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넌트레이스 성적'''
|
'''순위'''
| '''승'''
| '''패'''
| '''무'''
| '''승률'''
|
'''4'''
| 67
| 57
| 2
| '''0.540'''
|
1. 스토브리그
1.1. 코칭스태프 이동
류영수 2군 감독이 삼성과의 계약기간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태평양 돌핀스 감독으로 부임한
정동진을 따라 태평양으로 팀을 옮겼다. 대신 박용진 코치가 2군 감독을 맡았다.
1990 시즌 후 계약이 끝났던 마티 코치를 다시 데려왔고, 타격코치로는
세이부 라이온즈의 타격코치로 있던 도이 마사히로를 영입했다.
1.2. 선수 이동
1991년 시즌 후
윤석환이 은퇴했고 이듬해 1992년 1월
OB 베어스 투수코치로 영입됐다.
나광남,
이문한, 최홍석, 홍성연 등도 방출돼 은퇴했다. 이문한은 이후 삼성 스카우트진에 합류해 스카우트로서 이름을 날렸다.
한편 강종필은 현역병으로 입대했다.
1.3. 신인 지명
| 이름
| 포지션
| 경력
| 계약금
|
1차
| 김태한
| 투수
| 대구상고 - 계명대
| 8000만원
|
2차
| 1라운드
| 동봉철
| 외야수
| 신일고 - 중앙대
| 5300만원
|
2라운드
| 김정민
| 포수
| 경남고 - 동아대
| 3500만원
|
3라운드
| 박철희
| 내야수
| 북일고 - 단국대
| 2500만원
|
4라운드
| 한기철
| 외야수
| 북일고 - 단국대
| 2000만원
|
5라운드
| 강두곤
| 내야수
| 부산고 - 경남대
| 1700만원
|
6라운드
| 오봉옥
| 투수
| 포철공고 - 영남대(중퇴)
| 1200만원
|
7라운드
| 김태룡
| 내야수
| 청주고 - 계명대
| 2000만원
|
고졸 연고
| 곽채진
| 투수
| 경주고
| 2000만원
|
이동수
| 내야수
| 대구고
| 800만원
|
전종진
| 내야수
| 경북고
| 800만원
|
연습생
| 박광율
| 외야수
| 경남고 - 연세대
| 1200만원
|
박철수
| 투수
| 경남상고 - 단국대
| 1000만원
|
2. 전지훈련
1991년 말에는 박용진 2군 감독과
이태일, 김상태, 최현준이
긴테쓰 버팔로즈 추계 훈련에 참가했다. 미국 교육리그에는
이선희,
손상득 2군 코치와
김인철,
허삼영 등 2명의 선수를
LA 다저스 소속으로 파견했다. 이 당시 평가가 좋았던 김인철은 선발로서 좀 더 많은 기회를 받았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1군 선수들은 오랜만에 미국 플로리다 베로비치 다저타운에서 전지훈련을 실시했다. 투수 인스트럭터 외에는 1985년 전지훈련 때의 그 인스트럭터들이 그대로 합류했다. 미국에서 귀국하던 길에 일본 노베오카에서도 전지훈련을 실시했으나, 선수들이 시차 적응에 실패하면서 훈련 계획도 망쳤다.
3. 정규 시즌
전년도 투수 운용의 핵심이었던
김성길은 결국 70이닝을 소화하는데 그쳤고 당시 대학 최고의 타자로 손꼽힌
양준혁을 거르면서 뽑을 정도로 기대가 컸던
김태한은 겨우 3승만 기록했다. 하지만 계투진에서
오봉옥이 13승 무패로 김성길을 대신했고 선발진에서는
이태일이 13승을 기록했다.
타선에는
김성래와
이종두가 여전히 부상을 떨쳐내지 못했고, 김성근 감독이 부임하면서 영입한 베테랑들은 죄다 노쇠화로 부진했다.
결국 67승 57패 2무로 4위를 차지했다.
3.1. 선수 이동
5월 7일에 최해명과 이현택이
쌍방울 레이더스의 박종철, 김기완, 이창원을 상대로 트레이드됐다. 트레이드 대상자가 당시 모두 백업 아니면 2군 선수들이어서 화제가 되지도 않았고, 트레이드 이후로도 별 활약이 없어 회자되지 않는다.
4. 포스트시즌
'''포스트시즌 준플레이오프 성적'''
|
'''승'''
| '''패'''
| '''무'''
|
0
| 2
| 0
|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
|
김성근 감독은 부임 후 자신이 영입한 베테랑들을 중용해, 기존의 대구·경북 출신 선수들과 마찰이 있었다. 그런 와중에
롯데 자이언츠와의 준플레이오프를 앞두고 김성근 감독은 팀의 주장이자 주전 3루수이기도 한
김용국의 불성실한 태도를 지적하면서 그를 엔트리에서 아예 빼버렸고, 김용국이 이에 반발하면서 분위기는 더욱 어수선해졌다. 결국 롯데를 상대로 2경기 모두 영봉패를 당했다.
