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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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투수로 활약했던 전 KBO 프로야구 선수. 은퇴 후, 2020년부터 MBC SPORTS+ 해설위원과 방송인으로 활약하고 있다.
고교 시절 메이저 리그 구단에게 입단 제의를 받고 아마추어 시절 국가대표팀 최종 명단에도 선정되었을 만큼 촉망받던 유망주였지만 아쉽게도 프로에서는 제 기량을 다 발휘하지 못하고 꾸준한 활약을 보이지 못한채 프로생활을 마무리했다.
입단 3년차에 달성한 선발 투수로 10승을 거둔 게 유일하게 내세울만한 기록인 만큼 한국야구계에 이렇다 할 인상을 남기지 못하였고 그저 잘생겼던 야구 선수로 팬들에게 기억될 거 같았지만, 엠스플의 유튜브 채널 스톡킹의 DJ로 출연하며 현역시절 서글서글한 성격으로 16년 동안 여러 팀을 경험하면서 맺은 넓은 인맥과 훤칠한 외모 그리고 재치있는 입담 보이며 활약하고 있다. 더불어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동방송사의 정식 해설위원로 낙점되고 이따금 예능방송 게스트로 나오기도 하는 등 자신의 활동영역을 점차 넓혀가고 있다.
DJ로선 적임자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의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해설위원로선 아직 서툰 '해설 꿈나무'이다.[9]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방송 감각이 좋은 편이고, 전형적인 해설이 아닌 가볍고 유쾌한 스타일의 해설을 기대해 볼 수도 있다는 점에서 그의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케 한다. 프로 리그에서 다 끌어내지 못한 기량을 새로운 무대에서 펼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2. 선수 경력
LG 트윈스의 프랜차이즈 선수에서 저니맨#s-3.1[10] 이 된 케이스.[11] 긴 여행을 거친 후 결국엔 프로 첫 팀으로 돌아왔고, 2019년 16년간의 프로 선수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은퇴하였다.
2.1. 18연패에 대하여
- 심수창에게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그야말로 범접불가의 기록인 18연패를 한 적이 있다. 같은 기간 동안 승운이 불운한 편에 속하는 류현진은 30승을 거뒀다고 한다. 다만 승패는 투수 본인 외의 영향도 상당히 큰 기록이기에 단순히 그 기록만 가지고 선수를 평가하는 건 예단이라 할 수 있다. 여튼 진귀한 기록임은 분명하다.
- 18연패 통합 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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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연패 중 한 경기를 제외하고 17연패를 LG 트윈스에서 기록했다. 이때 LG는 6668587667의 시기이다. 특히 2009년 6월 LG는 승률 44%(25경기 11승 14패), 7월 승률 42.1%(19경기 8승 11패), 8월 승률 37.5%(24경기 9승 15패), 2009년 최종 승률 40.6%로 심수창의 연패와 동시에 팀도 극도의 슬럼프에 빠졌다. 더구나 넥센으로 이적한 2011년은 넥센이 8위(꼴지)를 기록한 해. 심수창이 부진해서 팀 성적이 저조했을 수도 있고 그해 성적이 저조한 팀에 있어서 심수창이 부진했을 수도 있다.
- 18연패 기간 동안 심수창에게 가장 많은 패배를 안겨준 팀은 KIA 타이거즈(5회). 뒤이어 롯데 자이언츠, 삼성 라이온즈(4회), 넥센 히어로즈(3회), SK 와이번스, 한화 이글스(1회) 순이다. 2009년 8월 6일, 조인성과의 마찰로 2군행이 된 경기도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 2009시즌의 LG는 KIA와 2승 1무 16패의 상대 전적을 기록하며 기아에게 승리를 조공하다시피 했다. 덤으로 2009 시즌 MVP를 받게 되는 김상현을 넘겨주기도 했다.
- 18연패 중 선발 등판은 15경기, 그 중 퀄리티 스타트(QS)는 퀄리티 스타트 플러스를 기록한 1경기를 포함한 5경기. QS%(=QS 성공률) 33.3%. 참고로 KBO에서 선발투수의 QS%는 2008년 38%, 2009년 34%, 2010년 35% 정도이다.
- 18연패 중 가장 아쉬웠다고 평가되는 경기는 퀄리티 스타트 플러스를 기록한 2009년 7월 31일 넥센전과 퀄리티 스타트 플러스에 아웃 카운트 한 개가 모자랐고 PQS 5점 만점, 게임 스코어(GSC)를 63점을 기록한 2011년 7월 8일 KIA전이다.[15] 참고로 게임 스코어는 리그 평균이 약 50점이고 60점 이상일 경우 호투한 것으로 평가한다.
- 2011년 7월 8일 KIA전에서 심수창은 단지 1실점을 했지만 LG 타선은 경기를 통틀어 20타수 2안타를 기록한다. 반격의 기회도 없이 7회 초 우천 콜드게임 선언됨에 따라 윤석민은 투구수 96개로 완봉승을 거뒀다.
- 18연패 중 가장 억울할(?) 만한 패배는 2010년 7월 30일 롯데전, 물론 던지는 족족 다 맞긴했지만 공 2개를 던지고 패전 투수가 되었다.
- 18연패 기간 중 가장 아쉬운 시즌은 LG에서의 2009시즌. 잔여 34경기를 남겨둔 상황에서 징계성으로 2군으로 가게 되었고 당시 10승까지 4승만을 남겨둔 상태였다. 시즌 승률이 33.3%였던 것을 고려하면 두 번째 10승을 기록할 수도 있던 시즌이었다.
- 2009시즌 심수창의 기록과 아주 유사한 기록은 2020시즌 SK 이건욱의 기록. 둘 다 똑같이 6승 12패, 122이닝을 소화했고 심수창은 74실점(72자책점), 이건욱은 77실점(77자책점)이다. LG와 SK 두 팀다 해당 시즌 밑에서 2위를 기록했다. 다만 심수창은 6승을 먼저하고 7연패를 내리 기록했다.
