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완 하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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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간 울버린스 감독 '''
'''주완 안토니오 하워드 (Juwan Antonio Howard) '''
'''생년월일'''
1973년 2월 7일 (51세)
'''출신학교'''
미시간 대학교
'''신장'''
208cm (6' 10")
'''체중'''
113kg (250 Ibs)
'''포지션'''
파워 포워드
'''드래프트'''
1994년 1라운드 5순위
워싱턴 불리츠 지명
'''역대 소속팀'''
워싱턴 불리츠/위저즈 (1994~2001)
댈러스 매버릭스 (2001~2002)
덴버 너기츠 (2002~2003)
올랜도 매직 (2003~2004)
휴스턴 로키츠 (2004~2007)
댈러스 매버릭스 (2007~2008)
덴버 너기츠 (2008)
샬럿 밥캐츠 (2008~2009)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2009~2010)
마이애미 히트 (2010~2013)
'''지도자'''
마이애미 히트 어시스턴트 코치 (2013~2019)
미시간 대학교 감독 (2019~)
'''역대 등번호'''
5번, 7번, 55번, 6번
'''수상내역'''
NBA 챔피언 2회 (2012, 2013)
NBA All-Star (1996)
All-NBA Third Team (1996)
NBA All-Rookie Second Team (1995)
Second-team All-American – NABC (1994)
Third-team All-American – AP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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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2013'''
1. 소개
2. NBA 입성전
2.1. 고등학교 시절
2.2. 대학교 시절
3. NBA 입성후
3.1. 워싱턴 불리츠/위저즈 시절
3.2. 댈러스 매버릭스 시절
3.3. 덴버 너기츠 시절
3.4. 올랜도 매직 시절
3.5. 휴스턴 로키츠 시절
3.6. 댈러스 매버릭스로 복귀
3.7. 덴버 너기츠로 복귀
3.8. 샬럿 밥캐츠 시절
3.9.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시절
3.10. 마이애미 히트 시절
4. 지도자
5. 말말말
6. 기타


1. 소개


前 NBA 농구선수로 현재 마이애미 히트의 어시스턴트 코치. 코나미에서 출시된 NBA Give'n Go에 등록된 마지막 현역선수이기도 하다.
현역 시절 괜찮은 득점력과 나쁘지 않은 보드 장악력, 평범한 수비력을 지닌 준수한 롤 플레이어였으나, 거액 장기계약을 맺은 이후 거짓말처럼 성장세가 멎어 건강히 꾸준하게 뛰어줬음에도 먹튀라고 팬들에 의해 온갖 욕은 다 들어먹은 선수이다.

2. NBA 입성전



2.1. 고등학교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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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완 하워드는 시카고 보캐셔널 캐리어 아카데미 고등학교로 진학해 졸업할 때까지 이곳에서 보냈다. 당시 그가 다니던 고등학교에는 체육관에 난방도 안되고 락커룸도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역사 수업을 받는 교실에서 할 수밖에 없었다. 또 1991년 맥도날드 올 아메리칸 선수에도 선출되어 같은 리그의 우등상을 받았다. 이후 일리노이 대학교, 데폴 대학교, 미시간 대학교로부터 제의가 있었는데 고민 끝에 미시간 대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다.

