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어그레션
'''Microaggression'''
1. 소개
현대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겪게 되는 차별과 편견 등 다양한 불관용(intolerance)의 소소한 경험, 그리고 그것들이 누적되어 끼치는 악영향을 피해자의 입장에서 설명하려는 교육학 및 상담심리학계의 이론 체계. 주로 인종차별, 성차별, 반동성애 등에 활용될 수 있다고 간주되고 있다.짙은 색조 화장을 한 미스 A의 얼굴을 본 미스터 B는 기절초풍할 뻔했다.
"저 어때요, 예뻐요?"
미스터 B는 하도 어이가 없어 한동안 아무 말도 못하다가 끝내 한마디 내뱉었다.
'''"꼭 연변 가무단 같아!"'''
휴게실에 있던 사람들은 폭소를 터뜨렸지만, 연변에서 온 유학생들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위의 일화에서 보듯 보통 사람들 대부분은 일상에서 소수자를 의식하거나 배려하지 않고 살아간다. 약간 특이한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호모 아니야?"라고 비꼬는 농담을 던졌는데 만약 당사자나 그 주변에 있는 사람이 실제로 동성애자라면 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것이다. 흑인 분장을 한 채 비정상적이고 우스꽝스러운 동작으로 사람을 웃기는 코미디언을 보며 흑인계 혼혈인은 모멸감에 주먹을 불끈 쥘지도 모른다. "여자가 무슨..."이라는 말을 들으며 자란 여자 어린이는 자기가 커서 살아갈 세상이 남자 어린이의 것과 비교도 되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좌절하고 포기할 준비를 할지도 모른다.
-박경태, 「인권과 소수자 이야기: 우리가 되지 못하는 사람들」, 책세상. P.44-45.
일종의 신조어인데, 대중적으로는 2000년대 무렵부터 사회 운동가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퍼져나가던 것이지만, 학술문헌에서 확인 가능한 가장 오래된 사례는 하버드 대학교 정신의학자 '''체스터 피어스'''(C.Pierce)의 1970년 문헌이다. 여기서는 그냥 단어만 쓰이는 수준이었다가, 8년 후에 본격적으로 TV 광고에서 드러나는 인종차별을 비판하기 위해서 의미가 정립되었다. 현대에는 중국계 미국인인 '''대럴드 수'''(D.W.Sue)라는 상담심리학자가 자기 연구팀과 함께 2007년에 이론의 기반을 다졌다. 그의 제자인 '''케빈 네이달'''(K.Nadal) 역시 학계 외적으로 많이 알려진 인물이지만[1] 역시 많은 학술적 기여를 했다.
인종차별에 대한 숱한 사회과학적 이론들 중에서도 유독 현장 운동가들이 써먹기에 좋으며, 심리학계에서 활용되는 기존의 이론적 조망들 중에서 가장 범용적이고 보편적인 혐오적 인종주의 이론(aversive racism theory)과는 보완적 관계에 있다. 혐오적 인종주의 이론의 경우 과학성 및 실증성에 주안점을 둔 반면, 이 이론은 면접법을 통해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피해의 경험을 강조한다. 특이한 것은, 대럴드 수 본인이 그래서인지 유독 '''아시아계 미국인이 경험하는 인종차별을 설명하는 데 강력하다는 점.'''[2] 관련 문헌들을 읽다 보면 실제로 한국인이나 교포 2세가 서구권에서 들을 만한 인종차별적 발언들을 많이 찾을 수도 있고, 아예 예시화에 있어서 Korean이라는 단어도 종종 나온다.
문서 제목은 해당 영어단어를 음차한 것인데, 여기서 micro- 는 보통 "미소"(微小)로 번역될 수 있지만 이 경우 어감이 이상해지므로(…) 부득이 '미세' 라는 유사 단어를 차용할 수 있다. 유의할 점으로서, 많은 이론가들이 지적하듯이 micro- 라는 표현은 체스터 피어스가 "일상의"(everyday)라는 단어의 동의어로서 사용한 것이지, "사소한"(trivial)이라는 단어의 동의어가 아니다. 한편 aggression은 전통적으로 심리학계에서 "공격성" 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따라서 굳이 이 신조어를 한자어로 번역할 경우, "미소공격성" 혹은 그보다는 "미세공격성" 이라는 잠정적인 번역이 가능하다. 국내의 경우 학계에서는 아직 이렇다할 번역이 없으나, 언론 등에서는 '먼지차별'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예) 우리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도처에 깔려있고, 유해하며, 늘 치우지 않으면 쌓이는 ‘먼지’와도 같다는 데서 유래했다.
