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보예 지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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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avoj Žižek[2]
슬로베니아의 철학자로 유럽의 좌익 철학자 중에서는 네임드격인 인물 중 한 사람이다.
1949년에 태어나 젊은 시절에 프랑스로 유학가서 파리 제8대학교의 철학과에서 공부해 기초를 쌓았으며 1990년에 치러진 슬로베니아 대통령 선거에서 자유민주당의 행정부 최고위원[3] 후보로 출마한 적도 있다. [4] 4위까지 하면 당선권인데 5위라서 탈락.
'MTV 철학자'라는 별명도 있을 만큼 논란성 짙은 기획, 톡톡 튀는 문체 등을 통해 현대 철학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이다. 당장 2011년 월가 점령 시위에도 튀어나왔다고 하니 지젝의 근본이 되는 처지에 관해서는 물론 이의가 있을 수 있겠지만, 지젝이 칸트, 헤겔, 자크 라캉, 칼 마르크스 등에 관한 새로운 독해를 제시했다는 것만큼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듯하다.
문제는 새롭기만 하지 그러한 해석이 타당한지는 큰 의문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저명한 좌파 역사학자인 영국의 에릭 홉스봄[5] 은 지젝을 연기자(perfomer)로 묘사하면서 지젝이 좌파적 기획에 기여한 바를 두고 극도로 비판한다.
현대 영미 철학계에서는 지젝을 아예 제대로 언급하지조차 않는다. 지젝은 역사학자에게 '제대로 아는 지역 하나 없는 '국제적' 지식인이라는 비아냥을 듣는 실정인데 전문 분야인 철학계에서의 평가는 조금 더 갈린다. 일단 현대 영미 철학계에서 지젝이 근거로 삼는 라캉은 사장되다시피 했으며, 마르크스 역시 지젝과는 상극에 있는 분석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연구 외에는 인정받지 못한 실정이다.[6] 이는 영미학계가 통계를 이용한 실증적 방법론과 분석 철학을 주류로 하기 때문이며, 마르크스주의 집단 내에서조차 객관에 토대한, 논리상 타당성을 확보한 분파가 분석 마르크스주의자들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일례로 놈 촘스키는 "'''무언가 있는 척하지만 알맹이는 없는 극단적인 사례'''"로 지젝을 꼽았다. 이에 대해 지젝 본인은 “촘스키는 언제나 ‘실증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그 사람만큼 ‘실증적으로’ 틀린 말을 자주 하는 양반도 없는 것 같다”고 맞받아쳤다.
다만 이러하다고 해서 지젝의 철학에 관계된 기획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이야기가 다르다. 영미 철학만큼 대륙 철학은 그 기초가 탄탄하며 지젝은 근본으로 대륙 철학계에 몸담은 사람이다. 따라서 지젝이 영미 철학권에서의 영향력이 미비한 것은 당연지사로 볼 수 있다. 애초에 그쪽 전공이 아니니까. 익히 알다시피 전통 인과론적 논리에 기초한 분석이나 정치 철학에 관해 대륙 철학계에선 명성이 높다.
물론 지젝은 대륙 철학계에서도 평가가 갈리는 면이 있으며, 특히 헤겔 해석 및 라캉 해석에서 헤겔주의자나 라캉주의자 양측에게 공히 엄밀하지 못하다고 공격받는다. 오히려 부정 신학을 옹호하는 쪽의 논리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가디언지에선 이러한 지젝과 촘스키의 논쟁에 대해 “경험주의의 전통이 강한 영미권의 촘스키와 추상적 질문에 천착하는 대륙 철학의 전통 위에 선 지젝의 대립”이라며 “이론과 이데올로기, 현실의 관계라는 중요한 주제에 관한 논쟁”이라고 평한 바 있다. @@
학문적 정밀성과 별도로, 지젝의 최대 무기는 정말 '''재미있다'''는 것이다. 무슨 얘기를 하건 깊게 몰입해서 열정적으로 말하고 커다란 제스처와 욕설, 농담 등을 적절히 섞어 가면서 청자를 몰입하게 하는 데에 탁월한 재주가 있다. 내용에 딱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도 캐릭터 자체만으로 흥미롭다는 대중이 많은데 그 내용도 풍성하고 분석도 예리하다. 듣고 있으면 자신이 지성적으로 향상된 듯한 기분이 들 정도라고 주장하는 대중도 있으며, 어쩌면 그것이 명성의 최대 원인일지도 모른다. 위에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것도 실은 지젝이 TV 토론에서 어마어마한 달변을 뽐낸 결과이다. 실제로 후보 중 한 명은 토론회 중 "슬라보예가 우리 중 가장 똑똑하다는 것은 의심하지 않지만"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목소리와 말투 자체가 몰입감을 끌어올리기도 해서, 준비된 대본을 읽으며 나름대로 연기할 때도 훌륭한 전달력과 몰입감을 준다. 소피 피엔스가 감독한 <Pervert's Guide to Cinema>에서 이 모습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정신 분석과 각종 철학론을 동원해 영화를 해석하기도 하고 자신의 이런저런 견해를 피력하기도 하는데, 철학자이자 영화광인 사람이 철학론으로써 영화를 해석하는 것이니 두말할 필요 없이 뛰어난 활약을 감상할 수 있다. 영화에 관심 있다면 찾아보기 추천.
