롭 핼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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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의 이미지를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한 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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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도 당시 사진.
영국의 헤비메탈 밴드 주다스 프리스트의 보컬. 본디 원년멤버는 아니었으나, 메이져 데뷔 이전에 가입했고 사실상 주다스 프리스트의 성공과 함께 했기 때문에 보통 롭 핼포드, 글렌 팁튼, K.K.다우닝, 이언 힐, 데이브 홀랜드[3] 를 원년멤버로 친다.
헤비메탈 레전드 보컬리스트 중 한명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며, 현시대 헤비메탈의 이미지인 블랙&실버, 번쩍이는 가죽바지같은 메탈 룩을 완성한 인물이기도 하다.
1951년 영국의 서튼 콜드 필드에서 태어나 버밍엄의 월솔에서 자랐다. 리틀 리처드, 로버트 플랜트, 재니스 조플린 등의 영향을 받았고, 아테네 우드, 히로시마 등의 밴드에서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 전에는 잠시 성인용품(!) 상점에서 일했다고 한다. 그 특유의 패션은 여기서 영감을 얻은 것. 핼포드가 시작한 메탈 룩에 대해선 해당 문서 참조.
이런저런 나날을 보내다 롭 핼포드는 그의 여동생 수 핼포드와 교제 중이던 베이시스트 이안 힐의 추천으로 밴드 주다스 프리스트에 보컬리스트로서 전에 활동하던 히로시마라는 밴드에서 활동하던 드러머 존 힌치와 함께 가입하게 된다.
그 후 1974년 1집 '''Rocka Rolla'''을 발매하고 1980년까지 주다스 프리스트와 함꺼 정규 앨범 '''Sad Wings of Destiny''', '''Sin After Sin''', '''Stained Class'''와 '''Killing machine'''(Hell Bent for Leather)과 첫 라이브 앨범 '''Unleashed in the East'''를 발표한다.
그리고 1980년, 기념비적인 헤비메탈 명반 '''British Steel'''을 발표하며 주다스 프리스트 시대의 신호탄을 쐈다. 이 때 주다스 프리스트에게 Metal Gods라는 별칭이 붙었는데, 이 음반에 있던 동명의 곡 덕분이다.
이후 '''Point of Entry'''앨범을 발표하지만 전작과 뒤에 발표될 명반들 덕에 묻히는 감이 없잖아 있다(...).
그리고 그 뒤 발표된 것이 '''Screaming for Vengeance'''. 앨범 자체의 질도 훌륭할 뿐더러 '''You've Got Another Thing Coming'''이 세계적으로 히트하며 주다스 프리스트의 가장 성공한 앨범으로 남았다.
다음 발표된 '''Defenders of the Faith''' 역시 수작인데, 메탈 팬들과 평단에게서 '주다스 프리스트 스타일'의 완성이라는 평을 받기도 한다.
이후 글램 메탈적인 요소와 신시사이저를 감미한 '''Turbo'''와 이후 '''Painkiller'''의 강력한 사운드를 실험한 '''Ram It Down'''을 발표한다. 이 두 앨범은 그리 고평가받는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롭의 보컬은 변함없이 훌륭한 음역과 표현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후 1991년, 80년대 있던 신시사이저 음을 '''거의 모든 곡에서'''배제하고 '''Painkiller'''를 발표한다. 음악 스타일과 함께, Ram It Down 이후 퇴물이라는 이미지였던 주다스 프리스트의 평가도 완전히 뒤바뀌며 제 2의 전성기를 맞는다. 이 때 롭은 처음으로 머리를 전부 밀기도 했다. 머리를 유지하는 게 짜증났다고...
1991년 Painkiller 투어 도중 8월 토론토에서의 공연에서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고 공연을 하던 도중 떨어져서 코가 깨진 적이 있는데(정신을 차린 후 공연을 마저 다 끝냈다고 한다.) 비하인드 더 뮤직 에피소드에서 이것이 롭과 주다스 프리스트 간의 불화를 야기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롭이 인터뷰에서 그건 그냥 사고였고 롭이 밴드를 떠나는 데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니라 설명했다.
롭은 20년간을 주다스 프리스트에서 일해 왔지만, 91년 7월 4일 제한적인 업무(원문 restrictive practices)를 이유로 소니를 고발한다 발표했다. 결국 1992년 롭 핼포드는 주다스 프리스트를 탈퇴한다.
주다스 프리스트 탈퇴 후, 주다스 프리스트에서 드러머 Scott Travis를, 이후 기타리스트 Russ Parrish, Brian Tilse[4] 와 베이시스트 Jay Jay Brown을 영입 후 '''Fight'''란 밴드를 만들어 두 장의 앨범을 발표한다.
이후 2wo란 프로젝트[5] 를 거쳤다가 자신의 이름을 딴 Halford라는 밴드를 조직해 다시 메탈 활동을 개시한다. 이후 Resurrection이라는 앨범을 발매하고, Metal 2000 tour에 아이언 메이든, 퀸스라이크과 함께 참여한다.
하지만 주다스 프리스트와 재결합했다. 2014년 Redeemer of soul도 발표하며 현재까지 정력적인 활동 중이다.
