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숙(정치인)

 

'''대한민국 국회의원 (서울 송파구 갑)'''
제18대
박영아

'''제19·20대
박인숙'''

제21대
김웅
'''대한민국 제19·20대 국회의원
박인숙
朴仁淑 | Park Insook
'''
<colbgcolor=#e61e2b> '''출생'''
1948년 11월 10일 (76세)
서울특별시 송파구
'''거주지'''
서울특별시 송파구 방이동
'''학력'''
서울대학교 의학 학사
'''종교'''
개신교[1]
'''소속 정당'''

'''지역구'''
서울 송파구 갑
'''의원 선수'''
'''2'''
'''의원 대수'''
19, 20
'''현직'''

'''외부 링크'''
공식 사이트
1. 개요
2. 생애
2.1. 정계 활동
2.2. 논란
3. 선거 이력
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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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사, 의학자 출신 전직 국회의원이다.

2. 생애


1948년 11월 10일 경기도 광주군 중대면(현 서울특별시 송파구)에서 태어났다. 경기여자중학교, 경기여자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과대학 교수로 부임하였다. 그 이후 서울아산병원 소아심장학 전문의.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이사를 역임하고,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학장과 제3대 아시아-태평양 소아심장학회 회장을 지냈다.
심장학 분야에서 권위있는 의사 중 한 명이다. 소아심장학의 경우 소아의 심장 크기 등이 성인의 그것보다 작을뿐더러 소아심장관리는 성인의 그것보다 더욱 더 세밀하고 정밀해야 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전문적인 지식을 요하는 분야이다. '''소아심장학 부문에서 박인숙 교수는 국내 1인자로 불린다.''' 특히 박인숙 교수가 집필한 '선천성 심장병' 은 선천성 심장병학계에서 교과서로 불릴 정도이다.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학장에 오르기도 하였다.

2.1. 정계 활동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송파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울산지방검찰청 부장검사 출신 박성수 민주통합당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이후 친박계에 속하였다.
19대 국회에서는 안전행정위원회에 속해 있으면서 활동했다. "성폭력 범죄자의 외과적 치료에 관한 법률안"이라는 이름으로 '''물리적 거세''' 형벌을 성범죄 재발을 위해 도입하자는 주장을 펼쳐 이목을 받기도 했다. 인권 침해라는 논란이 있었지만, 이미 독일 일부 지역과 체코에서 실행 중이며 화학적 거세에 비해 유의미한 재범률 하락 효과가 있고, 무엇보다 박 의원 본인이 의사라는 점에서 그녀가 제출한 법안을 보면 실제로 립서비스가 아닌 '''실현 가능성 있고 재범 방지를 위한, 사뭇 진지한 법안'''으로 보인다.
하지만 "의사 출신이라 잘 안다"는 주장은 권위에 의거한 논증에 지나지 않는다. 당장 박인숙의 커리어 대부분이 '소아 심장' 관련이며, 정작 거세와 관련된 비뇨기과에 대한 전문성은 떨어진다. 다르게 예를 들면, 아무리 권위 있는 내과 의사라 하더라도 총상환자의 외상 치료에 대한 전문성이 높을 수 있는가? 의대생들은 학부 과정에서 거의 모든 분야의 의학에 대해 배우지만, 전문성을 확보하는 과정은 인턴-레지던트-전문의로 이어지는 현장에서다. "학부 수준에서 배운 것으로 전문가라 말할 수 없다"는 건 위키를 하고 있는 수많은 대학생 혹은 졸업생이 스스로에 비춰 봐도 잘 알 것이다. 물론 일반인에 비해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 거야 맞겠지만.
실제로 물리적 거세 제도 도입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법적 인식이 현저히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 '잘못된 판결로 물리적 거세를 했을 때의 대책'을 물은 질문에 대해서는 “자궁이나 난소도 다 떼고 잘 산다”라며 '''호르몬을 먹으면 된다'''라 대답했고, 호르몬제 부작용 우려에 대해서는 '''"10명에서 9명의 순기능이 있고 1명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1명이 될지 5명이 될지 그것은 아직 아무도 모르는 상태로, 나도 모른다"'''라는 경악스러운 답변을 하기도 했다. 무고를 당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식을 낳을 권리가 박탈당해도 상관 없다.''''라는 논리를 펼쳐 사람들을 패닉에 빠뜨르기도 했다.
또 흑역사로는 중독 예방 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 발의에 동참한 경력도 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같은 지역에 공천되어 출마하였다. 이번에도 박성수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맞붙었는데, 당초 출구조사에선 뒤지는걸로 나왔으나, 결국 2,300여 표차로 박성수 후보를 꺾고 재선에 성공하였다. 참고로 송파구 선거구 세 곳 중 유일하게 새누리당 소속으로 당선되었고, 당시 국회에 몇 없는 현역 의사출신 국회의원이기도 했다.[2]
이후 보좌진 임명에 조카와 동서를 채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과 대중의 비판을 받았다.
2016년 11월 30일 기준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페이스북 글에 박근혜 탄핵 눈치보기/주저 의원으로 분류되어 있었지만, 본인이 표창원 의원을 통해 탄핵 찬성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2016년 12월 27일에는 새누리당을 탈당하여 개혁보수신당 창당 작업에 참여하였고, 후에 바른정당에 입당하였다.
2017년 초반기에는 바른정당 서울특별시당 위원장을 맡았으며, 제 19대 대선에서 유승민 후보를 지지하며, 서울시내 유세현장에 거의 빠짐없이 참석하는 등 측근으로 활동하였다. 2017년 10월 10일 전당대회 출마 선언을 하였고, 11월 13일 전당대회 결과 4위로 최고위원에 당선되었다. 유일한 여성 출마자였기 때문에 자동으로 당선이 보장되어 있었음에도, 득표수로도 당선 가능했던 것이 특기할 만한 점.
2017년 2월 28일 파독 광부·간호사에 대한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발의하였으며, 위 법안은 2020년 5월 20일 수정가결되었다.
또 2019년 9월 11일에는 이언주 의원에 이어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을 규탄해 삭발을 거행하였다.이에 황교안 대표가 격려 방문하였다.
2020년 2월 16일, 미래통합당으로 당이 통합되고 당시 같은 당에 김성태 의원이 21대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한지 하루만에 본인도 불출마 선언을 하였다. # 며칠 전까지 공천면접을 보며 출마의지를 보였기에 공천관리위의 불출마 권유(혹은 압박)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후 자신의 지역구 송파구 갑새로운보수당 시절 영입된 김웅 전 부장검사가 단수공천되자 김웅 후보 지원에 나섰다. #

