 여담
일부 주역 배우들의 연령이, 캐릭터의 극중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높아 방영당시 놀림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세키가하라 전투 시점 (1600)으로 방영 당시 (2000) 이에야스 역의 배우는 만 60세로 당시 이에야스의 실제 나이 만 57세와 비슷하고, 미츠나리의 경우 극중 나이 40세, 배우 나이 56세로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는 수준. 그러나 히데타다는 극중 나이 21세, 배우 나이 53세, 오고우는 극중 나이 27세, 배우 나이 59세[43] , 요도기미 극중 나이 31세, 배우 나이 61세로,[44] 모두 맡은 배역보다 30세 이상 위다. 현대 기준으로도 한 세대, 조혼이 유행이던 당시 기준으로는 두 세대 정도 나이 차이가 난다.
[1] 1987년에는 독안룡 마사무네의 각본을 쓴 적이 있다.[2] 이에야스만 무려 다섯번을 연기했고 그 외에 츠나요시, 요시노부도 맡았었다. 영화 천과 지에서는 다케다 신겐 역할을 맡은 바 있다. 우익 성향의 배우로 한국에서 안 좋은 이미지로 알려져 있는데, 2014년에 일본 영화는 괴멸 상태라고 비평하면서 한국 영화와 일본 영화의 레벨 차이는 대학생과 유치원생 정도로 차이가 난다고 발언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18년 8월 4일 심부전으로 사망.[3] 개그로 볼 수 있는 거지만, 가문 간에 확실하게 동맹을 맺는 게 자식 간의 결혼으로 인척이 되는거라서 어린 아들들을 유력 가문과 어린 나이에 약혼이 되어 있고, 손녀라도 이에야스의 마수(?)를 피하지 못해서 히데요리와 약혼한 히데타다의 장녀 센히메는 어린 나이에 이미 도요토미 히데요리와 혼약이 되어 있었고. 둘째 타마히메도 네 살에 카가의 마에다 가로 시집 갈 정도, 후에 늘그막에 딸을 봐서 딸을 덴노가에 보내려 했지만, 어린 딸이 독에 중독되 사망하는 바람에 히데타다의 넷째 딸을 보내게 된다.[4] 이전에는 도쿠가와 요시무네를 맡았었고, 이후 공명의 갈림길에서 이에야스역을 맡는다. 히데타다에게 바보라고 하는 배우개그도 보여준다. 이 배우는 SPACE BATTLESHIP 야마토에도 출연했는데 거기서도 성이 도쿠가와다 (...)[5] 세키가하라 전투와는 달리 이번에는 너무 빨리 도착해서 이에야스가 화나게 만들었다. 10만의 병력을 급속행군 시킨지라 지친 병사들이 어떻게 싸우겠냐는 것. 그러나 부하를 위장투항시켜 히데요리와 결혼한 딸의 죽음을 각오하고 히데요리를 암살하자는 의견을 내 이에야스로부터 쇼군의 마음가짐은 인정받았다. 물론 이에야스는 병력 차가 압도적이니 잔재주는 필요없다며 기각했다. [6] 카가에는 벌레나 오니가 없다며 우는 걸 달랬지만 경사스러운 날 우는 건 아니라며 가마에 딸을 억지로 넣고 보냈지만 천수각으로 올라가 시집 행렬을 바라보면서, 따라 낭온 아내 오고우와 함께 울먹이며 딸의 이름을 불렀다.[7] 오사카 성의 천수각에 포탄이 명중하자 그걸 보면서 오센이라고 부를 정도다. 결국 장막을 뛰쳐나와 남몰래 울었다. 그리고 오센이 오사카 성에 빠져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달려나오다가 아버지 이에야스랑 함께 있는 모습 때문에 얼른 태도를 바꿨다.[8] 독안룡 마사무네에서는 요시히메를 연기했다.[9] 극 중에서도 많이 오후쿠와 함께 있는 장남을 바라보며 저먼치 멀리 바라보며 많이 걱정해주고는 했으나, 장남이 자기보다 오후쿠를 따르는 걸 직접 보는 바람에 애착이 차남에게 간 듯 하다.[10] 첫 남편 히데요리 이후로 두 번 결혼했지만, 두 명의 남편이 그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11] 실제 역사서 마에다 가에 시집간 오다마는 남편과 금슬이 좋아 출산하고자 본가에 들렸다가, 마에다 가문의 정보를 누설하지 모른다는 남편 유모의 판단으로 출산 후 독살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은 분노에 차 유모를 죽였다. 4녀 하츠히메는 남편의 냉대에 병을 앓다(고의였는지 이 때 남편은 스모경기를 본 단 핑계로 아내의 병문안을 가지 않았다.)어머니 오고우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12] 독안룡 마사무네에서는 가모 우지사토를 연기했다.