2.2. 대학교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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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미시간 대학교에 입학하여 제일런 로즈, 크리스 웨버, 지미 킹, 레이 잭슨등과 함께 1학년으로 구성된 Fab Five를 결성하였다. 또 미래의 NBA 선수를 꿈꾸는 에릭 라일리와 롭 펠린카도 합류하여, 같은 해 10월 15일에 열린 같은 대학교 체육관에서 한밤의 광란을 즐겼다. 그러나 신입생 5명 가운데 적어도 4명이 올 아메리칸 출신이라서 그런지 이미 시즌이 끝나기 전에 시작했다고 한다. 신입생 시절에는 주완 하워드는 몇몇 경기를 교체 선수로 나가 팀의 높은 비율을 가진 선수로 활약했다. 특히 일리노이 대학교와의 첫 경기 연장전에서 13득점을 넣어 2년차 선배인 에릭 라일리로부터의 역할 덕분에 승리하였다. 1992년 NCAA 남자 농구 토너먼트 4라운드에서는 지미 잭슨이 뛰고 있는 오하이오 주립대학교를 상대로 두 자릿수 차이로 누르고 재경기에서 승리하였다. 미시간 대학교가 24-8패로 준결승 라운드의 정박지로 가게 되자, 밥 휴긴스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는 신시내티 대학교와의 경기에서 평균 83.6득점을 기록하였지만, 3차전 끝에 패배하였다. 그리고 12월에 열린 초기 대회에서 농구의 명문 듀크 대학교와의 재경기에서 연장전 끝에 3점슛을 넣어 이겼을 뿐, 주완 하워드는 최소 득점인 4점만 넣었다. 신입생으로써의 마지막 게임에서는 평균 11.2득점과 6.3개의 리바운드를 기록하였으나, 경기 당일전에 위경련과 열로 인한 탈수 현상으로 인해 병원으로 이송되어 검사한 결과, 법에 정해진 매체 회의에서 면제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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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을 맞이한 주완은 1993년 NCAA 남자 농구 토너먼트 준결승전에서 켄터키 대학교와 맞붙게 되어 공격진에 이바지하여 자말 매쉬번이 붙잡은 수비를 억제하였다. 2학년 시절에는 평균 14.6득점과 7.4개의 리바운드를 기록하였다. 시즌이 끝난 뒤에는 웨버와 함께 22세 이하 미국 대학 농구 대표팀에 발탁되어 금메달을 목에 걸었으나, 좀처럼 선보이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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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크리스 웨버가 2학년을 마치고 NBA에 입성하게 되자, 주완은 3학년이 되어서도 플레이하게 되었다. 미시간 대학교는 21승 6패를 기록하여 1경기를 남기고 퍼듀 대학교와 컨퍼런스에서 공동 순위가 되었다. 그러나 미시간 대학교는 힘든 시기 속에서도 노스웨스턴 대학교에 패하여 Big Ten에서 2위에 머무르게 되었고, 같은 시즌이 끝난 뒤에는 팀 메이트인 제일런 로즈와 함께 팀의 첫 All-Big-Ten에 선출되었다. 1994년 NCAA 남자 농구 토너먼트에서는 페퍼다인 대학교를 상대로 28득점을 넣어 9개의 리바운드를 기록하여 연장전 접전 끝에 4점차인 78 대 74로 승리하였고, 텍사스 대학교를 상대로 34득점과 18개의 리바운드를 기록하여 84 대 79로 승리를 가졌다. 또 메릴랜드 대학교와의 경기에서는 6반칙으로 퇴장을 당할때까지 24득점과 11개의 리바운드를 기록하여 78 대 71로 승리하였고,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응원하고 있는 아칸소아 대학교와의 4라운드에서 패하였지만, 경기 최고 기록인 30득점과 리바운드 13개를 기록하여 지역 MVP를 수상하였다. 주완 하워드는 AP통신이 선정한 올 아메리칸에 선출되었으나, 3학년을 끝으로 미시간 대학교를 중퇴한 뒤에는 1994년 NBA 드래프트에서 전체 5순위로 워싱턴 불리츠에 지명된 뒤에 정식으로 NBA선수가 되었다.

