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사우루스

 

'''바로사우루스
Barosaurus
'''
[image]
'''학명'''
''' ''Barosaurus lentus'' '''
Marsh, 1890
'''분류'''
'''계'''
동물계
'''문'''
척삭동물문(Chordata)
'''미분류'''
석형류(Sauropsida)
'''목'''
용반목(Saurischia)
'''아목'''
†용각아목(Sauropodomorpha)
'''과'''
†디플로도쿠스과(Diplodocidae)
'''아과'''
†디플로도쿠스아과(Diplodocinae)
'''속'''
†바로사우루스속(''Barosaurus'')
''''''종''''''
†''B. lentus''(모식종)
[image]
복원도[1]
[image]
골격도
1. 개요
2. 상세
3. 등장 매체


1. 개요


중생대 쥐라기 후기에 북아메리카남아프리카에 서식한 디플로도쿠스과 용각류 공룡의 일종으로, 속명은 '무거운 도마뱀'이라는 뜻이다.

2. 상세


미국 사우스다코타 주 포츠빌(Pottsville)의 우체국장이었던 엘러먼 부인(E. R. Ellerman)에 의해 이 녀석의 모식표본이 발견된 것은 1889년의 일로, 같은 해 이 소식을 듣고 찾아온 유명한 고생물학자 오스니얼 찰스 마시와 그의 제자 존 벨 해처(John Bell Hatcher)에 의해 처음 발굴 작업이 이루어졌다. 다만 두 사람의 힘만으로 골격 전체를 전부 발굴해내기는 역부족이었던지라 당시에는 미추골 6점을 발굴하는데 그쳤는데, 해당 화석을 분석한 후 이것이 어마어마한 크기와 체중을 자랑하는 공룡의 것이었으리라는 결론을 내린 마시는 1890년 이를 학계에 소개하면서 무겁다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 '바리스(βαρύς, barys)'를 활용한 지금과 같은 형태의 학명을 제안하였다.[2] 이후 1898년에 발굴지를 재방문한 조지 R. 윌랜드(George R. Wieland)가 오른쪽 골반뼈를 비롯해 엉치뼈 일부와 갈비뼈, 꼬리뼈 일부 등을 추가로 발굴해내면서 비로소 모식종의 모식표본이 구성되었다.
한때는 서식 범위가 북아메리카뿐만 아니라 동아프리카까지 뻗어있었던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는데, 이는 1907년 지금의 탄자니아 남동부에 해당하는 지역[3]의 텐다구루층(Tendaguru Formation)에서 발굴된 어느 용각류의 화석 표본이 한때 바로사우루스속의 두번째 종인 아프리카누스종(''B. africanus'')으로 동정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해당 종이 바로사우루스속의 일종으로 편입되기 직전에 보유하고 있던 토르니에리아(''Tornieria'')라는 속명이 2006년부로 복권되면서 없던 일이 되긴 했지만, 불행 중 다행인지 그보다 앞선 2004년 무렵 짐바브웨의 카시층(Kadsi Formation)에서 종명 불상의 바로사우루스(''Barosaurus'' sp.)로 추정되는 화석 일부가 발견된 덕에 아프리카 대륙 자체가 이 녀석의 서식지로 추정되는 지역 범주에서 완전히 빠지는 사태까지는 발생하지 않았다.
이 녀석의 화석에서 디플로도쿠스와 유사점이 발견된다는 이유로 마시에 의해 지금의 디플로도쿠스과에 해당하는 아틀란토사우루스과(Atlantosauridae)에 배속된 이래, 2019년 현재까지도 이 녀석의 계통분류학적 위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아서 디플로도쿠스아과로 분류되는 여러 용각류 공룡들 중에서도 디플로도쿠스와 가장 가까운 관계에 있다고 여겨진다. 이 때문에 비록 아직까지 이 녀석의 두개골 또는 발뼈 전체[4]에 해당하는 화석으로 공인된 사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는 디플로도쿠스와 비슷하게 주둥이에 못처럼 생긴 가느다란 이빨이 달린 길쭉한 두개골과 앞발 안쪽에 돋아난 커다란 엄지발톱을 비롯해 앞다리와 뒷다리 모두 각각 5개의 발가락이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곤 한다. 이 녀석의 몸길이는 대략 27m 정도 되었으리라 추정되는데, 이는 디플로도쿠스속의 모식종인 카네기이종(''D. carnegii'')의 몸길이 추정치와 비슷한 수준.