지젝은 자유주의에 대해 극도의 혐오를 표출한다. 지젝은 자유주의야말로 대중의 의지 발산과 변화를 막는 체제이기에 전체주의보다 해롭다고 간주한다. 하지만 지젝이 마오주의자라는 평가는 잘못이다. 지젝이 긍정한 바는 마오주의같이 극단성을 띤 공산주의 혁명조차도 '대안'을 마련하려는 급진성을 띤 시도라는 측면에 국한된다. 예컨대 알랭 바디우 등 당대의 마오주의자들이 68 혁명을 주도했던 걸 생각해보자. 더욱 구체성을 띠게 말하면, 지젝의 정치 철학은 개인의 차원에선 체제를 거부하는 윤리에 관계된 고집, 사회에 관계된 차원에서는 계급론에 기댄 혁명론이다. 거칠게 말해 덮어놓고 혁명하자는 것. 또한 정치적 올바름도 자유주의자들의 지식이나 지성에 관계된 허영심이라 생각하고 포스트모더니즘에도 비판성을 띤, 신좌파와 대조되는 전형이 될 만한 '''고전적 좌파'''다.
다만 세간에 알려진 바와 다르게 68혁명을 마냥 부정하는 태도로 묘사한 것은 절대로 아니다. 68혁명이 성소수자와 여성과 유색인종을 차별하는 문제를 상당부 해결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는 바람직하게 평가한다. 또한 그 혁명이 반자본주의에 기초했다는 것도 바람직하게 평가한다. 문제는 68혁명때 내세웠던 가치들이 우파도 내세운다는 것이다. 68혁명의 영향으로 집단주의에 토대한 가부장성을 띤 자본주의 체제인 포드주의가 무너졌지만 이전보다 훨씬 복지에 부정성을 띤 개인주의에 바탕한 신자유주의나 자유지상주의자들에게 영향 줬다는 것이다. 68혁명이 내걸었던 평등주의와 반위계주의라는 기치는 이제 “새로운 자본주의 정신”의 수사가 되었으며, “새로운 자본주의 정신”은 이제 기업 자본주의의 억압스러운 사회조직 그리고 실재하는 사회주의 양자에 공히 반기를 든 성공했다고 할 만한 자유지상주의 혁명으로 자신을 현시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우파는 불안정 노동을 옹호할 때 68혁명다운 가치를 동원하기도 하는데 "내년에 어떤 것을 일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게 될지 알지 못한다고 해서 불안해 하지 말라. 당신이 획득한 자유, 자신을 ‘재발명’할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하라. 그럼으로써 당신이 틀에 박힌 일을 단조롭게 계속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즐겨라." 이런 식이다.[7]
정치적 올바름에 관해서는 안티테제에 기초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으로 유명하다.[8] 다만 기본으로 지젝은 좌파 철학자라서 인종주의나 차별을 정당화하는 논지는 펴지 않고 자유주의자가 죄책감을 갖고 진실을 가린다는 식이다.[9][10]
그러나 이는 지젝을 지나치게 우호적인 시각에서 표현한 것이고 자유주의와 평등주의에 대한 부정과[11] 사람들이 멍청하다며 강력한 지도자가 사람들을 일깨워줘야 한다는 식의 전체주의적으로 읽힐 만한 성향, 반서방주의적 성향,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지나친 반대, 그 외 철학적 유사성과 마초적인 이미지 때문에 색깔만 조금 다른 알렉산드르 두긴이라는 비판도 자주 듣는다.[12]
