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균
1. 소개
K3리그 강릉시청 축구단 소속의 축구 선수로 포지션은 중앙 공격수.
수원 팬들에게 있어서는 서동현과 더불어서 '포텐은 있는데 안 터지는 유망주'로 취급받았다. 안 터지는 포텐 , 그리고 팀에 대한 좋은 멘탈 때문에 애정을 담아서 조낸 까는 선수다. [4]
2020년 현재에도 중국 갑급 리그의 단일시즌 최고 득점 기록 (26골)을 가지고 있다. 옌볜 푸더의 레전드이지만, 모팀이 해체되고 본인도 팀을 떠난 후 부진을 헤메고 있다.
2. 플레이 스타일
경기 스타일은 다소 이기적인 조재진과 같은 스타일. 좋은 피지컬을 가지고 몸싸움에서 지지 않는 편이며 발재간도 장신 공격수 치고는 괜찮은 편, 활동량도 무난한 편이며 차붐이 '골문 앞에서의 날카로운 움직임'을 보고서 발탁했다고 할 정도로 골대 앞에서 수비수들을 따돌리는 움직임도 좋은 편이다. 스피드도 보통 이상은 되며 헤딩도 제법 타점이 높은 편이다. 게다가 팀 내의 분위기도 잘 따라가며 팀에 대한 충성심도 높고, 팬 관리도 제법 잘 해서 팬도 제법 많이 있으며 얼굴도 잘생긴 편이다.
그러나 2007년 이후 부상에 시달리며 경기에 출전하는 횟수가 줄어들고 이는 경기력 둔화로 이어졌고, 수원에 쟁쟁한 선수들 특히 용병 공격수들을 제치고 주전이 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팀내 세번째 공격수로 선발 출장보다는 교체 자원으로 경기에 나서게 됐다. 그리고 2008년 이후부터는 한번 부상을 당하면 꽤 오래 드러눕는 경향도 있는 편이다. 중앙 공격수 이외의 포지션을 소화를 못해서 다양한 포지션 소화가 가능한 타 선수[5] 들에 비해 전술적 효용성이 부족한 편이다.
3. 선수 경력
3.1. 수원 삼성 블루윙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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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금강대기 전국고교대회 6골로 공동 득점왕, 2006년부터 U-19 국가대표로 소집되는 등 유망주로 이름을 떨쳤고 2007년에 단국대학교를 중퇴한 후 K리그 드래프트를 신청,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1순위로 선발되었다.
187cm, 80kg의 좋은 피지컬과 골대 앞에서의 날카로운 움직임이 차범근 당시 수원 감독의 눈에 띄어서 첫 시즌부터 꾸준한 기회를 부여받았다. 2007년에는 리그 및 컵대회를 통틀어 18경기 출장 5골의 활약을 하였고, FC 서울과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성공시키는 등 임팩트있는 골을 날려준 덕분에 2007 시즌 종료 후 그해 시상식이란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모두 휩쓸었다.[6][7]
그러나 2008년에는 장기부상에 신음하며 컨디션 조절에 실패, 베이징 올림픽 대표에도 탈락하고 1시즌 동안 5경기 무득점에 그쳤으며, 2009년에도 시즌 초에 부상을 당하였으나 어찌저찌 출장하여 15경기 2골의 활약을 보였다.
2010년에도 잔부상과 힘겨운 주전경쟁 싸움 속에서 리그 13경기 2골을 기록했다.
2010년에는 남아공 월드컵 전훈 예비 명단에 뽑히며 월드컵 대표로 발탁되는듯 싶었으나 첫 연습게임을 앞두고 부상을 당해 돌아왔다.
2011년에는 주전 공격수인 베르손, 이 영입되고 신영록이 버티고 있어서 레알 수원 모드인 현 상황에서 튕겨나갈 공격수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의외로 신영록이 제주 유나이티드로 튕겨나가서 2011년 2월 현재로서는 수원의 3번째나 4번째 공격수 자리에서 주전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던 중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상하이 선화와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터뜨렸다. 하지만 후반 막판 상대 수비수의 악질 반칙에 부상.... 인줄 알았더니 사실은 그냥 급체했던거라고 한다.(...)
