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마리 형제새

 

1. 개요
2. 설명
2.1. 눈물을 마시는 새
2.2. 피를 마시는 새
2.3. 물을 마시는 새와 독약을 마시는 새
2.3.1. 후속작?
3. 독자들의 해석과 추측
3.1. 해석 1
3.2. 해석 2
3.3. 해석 3
3.4. 해석 4
3.5. 해석 5


1. 개요


눈물을 마시는 새, 피를 마시는 새에 나오는 키탈저 사냥꾼들의 옛 이야기. 작품을 꿰뚫는 주제이며 잊을 만 하면 나와 잊지 않게 해준다.

2. 설명


피를 마시는 새, 눈물을 마시는 새, 독약을 마시는 새, 물을 마시는 새.
이렇게 모두 네 마리의 식성이 다른 형제 새가 있었다.

2.1. 눈물을 마시는 새


눈물을 마시는 새는 가장 빨리 죽는다고 한다. 도저히 몸 안에 둘 수 없어 흘려 내보내는 해로운 것인 눈물을 마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물을 마시는 새가 가장 아름답게 운다.
작중 다른 이의 눈물을 마시는 으로 표현된다. 4권 출판본에 타자가 덧붙인 말에 따르면 눈물은 아래로 떨어지지만 하늘을 오르는 새가 마시면 위로 올라갈 수 있다고 말한다.
눈물이 상징하는 것은 증오라고 할 수 있다.[1] 왕이란 반드시 증오의 대상이 되기 마련[2]이나, 동시에 모든 자들을 뭉치게 하는 구심점이다. 암군이라 해도 그를 증오하는 마음으로 구심점이 되기 때문. 가장 먼저 죽는것도 이 때문이며, 가장 아름답게 우는것도 그 희생이 숭고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수한 제왕병자들이 왕이 되지못한것도 이것에 기인한다 할 수 있다.

2.2. 피를 마시는 새


피를 마시는 새는 가장 오래 산다고 한다. 아무도 몸 밖으로 흘리고 싶어하지 않는 귀중한 것인 피를 마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독한 피비린내 때문에 아무도 가까이 가려 하지 않는다.
작중 스스로 붕괴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는 전투와 분쟁을 멈추지 않는 제국과 황제가 피를 마시는 새를 상징한다. 하지만 전작처럼 확실히 제국이라고 표현한 건 락토 빌파정우 규리하 뿐.
피란 희생이며, 살아가기 위해 타인을 희생하는 것은 죄다. 그리고 작중에서는 '''이러한 죄를 두려위하지 말라'''고 말하며, 오히려 죄 야말로 삶의 증거라 말한다.[3] 즉, 제국의 붕괴를 막기위해 분란을 반복한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모든 죄를 자신에게 모은다'''는 의미에서도 들어맞는 이름이다.

2.3. 물을 마시는 새와 독약을 마시는 새


물을 마시는 새는 가장 느리게 날며 독약을 마시는 새는 가장 빠르게 난다.
물은 어디든 스며들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날카롭고 독은 가장 부드럽다.
물을 뿌리면 자던 사람도 일어나지만, 독은 사람을 깊은 잠에 빠뜨린다.
잠을 자면 꿈을 꾼다. 독을 마시는 새는 꿈을 꾸며 이상을 추구하는 자들을 상징하며 그 맹목성으로 가장 빨리 난다. 언제나 도달하기 힘든 것을 추구하며 그런 행동은 자기파괴적인 좌절과 굴욕으로 이어 질 수 있다. 독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반면 물은 꿈꾸는 자에게 냉혹한 현실을 일깨우는 소재. 어디든 스며들 수 있다 → 어디에나 있다. 물을 마시는 새는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죽음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가는 보통 사람들을 상징할지도 모른다.

2.3.1. 후속작?


눈물을 마시는 새에 이어 피를 마시는 새가 출간된 후 대부분의 사람들은 '독을 마시는 새'와 '물을 마시는 새'도 언젠가는 나오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를 품고 있지만 이영도는 어느 인터뷰에서 '새 사가나 새 쿼텟을 쓰고자 하는 욕망은 없다'라고 선언했다. 자세한 사정은 이영도 문서 참조.
그러나 피를 마시는 새 중 그을린발 히베리의 대사를 근거로 타자가 세 번째 작품을 내놓을 것을 암시했다는 주장도 있다 -'두 번째는 세 번째를 부른다'-는 말이 등장했기 때문. 즉 두 번째 작품도 등장했으니 언젠가는 세 번째 작품도 등장할 것이란 논리. 그게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3. 독자들의 해석과 추측



아래의 해석들은 독자들의 추측에 불과하므로 어느 하나를 맹신하는 것은 좋지 않다.

