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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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前 넥센 히어로즈, NC 다이노스, LG 트윈스, 한화 이글스의 우완 투수. 現 키움 히어로즈의 코치.
신인 시절 이후 쭉 중간계투로 활약하다가 2015 시즌부터 선발로 전환하였다. 현대 - 히어로즈의 프랜차이즈[6] 선수였지만 트레이드를 통해 2011년 시즌 중 LG 유니폼으로 갈아입었고, 바로 FA로 풀리면서 유니폼을 또 갈아입었다. 그리고 1년 만에 NC 다이노스에 지명되어 한 번 더 유니폼을 갈아입었는데, 2013년 4월 18일에 3:2 트레이드로 결국 친정 팀인 넥센 히어로즈로 돌아왔다. 말하자면 20개월동안(2011.8~2013.4) 평균 5개월에 한번꼴로 유니폼을 갈아입은 셈. 어쨌든 프랜차이즈 선수에서 순식간에 저니맨이 된 비운의 선수.[7]
소속 팀을 옮기기 전인 넥센 시절에는 김수경 선수와 같이 이름이 여자같기 때문에 "신영언니"라고 불렸으며 그의 응원가인 봄바예는 그의 트레이드마크.
2. 선수 경력
송신영/선수 경력 문서로.
3. 연도별 성적
4. 지도자 생활
현역 연장 의지가 있다는 이야기도 돌았으나, 결국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애초에 2017년을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그만두기로 한화 구단과 이야기가 된 상태였다고. 일단 호서대학교 야구학과 석사 과정을 마저 마치고 아마추어 야구 인스트럭터로 경험을 쌓은 후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지도자 인생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안우진이 부진할때 슬라이더를 장착하게 해준 코치가 송신영으로 알려지는 등 지도자로서의 안목은 쏠쏠한 모양.
2017 시즌 후 친정 팀 넥센 히어로즈의 코치로 영입되었다. 보직은 잔류군 투수코치. 한화 이글스 구단과의 잔여연봉 정산 등 계약 문제가 남아 있어서 본격적인 합류는 2017년 12월 이후에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송신영, '넥센 코치' 된다
코치로서의 연봉은 4,500만원. 1군 불펜 코치로 있는 마정길과 동일한 연봉이다.
그 이후로 2군에서 별 다른 투수가 탄생하지 않아 코치로서 무능한 것이 아닌가 의심 받고 있다.
2021년 시즌을 앞두고 이뤄진 코칭스태프 개편에서 1군 불펜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5. 기타
- 공이 한가운데로 꽂혀도 혼이 담기지 않으면 스트라이크가 아니다의 피해자로 유명하다. 그 유명한 회전(!) 오망성 존![10][11]
- 언니라는 별명이 가지는 부드러운 인상[12] 에, 다른 성깔 레전드들(?)과 비교해 전과(?)가 없고 임팩트가 부족한 면이 있어서 부각이 잘 되지 않는데, 굉장히 한 성깔 한다고 한다. 여러 카더라에 의하면 역대 KBO 투수들 중에서 제일이라는 말까지 있다. 홍성흔의 인터뷰에 의하면 중앙고 배터리 시절에 서로 한 번 다툰 적이 있었는데, 말싸움 끝에 송신영이 날린 펀치에 홍성흔이 한 방에 나가떨어진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 절정은 2009년에 나타나는데, 7월 30일 SK와의 목동 홈경기에서[13] 6회 초 송신영은 박재상의 몸에 공을 맞췄다. 6회 말 고효준이 황재균을 맞추자[14] , 7회 초 송신영은 다시 나주환을 맞췄다. 나주환도 달려드는 모션을 취했고, 송신영은 똑같이 싸울 기세로 달려갔다. 결국 이는 벤치 클리어링으로 이어졌고, 송신영은 퇴장당했다.