3. NBA 입성후



3.1. 워싱턴 불리츠/위저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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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완 하워드는 1994년 드래프트 전체 5순위로 워싱턴 불리츠에 입단하여 NBA 선수로써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러나 입성한지 얼마 안 되어서 새로운 단체 협상에 합의하지 못했고, 트레이닝 캠프가 시작되기 2주전에도 서명하지 못하였다. 같은 해에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서 전직 Fab Five의 멤버였던 크리스 웨버가 입단하게 되었고 게오르그 뮤레산, 칼버트 체이니와 함께 라인업을 만들었으나 21승 61패로 동부 컨퍼런스 최하위를 기록하고 말았다. 루키 시즌에는 17.0개의 득점과 8.4개의 리바운드 그리고 2.5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여 올 루키 세컨드 팀에 선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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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 NBA 올스타 동부 컨퍼런스 팀에 선발된 주완 하워드. 맨 앞 오른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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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시즌을 맞이한 주완 하워드는 렉스 채프먼, 돈 맥린, 케빈 덕워스가 각자 다른 팀으로 이적한 반면, 1995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4순위로 라시드 월라스를 지명하였다. 프리 시즌에서는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와의 경기가 그의 모교인 미시간 대학교 크리슬러 아리나에서 개최되어 자기 집으로 돌아온 듯 수많은 관중들이 환호하였으나, 어깨 부상으로 인하여 출전하지 못하였다. 1996년 2월 11일 텍사스 주 샌안토니오에서 열린 NBA 올스타 게임에서 동부 컨퍼런스 팀에 선출되어 선수 경력 가운데에서도 유일한 선수가 되었다. 그런데 2월 27일에 열린 샬럿 호네츠와의 경기에서 4쿼터 남은 시간 2분 49초인 상태에서 반대편에 있는 음료수 냉각기를 차고 모욕적인 제스쳐를 취한 혐의로 5000달러의 벌금형에 처해지게 되었다. 4월 17일에 열린 보스턴 셀틱스와의 경기에서는 45분을 소화해 40득점을 넣어 프랜차이즈 역사상 버나드 킹에 이어 두번째 선수가 되었으나 106-121로 패하였고, 4월 19일에 열린 토론토 랩터스와의 경기에서는 42분을 소화해 본인 최고 기록인 42득점을 넣었지만 103-107로 패하였다. 같은 시즌에는 평균 22.1개의 득점과 8.1개의 리바운드 그리고 4.4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였고, All-NBA Team에 선출되었다. 2년차임에도 평균 득점 22개와 8개의 리바운드를 기록하는 라이징 스타이지 차세대 슈퍼스타로 주목을 받았다. 2년차를 마치고 FA가 되자 친정팀 불리츠를 비롯해서 많은 팀들이 그에게 구애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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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차 시즌을 마친 1996-97 오프시즌에 당시 마이애미 히트의 사장 겸 감독인 팻 라일리를 만나 7년 1억 5백만달러의 초 거대 장기계약을 체결하여 팻 라일리 밑에서 농구를 해보고 싶었다고 전했다. 그런데 샐러리 캡 규칙을 위반한 관계로 NBA 사무국에서 계약을 취소하는 해프닝이 일어나고 말았다. 주완과 계약하기 전 알론조 모닝과 구두계약을 해놓았던 사실이 드러난 탓. 래리 버드 익셉션 조항에 따르면 계약을 한 뒤에 모닝과 협상을 진행했다면 문제가 없었을텐데, 순서가 반대가 되는 바람에 예외조항 적용을 받지 못한 채로 샐리리 캡 상한선을 넘어버리는 바람에 히트와의 계약이 취소되었다. 이후 같은 금액으로 불리츠와 재계약을 맺게 되자 "다시 돌아올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다."는 소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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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불리츠에서 세 번째 시즌을 맞았는데... 당시 미국에서 총기 난사 사고가 일어나자, 당시 구단주였던 에이브 폴린이 성명에서 불리츠라는 팀명이 총알이었던지라 이대로는 안되겠다며 팀명을 바꾸기로 결정하였고, 공모전을 열어 투표한 결과 끝에 1997-98시즌부터는 팀명을 현재의 위저즈라고 쓰게 되었다. 사실상 불리츠에서의 마지막 시즌인 1996-97시즌에는 82경기에 모두 출전하여 24개의 더블-더블을 기록하였고, 평균 19.1득점과 8.1개의 리바운드라는 저조한 기록을 남겼지만, 팀은 44승 38패로 동부 컨퍼런스 8위 이내에 진입하게 되어 시카고 불스와 플레이오프에서 맞붙게 되었다. 그러나 3차전에서는 95 대 94로 워싱턴이 불과 1점차로 앞서나간 가운데 스카티 피펜이 투 핸드 덩크를 꽂아 96 대 94로 역전을 허용하고 말았다. 여기서 자유투 추가는 실패하였으나, 아직 기회는 있어 칼버트 체이니가 끝내기 버저비터를 노렸지만 아쉽게도 넣지 못하고 탈락하여 같은 시즌을 끝으로 불리츠에서의 경기와 홈구장이었던 US 에어웨이스 아레나도 완전히 결별하게 되었다. 결국 팀명도 위저즈로 변경되었고 홈 구장을 수도 워싱턴 D.C.에 있는 MCI 센터(현 버라이존 센터)로 옮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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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츠에서 위저즈로 변경한 1997-98시즌에는 64경기에 출전해 11개의 더블-더블, 18.5득점과 8.0개의 리바운드를 기록하였고, 직장 폐쇄가 풀려난 1998-99시즌에는 36경기에 출전해 평균 18.9득점과 7.0개의 리바운드 그리고 11개의 더블-더블을 기록하였으나, 또 한번 발목을 다쳐 14경기를 결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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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2000시즌에는 그나마도 폼이 수직하락하며 평균 14.9 득점, 5.7개의 리바운드라는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며 먹튀라는 비난을 감당해야만 했다. 결론적으로 장기 계약은 본인에게나 팀에게나 결과적으로는 실패였다. 장기 계약의 바탕이 되었던 2년차의 활약이 결과적으로 커리어 하이 시즌이 되어버렸을 정도로 기대 이하의 활약에 그쳤다. FA 계약 당시만 해도 리그를 이끌 차세대 간판 스타 중 하나로 주목받았지만, FA 계약 이후 단 한 차례도 시즌 평균 20득점을 넘지 못했고, 1억달러 이상의 고액 연봉자 치고는 분명히 기대 이하의 활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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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1시즌에는 가장 높은 연봉을 넘는 선수로써 케빈 가넷, 샤킬 오닐, 알론조 모닝에 이어 4명째가 되었다. 게다가 5년동안 올스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2001년 2월 11일에는 MCI 센터에서 개최된 2001 NBA 올스타 게임에 초청되었다. 그러나 초청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동부 컨퍼런스팀 로스터에는 나오지 못했다. 주완의 통계상으로는 앤서니 메이슨과 라트렐 스프리웰과의 손색이 없을 뿐만 아니라, 보통 경기 기록을 비교해 보면 주완의 역할보다 더 중요한 통계를 나타내기도 하였다. 결국 참지 못한 위저즈는 주완을 댈러스 매버릭스로 트레이드 시켜버렸다.