3.1. 해석 1


독자들은 저 네마리 새들이 마시는 것들이 네 선민 종족들에게 특별한 액체들이라고 이야기 하기도 한다.[4]
도깨비를 두려워하고, 레콘은 을 두려워하며, 인간을 두려워하고,[5]나가는 극히 희박하게 눈물 은루[6]를 흘린다. 요약하자면 이 액체들은 바로 각각의 선민종족이 두려워하거나 배척하는 액체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도깨비는 함께 눈물을 흘린다는 케이건 드라카의 발언과 티나한의 '피를 흘리느냐, 피를 묻히느냐 중 하나라면 나는 피를 묻히겠다'란 가치관을 더해 해석하면 네 액체가 각 선민 종족을 상징한다고 볼 수도 있다. 도깨비는 눈물을 흘리고, 레콘은 피를 묻히고, 나가는 물[7]을 감지하고, 인간은 독을 만든다는 식으로. 네 선민 종족의 신이 그들에게 준 것이 각각 자신을 죽이는 불(함께 눈물 흘리는 도깨비는 슬픔을 공감함으로 자신을 죽인다).[8], 무기를 만드는 별철, 물을 다루는 신명(여신이 감금되었을 때 한정), 그리고 자신을 따르게 만드는(꿈과 이상, 즉 독의 특징) 나늬라는 점에서[9][10] 더욱 의미심장하다. [11]
그러나 네 형제 새와 네 선민 종족간에는 특별한 관계가 없다는 반박이 있다.첫째로 선민종족은 원래는 다섯이었고, 종족과 액체를 결부시키는 주장은 수탐자들의 접시에서 생겨난 액체에서 연상하는것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은데, 후반에 시우쇠가 말하듯 이는 눈속임에 불가하다, 그리고 특별한 액체라고 말하기엔 도깨비나 레콘이 독을 마시면 안 죽는 것은 아니고, 또 눈물도 다들 흘리니까. 그리고 죽는다는 정확한 묘사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피마새 1권에서 뭄토아실의 독에 취해 뻗었었다.[12] 거기다 피를 마시는 새,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물을 두려워하지 않는 레콘이 다수 나옴으로써 상징적인 의미는 없다고 봐도 좋을듯하다. 즉, 케이건 드라카때문에 천 년 간 고정된 각 종족 이미지가, 세상이 다시 움직이면서 바뀌어 피를 마시는 새의 후속작에서는 변화가 더 많아질 여지가 있다.
사실 깊게 따지고 들어가면 갈수록 상식과 판타지의 이해범위 내에서 상충하는 면들만 부각되므로, 여기서는 작가가 설명하려고 했던 네 종족의 특징과 이야기하고 싶은 면만 받아들이는 것이 올바를 것이다.