2014년 4월 8일 목동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팀이 스코어 13:8로 지던 9회초에 등판한 손승락이 1사 1루 상황에서 김주찬을 상대하던 중 손승락의 투구에 김주찬이 맞았는데, 김주찬이 순간 욱하며 마운드를 향하자[15]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났고, 손승락이 고의가 아니라며 사과를 했는데도 송신영 본인이 더 과하게 반응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16][17] 손승락이 2014년 개막 후 블론세이브를 두 개 기록하는 등 부진했기 때문에 손승락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던 듯하다. 그리고 시비건 것이 잘한 것은 아니지만 김주찬도 배트를 놓지 않고 마운드를 향하는 상황이었기에[18] 송신영이 과하게 반응할 법도 했다. 그리고 다음날 바로 양 팀이 서로 오해를 풀면서 4월 8일의 일은 어느 정도 무마되었다.
다만, 벤클 때 보여주는 성깔과는 안 어울리게 심각하게 낯을 가리는 편이다. 과거 LG 시절 붙임성이 좋은 이 송신영한테 알랑거리자 몇번 모르는 척 하다가 마지못해 응해주는 걸 보면 사람을 꽤 가리는 성격이다. 박조작이 송신영에게도 접근했는데 송신영이 낯을 많이 가리는지라 겨우 악수했다(…).
2014년 4월 8일 목동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팀이 스코어 13:8로 지던 9회초에 등판한 손승락이 1사 1루 상황에서 김주찬을 상대하던 중 손승락의 투구에 김주찬이 맞았는데, 김주찬이 순간 욱하며 마운드를 향하자[15]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났고, 손승락이 고의가 아니라며 사과를 했는데도 송신영 본인이 더 과하게 반응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16][17] 손승락이 2014년 개막 후 블론세이브를 두 개 기록하는 등 부진했기 때문에 손승락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던 듯하다. 그리고 시비건 것이 잘한 것은 아니지만 김주찬도 배트를 놓지 않고 마운드를 향하는 상황이었기에[18] 송신영이 과하게 반응할 법도 했다. 그리고 다음날 바로 양 팀이 서로 오해를 풀면서 4월 8일의 일은 어느 정도 무마되었다.
다만, 벤클 때 보여주는 성깔과는 안 어울리게 심각하게 낯을 가리는 편이다. 과거 LG 시절 붙임성이 좋은 이 송신영한테 알랑거리자 몇번 모르는 척 하다가 마지못해 응해주는 걸 보면 사람을 꽤 가리는 성격이다. 박조작이 송신영에게도 접근했는데 송신영이 낯을 많이 가리는지라 겨우 악수했다(…).
- 한화 이글스에 있었을 시 많이 힘들었는지 한화를 다음과 같은 식으로 선수들의 얼굴을 가지고(…) 디스했다. 그래도 KIA, 한화보단 낫잖아.
- 본인의 말에 따르면, 히어로즈 이외의 팀의 유니폼을 입고 목동에서 출장한 적이 없다고 한다. 출장대기하면서 몸은 푼적이 있어도 마운드에 오른 적은 없는 듯.[19] 2016 시즌부터 다시 한화에서 뛰지만, 공교롭게도 히어로즈도 홈구장을 옮기면서 이 기록(?)이 깨질 일도 사실상 없게 되었다.
- 그의 2012년 한화 시절 대먹튀 흑역사 때문에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이후 류현진이 마운드를 내려간 뒤 구원투수로 등판하여 귀신처럼 분식회계를 하는[20] 로날드 벨리사리오에게 벨신영이란 별명이 붙어버렸다. 넥센팬들 중에는 왜 신영언니 이름을 방화범에게 붙이냐며 발끈하는 경우도 있지만 한화팬들이나 그 외 야구팬들에게는 이미 벨신영은 방화범의 상징적 별명으로 낙인됐다.
