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주

 

'''박흥주'''
朴興柱.
''Park Heung Ju''

[image]
▲ 육군사관학교 졸업 사진
'''최종 계급'''
육군 대령
'''생몰년도'''
1939년 11월 15일 ~ 1980년 3월 6일[1]
'''나이'''
41세
'''직책'''
중앙정보부장 수행비서
'''출신지'''
평안남도 평원군
'''가족'''
아내, 슬하 1남 2녀
'''최종 학력'''
'''육군사관학교'''
1. 개요
2. 생애
3. 여담
4. 매체에서


1. 개요


대한민국의 군인. 최종 계급은 대한민국 육군 포병대령. 박선호 등과 함께 10.26 사건에 연루되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인물이다. 사형 직전 유언 내용을 미루어보아 종교는 개신교로 추정.

2. 생애


평안남도 평원군 태생. 6.25때 가족을 따라 월남하여 학창 시절 당시 국내에서 손꼽히는 명문고였던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등 학업에서 두각을 나타냈지만, 원체 집안이 가난했던지라 등록금 걱정이 없는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할 수밖에 없었다. [2] 육사를 18기로 졸업하고 포병소위로 임관했다. 우수한 졸업 성적 덕분에 6사단에 배치되자마자 관측장교 보직을 건너뛰고 바로 전포대장에 보임되었다.
전포대장 보직을 마치고 6사단장 전속부관이 되었는데, 이 때 그의 인생이 결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박흥주가 전속부관으로서 모셨던 사단장이 다름아닌 '''김재규였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박흥주는 김재규의 심복이 되었다. 또한 임관 초기부터 주목을 받을 정도의 뛰어난 기량이 더해져, 1978년 '''39세'''의 젊은 나이로 대령을 달면서 말 그대로 초고속으로 진급했다. 이후 전속부관 때의 인연으로 김재규의 부름을 받고 중앙정보부장 수행비서가 되었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중앙정보부장의 최측근으로 근무하고 있었음에도 성동구 행당동 산동네의 허름한 판잣집에 살 정도로 청렴함까지 갖추고 있어 주변의 인망이 대단히 두터웠다고 한다. 전두환의 심복이었던 그 장세동조차 사형 집행 후 "유족들에게 연금이라도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제안했다가 한소리 들었다는 일화가 있다.
그러나 10.26 사건 때 김재규의 지시로 안가 경비원 이기주, 중정 의전과장 차량 운전사 유성옥과 함께 식당에 있던 경호원 사살에 가담하였고,[3] 박정희차지철 경호실장을 살해한 김재규가 보안사에 체포되면서 박흥주 대령 자신도 쇠고랑을 차고 말았다. 그러나 박흥주는 체포 후 교도소 벽에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士爲知己者死)는 낙서를 남겼다고 전해진다. 거사 계획을 말했을 때 부하들이 군말없이 모두 따랐다는 점을 보면, 김재규의 카리스마와 부하들의 신망은 대단했던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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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박흥주의 선처를 눈물로 탄원하는 두 딸들의 모습

김재규는 박흥주, 박선호 등 부하들을 살리기 위해 "그들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 주장하며 선처를 바랐고, 초등학생 두 딸이 기자들 앞에서 "박흥주 우리 아빠 살려주세요" 라는 플래카드를 펼치고 울부짖으며 탄원했지만, 공범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4]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공교롭게도 자신의 스승인 김재규의 생일인 1980년 3월 6일 41세의 나이에 총살형[5]으로 형장의 이슬이 되었다. 범죄를 저지른 사형수로 형 집행을 당한 것이었기 때문에 현역 군인임에도 불구하고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없었고, 경기도 포천시 재림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고 한다. 당시 군사재판은 단심제[6]였던 바, 형의 집행도 관련자 중 가장 빨랐다. 그러나 관련 사건의 재판[7]이 아직 진행 중임에도 박흥주 대령만 사형을 우선 집행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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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형 집행 당시 모습 (가운데)

3. 여담


10.26 사건 당시 변호를 맡았던 태윤기 변호사에게 김재규의 업적을 설명한 당사자였다.오마이뉴스 기사
사망 당시 아내와 국민학생인 두 , 생후 8개월인 아들을 두고 있었으며 아내에게 유서를 전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부인에게,

"애들에겐 이 아빠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으며 그때 조건도 그러했다는 점을 잘 이해시켜 열등감에 빠지지 않도록 긍지를 불어넣어 주시오. 앞으로 살아갈 식구를 위해 할 말은 못하고 말았지만 세상이 다 알게 될 겁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죽지 않았다면 우리 가정을 그대로 놔두지는 않을 게요,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하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의연하게 떳떳하게 살아가면 되지 않겠소."