언터쳐블 헤비메탈 보컬리스트 중 한명으로 추앙받는 존재지만, 한편으론 고음 보컬만을 무조건적으로 숭상하는 부류의 팬들 때문에 이상하게 까이기도 한다. 고음병 환자들이 까이는 이유는 소리의 무게나 표현력, 중음이 비어있는 보컬 등을 무시한 채 음계 높은 걸로만 킹왕짱을 따지기 때문인데 헬보드의 전성기 보컬은 소리의 무게감도 있고 중고음 다 탁월한 것이기 때문. 빠가 까를 만든다라는 표현이 가장 걸맞을 인물 중 하나이다.
특징은 금속성 가미된 음색과 시원한 고음처리인데, 사실 음역으로만 따지면 롭보다 넓고 높이 올라가는 보컬도 있으나, 롭이 그렇게까지 추앙받는 이유는 소리가 뭔가 짜릿하면서도 사악한(...) 분위기를 풍겨 가히 헤비메탈스럽기(?) 때문이다. 디오의 보컬이 굵직하고 깊은 소리라면 핼포드의 보컬은 칼칼함과 날카로움에 그 특징이 있다. 이미 1집의 수록곡인 Run of the mill에서 그의 역량이 입증되었다.[6]
그의 보컬톤은 JP의 음악적 색깔 그 자체였다. 롭이 탈퇴하고 팀 리퍼 오웬스가 가입한 당시의 앨범들이 죄다 혹평을 받았던 것은 팬들이 롭의 보컬에 익숙해져 있고 리퍼의 파워가 실리는 음역대가 롭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리퍼가 보컬을 했었던 데모 앨범 Brainicide과 Winters Bane 앨범에서의 음역 자체는 핼포드와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 그러나 The Sentinel처럼 자신의 음역에 맞지 않는 중고음역대의 곡들의 라이브를 보면 아주 힘들어 했다. 밀도가 높은 고음과 (음역이 아닌 밀도 기준으로는 전성기가 페인킬러 투어와 Fight이다) 비지 않는 파워풀한 중음 그리고 훌륭한 전달력 또한 장점. 안정적이고 예리한 고음과 막강한 파사지오 연결로 무장했던 초기의 보컬도 경이적이었지만, 역시 롭 핼포드하면 떠오르는 것은 커리어 중반 들어 개발한 스타카토 위주의 강력한 비브라토 되겠다.
1975년 BBC, '''25세''' 당시의 로카 롤라, 드리머 디시버. 그야말로 메이저 데뷔 초기의 모습이다. 프로그레시브 록에 가깝지만 초기 헤비메탈의 모습을 놓치지 않는 노래들이 많았다.
1978년 일본, '''28세''' 당시의 콘서트 풀버전. 로카 롤라 시절을 벗어나 본격적으로 메탈을 지르기 시작한 시절. 단정한 머리와 의상의 롭 옹이 위화감이 들 정도. 밴 헤일런 Jump 시절의 팝 스러운 느낌도 많이 난다.
1982년 '''32세''' 당시의 메탈 갓. 30대 시절에는 귀곡성도 귀곡성이지만 탄탄한 중저음도 많이 선보였다.
1984년. 대표곡 중 하나인 'The Sentinal'. 여담으로 이때부터 탈모가 심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1985년 라이브 에이드, '''35세''' 당시의 라이빙 애프터 미드나잇. 페인킬러로 입문한 사람들이 겁나 빡센 메탈만 한 줄 아는데 음악 스펙트럼이 넓은 편이다.
1990년 디트로이트, '''40세''' 당시의 페인킬러. 첫 발표 당시인데 제일 힘겹게 부르는 거 같다.(...) 그도 그럴게 1990년도 페인킬러 투어 공연들에서 전반적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여 욕을 상당히 많이 먹었는데 그 당시 핼포드는 몸상태도 좋지 않았고 미국 학부모로부터 걸린 소송에 대응한다고 컨디션도 제대로 추스리지 못해 투어를 할 마땅한 상태가 아니었다고 한다.
1991년 캘리포니아, '''41세''' 당시의 페인킬러. 91년 중후반부터 폼이 완전히 돌아와 레코딩급의 모습을 선보이고 있다.
1992년 '''42세''', 스키드 로우와 함께 Delivering the Goods. 다 찾은 폼을 후배들과 함께하며 썼다. 전성기의 세바스찬 바흐와의 조합도 매우 좋다.
1994년 플로리다, '''44세''' 당시의 라피드 파이어. 메탈리카 공연 게스트로 나와서 한 곡 땡기셨다.
1998년 Two로서의 공연. '''48세''' 당시. 후일 마릴린 맨슨에서도 활약하는 존 5가 드랙복장으로 열심히 기타를 후리는 모습이 눈에 띈다. 롭 핼포드를 떼고 보면 준수한 노래들이지만 역시 핼포드가 이런 노래를 할 필요는 없지 않냐는 얘기들이 많았다.
2001년 MTV 20주년 기념방송, '''51세''' 당시 Sum41 + 토미 리와함께. (토미는 머틀리 크루 해산하고 Sum41 드럼 쳐주고 있었다. 롭은 2분 57초 부터 등장) 굉장히 안 어울리면서도 시원하게 불러제끼시는 롭 옹...
2003년 미국 애너하임, '''53세''' 당시의 페인킬러. 젊음이 마구마구 느껴지는 초절귀곡성이 느껴진다.
