뎀바 바
1. 개요
프랑스 태생의 세네갈 국적의 축구선수 겸 축구경영인. 주 포지션은 스트라이커이며 현 소속팀은 이스탄불 바샥셰히르 FK. 미국의 3부리그 팀인 샌디에이고 1904 FC의 공동구단주이며 현 회장이기도 하다.
2. 클럽 경력
2.1. 데뷔 초
프랑스에서 유소년 축구를 하다가 19세가 돼서야 프로에 도전하기로 결심, 올림피크 리옹과 AJ 옥세르에 입단 테스트를 했으나 입단에는 실패했다. 결국 바다 건너 영국의 왓포드와 유소년 계약을 했으나 2005년 3월 자신을 영입한 감독이 해고당한 후 덩달아 방출되었다. 이 왓포드가 겨우 1년 뒤 1부리그로 승격해버렸으니 이 때 클럽을 떠나지 않았으면 그의 프리미어 리그 데뷔가 훨씬 앞당겨졌을지도 모른다.
이후 프랑스 하부리그의 루앙을 거쳐 벨기에의 무스크론에서 괴물같은 활약을 보이며 유망주로 주목받아 호펜하임으로 이적하게 되었다.
2.2. TSG 1899 호펜하임
호펜하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팀의 1부리그 승격을 이끌었다. 분데스리가 첫 시즌에도 14골을 득점하여 호펜하임의 돌풍을 이끌었으나 그 이후로 뭔가 꼬이기 시작했다.
그의 몸상태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호펜하임이 이적을 추진하기 시작했고, 2009년 7월 슈투트가르트 이적이 확정되는 듯 했으나 메디컬 테스트에서 낙마해버렸다.
이후 팀에서의 입지도 흔들리고 부상도 잦아서 어중간한 위치가 되었고, 결국 2011년 1월 프리미어 리그의 스토크 시티로의 이적이 확정...되는 듯 했으나 '''또''' 메디컬 테스트에서 낙마해버렸다.
다급해진 그는 결국 파업까지 불사하겠다며 보내주기를 요구했지만 메디컬 두번 떨어진 선수를 대체 어디서 받아주리...
이대로 이적이 불가능하게 되는 줄 알았으나 마찬가지로 정말 다급했던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가 구원의 손길을 뻗어 3년 계약을 제시했고, 메디컬이고 뭐고 그냥 바로 이적시켜버렸다. 웨스트햄의 도박은 적중했고 후반기에만 7골을 작렬시키면서 12경기밖에 안뛰었음에도 불구하고 웨스트햄의 최다 득점자가 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스트햄은 너무나도 간단히 강등당하고 말았고, 그들이 바를 영입하면서 계약서에 '''강등시 자유이적으로 팀을 떠날 수 있는''' 조항을 넣은 것이 밝혀졌다.
이렇게 여름이적시장 최고의 매물 중 하나로 떠오르기 시작했는데...
2.3.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아니나 다를까 이적시장 최고의 알뜰쇼퍼(?) 뉴캐슬이 문제의 조항을 확인하고 적극적인 구애를 펼치기 시작했다. 후발주자로 에버튼이 들어왔으나 결국은 2011년 6월 17일 뉴캐슬과의 3년계약이 확정되었다.
아무리 저번 시즌에 준수한 활약을 보였다고는 하지만 뉴캐슬 팬들로서는 영국 선수 역대 최다 이적료로 떠난 앤디 캐롤의 대체자로 자유 계약 선수인 바를 데려온 것에 대해 못내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메디컬 테스트를 두번이나 낙마한 경력이 있는 선수라서 더더욱 신뢰를 받지 못했고, 대부분의 팬은 한 명의 공격수 추가 영입을 기대했으나 프랑스 쪽에 던져놓은 수많은 떡밥이[1] 줄줄이 나가리가 되면서 뎀바 바가 좋든 싫든 뉴캐슬의 주축 스트라이커가 돼야만 하는 상황이 오고 말았다.
'''그리고 전설은 시작되었다.'''
시즌 초반 감을 못 잡던 그는 2011년 9월 24일 블랙번 로버스를 상대로 해트 트릭을 기록, 이어진 두 경기에서도 골을 넣으면서 세 경기 연속 골을 기록했다. 이후 자신을 버린 팀 스토크 시티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넣으며 확실하게 복수했다.
2011년 12월까지 16경기 13골로 골 폭풍을 지속하며 뉴캐슬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미드필드의 득점력이 좋지 않아 스트라이커에 대한 의존도가 클 수밖에 없는 소속팀으로서는 사실상 없어서는 안 되는 선수였다. 하지만 사기꾼이 워낙 많았던 프리미어 리그라 이런 득점력으로도 선두가 아닌 공동 2위였다(사기꾼 1, 사기꾼 2, 사기꾼 3).