두 딸에게,

"아빠가 없다고 절대로 기 죽지 말고 전처럼 매사 떳떳하게 지내라. 아빠는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다. 너희들은 자라나는 동안 어머니와 친척 어른들의 지도를 받고 양육되겠지만 결국 너희 자신은 커서 독립하여 살아야 하는 것이다. 독립 정신을 굳게 가져야 한다. 조금 더 철이 들 무렵이나 어른이 된 후에도 공연히 마음이 약해지거나 기죽지 말고 용기를 가지고 헤쳐나가려는 강한 정신력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선택을 어떻게 하느냐가 아니겠느냐. 자기 판단에 의해 선택하면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지게 되어 있다.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해야 한다."

사형 집행 직전, 박흥주가 남긴 유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내 조국 대한민국은 희망 있는 국가요 또한 그 국민들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의 대업은 조국통일이며 조국통일에 목적이 있는 한 우리 국민은 어떠한 난관이 있더라도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민족의 새로운 번영과 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번 시련도 온 국민이 수천 년에 걸쳐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이를 슬기롭게 처리해온 위대한 민족혼을 발휘하여 서로 믿고 존중하며 하나의 목적을 위하여 단결하여 온 국민이 더욱 기쁜 마음으로 국가에 봉사하고 고락을 같이 하면서 이번 기회를 새로운 번영의 터전으로 삼아주길 빈다. 강한 성위요, 방패와 병기가 되신 주님께서 나를 키워주고 오늘 이 날 이 때까지 품어준 우리 대한민국 국군을 그 강한 오른팔로 지켜주시고 이끌어주서 간성으로서의 소금의 직분을 다할 것을 믿습니다. 부인에게 하고 싶은 말은 아이들을 떳떳하게 잘 길러서 나라에 봉사할 수 있는 인물을 만들어주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나를 위해 염려해주시고 애써주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월간조선 2000년 7월 기사
시사인 2017년 10월 기사
공교롭게도 그가 사형당한 날짜가 다름아닌 김재규의 생일이었다.

4. 매체에서


  • <제5공화국>에서는 김성준(본명 김진근)이 박흥주 역을 맡았는데, 13화(K-공작계획)에서 최후를 맞는다. 총살대에 묶인 후 "하늘을 보고 싶다" 라며 눈가리개 착용을 거부하고[8] , "대한민국 만세!"[9]를 외치며 죽는다.[10]

[1] 공교롭게도 김재규가 태어난날에 사형당했다.[2] 사실 박흥주를 비롯한 16~18기 전후의 입학생들이 이러한 사정으로 육사에 들어온 경우가 많았다. 대학 입시에서 최상위권을 다투던 상당히 우수한 인재들이었지만 금전적인 문제로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일반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육사로 진로를 전환한 것. 이들 입학 당시 집권하던 이승만 정권은 사실 군사정권이 아니었기 때문에 출세를 목적으로 진학한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육사 출신이란 자부심과 엘리트 의식이 엄청나게 강했으며, 이는 전두환 등 선배 기수를 필두로 한 하나회 세력의 결집에 원인이 되기도 했다.[3] 중정 의전과장 박선호는 안가 경호원 대기실에서 경호처장 정인형과 부처장 안재송을 살해하였다.[4] 사건 당시 박정희, 차지철을 제외한 나머지 사망자 중 박선호가 살해한 정인형, 안재송을 제외한 김용섭, 김용태가 박흥주와 이기주, 유성옥에게 살해 당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로서 동정의 여지는 있을 수 있지만 참작의 여지는 있을 수 없었다.[5] 현역 군인 신분을 가진 자(병, 부사관, 장교 및 후보생들)들의 사형은 총살형으로 집행된다. 주범인 김재규 등은 민간인 신분이었으므로 교수형이 집행되었다.[6] 현재는 군사재판의 경우에도 1심 보통군사법원 ☞ 2심 고등군사법원 ☞ 3심 대법원 순으로 3심제로 진행한다.[7] 그것도 대법원 전원 합의체[8] 실제로도 박흥주는 총살형 집행 당시 눈가리개를 착용하는 것을 거부 했다고 한다. 눈가리개를 씌우려는 병사를 호통 쳐 물리치고 자신의 총살형 집행에 입회한 여러 사람들을 무심히 쳐다봤다고 한다.링크[9] 실제로는 "대한민국 만세! 대한민국 육군 만세!"를 외쳤다고 한다.[10] 그때 그 사람들에서도 윤여정이 나레이션으로 이 사실을 언급하는데, 언급 직후에 "대한민국 만세 좋아하시네. 으이그, 철딱서니 없기는."라고 깐다(...). 남은 가족들을 생각하면 철딱서니 없는 짓을 했다는 말이다. 영화에서 여자는 가족, 남자는 총/권력/정치/마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