5월 3일 시드니와의 경기에서 1골, 5월 10일 상하이와의 경기에서 2골을 추가하면서 총 6골로 AFC 챔피언스리그 득점왕 단독 선두를 달리고 있다. 2위와의 차이는 2골. 그리고 이 활약으로 AFC 올해의 선수 후보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득점 1위 자리는 8강전에서 이동국이 포트트릭(...)을 기록하며 내주게 되었다. 여름에 새로이 영입된 스테보에게 주전 자리는 물론, 게인리히에게 세컨드 옵션 자리까지 뺏긴 하태균으로선 분발이 필요하다. 하지만 K리그 6강 플레이오프 부산와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어서 팀을 승리로 이끄는 등 다음 시즌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별명은 '''하태권[8] ''' 또는 '''차태권'''이다. 언론에 의해 이름도 성도 갈렸다. (...) 슛하면서 공은 안 차고 땅을 찬다고 해서 '''굴삭신'''이라 불리기도. 2011년에는 유독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서 '''하챔스'''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2012 시즌 전 김주영과의 트레이드 상대로 경남 FC에 갈 뻔 했지만, 김주영이 FC 서울행을 원하며 결국 FC 서울에 가 무산되었다. 2012년 시즌 초반에는 조동건이 영입되어서 4번째 공격수로 시즌을 시작하였으나 조동건의 부상을 틈타 3번째 공격수로 좋은 활약을 펼쳐 조동건을 밀어내고 후반 조커 및 로테이션 멤버로 한 시즌을 소화하였다. 31경기 6득점으로 2012 시즌을 마무리.
2012 시즌 후 상무에 입대, 2년간은 상주 상무 선수로 뛰었다.
상주 소속으로 처음 뛴 2013시즌 15경기 4골 3도움의 기록으로 평이한 활약을 펼치고 있었지만 32라운드 고양 Hi FC와의 대결에서 1:2로 밀리고 있던 상황에 동점골과 역전골을 연이어 성공시키며 MOM에 등극했다. 이 경기의 승리로 상주는 챌린지 초대 챔피언의 자리를 확정지었으니 그야말로 빛나는 활약. 시즌 기록은 20경기 8골 4도움.
2014 시즌 클래식에서는 부상으로 인해 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2014년 9월 9일 전역을 하고 9월 10일 울산전에 홈팬들에게 인사를 하면서 수원에 복귀했다. 수원이 2013 시즌 이후 곽희주를 놔버리는 바람에 하태균이 전역하여 수원에 복귀하니 제일 먼저 수원에 입단한 현역 멤버가 되어버렸다. 2014 시즌 수원의 공격수가 로저와 정대세 뿐이고 그나마 있는 공격수 중에 정대세는 슬럼프와 부상이 겹쳐 가용할 수 있는 공격수가 로저밖에 없는 상황에서 하태균의 복귀는 적절한 타이밍이 될 것으로 보였는데...
3.2. 옌볜 창바이산~옌볜 푸더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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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 2015년
옌볜 조선족 팬들이 만든 하태균송
2015년 2월 19일 갑작스럽게 박태하 감독이 지휘하는 옌볜 창바이산으로 2015년 7월까지 단기 임대되었다. 그리고 이 선택은 그의 선수 인생에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임대되자마자 연이어 골을 몰아치며 팀을 1위로 올려놓는데에 기여하고 있다. 7월초까지 '''16경기 14골로 득점 단독 1위'''를 달리고있고 이에 힘입어서 옌볜도 9승 7무로 리그 1위를 기록중이다. 당연히 연변 현지에서는 '''갓태균'''으로 칭송받고있으며 7월 정대세의 시미즈 이적과 함께 수원의 원톱 자원에 큰 공백이 생겨 하태균 복귀설이 나돌았지만 하태균 본인이 옌볜에서 신 노릇 하는 것을 원했고, 옌볜에서도 하태균의 완전 이적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수원에서는 공격 자원이 절실한 상황에서 마침 중국에서 포텐이 터진 하태균이 절실했지만 선수 본인과 옌볜에서도 완전 이적을 원했고 결정적으로 수원측에서 잡을 돈이 없었다. 이적료가 15억이라는 소문도 돌았지만 최종적으로는 약 4.5억 정도의 이적료로 완전 이적이 확정되었다.