- 2009년 7월 23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5⅓이닝 5피안타 2탈삼진 3실점(3자책점)으로 분전했지만 아킬리노 로페즈가 8이닝 4피안타 6삼진 무실점, 게임 스코어 77점으로 맹활약하는 바람에 연패를 끊어내지 못했다. 이날 LG 트윈스는 31타수 5안타[16] 로 타격 지원이 매우 저조했다.
- 18연패 중 가장 최악의 경기는 단연코 2009년 8월 6일 기아전의 그 경기. 경기의 내용도 형편없었고 운도 없었고 조인성과의 불필요한 마찰로 2군으로 강등되었기 때문에 단연 그의 선수 경력을 통틀어서도 최악의 경기로 평가받는다.
- 허구연 해설위원은 만약 심수창이 1군 선발 투수로서 가치가 없었다면 곧바로 2군으로 내려갔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즉, 비록 연패는 했지만 실력에는 큰 하자가 없었다는 뜻. 18연패만으로 판단하기 이전에 18연패 기간 동안 1군에 자리한 기간이 적지 않음도 생각해야 한다.
3. 해설위원 & 방송 경력
3.1. ~ 2019년
2012년 2월 23일 목요일 밤 11시에 XTM 히어로는 슈트를 입는다가 첫 방송하였다.
2018년 10월 16일부터 시작되는 아프리카 TV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을 생중계 이효봉, 임용수와 함께 해설을 맡았다. # 이때 "하XX은 지금 던져도 '''2구'''로도 삼진 잡는다", "강진[17] 에 비하면 서산[18] 은 청담동"과 같은 농담으로 수많은 야구팬에게 본인의 입담을 선보였다.
연예인 뺨칠 정도로 외모가 수려하고 모든 동료 선수들이 인정할만큼 입담이 좋아서 은퇴 전부터 해설위원이 됐든 예능인이 됐든 언젠가는 방송계에 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 본인도 현역 선수를 그만 두면 방송계로 나가겠다는 결심이 어느 정도 있었다.
2019년 12월 4일, 이전에 엠스플에서 유튜브를 한다고 연락이 왔고 은퇴 후 MBC SPORTS+의 유튜브 프로그램인 스톡킹 야구부의 고정 DJ로 발탁됐다. 정용검 캐스터가 말하기를 입담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향후 해설위원이나 예능 활동이 기대가 되었다.
첫 방송부터 자신의 FA 당시 있었던 일을 풀어내며 정용검 캐스터와 심재학 해설위원을 모두 빵 터지게 했다. 또한 LG 트윈스 차명석 단장과 전화 통화를 했는데, 첫 마디가 "저 자르실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이에 차 단장은 "심수창 선수를 자르기 위해 굉장히 노력을 많이 했다며 방송을 초토화했다. 그리고 다른 회차 방송에서는 가장 애착이 가는 기록은 뭐냐는 질문에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18연패'''라며 차명석 스타일(=셀프디스)의 개그를 구사했다. 예능에 최적화된 유머를 갖고 있어 기대치가 높아지는 중. 또한 '''제로퀵'''[19] 영상1영상2, 낭심(NS) 패스트볼, 멧돼지 패스트볼[20] 등 어록들을 탄생시키며 시청자들을 빵터지게 했다. 덤으로 지나치게 타인을 디스하는 스타일의 인방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듯하다. 전형적으로 본인을 디스하며 개그로 승화하는 타입이다. 이후 김경언, 장민석 편에서도 선수 은퇴 이후 해설위원을 시작했는데 야구를 안 한다며 본의 아니게 개점 휴업하게 된 본인의 상황을 셀프디스하며 웃음을 주었다.
3.2. 2020년
2월 14일, 스톡킹 방송에서 보여준 입담 덕인지 결국 해설위원으로 정식 계약을 맺으며 해설가로서 마이크를 잡게 되었다. 해설위원 계약 후 첫 인터뷰에서도 자학개그를 터뜨리며 팬들에게 좋은 반응을 이끌어 냈다. 제2의 차명석을 기대한다는 댓글이 있을 정도.[21]
[kakaotv(408170450)]
4월 14일, 롯데 자이언츠 청백전을 통해 정병문 캐스터와 함께 중계에 나서 해설위원으로 데뷔했다.
[인터뷰①] 심수창, 꽃미남에서 입담꾼 변신 "토크쇼 해설 기대해 달라"
[인터뷰②] "(박)병호야, 니 스윙을 해" 심수창 위원의 창피한 기억
5월 7일, MBN 스포츠야에 출연하여 선수시절 '18연패의 뼈아픈 과거'와 '야구 해설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소개했다.
[kakaotv(408811467)]
[kakaotv(408811466)]
5월 11일, [스경X인터뷰] 심수창 해설위원 “나는 방송인 꿈나무…서장훈·안정환이 롤모델”
6월 15일, 서경석TV에 서경석과 함께 한화 이글스 18연패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영상이 업로드되었다.
8월 11일 베이스볼 투나잇에서 김선신, 심재학과 함께 은퇴를 앞 둔 박용택의 은퇴투어에 대한 생각을 나누었다.
8월 14일 이현우의 MLBTV에 출연하여 본인의 선수 경력에 대해 인터뷰하는 영상이 업로드되었다.
8월 18일 롯데의 스트레일리의 투구에 두산이 너무 잘 대처하자 투구별 습관이 노출됐다고 판단해 투수 시절의 경험을 살려 스트레일리의 습관을 분석해냈다. 시청자들은 심수창이 잘 생기고 웃긴 사람으로만 생각하다가 16년차 베테랑 투수였다는 것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8월 20일 오후 잠실야구장에서 벌어진 2020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에서 2019 시즌 현역에서 은퇴한 손승락과 함께 특별해설을 맡았다.
