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승현
1. 소개
前 SK 와이번스, KIA 타이거즈, LG 트윈스 소속의 장신 우완 사이드암 투수. 하위픽 선수 중 성공한[4] 몇 안 되는 케이스. 예전의 이름은 '''김명완(金明完)'''[5]
SK 와이번스의 과도기 시절 이승호를 이어 실질적인 '푸른 와이번스 유니폼의' 에이스 역할을 했던 선수이고 부상과 공익 입대 이후, KIA 타이거즈에서 불펜 필승조로 자리를 잡은 선수이다. 다만 KIA 시절에는 점차적으로 선동열 감독의 삼성 라이온즈 시절의 정노예 포지션을 담당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2. 피칭 스타일
193cm에 97kg라는 좋은 체격을 지니고 있는 장신의 사이드암 투수로, 최고 구속 149km/h, 평균 구속 140km/h 초반대를 마크하며 사이드암으로써는 꽤 빠른 공을 던진다. 이와 같은 묵직한 속구와 120km/h 중반대의 싱커성 체인지업, 113km/h에 불과한 느린 커브 등으로 구질은 그리 다양하지 않으나, 완급조절을 통해 타자를 잡는 투수. 특히 이 싱커성 체인지업과 커브로 인하여 우완이지만 좌타자에게 강하다.[6]
3. 선수 경력
3.1. SK 와이번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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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말랐던 김명완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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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SK의 우완 사이드암 에이스로 각성했을 시절.
전주고등학교 출신으로, 2000년 드래프트에서 해체 직전의 쌍방울 레이더스에 2차 '''11순위'''로 지명되었다.[7] 입단 당시에는 기대도가 낮기도 하고, 쌍방울의 재정 상황까지 겹쳐 계약금 없이 입단하였을 정도로 그리 기대받지는 못했던 선수였다.
입단 후 4년 간 별 활약을 못하다가 [8] , 2004년에 중간계투로 나와 2승 7패 평균자책점 4.88로 두각을 보이기 시작하다[9] , 2005년 원래는 중간계투로 기용될 가능성이 높았으나, 에이스 이승호가 부상으로 선발진에서 이탈하면서 땜빵 선발로 합류, 김원형, 헤수스 산체스, 채병용에 이어 4선발로 시즌을 시작하였으나, 산체스가 폭망[10] 한 데 비해 '''12승 9패 평균자책점 3.38'''을 거두었고, 그 해 14승을 거두며 부활한 김원형과 함께 사실상의 원투펀치를 이루어 창단 후 두 번째 포스트시즌 진출에 기여하였다.[11]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 등판한 신승현은 팀이 스코어 1:2로 앞서던 5회초 제이 데이비스에게 역전 투런을 얻어맞으며 6.1이닝 1피홈런 3실점했다. 이후 팀이 동점을 만들어서 승패는 기록하지 않았다.[12]
2006년에도 8승 6패 자책점 3.44로 선발진의 한 축을 맡았으나, 그 해 팔꿈치 부상을 입어 2007년에는 1경기 출장하여 1이닝 동안 안타 4개와 홈런 1개를 맞으며 강판된 것이 전부였다. 결국 그 해 토미 존 서저리를 받고 2007시즌 이후에 공익으로 군입대하여 2010년 4월 소집해제됐으나, 부상이 회복되지 않아 출장하지는 못했다.
2011년 9월 3일 두산전에서 1,054일만에 1군 경기에 등판하면서 컴백했고, 9월 9일 롯데전에서 1,549일만에 선발로 등판하지만 2이닝 3실점을 기록하며 조기강판 되었다. 하지만 비범한 경기 내용 덕분에 묻혔다.
2012년 선발로 두 번 등판했지만, 모두 2이닝을 넘지 못하여 2군으로 내려간 후 다시 승격되지 못했다.
