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안 라우드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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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덴마크의 前 축구 선수이자 현 축구 해설자. 현역 시절 포지션은 공격수이다.바이에른 뮌헨이 그를 샀을 때 라우드루프는 분데스리가에서 가장 비싼 선수였다.
그가 그만큼의 가치가 있었냐고? 물론이다. 그는 그의 연봉에 걸맞는 활약을 했다.
그의 형처럼 그는 월드클래스였으며 그가 클럽에 있을 때 팀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라우드럽 형제'''로 유명한, 미카엘 라우드루프의 동생이다. 참고로 아버지인 핀 라우드럽도 덴마크 국대 선수로 축구 명문가에서 태어난 셈.
워낙 형이 거물이라[4] 형에 비해 약간 이름값이 밀리는 느낌은 있으나, 동생 또한 엄청난 선수이다. 형은 플레이메이커로 드리블과 패스에 특화된 공격형 미드필더라면 동생인 브리안은 보다 확실한 전문 공격수, 골잡이였다. 물론 그렇다고 미카엘이 득점력이 없다는 건 아니다. 장신임에도 불구하고 준수한 스피드와 볼컨트롤, 위치선정에 득점감각까지 가지고 있는 뭐 하나 빠지지 않는 공격수.
형이 출전하지 않은 UEFA 유로 1992에서 활약하면서 조국에 우승컵을 안겼다. 이전까지 덴마크는 유럽 축구 무대에서 2류 취급을 받았으나, 라우드루프 형제와 불세출의 골키퍼 페테르 슈마이켈을 앞세워 유럽 무대를 호령한다.
형이 은퇴하면서, 브리안 또한 비교적 이른 나이인 29세에 대표팀 은퇴를 선언해서 팬들에게 큰 아쉬움을 남겼다. 그로부터 3년 뒤 32세 때 프로 무대도 은퇴한다.
UEFA 유로 우승 외에 수상 경력도 화려해서, 밀란과 레인저스 시절에 리그 우승을 맛봤고[5] , 첼시 소속으로 UEFA 슈퍼컵을 들어올렸다. 형이나 동생이나 어느 한 클럽에 진득하니 활약하기보다는 계속 옮겨다니며 커리어를 쌓았다.
2. 클럽 경력
2.1. 브뢴뷔 IF
1987년과 1988년 덴마크 1부 리그인 덴마크 퍼스트 디비전을 우승하고 분데스리가의 위어딩엔으로 이적하였다.
2.2. KFC 위어딩엔 05
브리안은 좀 더 적은 부담감 속에서 뛰기를 원하였고 해외 진출을 하여 분데스리가의 위어딩엔에서 뛰게 되었다. 88-89시즌에 36경기 6골을 득점하며 덴마크 올해의 선수를 수상하였다.
2.3. FC 바이에른 뮌헨
1990년 5월에 분데스리가 당시 최고 이적료를 갱신하며 바이에른 뮌헨에 합류하였다. 33경기 9골을 넣으며 준수한 활약을 했고 팀은 준우승을 했다. 다음 시즌에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 부상을 당하였으나 덴마크 올해의 선수를 다시 수상했고 발롱도르 6위와 피파 올해의 선수 5위를 하였다.
이탈리아로 떠나기 전까지 바이에른에서의 2년간 53경기 출전, 11골을 기록하였다. 컵대회와 유럽대항전을 포함하면 63경기를 출전하였다.
2.4. ACF 피오렌티나
당대 최고의 리그인 이탈리아 세리에 A로 무대를 옮겨 ACF 피오렌티나로 이적하였다. 시즌 초반기에는 화끈한 공격축구로 좋은 출발을 하였으나 시즌 후반기에 감독 교체로 인해 팀 분위기가 어수선해졌고 피오렌티나는 50여년만에 강등을 당하게 되었다. 이 당시 피오렌티나에는 뮌헨에서 온 슈테판 에펜베르크와 '바티골' 가브리엘 바티스투타가 뛰고 있었으나 강등을 막는데는 실패.