5. 선수별 개인 성적
- 진한 표시는 리그 5위내 성적. 붉은 글씨는 1위 입상 성적.
- 투수는 이닝이 많은 순서대로, 타자들은 타수가 많은 순서대로.
- 시즌 중 이적한 선수들은 당해 삼성 소속 성적만 기록.
| 이름
| 경기수
| 선발등판
| 이닝
| 승
| 패
| 세이브
| ERA
| 피안타
| 사사구
| 탈삼진
|
12
| 이태일
| 27
| 22
| 154
| 13 (10위)
| 7
| 1
| '''2.86''' (4위)
| 140
| 47
| 52
|
30
| 김상엽
| 41 (6위)
| 13
| 144
| 8
| 12
| '''15''' (2위)
| 4.19
| 125
| 75
| 103
|
67
| 김인철
| 28
| 23
| 128⅔
| 8
| 7
| 1
| 4.20
| 98
| 112
| 88
|
52
| 오봉옥
| 38 (8위)
| 3
| 126⅔
| 13 (10위)
| 0
| 2
| 3.55
| 114
| 78
| 64
|
33
| 류명선
| 16
| 15
| 92⅓
| 8
| 3
| 0
| 4.29
| 81
| 65
| 58
|
17
| 김성길
| 17
| 9
| 70
| 1
| 7
| 1
| 5.14
| 73
| 33
| 30
|
48
| 손영철
| 25
| 3
| 63⅔
| 2
| 4
| 0
| 7.07
| 69
| 51
| 29
|
27
| 최일언
| 13
| 1
| 29⅓
| 1
| 1
| 0
| 4.60
| 28
| 16
| 19
|
77
| 이상훈
| 10
| 2
| 24⅓
| 1
| 0
| 0
| 9.62
| 35
| 20
| 18
|
50
| 박철수
| 7
| 0
| 10
| 0
| 1
| 0
| 4.50
| 7
| 11
| 8
|
18
| 최현준
| 5
| 0
| 4
| 1
| 0
| 0
| 20.25
| 12
| 1
| 1
|
71
| 이상범
| 2
| 0
| 2
| 0
| 0
| 0
| 4.50
| 2
| 2
| 0
|
39
| 박종철
| 1
| 0
| 1⅓
| 0
| 0
| 0
| 0.00
| 1
| 0
| 1
|
| 이름
| 경기수
| 선발등판
| 이닝
| 승
| 패
| 세이브
| ERA
| 피안타
| 사사구
| 탈삼진
|
14
| 성준
| 21
| 21
| 124
| 8
| 6
| 0
| 3.99
| 120
| 61
| 65
|
28
| 김태한
| '''45''' (4위)
| 8
| 79⅔
| 3
| 7
| 5
| 5.42
| 82
| 65
| 56
|
47
| 박용준
| 27
| 6
| 61
| 0
| 2
| 0
| 5.61
| 79
| 45
| 32
|
31
| 정윤수
| 6
| 0
| 10⅔
| 0
| 0
| 0
| 10.13
| 19
| 6
| 6
|
| 이름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22
| 이만수
| 93
| 305
| .289
| 88
| 11
| 0
| 22 (6위)
| 70
| 50
| 7
|
23
| 김성현
| 56
| 152
| .270
| 41
| 3
| 2
| 3
| 26
| 16
| 3
|
26
| 박정환
| 36
| 57
| .140
| 8
| 0
| 0
| 2
| 5
| 2
| 0
|
25
| 조범현
| 26
| 24
| .125
| 3
| 1
| 0
| 1
| 4
| 1
| 0
|
16
| 이영재
| 3
| 3
| .000
| 0
| 0
| 0
| 0
| 0
| 0
| 0
|
32
| 김정민
| 2
| 1
| .000
| 0
| 0
| 0
| 0
| 0
| 1
| 0
|
| 이름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21
| 신경식
| 117
| 423
| .267
| 113
| 15
| 2
| 3
| 41
| 61
| 17
|
6
| 강기웅
| 126
| 405
| .304
| 123
| 19
| 3
| 16
| 56
| 68
| 13
|
7
| 김용국
| 121
| 311
| .264
| 82
| 14
| 1
| 6
| 35
| 39
| 4
|
1
| 류중일
| 104
| 294
| .211
| 62
| 12
| 1
| 5
| 27
| 43
| 8
|
3
| 박승호
| 91
| 265
| .283
| 75
| 14
| 0
| 10
| 45
| 34
| 1
|
56
| 정경훈
| 109
| 258
| .291
| 75
| 10
| 1
| 2
| 25
| 50
| '''37''' (2위)
|
5
| 김성래
| 86
| 226
| .292
| 66
| 13
| 0
| 11
| 50
| 31
| 1
|
24
| 김용철
| 51
| 117
| .248
| 29
| 0
| 0
