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 반 엑셀
1. 개요
미국의 전직 농구선수이자 현재 멤피스 그리즐리스 어시스턴트 코치. 이례적인 플레이로 디펜스를 농락시키고 폭발적인 퍼스트 스텝과 골 밑 돌파로 두둑한 배짱을 지녔지만 코칭스태프와 여러 차례 마찰을 일으킨 악동 중의 악동이자 반항아였다. 또한 빠르고 과감한 스타일로 퍼스트 스텝과 클러치 상황에서 흔들림 없는 3점슛을 트레이드 마크로 삼으며 올스타급 활약을 펼쳤던 가드였다.
2. 대학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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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성적이 낮다는 이유로 트리니티 밸리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신시내티 대학교로 편입되며 그의 활약이 빛나기 시작했다. 3학년 때 NCAA 남자농구대회 토너먼트에서 크리스 웨버, 주완 하워드, 제일런 로즈가 이끈 미시간 대학교와 4강전에서 패했지만 역대 3점슛 성공률 35.8% 등을 기록하면서 올 아메리칸 서드 팀에 이름을 올렸다. 그의 기량과 인지도 덕분에 드래프트에서 상위권 지명을 얻었을 정도로 굉장한 평가를 받았지만 컨디션 난조를 이유로 워크 아웃 캠프 때부터 나온 불성실한 태도와 인터뷰 때도 다혈질 같은 성격으로 거만하게 일관하며 나쁜 인상만 심어주었고 결국 로터리 픽 배제로 인해 2라운드 37순위로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에 입단했다.
3. 선수 시절
3.1.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1년차인 1993-94 시즌에는 주전으로 81경기를 출전해 80경기를 모두 선발로 나서며 13.6득점, 2.9리바운드, 5.8어시스트, 1.0스틸을 기록하며 올 루키 세컨드 팀에 이름을 올리며 각광받았다. 또한 구단 역사상 1000점 이상을 넣은 선수는 5번째[1] 였으며 3점슛 123개를 넣은 레이커스 신인 선수의 3점 기록을 모조리 갈아치웠다.
1994-95 시즌에는 드래프트에서 10순위로 지명된 에디 존스의 합류와 피닉스 선즈에서 세드릭 세발로스가 들어왔고, 델 해리스 감독의 지도 아래 런앤건 공격을 주도하면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지 1년만에 다시 진출시키는데 성공했다. 특히 가장 기억에 남은 하이라이트는 라이벌이기도 한 보스턴 셀틱스와의 정규 리그 원정 경기가 진행된 보스턴 가든에서 극적인 3점 버저비터를 넣으며 승리로 장식할 수 있었다. 또한 이 시즌 80경기를 모두 선발로 출전하면서 16.9득점 8.3어시스트를 기록하였다.
하지만 1995-96시즌에는 데뷔 후 처음으로 위기를 맞이하게 된 것은 1991년 HIV에 감염되어 파이널 무대를 끝으로 1번 은퇴했다가 시즌 중반 현역에 복귀한 매직 존슨과 포지션 중복으로 확고한 탓에 흡족하지 못하면서 둘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다.[2] 여기에 4월 11일에 개최된 덴버 너기츠와의 원정 경기에서 경기 종료 3분 23초를 남기고 경기 내내 심판 판정에 불만을 느낀 반 엑셀은 론 게럿슨 심판을 밀어트리는 사고를 일으키며 곧바로 퇴장당했고, 7경기 출전 정지와 동시에 19만 달러의 벌금 징계를 받았다.[3][4][5][6] 그러다가 플레이오프 1라운드 휴스턴 로키츠와의 원정 경기에 복귀했지만 징계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플레이오프 평균은 고작 11.8득점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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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97 시즌에는 드래프트에서 샬럿 호네츠에 지명된 고졸 출신 코비 브라이언트를 블라디 디박과 맞트레이드 시켰고 FA에서 공룡 센터 샤킬 오닐을 영입하면서 엄청난 변화를 일으켰다. 그러나 공격적인 행보 변화보다 새로운 선수들을 향해 바라본 반 엑셀의 시선은 레이커스 팬들로부터 그다지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지만 무리 없이 좋은 활약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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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처음으로 올스타에 선발되기도 했던 1997-98 시즌에는 샤크와 코비 등에게 밀렸고 득점보다 패스와 경기조율을 원한 델 해리스 감독과의 불화로 갈등이 이어지자 다음 시즌 토니 베티와 드래프트에 지명된 타이론 루에 대한 권리를 양도함에 따라 덴버 너기츠로 트레이드 되었다.