3.2. 해석 2


눈물을 마시는 새는 왕(나가)을 뜻하고 피를 마시는 새는 전사(인간)를 뜻하며 물을 마시는 새는 백성(도깨비)을, 독을 마시는 새는 꿈과 이상을 목표로 하는자(레콘)를 뜻한다. 물에 독을 푼다는건 사람들에게 꿈과 이상을 준다는 뜻이고 그만큼 때묻지 않은 물(백성)은 다른 사람의 꿈과 이상에 쉽게 감화된다.
"도깨비란 눈물을 삼키기보단 함께 울어준다"는 점에서 이와 잘 어울리는 걸 알수있고, 도깨비는 누군가를 죽이지 않는다는 점(피와 상극), 그리고 레콘같이 꿈이나 이상(독)을 쫒지 않는다는점에서 물과 가장 닮았다 할 수 있다.
그리고 독이란 꿈과 이상을 평생 쫒아가며 사는 레콘과 가장 가까우며, 가장 대표적으로 티나한의 하늘치 위에 오르려는 꿈을 들 수 있다. 티나한 개인의 이상은 결국 그를 대장으로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의 것이 되었고, 그들 자체가 곧 독에 중독된 물과 같은 존재라는 걸 뜻 한다. 또한 독을 마시는 새가 가장 빠르게 나는 이유도 꿈과 이상은 그것이없던 사람(물)에게 매우 빠르게 전염되기 때문인것이다.
그리고 피란 자기들끼리 계속해서 죽이고, 반목하는 인간과 가장 가깝다. 륜 페이가 인간들은 자기들끼리 전쟁을 한다는 것에 매우 놀랐던 것처럼 같은 종족끼리 서로를 죽이고 전쟁하며 끝없이 반목하는것은 오로지 인간들뿐이다. 또한 전사는 눈물을 마시게 되는 왕을 지키는 가장 가까운 존재라는 점에서 오래 산다는 것도 성립된다. 가장 대표적인 피를 마시는 새도 아라짓 '전사'이며 '인간'인 케이건 드라카였으므로.
그리고 나가가 눈물과 가깝다는것은 마찬가지로 왕이라는 의미에 가장 가까운 존재가 사모 페이였다는 점과, 나가들은 서로 니름이라는 정신적 연결을 통해 눈물이라는 정신적 고통을 누구보다 잘, 혹은 가장 진정으로 받아내줄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굳이 나가만 다른 종족과 다르게 빛나는 눈물, 즉 은루를 흘리고 유난히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것과, 케이건이 말한 "눈물을 마시는 새가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는 말은 대놓고 나가들이 눈물과 가깝다는것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물, 독약, 피, 눈물을 마시는 새에 대한 개념을 잘 생각하면 케이건 드라카의 마지막 말 또한 해석해낼 수 있다.

물이 가장 날카롭지. 이제, 그 물에 독을 풀어 온 세상을 중독시켜야 해.

여기서 물이란 이상이 없는 자들을 뜻하며 독이란 꿈과 이상으로 추측된다. 결국 케이건 드라카는 꿈이 없는 자들에게 꿈과 이상을 중독시킴으로써 꿈을 쫒는자로 가득한 세상(변화가 가득한 세상)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뜻. 이는 곧 케이건이 데오늬 달비 부위와의 만남을 통해 나늬라는 존재를 깨우치고 마침내 나가에 대한 증오를 끝냈다는걸 의미한다. 이제 나머지 3명의 신과 함께 다시 윷놀이에 참여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갈로텍과의 대화에서 물이 필요하다고 한 말은 물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을 재생산, 즉 케이건은 전쟁으로 황폐화 되버린 북부의 원활한 복구를 원한다는 것으로 추측된다. 사실상 케이건의 나가에 대한 증오심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복수를 원하는 갈로텍을 죽이는 가장 큰 이유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눈물을 마시는 새의 가장 마지막에 등장하는 정체불명의 '여행자' 또한 카시다 암각의 미움이라는 단어를 지웠다는 점에서 그 정체가 케이건으로 추측된다. 케이건은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존재보다 누군가를 가장 크게, 가장 오랜시간 증오했던 존재인데 그런 그조차 이제 그 미움을 끝냈으니, 사람의 마음이 미움으로만 가득하다는 글은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간혹 대금을 이유로 여행자가 갈로텍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아라짓 전사인 케이건 드라카는 사모페이가 죽기전엔 결코 죽을 수 없다. 또한 갈로텍은 평범한 나가이므로 케이건이 만든 대선풍을 넘을 수 없고, 발자국 없는 여신이 그리미가 성년이 된 후에는 카린돌이 돌아올 수 있다고 말한 것에서 갈로텍의 군령들을 케이건이 쫒아낸 것이 아니라 흡수한 것이고, 그런 이유로 카린돌과 함께 주퀘도의 영까지 케이건에게 들어와 있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때문에 케이건이 대금을 부는 것이며 카린돌이 돌아올 수도 있는 것이다. 또 여행자의 행동이 대부분 '순식간에' 이루어졌다는 표현과 누군가가 사모페이를 수호했다는 점 또한 이 여행자가 케이건이라는것을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셈이다.