2005년 일본 도쿄 부도칸, '''55세''' 당시의 페인킬러. 스모 흉내도 하고 팬서비스 쩌는 롭 옹의 모습을 볼 수 있다.
2008년 브라질 리우데자이네루, '''58세''' 당시의 페인킬러. 정석대로 소화하는 모습이다. 고음부와 저음부를 좀 갈팡질팡 하는 모습을 보여주시기도...
2011년 런던 투어, '''61세''' 당시의 페인킬러. 환갑이 넘었는데 오히려 목상태는 2005년 리트리뷰션 투어 당시보다 나아지고 있다.
2012년 2월 4일 두번째 내한, '''62세''' 당시의 페인킬러. 전반부에서 고음 소화가 아예 안되가지고 떼창으로 넘기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후반부에서 벼락같은 모습을 보이며 건재함을 알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이가 있으니까... 하고 넘어갔는데
2015년 3월 16일 세번째 내한, '''65세''' 당시의 페인킬러. 2012년보다 더 수월하게 부르는 모습이 눈에 띈다.
2016년 베이비메탈과 함께 페인킬러+ 브레이킹 인 더 로우. '''66세''' 당시. 생각보다 훨씬 조화로운 조인트였다는 평.
2018년 12월 1일 네번째 내한, '''68세''' 당시의 페인킬러. 장소는 2018년 월드 투어 마지막 공연인 서울 블루스퀘어. 수염이 엄청 길어진데다 하얘져서 그야말로 메탈선인 포스를 팍팍 풍긴다. 역대 내한 중에 최고의 실력을 선보이며 좌중을 뒤흔들었다.
2019년 3월 9일 호주 시드니, '''69세''' 당시의 페인킬러. 작년 내내 투어를 돌아서 19년엔 좀 벅차보이는 모습이지만 역시 명불허전. 2020년은 코로나 때문에 쉬었으니 2021년에는 기대해봐도 좋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코로나가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2022년에 핼포드의 공연을 다시 봐야 할 지 모르는 상황이다.
창법이 매 앨범마다 변화해왔고, 또한 아주 오랫동안 활동해온 보컬리스트인지라 프레디 머큐리만큼 성종에 대해서 논란이 많은 편이다. 사실 사람의 성종은 김경호나 김기현(성우)처럼 대놓고 눈에 띄지 않는 이상 직접 앉혀놓고 테스트해보지 않고선 알기 힘들다. 애초에 성악도 아니고 팝 음악에서 성종을 가지고 이렇게 투닥거리는 것도 넌센스이긴 하지만.
그가 테너인지 바리톤인지는 메탈팬들 사이에선 오랫동안 흥해온 떡밥. 특히 초창기에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80년대 앨범들의 보이스와는 다르게 꽤 맑은 목소리에 깔끔한 고음을 보여주는 반면 인터뷰 등에서 일반적으로 대화를 할 때 육성은 그렇게 높지 않고, 저음도 상당히 발달한 편이라 더더욱 논란이 많았다. 현재는 제프 테이트, 마이클 키스케처럼 하이 바리톤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며 80년대 이후의 핼포드가 완벽히 바리톤이라는 것엔 모두 동의하는 편이다.
'''1992년''' 공식적으로 JP에서 탈퇴한 후, 롭은 자기 이름으로 새로 헤비메탈 그룹을 냈으나[7] , 남아있는 프리스트 멤버들이나 롭이나 이후 행보가 시원찮긴 매한가지였다. 본래 쥬다스 시절 거의 모든 곡은 팁튼과 다우닝, 그리고 롭(주로 가사)의 협의로 만들어졌는데, 서로 잘났다고 찢어졌으니 제대로 된 물건이 나올 리가 없었다. 결국 2003년 재결합을 선언, 2004년 투어를 시작으로 프리스트 활동을 재개했다. 복귀작인 Angel of Retribution은 마침내 롭 핼포드와 JP의 재결합이라는 거대 떡밥을 현실화시킨 앨범으로, 이미 나이가 든 상태임에도 상당한 파워를 보여주는 핼포드의 보컬과 전형적인 JP 스타일의 곡들이 잘 어우러진 편이다. 물론 전성기의 그 정도 역량은 아니지만 말이다.
'''2008년''' 새 앨범 'Nostradamus'의 월드 투어를 통해 내한했다. 환갑을 앞둔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파워가 넘쳤으며, 모든 곡을 연짱으로 달리면서도(중간에 옷 갈아입거나, 장치준비로 1~2분 쉬는거 빼고) 삑사리 한번 내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8] 다만 이 앨범 자체는 헤비메탈 앨범으로서는 평가가 몹시 갈린다. 초창기 최고의 명반 Sad Wings Of Destiny를 연상시킨다는 의견부터 리퍼 시절보다 더 안 좋다는 의견까지...
'''2012년''' 2월 4일 에피탑 투어의 일환으로 내한했고, 2008년 공연보다는 대체로 나은 보컬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2014년''' 새로운 기타리스트와 함께 발표한 신보인 Redeemer of Souls는 두 전작에 비해 확연히 나은 반응을 얻었다. 내용물은 주다스 프리스트의 전 디스코그라피를 아우르는 자가 복제의 성격이 강하지만, 그 수준은 실망스러운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대부분의 평가. 대중적으로도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롭 핼포드의 보컬 역시 여전히 스튜디오에서는 곡예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보여주고는 한다.