12월 26일 볼턴 원더러스와의 박싱 데이 원정 경기에서 득점하면서 시즌 14골째를 기록, 득점 단독 2위에 올랐다.
워낙 팀에서 비중이 높아져버려서 뉴캐슬은 그가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참가를 위해 떠나는 1월을 두려워하게 마련이었다. 사실 이런 선수가 세네갈 대표팀에서는 '''무사 소우'''와 파피스 시세에 밀려 벤치만 뜨겁게 달군다는 사실이 더 무섭다.
1월 이적 시장 중 대표팀 동료이자 분데스리가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하나인 파피스 시세가 팀에 합류하여 뉴캐슬은 막강한 세네갈 투톱라인을 구축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세네갈 대표팀이 자비 넘치게 네이션스컵에서 충격의 3패탈락을 하면서 바와 시세가 뉴캐슬에 조기 복귀하게 되었다.
결국 2012년 2월 5일 아스톤 빌라와의 홈 경기에서 레온 베스트의 부상 직후 시세가 투입되어 바와 호흡을 맞추며 데뷔전을 치렀고, 둘다 사이좋게 한 골씩 넣으면서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이로서 바는 16골로 득점랭킹 2위를 수성.[2] 그러나 시즌 마지막까지 뎀바 바의 더 이상의 골은 없었다. 진짜 이유는 후술.
파피스 시세의 영입과 아템 벤 아르파의 부활과 맞물려 4-3-3 시스템이 가동되면서 4-3-3의 왼쪽 포워드로, 철저히 시세에 맞춰진 서포터 역할로 남은 시즌을 소화했다. 시즌 후반 득점이 줄다 못해 아예 없어진 이유. 그래도 그만큼 직간접적으로 시세의 골러쉬에 기여했기에 시즌 후반의 바를 부진했다 여기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그 잘만 들어가던 골이 안 들어가게 되자 경기 중에도 표정 관리가 안 되는 상황도 찾아오는 등 이전처럼 신바람나게 경기하고 있지는 못한 듯.
시즌 막바지에 이르러 단돈 '''7백만 파운드의 바이아웃''' 조항이 걸려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바의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것과 더불어 뉴캐슬 팬들을 얼어붙게 만들기엔 충분한 소식. 특히 토트넘 핫스퍼가 바를 매의 눈으로 주시하고 있으나 시즌 종료 시점까지는 정식 오퍼는 없었으며, 본인도 뉴캐슬 생활에 만족한다고 밝혔다. 향상된 조건의 계약이 반드시 제시되어야 하고, 제시될 예정인 상황. 그리고 8월이 지나면서, 이 바이아웃 조항은 자동으로 삭제되었다...인 줄 알았으나 바의 에이전트가 선발 출장 문제로 불만을 표시하자 파듀 감독이 직접 7백만 파운드의 바이아웃 조항이 여전히 계약내용에 들어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2012년 들어서도 꾸준히 골을 넣어주어 20경기 13골로 득점 순위 3위를 기록 중.
2.4. 첼시 FC
2013년 1월 4일 첼시 FC로 이적했다. 마땅한 공격수가 페르난도 토레스 외에 부족했던 첼시에 힘을 보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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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6일 FA컵 3라운드 사우스햄튼 FC 원정에서 2골을 신고하며 팬들에게 '''드록바의 재림'''이라는 평을 들었으나... 그 뒤로 맨유전 정도를 제외하면 영 시원치 않은 활약으로 13-14시즌에는 벤치멤버로 전락했다.
12-13 시즌 15골을 기록하면서 같은 팀 동료인 램파드와 같이 팀 득점 1위이자, 리그 공동 7위[3] 를 기록했다. 그러나 13골은 뉴캐슬에서 넣은 골이고 첼시에서 넣은 골(리그)은 2골뿐이라...
시즌 후 이적시장 마지막날 아스날 이적에 메디컬테스트만 남겨두었으나 아스날의 전력강화를 우려한 무리뉴의 반대에 그대로 첼시에 잔류하게 되었다.
13-14 시즌 첼시에서 리그 15경기에서 3골을 기록 중이었다. 부상 탓도 컸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활약이긴 한데 13-14 챔피언스리그 8강전에서 파리 생제르맹 FC을 상대로 후반 종료 몇분을 남겨두고 결승골을 기록하며 팀의 극적인 4강행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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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막판 리버풀 원정에서 스티븐 제라드의 실책을 놓치지 않고 선제골을 기록한다!'''