옌볜으로 완전 이적 이후에도 골을 몰아넣으며 팀의 우승과 중국 슈퍼 리그 승격을 이끌고 총 27골로 갑급 리그 득점왕과 MVP를 차지하며 말 그대로 리그를 씹어먹었다. 특히 우승을 확정짓는 경기에서 해트트릭까지 쓸어담았다. 이런 상황이니 옌볜에서는 당연히 '''하神''' 으로 추앙받았다.
3.2.2. 2016년
옌볜 창바이산은 푸더 보험의 재정지원을 받아 옌볜 푸더로 이름을 바꾸었다. 옌볜은 승격후 갑급리그 시절보다 3배의 팀예산을 확보했으며, 용병을 대폭 교체하면서도, 갑급 리그에서 대활약을 한 하태균은 그대로 남겨두었다. 여기에 K리그에서 김승대와 윤빛가람을 확보하여, 공격라인을 모두 한국인 용병으로 채웠다. 황사머니를 시전하는 중국 구단들은 대체로 공격라인을 남미 유럽 용병으로 채우고, 아시아 쿼터를 한국인 용병을 쓰는데 반해, 한해 팀예산 500억원(...)[9] 의 연변은 공격라인을 모두 한국인으로 쓰면서, 미드필더에 감비아 출신 부바카르 트라왈리 , 수비수에 세르비아 용병인 니콜라 페트코비치를 쓰고 있다.
어쨌든 승격후에는 리그 수준 차로 갑급 리그만큼의 활약은 펼치지 못하고 있지만 윤빛가람 김승대와 함께 공격의 핵으로 쏠쏠이 활약을 하고 있다. 제3라운드 홈 첫경기에서 연변은 전국7웅의 하나인 강팀 베이징 궈안을 1-0으로 격침시켰는데, 이 경기에서 원톱으로 나선 하태균이 결승골을 넣었다. 이때문에 하태균은 중국 언론이 꼽은 3라운드 MVP로 꼽혔을 정도.
5월에 큰 부상을 당했고, 치료 겸 재활로 한국을 왕복하고 있기 때문에 간간히 나오는 실정이라 2015년보다는 활약이 드물어졌다. 결국 3득점 5도움이라는 비교적 저조한 성적을 거뒀고, 이후 갑급 리그 소속 구단인 리장 자윈하오와 협상을 진행 중이었는데, # 도중에 뭔가 바뀐 것인지 2017년에도 연변에 잔류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가, # 옌볜에서 처음 재계약 협상에 실패했던 니콜라이 페트코비치를 다시 잡는 것에 성공하며 다시 방출될 가능성이 생겼다. # 이에 대하여 중국의 축구 언론들은 중국 슈퍼 리그의 외국인 선수 제도가 2017년 1월에 갑작스럽게 바뀜에 따라 하태균이 희생양이 되었다고 보도하고 있다. 슈퍼 리그에 돈을 쏟아붓는데도 외국인 선수들만 활약할 뿐, 국내 선수들의 경기력이 별로 향상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은 중국 축협은, 경기당 출전할 수 있는 외국인 수에서 아시아 쿼터(3명+아시아 1명)를 폐지하고 국적에 불문하고 5인보유, 3인 출전으로 제한했는데, 이미 한국인 핵심 선수인 윤빛가람, 김승대 2명을 쓰고 있는 연변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아시아 쿼터 격으로 데리고 있던 하태균을 포기해야 할 확률이 높을 듯 했고...