'''2015년''' 3월 16일 내한한다고 한다. 2014년 신보 투어에서 보여주었던 컨디션이 상당히 좋아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베이시스트인 이언 힐과는 처남-매부지간이다. 롭의 여동생이 이언 힐의 아내. 롭이 갈등을 빚고 밴드를 나가면서 서로 사이가 불편해졌으나, 재결합하면서 일단은 화해했다고 한다.
머리가 조금씩 벗겨지기 시작했는데(정확히는 이마가 조금씩 넓어지기 시작), 90년 Painkiller 활동 중 아예 머리를 밀어버렸고, 이후로는 대머리 이미지로 정착되었다. 젊었을 적에도 머리를 길게 유지하는 경우는 드물긴 했다. 1~2집 활동, 그리고 86~88년 활동 정도가 장발을 선보인 케이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대표적인 '''게이'''이다. Killing machine[9] 이후 Studs & Leather 패션을 대중에게 선보였는데, (사정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은 이를 보고 주다스 프리스트의 헤비한 이미지에 어울리는 훌륭한 복장이라고 생각했으나 소수의 사람들은 롭의 섹슈얼리티를 눈치채게 되었다. 이는 다름 아닌 게이의 패션이었던 것. 이후로 팬들 사이에는 롭이 게이라는 사실이 공공연한 비밀이었으나, 본인은 1998년에 가서야 MTV의 인터뷰에서 게이임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근래 들어서는 동성애자로서 충분히 그를 존중해주고 있는 메탈 씬의 분위기에 발맞추어 성에 대한 이야기에도 피하지 않고 목소리를 높이는 모양새.
자신도 동성애자기 때문에 보낸 어려운 시절이 있었고 위대한 밴드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주다스 프리스트 버전 보헤미안 랩소디를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
한 뉴스 기사에서 JP가 공연이 끝나면 그루피들과 함께 광란의 마약 파티를 벌인다고 공격하자, "나는 결코 그러지 않는다. 공연 후에는 호텔방에 쳐박혀서 검열삭제를 하는 게 전부."라고 대응했다고. 그도 그럴게 그루피는 '''여자'''다(...) 어떤 뮤지션은 그와의 작업 후일담으로, 그가 만취한 상태에서 '나랑 놀래?'라는 유혹(?)의 추파를 던져 웃음이 빵 터져서 난감했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커밍아웃 이후의 심신의 변화를 묻는 인터뷰 질문에 자신에게 용기를 얻었다는 감사의 편지들이 올 때면 뿌듯함과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며, 자신의 대중적 인지도나 위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꽂히는 만큼 바르고 모범이 되도록 행동하려 한다고 대답했다. 이와 같이 마초적인 분위기가 짙은 메탈 씬에서도 게이인 그는 존중받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사람을 빼면 메탈을, 특히 메탈헤드와 메탈 패션 자체를 논할 수 없으니.
1992년 오지 오스본이 질병으로 인한 은퇴를 선언했고 은퇴 무대에 블랙 사바스가 참여하게 되었다. 디오는 이에 반발하여 밴드를 떠나버렸고 어떻게든 참여 하려던 블랙 사바스는 롭 핼포드를 임시 보컬로 세워 공연했다. 당시 오지 시절 노래는 오지 오스본과 함께 했으므로 디오 시절 노래만 불렀다. 당시 공연 영상은 유튜브에 있는데 롭 핼포드의 컨디션이 최고조에 이르던 때라 리플은 전부 호평일색이다. 2004년 오즈 페스트에서 다시 한번 블랙 사바스와 함께 하게 되었고 그 공연은 오지 시절 히트곡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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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베이비메탈과 만남을 가졌다.
움직이는 토끼모자를 쓴 적이 있다. 링크
파이브 핑거 데스 펀치의 보컬 이반 무디가 알코올 중독으로 고생할 때 큰 도움을 줬다는 미담을 남겼다. #
전성기의 이미지를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한 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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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도 당시 사진.
'''Rob Halford, "The Metal God"'''[2]
1. 개요
영국의 헤비메탈 밴드 주다스 프리스트의 보컬. 본디 원년멤버는 아니었으나, 메이져 데뷔 이전에 가입했고 사실상 주다스 프리스트의 성공과 함께 했기 때문에 보통 롭 핼포드, 글렌 팁튼, K.K.다우닝, 이언 힐, 데이브 홀랜드[3] 를 원년멤버로 친다.
헤비메탈 레전드 보컬리스트 중 한명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며, 현시대 헤비메탈의 이미지인 블랙&실버, 번쩍이는 가죽바지같은 메탈 룩을 완성한 인물이기도 하다.
2. 생애
2.1. 유년기 ~ 주다스 프리스트 가입 전
1951년 영국의 서튼 콜드 필드에서 태어나 버밍엄의 월솔에서 자랐다. 리틀 리처드, 로버트 플랜트, 재니스 조플린 등의 영향을 받았고, 아테네 우드, 히로시마 등의 밴드에서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 전에는 잠시 성인용품(!) 상점에서 일했다고 한다. 그 특유의 패션은 여기서 영감을 얻은 것. 핼포드가 시작한 메탈 룩에 대해선 해당 문서 참조.