지젝의 근본이 되는 기획은 헤겔을 통해 라캉을 읽고 다시 라캉을 통해 마르크스를 읽는 것이다. 지젝은 이러한 기획을 스스로 "'부정변증법'에서 '변증법적 유물론'으로의 전환"으로 표현한다. 거칠게 말해, 이 두 개념의 차이는 "체제 안에서 사유할 것이냐, 체제 밖에서 사유할 것이냐"는 데에 있다. 문제는 정신분석의 경우 최근 학계 내에서는 그다지 진지하게 다뤄지지 않는 데다가 지젝 특유의 여러 철학자를 오가는 종횡무진한 해석이 학계의 기존하는 이론과 독법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는 점이다. 좋게 말하면 독창성을 띤 철학을 연구하는 셈이지만 안 좋게 말하면 이것저것 갖다붙이며 썰을 푸는 것에 불과하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도 대중을 중심으로 한 인지도는 상당하며 국내에도 번역이 여러 권 되어 있는데 지젝이 자신의 견해를 주장하면서 칸트 등의 철학을 참조하기도 하며[16] 또한 수많은 소설, 영화 등으로 살을 붙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특히 지젝의 영화 읽기는 웬만한 덕력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포스를 철철 풍긴다. 더군다나 앞서 말한 정신분석의 경우 학계에서의 평과 대중을 중심으로 한 호응이 상당히 갈리는 분야라는 점도 지젝의 대중적 인기에 한 몫 한다. 그러나 지젝은 '''영화를 직접 보지도 않고 평론을 쓴다'''. 영화감독 로셸리니의 영화를 비평하면서 해당 감독의 영화를 단 한편도 보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 평론인들이 지젝의 평론을 인용했다면 주의해서 읽을 것.
한국에 자주오는 편으로 2003년, 2010년, 2012년에 방문한바 있다. 내한 당시 투썸플레이스를 보고 "저기는 둘이서 사랑을 나누는 곳이냐?"라는 농담을 했다고 한다.
2012년 6월 인문학 강연회를 위해 방한했다. 방한 도중 쌍용자동차 분향소를 조문했고, 진보신당 대표 홍세화를 면담했다. 기사
2012년 10월 16일 미국 버몬트 대학(The University of Vermont)에서 강의를 하면서 강남스타일을 이른바 "신성시되는 외설(Divine Obscenity)"의 예로 들었다. 싸이를 비틀즈 이래 최대 인기현상이라 추켜세우며 노래 가사와 배경이 되는 강남구에 대해 상당히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강남스타일과 같은 신성시되는 외설이 환영할 만한 새로운 사회 현상이라는 주장의 일환으로 언급한 것이 아니고, 강남스타일과 같은 외설적인 표현이 신성으로 간주되는 자본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로 허용되는 지경까지 왔다는 사실을 에둘러 비판하기 위해 든 사례이므로 국뽕의 입장에서 반기는 것은 오해다.
2013년 7월 1일부터 경희대학교 외국어대학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에미넌트 스칼러로 영입되었다.[17]
2013년 7월 현대자동차 희망버스를 응원하는 편지를 보냈다. 기사
2015년 3월에는 저서 '신을 불쾌하게 만드는 생각들'의 서평을 놓고 뜬금없이 작가 장정일과 이택광 경희대 교수와의 논쟁이 한겨레의 지면을 빌어 벌어지기도 했다.
한겨레에서 그의 칼럼이 비정기적으로 연재되고 있다.#
위에 적혀 있듯이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을 자주함에도 한국 언론에서는 잘 소개되지 않는다. #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대해, "부자를 악으로, 빈자를 선으로 설정하지 않았던 점이 좋았다"며 "뛰어난(excellent)" 영화라고 평했다. #
'''공산주의는 승리할 것이다.'''
한 가지만 약속해 달라. 여러분은 수십 년 후 맥주나 홀짝이면서 '그때 우리는 순수하고 아름다웠지'라고 말하지 않겠다고.[1]
1. 개요
Slavoj Žižek[2]
슬로베니아의 철학자로 유럽의 좌익 철학자 중에서는 네임드격인 인물 중 한 사람이다.