2.5. AC 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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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에서의 좋은 활약으로 밀란에 임대되었으나 당시 세리에는 한 경기 당 외국인 선수 3명 제한 규정이 있었다. 브리안이 뛰던 시절 밀란의 외국인 선수 쿼터는 마르셀 드사이, 마르코 판바스턴, 장 피에르 파팽이 들어차 있었고 브리안은 일부 경기만 뛸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수비적인 선수를 좋아하는 카펠로의 특성상 직선적인 플레이의 브리안은 중용되기 힘들었다. 브리안은 챔피언스리그 7경기를 뛰며 밀란을 챔스 우승으로 이끌었다.[6]
2.6. 레인저스 FC
1994년 7월 브리안은 스코틀랜드의 레인저스 FC로 이적하게 된다. 이 당시 레인저스는 유럽 대항전 우승을 위해 야심차게 투자하던 시절. 브리안은 레인저스에서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면서 레인저스의 에이스로 부상하게 되고, 이 당시 바르샤의 오퍼도 거절하고 클럽에 남게 된다.
브리안이 공격을 이끌던 이 시절 레인저스는 스코틀랜드 리그 9연속 우승을 하게 되고 브리안은 덴마크 올해의 선수를 2회 수상[7] 하게 되누 등 스코틀랜드 리그 내에서도 탑급의 선수로 꼽히게 된다.
아직도 레인저스 팬들은 브리안을 역대 최고의 용병 중 하나로 꼽고, 브리안 라우드루프도 레인저스 시절을 "내 커리어 중 가장 좋았던 4년이였다"라고 할 만큼 서로에게 좋았던 시절이였다.
2.7. 첼시 FC
브리안은 1998년 첼시로 이적하나 7경기 0골을 기록한다. 부상으로 많이 뛰지 못한 것이 원인. 그러나 1998 UEFA슈퍼컵 우승을 챙겨가게 된다.
2.8. FC 코펜하겐
1999년 봄에 라이벌 팀인 코펜하겐으로 이적하여 옛 친정팀인 브뢴뵈의 서포터들에게 야유를 받았다.
2.9. AFC 아약스
아약스에서 99-00시즌에 38경기 15골을 득점하는 준수한 활약을 펼쳤으나 부상으로 인해 31살의 젊은 나이에 은퇴를 결심하게 된다.
3. 국가대표 경력
3.1. UEFA 유로 1992
이 당시 덴마크는 지역 예선에서 탈락하였으나[8] 운 좋게 참가하게 된 팀을 이끌고 대회에 참가하게 된다.
부상으로 당시 팀에서 슈퍼스타라고 부를만한 거의 유일한 사람인 형이 출전하지 못하였으나[9] 그는 페테르 슈마이켈과 함께 [10] 조국을 우승으로 이끈다. 4강전 상대는 오렌지 군단 이었는데 오렌지 삼총사인 마르코 판바스턴, 프랑크 레이카르트, 루드 굴리트가 버티는 네덜란드를 승부차기로 꺾고 올라갔으며 결승전에서는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챔피언인 전차군단을 2:0으로 박살내고 정상에 오른다.
비록 본선에서 득점하지는 못하였으나 좋은 활약으로 유로 92 토너먼트의 팀에 뽑히는 업적을 이룬다.
3.2. 1995 킹 파드컵
유로 92 챔피언 자격으로 출전한 1995년 킹 파드컵. 브리안은 사우디아라비아 전에서 원더골을 집어넣으며 2:0 승리를 이끌고 결승에서 아르헨티나를 무너트리는 쐐기골을 어시스트하며 덴마크를 우승으로 이끈다. 브리안은 대회 MVP도 수상하게 된다.
3.3. UEFA 유로 1996
덴마크의 슈퍼스타들인 미카엘과 브리안, 그리고 페테르 슈마이켈이 총출동했으나 덴마크는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실망스러운 결과를 받아들게 된다.
3.4. 1998 프랑스 월드컵
선수생활의 황혼기를 맞은 미카엘와 브리안의 마지막 월드컵 참가.
8강 토너먼트에서 브라질을 만나 2:1로 뒤지던 중[11] 브리안이 동점골을 꽂아넣었으나[12] 종료를 얼마 남기지 않고 히바우두가 역전 중거리 슈팅을 성공시켜 브라질이 3:2로 승리를 거두게 된다. 라우드루프 형제 모두 분전했으나 아깝게 패배하고 이 경기는 두 형제 모두에게 마지막 국가대표 경기가 된다.