3.2. KIA 타이거즈 시절
2013년에도 2군에서 불펜으로 등판하면서 5경기 평균자책점 10.38로 탈탈 털리던 중 5월 6일, 송은범과 함께 KIA 타이거즈의 김상현, 진해수를 상대로 2:2 대형 맞트레이드가 이루어지면서 유니폼을 갈아입게 되었다.
이렇게 신승현마저 타 팀으로 가면서 SK 창단 멤버는 엄정욱을 제외하고는 모두 은퇴하거나 타 팀으로 이적했다. 참고로 신승현의 이적 당시 2013년 현역으로 뛰던 SK 창단 멤버는 신승현, 엄정욱, 조동화(이상 SK), 이진영(LG), 이승호(NC), 이대수(한화)가 있었다.[13][14]
2006년 이후 군입대 및 부상과 수술의 반복으로 공백이 엄청나게 길었고, 1군에 가끔 올라와서 신나게 털리고만 내려갔으며, 2013년에는 2군에서도 10점대 평자책을 찍는 등 거의 부활의 기대가 안 되는 성적이었기 때문에 SK 팬조차 신승현을 기억에서 잊고 있었고, 2:2 트레이드로 팀을 떠났을 때도 그냥 양팀 팬들 모두 송은범 옵션으로만 생각할 뿐 아무도 신승현을 주목하지 않았다.
3.2.1. 2013 시즌
KIA로 이적하고 5월 7일에 송은범과 함께 1군 엔트리에 등록되었고, 무등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팀이 2:0으로 끌려가던 7회초 2사 1, 3루 상황에 구원투수로 등판하였다. 최희섭의 실책으로 1점을 허용(서재응이 내보낸 주자를 분식회계)하긴 했지만 2⅓이닝 1피안타 2사사구 3탈삼진 무실점으로 가능성을 보였다. 하지만 팀은 크리스 옥스프링에게 농락당하고 3:0으로 완봉패당했다.
전반적으로 직구 구속이 140km/h 중반대까지 나올 정도로 구속이나 구위는 괜찮았으나, 변화구를 포함한 제구 문제가 아직 남았다. 하지만 황무지같은 KIA 불펜에서는 제법 괜찮은 역할을 해줄 자원으로 떠올랐다.
5월 10일 포항 야구장 삼성전에서 팀이 스코어 0:3으로 끌려가던 7회말에 팀의 두 번째 투수로 등판, 다섯 타자를 상대하여 1이닝 1피안타 1사사구 1탈삼진 무실점으로 삼성의 추가 득점을 막았다. 12개의 공을 던지면서 볼을 1개밖에 안 줬고, 그나마도 김상수의 몸에 맞는 공이었다. 신승현은 제 몫을 했지만 이날 팀은 스코어 0:3으로 패했다.
5월 14일 무등 야구장 SK전에서 팀이 스코어 0:2으로 리드하던 7회초에 두 번째 투수로 등판, 세 타자를 상대하여 출루를 허용하지 않고 1이닝 12투구수 1탈삼진 무실점, 홀드를 기록하며 송은범보다도 더 믿음직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8회초 송은범이 최정에게 솔로홈런을 허용하며 더더욱 비교되었다. 신승현은 이날 2004년 6월 4일 이후 3,266일만에 홀드를 기록했고, 팀도 스코어 1:3으로 승리하여 5연패를 끊었다.
5월 15일 이어진 경기에서는 3:3으로 비기던 8회초 1사에 ⅔이닝을 틀어막은 박경태에 이어 네 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첫 타자인 최정에게 삼진을 뽑아내는 것을 시작으로[15] , 1⅔이닝 23투구수 1피안타 무사사구 4탈삼진 무실점 무자책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팀은 연장접전 끝에 송은범의 1실점[16] 폭투와 득점 찬스에서의 삽질로 4:3으로 패했다. 9회말 무사 만루의 찬스를 KIA가 말아먹을 때 매우 안타까워하는 신승현의 모습을 중계진이 보여주었다.