1949년에 태어나 젊은 시절에 프랑스로 유학가서 파리 제8대학교의 철학과에서 공부해 기초를 쌓았으며 1990년에 치러진 슬로베니아 대통령 선거에서 자유민주당의 행정부 최고위원[3] 후보로 출마한 적도 있다. [4] 4위까지 하면 당선권인데 5위라서 탈락.
2. 성향
'MTV 철학자'라는 별명도 있을 만큼 논란성 짙은 기획, 톡톡 튀는 문체 등을 통해 현대 철학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이다. 당장 2011년 월가 점령 시위에도 튀어나왔다고 하니 지젝의 근본이 되는 처지에 관해서는 물론 이의가 있을 수 있겠지만, 지젝이 칸트, 헤겔, 자크 라캉, 칼 마르크스 등에 관한 새로운 독해를 제시했다는 것만큼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듯하다.
문제는 새롭기만 하지 그러한 해석이 타당한지는 큰 의문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저명한 좌파 역사학자인 영국의 에릭 홉스봄[5] 은 지젝을 연기자(perfomer)로 묘사하면서 지젝이 좌파적 기획에 기여한 바를 두고 극도로 비판한다.
현대 영미 철학계에서는 지젝을 아예 제대로 언급하지조차 않는다. 지젝은 역사학자에게 '제대로 아는 지역 하나 없는 '국제적' 지식인이라는 비아냥을 듣는 실정인데 전문 분야인 철학계에서의 평가는 조금 더 갈린다. 일단 현대 영미 철학계에서 지젝이 근거로 삼는 라캉은 사장되다시피 했으며, 마르크스 역시 지젝과는 상극에 있는 분석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연구 외에는 인정받지 못한 실정이다.[6] 이는 영미학계가 통계를 이용한 실증적 방법론과 분석 철학을 주류로 하기 때문이며, 마르크스주의 집단 내에서조차 객관에 토대한, 논리상 타당성을 확보한 분파가 분석 마르크스주의자들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일례로 놈 촘스키는 "'''무언가 있는 척하지만 알맹이는 없는 극단적인 사례'''"로 지젝을 꼽았다. 이에 대해 지젝 본인은 “촘스키는 언제나 ‘실증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그 사람만큼 ‘실증적으로’ 틀린 말을 자주 하는 양반도 없는 것 같다”고 맞받아쳤다.
다만 이러하다고 해서 지젝의 철학에 관계된 기획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이야기가 다르다. 영미 철학만큼 대륙 철학은 그 기초가 탄탄하며 지젝은 근본으로 대륙 철학계에 몸담은 사람이다. 따라서 지젝이 영미 철학권에서의 영향력이 미비한 것은 당연지사로 볼 수 있다. 애초에 그쪽 전공이 아니니까. 익히 알다시피 전통 인과론적 논리에 기초한 분석이나 정치 철학에 관해 대륙 철학계에선 명성이 높다.
물론 지젝은 대륙 철학계에서도 평가가 갈리는 면이 있으며, 특히 헤겔 해석 및 라캉 해석에서 헤겔주의자나 라캉주의자 양측에게 공히 엄밀하지 못하다고 공격받는다. 오히려 부정 신학을 옹호하는 쪽의 논리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가디언지에선 이러한 지젝과 촘스키의 논쟁에 대해 “경험주의의 전통이 강한 영미권의 촘스키와 추상적 질문에 천착하는 대륙 철학의 전통 위에 선 지젝의 대립”이라며 “이론과 이데올로기, 현실의 관계라는 중요한 주제에 관한 논쟁”이라고 평한 바 있다. @@
학문적 정밀성과 별도로, 지젝의 최대 무기는 정말 '''재미있다'''는 것이다. 무슨 얘기를 하건 깊게 몰입해서 열정적으로 말하고 커다란 제스처와 욕설, 농담 등을 적절히 섞어 가면서 청자를 몰입하게 하는 데에 탁월한 재주가 있다. 내용에 딱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도 캐릭터 자체만으로 흥미롭다는 대중이 많은데 그 내용도 풍성하고 분석도 예리하다. 듣고 있으면 자신이 지성적으로 향상된 듯한 기분이 들 정도라고 주장하는 대중도 있으며, 어쩌면 그것이 명성의 최대 원인일지도 모른다. 위에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것도 실은 지젝이 TV 토론에서 어마어마한 달변을 뽐낸 결과이다. 실제로 후보 중 한 명은 토론회 중 "슬라보예가 우리 중 가장 똑똑하다는 것은 의심하지 않지만"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목소리와 말투 자체가 몰입감을 끌어올리기도 해서, 준비된 대본을 읽으며 나름대로 연기할 때도 훌륭한 전달력과 몰입감을 준다. 소피 피엔스가 감독한 <Pervert's Guide to Cinema>에서 이 모습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정신 분석과 각종 철학론을 동원해 영화를 해석하기도 하고 자신의 이런저런 견해를 피력하기도 하는데, 철학자이자 영화광인 사람이 철학론으로써 영화를 해석하는 것이니 두말할 필요 없이 뛰어난 활약을 감상할 수 있다. 영화에 관심 있다면 찾아보기 추천.