4. 플레이 스타일
우아하고 기술적인 선수이며 빠른 속도와 볼 컨트롤로 상대 수비를 벗겨내는 플레이에 능하였다. 양발과 머리 모두 사용하여 득점이 가능했고 넓은 시야를 이용하여 동료를 활용할 줄 아는 이타적인 선수였다. 다재다능한 선수로 양쪽 윙어, 센터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등 다양한 공격 포지션 전체를 소화 가능했으나 프리롤로 뛰는 것을 즐겼다. 비록 실력과 재능은 뛰어났으나 기복이 심한 점은 단점으로 꼽힌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 브뢴뷔 IF
- 덴마크 퍼스트 디비전: 1987, 1988
- FC 바이에른 뮌헨
- DFL-슈퍼컵: 1990
- AC 밀란
- 세리에 A: 1993-94
- UEFA 챔피언스 리그: 1993-94
- 레인저스 FC
- 스코티시 프리미어 디비전: 1994-95, 1995-96, 1996-97
- 스코티시컵: 1995-96
- 스코티시 리그컵: 1996-97
5.2. 개인 수상
- FIFA 월드컵 올스타팀: 1998
- UEFA 유로 토너먼트의 팀: 1992
- 킹 파드컵 골든볼: 1995
- 덴마크 올해의 축구 선수: 1989, 1992, 1995, 1997
- 스코틀랜드 올해의 축구 선수: 1994-95, 1996-97
- PFA 스코틀랜드 올해의 선수: 1994-95
- 키커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 1989-90
- 월드 사커 올해의 팀: 1992
- 옹즈 드 옹즈: 1992
- FIFA 100: 2004
- 덴마크 축구 명예의 전당
- 스코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
6. 모델 셀러브레이션
하지만 브리안 라우드럽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장면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8강전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골[13] 을 넣고 보여준 셀러브레이션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모델 세레머니'[14] 로 화제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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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여담
- 슬하에 아들 1명, 딸 1명을 두었다.
- 현재 페테르 슈마이켈을 대체해서 덴마크 방송국에서 챔피언스 리그 해설을 하고 있으며 유소년 교육에도 힘쓰고 있다고 한다.
- 2010년 9월 림프종이 발병했다고 한다. 이후 10년동안 투병생활을 하다가 마침내 완치판정을 받았다.
8. 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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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시절 정말 잘생긴 축구선수로 유명했다.
외모는 형보다 확실히 낫다.
[1] 아버지인 핀 라우드럽이 오스트리아에서 뛸 때 태어났다.[2] 중앙 공격수[3] 공격형 미드필더[4] 라우드루프 형제가 활약할 무렵 국내에선 유럽축구를 접할 루트가 마땅치 않아 아는 사람만 아는 선수였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1990년대를 대표하는 선수이다. 그 명성을 한줄로 요약하자면 '''1990년대를 풍미한 FC 바르셀로나 원조 드림팀 플레이 메이커이다'''.[5] 참고로 브리안이 밀란에서 뛰던 시절 형 미카엘이 속한 드림팀 1기가 챔스 결승전에서 4:0으로 개발살나고 이는 드림팀이 와해되는 원인이 된다. 미카엘은 당시 크루이프와의 불화로 결승전엔 벤치에도 앉지 못하고 관중석에서 관전하였다.[6] 이때 결승에서 형이 뛰던 바르샤 드림팀이 4:0으로 개발살났다...크루이프의 드사이 축구레슨 발언도 이때[7] 4회 수상, 현재까지도 최다 수상 기록이 깨지지 않고 있다.[8] 본래 예정대로라면 본선 진출한 유고슬라비아가 대회에 참가하는 것이지만 하필 이 시기에 터진 내전의 영향으로 인해 UN으로부터 '''국제 스포츠 대회 출전 금지 조치''' 제재를 받았으며 이 제재로 유고슬라비아는 사실상 탈락하는 상황에 놓여지면서 출전이 좌절 되었다, 실제로 당시 선수들은 개최국 스웨덴에 미리 도착했다가 제재를 받고 되돌아가는 상황을 겪게 된다.[9] 사실 두 형제는 당시 리하트 묄러 닐센 감독과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대표팀 은퇴선언을 하였고 이로인해 덴마크 대표팀은 두 형제 없이 가야하는 상황에 놓여져서 어려움이 있었다.[10] 미카엘이 워낙 대단해서 그렇지 이들도 당시 유럽에서 명함 내밀 정도는 된다.[11] 전반에 브리안이 호돈신에게 위험한 백태클을 시전하였는데 경고 한장 안받고 넘어가게 된다.[12]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모델 세리머니[13] 이 당시 브리안에게 오는 로빙패스를 호베르투 카를루스가 아크로바틱하게 걷어내려다 헛발질을 하여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다.[14] 피파 온라인3에도 이 세리머니가 있다. 커맨드는 shift+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