3.3. 다시 중국 갑급 리그: 바오딩 룽다
결국 2월 22일, 옌볜과 계약을 해지하면서 공식적으로 무적 신분이 되었다. # 이후 행선지는 K리그나 중국 갑급 리그 중에 한 곳으로 결정될 것 같다는 듯. 그리고 같은 날 저녁 지속적으로 공격수를 구하고 있는 울산 현대[10] 에 입단할수도 있다는 소식이 나오며 다음 거취는 K리그 복귀 쪽으로 조금 더 무게가 쏠리게 되었으나, # 중국 잔류로 방침을 바꾼 것인지 2월 25일 갑급 리그의 바오딩 룽다에 입단했다는 소식이 나왔다. # 비오딩 룽다는 을급에서 승격, 전력보강을 위해 하태균에 주목했고, 하태균도 갑급 리그를 씹어먹었던 전적이 있어서인지 대우 또한 팀내 최고 대우라고 하는데, 2부 리그 격인 중국 갑급 리그조차도 굴리는 돈이 K리그 클래식의 뺨을 후려치는 수준이기 때문에 하태균 입장에서는 2부 리그에서 뛰어도 그다지 손해는 아닐 듯. 실제로 바오딩은 울산 현대보다 큰 거액을 제시했다고 한다. 중국에서 뛴 2년동안 넣은 골이 K리그 통산 기록과 맞먹는 등 하태균의 플레이는 중국 스타일에 더 맞는 듯 하다.
2017년 6월 말 기준, 바오딩의 한심한 공격력에도 하태균은 좋은 플레이로 현재 6골을 기록하여 팀에서 어느 정도 활약해주고 있다. 문제는 바오딩이 꼴찌를 기록하고 있어서 이런 활약이 가리고 있다. 그리하여 팀도 급히 본프레레 감독으로 교체해서 강등권을 탈출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심지어 2017년 9월 3일에는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12골로 팀내 득점순위 1위이다. 갑급 리그 전체에서는 5위. 그야말로 환골탈태했다.
2017년 최종 기록은 14골로 리그 7위의 골 순위를 기록하였다. 하지만 바오딩이 본프레레 감독을 선임하고서도 15위로 강등된지라, 하태균도 다른 팀을 알아봐야 할 듯.
한편 하태균이 옌볜 푸더 시절 넣은 26골은 2020년 아직까지도 중국 갑급 리그의 한 시즌 최다골로 남아있다.
3.4. 전남 드래곤즈
이후 로베르트 페체신과의 계약을 포기한 전남 드래곤즈에서 하태균의 영입에 성공했다. #
1라운드 수원 삼성과의 경기에서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며 일찍 교체되었다. 2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와의 경기에서는 페널티킥을 찼으나 강현무의 미친 2단 선방에 걸려 득점에 실패하고 말았다.
5월 19일 대구FC와의 원정경기에서 환상적인 득점을 했지만 수비수와의 충돌로 VAR시스템을 통해 득점이 인정되지 않았다.
8월까지 치른 리그 경기에서 득점이 아예 없다. 13일 기준으로 기록이 '''8경기 무득점 무도움 파울 6개.''' 포지션이 공미도 아니고 원톱 고정인 선수가 이 정도면....먹튀 소리 들어도 할 말 없다.더군나나 꽤 고액 연봉자[11] 라 이듬해 겨울 이적 시장 때 이적 가능성이 높을 듯.[12] K리그에서 죽쑤느니 차라리 중국 리그에서 활약하는 것이 본인에게도 나을 수 있다.[13][14]
심지어는 5월 이후 출전 기록이 아예 없다...