3.3. 해석 3


네 마리 새 이야기에 대한 해석은 은유적으로 시행될 필요가 있다.
네마리의 새는 각각 눈물, 피, 물, 독약을 마신다. 이것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작중 설명에서 눈물은 사람이 흘린 슬픔. 피는 사람의 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배경을 볼 때 물과 독약 역시도 사람(정확히는 4종류의 선민종족)과 관련이 되어 있을 거라고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물과 독약은 피와 눈물과는 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피와 눈물은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물과 독약은 사람이 마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물과 독약은 사람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여기서 잠시 피와 눈물의 예시를 생각해보도록 하자. 피와 눈물은 각각 상징하는 것이 있다. 피는 사람 몸에서 나오는 소중한 것. 눈물은 몸에서 나오는 가장 해로운 것이다. 이런 형식에 맞춰서, 물이나 독약을 '사람이 마시는 어떠한 것' 이라고 생각해보자.
사람이 물을 마시면 어떻게 될까? 갈증이 해소되면서 생기가 돌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독을 마시면 어떻게 될까? 아프거나 죽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독을 먹은 결과 사람이 나을 수도 있다. 독은 다른 식으로 보면 약이고, 세상 모든 약은 과용하면 독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독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물은 사람에 맞춰 변화하는 것이라는 해석 역시 가능하다.[13] 물은 아무리 마셔도 사람에 맞게 스스로 바뀌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은유적인 해석으로 돌아가보자. 물은 '사람이 마시면 어떠한 것' 이다. 이 '어떠한 것'에 무엇을 채워넣을 수 있을까? 물이 사람에게 들어가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것을 볼 때, 물은 '사람이 마셨을 때 사람에 맞춰 변화하는 것' 이다. 그에 대응하는 독은 '사람이 마시면 자신에 맞춰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 일 것이다.
그렇다면 물을 마시는 새는 어떻게 될까? 물이 마시는 대상에 따라서 변화하는 것이라고 할 때, 물을 마시는 새는 아무런 변화도 가지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오롯이 자기 자신의 존재를 유지할 것이다. 반대로 독을 마시는 새는 끊임없이 변화할 것이다. 독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맞춰 물을 마시는 새가 가장 느리게 날며, 독을 마시는 새가 가장 빠르게 난다는 말에 대한 해석도 가능하다. 물을 마시는 새는 변화하지 않으며 따라서 성장도 가장 느릴 것이다. 하지만 독을 마시는 새는 계속해서 변화하며 따라서 성장도 가장 빠를 것이다. 작중 후반부에 케이건이 한 말 역시 해석이 가능하다. 케이건은 물에 독을 풀어 세상에 퍼트린다고 했다. 물(변화하지 않는 사람)에 독(변화)를 넣어 뿌리는 것으로 멈춰있던 세상이 다시금 변화하도록 만든다는 의미인 것이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은 한가지 우려를 표할지도 모른다. 물과 독의 또다른 특성들, 즉 물은 잠든 사람을 깨울 정도로 날카롭고, 독은 사람을 깊이 잠재울 정도로 부드럽다는 서술에 대한 해석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한 우려 말이다. 이에 대해서 해석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잠을 꼭 죽음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잠을 잘때 꿈을 꾼다. 꿈 속에서 우리는 어떤 것이든지 될 수 있다. 즉 독은 사람을 잠으로 초대하고, 잠은 꿈(무수한 변화)를 부른다. 그러나 물을 끼얽으면 우리는 꿈 속의 무수히 변했던 자신에서 변하지 않는 현실속의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물이 날카롭다고 해서 그게 변화를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변하지 않는 현실이 때론 더 날카로우니까. 반대로 자신이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은 누군가에게는 부드럽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어쨋든 사람의 꿈은 지금 현재에서 더 변화하는 것이다.
또한 물을 마시는 새와 독을 마시는 새를 인간에게 비유하면 물을 마시는 새는 고집이 센 사람이고 독약을 마시는 새는 유연성이 있는 사람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따르면 눈물을 마시는 새는 남의 슬픔을 치유해주는 사람이고, 피를 마시는 새는 남의 소중한 것을 빼앗는 사람이다. 즉 해석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것이다. '''네마리 형재 세 이야기는 종족을 상징하는 것이 아닌 그저 사람의 성질, 즉 착함과 유연함을 이용해서 사람을 구별해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작중에는 이러한 사람들은 종족에 관계 없이 등장한다. 남의 슬픔을 치유하는 사람(눈물을 마시는 새)으로서 사모 페이가 등장하고, 남의 소중한 것을 빼앗아 연명하는 사람(피를 마시는 새)으로 케이건 드라카와 비아스 마케로우가 등장한다. 나가 수호자들 또한 전쟁을 통해 지배욕을 충족시키려는 모습에서 피를 마시는 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을 마시는 새는 바뀌는 세상에 뒤쳐지는 사람들, 혹은 수백년간 변하지 않은 네 종족 전부를 말할 수 있을 것이며, 독약을 마시는 새는 그런 세상에서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의미할 것이다. 전쟁을 일으킨 나가 수호자들은 피를 마시는 새임에도 불구하고 독약을 마시는 새로도 해석할 수 있으며, 물로 비형을 씻어낸 티나한 역시 물 대신 독약을 선택한 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눈물을 마시는 새가 피를 마시는 새보다 더 좋은 것이 아니며, 독을 마시는 새가 물을 마시는 새보다 더 좋은 새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눈물을 마시는 새는 가장 빨리 죽지만 가장 아름답게 운다. 하지만 케이건 드라카가 말했듯, 눈물을 마시는 새가 눈물을 다 마셔버리면 사람은 비정해져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게 된다. 눈물을 마시는 새의 부작용이다. 피를 마시는 새는 누구보다 오래 살지만 피비린내가 난다. 피비린내가 난다고 해서 단순하게 나쁘다고 해석해선 안된다. 삶에 있어서 폭력과 피는 드문일이 아니다[14]. 자신을 죽이는 신의 화신인 시우쇠는 자기들이 사람을 만들 때 다른 사람을 죽여야 살 수 있는 생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확대 해석한다면 피를 마시는 새는 세상 모든 사람을 의미할 것이다. 물론 이는 확대해석이지만, 그렇다고 살기 위해 남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을 무작정 나쁜 일로 모는 것 역시 지양해야할 태도일 것이다.
물을 마시는 새와 독을 마시는 새 역시 그렇다. 해석자는 먼저 해석자가 쓴 것처럼 물을 마시는 것이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며, 독을 마시는 것이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라는 본인의 주장을 전제하겠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변화는 무조건 옳은 일인가?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 세상은 천년간 변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신들이 나서야 할 정도였다. 이때 변화는 분명 필요한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후의 이야기인 피를 마시는 새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아실은 분리주의를 주장하며 레콘은 레콘다워야 한다고 말한다. 지키멜 퍼스는 왕국으로의 회귀를 주장한다. 이들의 행동은 분명히 변화를 부정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을 무조건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렇게 말하기에는 이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너무 강하다.[15] 변화는 파괴를 전제로 한다. 새로운 체제의 긍정에는 이전 체제에 대한 부정이 선행된다. 그러나 세상에는 파괴되어서는 안될 것들도 존재한다. 오래된 것이 무조건 나쁘다는 발상으로 일어난 사태를 잘 알 것이다. 변하지 않아야 할 것들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물을 마셔야 할 필요성이 있다.