8월 28일, 김선신, 박재홍과 함께 베이스볼 투나잇을 진행하였다.
2020년 10월, 박지영 아나운서의 유튜브 채널(박지영TV)에 출연하여 입담을 뽐내었다.
10월 10일, 정병문 캐스터와 박재홍 해설과 함께 키움 한화 경기에서 해설을 맡았다. 심수창은 자신의 선수 생활을 돌이켜보며 안간힘을 써서 생각을 많이 하지 않고 심플하게 경기에 임했으면 좋았을 것이라 후회했다. 마운드에서 보다 해설위원의 자리에서 보니 야구가 더 잘 보이는 듯하다는 평도 남겼다.
10월 28일, 스톡킹 EP.21-1에서 채널A 나만 믿고 따라와, 도시어부에서 섭외를 받았다고 밝혔다.#
11월 1일, SBS Sports 야구있슈에 출연했다.
11월 9일, 이대형과 함께 촬영한 인터뷰 영상이 올라왔다.
11월 20일, 기상캐스터 김가영과 함께한 Eland museum 영상이 업로드되었다.
11월 25일, MBC 라디오 스타(황금어장) 696회에 김광현, 박성광, 양준혁 해설위원과 함께 출연하였다.
12월 3일, 채널A 나만 믿고 따라와, 도시어부 시즌2 50회~53회에 이대형, 송승준, 손아섭 등과 함께 게스트로 출연하였다.관련 기사
같은 날, 노블레스#s-5 잡지에 이대형과 함께 찍은 화보가 공개되었다.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는 심수창과 이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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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4일, 스톡킹 채널이 1주년을 맞았다.인터뷰 기사, #
12월 11일, MBC FM4U 정오의 희망곡#s-2 1336회에 윤태진과 함께 출연하여 한국프로야구 연말결산을 진행하였다.#
12월 17일, Apink 윤보미, 코미디언 김민경, 치어리더 박기량, 체조선수 신수지, 스포츠 아나운서 박지영, 배우 강소연 등 분야별 인기 여자 연예인들이 출연하는 wavve 스포츠 예능 '마녀들-그라운드에 서다'에서 팀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12월 24일, 한유미-심수창, 해설위원들의 변신은 무죄?예능 및 토크 프로그램에서 끼와 입담 과시하고 있는 스포츠 해설위원들
12월 28일, 야구 선수들과 전 프로게이머 그리고 인터넷 방송인이 참가하는 LoL 대회인 KBA 리그 오브 레전드 : 협곡의 선수들에 해설위원으로 참가했다. 함께 마이크를 잡은 중계진은 캐스터 성승헌-해설 장민철.
12월 31일, '마녀들-그라운드에 서다' 1편이 공개되었다.
3.3. 2021년
1월 3일, 구독자 10만 달성 '스톡킹' "조인성 섭외? 기다려달라"
1월 14일, '예능 늦둥이' 심수창 "조금 더 심수창다운 해설 하고파요"
2월 1일, 스톡킹 차명석 단장편 1부가 나왔는데 여기서는 아예 방출 당시의 뒷이야기까지 탈탈탈 털렸다.
4. 플레이 스타일
현역 시절, 다양한 변화구가 강점인 기교파이자 전천후 투수였다. 오버핸드 폼에서 내리꽂는 직구로 카운트를 따내고 사이드암에서 나오는 횡변화 결정구로 요리하는 것이 주 투구 패턴. 삼진을 잡고 싶을 땐 높은 스리쿼터에서 포크를, 맞춰잡을 땐 사이드암에 가까운 낮은 스리쿼터에서 횡변화구를 던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직구를 제외하면 투심, 포크, 슬라이더 이 3가지가 주무기이며 이 외에도 커브볼을 구사할 수 있다.
2019시즌 기준으로는 2016시즌과 비슷한 다양한 변화구를 앞세워 노련함과 수싸움으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투수였다.
인생의 굴곡만큼 플레이스타일도 몇 차례 변화를 겪어 왔다. 첫 번째로, LG시절 초창기까지는 딱히 특징이 없는 게 특징인 투수였다. 우완 오버핸드, 몇 가지 변화구, 적당히 좋은 구위와 최고 145정도까지 나오는 적당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직구, 약간의 제구불안과 젊은 투수답게 멘탈이 그리 강하지 못한 점이 약점인 평범한 투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심수창만의 특징은 없었지만 구위, 구속, 변화구 모두 괜찮아 꾸준한 성장을 거듭해 급기야 2006년에는 꾸준한 선발자원으로 활약하여 10승을 달성한 투수가 되었다. 물론, 이 10승 중에 몇 경기는 운이 상당히 따라주었지만. 그래도 준수한 경기력을 많이 보여준 편이긴 했다.