- 자신의 별명 '신영언니'에 대해 알고 있다고 한다. 다만 팬들끼리 부르는 건 괜찮지만, 본인 앞에서 대놓고 별명으로 부르는 건 자제해 달라고.
- 넥센의 어린 투수가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구종을 들고 나왔을 때, 출처를 물어보면 대부분 그의 작품이다.
- 재평가류 甲으로 평가받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NC 다이노스 시절 좌완투수 아담 윌크에게 경기장 내에서 팬들한테 안 좋은 소리를 했다는 썰이 퍼져서, 당시에는 상당히 욕을 먹고 처음 온 외국인 선수한테 너무하는거 아니냐는 비난을 많이 받았었다. 물론 언론에 보도된 바도 없고 가려 들을 필요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해당 시즌 중반 이후 아담의 막장스러운 인성으로 인해 재평가의 분위기가 나오더니, 급기야 아담이 사실상 퇴출된 후 트위터로 신나게 김경문 감독과 NC 구단에 대해 뒷담을 까대버리는 통에 송신영은 용병 멘탈 감별기라고 불리기도 하고 제대로 재평가를 받으면서 평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송신영이 그 당시 그 소리를 한 게 맞다고 해도 NC에 있을 당시에도 후배들이 많이 따랐을 정도며, 넥센에서도 인망이 높은 고참선수임을 생각해 본다면 결국 다 이유가 있었던 셈. 아담이 보이는 모습과 달리 NC 구단 분위기를 제대로 해치고 있었다는 소리가 되기도 한다. 전술했듯이 노성호는 송신영을 잘 따랐다.
- 배번인 19번과 꽤 인연이 있는 편이다. 1999년 현대 유니콘스 입단 당시에는 14번을 달았으나 본인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바꾼 게 19번인데, 아주 잠깐 몸담았던 LG 시절을 제외하면 2000년부터 쭉 19번만 달았다. 공교롭게도 1군 데뷔일이 2001년 4월 19일, 2011년에 500경기 등판 달성이 KBO 리그 역대 19번째, 3,200일 만에 선발승을 거두었던 게 2015년 4월 19일, 결혼기념일은 2004년 12월 19일, 동갑내기인 부인의 생일은 5월 19일이라고 한다.
- KBO 트레이드 이면 계약 파문 때 밝혀진 사실로 LG 트윈스가 송신영을 영입하기 위해 박병호, 심수창 뿐만 아니라 뒷돈으로 15억원을 내주었다는 사실이 제대로 밝혀졌다. 원래는 삭제된 기사나 풍문으로만 돌던 이야기였으나 넥센 사건을 계기로 완전히 수면 위로 올라왔다. 송신영도 이를 알고 있었는 듯, FA 신청 후 LG 운영팀장과 면담에서 "나를 고작 두 달 쓰려고 현금 15억에 박병호, 심수창까지 넘긴 것이 아닐 것으로 생각하며, 다시 숙고해 달라 요청했다"고 인터뷰한 내용이 있었으나 삭제되었다가 재발굴되었다. 송신영 말대로 LG 입장에서는 FA 신청을 앞둔 35살 불펜 투수를 박병호, 심수창에 15억원이나 주고 데려온 셈이기에 정말 LG 프런트의 개호구딜이 조명되었다. 박병호가 터진 것은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서도 FA로 잡지도 않을 송신영을 15억이나 줬으며, 또 그렇게 어렵게 데려온 투수를 홀대하여 떠나게 만든 것도 여러모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 한화 이글스 1기 시절 원룸 등에서 지냈는데 대한민국 원룸의 막장스러운 공사를 생각해본다면 다들 공감할 층간소음에 벽간소음으로 잠을 매번 설친 상황을 겪은 일이 있다. 야구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일반인 뭐시기도 아니고 직업 체육인인데다 야구계에서도 현피 실력, 성깔 알아주기로 유명한 송신영이 살고 있는 상황에서 그걸 알면서도 층간소음, 벽간소음을 일으킨 이웃이 누구이며 참 겁도 없고 베짱도 좋다며 혀를 내두르는 중. 헌데 대한민국 원룸 사는 사람들 수준을 생각해 보면 상식 밖의 막장인간들이 수두룩하긴 하다.
