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정

 

'''배재정의 역임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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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9대 국회의원
배재정
裵在禎 | Bae Jaejung
'''
<colbgcolor=#878787><colcolor=#fff> '''출생'''
1968년 2월 16일 (56세)
부산직할시 동구 초량동
'''학력'''
데레사여자고등학교 (졸업)
부산대학교 (영문학 / 학사)
'''종교'''
천주교(세례명: 율리안나)
'''가족'''
1남 2녀 중 둘째,
기혼[1], 아들 유경준
'''소속 정당'''
[2]
'''의원 선수'''
'''1'''
'''의원 대수'''
19
'''현직'''
더불어민주당 사상구 지역위원장
대통령비서실 정무비서관
'''경력'''
부산일보 기자
부산문화재단 기획홍보팀장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
민주당 대변인
한국신문윤리위원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원회 부의장
더불어민주당 사상구 지역위원장
국무총리비서실장(이낙연 총리)
대통령비서실 정무비서관
'''링크'''

1. 개요
2. 생애
3. 선거 이력
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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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직 언론인이자 현직 정치인이다. 18년 동안 부산일보의 기자로 일하다가 민주통합당의 비례대표 7번 후보로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부산광역시 사상구에 출마했을때, 41,055표(35.9% 2위)를 득표해 불과 1,869표차로 낙선해 당시 언론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2. 생애


1968년 2월 16일 부산 초량에서 태어나 양말공장에서 기술자로 일했던 아버지를 따라 서울, 성남을 거쳐 초등학교 4학년 때 부산 사상구(당시는 북구)에 정착하게 된다.
어렸을 때 키가 작았던 것과 남성적인 느낌을 주는 이름 때문에 콤플렉스를 느꼈다고 하며 친구들로부터 '배삼룡이 네 친척이냐'라는 놀림을 받았고 다른 여자아이들처럼 예쁜 이름을 갖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 기억에 자신의 이름이 잘 남는다는 걸 알고 이때부터 더 이상 콤플렉스로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귀염둥이 첫째 딸 언니'와 '집안의 귀한 장손 남동생' 사이에 끼어 이도저도 아닌 집안 포지션(...) 때문에 '공부라도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학창 시절 공부에 매진하여 그 덕에 중학생 때까지는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은 우등생이었다고 한다. 부산 사상구에 있는 감전초등학교와 주례여자중학교를 나왔지만 고등학교는 부산 동구에 있는 데레사여자고등학교에 입학하였고, 고등학교 첫 반 편성 배치고사에서 전교 19등의 성적표를 받았다고 한다.
대입을 앞두고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길 희망했으나 부모의 허락이 되지 않아 담임 교사의 권유로 부산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86학번으로 입학하였는데 그 당시는 대학생들이 군사 정권을 규탄하며 민주화 투쟁을 하던 시기였다. 가정 형편이 넉넉한 편은 아니었던 터라 '취업 재수'는 상상해서도 안 될 일이라 민주화 투쟁에 참여하진 못했다고.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고민해야 하는 시기에, 남녀 차별의 벽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대기업 입사는 일찌감치 접고 기자의 꿈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릴 수 있고 남녀 차별 없이 평등하게 할 수 있으며 사회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라 한다. 이후 부산일보에서 만 18년간 기자 생활을 하게되었다.

블로그에 올라온 소개글에 이 외에 몇 가지 소개 영상이 링크되어 있다.[3]

2.1. 정치 입문


부산일보에서 만 18년을 기자로 일했고 퇴사한 뒤 부산문화재단에서 일을 하다가 당시 민주통합당에서 영입 제의를 받아 비례대표 7번 후보로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국회의원으로 일하면서, 애니메이션 및 동화 등 다양한 장르에서 큰 사랑을 받았던 '구름빵'의 저자인 백희나 씨가 구름빵이 무려 4,400억 원에 달하는 수익을 벌어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출판사와의 '매절 계약' 때문에 정작 1,850만 원밖에 받지 못한 사례를 근거로 들며 갑을 관계인 신인 작가와 출판사의 불공정 계약 체결 관행을 근절하고자 저작권법 개정안인 '구름빵 보호법'을 발의하였다.
이에 백희나 작가와 독립PD 협회, 독립제작사 협회, 오픈넷, 참여연대 등의 시민 단체가 이 구름빵 보호법은 하루속히 통과되어야 할 법이라며 찬성 의사를 밝힌 바 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 사상구에 출마해 당선되었던 문재인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로 선출되면서 공약한 바에 따라 2016년 4.13 총선엔 출마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며 사상구 지역위원장 자리에서도 물러나자 그의 뒤를 이어 부산광역시 사상구 출마를 선언하고 2016년 3월 기준으로 지역을 두루 다니며 민심을 살피고 있다. 비록 사상구 출신이긴 하나, 3당 합당 이후 새누리당의 초강세 지역으로 변한 부산광역시더불어민주당 후보들 입장에선 거의 낙선될 각오를 하고 나서야 하는 곳이라 귀추가 주목된다. 출구조사에서는 앞섰으나 결국 41,055표(35.9% 2위)를 득표해 1위를 기록한 새누리당 출신 무소속 장제원 후보와 접전 끝에 득표율 1.6%, 1,869표차로 아깝게 낙선하였다.[4][5]