이 당시 젊은 심수창이 더 성장하기 위해 선택한 활로는 변화구의 장착이었는데, 이게 단기적으로는 심수창을 10승 투수로 만들어 주었지만 장기적으로 볼 땐 심수창의 커리어를 망치는 악수가 되고 말았다. 본래 직구와 커브 정도를 주 패턴으로 구사했는데, 포크볼과 커터, 슬라이더, 체인지업 등 다양한 변화구를 장착한 결과, 2006년 시즌에는 적당히 빠른 직구와 팔색조 변화구가 어우러져 135이닝을 소화하며 10승을 거두는 준수한 기교파 선발자원으로 성장하는 듯 했다.[22] 그러나 너무 많은 변화구를 익힌 여파로 직구 감각을 점차 잃어 점차 구속이 떨어져 급기야 2008년쯤에 이르러서는 28살 투수가 직구 구속이 130대가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고, 원래 제구나 구위가 특출난 강점인 투수는 아니었는데 구속까지 떨어지니 심수창의 직구는 그냥 배팅볼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렇게 슬럼프에 빠진 와중 2010년의 대굴욕 연봉 사건, 그 18연패 슈퍼스타 심수창 등 파란만장한 사건을 겪은 끝에 넥센 히어로즈로 트레이드되고 정민태 코치의 조언을 받아들여 투구폼을 손보며 파워피처로 변화를 시도하게 된다. 직구는 145까지 끌어올리는데 성공했으나 이번엔 투구폼 개조의 여파로 변화구들이 맛이 가버렸고 이 과정에서 잠시 상승세를 탔던 시점도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다시 배팅볼 투수로 전락하게 된다. 게다가 2012년 10월 아버지가 구속수감되며 그렇잖아도 끝없는 슬럼프에 시달리던 심수창의 멘탈은 완전히 박살이 나버리고 2군에서도 얻어맞는 삼류 투수로 전락했다. 2013년 단 한번도 1군에 등판하지 못했다. 사실 이때 심수창은 더이상 희망이 없어보였고 그렇게 선수 커리어를 마감하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심수창은 2013년 하반기에 남몰래 개명까지 하는 등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홀로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었다. 개명 효과인지 2013년말 2차 드래프트로 롯데로 이적하게 된다. 하지만 2014시즌 롯데에서도 11경기 등판에 9점대 방어율을 기록하며 역시 대부분의 시간을 2군에서 보내게 되었다. 이렇게 커리어를 마감하는 듯 보였다.
'''오버핸드-쓰리쿼터'''(라고는 하지만 거의 사이드암에 가깝게 내려간다)로 두 개의 이중투구폼을 이용한다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2015시즌 부활하게 된다. 2014년 2군에 있을 때 장난삼아 쓰리쿼터로 던져 봤는데 의외로 구속과 제구가 괜찮아서 이용훈과 이종운 2군 코치의 적극적인 권유로 쓰리쿼터를 연마하게 되었다고 한다. 덕분에 2012년 5월 이후 3년만인 2015년 4월 선발로 복귀하게 되었다.살짝 팔을 내리며 구속이 상승해 투심과 슬라이더의 위력이 상승했다. 또한 변화구 역시 사이드암을 사용하며 횡변화구가 좋아졌고, 횡변화구가 좋다 보니 상대적으로 포크볼 등 종변화구까지 낙차가 더 심해 보이게 되는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다. 투구폼을 바꾸면서 타자들의 타이밍을 흐트러트리는 것은 덤. 투구폼이 확실히 나뉘는지라 투구폼만으로 구종을 파악하기 쉬울 것 같지만 던질 줄 아는 변화구가 워낙 많은지라 투구폼만으로 파악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이후 타자들이 어느 정도 패턴을 파악하며 이점이 좀 줄긴 했지만 위력적임에는 틀림없다. 더군다나 심수창 또한 연차가 쌓인 노련한 노장이 되다보니 수 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장점은 타고난 유연성. 이는 쓰리쿼터의 투구폼에서 빛을 발하는데 사이드암 투수인 김성배는 이러한 유연성에서 나오는 심수창의 쓰리쿼터 투구폼이 좋다고 평가하였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오버핸드-쓰리쿼터 두 개의 이중투구폼을 이용한다는 점과 김성근의 투수운영방식, 팔에 무리가 가기 쉬운 그의 주무기 포크볼, 그리고 통산 900이닝 이상을 던지다 보면 팔에 무리가 오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심수창은 선수생활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수술을 해본 적이 없다.
단점은 변화구가 종류는 많아도 실전에서 위력적인 변화구는 커브와 포크, 잘 쳐줘야 슬라이더 정도뿐이라는 것.[23] 변화구 종류가 많아 다지선다 수싸움을 걸기엔 유리하지만 뭐 하나 확실한 게 없어서 찍혀버리면 그대로 장타가 되어버린다. 투심까지 더하면 4~5가지 구종을 던질 수 있는데 뭐 이 정도면 KBO에선 팔색조 소리 듣기는 충분해 보인다.
또한 고질적인 제구불안에 스터프가 좋은 편이 아니라 자칫 몰리면 그냥 장타가 되기 쉽다는 점이다. 또한 맞춰잡다 보니 수비의 영향도 많이 받고 볼끝이 깨끗하여, 특히 직구가 작대기같이 깨끗해[24] 안 풀리는 날에는 타자들이 더더욱 타이밍을 잡기도 쉽고 맞으면 더더욱 장타가 나오기 쉽다.
위력적이지 않은 공, 소위 말하는 똥볼을 던지지만 투구폼을 통한 이지선다와 또 거기서 나오는 변화구 다지선다를 통한 타이밍 승부로 타자를 잡아내는, 배팅은 타이밍이고 피칭은 그 타이밍을 뺏는 것이라는 야구계 격언에 충실한 투수. 공이 좋아도 멘탈이 약한 젊은 투수들이 보고 배워야 할 만한 두뇌파 피처이다.
투구폼을 2개를 사용하다 보니 밸런스를 잃기 쉬워 본인도 그 감각을 잘 찾지 못해 경기마다 기복이 좀 있는 편이고, 역시 두 개인 투구폼과 구종마다 다른 팔각도로 인해 몸에 부담이 커 부상위험 또한 상당히 높다. 또한 직구가 구위가 좋지 않다보니 변화구 구사율이 상당히 높은 편에다가 결정구로 즐겨 쓰는 변화구는 부상 위험 높다는 슬라이더와 포크볼. 알고 보면 폭탄을 여러 개 달고 다니는 매우 위태위태한 선수다. 프로생활 10여년간 부상을 당할 만큼 많이 던져본 적이 없기 때문에 터지지 않았을 뿐.