다만 디플로도쿠스와는 구분되는 별도의 속으로 여겨지는 만큼 둘 사이에는 분명한 차별점도 존재하는데, 우선 이 녀석의 척추뼈를 살펴보면 위를 향해 솟아난 신경배돌기가 디플로도쿠스의 것에 비해 훨씬 작고 덜 복잡한 형태임을 확인할 수 있다. 또 디플로도쿠스가 15개의 경추골과 10개의 배추골을 갖고 있었던데 반해 이 녀석은 배추골이 하나 줄어든 대신 경추골이 하나 늘어난데다, 경추골 각각의 크기도 디플로도쿠스의 것과 유사하거나 1.5배 가량 더 길었다. 그 중 가장 긴 14번째 경추골의 경우 길이가 무려 86cm에 달할 정도로, 이처럼 길쭉한 경추골 하나하나가 이어져 구성된 목의 전체 길이는 무려 8~9m에 달한다.[5] 반면 80여 개에 달하는 미추골의 경우 디플로도쿠스보다 더 짧은 편이며, 이 때문에 디플로도쿠스와 몸길이 자체는 비슷하지만 그 중 목이 차지하는 비중은 더 컸고 반대로 몸통과 꼬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더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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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미국자연사박물관(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에 전시된 골격 화석 표본
현재까지 이 녀석의 것으로 알려진 화석 표본 중 가장 골격 보존률이 양호하다고 평가받는 것은 1923년 미국 유타 주모리슨 층에서 발굴된 표본 AMNH 6341로, 견갑골과 갈비뼈, 골반뼈와 사지뼈 상당수뿐만 아니라 10번째 경추골부터 29번째 미추골에 이르는 대부분의 척추뼈가 보존된 것이 특징이다.[6] 이는 원래 솔트레이크 시티유타 대학교워싱턴 D.C.스미소니언 재단 산하 국립자연사박물관(National Museum of Natural History), 펜실베이니아피츠버그의 카네기자연사박물관(Carnegie Museum of Natural History) 이 세 곳에서 보관하고 있던 골격 화석을 1929년 바넘 브라운(Barnum Brown)이 종합한 것이며, 현재는 뉴욕의 미국자연사박물관 로비에 전시되어있다. 특히 어린 개체[7]를 사냥하려 드는 알로사우루스를 상대로 뒷발로 체중을 떠받친 채 상체를 일으켜 세워 위협하는 자세로 조립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자세는 유명한 팔레오 아티스트인 존 거치(John Gurche)의 복원도를 따른 것으로, 특유의 묘사가 퍽이나 인상깊었던지 이후 여러 대중매체에서 종종 용각류 공룡들이 뒷발로 선 채 상체를 들어올리는 모션을 취하는 것은 대부분 여기서 모티브를 따온 것으로 보인다.[8] 예시1 예시2
다만 실제로 바로사우루스가 이런 자세를 취할 수 있었을지에 대해서는 다소 논란이 있다. 가능하다고 보는 측에서는 일단 이 녀석의 뒷다리 대비 앞다리 길이가 다른 용각류들보다 짧은 편이어서 전체적인 무게중심이 골반 근처에 있었을 것이므로 상체를 일으켜 세우더라도 별 무리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경추골이 디플로도쿠스의 것과 비교하면 훨씬 넓적한 형태여서[9] 목의 상하 운동범위가 기존의 통념보다 훨씬 제한적이었으리라는 결과가 나왔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 녀석이 다른 용각류들처럼 높은 키의 식물을 주로 먹고 살았다면 상체를 들어올리는 행위가 불가피했으리라고 보고 있다. 마침 이 녀석이 상체를 들어올릴 경우 최대 16m 남짓한 높이의 식물까지도 섭취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현재까지 학계에 보고된 용각류 중 키가 가장 큰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사우로포세이돈의 추정치가 17m 가량임을 감안하면 다른 용각류들과의 먹이 경쟁에서 이것이 메리트로 작용했을 여지를 아예 배제하기는 어렵다.
반면 불가능하다고 보는 측에서는 모든 용각류를 비교 대상으로 삼을 경우 분명 앞다리가 짧은 편이지만 범위를 디플로도쿠스 같은 근연속 용각류들로 한정할 경우 오히려 앞다리는 길지만 뒷다리는 짧은 축에 들기 때문에[10] 무게중심이 불안정해질 여지가 더 많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한 이 녀석의 목의 상하 운동범위가 좁은 대신 좌우 운동범위는 굉장히 넓어서 지표면 근처에서 자라는 낮은 키의 식물을 한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도 충분히 섭취할 수 있었을 것이므로, 굳이 높은 키의 식물을 섭취하고자 상체를 일으켜세우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게다가 쥐라기 후기 당시의 생태계를 구성하는 용각류 공룡은 이 녀석 외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었기 때문에 자칫하면 먹이 경쟁이 발생할 공산이 컸는데, 목 자체가 꼿꼿이 서 있는 구조이거나 상하 가동범위가 더 넓었을 여타 용각류들을 상대로 일일이 몸을 일으켜 세워가며 높은 키의 식물을 섭취하는 것이 과연 경쟁력 있는 행동이라고 볼 수 있느냐는 의문점도 무시할 수 없다.