일단 이하에는 표제어를 그대로 쓰기에는 너무 길기 때문에(…) 미세공격성이라는 번역어를 취하도록 하겠다. 그리고 여기서는 인종차별을 소재로 삼아 설명하겠지만, 이 개념은 보다 다양한 종류의 억압(oppression)에 있어서도 적용될 수 있다.
2. 주요 내용들
미세공격성에 관련하여 몇 가지 언급할 점이라면, 우선 '''현대 사회의 불관용의 양상'''을 지칭한다는 것이다. 50년대 이전 서구의 "공공연한" 방식의 인종 갈등은 이제 더 이상은 찾아보기 힘들고, 사람들 역시 상식적으로는 인종차별이 나쁘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다. 하지만 무심결에, 혹은 실수로, 혹은 그게 차별인지 몰라서 저지르게 되는 차별의 사례들은 아직 존재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데이비드 시어스(D.O.Sears)나 존 맥코나헤이(J.B.McConahay), 존 도비디오(J.Dovidio) 같은 사람들이 여러 이론들을 내놓았는데, 미시공격성은 현대 사회의 인종차별을 파악하려면 결국 '''피해자의 입장에서''' 논의를 시작할 수밖에 없다는 전제를 깔고 시작한다는 점에서 달라진다.
또한 미세공격성은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일상 속에서", "지나가듯이", "소소하게" 가해지는 '''개인 간 인종차별'''의 사례를 다루며, 사회적, 법적 혹은 제도적으로 가해지는 인종차별은 다소간 논외로 한다.[3] 그렇기 때문에 미세공격성은 서로 인종이 다른 두 사람 사이에서 오가는 대화 중에 슬쩍슬쩍 드러나는 정도에 그치며, 개별 사례들은 큰 문제가 아닐지 몰라도 이런 경험들이 누적되면서부터는 유색인종들에게 부담감을 주고 움츠러들게 할 수 있다는 게 요지다. 심지어 유색인종 입장에서는 오히려 구시대적인 인종차별보다 더 대응하기가 힘들다. 예를 들어, 위키러 여러분이 미국에서 만난 백인 친구가 손가락으로 눈 옆을 찢는 제스처를 한다면 대부분의 경우 쉽게 반발할 수 있고, 주변에서도 여러분의 편을 들어주기가 쉽다. 하지만 미세공격성은 대체로 듣는 유색인 입장에선 어딘가 "이게 웬 개소리지...?" 싶은 나사빠진 것이면서도, 막상 대놓고 지적하기는 애매한 경우가 많다. 설령 지적한다 해도 분위기를 깨기 십상. 이런 것은 입장 바꿔 생각하지 않으면 이게 무례한 발언이 될 수 있음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사례(버즈피드 영상)
미세공격성은 다음의 3가지 형태로 구분될 수 있다.
- 미세폭력(microassults) : 의도성을 갖고 일상 속에서 찔러대는 차별행위라고 할 수 있는데, 현대사회에서 점점 그 비중이 줄어들고는 있으나 아직 사라지지는 않은 유형이다. 대표적인 케이스로 학교에서 얌전하고 숫기 없는 남학생에게 또래들이 "너 게이냐? 호모 새끼" 같은 식으로 괴롭히는 것을 들 수 있다.
- 미세모욕(microinsults) : 혐오적 인종주의 이론과 밀접하게 연결되는 사례로서, 의도적이지는 않지만 상대방에게는 모욕적인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케이스다. 대표적으로 영어에 능숙한 아시아계 미국인들에게 "영어를 왜 이렇게 잘 해?" 라고 묻거나,[4] 심지어 현지에서 태어나 평생 살아온 교포 2세들에게까지 "어느 나라 출신이야? 아니, 고향 말고, 너네 조상님이 어디 출신이냐고" 같은 식으로 캐묻는 외인화(alienation)를 들 수 있다.[5]
- 미세부정(microinvalidation) : 저자들이 가장 힘주어 강조하는 케이스. 유색인종들이 처한 삶의 경험들을 "믿을 수 없는 것", "과민반응", "왜곡된 현실" 로 치부하는 백인들의 반응을 의미하며, 미세공격성을 목격했을 때 유색인종들이 가장 대응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보다 넓게는, 인종차별적 발언이나 행동에는 방관하면서도 자신처럼 평등주의적인 백인이 어디 있겠냐며 자부하는 사례까지 포함하기도 한다.