이때 리버풀은 EPL 출범 이후 팀의 첫 리그 우승을 향해 순항 중이었다. 이날 첼시전만 이겼다면 자력 우승이 가능했지만 끝내 뒤집지 못하고 기세가 꺾이는 바람에 결국 우승에도 실패했다.[4] 이 경기가 대한민국 축구팬들을 포함한 전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경기 수 대비 상당한 골 순도를 보여주면서 안티였던 사람들을 "그래도 저정도면 토레스보단 더 해줬지..." 정도의 감정으로 돌리는데 성공했다. 이로 인해 스티븐 제라드의 멸칭인 ’뎀바바의 충견’ 이나 ‘훔바훔바’ 같은 별명들이 급속도로 퍼진 계기가 되었다.
2.5. 베식타쉬 JK
2014년 7월 16일 터키 쉬페르 리그 베식타슈 JK로 이적하였다. 이적료는 6M유로이다. 첼시에서는 잔류를 바랬지만 주전으로 뛰고 싶다는 본인의 의견으로 시즌 중 이적명단에 올랐다. 베식타슈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으며 별명은 아버지(...)[5] UEFA 챔피언스 리그 3차 예선 2차전에서 페예노르트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하였다.
시즌 초반 부상을 당하며 잠시 주춤하기도 했지만, 이내 자기 페이스를 되찾으며 총 44경기에서 27골 7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었다.
2.6. 상하이 뤼디 선화
2015년 6월 28일 중국 슈퍼 리그 상하이 선화 이적이 확정되었다.
중간에 합류한 2015 시즌은 11경기 6골(+FA컵 5경기 6골)을 기록했고, 2016 시즌은 6월말 기준 15경기 12골로 득점 선두를 질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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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2016년 7월 17일 상하이 더비에서 아주 치명적인 골절상을 입고 말았다.'''혐오 주의'''[6] 왼쪽 다리 정강이가 완전히 부러져서 너덜너덜해졌고, 엑스레이 촬영 결과 뼈가 '''완전히''' 두 동강 나버렸음[7] 이 확인되었다. 회복에는 7~8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본인은 태클을 건 순샹을 비난하지 말라 는 인터뷰를 하며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2017년 1월 30일 터키 쉬페르 리그 베식타슈 JK로 남은기간 임대되며 다시 터키리그로 복귀하였다.
2018년 1월 31일 자유계약으로 터키 쉬페르 리그 괴즈테페 SK 이적했다.
2018년 6월 12일 다시 상하이 선화로 이적했다.
2.7. 이스탄불 바샥셰히르 FK
2019년 겨울 이적 시장을 통해 터키 쉬페르리그로 복귀하였다. 5경기 2골을 기록하였다.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3차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선제골을 넣었는데 구도가 묘하게 13/14 시즌 리버풀전 당시 득점과 비슷하여 그 당시를 기억하는 프리미어리그 팬들에게 오랜만에 웃음을 줬다. [8] 결과는 2:1로 바샥셰히르의 승리.
20 21 시즌 챔스 6차전 PSG와의 경기에서 바샥셰히르의 코치가 대기심에게 인종차별을 당했고 벤치에 있던 뎀바 바는 대기심의 말에 매우 격분하였고 이에 양팀 선수단들이 항의하며 경기가 보이콧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3. 플레이 스타일
겉모습만 보면 큰 키와 흑인 특유의 탄력을 이용한 타겟형 스트라이커라고 상상하기 쉽지만 사실 공중볼은 별로... 이런 측면에서는 뉴캐슬 시절 팀 동료인 숄라 아메오비와 많이 겹치는 듯 보이지만 단지 신체조건이 비슷해서 그렇게 생각될 뿐, 상당히 아메오비와 다른 유형의 선수다.
딱히 신체적 능력이 좋다기보다는 슛을 정말로 잘 때리는 선수다. 공이 자기 근처로 오면 뛰든 다이빙을 하든 몸을 요상하게 비틀든 어떻게든 공을 대충 골대 근처로 날린다. '''그것도 아주 강하게.''' 탁월한 유연성과 민첩성, 그리고 골대의 위치에 대한 본능적인 기억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더군다나 날아오는 공을 아주 빠르게 자신의 소유로 만드는 탁월한 퍼스트 터치 능력이 있기 때문에 박스 안에서 세컨드볼을 때려넣는 데 최적화된 선수.
활동량도 아주 풍부해서 미드필드와 최전방을 오가며 공격 전개를 돕고 심지어 수비 가담도 한다. 분명히 저 뒤쪽에서 어정쩡하게 태클을 하고 있었는데 공 소유권 바뀌고 정신 차리면 이미 페널티박스 안일 때가 많다. 주로 왼쪽 측면으로 빠지는 경우가 많아 호펜하임 시절부터 왼쪽 윙포워드로도 종종 기용되었으며, 11-12 시즌 후반 왼쪽 윙포워드를 다시 맡았다.
결론적으로는 적당한 피지컬에 '''야성의 골감각'''이 더해진 선수. 드리블이나 패스의 정교함은 평범한 수준이지만 공을 네트에 박아넣는 데 필요한 테크닉 하나는 세계 최고다.