2.2. 주다스 프리스트
이런저런 나날을 보내다 롭 핼포드는 그의 여동생 수 핼포드와 교제 중이던 베이시스트 이안 힐의 추천으로 밴드 주다스 프리스트에 보컬리스트로서 전에 활동하던 히로시마라는 밴드에서 활동하던 드러머 존 힌치와 함께 가입하게 된다.
그 후 1974년 1집 '''Rocka Rolla'''을 발매하고 1980년까지 주다스 프리스트와 함꺼 정규 앨범 '''Sad Wings of Destiny''', '''Sin After Sin''', '''Stained Class'''와 '''Killing machine'''(Hell Bent for Leather)과 첫 라이브 앨범 '''Unleashed in the East'''를 발표한다.
그리고 1980년, 기념비적인 헤비메탈 명반 '''British Steel'''을 발표하며 주다스 프리스트 시대의 신호탄을 쐈다. 이 때 주다스 프리스트에게 Metal Gods라는 별칭이 붙었는데, 이 음반에 있던 동명의 곡 덕분이다.
이후 '''Point of Entry'''앨범을 발표하지만 전작과 뒤에 발표될 명반들 덕에 묻히는 감이 없잖아 있다(...).
그리고 그 뒤 발표된 것이 '''Screaming for Vengeance'''. 앨범 자체의 질도 훌륭할 뿐더러 '''You've Got Another Thing Coming'''이 세계적으로 히트하며 주다스 프리스트의 가장 성공한 앨범으로 남았다.
다음 발표된 '''Defenders of the Faith''' 역시 수작인데, 메탈 팬들과 평단에게서 '주다스 프리스트 스타일'의 완성이라는 평을 받기도 한다.
이후 글램 메탈적인 요소와 신시사이저를 감미한 '''Turbo'''와 이후 '''Painkiller'''의 강력한 사운드를 실험한 '''Ram It Down'''을 발표한다. 이 두 앨범은 그리 고평가받는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롭의 보컬은 변함없이 훌륭한 음역과 표현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후 1991년, 80년대 있던 신시사이저 음을 '''거의 모든 곡에서'''배제하고 '''Painkiller'''를 발표한다. 음악 스타일과 함께, Ram It Down 이후 퇴물이라는 이미지였던 주다스 프리스트의 평가도 완전히 뒤바뀌며 제 2의 전성기를 맞는다. 이 때 롭은 처음으로 머리를 전부 밀기도 했다. 머리를 유지하는 게 짜증났다고...
1991년 Painkiller 투어 도중 8월 토론토에서의 공연에서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고 공연을 하던 도중 떨어져서 코가 깨진 적이 있는데(정신을 차린 후 공연을 마저 다 끝냈다고 한다.) 비하인드 더 뮤직 에피소드에서 이것이 롭과 주다스 프리스트 간의 불화를 야기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롭이 인터뷰에서 그건 그냥 사고였고 롭이 밴드를 떠나는 데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니라 설명했다.
롭은 20년간을 주다스 프리스트에서 일해 왔지만, 91년 7월 4일 제한적인 업무(원문 restrictive practices)를 이유로 소니를 고발한다 발표했다. 결국 1992년 롭 핼포드는 주다스 프리스트를 탈퇴한다.
2.3. Fight, Halford 그리고 복귀
주다스 프리스트 탈퇴 후, 주다스 프리스트에서 드러머 Scott Travis를, 이후 기타리스트 Russ Parrish, Brian Tilse[4] 와 베이시스트 Jay Jay Brown을 영입 후 '''Fight'''란 밴드를 만들어 두 장의 앨범을 발표한다.
이후 2wo란 프로젝트[5] 를 거쳤다가 자신의 이름을 딴 Halford라는 밴드를 조직해 다시 메탈 활동을 개시한다. 이후 Resurrection이라는 앨범을 발매하고, Metal 2000 tour에 아이언 메이든, 퀸스라이크과 함께 참여한다.
하지만 주다스 프리스트와 재결합했다. 2014년 Redeemer of soul도 발표하며 현재까지 정력적인 활동 중이다.
3. 가창력
언터쳐블 헤비메탈 보컬리스트 중 한명으로 추앙받는 존재지만, 한편으론 고음 보컬만을 무조건적으로 숭상하는 부류의 팬들 때문에 이상하게 까이기도 한다. 고음병 환자들이 까이는 이유는 소리의 무게나 표현력, 중음이 비어있는 보컬 등을 무시한 채 음계 높은 걸로만 킹왕짱을 따지기 때문인데 헬보드의 전성기 보컬은 소리의 무게감도 있고 중고음 다 탁월한 것이기 때문. 빠가 까를 만든다라는 표현이 가장 걸맞을 인물 중 하나이다.
