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도스 섬

 

1. 실존하는 섬
1.1. 역사
1.1.1. 고대
1.1.2. 중세~근대
1.1.3. 이탈리아 통치기
1.2. 이 섬에 있는 도시
2. 가공의 섬

''' ''Hic Rhodus, hic saltus.'' '''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라.''

-이솝 우화, 허풍선이 이야기


1. 실존하는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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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어
'''Ρόδος'''
영어
'''Rhodes'''
이탈리아어
'''Rodi'''
터키어
'''Rodos'''
그리스 남동쪽에 있는 작은(?) 섬[1]으로, 도데카니사 제도(Δωδεκάνησα)[2]의 중심지이다. 이름의 유래는 포세이돈과 암피트리데의 딸인 로데(Rhode). 인구는 약 11만 5천 명으로, 북동쪽 끝에 있는 로도스 시에 인구의 절반 가까이 거주한다. 그리스 본토와는 363km 떨어져 있으며, 오히려 터키 본토와는 14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그리스에서 가장 동쪽에 위치한 섬으로 보이기 쉬운데, 그리스 국토의 최동단은 더 동쪽으로 떨어진 카스텔로리조(Καστελλόριζο) 섬(면적 12km)이다.

1.1. 역사



1.1.1. 고대


고대, 특히 헬레니즘 시대에 동지중해 교역의 중심지로 번성했다. 작은 섬의 도시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부와 군사력[3]을 자랑했으며,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로도스의 거상(Colossus)이 세워진 것도 이때이다.[4] 용병으로도 유명해서,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슬링 전문인 로도스섬 투석병은 지중해에서 최강의 명성을 자랑했다. 어린 시절부터 혹독한 훈련을 통해 육성된다고 하는 이들 용병들에 대해 그리스의 군인이자 문필가 크세노폰은 자신이 쓴 책 <페르시아 원정기>에서 자신이 자랑하던 궁병들이 페르시아 장궁 사거리의 두 배 (최소 200m, 최대 300m 이상)에 이르는 거리에서 날아오는 돌팔매질에 머리통이 깨져 나가는 것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는 기록을 남겼고, 어떤 기록에는 '''그들이 날리는 탄은 공중에서 불이 붙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
이런 번성함 때문에 로도스 섬에는 각종 교육 및 연구 시설도 대거 들어섰고, 당대에 학문 분야에서 로도스 섬의 명성은 그리스 본토의 아테네와 맞먹을 정도였다. 한 예로 로마에서 고위 귀족들이 자녀들을 가르치는 가정 교사의 출신을 따질 때 아테네 출신 다음으로 높이 평가한 부류가 로도스 섬 출신이었다. 카이사르가 일찌기 로도스에서 유학한 적 있고 티베리우스도 황제가 되기 전에는 한때 모든 공직을 내놓은 채 이 섬에 틀어박혀 7년을 은거한 적이 있다. 세계에서 인정받은 오파츠안티키테라 기계도 이곳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고대 로마 제국에 편입되어 동로마 제국 시대까지 점차 쇠락하여 그저 그런 섬 중 하나가 되었다.

1.1.2. 중세~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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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기사단 단장의 궁전. 1930년대 이탈리아 통치기에 대대적으로 복구되었다.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그 후 14세기경, 우트르메르에서 거점을 상실한 구호기사단이 와서 섬을 점령하여 거점으로 삼았다가 16세기 들어 오스만 제국의 도전을 받고 결국 술레이만 1세에 의해 점령되었다. 이 때 기사단이 압도적인 전력차에도 불구하고 몇 차례나 오스만군을 격퇴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후 기사단은 신성 로마 제국 카를 5세의 배려 덕분에 몰타로 건너가 정착했고 거기서도 오스만 제국의 침공을 받았지만 거기서는 끝까지 버텼다. 아무래도 전투종족. 구호기사단은 지금까지도 명맥을 이으며 건재하고 있다. 아무튼 16세기부터 1910년대까지는 별다른 사건 없이 쭉 오스만 영토였다.

