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버튼
1. 개요
웨일스의 영화배우
'''영국 영화계를 대표했던 영화배우이자 웨일스를 대표했던 배우로''' 오스카상에 7번이나 올랐고 위대한 영국인에도 선정된 영국의 전설적인 배우로 또한 '''세기의 미녀였던''' 엘리자베스 테일러와의 2번의 결혼으로도 유명한 인물이다.
2. 생애
1925년 탄광 노동자의 아들로 자랐으며 16세엔 중퇴위기에 빠지기도 했으나 교사였던 필립 버턴이 그를 양자로 입적시켜 18세에 옥스포드 대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하였다.그리고 이후 1943년에 리버풀 무대에 데뷔를 하였고 이후 연극배우로 활약했으며 1년뒤엔 잠시 영국 공군의 조종사로 지냈다.그리고 이후 복귀하여 1949년에 영화에 데뷔하였고 이후 함께 연기한 시빌 윌리엄스와 혼인했다.그리고 같은해에 <the lady's not for burning>에서 연기가 호평받아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이것을 계기로 1952년엔 할리우드 초청으로 <수수께끼의 가인 레이첼>로 오스카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는 등 탑급 배우로 떠올랐다.그리고 1953년엔 연극으로 햄릿을 연기하였고 오셀로에선 당시 흥행 아이돌이었던 존 네빌과 호흡을 맞추기도 하였다.그리고 이당시 햄릿은 그에게 두려움이자 매력적인 배역이었다.영국극장에서 존 길구드와 로런스 올리비에가 그배역을 맡았기 때문이다.반면에 당시 햄릿을 맡은 배우에게 좋은 끝을 못본다는 말을 들어 두려움이기도 했다.아무튼 버튼은 할리우드의 탑급 배우로써 최고의 활약을 보인 이후 1958년에 <라임 리멤버드>로 토니상 후보에 오르면서 브로드웨이에도 발을 들였고 이후 뮤지컬배우로도 최고급 활약을 보였다.당시 카멜롯이란 작품으로 1961년엔 토니상을 받기도 했다.그리고 영화에서는 <성의>[1] <알렉산더 대왕>[2] , <클레오파트라>[3] <천일의 앤>과 같은 대작 역사물에서 주연을 맡았고,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독수리 요새>와 <자객의 멜로디> 등 스릴러 영화에서도 명연기를 펼치며 호평을 받았다.그러나 <수수께끼의 가인 레이첼>을 시작하여 7차례나 노미네이트 되었지만 한번도 수상 못했다. 주로 뻔뻔스럴 정도로 자신감이 넘치는 상남자 역을 맡았지만, <메두사 터치>에서 맡은 초능력자 사이코패스 테러범처럼 악역을 맡아도 잘 어울렸다.
3. 엘리자베스 테일러와의 사랑
1963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역을 맡아 <클레오파트라>에서 함께 연기했던 클레오파트라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사랑을 하게 되고 결국 불륜까지되며 기존 아내였던 윌리엄스와 이혼하고 테일러와 재혼하게 된다.둘은 부부로 <예기치 못한 사건> <샌드 파이퍼>등에서 호흡을 맞추며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부부가 되었다.그러나 1974년에 이혼하게 되었다.[4] 그리고 또 다음해에 다시 재결합을 하지만 이듬해 또 다시 이혼한다.1983년 브로드웨이의 무대가 두사람의 마지막 공연이 되었다.한편1966년에 버튼은 테일러와의 관계를 담은 책을 발간한 적이 있었다.그리고 이혼후에도 버튼은 2차례 더 결혼관계를 가졌다.
4. 사망
1984년 제네바 교외의 저택에서 뇌출혈로 쓰러졌고 이내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결국 별세했다.(향년 58세)
5. 필모그래피
1952년 나의 사촌 레이첼
1953년 성의
1956년 알렉산더 대왕
1959년 타임 리멤버드
1960년 성난 얼굴로 돌아 보라
1961년 카멜롯
1962년 지상 최대의 작전
1963년 클레오파트라
1964년 햄릿
1965년 베켓
1966년 추운 곳에서 온 스파이
1967년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1968년 말괄량이 길들이기
1970년 천일의 앤
1974년 어린 왕자
1977년 엑소시스트 2, 머나먼 다리, 철십자 훈장
1978년 에쿠스, 와일드 기스
1983년 바그너
1984년 1984
1985년 일리스 아일랜드
[1] 1953년에 만들어진 개신교영화[2] 1956년 영화[3]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클레오파트라 역을 맡은 대작 영화, 여기서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4] 이혼하기 1년전 두 부부는 tv영화 <이혼>에 출연하여 극중에서 이혼했는데 결국 실제로도 이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