5월 18일 잠실 야구장 LG전에서 팀이 스코어 3:1로 리드하던 6회말 2사 3루에 선발 서재응에 이어서 등판하여 양영동을 유격수 뜬공으로 처리하고 7회말에도 올라와 손주인과 이대형을 삼진 처리, 오지환에게 우측 라인 안쪽으로 흘러나가는 변태성 3루타를 맞기도 했지만, 이어서 정성훈을 투수 땅볼로 처리하며 서재응의 승리를 지키는 데에 한몫을 했다. 이 날 기록은 1⅓이닝 17투구수 1피안타 무사사구 2탈삼진 무실점, 홀드. 팀은 LG의 추격을 봉쇄하고 3:1로 승리했다.
하지만 1군 경기에 자주 출장하면서 타 구단에서 신승현을 분석을 하기 시작했는지, 출루를 허용하는 빈도가 좀 높아졌다. 특히 제구가 좋다고만은 할 수 없기에 볼이 많다는 게 문제였다.
7월 23일 잠실 LG전에서는 수준급의 슬라이더를 구사하며 무실점 호투하였으나 팀은 13:3으로 대패했다.
7월 26일 마산 NC전에서 팀이 3:4로 뒤지던 7회말 2사 1루에 등판하였으나 2타자에게 연속으로 볼넷을 허용, 아웃카운트를 한 개도 잡지 못했다. 이후 화를 참지 못하며 소리지르고 식빵을 굽는 장면이 보여 시청자에게 충공깽을 선사하였으며 KIA팬으로부터 많은 질타를 받았다.
8월 2일 광주 넥센전에서 등판해 안태영에게 동점 2루타를 맞으며 서재응의 승을 날려먹었다. 그리고 또 화를 참지 못하고 글러브를 투척하는 장면이 포착되면서 KIA팬, 넥센팬들에게 성격 더럽다면서 많이 까였다.
그래도 KIA에서 자기 공을 던질 수 있는 몇 안 되는 불펜투수인지라, 부상병동에서 복귀한 심동섭과 함께 자주 등판하였다.
9월 28일 문학 SK 와이번스전에서 1사 만루 상황에 등판하여 병살로 막고 다음 회 팀이 역전하며 시즌 첫 승을 기록하였다. 근데 한동민에게 홈런을 맞자 또 글러브를 땅바닥에 내던지며 식빵을 굽는 과격한 행동을 해서 구설수에 올랐다.
다음 날 929 대첩 때는 신창호가 남긴 승계주자를 모두 깔끔하게 분식회계하며 2.2이닝 2실점으로 털리며 시즌 방어율 '''4.97'''을 마크하였다. 조금만 노력(?)하면 5점대 방어율이 코앞이었다.
10월 4일 시즌 마지막 경기이자 무등 야구장에서의 고별경기인 넥센전에서 7회초 듀웨인 빌로우에 뒤를 이어 무사 1, 2루에 등판하여 볼넷과 안타를 맞아 1점을 분식회계하였으나, 이후 3타자를 연속으로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7회초를 마무리하였다.
시즌 최종성적은 55경기 등판 51⅔이닝 1승 1패 8홀드 평균자책점 '''4.88'''이다.
3.3. LG 트윈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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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후 이대형의 보상선수로 LG 트윈스로 이적, 1년도 안 되어 다시 유니폼을 갈아입게 되었다. 유망주나 즉전감 타자를 유출시키지 않은 것을 고려한다면 선방이라고 할 수 있으나, KIA 입장에서는 안영명, 조영훈에 이어 '''트레이드로 데려온 선수를 1년도 채 못 쓰고 다시 보내는''' 기이한 운명을 맞이했으며 전년도 김주찬의 보상선수였던 홍성민에 이어 '''2년 연속 사이드암 불펜투수 유출'''(…)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이와는 별도로 다시 한 번 팀을 옮겨야 하는 운명에 처한 신승현은 벼락을 맞은 듯했다는 소감을 남겼고, KIA에 있으면서 친해진 김진우는 친해졌던 동료를 다시 보내는 심경을 트위터에 남기기도 했다. 덕택에 벌써 '''신벼락''', '''벼락신''', '''씹벼락''', '''신벼락 야구''' 등의 별명이 양산되고 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이라면, 김기태 LG 트윈스 감독과 SK 와이번스에서 선수로써 인연을 맺은 적이 있다는 것.