4. 부상
고질적인 무릎부상[9] 이 있는데 이것으로 인하여 호펜하임에서도 두시즌 정도 개점휴업 상태였고 슈투트가르트와 스토크 시티에서 두 차례의 메디컬을 낙마했다. 당시 스토크 시티 관계자들은 그를 두고 "무릎에 시한 폭탄을 달고 다닌다"고 평가했다는 후문.
첼시 서포터들은 그가 경기장에서 쓰러질 때마다 가슴이 철렁철렁 했다. 워낙 많이 뛰고 몸을 던지는 플레이를 하는 선수다 보니 더 그렇다.
클럽 측에서도 그의 무릎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어서 집중적으로 관리한다. 심지어 근거없는 루머 중에는 무릎에 체중이 실리는 일을 최소화하기 위해 신발끈조차 스스로 묶지 못하게 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좌우간 고장만 안나면 정말 훌륭한 선수지만 과연 언제까지 부상없이 버틸지는 의문이다.
재밌는 것은 이런 바를 영입했던 뉴캐슬이 같은 프랑스 출신의 스트라이커 모디보 마이가에 대해서는 무릎 문제를 이유로 성사 직전까지 간 이적을 결렬시켰다는 것이다. 바보다 심각하다면 마이가의 무릎 속에는 도대체 뭐가 들어가있는 것인지... 신기하게도 웨스트햄 이적 이후에는 자잘한 부상은 있었어도, 우려했던 무릎부상은 없었다. 굉장히 많은 활동량을 가진 선수라는 점까지 감안하면 의외라는 반응. 후술한 부상 역시 무릎부상이 아니라 다리 부상이었다.
7월 17일 진행된 경기에서 '''다리가 아예 부러져버렸다. ''' 회복 기간은 보통 7~8개월이 걸리는데, 복귀한다고 해도 트라우마+후유증 때문에 부상 이전의 실력을 되찾긴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10]
5. 기타
11/12 시즌 하반기 뉴캐슬이 맨유를 상대로 충격적인 3-0 대승을 거뒀을 때 2골을 넣었는데, 경기 후 딸기 시럽이 비결이라는 인터뷰를 했다. 첼시로 이적한 뒤 팬들과 트위터로 Q&A를 했을 때도 딸기 시럽 마니아임을 다시 인증했다.
저 딸기 시럽은 프랑스에서 먹었던 것으로, 영국에는 수출되지 않았는데 저 인터뷰 이후 뉴캐슬 구단이 도움을 주어서(...) 구단 근처의 마트에서도 해당 딸기 시럽을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전에는 가족들에게 부탁을 해서 사다먹었다고(...)
독실한 무슬림이기 때문에 골 세리머니로 알라에 대한 큰절('수주드'라고 한다)을 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2017년, 미국에서 에당 아자르, 요앙 카바예등과 함께 샌디에이고 1904 FC라는 팀을 창단했다. 본래 NASL에 참가하려 했지만 리그가 파행하며 참가를 철회 2020년 현재는 3부 리그 격인 NISA에 참가하고 있다.
6. 관련 문서
[1] 케빈 가메이로, 멜뷔트 에르딩, 모디보 마이가[2] 하지만 반페르시는 블랙번 공양버프 덕분에 저멀리 22골로 달아나 버렸다.[3] 그 밖에 15골을 기록한 공동 7위 다른 선수로는 풀럼의 베르바토포와 사우스햄튼의 리키 램버트. 앞 6위는 첼시 선수였다가 WBA로 임대간 로멜루 루카쿠.[4] 이 순간은 콥들에게 두고두고 트라우마 스위치가 되어버렸다.[5] 터키어로 '바바(baba)'라는 단어가 아버지를 뜻한다. 이름을 이용한 일종의 언어유희.[6] 참고로 저런식으로 뼈가 부러져 너덜거릴시, 부러져서 끝이 뾰족해진 뼈에 의해 종아리 내부에 출혈이 생길 가능성이 꽤 있고, 최악의 경우 뼈에 의해 피부가 찢어지는 끔찍한 부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7] 왼쪽 정강이 뼈는 두 개의 뼈, 경골과 비골로 돼있는데 모두 완전히 박살(...)이 났다.[8] 그런데 이 경기도 장지현 해설위원이 또 중계했다. 이 당시 맨유의 경기력을 극딜한 건 덤.[9] 2가지 설이 있는데, 정강이 뼈 골절 후 25cm짜리 핀을 넣고 회복하다가 의사가 힘줄을 건드렸다는 것과 정강이 골절 후 의사가 실수로 무릎 수술을 해서 다시 치료받았다는 설이다. 사실상의 의료사고.[10] 지브릴 시세, 이청용의 경우만 생각해봐도...