LG시절 10승을 거둔 것 때문에 선발 투수라 생각하기 쉽지만, 풀타임 선발 경험이 없다. 불펜과 선발을 모두 소화할 수 있으며 사실상 5선발~롱 릴리프 정도의 역할을 했다. 이후 넥센으로 이적하고 나서도 당시 좋지 않았던 넥센의 상황상 5선발 정도로 꾸준히 등판 기회를 얻으면서 18연패의 대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최근 심수창이 방송에서 언급했듯이 18연패는 굴욕적인 기록이라기 보다 그에게는 행운이라 할 수 있는 기록이다. 당시 LG나 넥센이 아니었다면 18연패하는 선수에게 계속 등판 기회를 주었을 것인가.[25][26] 한화에 와서는 선발과 릴리프를 오가는 스윙맨으로 전천후로 활약하고 있다. 또한 나이가 16년 기준으로 35살인 노장인 것 또한 불안요소. 그 김성근의 혹사 속에서도 16년 9월들어 148km/h의 속구를 뿌려주고 있지만 작년의 권혁도 저렇게 팔을 불사르며 던지다가 정말로 팔이 뽑혀버린지라 한화 팬도 롯데 팬도 썩 기분 좋을 상황은 아니다. 이상하게 본인은 선발 나왔다가 중간으로 나왔다가 이틀 쉬고 다시 선발 하는 게 되려 편하다고 한다.[27] LG시절 팔꿈치 주변 인대를 강화하는 훈련을 해서 포크볼을 계속 던져도 별로 안 아프다고한다. 10선발-56구원 등판이라는 쌍팔년도식 혹사를 겪은 탓인지[28] 17시즌 들어 평속이 4km 정도 감소해버려서 불안해 하는 팬들이 보인다. 하지만 금지어가 경질된 이후 추격조와 스윙맨 어느 한가운데서 휴식일을 보장 받은 채 등판을 지속하자 다시 최고 구속 146km 제구 되는 빠른 공을 선보여 역시 구속 감소는 쌍팔년도식 투수 기용을 했던 금지어의 탓이라는 점을 사람들에게 다시 느끼게 만들었다. 사실 처음부터 큰 기대를 받은 외부영입은 아니었다.
5. 사건사고 및 논란
- 2004년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구치소에 수감되었으나 출소 후 신체검사에서 면제 판정을 받아 다음 시즌 복귀했다.
- 2019년 해외 전지훈련 당시 주변 동료와 함께 카지노에 출입해 논란이 된 바 있다. 대신 심수창은 도박은 하지 않아서 크게 논란이 되지는 않았다. 카지노에서 게임을 한 선수들 또한 LG구단은 “선수들이 휴식일에 쇼핑몰에 갔다가 카지노에 들렀다”며 “거액 베팅이 아닌 우리 돈 최대 40만 원을 썼다고 해명했다.#
- 2020년 10월 10일 정병문 캐스터와 박재홍 해설위원과 함께한 키움 대 한화 경기에서 김창현 감독 대행이 말한 '전력분석 자료의 50%가 실제 경기에 적용이 된다'는 주장에 반신반의하며 그 근거가 따로 없고, 전력분석으로 명성이 나 있는 김정준 해설위원조차 10프로가 넘기기가 어렵다는 말을 덧붙이며 야구는 오락 게임이 아니며 수능 답안지처럼 정답이 아니라는 말을 나눴다. 이를 들은 일부 시청자들은 김창현 감독 대행을 겨냥해 조롱에 가까운 말들을 쏟아냈다며 논란이 되었다.# 특히 데이터를 무시하는 발언들로 어이없었다고 하며 허민 히어로즈 사태로 야구계 인사들이 다들 히어로즈 프런트에 불만을 느끼고 있고, 그 낙하산인 김창현이 데이터 코치 출신이라 그랬던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였다. 아래는 대화 전문이다.
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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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칠때 떠나라. 몸을 앞으로 숙이고 있어서 안보였던 거라고한다. 박수하기 전 잘보면 심수창 머리가 움찔거린다. #. 이후 아프리카 티비 중계에서 카메라가 자꾸 자신을 따라다니자 부담스러워 밑으로 고개를 숙인 것이라고 한다. 여담으로 본 사건은 최준석의 입속 시공균열 사건과 함께 KBO 2대 미스터리로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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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 천사 심수창. 위의 짤에서처럼 루게릭병을 앓고 있던 LG팬을 만난 후 심수창은 눈물을 훔치며 2010 시즌 승리당 10만 원씩 이 팬에게 기부하기로 했는데, 심수창은 결국 시즌 종료때까지는 고사하고 팀을 떠나기 전까지, 그리고 다음 해 8월 8일까지 1승도 거두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0원한 기부천사로 남게 되었다. 스톡킹에서 본인도 이 별명을 알고 있다고 인증했고 라디오스타에 출연해서도 이 일화를 소개했다.
기부 천사 심수창. 위의 짤에서처럼 루게릭병을 앓고 있던 LG팬을 만난 후 심수창은 눈물을 훔치며 2010 시즌 승리당 10만 원씩 이 팬에게 기부하기로 했는데, 심수창은 결국 시즌 종료때까지는 고사하고 팀을 떠나기 전까지, 그리고 다음 해 8월 8일까지 1승도 거두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0원한 기부천사로 남게 되었다. 스톡킹에서 본인도 이 별명을 알고 있다고 인증했고 라디오스타에 출연해서도 이 일화를 소개했다.
- 심수창의 고유 넘버인 '67'번은 고등학교 때부터 프로야구 은퇴때까지 쓰던 등 번호다. 박찬호의 61번을 달고 싶었지만 선배가 사용하고 있어 비슷한 67번을 선택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해당 문서 참고.