3.3.1. 2014년
3.3.2. 2015년
5월 24일 시즌 처음으로 1군에 등록되었다.
5월 31일 삼성이 엘지에게 9:3으로 앞선 9회 초 2아웃 때 399홈런을 친 상태였던 이승엽을 고의사구에 가깝게 걸러서 큰 논란이 되었다.
정찬헌이 음주운전으로 징계를 받아 엔트리에서 빠지게 되어 필승조에 들어가게 되었다.
팀 성적은 개차반이 났지만 그 중에서도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8월 4일 경기에서는 류제국이 4이닝 7실점으로 무너진 경기에 구원등판해 5이닝동안 1실점으로 막으면서 패전처리를 하였다.
공을 많이 던져서 휴식 차원으로 다음날 말소되어 2군으로 내려갔다.
드디어 8월 25일 1군 엔트리에 등록되었다.
9월 23일 경기에서 오랜만에 선발투수로 나오게 되었으나 우천으로 경기가 취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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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까지는 무척 준수한 스탯을 보여줬으나 9월 이후 말 그대로 대폭망을 하면서 스탯이 무진장 깎였다.
3.3.3. 2016년
'''전반기는 엘지 불펜의 중심, 후반기는 작년 9월처럼 제대로 망했어요'''
시즌 초 잘 던지던 중 뜬금없이 4월 18일 1군에서 말소되었다. 기사에선 일정상 좌타자가 많이 포진한 팀이랑 붙는 김에 체력 안배를 위해 말소한 걸로 보인다고 예측했다.
4월 29일 다시 콜업되었다.
5월 1일 5회에 등판해 무실점으로 깔끔히 막았고 첫승을 챙겼다. 5월 1일 기준으로 10경기 '''ERA 0.00'''을 찍으면서 무실점 행진을 하고 있다. 다른 불펜투수들이 와르르 무너진 상황에서 유일하게 밥값을 하는 중. 결국 이후에 0점대 평자책은 무너졌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성적을 기록중이다. 6월 26일 기준 팀내 홀드 1위.
6월 26일 넥센전에서는 1:2로 이기고 있던 9회 2사 3루 상황에 올라왔다.[17]윤석민과 채태인을 연속 볼넷으로 내보내면서 장작을 쌓으며 팬들 똥줄을 타들어가게 했지만 다행히 다음 타자 임병욱을 삼진처리하면서 시즌 첫 세이브를 올렸다.[18]
전반기 활약에 힘입어 감독 추천으로 올스타에 뽑혔다. 데뷔 17년 이래 처음이며 본인은 매우 감격한 듯. 인터뷰
7월 21일 2군으로 내려갔다. 피로누적 때문이라고.
9월 7일 넥센전에서 선발로 올라온 봉중근이 봉타나 모드를 발동해서 5이닝 2피안타 무실점을 하고 내려간 다음에 올라왔다. 이날 신승현은 분식회계를 저질러서 봉중근의 승리투수 요건을 날려먹었고 곧바로 김지용과 교체되었다.
3.3.4. 2017년
4월에 잠깐 1군에 있었으나 3경기만 뛴 후 2군으로 내려갔고 이 후 계속 2군에서만 뛰었다. 1군에서의 최종 성적은 3경기 3⅔이닝이 전부.
시즌 후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됐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사실이었다.
시즌이 끝난 후 결국 방출되었다.
4. 펠릭스 호세와의 난투극
여담으로 펠릭스 호세와의 맞대결로 유명하다. 2006년 8월 5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경기에서 롯데가 스코어 3:1로 앞선 3회초 2사 후[19] 볼카운트 3볼1스트라이크에서 신승현의 몸쪽 공이 그 해 5년만에 롯데 자이언츠에 돌아와 중심타자 역할을 하고 있었던 호세의 오른쪽 겨드랑이를 맞췄다. 평정심을 잃은 호세는 원현식 주심의 만류를 뿌리치고 순식간에 마운드로 달려나가 글러브#s-1.2를 자신에게 던진 신승현을 붙잡았으나, 신승현이 반대쪽으로 달려나가면서 놓쳤다.