지젝은 자유주의에 대해 극도의 혐오를 표출한다. 지젝은 자유주의야말로 대중의 의지 발산과 변화를 막는 체제이기에 전체주의보다 해롭다고 간주한다. 하지만 지젝이 마오주의자라는 평가는 잘못이다. 지젝이 긍정한 바는 마오주의같이 극단성을 띤 공산주의 혁명조차도 '대안'을 마련하려는 급진성을 띤 시도라는 측면에 국한된다. 예컨대 알랭 바디우 등 당대의 마오주의자들이 68 혁명을 주도했던 걸 생각해보자. 더욱 구체성을 띠게 말하면, 지젝의 정치 철학은 개인의 차원에선 체제를 거부하는 윤리에 관계된 고집, 사회에 관계된 차원에서는 계급론에 기댄 혁명론이다. 거칠게 말해 덮어놓고 혁명하자는 것. 또한 정치적 올바름도 자유주의자들의 지식이나 지성에 관계된 허영심이라 생각하고 포스트모더니즘에도 비판성을 띤, 신좌파와 대조되는 전형이 될 만한 '''고전적 좌파'''다.
다만 세간에 알려진 바와 다르게 68혁명을 마냥 부정하는 태도로 묘사한 것은 절대로 아니다. 68혁명이 성소수자와 여성과 유색인종을 차별하는 문제를 상당부 해결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는 바람직하게 평가한다. 또한 그 혁명이 반자본주의에 기초했다는 것도 바람직하게 평가한다. 문제는 68혁명때 내세웠던 가치들이 우파도 내세운다는 것이다. 68혁명의 영향으로 집단주의에 토대한 가부장성을 띤 자본주의 체제인 포드주의가 무너졌지만 이전보다 훨씬 복지에 부정성을 띤 개인주의에 바탕한 신자유주의나 자유지상주의자들에게 영향 줬다는 것이다. 68혁명이 내걸었던 평등주의와 반위계주의라는 기치는 이제 “새로운 자본주의 정신”의 수사가 되었으며, “새로운 자본주의 정신”은 이제 기업 자본주의의 억압스러운 사회조직 그리고 실재하는 사회주의 양자에 공히 반기를 든 성공했다고 할 만한 자유지상주의 혁명으로 자신을 현시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우파는 불안정 노동을 옹호할 때 68혁명다운 가치를 동원하기도 하는데 "내년에 어떤 것을 일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게 될지 알지 못한다고 해서 불안해 하지 말라. 당신이 획득한 자유, 자신을 ‘재발명’할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하라. 그럼으로써 당신이 틀에 박힌 일을 단조롭게 계속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즐겨라." 이런 식이다.[7]
정치적 올바름에 관해서는 안티테제에 기초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으로 유명하다.[8] 다만 기본으로 지젝은 좌파 철학자라서 인종주의나 차별을 정당화하는 논지는 펴지 않고 자유주의자가 죄책감을 갖고 진실을 가린다는 식이다.[9][10]
그러나 이는 지젝을 지나치게 우호적인 시각에서 표현한 것이고 자유주의와 평등주의에 대한 부정과[11] 사람들이 멍청하다며 강력한 지도자가 사람들을 일깨워줘야 한다는 식의 전체주의적으로 읽힐 만한 성향, 반서방주의적 성향,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지나친 반대, 그 외 철학적 유사성과 마초적인 이미지 때문에 색깔만 조금 다른 알렉산드르 두긴이라는 비판도 자주 듣는다.[12]
3. 여담
- 결혼을 두 번 했는데 첫 아내는 철학자이고 두 번째 아내 Analia Hounie는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모델 력이 있고 학위는 라캉 연구, 후덜덜. 원래는 교수와 제자 관계였으나 조금씩 발전해서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둘의 결혼식 사진을 보면 행사 때문에 잠깐 출소한 마피아 두목이 딸의 결혼식에서 같이 찍은 것 같다. 진정한 미녀와 야수. 인생 승리자 근데 또 이혼했다!