3.2. 댈러스 매버릭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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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2월 22일에는 오비나 에케지, 캘빈 부스와 함께 휴버트 데이비스 등과의 트레이드로 3달러로 댈러스 매버릭스로 트레이드 된 주완은 디르크 노비츠키, 숀 브래들리, 스티브 내시, 마이클 핀리 등과 함께 선발로써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적한 뒤에는 81경기를 출전하여 평균 18.0득점과 7.1리바운드를 기록하였다. 매버릭스는 53승 29패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여 처음으로 준결승에 진출하여 샌안토니오 스퍼스와 대결을 펼쳤으나, 팀은 패하여 결승 진출에 실패하였다. 플레이오프 시리즈에서는 39.1분을 소화해 13.4득점과 8.3개의 리바운드 그리고 3개의 더블-더블을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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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2시즌에서는 81경기를 나가 그 가운데 72경기를 선발로 출전하여 평균 14.6득점과 리바운드 7.6개를 기혹하였다.

3.3. 덴버 너기츠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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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하더웨이와 주완 하워드.
2002년 2월 21일에는 돈넬 하비, 팀 하더웨이와 함께 에이버리 존슨, 닉 반 액셀, 라에프 라프렌츠, 타릭 압둘 와하드와의 2002 드래프트 1라운드 형식으로 덴버 너기츠로 이적하게 되었다. 같은 해 3월 25일에는 뉴욕 닉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10000번째 최고 득점을 기록했다. 이적한 뒤에는 28경기를 선발로 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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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기츠로 이적한 지 1년 반을 보내고 있는 주완은, 10월 25일에 열린 인디애나 페이서스와의 프리시즌 경기에서 알 해링턴과 저메인 오닐을 상대로 주먹질을 시도하여 45만 8000달러의 벌금형이 내려지게 되었고, 정규시즌 두 경기에도 나오지 못하게 되었다. 2002-03시즌에는 77경기를 모두 선발로 출전해 평균 18.4득점과 7.6개의 리바운드를 기록했다.