- 출전한 경기수가 유난히 많다. 실력 자체가 월등하지는 않았지만 연투 능력이 있고 맞더라도 크게는 무너지지 않는, '계산이 서는' 선수였기 때문.
- 박명환야구TV에서 조용훈이 이야기하길, 진짜 무서운 선배였다고 한다. 그런데 더 무서운 건 "송신영 선수는 어땠나요?" 질문을 조용훈에게 던진 당사자가 바로 송신영이었다. 조용훈은 근데 질문자가 송신영이라는 걸 못 봤다.
[1] 공식 프로필은 1977년생이지만 원래는 1976년생이다.[2] 음력 1976년 2월 1일[3] 체육교육과 1995학번[4] 대구의 한 야구단의 투수교체 노래인 그 봄바예 맞다. 과거에 힙합 그룹 사이드 비가 샘플링한 곡의 도입부를 사용중.[5] 고등학교 때 팔꿈치 뼈가 기형으로 자라 그랬을 가능성이 있다.[6] 현대에서 프로 데뷔한 이후 (팀이 중간에 재창단되긴 했지만) 타 팀 이적없이 현대-히어로즈 한팀에서만 뛰었던 프랜차이즈 선수로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시기에 투수 500경기 출장을 달성한건 덤.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이적없이 한팀에서만 이룬 기록이라 더욱 의미있는 기록이었다.[7] 2011년 LG-히어로즈 트레이드 당시 상대선수였던 심수창 또한 송신영과 동시대에 저니맨이 되었고 두 선수 모두 원 소속팀으로 돌아온 경험이 있다.[8] 2011년 7월 31일 트레이드를 통해 이적했다.[9] 2013년 4월 16일 트레이드를 통해 이적했다.[10] 근데 이 짤의 심판은 강광회다. 현대-넥센에 악의적으로 심판하기로(?) 유명하다.[11] 타자는 동무.[12] 이름은 그렇긴 하지만 실제 얼굴을 보면 알 수 있듯 눈매가 날카롭고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인상이라 사람에 따라 무섭게 보일 수도 있는 얼굴이다. 사인요청 했다가 눈빛이 지려 도망간 사람도 있을정도이다. 권혁과 비슷한 느낌. 이것 때문에 얼굴로 보는 야구선수 직업 짤방으로 결혼 사기꾼(…)과 닮았다는 농담이 돌아 스타일을 살짝 구긴 적도 있다.[13] 7회까지 8:14라는 엄청난 난타전을 벌이고 있었고, 몸에 맞는 공이 난무한 경기였다.[14] 황재균도 고효준에게 항의를 하며 달려드는 모션을 보여주었다.[15] 공이 팔 쪽으로 붙었던 데다, 김주찬은 이미 2013년 초에 손목에 공을 맞고 부상으로 고생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발끈할 만했다.[16] 여기에 같은 투수조 고참이었던 서재응도 맞서서 눈을 부릅떴다.[17] 한편 이 때 송신영이 검은 점퍼를 입고 있었는데, 이것 또한 주목을 받았다. 흥미로운건 2009년 한국시리즈에서 서재응과 정근우의 다툼때 흥분해서 정근우에게 달려들던 김종국도 점퍼를 입었다는 것이다(...).[18] 설령 항의하기 위해 마운드로 향하더라도 배트는 두고 가는 게 불문율이다. 배트는 감정이 격해진 상황에서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물건이다.[19] 2013년 5월 15일자 베이스볼 워너비 방송에서 담벼락 토크 인터뷰 중에 직접 말한 내용.[20] 멀리 갈 것도 없이 2012년 한화 개막전 경기를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