- 자국 인구수에 대해 별로 관심 없는지 모국인 슬로베니아의 인구를 300만 명이라고 한 바 있다. 아무리 그래도 대통령에 출마한 사람인데...
-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트럼프 지지 선언을 하였다. # 다만 진짜 트럼프의 사상에 동감해서 지지 선언을 한 것이 아니라 '트럼프를 통해서 미국 정치계가 각성하기를 바라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말의 전문부터 "난 트럼프가 역겹다. 그가 문명화된 인간인지조차 의심스럽다." 라고 시작했을 정도. 이념적으로 지지하는 후보는 2016년, 2020년 모두 사회민주주의 후보인 버니 샌더스다.
- 2018년 5월 기준 좀 심각하게 아픈 듯하다. 최근 나온 강의자료에 따르면 신장에 암이 걸렸을 뿐만 아니라 전립선에도 트러블이 있고 가슴 통증에 안면 마비 현상까지 일어났다면서, 2시간 동안 집중하는 것에도 사력을 다 해야 한다는 모양.
- 그는 "왜 사람들은 조던 피터슨이 아주 설득력있다고 느끼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좌파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답변했다. 또한 조던 피터슨의 유사과학적인 인용에 대해 "피터슨은 바닷가재, 유인원 등을 언급하지 않고서는 여성과 결혼에 대해 말할 능력이 없다"고 말했다. 또한 정치적 올바름이 마르크스주의에서 왔다는 주장은 음모론적이고 마르크스주의는 전혀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현재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훨씬 좋다"는 스티븐 핑커의 주장의 '팩트' 중 대부분이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 조던 피터슨을 음모론자라 부르며 여러 기사와 인터뷰를 통해 비판하자, 2019년 4월 조던 피터슨과 토론회를 가졌다. 인터넷 상에서 주목받는 인물들의 모임이라 밈이 생산되기도 했는데, 지젝의 승리 혹은 우위를 그리는 밈들이 보이며 한편으론 둘 다 별로였다는 반응이나[13] 세기의 토론이라고 바람 잡은 것에 비해선 심심한 토론이었다는 의견도 상당했다.[14] 대체적으로 평은 조던 피터슨의 패배. 자세한 토론 내용은 조던 피터슨 문서의 '슬라보예 지젝과의 토론' 파트를 참고할 것.
- 영상을 보면 느껴지겠지만 본인의 코를 굉장히 자주 만지며 나이 들수록 점점 심해진다. 오랜 강연동안 지속된 그 자신의 습관인지라, 그의 강연을 오래도록 들어온 이들은 물론 그의 강연을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도 상당한 흥밋거리 중 하나로 전해진다.
4. 중심 기획
지젝의 근본이 되는 기획은 헤겔을 통해 라캉을 읽고 다시 라캉을 통해 마르크스를 읽는 것이다. 지젝은 이러한 기획을 스스로 "'부정변증법'에서 '변증법적 유물론'으로의 전환"으로 표현한다. 거칠게 말해, 이 두 개념의 차이는 "체제 안에서 사유할 것이냐, 체제 밖에서 사유할 것이냐"는 데에 있다. 문제는 정신분석의 경우 최근 학계 내에서는 그다지 진지하게 다뤄지지 않는 데다가 지젝 특유의 여러 철학자를 오가는 종횡무진한 해석이 학계의 기존하는 이론과 독법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는 점이다. 좋게 말하면 독창성을 띤 철학을 연구하는 셈이지만 안 좋게 말하면 이것저것 갖다붙이며 썰을 푸는 것에 불과하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도 대중을 중심으로 한 인지도는 상당하며 국내에도 번역이 여러 권 되어 있는데 지젝이 자신의 견해를 주장하면서 칸트 등의 철학을 참조하기도 하며[16] 또한 수많은 소설, 영화 등으로 살을 붙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특히 지젝의 영화 읽기는 웬만한 덕력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포스를 철철 풍긴다. 더군다나 앞서 말한 정신분석의 경우 학계에서의 평과 대중을 중심으로 한 호응이 상당히 갈리는 분야라는 점도 지젝의 대중적 인기에 한 몫 한다. 그러나 지젝은 '''영화를 직접 보지도 않고 평론을 쓴다'''. 영화감독 로셸리니의 영화를 비평하면서 해당 감독의 영화를 단 한편도 보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 평론인들이 지젝의 평론을 인용했다면 주의해서 읽을 것.