3.4. 올랜도 매직 시절


2003-04시즌에는 올랜도 매직 시절에는 평균 17.2득점과 7.1개의 리바운드를 기록하였다.

3.5. 휴스턴 로키츠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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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시즌부터 올랜도 매직 시절 팀 메이트였던 트레이시 맥그레디, 타이론 루, 리스 게인즈와 함께 스티브 프란시스, 커티노 모블리, 켈빈 카토 등과의 1:1 팀 트레이드 형식으로 휴스턴 로키츠로 이적했다. 그런데 2005년 3월 14일에는 오른쪽 무릎 내측측부인대(MCL)를 삐어 4주 정도 걸리게 되었다. 로키츠에 입단한 뒤 첫 시즌에는 61경기에 출전해 그 중 47경기를 선발로 출전하여 7개의 더블-더블을 기록하였고, 32분을 소화해 평균 9.6개의 득점에 5.7개의 리바운드를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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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키츠에서 두번째 시즌을 맞이한 주완은 80경기에 모두 선발로 출전하여 31.7분을 소화해 10개의 더블-더블을 기록하였고, 11.8개의 득점에 6.7개의 리바운드도 기록하였다. 이 시즌에는 야오밍의 발이 부러져 결장하게 되자, 공백을 메우기 위해 4월 17일에 열린 덴버 너기츠와의 경기에서 시즌 최고 31득점을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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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시즌에는 80경기에 출전해 37경기를 선발로 나가 9개의 더블-더블과 평균 9.7득점, 5.9개의 리바운드를 기록하였다. 정규 시즌에서는 같은 포지션에서 뛰고 있는 척 헤이스가 부상으로 선발에서 빠지게 되었지만, 부상을 입은 야오밍은 선발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같은 시즌에는 52승 20패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여 유타 재즈와 1라운드에서 맞붙게 되었으나, 7차전 끝에 패하여 준결승 진출에는 실패하였다. 플레이오프에서는 교체 선수로 나가 22.4분을 소화해 평균 5득점, 4.4개의 리바운드를 기록하였다.

3.6. 댈러스 매버릭스로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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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시즌에는 댈러스 매버릭스와 계약을 해 복귀를 알리는가 싶더니만, 다음날까지 공식적으로 서명 할수 없게 된 뒤에는 아예 포기한 채 계약 조건상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았다. 같은 시즌에는 50경기를 모두 벤치에서 출전하였지만 불과 1.1개의 득점과 1.6개의 리바운드라는 적은 평균 점수 기록에 머무르게 되었다.

3.7. 덴버 너기츠로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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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3일에는 덴버 너기츠와 계약하여 복귀를 선언하였으나, 11월 3일에 앨런 아이버슨천시 빌럽스, 안토니오 맥다이스와의 1:2트레이드 형식으로 트레이드 되었다. 아이버슨이 떠난 뒤에는 보증 계약 없이 로스터에 등록되어 같은 팀에서만 3경기에만 나가 7~8분을 소화하였다.

3.8. 샬럿 밥캐츠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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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12일에는 샬럿 밥캐츠로 트레이드 되어 42경기를 나가 그 가운데 2경기를 선발로 출전하여 평균 4.1득점과 1.8리바운드를 기록하였으나 팀은 35승 47패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3.9.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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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시즌에는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와 1년 계약을 체결하였다. 12월 22일에 열린 댈러스 매버릭스와의 경기에서 센터로 뛰고 있는 조엘 프리즈빌라가 무릎을 다쳐 몇분동안 뛰게 되었고, 이적한 뒤 처음으로 더블-더블을 기록하여 85 대 81로 승리하였다. 한편 프리즈빌라와 그렉 오든이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자, 2월 17일에 스티브 블레이크와 트래비스 아우트로가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에서 마커스 캠비와의 교체 형식으로 이적한 이후부터는, 73경기에 나간 가운데 27경기를 선발로 출전하여 평균 6득점과 4.6개 리바운드 그리고 두차례 연속 더블-더블을 기록하였다. 팀은 50승 32패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여 피닉스 선즈와 대결을 펼쳤으나, 2 대 4로 패하여 준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주완은 모든 플레이오프 시리즈에 출전하여 14.5분을 소화하고 3.3득점과 2.7개의 리바운드를 기록하였다.