결국 강등이 확정됐고, 그동안 한것은 싸인회 참석과 봉사활동 등 실질적으로 구단의 경기력적인 측면에서는 도움이 전혀 되지 않았기에 전남팬으로써는 천불이 날 존재로 낙인 찍혔다
2019 시즌 선수 명단에 포함되었지만 리그 단 한경기도 출장하지 못했다.
3.5. 강릉시청
결국 시즌이 끝난 뒤 그대로 상호 합의 하에 계약을 해지한 후 떠났다. #
그리고 새로이 개편된 대한민국 3부 축구리그인 K3리그의 강릉시청으로 이적했다. 새로운 리그에서의 첫 시즌 기록은 리그 4경기 5골, FA컵 1경기 출전, K3리그 챔피언십 1경기 출전.
[1] 이름에 '클 태'자 들어가는 사람 치고는 드물게 '太'를 썼다. 우리나라의 '클 태'자 들어가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泰'를 쓰는걸 감안하면 매우 특이한 케이스. 영문 표기도 Goon은 균이 아니라 군으로 발음된다. ACL 한정으로 GYOON으로 표기된다.[2] 안정환이 떠난 뒤인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수원에서 10번을 달고 뛰었다.[3] 상주 상무 시절.[4] 그나마 서동현은 수원에서도 한 번 텨졌다. 하태균은 중국에서 완전 터졌다!![5] , 염기훈, 이상호. 다만 이들 중 최성국은 승부조작으로 제명되며 금지어로 전락했고, 이상호도 FC 서울로 이적하면서 아직까지 수원에 남아있는 선수는 염기훈밖에 없다.[6] 당시 차범근은 하태균에게 '그 나이때의 나보다 낫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기대를 많이 받았다.[7] 당시 대전의 플옵 진출을 이끈 센터백 김형일이 더 신인왕에 적합했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골을 넣는 공격수쪽이 부각되는게 있는지라...[8] 참고로 하태권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 전 배드민턴 국가대표 선수다.[9]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K리그 모든 구단의 연봉을 능가한다.[10] 울산은 겨울 이적 시장부터 외국인 공격수의 영입을 추진했으나 결국 모두 결렬되면서 대체제로 2선 자원인 오르샤를 영입했고, 부진으로 트라브존스포르에서 일찍 방출된 석현준을 영입하려는 시도 역시 무산되는 등 스트라이커 영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나 아직 결과물을 얻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11] 신인 시절부터 5천을 받았고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인 후엔 그 5배를 받았다는 말이 있다. 또한 중국에서는 최소 추정 연봉이 두 자릿수 (...) 심지어 슈퍼 리그가 아닌 갑급 리그에서도 고액 연봉자에 속했다. 이로 보아 전남에서도 억대일 가능성이 높다.[12] 철강 경기가 2012년에 뚝 떨어진 후에 영 오르질 않아 포스코 산하 구단들인 포항 스틸러스, 전남 드래곤즈 역시 이 경기 불황의 나비효과를 보는 중이다. 즉 팀 예산이 계속 줄고 있다는 것. 심지어 포스텍 내부에서는 '''전남을 처분해야 한다'''는 소리가 정도로 상황이 영 좋지 않다. 실제로 포항과 구단을 합병한다는 소문도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는 중이다.[13] K리그와 슈퍼 리그의 수준차나 선수의 실력 차이라기보다는, 특정 선수와 특정 리그의 궁합은 분명히 존재하는데, 예를 들어 아드리아노는 중국에서는 하태균보다 별볼일 없었지만, K리그에서는 더 잘하고 있는 것처럼 하태균도 어쩌면 K리그보다 중국에서 더 잘할 수 있다.[14] 틀린 말은 아닌 것이 K리그에서는 주전 경쟁에서 밀려 벤치워머 신세였다가 해외 리그로 이적한 후에야 주전이 되는 선수들도 더러 있다. 정운이 대표적인 예시. 단 정운은 크로아티아에서 K리그로 복귀한 후에도 주전이었던 반면 하태균은 K리그로 복귀한 후에는 잉여인간이 되었다는 것이 결정적인 차이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