그 후 롯데 공필성 1루 코치의 적극 제지로[20] 호세가 신승현을 쥐어패는 사태는 면했지만, 그 직후 다혈질 성격인 신승현이 분을 못 이기고 SK 덕아웃 쪽으로 들어가서 '''방망이를 들고 나오자''',[21][22] 열받은 호세가 다시 SK 덕아웃 쪽으로 돌진했다.
결국 당시 SK 코치진인 성준 투수코치, 최태원 주루코치[23] 외 SK 선수, 롯데 선수 수십 명이 붙잡아 호세를 넘어뜨려서 겨우 제지에 성공했다. 이는 호세의 엄청난 파워를 증명하는 사건 중 하나로서 당시 호세의 나이는 거의 은퇴 직전인 마흔둘이었다.
결국 8월 5일 경기에서 호세가 SK 측 덕아웃으로 와서 모자를 벗고 사과했고, 신승현 또한 롯데 덕아웃에 가서 사과했다. 그리고 두 선수에게는 KBO 징계위원회에서 각각 벌금 300만 원이 부과되었고, 방망이를 들고 나온 신승현에게는 유소년 야구봉사 24시간이 추가로 부과되며 마무리되었다. 또한 이 사건은 '''한국 프로야구 5대 난투극'''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벤치 클리어링 항목의 동영상 참조.
비슷한 사례로 삼성 배영수는 푸른 피의 에이스(…)로 거듭난 반면, 신승현의 성적은 2006년을 기점으로 내리막을 타게 되었기 때문에 야갤 개드립 소재로 각광을 받기도 했다.
꼴데툰 2013년에서는 한국을 방문한 호세에게 암수드립을 치면서 배트를 들고 덤비다가 한 방 맞고 만다.
5. 연도별 주요 성적
[1] 2003 시즌까지 '''김'''명완(金明完)이란 이름을 사용했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2] 호적상으로는 1983년 8월 13일이다. 그 이유는, 출생 후 호적 등록 과정에서 동사무소 공무원이 깜빡하고 등록하지 않았고 그 공무원이 사망하는 바람에 1983년으로 등록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개명 과정에서 생년월일을 고칠 수 있었으나 고치지 않았다. 하지만 학교는 원래대로 1981년생들과 함께 다녔다고 한다. 이것이 신승현이 1981년생 박정권과 전주고 동기이고 SK 입단 역시 2000년에 한 이유다. https://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382&aid=0000487954[3] 이 27번은 트레이드 전까지 김상현이 달았고, 2014년부터는 예전에 김상현이었던 선수가 달게 된다.[4] 이때만 해도 지명권이 대학 진학 후에도 유지가 되어 상당히 많은 선수들을 뽑던 시절이었다. 당시 하위픽은 전략적으로 대학을 보내려고 찍거나, 그냥 로또 긁는 심정으로 픽하는 편이었다. 신승현은 후자였다.[5] 2003년 양친이 이혼하였는데, 어머니 쪽을 따르게 된 김명완은 성을 어머니의 성인 '''신(申)'''씨로 고치게 되었고, 더불어 이름도 '''명완(明完)'''은 야구선수로써 조금 유약해 보인다하여 '''승현(承賢)'''으로 개명하여, 2004 시즌부터 지금의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現 히오스 프로게이머 정우서(개명 전 박준상), 일본의 야구선수 아카미나이 긴지가 유사한 사례(개명 전 우베 긴지)[6] 그래서 수준급 좌타자들이 즐비한 LG에게 강했다. 2005년에는 LG를 상대로 5전 5승을 거두었다. 