3.10. 마이애미 히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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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시즌부터는 1년간 무려 135만 2천 181달러라는 베테랑 최저 연봉의 계약으로 마이애미 히트에서 플레이하게 되었다.

2011년 3월 31일에 열린 친정 워싱턴 위저즈와의 원정 경기에서는 존 월이 주먹으로 지드루나스 일가우스카스의 왼쪽 허리를 날린 사이, 저베일 맥기가 일가우스카스를 말리려고 하는데 주완이 맥기를 밀쳐 시비를 건 사태가 일어나고야 말았다. 결국 이 사건으로 월과 일가우스카스는 동시에 퇴장당하였고, 주완도 맥기와 함께 퇴장당해 이 사건으로 35000달러의 벌금형이 부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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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 정규 시즌에서는 르브론 제임스, 크리스 보쉬, 드웨인 웨이드등 선발로 기용된 선수가 많고, 57경기를 모두 교체선수로만 나가기만 하였다. 히트는 6년만에 NBA 결승전에 올라가 댈러스 매버릭스와 재회하였으나, 2 대 4로 패하여 트로피를 댈러스에게 넘겨 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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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10일에는 똑같은 베테랑 최저 연봉의 계약으로 히트와 재계약하게 되어 같은 시즌동안에만 교체선수로써 정규 시즌에 제한된 시간에만 28경기에 나가 최고령 선수로써 커트 토마스, 그랜트 힐에 이어 3명째가 되었다. 당시 나이는 39세였다. 그 후 2년 연속으로 NBA 결승전에 진출하여 신생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와 맞붙게되어 7년만에 우승하여 히트의 2번째 NBA 챔피언, Fab five의 멤버로써는 처음으로 NBA챔피언쉽을 경험했다. 같은 시즌이 끝난 뒤, 팀 메이트인 마이크 밀러와 함께 ESPY 시상식에 참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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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주완이 지금도 FA계약이 길어지자 2013년 3월 2일에 10일간의 계약으로 히트와 계약하게 되었고, 10일이 지난 12일에도 10일간의 계약을 맺게 되었다. 그로부터 10일 뒤인 22일에 드디어 2012-13시즌이 끝날 때 까지 히트에서 뛰게 되었다. 그 후, NBA 결승전에서는 샌안토니오 스퍼스를 만나 2년 연속으로 NBA챔피언 우승을 확정지은 뒤에 현역을 은퇴하게 된다.

4.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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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에서 물러난 주완 하워드는 차드 캄머러 어시스턴트 코치와 키스 애스킨스 어시스턴트 코치가 퇴임하자 곧바로 히트의 어시스턴트 코치를 2013-14시즌부터 2018-19시즌까지 맡았다.
이후 5년 계약으로 모교 미시간 대학교에서 감독을 맡게 되었다.

5. 말말말


'''I’m getting chills right now as we speak when you ask me that question. I had never heard the Capital Centre that loud in my life'''

나에게 지금 오싹한 기분이 나는 듯한 질문을 하고 있다. 캐피탈 센터에서 들리는 관중들의 함성 소리를 내 인생에서 한번도 들은 적이 없다.

'''I had some butterflies because the building was packed. The fans were rowdy, the towels were waving around and that game went down to the wire'''

난 빌딩 안에 꽉 들어차 있는 것 처럼 약간 울렁거렸다. 팬들은 경기 내내 소란스러웠고, 끝까지 수건을 휘둘렀다.


6.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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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스포츠 잡지 회사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에도 이런 표정을 짓고 덩크를 하는 모습이 게재되어 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