2.2. 논란


  • 2018년 1월 16일 느닷없이 바른정당을 탈당하고 바로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했을데, 언론에서 친유, 자강파 등으로 분류 되었었고 아침에도 당 활동을 하다가 오후에 기습적으로 탈당을 한 것에 대해 바른정당은 크게 당황했었다. 하지만 박 의원이 20대 총선에서 출구조사에서는 2위로 발표된 것으로도 알 수 있듯[3] 상당히 힘겹게 금뱃지를 지켜냈는데, 그런 지역구 특성으로 미루어 보면 자유한국당으로 복당을 한 것이 아주 뜬금포는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에 대해 당에 배신감을 느낀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 패스트트랙 당시 지병으로 인한 고혈압 쇼크로 병원에 실려가 심혈관계 시술을 받은 문희상에 대해 '내가 이쪽에 전문이다. 문희상은 그 정도로 심장수술을 받는다면 말이 안 된다. 임이자 때문에 어쩌다 심장 판막 질병을 발견했고 급사원인을 고쳤으니 생명의 은인으로 모셔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해공갈단으로 몰아가고 있다.'란 발언을 했다. 이 발언에 나경원이나 지도부마저도 곤란해할 수준이었다고.#
  • 2019년 9월 16일 황교안 한국당 대표의 삭발식이 있던 자리에서 조국을 정신병자라고 불러 논란을 일으켰는데,# 때문에 장애단체에서 정신장애인의 인권을 무시하고 혐오와 차별을 조장한다면서 반발했다. 이에 바로 다음날 박 의원은 부적절한 발언이었다며 공식 사과했다.

3.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송파 갑)
''' '''
'''51,306 (52.76%)'''
'''당선(1위)'''
'''초선'''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송파 갑)
''' '''
'''44,928 (43.98%)'''
'''당선(1위)'''
'''재선'''

4. 둘러보기







[1] 출처[2] 박인숙 의원 외에 의사출신 국회의원으로는 신상진 의원, 윤일규 의원 등이 있었고, 그 밖에 치과의사 출신으로는 전현희 의원, 신동근 의원이 있었다.[3] 실제로 당시 국민의당 후보의 야권 표 분산이 아니었으면 진짜로 낙선했을 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