특징은 금속성 가미된 음색과 시원한 고음처리인데, 사실 음역으로만 따지면 롭보다 넓고 높이 올라가는 보컬도 있으나, 롭이 그렇게까지 추앙받는 이유는 소리가 뭔가 짜릿하면서도 사악한(...) 분위기를 풍겨 가히 헤비메탈스럽기(?) 때문이다. 디오의 보컬이 굵직하고 깊은 소리라면 핼포드의 보컬은 칼칼함과 날카로움에 그 특징이 있다. 이미 1집의 수록곡인 Run of the mill에서 그의 역량이 입증되었다.[6]
그의 보컬톤은 JP의 음악적 색깔 그 자체였다. 롭이 탈퇴하고 팀 리퍼 오웬스가 가입한 당시의 앨범들이 죄다 혹평을 받았던 것은 팬들이 롭의 보컬에 익숙해져 있고 리퍼의 파워가 실리는 음역대가 롭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리퍼가 보컬을 했었던 데모 앨범 Brainicide과 Winters Bane 앨범에서의 음역 자체는 핼포드와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 그러나 The Sentinel처럼 자신의 음역에 맞지 않는 중고음역대의 곡들의 라이브를 보면 아주 힘들어 했다. 밀도가 높은 고음과 (음역이 아닌 밀도 기준으로는 전성기가 페인킬러 투어와 Fight이다) 비지 않는 파워풀한 중음 그리고 훌륭한 전달력 또한 장점. 안정적이고 예리한 고음과 막강한 파사지오 연결로 무장했던 초기의 보컬도 경이적이었지만, 역시 롭 핼포드하면 떠오르는 것은 커리어 중반 들어 개발한 스타카토 위주의 강력한 비브라토 되겠다.
1975년 BBC, '''25세''' 당시의 로카 롤라, 드리머 디시버. 그야말로 메이저 데뷔 초기의 모습이다. 프로그레시브 록에 가깝지만 초기 헤비메탈의 모습을 놓치지 않는 노래들이 많았다.
1978년 일본, '''28세''' 당시의 콘서트 풀버전. 로카 롤라 시절을 벗어나 본격적으로 메탈을 지르기 시작한 시절. 단정한 머리와 의상의 롭 옹이 위화감이 들 정도. 밴 헤일런 Jump 시절의 팝 스러운 느낌도 많이 난다.
1982년 '''32세''' 당시의 메탈 갓. 30대 시절에는 귀곡성도 귀곡성이지만 탄탄한 중저음도 많이 선보였다.
1984년. 대표곡 중 하나인 'The Sentinal'. 여담으로 이때부터 탈모가 심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1985년 라이브 에이드, '''35세''' 당시의 라이빙 애프터 미드나잇. 페인킬러로 입문한 사람들이 겁나 빡센 메탈만 한 줄 아는데 음악 스펙트럼이 넓은 편이다.
1990년 디트로이트, '''40세''' 당시의 페인킬러. 첫 발표 당시인데 제일 힘겹게 부르는 거 같다.(...) 그도 그럴게 1990년도 페인킬러 투어 공연들에서 전반적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여 욕을 상당히 많이 먹었는데 그 당시 핼포드는 몸상태도 좋지 않았고 미국 학부모로부터 걸린 소송에 대응한다고 컨디션도 제대로 추스리지 못해 투어를 할 마땅한 상태가 아니었다고 한다.
1991년 캘리포니아, '''41세''' 당시의 페인킬러. 91년 중후반부터 폼이 완전히 돌아와 레코딩급의 모습을 선보이고 있다.
1992년 '''42세''', 스키드 로우와 함께 Delivering the Goods. 다 찾은 폼을 후배들과 함께하며 썼다. 전성기의 세바스찬 바흐와의 조합도 매우 좋다.
1994년 플로리다, '''44세''' 당시의 라피드 파이어. 메탈리카 공연 게스트로 나와서 한 곡 땡기셨다.
1998년 Two로서의 공연. '''48세''' 당시. 후일 마릴린 맨슨에서도 활약하는 존 5가 드랙복장으로 열심히 기타를 후리는 모습이 눈에 띈다. 롭 핼포드를 떼고 보면 준수한 노래들이지만 역시 핼포드가 이런 노래를 할 필요는 없지 않냐는 얘기들이 많았다.
2001년 MTV 20주년 기념방송, '''51세''' 당시 Sum41 + 토미 리와함께. (토미는 머틀리 크루 해산하고 Sum41 드럼 쳐주고 있었다. 롭은 2분 57초 부터 등장) 굉장히 안 어울리면서도 시원하게 불러제끼시는 롭 옹...
2003년 미국 애너하임, '''53세''' 당시의 페인킬러. 젊음이 마구마구 느껴지는 초절귀곡성이 느껴진다.
2005년 일본 도쿄 부도칸, '''55세''' 당시의 페인킬러. 스모 흉내도 하고 팬서비스 쩌는 롭 옹의 모습을 볼 수 있다.
2008년 브라질 리우데자이네루, '''58세''' 당시의 페인킬러. 정석대로 소화하는 모습이다. 고음부와 저음부를 좀 갈팡질팡 하는 모습을 보여주시기도...
2011년 런던 투어, '''61세''' 당시의 페인킬러. 환갑이 넘었는데 오히려 목상태는 2005년 리트리뷰션 투어 당시보다 나아지고 있다.
2012년 2월 4일 두번째 내한, '''62세''' 당시의 페인킬러. 전반부에서 고음 소화가 아예 안되가지고 떼창으로 넘기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후반부에서 벼락같은 모습을 보이며 건재함을 알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이가 있으니까... 하고 넘어갔는데
2015년 3월 16일 세번째 내한, '''65세''' 당시의 페인킬러. 2012년보다 더 수월하게 부르는 모습이 눈에 띈다.