3.4. 해석 4


우리는 너희를 '''먹는 존재로 만들었지.'''

- 시우쇠

작중에서 '먹는다'는 것은 '자신을 유지하기 위한 파괴'이며 그렇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은 잘못이 아니라고 언급된다. 오히려 죄는 삶의 증거다.
이렇게 보았을 때, 시리즈로 자세히 묘사된 눈물과 피는 각자 '''만민을 위한 자기희생'''과 '''자신을 위한 타인의 희생'''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눈물의 경우 작중에서는 '증오'로 표현되는데, 증오를 '나의 분노를 풀기 위해 상대가 '''희생'''되기를 바란다'고 해석한다면 이 역시 타인에게 자기희생을 바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시우쇠는 '먹으면 안되는 것, 먹기 싫은 것은 다른 사람에게 먹이는 법도 있다'고 하였는데, 눈물을 마시는 새는 바로 '''몸 안에 두고 싶지 않은 해로운 것을 마시는 새'''다. 이 문답을 주고받은 륜 페이가 최후에 모든 자들의 눈물을 마시고 나무가 되었다는 것을 보면 의미심장한 배치.
피를 마시는 새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자신의 피를 마시는 것이 아닌 이상, 피를 마시는 새는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이 상처를 입어야만 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고 희생시키는 것은 악이고 죄인데, 죄=삶인 새 시리즈의 명제를 대입해보면 삶에 집착하기 때문에 오래 사는 것이 피를 마시는 새인 것. [16]
그러나 이 해석은 작품의 전개를 통해 유추한 것으로, 나머지 두 새에도 '희생'이라는 키워드가 적용되는지는 알 수 없다.