1.1.3. 이탈리아 통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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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독 궁전. 지금은 로도스 현청으로 쓰인다.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로도스 섬이 속한 도데카니사 제도는 1912년 이탈리아-투르크 전쟁의 결과 이탈리아 왕국에 점령당해 35년간 이탈리아 영토였다. 처음에는 군정(軍政)이 실시되다가, 1923년 에게해 이탈리아령 군도(Isole italiane dell'Egeo)라는 지역이 정식 출범하면서 로디 섬(Rodi)으로 불렸다.
초대 총독 마리오 라고(Mario Lago: 재임 1922~1936)는 자유주의적 정치가로, 각 민족 공존 정책을 펼치는 한편 이탈리아인 거주자의 정착과 그리스인과의 결혼을 추진했다. 그러나 종교적인 면에서 라고는 불관용적이었는데, 정교회 세력을 억누르고 가톨릭 전례만을 인정했다. 반면 후임 총독인 체자레 마리아 데 베키(Cesare Maria De Vecchi, 재임 1936~1940) 치하에서는 이탈리아어가 필수과목이 되었고 그리스어는 선택과목으로 전락하는 등, 섬의 이탈리아화(化)가 강경하게 추진되었다. 무솔리니 정권이 섬의 도로를 정비하고 파시스트식 건축물들을 세우는 데 공을 들인 것도 이때였다. 당시의 건축물들은 지금도 많이 남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그리스 침공크레타 섬 전투의 전초기지가 되었다가, 1943년 이탈리아가 항복한 뒤에는 나치 독일군의 점령하에 있었다.(명목상으로는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령) 이탈리아가 패전하고 모든 해외식민지를 포기한 1947년에서야 그리스에 반환되었다. 8천 명 가까이 되던 이탈리아계 정착민들은 본국으로 돌아갔지만, 소수는 남았다.
이 섬은 터키 독립전쟁과 그로 인한 터키인, 그리스인인구 교환이 이루어지지 않은 섬이기 때문에 아직도 터키계 그리스인 주민들이 많이 살고 있다. 히오스, 사모스섬에선 터키어 할 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에 비하면 터키어도 상당히 잘 통한다! 그러나 이 지역은 터키계 주민들은 터키 본토의 터키인들 및 북키프로스인들과 다르게 이슬람교가 아닌 정교회를 믿는 경우가 많으며[5], 외관이나 생활상으로 현지 그리스인과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1.2. 이 섬에 있는 도시


Ρόδο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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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도스 섬 북동쪽 끝에 있는 그리스의 도시. 도데카니사 현의 현청 소재지이며 면적은 19.48㎢. 인구는 49,541명 (2011)

2. 가공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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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소설로도스도 전기》 및 《로도스도 전설》의 주무대가 되는, 포세리아 세계관의 섬. 아레크라스트 대륙 남쪽에 위치해 있다. 위의 실존 로도스 섬은 로마자 표기가 Rhodes 이지만, 이 가상의 섬은 Lodoss 라고 쓴다.
섬의 기원으로 전해져 내려져오는 불길한 전설[6]과 마물이 쉽게 번성하는 환경 때문에[7], 외지인(外地人)들은 이곳을 저주받은 섬이라고 부른다. 훗날에는 해방의 섬이라고 불리게 된다.
마법왕국 카스툴 말기에는 포세리아 대다수의 지역들이 그랬듯이, 카스툴에 의해 정복되었으며 태수를 비롯한 카스툴의 귀족들에 의해 다스려졌다. 로도스 태수가 거주했다는 "호상도시 쿠드"나 마신왕이 봉인된 "가장 깊은 미궁", 플레임 전역을 뒤덮은 "바람과 불꽃의 사막" 등도 모두 이 시대의 산물이다.
소설의 무대가 되는 신왕국력 520년 이후에는 아라니아 왕국, 카논 왕국, 플레임 왕국, 마모 왕국, 모스 왕국, 바리스 왕국의 여섯 나라가 있다.
여담이지만 아레크라스트에서도 단 두 명밖에 없다는(대현자 마나 라이, 드루이드의 장로 로우라스) 초영웅이 로도스에는 10명도 넘게 있다.(...)

[1] 그래도 면적 1400㎢로 제주도보다 다소 작은 정도[2] 열두 개의 섬이라는 뜻[3] 해군과 투석병이 유명했다.[4] 마케도니아의 왕 폴리_오케르(공성자) 데메트리오스의 공격을 격퇴한 기념으로 세운 것이다.[5] 동마케도니아 트라키 주의 터키계 주민들이 터키 본토인들 및 북키프로스인들처럼 이슬람교를 믿는 것과는 대조적이다.[6] 마파 항목 참조.[7] 사신 카디스가 로도스(정확하게 말하자면 마모)에 봉인되어 있기 때문. 카디스의 사기(邪氣) 탓에 로도스는 다른 지역에 비해 마물이 창궐하기 쉬운 곳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