2016년 베이비메탈과 함께 페인킬러+ 브레이킹 인 더 로우. '''66세''' 당시. 생각보다 훨씬 조화로운 조인트였다는 평.
2018년 12월 1일 네번째 내한, '''68세''' 당시의 페인킬러. 장소는 2018년 월드 투어 마지막 공연인 서울 블루스퀘어. 수염이 엄청 길어진데다 하얘져서 그야말로 메탈선인 포스를 팍팍 풍긴다. 역대 내한 중에 최고의 실력을 선보이며 좌중을 뒤흔들었다.
2019년 3월 9일 호주 시드니, '''69세''' 당시의 페인킬러. 작년 내내 투어를 돌아서 19년엔 좀 벅차보이는 모습이지만 역시 명불허전. 2020년은 코로나 때문에 쉬었으니 2021년에는 기대해봐도 좋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코로나가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2022년에 핼포드의 공연을 다시 봐야 할 지 모르는 상황이다.
창법이 매 앨범마다 변화해왔고, 또한 아주 오랫동안 활동해온 보컬리스트인지라 프레디 머큐리만큼 성종에 대해서 논란이 많은 편이다. 사실 사람의 성종은 김경호나 김기현(성우)처럼 대놓고 눈에 띄지 않는 이상 직접 앉혀놓고 테스트해보지 않고선 알기 힘들다. 애초에 성악도 아니고 팝 음악에서 성종을 가지고 이렇게 투닥거리는 것도 넌센스이긴 하지만.
그가 테너인지 바리톤인지는 메탈팬들 사이에선 오랫동안 흥해온 떡밥. 특히 초창기에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80년대 앨범들의 보이스와는 다르게 꽤 맑은 목소리에 깔끔한 고음을 보여주는 반면 인터뷰 등에서 일반적으로 대화를 할 때 육성은 그렇게 높지 않고, 저음도 상당히 발달한 편이라 더더욱 논란이 많았다. 현재는 제프 테이트, 마이클 키스케처럼 하이 바리톤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며 80년대 이후의 핼포드가 완벽히 바리톤이라는 것엔 모두 동의하는 편이다.
4. 기타
'''1992년''' 공식적으로 JP에서 탈퇴한 후, 롭은 자기 이름으로 새로 헤비메탈 그룹을 냈으나[7] , 남아있는 프리스트 멤버들이나 롭이나 이후 행보가 시원찮긴 매한가지였다. 본래 쥬다스 시절 거의 모든 곡은 팁튼과 다우닝, 그리고 롭(주로 가사)의 협의로 만들어졌는데, 서로 잘났다고 찢어졌으니 제대로 된 물건이 나올 리가 없었다. 결국 2003년 재결합을 선언, 2004년 투어를 시작으로 프리스트 활동을 재개했다. 복귀작인 Angel of Retribution은 마침내 롭 핼포드와 JP의 재결합이라는 거대 떡밥을 현실화시킨 앨범으로, 이미 나이가 든 상태임에도 상당한 파워를 보여주는 핼포드의 보컬과 전형적인 JP 스타일의 곡들이 잘 어우러진 편이다. 물론 전성기의 그 정도 역량은 아니지만 말이다.
'''2008년''' 새 앨범 'Nostradamus'의 월드 투어를 통해 내한했다. 환갑을 앞둔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파워가 넘쳤으며, 모든 곡을 연짱으로 달리면서도(중간에 옷 갈아입거나, 장치준비로 1~2분 쉬는거 빼고) 삑사리 한번 내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8] 다만 이 앨범 자체는 헤비메탈 앨범으로서는 평가가 몹시 갈린다. 초창기 최고의 명반 Sad Wings Of Destiny를 연상시킨다는 의견부터 리퍼 시절보다 더 안 좋다는 의견까지...
'''2012년''' 2월 4일 에피탑 투어의 일환으로 내한했고, 2008년 공연보다는 대체로 나은 보컬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2014년''' 새로운 기타리스트와 함께 발표한 신보인 Redeemer of Souls는 두 전작에 비해 확연히 나은 반응을 얻었다. 내용물은 주다스 프리스트의 전 디스코그라피를 아우르는 자가 복제의 성격이 강하지만, 그 수준은 실망스러운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대부분의 평가. 대중적으로도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롭 핼포드의 보컬 역시 여전히 스튜디오에서는 곡예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보여주고는 한다.
'''2015년''' 3월 16일 내한한다고 한다. 2014년 신보 투어에서 보여주었던 컨디션이 상당히 좋아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베이시스트인 이언 힐과는 처남-매부지간이다. 롭의 여동생이 이언 힐의 아내. 롭이 갈등을 빚고 밴드를 나가면서 서로 사이가 불편해졌으나, 재결합하면서 일단은 화해했다고 한다.