3. 등장 매체


다큐멘터리에서는 1994~1995년에 방영된 KBS/NHK 합작 다큐멘터리 생명 그 영원한 신비 시리즈의 4부 '꽃과 공룡'에 출연했다. 작중에서는 몸길이 27m에 키는 무려 15m라는 크고 아름다운 덩치로 설정되었고, 그에 걸맞게 첫 등장 장면부터 지축을 뒤흔드는 발소리와 함께 그 가공할 몸집을 유감없이 과시한다. 뒷다리로 일어서서 높다란 침엽수 꼭대기 부근에 자라난 부드러운 잎사귀를 빗처럼 촘촘하게 돋아난 가느다란 이빨로 훑어내는 방식으로 먹이를 섭취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작중에서는 이를 목 전체의 무게중심을 유지하기에 적합한 형태로 진화한 것이라고 보았다. 만약 식물을 충분히 씹어부수는데 필요한 많은 이빨을 가졌다면 그만큼 머리의 무게가 늘어나 목 전체의 무게중심이 불균형 상태에 빠졌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대신 위석을 삼켜 뱃속에서 식물성 먹이가 소화될 수 있을만큼 충분히 갈아내는 방식을 취했다는 것이 해당 다큐의 주장. 나레이션에 따르면 하루 최대 1t에 달하는 겉씨식물을 섭취하는 대식가로 추정된다고 하는데, 이 때문에 쥐라기 말기 속씨식물의 번성으로 인해 겉씨식물로 이루어진 울창한 삼림이 점차 사라지면서 먹이 환경이 대대적으로 변화한 것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하고 멸종하는 것으로 나온다.
일본의 SF 만화가인 호시노 유키노부의 작품 블루 월드에서 등장한 여러 공룡들 중 하나다.
로블록스 Dinosaur Simulator에서 플레이어블 공룡 중 가장 높은 체력으로 등장한다.