5. 한국에 관련하여
한국에 자주오는 편으로 2003년, 2010년, 2012년에 방문한바 있다. 내한 당시 투썸플레이스를 보고 "저기는 둘이서 사랑을 나누는 곳이냐?"라는 농담을 했다고 한다.
2012년 6월 인문학 강연회를 위해 방한했다. 방한 도중 쌍용자동차 분향소를 조문했고, 진보신당 대표 홍세화를 면담했다. 기사
2012년 10월 16일 미국 버몬트 대학(The University of Vermont)에서 강의를 하면서 강남스타일을 이른바 "신성시되는 외설(Divine Obscenity)"의 예로 들었다. 싸이를 비틀즈 이래 최대 인기현상이라 추켜세우며 노래 가사와 배경이 되는 강남구에 대해 상당히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강남스타일과 같은 신성시되는 외설이 환영할 만한 새로운 사회 현상이라는 주장의 일환으로 언급한 것이 아니고, 강남스타일과 같은 외설적인 표현이 신성으로 간주되는 자본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로 허용되는 지경까지 왔다는 사실을 에둘러 비판하기 위해 든 사례이므로 국뽕의 입장에서 반기는 것은 오해다.
2013년 7월 1일부터 경희대학교 외국어대학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에미넌트 스칼러로 영입되었다.[17]
2013년 7월 현대자동차 희망버스를 응원하는 편지를 보냈다. 기사
2015년 3월에는 저서 '신을 불쾌하게 만드는 생각들'의 서평을 놓고 뜬금없이 작가 장정일과 이택광 경희대 교수와의 논쟁이 한겨레의 지면을 빌어 벌어지기도 했다.
한겨레에서 그의 칼럼이 비정기적으로 연재되고 있다.#
위에 적혀 있듯이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을 자주함에도 한국 언론에서는 잘 소개되지 않는다. #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대해, "부자를 악으로, 빈자를 선으로 설정하지 않았던 점이 좋았다"며 "뛰어난(excellent)" 영화라고 평했다. #
6. 저서(국내발매작/발매순)
- 삐딱하게 보기
- 당신의 징후를 즐겨라!
-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
- 환상의 돌림병
- 향락의 전이
- 믿음에 대하여
- 실재계 사막으로의 환대
- 진짜 눈물의 공포
- 무너지기 쉬운 절대성
- 이라크
-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예수의 말에서 빌린 것[18] )
- 성관계는 없다
- 까다로운 주체
- 탈이데올로기 시대의 이데올로기
- 신체 없는 기관
-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
- HOW TO READ 라캉
- 죽은 신을 위하여
- 전체주의가 어쨌다구?