2.2. 2016년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


14번째 순서(공식 순번 27번째)로 참여하였다. 2월 26일 18시 52분부터 22시 31분까지 약 3시간 39분 동안 발언했다.

2.3.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문재인 정부이낙연 국무총리비서실장에 내정되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면서 2017년 6월 11일, 국무총리비서실장에 임명되었다. 이는 국무총리 비서실 사상 첫 여성 비서실장에 해당하는데, 문재인 대통령의 추천으로 19대 국회 비례대표로 등원했고, 그의 지역구인 사상구를 물려받아 의미 있는 득표를 기록[6]했기 때문에 국정 운영 전반과 정무에 대한 감각을 키울 기회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후 2018년 11월 2일 국무총리비서실장을 사임하여 돌아오는 21대 총선에 나설 것으로 보였는데, 이미 배재정은 지난해 6월 임명 이후 약 1년 반동안 이낙연 국무총리에 대한 보좌를 잘 해온 한편 국무총리비서실의 수장으로서 조직을 무리없이 이끌었단 평을 받기도 하였다.
예상대로 저번 지역구 후보로 나섰던 부산 사상구로 돌아가 더불어민주당 지역위원회에서 활동하며 바로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준비하고, 현역인 미래통합당 장제원 후보와 다시 리턴매치로 붙었으나 저번선거 때 와는 달리 이번에는 출구조사에서부터 오차범위 내에 밀리고 있는 것으로 나오면서 개표결과 이번에도 장제원을 넘지 못하고 또 다시 낙선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단, 20대 총선 때는 당시 새누리당에서 출마한 손수조가 표를 잠식한 것 때문에 석패한 것도 있는데다, 21대 총선은 오거돈의 낮은 지지율 + 유재수 경제부시장의 구속으로 인해 부산광역시에서 민주당에게 최악의 상황이였을 때 치른 선거이고 거기다 장제원의 지역기반이 탄탄한 것을 감안하면[7] 5%p 격차도 꽤 선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낙선 이후 잠행을 계속하다 8월 31일, 청와대 비서실 개편 때 정무비서관으로 발탁되었다.#

3.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7,775,737 (36.45%)'''
'''당선 (7번)'''
'''초선'''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사상

41,055 (35.87%)
낙선 (2위)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59,346 (46.54%)


4. 기타


  • 블로그 제목이 배재정의 사람 사는 세상이다.
  • 필리버스터 발언에 앞서 한 인사말이나, 블로그 글 등을 보아, '사랑합니다'란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 21대 총선 당시 보이시한 패션으로 찍은 선거 포스터가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그걸 보면 의외로 보이시한 패션도 잘 소화하는 듯하다.


[1] 같은 부산일보 출신 동료 기자와 결혼하였다.[2] 대통령비서실 정무비서관 임명으로 자동 탈당되었다.[3] 공교롭게도 그분도 부산광역시 출신이다, 또한 이분도 계신다. 물론 현재는 배재정을 제외하면 다른 정당이다. [4] 그래도 이곳 텃밭 새누리당 후보이자, 인지도면에서 배 의원보다 앞서는 손수조 후보를 예상보다 큰 득표차로 앞질렀다.[5] 실제 개표 방송을 보면 개표율 '''75%''' 시점에서도 계속 '''경합''' 중이었다![6] 당시에 경쟁 상대가 지역 토호인 장제원, 박근혜의 푸시를 받던 손수조였는데, 장제원을 상대로 30퍼센트 중반대의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1.63%p차로 아깝게 낙선했고 실제 출구조사에선 이겼었다.[7] 20대 총선 때 무소속으로 출마해서 1%p 격차로 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