[13] 공명의 갈림길에서는 코바야카와 히데아키를 연기했다.[14] 장동건, 오다기리 조 주연의 영화 마이웨이에도 출연했다.[15] 이후 2006년 대하드라마 공명의 갈림길에서 주인공 치요를 연기하게 된다[16] 1996년작 히데요시에서는 혼다 마사노부를 연기했다. 2020년 1월 21일 타계. [17] 1981년 <여자 태합기>에서도 같은 역을 맡았으며 1965년작 <태합기>에서는 야마나카 유키모리, 1978년작 <황금의 나날>에서는 안코쿠지 에케이, 2009년작 천지인에서는 센 리큐 역을 맡았다. 2017년 1월 3일 타계. [18] 1983년 작품인 도쿠가와 이에야스에서는 이에야스의 3남 히데타다를 연기했으며, 2014년 신춘시대극 <카게무샤 도쿠가와 이에야스>에서도 14년만에 이이 나오마사 역을 맡았다.[19] 2009년 작품인 천지인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연기했다.[20] 1989년작 카스가노보네에서도 같은 역이었다.[21] 측실을 들이는 일 등 지극히 사적인 일로도 의지하고 있었다. 거의 친구 비슷한 모습으로 보인다.[22] 1973년작 나라 훔친 이야기에서 스즈키 마고이치를, 1978년작 황금의 나날에서 이마이 소쿤을, 1992년작 노부나가 king of zipanggu에서 오다 노부히데를 연기했으며, 2002년작 토시이에와 마츠에서는 앞서 맡았던 이마이 소쿤의 아버지. 이마이 소큐를 연기했다.[23] 2018년 작품 세고돈에서는 겟쇼를 연기한다.[24] 토시이에와 마츠에서는 오만도코로를 연기했다. [25] 2007년 대하드라마 풍림화산에서는 바바 노부하루를, 2016년 대하드라마 사나다마루에서는 우키타 히데이에를 연기했다.[26] 1987년 대하드라마 독안룡 마사무네에서 카타쿠라 코쥬로를, 2003년 대하드라마 무사시에서는 혼다 마사노부를 연기했다.[27] 1989년작 카스가노츠보네에서 이나바 마사나리를, 2009년작 천지인에서 나오에 노부츠나를 연기했다.[28] 2009년작 천지인에서 다이도지 마사시게를 연기했다.[29] 2002년작 토시이에와 마츠에서 무라이 사다카츠를, 2006년작 공명의 갈림길에서 하야시 히데사다를, 2011년작 고우 ~공주들의 전국~에서는 혼다 타다카츠를, 2017년작 여자 성주 나오토라에소는 니이노 치카노리를 연기했다.[30] 8대쇼군 요시무네 때는 해설인 치카마츠 몬자에몬 역을 맡았다.[31] 2011년 개봉한 장동건, 오다기리 조주연의 영화 마이웨이에서 오다기리 조가 분한 타츠오의 할아버지 역으로 출연했다.[32] 양평이형 아버지, 군사 간베에에서 간베에의 할아버지 역을 맡은 바 있다.[33] 1981년 TBS 테레비에서 방영한 세키가하라에서는 나오에 카네츠구를, 1985년작 NHK 시대극 <사나다 태평기>에서는 오노 하루나가를 연기했다.[34] 토시이에와 마츠에서 삿사 나리마사, 아츠히메에서 시마즈 히사미츠 역[35] 훗날 영화 세키가하라(2017)에서 같은 배역을 연기하게 된다. 더불어 국내 관객에게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킬빌로도 익숙하다.[36] 본업인 성우로 더 유명하다.[37] 2009년 대하드라마 천지인에서는 마에다 토시이에를 연기했다.[38] 한자와 나오키의 오오와다 아키라 상무역으로 유명한 배우, 1989년작 카스가노츠보네에서는 코바야카와 히데아키를, 2002년적 토시이에와 마츠에서는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2006년작 공명의 갈림길에서는 치요 주변의 닌자 로쿠헤이타 역을 맡았다.[39] 영화 YMCA 야구단에서 일본팀 주장 노무라 히데오를 연기했다.[40] 1992년 대하드라마 <노부나가>에서는 사카이 마사치카를 연기했다.[41] 이때 조선의 국서에선 '''도요토미 가를 멸망시키고''' 일본을 통일시킨걸 축하한다'라는 부분이 등장한다.[42] 당연하겠지만 조선 입장에선 국왕에게 서찰을 보냈는데 급이 낮은 일개 장군이 받아 보고 답서를 보낸다면 불쾌할 것이라는 이야기. 스덴도 이런 점을 지적한다.[43] 공교롭게도 히데타다-오고우의 나이 차이와 배우의 나이 차이는 일치한다.[44] 요도기미가 좀 심각한데, 아들인 히데요리는 원래 나이에 맞는 아역이 나온지라 어머니와 아들이 아니라 할머니와 손자가 나온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