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요 LG(야구)
1. 개요
유래는 말그대로 사랑해요 LG.
1994년 LG 트윈스의 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과 LG그룹 출범 광고가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서 '''사랑해요 LG'''는 가장 성공적인 이미지 광고의 사례로 지금도 인정받고 있으나, 1994년 우승 이후 부진을 거듭하는 LG 트윈스가 삽질을 할 때 마다 타 팀 팬들이 LG를 조롱하기 위해 써 먹는 말로 변질되고 말았다.
대체로 FA 선수들을 거액으로 사 왔지만, 정작 팀에서는 포텐이 안 터지는데 다른 팀에만 가면 활약하는 선수들이 나오는 현상이 일어났을 때마다 타팀 팬들이 쓴다. 자세한 것은 LG의 먹튀 잔혹사, 먹튀 참조. 더 나아가 경기중에 LG 투수들이 형편없이 털리거나 어이없는 실책으로 상대에게 승리를 갖다바쳤을 때 쓰기도 한다.
2012년부터는 목동에 있던 어느 구단의 두 분의 입장에서 쓰일 듯[1] . 그러나 2000년~2010년까지는 LG와 트레이드에서 가장 크게 이득을 본 팀은 KIA 타이거즈이며,[2][3] "사랑해요 LG"도 KIA 팬들이 가장 먼저 써먹었다. 단, KIA 팬들의 이 표현에는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심정이 상당수.
그렇지만 상대전적까지 포함한다면 KIA보다는 넥센이 LG를 조롱하기 더 쉽다는 것도 있어 요즘은 되려 넥센팬들이 LG팬들을 조롱하는데 많이 활용. 게다가 아래의 사례 중 박병호, 심수창-김모 씨, 송신영 2대2 트레이드가 대단히 유명한 영향도 있다.
신생팀인 NC 다이노스 팬들도 외친다고 한다. 사실 NC의 각종 첫 기록에는 LG를 상대로 한 것이 은근히 많다. 창단 첫 승, 창단 첫 스윕 승, 외국인 선수 최초 노히트 노런, 창단 첫 포스트시즌 경기 승리, 창단 첫 한국시리즈 진출까지. 심지어 기사까지 있다.[4]
그리고 2013년 시즌 종료 후 KIA가 LG로부터 트레이드를 통해 받아온 이용규가 FA 자격을 얻은 후 팀을 떠나 한화로 건너간 뒤 대안으로 영입한 FA 선수가 '''이대형'''이며, 4년 24억 원이나 줬다는 것이 밝혀지자 LG 팬들이 KIA 팬들을 역으로 조롱하였다. LG로서는 계륵을 넘어 민폐인 선수를 처분했을 뿐 아니라 KIA로부터 보상선수를 받아올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대형은 생애 최고타율을 기록하며 KIA 팬들은 또다시 사랑해요 LG를 외치게 되었다. 신승현이 별로 활악을 하지 못한 점까지 감안하면'''이었지만''' 이대형은 1년 만에 KIA 타이거즈 김기태 감독과 관련되었다고 추정되는 갈등을 이유로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팀을 떠나게 되었고 신승현은 2016년 LG의 셋업맨으로 활약하면서 재평가되고 있다. 이대형은 kt에 가서도 돈 값을 하고 있긴 하지만 어쨌든 KIA 소속이 아니니.
2018년, 김현수를 데려왔음에도 '''두산전 17연패를 기록했다.(...)''' 그나마 시즌 0승 15패를 기록하던 중 마지막 경기에 승리해서 1승 15패가 되었다.[5]
2. LG의 아낌없이 주는 트레이드
해태-KIA의 프랜차이즈 스타 홍현우가 LG로 FA이적을 한 뒤 먹튀가 되었다. 이원식, 소소경은 잘 해봤자 5선발급 투수였다. 이용규는 당시 외야수 유망주였지만, 당시 LG에는 키도 더 크고 발도 좀더 빠른 이대형이 있었다. 때문에, 아무래도 야수보다는 투수를 높이 쳐주는 트레이드 논리상, LG는 균형을 맞춰주기 위해 이용규를 끼워 넣어줬다. 결과적으로 나머지 세 명은 다 트레이드 후 망했는데, 이용규는 KIA에서 포텐이 터져 특급 테이블세터가 되었고, 이 트레이드를 주도한 당시 LG 감독이었던 이순철은 두고두고 욕을 먹는다.
김상현은 원래 2000년에 KIA에 입단했으나, 2002년 당시 LG의 좌완 투수 방동민과 트레이드 되었고 2004년 시즌 후 상무에 입대하였다. 방동민은 KIA에서 소리없이 은퇴했고, 김상현은 상무에서 2군 홈런왕이 되었으나 1군에서는 제대로 활약을 못했다. 2009년 LG는 몇년 후를 보고 재활 중이었던 강철민을 데려오려고 김상현과 박기남을 주었다. 두 선수는 팀계획에서 주전은커녕 1군 엔트리에 못들어갈 처지였다. 강철민은 한양대 에이스였으며, 제2의 정민태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던 선수. LG는 트레이드 균형을 맞춰준답시고 박기남을 여기에 끼워줬다. KIA는 괜찮다고 했는데에도 불구하고 LG는 박기남도 데려가라고 했단다. 역시 사랑해요 LG 김상현과 박기남은 이적 하자 마자 KIA 1군으로 기용되었다. 조범현 감독이 김상현을 3루 주전으로 세우자 곧바로 맹활약을 했는데 이적후 때린 시즌 1~3호 홈런이 모두 만루홈런이었다. 주전을 보장하는 분위기 속에 자심감까지 더해지면서 시즌 내내 해결사 역할을 하더니 홈런 타점 장타율에서 1위 & MVP를 획득했다. 당연히 2009년 KIA 우승의 1등 공신으로 평가 받는다. [6] 박기남도 이적하자 마자 1군 멤버로서 꾸준히 경기에 나왔다. 특정 포지션을 밀어줄 정도의 타격과 수비는 아니지만 만능 내야수 은퇴할때까지 KIA에서 궂은일을 다 해냈다. 그러나 강철민은 재활에만 4년을 끈 끝에 2011년 결국 LG에서 1승도 못하고 웨이버 공시되고 말았다.