3.5. 해석 5


갈로텍은 재빨리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려 했다. 그리고 곧 그것이 불가능함을 깨달았다. 그의 내부에는 그 자신뿐이었다. 갈로텍은 더 이상 군령자가 아니었다. 갈로텍은 마음 속으로 주퀘도의 이름을 불렀다. 대답이 없었다. 갈로텍은 그라쉐를, 노기를, 그리고 화리트를 불렀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갈로텍은 케이건을 다시 바라보았다.

"어떻게?"

"'''왜'''라고 질문해봐."

"'''왜'''?"

"내겐 '''물'''이 필요하거든."

"'''물'''이라니?"

"'''물'''이 가장 날카롭지. 이제, 그 '''물'''에 '''독'''을 풀어 온 세상을 '''중독'''시켜야 해."

'''I. 서론'''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 케이건 드라카의 마지막 말을 복잡한 해석보다는 오히려 단순한 상징으로 받아들이는 방법도 있다. 피를 마시는 새에 따르면 케이건 드라카 혹은 어디에도 없는 신은 다른 세 신의 제안을 받아들여 윷놀이에 다시 참여하였다. 이 말은 이후 신들의 윷놀이로 인해 변화하게 될 세상의 모습, 즉 피를 마시는 새의 내용을 암시하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II. 물이 가장 날카롭지.'''
다수설에 따라 '물'을 '레콘'으로, '독'을 '인간'으로 ('눈물'을 '나가'로, '피'를 '도깨비'로) 본다면, 케이건 드라카의 "내겐 물이 필요하거든."이라는 말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데 레콘들이 큰 영향을 줄 것이므로, 내겐 레콘이 필요하다.''로 해석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물이 가장 날카롭기' 때문, 즉 네 종족 중 레콘들이 가장 압도적으로 강하고 파괴적인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III. 이제, 그 물에 독을 풀어,'''
실제로 피를 마시는 새에서 일인일인이 강대한 힘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사회와 타인에 대한 무관심으로 인해 역사에 영향을 주지 않던 레콘들이 변화하여 역사에 개입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락토 빌파는 이들을 군대로 조직한다는 끔찍한 발상을 했고 사라티본 부대를 실제로 조직했다.
아실분리주의를 주장하며 이렇게 변화한 레콘들을 '가짜 레콘'이라고 폄하했으나, 정작 자기 자신도 타이모를 분리주의의 사도로 둔갑시켰으며 지멘을 변화시켰다. 피를 마시는 새의 시대에 이르러 레콘들은 변화하기 시작했으며, 그것은 거의 모두 인간과의 접촉을 통해 영향을 받은 것이다. 최후의 대장간은 인간들로 인해 대형 철물점이 되어버렸으며, 작품에 등장하는 레콘 대부분이 제국군 소속이거나 제국군 출신이다. 즉 이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미 인간으로 인해 변화한 레콘이다. 사라티본 부대 자체는 작중에서 맥없이 해체되었지만, 이미 인간화된 레콘들이 세계 각지에서 폭발적인 변화를 일으킬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IV. 온 세상을 중독시켜야 해.'''

"이제, 그 물에 독을 풀어 온 세상을 중독시켜야 해."