[1] 가운데 가장 덩치가 큰 녀석이 바로사우루스에 해당한다. 함께 등장한 비교적 작은 용각류 공룡들은 새끼가 아닌 디플로도쿠스를 묘사한 것이며, 그 주변을 활보하는 소형 조각류 공룡들은 드리오사우루스를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2] 그러나 이 녀석의 발견 이후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의 덩치를 뽐내는 초대형 용각류들의 화석이 꾸준히 발견됨에 따라 2019년 현재 시점에서 보면 오히려 덩치에 비해 몸무게가 가벼운 용각류 중 하나로 분류된다. 이는 척추뼈에서 확인되는 다수의 기공 덕분에 골격 자체의 무게가 당초 예상보다 훨씬 가벼웠을 것이라는 관점이 학계에서 널리 공감을 얻으면서 몸무게 수치가 하향 조정되었기 때문으로, 현재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이 녀석의 몸무게 추정치는 대략 12t 정도에 그치고 있다. '''70t'''을 가뿐히 넘기는 몸무게 추정치를 근거로 현재 지구 역사상 최대 크기의 용각류를 논할 때면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아르겐티노사우루스알라모사우루스의 존재는 차치하고라도, 푸에르타사우루스후탈롱코사우루스 등 몸무게가 50t 안팎으로 추산되는 용각류들도 부지기수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무거운 도마뱀'이라는 이름이 되려 민망하게 느껴질 정도.[3] 당시 이 지역은 독일 제국의 해외 식민지였던 독일령 동아프리카의 일부였다.[4] 부분적인 수준으로나마 보존된 것까지 범위를 넓힐 경우 모식표본과 함께 발견된 중족골 2점이 있긴 하다. 이 화석은 1899년 마시에 의해 아피니스종(''B. affinis'')이라는 종명을 부여받았으나, 1919년 해당 골격이 중족골 부분이라는 사실을 밝혀낸 연구에서 아피니스종이 모식종인 렌투스종(''B. lentus'')의 동물이명일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현재는 모식종의 여러 화석 표본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5] 이 덕분에 한때 용각류 중에서 가장 목이 긴 공룡으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이후 중국에서 유난히 긴 목을 가진 것이 특징인 마멘치사우루스과 용각류들이 하나둘 발견되면서 왕좌에서 내려오게 된다. 현재까지 알려진 용각류 중에서 가장 긴 목을 가졌으리라 추정되는 공룡은 마멘치사우루스속의 시노카나도룸종(''M. sinocanadorum'')으로 무려 '''17m'''나 되는 정신나간 수준의 목 길이 추정치를 자랑하며, 이는 전체 몸길이 추정치의 절반에 육박하는 수준이다.[6] 하지만 최근 들어 이 타이틀은 캐나다 토론토의 왕립 온타리오 박물관(Royal Ontario Museum)에서 소장하고 있는 표본 ROM 3670에 의해 도전받고 있다. 해당 화석은 1962년에 왕립 온타리오 박물관의 소장품 중 하나로 등록되었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전시는커녕 관계자들의 기억 속에서 아예 지워진 탓에 무려 45년 동안을 수장고에서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었다. 이후 신임 큐레이터로 부임한 고생물학자 데이비드 에반스(David Evans)에 의해 2007년 다시금 그 존재가 알려졌으며, 이에 따라 수장고에 보관된 표본들을 재조사한 결과 현재까지 전체 골격의 40% 가량이 확보된 상태다. 이 표본의 일부에 해당하는 화석이 아직까지도 수장고에 틀어박힌 채 발견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골격 보존률이 지금보다 더 늘어날 여지도 충분하며,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운이 좋다면 표본 AMNH 6341의 골격 보존률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7] 그런데 원래 바로사우루스의 어린 개체로 추정되던 이 화석 표본이 2012년부로 카아테도쿠스(''Kaatedocus'')라는 별도의 속으로 재동정되어버렸다. 비록 계통분류학적 관점에서는 바로사우루스와 카아테도쿠스가 서로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어찌됐든 현 시점에서는 완전 남이나 다름없는 공룡을 위해 애쓰는 것 같은 모양새가 돼버린 셈. [8] 이카의 돌과 함께 공룡에 관한 유명한 위작 오파츠로 손꼽히는 아캄바로 토우의 공룡 토기 중에도 이 사진의 가운데 위에 있는 토기나 이 사진의 정가운데 토기처럼 해당 복원도의 바로사우루스 자세를 그대로 갖다쓰다시피한 위작이 여러 점 있을 정도. [9] 옆으로 널찍한 이 경추골 특유의 생김새 때문에 이 녀석의 목은 굉장히 굵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일각에서는 이 굵직한 목이 현생 기린처럼 동종 개체 간의 번식 경쟁이나 서열 정리를 위한 몸싸움 용도였으리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실제로 지금까지 발견된 바로사우루스의 여러 화석 표본을 살펴본 결과 모식표본의 경추골이 표본 AMNH 6341의 경추골보다 더 넓적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이러한 굵기 차이가 암수 간의 성적 이형성의 일환일 가능성을 제기한 학자도 있을 정도.[10] 실제로 바로사우루스의 뒷다리는 길이 1.4m 가량의 대퇴골과 1m를 조금 넘는 길이의 경골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디플로도쿠스의 뒷다리는 비록 작은 차이이긴 하지만 이보다 조금 더 긴 편이었다. 헌데 디플로도쿠스의 대퇴골 대비 상완골의 길이가 65%를 간신히 넘기는 수준인 반면, 바로사우루스의 경우 이보다 수치가 좀 더 높아서 대략 70%대 초반 정도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