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량역

 

'''득량역'''
목포·용산 방면
보 성
9.1 ㎞ →

'''다국어 표기'''
영어
Deungnyang
한자
得粮
중국어
일본어
得粮(トゥンニャン
'''주소'''
전라남도 보성군 득량면 역전길 28
(舊 오봉리 909-1)
'''관리역 등급'''
보통역
(순천역 관리 / 한국철도공사 광주전남본부)
'''운영 기관'''
경전선

'''개업일'''
경전선
1930년 12월 25일
무궁화호
1984년 1월 1일
S-train
2013년 9월 27일
'''열차 거리표'''
'''경전선'''
득 량
得粮驛 / Deungnyang Station
1. 개요
2. 역 정보
3. 일평균 이용객

[image]
역전 시계탑, 현재 철거되었다.
[image]
구 역사

1. 개요


경전선철도역. 전라남도 보성군 득량면 역전길 28 (舊 오봉리 909-1번지)에 위치해 있다.

2. 역 정보


이 동네의 지명은 임진왜란 당시 비봉리 선소 알섬(지금의 득량도[1])에서 이순신장군이 일본군과 대치하던 중 아군의 식량이 떨어져 비봉리 선소에서 식량을 조달하여 일본군을 격퇴했다는 것에서 이에 '얻을 득'과 '곡식 량' 자를 따서 지어졌다고 한다[2].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털렸다는 역사적인 지명인데 일제시대에 이 역을 만들면서 득량이라는 이름을 쓰게 했다는 게 조금은 의아하다. 사실 서부경전선 구간은 조선총독부가 직접 건설한 구간이 아닌 '남조선철도'라는 철도 회사가 건설한 사철 구간이니 상관없을지도 모른다. 얼마 안 가 총독부가 인수하여 국철로 바뀌긴 했지만.
승강장은 1면 2선의 섬식 승강장. 무궁화호가 하루 8회 정차하며 1996년 9월 1일부로 소화물 취급을 중단했다.
이 역은 열차운전시행규칙 제7조에 따른 1명 근무지정역이어서 보성역에서 3교대로 직원이 돌아가며 파견된다.
대한민국에서 두번째로 남쪽에 있는 역이기도 하다. 위도상 여수엑스포역에서 살짝 북쪽에 있다. 경전선에서는 최남단.
'문화역 득량'이라는 프로젝트 하에 역 내부가 새단장을 했으며, 옛날의 역 모습을 재현한 공간도 있다. 1987년도 시간표라면서 붙여놓은 게 정작 내용은 2000년 이후의 현재 운행 시간표이다 (...). 역 앞에는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 만든 추억의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새마을 운동 즈음의 시대를 모티브로 하고 있으며, 규모는 작지만 갖출 것은 많이 갖추고 있다. 이 추억의 거리는 초기 구간은 인위적이지 않은게 보기가 좋다. 참고 남도해양관광열차 정차역에도 선정되었다.

여담으로 이 역과 소재지 득량면은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粮이라는 글자가 쓰인 예이다. 현지에서는 본자인 糧과 속자인 粮을 혼용해서 쓰기도 하는데, 코레일에서는 粮 표기를 쓰고 있다.
작은 역이지만 그래도 광려선 개통 당시부터 쭉 유지되었던 역인지라 한국철도 100주년 기념 스탬프가 있다. 도안은 오봉산 거북바위. 실제로 역에서 매우 잘 보인다.
이 역에서 보성역까지 25퍼밀 상구배가 있다. 보성과 득량 사이에 기러기재(그럭재, 안치재)라는 고개가 있어서 그렇다.
역 앞 슈퍼 간판이 인상적이다.
보성군내 다른 역에 비하면 버스교통은 은근 불편하다. 나름 잘 다니는 금호고속, 광우고속2번 국도 직행은 보성, 예당, 조성, 벌교만 서고, 직행버스 정도로 잘 다니는 보성~벌교 간 농어촌버스도 그 경로로 지나가므로 득량역은 버스가 농어촌버스밖에 없고 운행횟수가 많지도 않다.

3. 일평균 이용객


득량역을 이용하는 일반철도 일일 승객 수이다. 아래 표는 승차객 + 하차객의 총합이다.
무궁화호
2004년
2005년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55명
58명
57명
62명
65명
70명
65명
62명
61명
56명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61명
53명
49명
44명
34명
'''33명'''
S-train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9명
17명
3명
4명
2명
'''3명'''

[1] 참고로 득량도는 고흥군 도양읍 소속이다.[2] 정확히는 앞 바다인 득량만과 득량만의 섬인 득량도의 어원이다. 득량면은 득량만의 이름을 따서 일제강점기 부군면 통폐합 때에 붙은 명칭이고, 득량역 또한 동네 지명을 따라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