이를 염두에 두고 케이건 드라카의 마지막 말을 다시 해석할 수 있다. "''이제, 레콘들을 인간화시켜서 온 세상에 인간이 영향을 미치도록 만들어야 해.''"
작중에서 여러 차례, 세습되는 왕(혹은 황제)의 지배구조는 인간에게 어울린다는 서술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 인간들만 걸린다는 '제왕병' 환자들을 등장시켜 이를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제이어 솔한에 의하면 제 2대 영웅왕이 등장한다. 그는 레콘이면서도 왕이 된, 즉 인간의 것인 정치제도의 정점에 군림한 사람이다.
이 지점에서 드래곤 라자 세계관과의 유사성을 읽을 수 있다. 해당 작품의 말미에서 인간은 끝끝내 드래곤마저 인간화시켰으며, 엘프, 드워프, 하플링, 페어리와 같은 다른 모든 종족들 역시 인간화되거나 숨어지내는 것을 택해, 그림자 자국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세계 그 자체가 인간화된다. 오직 '덜 인간화된' 드래곤인 아무르타트와 살아있지 않은 뱀파이어 시오네만이 인간에 대한 감시자로 남는다.
피를 마시는 새에서는 그 역할을 하늘치와 그 자신 역시 드래곤인 이라세오날이 맡는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후치 네드발이 다른 종족들마저 인간화시키는 인간의 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았다면, 피를 마시는 새의 네 신은 이를 니체적인 차원에서 긍정한다. 드래곤 라자 세계관에서는 여섯 별이 파괴되면서 여섯 종족은 절대로 완전성에 도달할 수 없게 되었으나, 네 마리 형제새 세계관에서 인간이 다른 사람 - 도깨비, 나가, 레콘 - 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단지 그들 인간 종족이 '어디에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인간의 역할인 것이다. 인간에 의한 다른 종족의 변화는 단지 세계를 바꾸는 '최초의 물방울'이며, 네 종족은 결국 서로와 함께 완전성에 이르러, 신을 초월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바꿔 말하면, 너희 사람들은 600조의 개체가 죽을 때까지도 존재할 수 있다."

"그것이 사람의 힘이다. 너희들은 결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멸망을, 후손에게 저지르는 죄를, 갈피를 잡을 수 없어 낭비하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마라. 무엇이 그리 급하고, 무엇이 그리 두렵고, 무엇이 그리 슬픈가? 너희들은 강하다. 600조의 개체가 죽을 수 있다는 것은 찬사로 받아들여야한다. 너희들의 힘에 바치는."

'''V. 결론'''
이와 같이 해석한다면 눈물을 마시는 새 말미의 케이건 드라카의 대사는 이후 차기작인 피를 마시는 새 그 자체를 암시한 것이며, 주제의식의 측면에서 피를 마시는 새로서 '새' 세계관은 종결되었다 볼 수 있다. 그림자 자국이 그랬듯 팬들을 위한 선물로서가 아닌 세계관 자체를 더 탐구하는 새 시리즈의 본편으로서의 신작은 창작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겠다. 결국 1만 6천년에서 30만년 사이의 어떤 시기에 네 종족은 함께 완전성에 이를 것이다. 영원히 그러지 못할 가능성도 있지만, 최악은 최선과 마찬가지로 확률이 아주 낮다. 드래곤 라자 세계관과는 달리 '''닫힌 세계관'''인 것이다.
'''VI. 보설 - 군령자에 대해'''
해당 장면에서 케이건 드라카는 갈로텍 내부의 군령들을 휩쓸어 없애버린 바 있다. (이후 갈로텍에게 전령하여 여행자가 되었다는 것도 인기 있는 해석이다.) "이제, 레콘들을 인간화시켜서 온 세상에 인간이 영향을 미치도록 만들어야 해." 라는 위의 해석에 따를 때, 갈로텍과 케이건의 마지막 대화를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갈로텍은 재빨리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려 했다. 그리고 곧 그것이 불가능함을 깨달았다. 그의 내부에는 그 자신뿐이었다. 갈로텍은 더 이상 군령자가 아니었다. 갈로텍은 마음 속으로 주퀘도의 이름을 불렀다. 대답이 없었다. 갈로텍은 그라쉐를, 노기를, 그리고 화리트를 불렀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갈로텍은 케이건을 다시 바라보았다.

"어떻게?"

"왜라고 질문해봐."

"왜 ''내게서 군령들을 지웠지''?"

"내겐 ''레콘''이 필요하거든."

"''레콘''이라니?"

"''레콘''이 가장 날카롭지. 이제, ''레콘''들을 ''인간화시켜서'' 온 세상에 ''인간이 영향을 미치도록'' 만들어야 해."