3.2. 레이커스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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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너기츠는 최약체 팀이었던지라 플레이오프 진출과는 거리가 멀었고, 결국 2001-02 시즌 중반에 팀 메이트였던 에이버리 존슨#s-2, 라예프 라프렌츠, 타릭 압둘-워하드와 함께 주완 하워드, 도넬 하비, 팀 하더웨이, 2002 NBA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과 맞교환으로 댈러스 매버릭스로 트레이드[7] 되어 LA 레이커스 시절 은사였던 델 해리스 어시스턴트 코치와 재회하였고, 주전인 스티브 내시와 함께 백코트라인을 구축하며 3점 슛 등의 득점원으로 활약했다. 2002-03 시즌에 기록한 성적은 평균 12.5득점, 4.3어시스트, 3점슛 성공률 37.8%였다.
2003-04 시즌에는 5:4 트레이드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로 옮겼으나 부상이 겹쳐져 39경기를 뛰는데 그쳤고, 이후 데일 데이비스, 댄 디카우와 트레이드로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로 이적하였지만 불과 53경기를 출전해 11득점으로 그쳤다. 방출 뒤 마지막으로 계약한 샌안토니오 스퍼스에서 비록 벤치 멤버였어도 주전급 못지 않게 15분을 소화해 5.5득점을 기록하였지만 플레이오프에서 댈러스에게 패한 것을 끝으로 쓸쓸히 선수 생활을 은퇴했다.
4. 여담
- 어린 시절, 교통사고를 당해 오른쪽 눈썹에 상처가 있다.
- 그에게도 사건이 있었는데 유타 재즈와의 서부 컨퍼런스 준결승 4차전 경기 때 벤치에서 관객들이 외친 디펜스에 맞춰 상당히 못된 장난으로 당시 비시즌 때 레이커스 선수들과 관계자가 바캉스로 갔던 칸쿤[8] 이라고 외치며 논란이 커지자, 이에 대해 LA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는 “나와 라커룸에 있던 모든 선수들은 이 팀에서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을 알았지만 결코 부당하게 잘못된 뜻으로 하지 않았다.”(Everyone who was in that locker room with me knows I’d never give up on the team. But finger-pointing happens. I never meant anything wrong.)고 말했다.[9] 이로 인해 1-2-3 칸쿤[10] 은 NBA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우스개소리로 남게 되었으며, 레이커스 구단은 반 엑셀을 덴버로 트레이드 시켰다.
- 2013년 1월 31일, 자신의 아들인 니키 반 엑셀이 친구를 총으로 쏴 죽이고 차에 실은 시체를 레이 허버드 호에다 버린 혐의로 징역 60년을 선고받았다. 경찰에 의하면 시체를 발견했을 때 피살당한 친구의 상체에서 총상이 발견되었다고 했다.
[1] 첫번째는 제리 웨스트, 두번째는 놈 닉슨, 세번째는 제임스 워디, 네번째는 매직 존슨[2] 심지어 매직이 합류한 시점에서 팀이 우승까지 가능하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3] 이는 레이커스 구단 역사상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수치였고, 그로 인해 선수 이미지가 크게 무너져 버렸다.[4] 경기가 끝나고 퇴장당한 반 엑셀은 인터뷰에서 "굿 콜(Good Call)이라고만 말했을 뿐인데 테크니컬 파울을 주었다며 게럿슨 심판에게 사과할 마음은 전혀 없다"고 분노했다.[5] 비슷한 사건은 1996년 3월 16일 시카고 불스의 데니스 로드맨이 뉴저니 네츠전에서 퇴장 명령을 받은 직후 테드 버하트 심판을 머리로 받으며 6경기 출전 정지와 2만 달러 벌금을 부과받았다.[6] 사건 발생 뒤, 당시 레이커스 사장이었던 제리 웨스트는 어리석었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며 비판했다.[7] 당시 도움을 주었던 인물은 구단주 마크 큐반이었다.[8] 멕시코 남동부 킨타나로오 주의 북동부에 위치한 휴양도시로 알려져 있으며 WTO의 농업개방 협상 반대시위를 벌인 이경해가 할복 자살한 곳이기도 하다.[9] 샤킬 오닐은 반 엑셀의 경솔함이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았다며 방출시키라고 프런트에게 거칠게 요구한 것이 트레이드로 이어졌다는 것이었다.[10] 참고로 뉴올리언스 펠리컨스 감독이었던 앨빈 젠트리는 2018 NBA 플레이오프 회견장을 떠나기 전 “1-2-3 칸쿤이 뭔가요?”(What is it? 1, 2, 3 Cancun.)라고 기자들에게 발언하며 웃음바다로 만들어내기까지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