- 이름 심수창에서 '창'의 한자명을 밝을 창(昶)에서 창창할 창(昌)으로 개명했다. 라디오스타에서 밝힌 이유로는 성적이 너무 부진해지자 어머니께서 수창이라는 이름이 아닌 것 같다며 개명을 권유했는데, 팬들이 심수창이라는 이름을 많이 기억해주니 차선책으로 한자만 개명하는 것으로 했다고.
- 2011년 넥센으로 트레이드된 뒤, 잠실 야구장이 너무 익숙해 목동 경기인데도 엉겁결에 잠실로 가려던 적이 있다.
- 2014년 3월 20일, 뜬금없이 애프터스쿨 출신의 유소영과 열애한다는 기사가 떴다. # 유소영이 심수창을 따라 일본에까지 따라와 데이트를 하는 것이 목격됐다는 것이었다. 심수창 측의 반응이 없던 상황에서, 유소영 소속사에서 열애설을 부인하는 반박 기사가 나왔다.#
- 2015년 3월 13일 야구 블로거 배지헌이 프레시안에 기고한 칼럼에서 본의 아니게 굴욕을 겪었다. 칼럼의 요지는 시범경기는 경기수가 너무 적기 때문에, 여기서 나온 기록은 통계적으로 거의 가치가 없다는 것인데, 여기서 천하의 심수창도 엘리트급 피칭을 선보이는 시기가 있는 법이라고 비꼬았다가 다시 찾아보니 그런 기록은 없다며 확인사살 해버렸다.당신이 시범경기 성적을 무시해도 되는 이유 - "천하의 심수창도 시즌 5경기만 따로 보면 엘리트급 피칭을 선보이는 시기가 있는 법입니다.(지금 다시 기록을 찾아보니 그런 기간은 없군요)"
- 하지만 심수창은 2006년 7월 5경기에 모두 선발 출전하여 4승을 기록하고, 32와 1/3이닝, 30피안타 10삼진 12사사구 7자책점으로 경기당 6.5이닝, 5경기 모두 QS(QS+ 2회)를 기록했다. 7월 ERA 1.94, WHIP 1.29. 물론 이것이 엘리트급 피칭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어쩔 수 없긴 하다.
- 이사만루2015 KBO에서 2015 심수창 카드가 나왔는데, 선발 중계 마무리 전부 S급이라는 개사기급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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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서비스가 매우 좋은 선수중 한명이기도 하다.
- 옷은 거의가 블랙 & 화이트다. 옷장에 흰 옷과 검은 옷만 있을 정도.
- 수염이 빨리 자라는 편이다. 대학 시절 1회부터 8회까지 던지면 선수들이 투수 바뀌었다고 놀렸다고 한다.
- LG 시절에는 같은 팀 우규민과 돈독한 친분을 과시해 KBO 후로게이의 대표주자로도 유명했다.# 일설에는 심수창이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으로 인해 구치소에 수감된 적이 있었는데, 심수창의 여친과 우규민이 함께 면회를 갔단다. 근데 우규민이 심수창과 손을 붙들고 서럽게 울어제끼고 여친은 병풍이 되었는데 그 뒤에 헤어졌다고한다. 외모 덕분에 일본 잡지에 소개되기도 하였고, 송승헌과 닮은 외모로 인해 우규민을 응원하기 위해 대만으로 갔을 때엔 송승헌으로 오해받아 싸인 공세를 받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심승헌이라는 별명이 있다.
- 초등학교 시절에는 후에 같은 팀 소속으로 함께하는 박용택[29] , 그리고 영화배우 조인성과 야구부에서 함께 뛰었다. 또한 데뷔 당시의 미모와 지금의 미모 사이에 상당히 큰 갭이 존재한다. 나이 먹을수록 더 잘 생겨진다는 게 중론. 게다가 185cm의 장신. 사실 투수라는 포지션 특성상 장신인 게 어떻게 보면 놀랄 일이 아니다.
- 박용택은 어렸을 때부터 심수창과 함께 해왔기 때문에 심수창의 유머감각을 익히 알고 있었다. 2005년 말 스포츠조선이 프로야구 각구단 주전급 선수 80명을 상대로 '가장 웃기는 선수'를 물은 야심(野心)엿보기 투표에서 박용택은 심수창에게 투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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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아버지인 심태석은 대한야구협회 소속 심판으로, 경기 때마다 판정 문제로 악명이 높은 데다가[30][31] 고등학교 시절 부상을 빌미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진출을 주도한 이후 스카우트들의 기피 대상이 되었다. 2012년 10월경 고교야구 선수들의 대학 입학과 관련하여 비리를 저질러서 또 논란이 되기도 했다. KBA 심판위원 심모씨 구속. 이 사건 이후 심수창의 멘탈이 완전히 박살나서 2군에서조차 배팅볼러로 전락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실제 2013~2014시즌 심수창의 2군 성적은 처참한 지경이다.[32]
- 잘 안 알려져 있지만 2군 세이브왕(18개, 2018년) 출신이다.[33]
- 배우 같은 외모와 안 어울리게 의외로 엄청난 달변가다. 은퇴 이후 엠스플 해설진의 일원으로 합류하며 정용검 아나운서와 함께 스톡킹이라는 토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게스트로 출연하는 거의 모든 선수들과 딜을 주고받는 엄청난 입담을 보인다.
- 은근히 금강불괴이다. 한화 시절에 살려조 소리를 들으면서도 공이 더 좋아질 정도였다. 스톡킹 김용의, 김지용 편에 의하면, 웬만한 투수들이 한 번 이상 팔꿈치나 어깨수술을 하는것과 달리, 인생에서 유일하게 한 수술이 NS수술이라고 한다.# 종이컵 재활이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선수 시절 내내 매우 건강해서 차명석 단장이 LG로 데려왔다고 한다. 하지만 2019 시즌 스프링캠프때 어깨 부상을 크게 당하여 시즌 5경기 출장에 그치고 말았다. 사실상 유일한 큰 부상이 이때 나와버렸다.