미리 결론부터 서술하자면 왜 LG 트윈스가 10년간 안 되는 팀이었는지 여실히 보여준 트레이드. 여담으로 위의 두 트레이드와 달리 이 트레이드는 타팀팬들도 잘 알만큼 너무 유명하다.
심수창에게 2011시즌은 엄청나게 후려쳐진 연봉과 '''17연패'''라는 신기록을 달성하면서 야갤 등에서 '슈퍼스타 심수창(감사용)'으로 불리우는 등 특히 다사다난이 많았던 시즌이었고, 박병호는 LG의 꽤나 두꺼운 선수층에 묻혀 잠재력에 비해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데다가 소극적인 공격으로 LG팬들의 뒷목을 잡게 만드는 게 부지기수여서 당연히 욕을 많이 먹었다. 송신영은 트레이드 이전에 넥센의 훌륭한 셋업맨이었다. 게다가 2011시즌은 대부분의 팀이 구원 투수 부족에 허덕인지라 믿을맨의 가치가 상한가를 쳤었다. 그리고 은 넥센의 유망주로서 선발 로테이션[7] 에도 꾸준히 들어가는 등 기대가 많이 되는 투수였다. 즉 트레이드 시점을 볼 때 박병호는 터지지 않는 구리본즈, 심수창은 다패왕이었으며, 송신영은 리그 최고급의 불펜투수, 김성현은 최고급 유망주였다. 이러다 보니 트레이드 시점에는 현금이 끼어있을 것으로 확실시되는 트레이드였다. 이후에 실제로 15억을 LG가 추가로 주었다고 밝혀졌다.
심수창은 트레이드 이후 2경기만에 연패를 깼다. 심수창의 2011년 최종성적은 2승이지만 다음 시즌에 선발 투수 후보로서 넥센팬에게 기대를 받았다. 박병호는 트레이드된 후 두 번째 경기에서 첫 안타와 득점을 신고하더니 넥센팬으로부터 '브룸박'이라는 별명까지 받을 정도로 그 다음날부터 연일 맹타를 휘두르며 2011년 8월부터 넥센의 중심타선을 꿰찬다. 넥센으로 트레이드된 후 스윙을 적극적으로 가져가는 것만 봐도 LG시절하고 매우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송신영 역시 LG에 와서 그렇게 나쁘지 않은 활약을 보였지만 트레이드 이전의 시절에 비해 약간 불안한 모습이였고[8] 시즌 후에 FA자격으로 한화로 이적해버렸다.
은 LG로 트레이드 된 이후에도 선발 투수로서 매번 기회를 받으며 2012년에 기대를 받았으나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넥센에서 했던 승부조작이 LG에 갔을 때 발각되면서 제대로 호구잡혀 버렸다. 오죽하면 승부조작 사건이 터졌을 당시 '이장석이 승부조작을 미리 알고 김성현을 처리한 거 아닌가?'란 음모론까지 나왔을 지경이었다.
[1] 특히 이장석은 다른 분야에서도 LG와 악연이 있다. 반도체 빅딜 건으로 LG전자와 관계가 있는데 이는 이장석 항목 참조.[2] 그렇지만 의외로 LG와의 트레이드에서 손해를 많이 본 팀도 KIA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용규 이전까지는 손해를 봐왔지만, 2000년대에 이용규-김상현-박기남으로 3연속으로 이득을 본 덕에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다.[3] 여담으로, 1993년 스토브리그에 해태 - LG 시절 트레이드 중 한대화와 김상훈이 포함된 빅딜에서 LG가 해태를 이긴 적이 있는데, 이는 LG로서도 그 해의 운명을 바꿨던 트레이드라 지금도 자주 회자가 되는 트레이드다. 이 때까지만 해도 LG는 야구판 트레이드 시장에서 스마트하게 움직인다는 평이 많았다. [4] 2014년 MBC SPORTS+에서 4월 11일 경기가 껴있는 3연전 때 보여줬다.[5] 2016 롯데는 NC를 상대로 16경기 중 1번(2번째 경기)만 이겨서 역시나 1승 15패. 마산구장에서는 롯데팬이 결국 "느그가 프로가?"라고 조롱플래카드를 걸어 버렸다.[6] 그 이후에 활약은 좀 빛이 바래긴 하지만, 그래도 LG시절보다는 낫다.[7] 사실 넥센의 선수층이 너무 얇아서 이 선발로 뛰어야 했던 감이 있기도 하다.[8] 박종훈 감독의 혹사와 본인이 팀 , 박성적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원인이 되었던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