3. 논쟁
미세공격성에 대한 비판은 줄곧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학술지 《Perspectives on Psychological Science》 에서 2017년에 한 차례 이 주제를 다룬 바 있다.
크게 두 가지 정도에서 논쟁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 첫째는 '''기존의 심리학계에 학술적인 접점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유혹하는 심리학》 이라는 과학적 회의주의 교양서를 집필한 임상심리학자이자 사이코패스 전문가로 알려진 스캇 릴리언펠드(S.O.Lilienfeld)는, 자신의 비판적 리뷰를 통해 미세공격성에 대한 연구가 기초심리학(basic psychology)의 여러 영역들과의 연결성이 크게 떨어지고, 심리측정학(psychometrics)이나 성격심리학적, 생물심리학적 측면이 매우 약하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이 분야 문헌들을 보면 주류 심리학의 방법론으로 훈련 받은 사람의 관점에서는 굉장히 생소한 형태로 논의가 전개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오히려 말하자면 학자의 글이라기보다는 '''사회 운동가의 글'''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심리학 문서에서도 알 수 있겠지만 이 분야는 과학적 심리학(psychological science)으로서 기본적으로 기대되고 요구되는 방법론적 엄격성의 기준이 분명히 존재하고, 여기에 부적격하면 아무리 입바른 소리라도 다시 연구해 오라고 퇴짜를 맞는 일이 빈번하다. 2010년대 후반에 들어서 점점 통계적 방법에 많은 보완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다행이지만, 당장 이 논쟁이 종식되기는 한참 요원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종류의 비판은 '''개입 프로그램의 개발과 실행이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여러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들을 개선하기 위한 목적으로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을 심리학에서는 보통 개입(intervention)이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집단 간 갈등을 완화하기 위하여 별도로 개발된 개입 전용(?)의 이론적 조망이 사회심리학계에는 넘치도록 많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들은 대부분이 사회적 정체성 이론(SIT; social identity theory)과 같이 기존에 학술적으로 확실하게 정립된 논리를 바탕으로 현장에 써먹기 위한 엄격한 검증을 다수 통과했기 때문에 제작된 것이고, 다짜고짜 트레이닝 코스부터 짜고 수료증부터 뿌리는 게 절대로 아니다. 문제는, 미세공격성 분야는 그런 식이라는 것(…). 의학에 비유하자면 임상시험 결과도 나오지 않은 이상한 신약을 덮어놓고 판매부터 시작하는 것과 같은 상황인 것이다. 스캇 릴리언펠드는 심리학의 역사에서 실제로 그 효과가 거의 없는 것으로 판명된 개입들을 열거하면서[7] 미세공격성 연구 역시 이런 선례를 따라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무엇보다도, 미세공격성 개입 프로그램은 페미니즘의 방법론인 '''의식고양'''(conscious raising), 다시 말해 감수성 훈련을 목적으로 개발된 것이다. 이는 주류 심리학계에서 지향하는 바와는 매우 크게 달라지는 것이다. 위에서 넘치도록 존재한다고 말했던 수많은 개입 이론들, 예컨대 CIIM이나 다중 정체성 모형, 집단 간 접촉 이론, 편견의 자기조절 모형, 탈범주화 모형, 욕구기반 화해모형 등등은 공통적으로 두 집단 사이의 긴장과 갈등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개입 프로그램을 짜도록 하고 있다. 즉, 가해자에게는 피해자에 대한 심리적 수용을 촉진하고, 피해자에게는 가해자들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방향으로 개입의 목적이 설정된다. 그런데 미세공격성 개입 프로그램은 정반대다. 여기서는 가해자에게는 자신이 유색인종 집단에 대한 차별의식을 갖고 있음을 깨닫게 하고, 피해자에게는 자신이 알지 못하던 사이에 인종차별을 겪는 피해자라는 피해의식을 갖게 만든다. 다시 말해서, 집단 사이의 긴장과 갈등을 오히려 '''드러내고 공론화하는''' 방향으로 개입의 목적이 설정되는 것이다. 이는 사회학이나 PC 운동가들이 선호하는 의식고양 방법론의 전형적인 특성이다. 그래서 유명한 도덕심리학자인 조너선 하이트(J.Haidt)도 "상대방의 눈의 작은 티끌을 보게 만드는 것이 상대방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무슨 도움이 되느냐" 며 코멘터리를 쓰기도 했다.