- 라디오스타에서 밝힌 바로는, 고1 때 당시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80만 달러 제의가 왔었다고 한다.[34] 1, 2, 3차 모두 올 패스였으나 제3자들의 무리한 코칭으로 인해 마지막 캐치볼에서 입스가 와 무산이 되었고, 대학 진학을 하였다고 밝혔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 2009년 12월 10일, 심수창의 어머니가 잠실 야구장 근처인 신천역 먹자골목에 심수창이 직접 이름을 지은 야구컨셉 호프집 '신천 펫코파크'를 새로 개점했다. 그 다음날인 12월 11일 골든 글러브 시상식을 마치고 우규민, 이대형, 박용택 등 동료 LG선수들이 찾아와 가게일을 거들어준 덕분에 팬들이 대거 몰려들어 성황을 이뤘다. 특히 여성팬은 많으나 경기 끝나고 바람같이 사라져 싸인을 득템하기가 어려운 이대형 같은 선수는 몰려든 여성팬들 때문에 현장에서 즉석 팬미팅이 벌어진 수준이었다고. 가게 내부는 선수들의 싸인이 있는 유니폼 등 야구 관련 물품들로 장식되었다. 그러나 몰려든 손님들 때문이었는지 정작 중요한 음식의 가격 대비 질은 아주 떨어진다는 평이었고, 실제 LG 트윈스 갤러리에 "펫코파크 갈 만 하냐?"라고 질문을 올리면 욕으로 점철된 답변이 나왔다. 게다가 2010년 심수창의 성적이 상당히 안 좋은데, 심수창은 연습 안하고 효도한답시고 틈날 때마다 가게에서 서빙이나 하고 있었으니 오히려 부모님이 욕을 먹게 되는 불효를 저질렀다. 결국 부모님의 맘고생 끝에 개업 1년도 채 안 된 2010년 9월 7일, 펫코파크는 폐업했다.[35] 이대형은 마침 집이 근처라 경기를 마치고 치킨을 먹고 싶어서 방문하면 팬들이 술 마신다고 많이 질책하는 바람에 마음 고생이 심했다고 한다.인터뷰 영상
- 가을야구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다. LG에 있을 때야 비밀번호 찍던 시절이고, 이후 팀들에서도 팀이 대부분 가을에 못 갔다. 팀이 가을야구를 한 2013년, 2018년, 2019년은 포스트시즌 엔트리에서 모두 탈락했으며, 2018년엔 포스트시즌 전에 팀에서 방출되었다.
6.1. 잘생긴 외모
프로야구 역대 손꼽히는 비주얼을 자랑한다. 팬들의 단골 멘트가 '''"얼굴만큼만 야구 해라"'''였을 정도.
게다가 꽤 동안이기도 한데, 2021년 기준으로 한국나이 41살이다. 그런데도 데뷔 때보다 정변했다는 말을 들으며 크게 늙지도 않았다. 스톡킹에 나왔던 정우람, 김경언, 박정배, 송창식 등등보다 형이며 김태균, 강민호, 이대호보다도 형이다. 김사율과 한 살, 이승엽과 다섯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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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떠돌아다닐 때 파일명이 '얼굴만큼 야구하길 바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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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중근이 이뻐라 하는 심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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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잡지에 실린 모습.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정말로 영화배우로 착각할 수도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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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택과 함께
2005년 12월 29일 구단 공식홈페이지에서 실시한 '꽃미남 설문조사'에서 29일 오전 10시 기준 226명의 투표 가운데 심수창은 60표를 획득, 박용택보다 1표가 적은 2위를 마크했다.# 결국 1위로 투표를 마감했다. #
2006년 6월 '훈남'을 소개하는 기사에 심수창이 언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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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시즌 종료 후 각 구기종목 선수들과 단체 화보 컷.