머리가 조금씩 벗겨지기 시작했는데(정확히는 이마가 조금씩 넓어지기 시작), 90년 Painkiller 활동 중 아예 머리를 밀어버렸고, 이후로는 대머리 이미지로 정착되었다. 젊었을 적에도 머리를 길게 유지하는 경우는 드물긴 했다. 1~2집 활동, 그리고 86~88년 활동 정도가 장발을 선보인 케이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대표적인 '''게이'''이다. Killing machine[9] 이후 Studs & Leather 패션을 대중에게 선보였는데, (사정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은 이를 보고 주다스 프리스트의 헤비한 이미지에 어울리는 훌륭한 복장이라고 생각했으나 소수의 사람들은 롭의 섹슈얼리티를 눈치채게 되었다. 이는 다름 아닌 게이의 패션이었던 것. 이후로 팬들 사이에는 롭이 게이라는 사실이 공공연한 비밀이었으나, 본인은 1998년에 가서야 MTV의 인터뷰에서 게이임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근래 들어서는 동성애자로서 충분히 그를 존중해주고 있는 메탈 씬의 분위기에 발맞추어 성에 대한 이야기에도 피하지 않고 목소리를 높이는 모양새.
자신도 동성애자기 때문에 보낸 어려운 시절이 있었고 위대한 밴드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주다스 프리스트 버전 보헤미안 랩소디를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
한 뉴스 기사에서 JP가 공연이 끝나면 그루피들과 함께 광란의 마약 파티를 벌인다고 공격하자, "나는 결코 그러지 않는다. 공연 후에는 호텔방에 쳐박혀서 검열삭제를 하는 게 전부."라고 대응했다고. 그도 그럴게 그루피는 '''여자'''다(...) 어떤 뮤지션은 그와의 작업 후일담으로, 그가 만취한 상태에서 '나랑 놀래?'라는 유혹(?)의 추파를 던져 웃음이 빵 터져서 난감했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커밍아웃 이후의 심신의 변화를 묻는 인터뷰 질문에 자신에게 용기를 얻었다는 감사의 편지들이 올 때면 뿌듯함과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며, 자신의 대중적 인지도나 위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꽂히는 만큼 바르고 모범이 되도록 행동하려 한다고 대답했다. 이와 같이 마초적인 분위기가 짙은 메탈 씬에서도 게이인 그는 존중받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사람을 빼면 메탈을, 특히 메탈헤드와 메탈 패션 자체를 논할 수 없으니.
1992년 오지 오스본이 질병으로 인한 은퇴를 선언했고 은퇴 무대에 블랙 사바스가 참여하게 되었다. 디오는 이에 반발하여 밴드를 떠나버렸고 어떻게든 참여 하려던 블랙 사바스는 롭 핼포드를 임시 보컬로 세워 공연했다. 당시 오지 시절 노래는 오지 오스본과 함께 했으므로 디오 시절 노래만 불렀다. 당시 공연 영상은 유튜브에 있는데 롭 핼포드의 컨디션이 최고조에 이르던 때라 리플은 전부 호평일색이다. 2004년 오즈 페스트에서 다시 한번 블랙 사바스와 함께 하게 되었고 그 공연은 오지 시절 히트곡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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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베이비메탈과 만남을 가졌다.
움직이는 토끼모자를 쓴 적이 있다. 링크
파이브 핑거 데스 펀치의 보컬 이반 무디가 알코올 중독으로 고생할 때 큰 도움을 줬다는 미담을 남겼다. #
[1] 주다스의 설명에도 나와있듯, 게이 BDSM류 패션에서 영감을 얻었다. 채찍까지 든 풀장비로 사람들 속에서 유유히 등장하는 롭 핼포드. [2] 동명의 곡을 발표한 이후 이것은 프리스트, 그중에서도 특히 롭을 가리키는 별칭으로 자리잡았다.[3] 데이브 홀랜드는 메이져 초기앨범인 Sin after sin 시절에는 멤버가 아니었고, 88년작 Ram it down 앨범 참가를 마지막으로 탈퇴했다(탈퇴 이유는 솔로 활동으로 추측된다. 정작 거의 다 망했지만). 어쨌든 처음으로 장기간에 걸쳐 고정적으로 활동한 프리스트 드러머이기 때문에 원년멤버 비슷한 취급을 받는다. 탈퇴 후 잠잠하게 지내더니 갑자기 한 소년을 성추행해 구속당했다는 이야기로 다시 매스컴 등장.(...)[4] 기타와 키보드[5] 마릴린 맨슨(밴드)에서 기타를 담당했던 존 5와 결성했고 프로젝트 앨범은 트렌트 레즈너가 프로듀싱했다.[6] 핼포드의 스타일과 가장 비슷한 보컬로 프라이멀 피어의 랄프 쉬퍼스를 꼽으나 금속성의 음색은 헬로윈 초기 시절 카이 한센의 쏘아대는 보컬이 더 유사하다. 물론 카이 한센도 주다스 프리스트의 광팬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락커 시절의 임재범 고음이 비슷하다는 평도 받는다. (중저음은 많이 다르다. 오히려 마이클 볼튼과 흡사.) 그 외 그룹 사일런트 아이의 보컬 조성아 등도 거론된다. 사실 이런저런 거론되는 인물이 많다는게 그만큼 롭 핼포드의 명성을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다.[7] 파이트가 그 시작이었고, 정통 헤비메탈 색이 빠진 2wo, 그리고 자기 이름을 건 핼포드로 이어졌다. 이중 최고의 평가를 받는 것은 핼포드.[8] 전성기만큼의 무대는 아니었다는 의견도 있었다. 머 나이가 나이니만큼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지만..[9] Killing machine 앨범은 두 개의 이름이 있는데, 다른 하나의 이름은 Hell bent for leat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