| 6
| 22
| 16
| 0
|
15
| 박철희
| 23
| 17
| .294
| 5
| 1
| 0
| 1
| 3
| 7
| 0
|
69
| 전종진
| 8
| 9
| .222
| 2
| 0
| 0
| 0
| 0
| 0
| 0
|
44
| 이규창
| 6
| 7
| .143
| 1
| 0
| 0
| 1
| 1
| 1
| 1
|
11
| 이광길
| 13
| 4
| .000
| 0
| 0
| 0
| 0
| 0
| 0
| 0
|
42
| 김태룡
| 4
| 4
| .000
| 0
| 0
| 0
| 0
| 0
| 1
| 0
|
2
| 최해명
| 1
| 1
| 1.000
| 1
| 0
| 0
| 0
| 0
| 0
| 0
|
54
| 강두곤
| 1
| 0
| -
| 0
| 0
| 0
| 0
| 0
| 0
| 0
|
| 이름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6
| 동봉철
| 126
| 410
| .317 (7위)
| 130 (9위)
| 18
| '''7''' (5위)
| 11
| 52
| '''95''' (3위)
| 24 (6위)
|
40
| 이종두
| 95
| 275
| .236
| 65
| 13
| 1
| 11
| 44
| 33
| 2
|
4
| 장태수
| 92
| 162
| .216
| 35
| 4
| 2
| 2
| 20
| 28
| 4
|
9
| 윤용하
| 77
| 131
| .313
| 41
| 7
| 2
| 5
| 18
| 14
| 0
|
10
| 정성룡
| 63
| 104
| .192
| 20
| 2
| 0
| 3
| 15
| 9
| 0
|
19
| 구윤
| 36
| 81
| .272
| 22
| 5
| 0
| 1
| 10
| 3
| 0
|
8
| 허규옥
| 37
| 80
| .213
| 17
| 2
| 0
| 0
| 1
| 10
| 2
|
62
| 이창원
| 45
| 65
| .262
| 17
| 3
| 0
| 1
| 7
| 10
| 1
|
35
| 한기철
| 14
| 9
| .222
| 2
| 0
| 1
| 1
| 6
| 3
| 0
|
37
| 김종갑
| 13
| 9
| .000
| 0
| 0
| 0
| 0
| 0
| 1
| 0
|
43
| 박인구
| 11
| 9
| .111
| 1
| 1
| 0
| 0
| 1
| 2
| 0
|
20
| 김정수
| 9
| 9
| .222
| 2
| 1
| 0
| 0
| 1
| 1
| 0
|
65
| 전상렬
| 9
| 9
| .111
| 1
| 0
| 0
| 0
| 0
| 2
| 2
|
70
| 신동주
| 9
| 5
| .000
| 0
| 0
| 0
| 0
| 0
| 0
| 0
|
38
| 박광율
| 1
| 1
| .000
| 0
| 0
| 0
| 0
| 0
| 0
| 0
|
| 이름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30
| 김상엽
| 3
| 4
| .000
| 0
| 0
| 0
| 0
| 0
| 0
| 0
|
48
| 손영철
| 1
| 3
| .333
| 1
| 0
| 0
| 0
| 0
| 1
| 0
|
47
| 박용준
| 1
| 1
| .000
| 0
| 0
| 0
| 0
| 0
| 0
| 0
|
6. 수상 및 기록
- 오봉옥 : 승률 1위(1.000(13승 무패))
7. 기타
삼성 라이온즈 팬으로 유명한 영화 감독
장진은 1992년 군대에서 휴가 나왔을 때
팀의 성적 부진에 항의하기 위해 야구단 버스 위에 올라갔다고 고백했다.[1] 김성근은 대구구장에서 꼴보기 싫은 놈으로 선동열과 투 탑을 달리며 김성근과 선동열을 모두 겪어본 세대는 심지어 지금도 김성근을 다시 삼성 감독으로 할 바에는 차라리 선동열을 감독으로 하는 게 낫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1991, 1992년은 김성근에 대한 반감으로 평균 입장객이 대폭 감소했다.
[2] 대구구장 평균 입장객은 1989년 6,582명. 1990년 7,277명. 1993년 8,557명이었고 심지어 556을 찍던 1994년~1996년에도 8,230명 9,904명 7,534명이었다. 그러나 김성근 재임기인 1991, 1992년 대구구장 평균 입장객은 각각 5,680명과 5,011명으로 KBO 리그가 전체적으로 관람객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삼성만이 특별한 외부 이유 없이 단지 김성근 하는 짓(..)을 보기 싫어서 평관 2000명 가량이 야구장 가는 것을 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