과거 어느 야구선수들이 배구선수들과 화보를 찍었다가 굴욕을 당한 것과 비교하여 더욱 돋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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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 100에 출연했던 모습. 얼굴을 떠나, 카메라빨 자체가 저렇게 잘 받는 선수는 정말 드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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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3일 공개된 화보 사진.#
7. 연도별 주요 성적
[1] 2013년 심수창(沈秀昶)에서 개명하였다. 한자만 바꿨는데, 비슷한 케이스로 이형범, 축구인이동국 등이 있다. 성명학에 따라 이름의 획수, 상보성을 바꾸기 위한 개명이다.[2] 네이버 프로필이나 스톡킹에서 2월 9일이라고 하긴 했지만 7월 9일에 생일 축하 감사 게시글을 올렸고 # 화보 촬영 후 인터뷰에서도 7월 9일이라고 말했다.[3] 대한야구협회 소속 심판[4] 영상제작자[5] 잘 안 알려져있지만 2018시즌이 끝나고 결혼식을 올렸다. 이후 스톡킹에 본인이 활동했던 팀(LG, 롯데, 한화) 선수들이 게스트로 출연할 때마다 "심수창 결혼식 초대받았냐"는 질문은 기본 옵션이 되었다.(...)[6] 기본적으로 오버스로이지만, 변칙적으로 쓰리쿼터, 사이드암 피칭을 한다. [7] 지명 후 한양대 진학으로 실제 입단은 2004년.[8] 심수창의 야구 커리어를 생각해보면 일견 재능으로 버텨온 선수라는 인상은 희미하지만, 꾸준히 1군에서 활약하며 FA까지 커리어를 쌓았고, 팀의 불펜 요원으로 자리잡아 살아남으려면 재능 없인 불가능한 일이다. 본인은 거기에 노력을 더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9] 직접 경기에 나섰을 때와는 다르게 시청자들에게 전문적인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 점이 까다롭다고 밝혔다.[10] 넥센 히어로즈 - 롯데 자이언츠 - 한화 이글스[11] 심수창의 저니맨의 길의 시발점이 된 트레이드의 상대인 송신영 또한 심수창과 동시대에 프랜차이즈 선수에서 저니맨(LG 트윈스 - 한화 이글스 - NC 다이노스)이 되어버렸다. 두 선수 모두 LG, 넥센-키움, 한화에서 뛴 적이 있고 심지어 둘 다 원소속팀으로 돌아온 경험이 있다. 그리고 둘은 2016~17년 한화에서 팀 동료가 됐다.[12] 선발 시 평균 이닝[13] 소수점 첫째 자리에서 반올림[14] 게임 스코어 35점, PQS 2점[15] 다만 상대 투수 윤석민이 PQS 5점 만점, 게임 스코어 72점이었다...[16] 해당 경기 팀타율 0.161[17] 넥센 히어로즈의 과거 2군 야구장이 전남 강진군에 있었다. 야구 외에는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는 동네며 수도권에서의 접근성도 최악인지라 2군 코치였던 정명원이 결국 히어로즈를 떠나게 된 계기가 됐다. 결국 강진군을 떠나 경기도 화성시를 거쳐 현재 고양시에 있는 고양 야구장을 사용하고 있어 프런트/코칭스탭/선수들의 만족도가 모두 높아졌다.[18] 한화 이글스의 2군 야구장인 서산 야구장은 서산테크노밸리에 인접하고 있고 잠실 야구장이나 대전 야구장까지 이동거리가 130km 이내라 강진 베이스볼 캠프보다는 접근성면에서 훨씬 낫다.[19] 16년 선발 투수로 나와 3볼넷 1만루 홈런으로 4실점을 하고 강판당한걸 제로퀵으로 부르고 있다.[20] 처음 투구 자세를 바꿨을 때 2군 경기에서 던지자마자 홈런을 맞고 산으로 날아가 멧돼지를 맞췄을 것이라며 자조하며 지은 구종[21] 이로써 LG 트윈스를 거쳐간 선수 출신 해설가는 11명이 되었다. KBS N SPORTS 안치용, 봉중근, SBS Sports 이종열, 이동현 MBC SPORTS+ 김선우, 양준혁, 이상훈, 심재학, 심수창, SPOTV 김재현, 서용빈 18명 해설위원중 61.1%. 즉 약 10명중 6명이 해당되는 수치로 60%가 전직 LG에서 뛰었던 선수 출신이다. 2위는 해태-KIA로 장성호, 장정석, 이순철, 박재홍, 양준혁, 심재학 등 33%이다. 양준혁은 해태에서 뛰었다가 LG로, 심재학은 LG에서 데뷔했다가 현대와 두산을 거쳐 KIA로 이적했다. 공교롭게 네 방송사 모두 2명 이상씩 있다.[22] 허나 이 시즌은 역대급 투고타저 시즌이었고 심수창의 평균자책점이 4점대였던걸 감안하면 운도 많이 따라주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준수한 경기력을 보여준 경기 또한 많았지만...[23] 한화에 오고나서부터는 거의 직구와 포크볼 투피치인데, 직구 위력이 딸리는지 점점 카운트용, 결정구용 가리지 않고 주구장창 포크볼만 던져 거의 원피치다.[24] 오버핸드 한정.쓰리쿼터폼의 패스트볼은 의외로 테일링이 휙 걸리는 경우도 간간히 보인다.[25] 여담으로 류현진은 같은 기간 30승을 기록했다.[26] 물론 이 18연패 기간동안 심수창이 못했다고도 못하는게 잘하지는 못했지만 운도 굉장히 좋지 않았다. 본인이 호투하면 불펜이 방화를해서 승이 날아간 경우도 있고, 승계주자때문에 패전투수가 된적도 많기 때문.[27] 이전의 김민우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고, 장민재도 선발은 쉬는 날이 길어 지루해서 선발도 중간계투도 다 되는 투수로 기억되길 바란다는 인터뷰를 17년 1월에 했다. [28] 종전 10선발-40구원 등판 기록은 15시즌 LG의 임정우, 한화의 송창식이 가지고 있고 11시즌 시절의 고효준도 가지고 있다.[29] 삼십년지기[30] 여담이지만 2007년 봄에 열린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이었던 광주제일고와 서울고의 경기 주심이었다. 당시 1회전에서 130개의 공을 던지고 2회전에서는 무려 190구를 던지며 팀을 결승까지 끌어올렸던 서울고의 이형종이 결승에서도 중간계투로 등판, 140구를 던지며 체력이 완전히 고갈된 상태에서 9회말 2사 끝내기 위기에서 그야말로 이 악물고 던진 공을 잡아주지 않아 이형종의 얼굴이 울상이 되자 이를 중계하던 유수호아나운서가 “ ‘이렇게도 안잡아주고 저렇게도 안잡아주면 어쩌란 말입니까?’ “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입니다”라고 안타까워했다.[31] 사실, 이미 이형종은 7회부터 체력이 완전히 고갈되어 제구가 전혀 안되고 있는 상황이었다[32] 여담으로 뇌물을 먹인 고교 감독은 당시 제물포고 감독이었던 가내영이라고 한다. 어째 아들과 아버지가 모두 구속되어 감방에 갔다.[33] 퓨처스리그도 평균자책점과 다승 부분은 개인수상을 한다.[34] 당시 145~6km/h의 구속이었다고 한다.[35] 이때 진상손님들은 메뉴에도 없는 번데기탕을 내놓으라고 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