사회 정의에 따르면,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관계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피해자의 입장을 무시하는 처사이며,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떠한 화해의 개입도 가해자와의 관계의 회복을 "강요" 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심리학자들이 '''고민을 안 했던 것이 아니다.''' 집단심리학계를 놀라게 했던 문헌으로 호주 퀸즐랜드 대학교의 매튜 혼시(M.Hornsey)가 2008년에 발표한 논문이 하나 있는데,[8] 이에 따르면 가해집단이 피해집단에게 진심을 다해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더라도 피해집단이 쉽게 용서에 응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한때 피해집단의 용서 여부를 종속변인으로 설정하는 것이 과연 옳으냐 하는 회의적 의견도 솔솔 나왔다.[9] 그 이후로는 가해사건 → 용서 → 관계회복이라는 기존의 논리를 폐기하고, 그 대신에 이것저것 매개변인들을 찾아본 결과 '''가해사건 → 사과 → 관계회복의 희망 → 화해 → 궁극적 용서'''라는 새로운 논리를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요컨대, "피해자들이 용서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가 아니라, "피해자들이 용서하기 위해서 우선은..." 의 논리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연구를 통해 확인되었다. 이 때문에 욕구기반 화해모형이나 층계모형 같은 이론들도 많이 만들어졌으며, 특히 전자의 모형은 피해자에게 '''관계회복을 강요하는 가해자의 심리 그 자체'''를 연구주제로 삼는다.
4. 관련 문서
[1] 그는 연구자이기도 하지만 성소수자 인권운동가이며 코미디언이기도 하고, 허핑턴 포스트나 버즈피드 등의 진보 매체에서 활동하는 언론인이기도 하다.[2] 물론 이 이론 자체가 아시아계 미국인만을 제한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기존의 수많은 인종차별 관련 문헌들이 전부 아프리카계(흑인)들을 예시화하고 있는 것과는 상당히 비교되는 점이다. 문헌들에서는 아시아계나 흑인들 외에도 라틴계나 미국 토착 원주민들 이야기도 당연히 나온다.[3] 이런 사례들을 지칭할 때에는 오히려 거시공격성(macroaggression)이라고 분리해서 부른다.[4] 한두 번 들을 때는 칭찬일 수 있어도, 스무 번 넘게 가는 곳마다 이런 말을 들으면 더 이상 칭찬으로 들리지 않는지라, 서구권 체류경험이 많은 동아시아 사람들은 저마다 여기에 받아치는 대처 스킬을 한두 가지씩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미국 역사를 전공한 일본계 미국인 역사학자도 빈번하게 당한다고 한다(…).[5] 미세공격성을 연구하는 많은 문헌들이 이 "외인화" 문제를 심각하게 논의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미세공격성이 아시아계 미국인의 인종차별 경험에 대해서 유독 할 말이 많은 이론적 조망인 이유가 바로 이것.[6] 위의 구분은 대럴드 수의 연구팀이 2007년에 발표한 문헌에 근거하는데, 사실상 이 때를 기점으로 해서 이 분야에서 미세공격성에 대한 논의가 폭발적으로 발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7] 그가 언급한 사례들 중에는 해병대 캠프(boot camp) 같은 것도 있다(…).[8] Philpot, C. R., & Hornsey, M. J. (2008). What happens when groups say sorry: The effect of intergroup apologies on their recipients.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34(4), 474-487.[9] Blatz, C. W., & Philpot, C. (2010). On the outcomes of intergroup apologies: A review. Social and Personality Psychology Compass, 4(11), 995-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