사실 사이드암이 성공하기 힘든 요인 중 하나가 좌타자들의 공략 문제 때문인데, 신승현은 좌타자에게 강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7] 2000년 드래프트에서 쌍방울은 대박을 터트렸다. 쌍방울의 1차 지명은 SK 원년 에이스인 군산상고의 이승호. 2차 1순위 지명 선수는 대전고등학교의 마일영이었으나, 재정난으로 현대에 드래프트권을 팔았다. 2차 2순위는 중앙고등학교의 광속구 투수 '와일드 씽' 엄정욱. 2차 9순위는 신승현과 같은 전주고등학교의 내야수 박정권(지명 후 동국대 입학) 등으로, 마일영만 현대에 팔지 않았어도 이승호-마일영-엄정욱-박정권-신승현이라는 초대박 픽을 완성할 수 있었다. 나머지로도 상상 이상의 대박이지만서도.[8] 다만 2003 한국시리즈에서 사이드암이 부족했던 팀 사정상 엔트리에 들어서 패전조로 두경기 등판한적이 있다. 1차전, 5차전.[9] 선발로도 9번 출장하였으나, 1승도 거두지 못하였다.[10] 14경기(14선발) 65⅔이닝 4승 4패 평균자책점 '''6.17'''(…).[11] 다만 팀은 최종전에서 LG 트윈스에게 덜미를 잡혀 2위에서 3위로 굴러떨어졌고, 이로 인해 치르지 않을 수도 있었던 준플레이오프에서 한화 이글스에 2승 3패로 탈락했다.[12] 참고로 신승현이 2005년 정규시즌에서 '''데이비스-김태균-틸슨 브리또-이범호가 모두 있던''' 공포의 한화 타선를 상대로 거두었던 성적은 3승 무패, 평균자책 0.64이었기에 더 아쉬움이 남은 경기였다.[13] 다만 조동화와 이대수는 지명을 받지 못한 신고선수 출신이고 입단 2년차부터 정식선수로 등록된 바 있어서 원년멤버라고 보기엔 좀 애매한 게 있다.[14] 참고로 2013년 신승현이 이적하며 SK 창단 멤버 중 현역 선수는 엄정욱만 제외하고 모두 타 팀으로 이적해버린 상태였으나 2014년 6월 이대수가 트레이드를 통해 SK로 돌아왔고, 2015년 시즌 후 최후의 원년 멤버였던 엄정욱이 방출되었으나, NC에서 방출된 이승호가 다시 SK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15] 최정이 덕아웃으로 돌아온 후 공이 안 보인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로 구위가 좋았다.[16] 앤서니 르루의 주자 분식회계.[17] 원래대로라면 마무리 임정우가 나와야 될 상황이지만 연투와 전날 경기에서 패전을 기록했기에 쉬게 해준 걸로 보인다.[18] 여담으로 이 세이브는 신승현이 2003년 세이브를 올린 후 무려 13년 만에 추가한 세이브이다.[19] 1사 2루에서 정수근이 도루를 시도하다 태그 아웃되었다.[20] 호세를 말리던 와중에 공필성 코치는 호세가 신승현을 때리려고 휘두른 주먹에 한 대 맞고 그라운드에 내동댕이쳐졌다(…).[21] 구단 직원들에게 제지당해 호세와 맞닥트리는 불상사는 없었다.[22] 벤치 클리어링에 야구방망이를 동원하는 것은 금기 중의 금기. 고교야구에서는 한 선수가 벤클에 야구방망이를 동원했다가 영구제명 당한 사례도 있다. 이 경우는 방망이를 꺼내들려는 찰나에 직원들이 제지해서 유야무야 넘어간 듯하지만.[23] 호세를 뒤에서 붙잡고 끌어안아 앞에 호세를 저지하러 몰려오던 선수단과 함께 호세를 뒤로 넘어트리는데 성공했다. 그 대가로 호세+몰려오던 다른 선수들에게 깔리고 말았지만. 그래서 한동안 최태원 코치와 공필성 코치의 살신성인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