즉 '''레콘을 인간화시키기 위해 군령자'''가 필요하다는 해석이다. 피를 마시는 새에는 '레콘의 인간화' 그 자체를 상징하는 사라티본 부대가 등장한다. 락토 빌파의 부대이며, 그의 가신인 팔리탐 지소어가 참모를 맡았다. 팔리탐 지소어는 '스카리 요새군' 시절부터 해당 부대를 관리해 왔고, 정치를 이해하고 권력욕을 가진 레콘인 힌치오를 키워냈다. '''또한 군령자였고''' 제국의 태위 레이헬 라보의 영을 가지고 사실상 황제의 명령을 받고 있었다.
이것을 신들의 안배라 생각한다면, 어디에도 없는 신 아닌 케이건 드라카의 영은, 자신의 몸에 전령한 팡탄스카리 빌파를 죽이려는 것을 막기 위해 팔리탐 지소어가 자살했을 때 비로소 죽음을 맞았다고 볼 수 있다.
[1] 딱히 증오뿐만이라고 딱 잘라 단정할 수는 없지만.[2] 적들이 왕을 증오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왕의 통치가 불만족스럽다면 당연히 왕의 백성들도 왕을 증오한다. 더불어 왕은 하위자까지 모두 책임을 지는만큼 중간관리직의 허물도 왕의 책임이 되기에 결국 모든 증오를 받게 되는 것.[3] 눈마새에서도 자신을 죽이는 신은 자신을 유지하기 위한 파괴는 '먹는 행위'이며, 신들은 사람을 먹는 존재로 만들었다고 한다.[4] 물론 첫 번째 종족과 두억시니는 네 선민종족에 포함되지 않는다. [5] 심장이 없는 나가에게는 독이 통하지 않고, 레콘 또한 어지간한 독에는 죽지 않는데다 레콘은 물과 엮이지 않으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도깨비는 독이 통하지만 육신이 죽어도 영혼이 사회적으로 한 번 더 살기 때문에 피가 엮이지 않는 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인간만이 독을 두려워 하는 것.[6] 다른 종족에게도 눈물은 당연히 있겠지만, 작중 나가라는 종족은 이성적인 종족이라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흘리더라도 다른 종족의 눈물과는 다른지 빛나는 눈물을 흘린다고 묘사 된다.[7] 정확히는 열.[8] 비형이 두억시니의 슬픔을 느꼈다고 말했을 때의 케이건의 대답.[9] 제신들이 준 선물은 각 종족에게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모든 종족에게 영향을 미치는 나늬는 어디에도 없는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아니, "어디에도 없는" 신이 준 선물이니 "어디에나 영향을 주는" 게 어울린다.[10] 각 종족에게 있을 뿐이지 영향은 다른 종족에게 모두 끼치는게 맞다. 각 종족에게만 영향을 끼친다면 도깨비의 불은 다른 종족을 태울 수 없고 별철 무기는 다른 종족을 해할 수 없어야 한다[11] 취소선을 쳐 놓기는 했지만 은근히 그럴듯하다. 도깨비의 어르신은 계명성을 무서워하고, 나가 잡는 것은 도깨비라는 말도 있으니……[12] 하지만 죽는다는 언급이 없는 이상, 상식적인 상황(물도 비상식적으로 많이 마시면 중독된다)내에선 타 종족들은 치명적인 상황에 이르지 않게 된다고 가정할수도 있다. 도깨비는 몸이 죽어도 사회적으로는 한 번 더 살며, 나가는 심장이 적출되면 매우 죽기 어렵다. 레콘은 물과 엮이지만 않으면 죽음을 두려워하는 종족이 아니며, 신체능력 때문에 웬만한 독에는 안 죽는다.[13] 실제로 유료도로당의 보좌관 케이는 이렇게 말했다. "어디든 스며드는 물은 무엇으로든 변하지요. 피가 섞이면 핏물이 되고, 독이 섞이면 독물로 변합니다."[14] 도깨비들은 폭력과 피를 두려워한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피를 마시는 새에서 정우가 말한 바와 같이 세상에서 가장 큰 폭력(페시론 섬의 재앙)을 행한 선민종족은 인간도 레콘도 나가도 아닌 도깨비이다. 도깨비 역시 폭력을 사용할 줄 안다. 다만 사용하기를 극도로 꺼릴 뿐.[15] 그렇다고 올바르다는 말도 아니다. 세상에 완벽한 논리는 없다.[16] 특히 치천제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죄를 거두며 모든 죄와 증오를 자신의 것으로 하려 했는데, 이는 '''사람 아닌 용이 유일하게 죄를 지고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그 정체에 걸맞는 모순을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