- 시차적 관점
-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
-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 (마르크스의 말에서 빌린 것[19] )
- 사랑의 대상으로서 시선과 목소리
- 나눌 수 없는 잔여
- 폭력이란 무엇인가
- 헤겔 레스토랑, 라캉 카페 (Less than Nothing를 두 권으로 출판)
- 신을 불쾌하게 만드는 생각들 (원제: Islam and Modernity)
- 새로운 계급투쟁
- 판데믹 패닉
6.1. 공저
- 매트릭스로 철학하기
- 지젝이 만난 블라디미르 레닌
- 법은 아무것도 모른다
- 우연성 헤게모니 보편성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주디스 버틀러와 공저)
- 오페라의 두 번째 죽음
- 레닌 재장전
- 예수는 괴물이다(존 밀뱅크와 공저, 원제는 The Monstrosity of Christ)
[1] The only thing I’m afraid of is that we will someday just go home and then we will meet once a year, drinking beer, and nostaligically remembering “What a nice time we had here.” Promise yourselves that this will not be the case.[2] 슬로베니아어와 가까운 세르보크로아트어 표기법에 맞는 표기는 '''슬라보이 지제크'''이다. 참고로 슬로베니아어의 ž는 프랑스어의 j와 같은 발음이다(IPA로 [ʒ\]).[3] 당시 슬로베니아 사회주의 공화국은 집단지도체제를 채택하여 4명의 행정부 최고위원과 대통령이 공동으로 정부를 이끄는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4] 동명의 당 중에는 영국의 자유민주당처럼 사회자유주의 성향의 중도 진보에 가까운 당들도 있다. 한국에 비비자면 민주당과 비슷한 성향. 이 슬로베니아 자유민주당도 비슷한 성향이다.[5] 혁명의 시대 - 자본의 시대 - 제국의 시대 - 극단의 시대 4부작을 쓴 그 저자 맞다. "만들어진 전통"의 공저자이기도.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로 이름 높은데 한국에서도 잘 팔린다.[6] 헤겔은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철학자로는 로버트 브랜덤, 존 맥도웰, 찰스 테일러.[7] 지젝이 68혁명에 관해 쓴 전문은 여기서 보자. 지젝은 68혁명을 마냥 부정했다기보다는 후일 체제에 흡수되어 틀딱이 된 정신 승리나 하는 변질된 신좌파를 깐 것이다.[8] 비판적이란 말이다 http://www.newstof.com/news/articleView.html?idxno=1749&fbclid=IwAR3_oWzfZJsoWrygSkS2IvpGyfIp0FfCVAjfk2wTWhDPzBD6UTEpC_2tMoI 참조 [9] 사상에 관해 정반대지만 조던 피터슨도 비슷한 내용을 발언한 바 있다.[10] 일부 좌파는 이슬람 문제에서 퇴행적 좌파다운 시각을 보이는데 지젝은 "좌파는 서구 제국주의자들이 중동에서 저지른 모든 잘못을 나의 십자가로 짊어지기로 한 사람들이며, 그들의 죄책감은 이슬람에 대한 밑 모를 관용"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기사 무슬림을 무조건 실드칠 게 아니라 이슬람권이 극우답게 된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식. 공산주의를 막고자 냉전 시대 미국이 초당파스럽게 반공주의다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을 지원한 것도 핵심이라고 한다.[11] 지젝은, 자본가들이 무전취식한다고 생각해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것이지 평등주의에는 매우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였다. 정치적 올바름을 반대하는 것도 이러한 성향에서 기인한다.[12] 알렉산드르 두긴도 자유주의와 평등주의에 부정적이며 전통주의적-공산주의를 표방하며, 반서방주의적이며, 정치적 올바름을 혐오한다. 다만 두긴은 극우, 지젝은 극좌에 가깝다는 점에서 차이는 존재할지언정[13] 이들에 의하면 조던 피터슨은 전혀 준비가 안되었고 지젝은 이 얘기했다가 저 얘기했다고. 한국어 자막을 달았던 한 유튜버는 ‘피터슨은 지젝을 잘 몰랐고 지젝은 자기 자신도 잘 몰랐다’고 평했다.[14] 다만 토론에서 지젝의 모습이 인상깊었는지, 이후 지젝 관련 레딧에 조던 피터슨의 팬들이 와서 지젝의 저서를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지젝의 팬들은 입문에 좋은 책들을 추천해주었다.[15] 출처는 영어 위키백과[16] 애초에 헤겔을 한다면서 또는 안다면서 칸트를 대강 때운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다.[17] Eminent Scholar, 약칭 ES. 직역하자면 명학 또는 저명한 학자. ES로 임용했다는 것은 연구원, 교수자 중에서도 우대한 것으로 석좌교수와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일반적인 석좌제도보다 자유로운 것이 해외에서의 연구도 가능한 듯, 다시 말해 굳이 학교에 적을 두지 않아도 된다는 뜻.[18] 정확히 말한다면, 예수가 그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말한 것에 빗대어 그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알면서도 그렇게 한다고 말한 것이다. 주로 인종차별 등의 문제가 현대 사회에서 발생하는 원인을 모색할 때 사용되는 개념.[19] 정확히 말하면 헤겔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들은 반복된다' 라고 말한 것을 마르크스가 빌려와 '그 뒤에 한 문장 더 덧붙여야 한다. 처음에는 비극으로, 그리고 그 다음에는 희극으로' 라고 말한 것을 다시 빌려온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